자전거쪽지 2012.8.11.
 : 숲길을 달린 자전거수레

 


- 아이들과 천등산을 오른다. 아직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았고, 아직 옆지기를 만나기 앞서, 나 혼자 자전거를 타면서 수레에 책을 200∼300권쯤 싣고 아홉 시간을 낑낑 달리곤 했기에, 두 아이 태우고 천등산 멧길을 오를 수 있으리라 여긴다.

 

- 막상 두 아이 태우고 멧길을 오르자니 꽤 힘이 부친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오른다. 오르막을 얼추 올랐다 싶을 무렵, 큰아이가 내려서 달리고 싶다 말한다. 아무래도 아이가 달리거나 걷을 때에 더 빠른 듯하다고 느끼나 보다. 다른 한편으로는 큰아이가 아버지 다리힘을 헤아리며 수레에서 내리겠다는 뜻이 되겠지.

 

- 큰아이가 내린 수레는 한결 가볍다. 그렇지만 자전거로만 이 길을 오르기에도 퍽 벅찰 만하다고 느낀다. 어쨌든, 끝까지 다 오른다. 온몸은 땀으로 젖는다. 그리 높지 않은 멧자락이지만, 이러한 길을 자전거로 오르는 일이란 여느 일은 아니라고 새삼스레 느낀다. 아이들한테 물을 먹이고 나도 물을 마신다. 이제는 내리막을 달리는 일만 남았다고 여기며, 오늘 새로 가려는 길로 접어든다.

 

- 처음에는 즐겁게 내리막이다. 그런데 이내 흙길이 나오고 풀섶이 우거진다. 게다가 오르막으로 바뀐다. 이게 뭔가? 고흥군에서 만들어 나눠 주는 길그림하고 다르잖아? 고흥군 길그림에는 포두면으로 이어지는 ‘포장된 길’로 나오는데. 기어를 낮추고 또 낮춘다. 처음 멧길을 오를 때보다 훨씬 버겁다. 흙길에 풀섶이 우거진데다 비알이 지니 자전거가 달리기 아주 나쁘다. 씩씩하게 흙길을 한참 헤치며 지나니 비로소 시멘트길이 나온다. 그런데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린다. 무슨 갈림길인가 하고 왼쪽으로 가 본다. 아주 가파른 비알길이라 자전거에서 내려 미는데, 자꾸자꾸 뒤로 쏠린다. 이러다가 수레가 굴러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꿋꿋하게 버티며 위로 올라간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숲속 절집이 나타난다. 어라. 이 길은 절집 가는 길? 길그림에도 안 나오는 자그마한 암자 같은 절집이 나온다.

 

- 하는 수 없이 돌아선다. 이제 비탈길 내리막을 브레이크 꽉 잡으며 아주 힘들게 내려온다. 자전거에 탈 수 없다. 두 다리로 가까스로 버티듯 천천히 내려온다. 아까 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아직 비탈이 너무 가팔라 자전거에 탈 수 없다. 몇 분쯤 낑낑대듯 자전거를 버틴 끝에 자전거에 오른다. 내리막이 아주 무시무시하달 만큼 길다. 수레에 탄 아이들은 비로소 시원한 바람을 쐰다. 더운 날 아버지하고 애먹는다.

 

- 우리 동백마을하고 이웃한 봉서마을로 내려온다. 길그림에 잘못 나온 길을 몸으로 잘 익힌다. 작은아이는 어느새 잠들었다. 작은아이 몸이 자꾸 앞으로 쏠리기에 자전거를 세운다. 작은아이를 뒤로 반듯하게 누이려 하는데 안 된다. 왜 그런가 하고 살피니, 자전거수레를 버티는 끈 한쪽이 끊어졌다. 아까 비탈길에서 용을 쓸 무렵 무게를 버티지 못한 듯하다. 너무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수레도 아주 힘들었나 보다.

 

- 수레에 아이들 앉는 자리를 버티는 한쪽 끈이 끊어졌어도 어찌할 길이 없다. 게다가 작은아이는 잠들었다. 면소재지까지 가기로 한다. 자전거를 천천히 달리며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어떻게 고쳐야 할까. 버팀끈이 무게를 이기지 못한다면 노끈을 사서 아이들 앉는 자리 밑에 촘촘하게 대면 어떨까 싶다. 마을 어르신들이 경운기 앉는 자리를 으레 노끈으로 친친 감아 앉곤 하던데, 이렇게 끈으로 감으면 될까 싶다. 면소재지에 닿아 철물점에 들러 노끈 한 타래를 오천 원 주고 장만한다.

 

- 집에 닿기까지 작은아이는 깨지 않는다. 집에 닿아 작은아이를 살살 안아 방에 누인다. 큰아이도 나란히 잠들었다. 큰아이도 가만히 안아 방에 누인다. 오늘은 고단해서 자전거수레 손질을 못한다. 이듬날 하자.

 

 

아직까지 멀쩡한 자전거수레. 곧 작은아이 앉은 자리 버팀끈이 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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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울타리 고양이 식구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이끌고 돌울타리를 걷는다. 이 녀석들은 때때로 돌울타리를 무너뜨린다. 고양이라면 더 사뿐사뿐 조용히 예쁘게 걸으리라 여겼는데, 집 둘레에서 ‘우르르’ 소리를 곧잘 듣는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돌울타리를 무너뜨린다. 새끼 고양이도 어미 고양이처럼 돌울타리를 딛고 거닐다가 새삼스레 돌울타리를 와르르 무너뜨리려나. (4345.8.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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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심 책읽기

 


  네 식구 나란히 걷는다. 옆마을 논길을 걷고 밭 사이를 걷는다. 어느 논둑에 몹시 고운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주는 꽃이 있어서 한참 들여다본다. 처음에는 쑥꽃인가 싶더니, 꽃잎이 붙은 줄기를 찬찬히 더듬으니 덩굴꽃이다. 어느 덩굴꽃일까. 이렇게 작은 꽃을 피우는 덩굴풀은 어떤 열매를 맺을까. 우리 집뿐 아니라 이웃 시골집 돌울타리를 타고 꽃을 피우는 하늘타리하고 같은 갈래인 덩굴풀일까. 풀이름 또는 꽃이름이 궁금해서 마을 할머님한테 여쭌다. 마을 할머님은 “지심이여, 지심.” 하고 말씀한다. 딱히 이름을 알 까닭 없이, 논밭에서 뽑아야 할 ‘지심(김)’이라고 한다.


  엉겅퀴나 지칭개도 언제나 지심이 되어 뽑힌다. 갓이나 유채도 따로 나물이나 김치를 담가 먹지 않으면 지심으로 여겨 뽑는다. 모시는 이제 거들떠보는 사람 없을 뿐 아니라 아주 빨리 훌쩍 자라니 낫으로 치거나 약을 뿌려 죽인다. 깻잎만 하더라도 다 못 먹는 판이니 모시잎까지 먹으려 하는 시골사람이란 만날 길이 없다. 생각해 보면, 깻잎뿐 아니라 콩잎도 고추잎도 다 먹는 잎이다. 어느 잎이든 다 먹는 잎이요, 밥이 되는 잎이 있고 약이 되는 잎이 있다.


  할머니들이 지심이라 하는 덩굴꽃 두 줄기 꺾는다. 한 줄기는 작은아이 손에 쥐어 준다. 한 줄기는 큰아이 손에 쥐어 준다. 두 아이는 지심꽃을 들고 한참 재미나게 논다. (4345.8.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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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는 괜찮다 - 그동안 몰랐던 가슴 찡한 거짓말
이경희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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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할매가 바라는 삶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2] 이경희, 《에미는 괜찮다》

 


- 책이름 : 에미는 괜찮다
- 글 : 이경희·최시남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12.5.8.)
- 책값 : 12000원

 


  나이든 어머니하고 전화로 주고받은 이야기를 갈무리했다는 《에미는 괜찮다》(삶이보이는창,2012)를 읽습니다. 큰아이하고 나란히 앉아 큰아이한테는 여섯 칸 깍두기공책에 한글을 쓰도록 시키고, 나는 옆에서 책을 읽습니다. 식구들 밥을 차려 먹인 다음 기운이 쪼옥 빠져 살짝 방바닥에 모로 드러누워서 책을 읽습니다. 두 아이를 마당에서 물놀이를 하게끔 큰 고무통에 물을 받아 들어가라고 하고는, 그늘진 데에 앉아 책을 읽습니다. 아이가 그림책을 보거나 사진기를 갖고 노는 동안 곁에서 조용히 책을 읽습니다.


.. 아침나절 니 아배두 자구, 딴엔 노는 손이라 거들어 주려구 여기저기 걸레질 좀 힜드니, 니 올케 맘에 안 드는지 다시 청소허더라. 설거지두 못허게 허구 빨래 하나 개지 뭇허게 허니 심심히서 살 수가 있어야지. 병들어 말 뭇허는 니 아배만 쳐다보구 가만히 놀구먹으라니, 눈치 뵈서 살 수 있겄냐. 애당초 그런 일이 생길까 봐 그냥 니 아배허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둘이 산다니께 니 오래비 지랄허구 부득불 데려다 놓더니, 사람을 아주 시절을 만드는구나 … 손톱이 닳게 엎드려 일허느라구 하늘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두 모르구 살었다. 내가 씨감자로 살아야 니들이 잘산다는 생각밖엔 읎었다. 그것이 잘못 산 것은 아니겄지만, 오늘 이 좋은 디 와서 보니께 사람 한평생 사는 것이 뭐 그리 대단헌 일두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  (26, 70∼71쪽)


  살림을 도맡고 집일을 도맡으며 돈벌이까지 하는 몸으로 책을 읽을 겨를은 아주 적습니다.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살아가며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내가 책을 읽고 책을 쓰며 책을 말하는 삶을 누리려 했다면, 혼인부터 안 할 노릇이요 아이들은 안 낳을 일이였구나 싶어요. 그러나, 혼인을 하면서 책을 새롭게 마주하고 새삼스럽게 씁니다. 아이들을 낳아 돌보면서 책을 새롭게 바라볼 뿐 아니라 새삼스럽게 엮습니다.


  조각조각 나누기는 했으되, 이틀에 걸쳐 다섯 시간 즈음 가까스로 틈을 내어 원고지 1600장에 이르는 글을 살피기도 합니다. 곧 새로 내놓을 내 책 원고 1600장인데, 내가 쓴 글이라 더 수월히 살핀다 할 테지만, 집일을 하고 아이들하고 복닥이는 틈바구니에서도 ‘스스로 해야겠다’ 생각하거나 ‘스스로 하고 싶다’ 여기는 일은 틀림없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홀가분하게 책을 읽지는 못해요. 더 많은 책을 읽지는 못해요. 더 골고루 책을 살피거나 읽지는 못해요.


  읽을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아요. 살피거나 다룰 수 있는 책은 퍽 적다 할 만해요. 다만, 혼자 살며 혼자 책을 읽던 때에는 혼자 생각하고 혼자 느끼며 혼자 말합니다. 여럿이 살며 여럿이 얼크러지며 책을 읽는 오늘은 내 생각을 옆지기랑 아이하고 버무립니다. 그림책을 보고 만화책을 보면서, 사진책을 보고 시집을 읽으면서, 내 마음이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는가를 찬찬히 짚습니다. 내 꿈과 내 사랑이 어떻게 샘솟아 어떻게 피어나는가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 농촌 인심이라는 게 산이구 들이구 널려 있어 음식 냄새 풍기구는 혼자 먹지 뭇허는 법이란다 … 니 아배 살아 있을 적이는 밭에서 일허다가두 그 양반(우체부) 오면 막걸리 한잔 허면서 시상 사는 얘기허구 돌아갔는디, 그 양반이라구 나이를 안 먹었겄냐. 어느 날부턴가 오지 않길래 물었더니 워디가 아프다구 허더니 결국 갔구나 … 그 양반 우리 집 편지 아니면 이 동네 출입헐 일도 읎었을 것이다 ..  (35, 49쪽)


  《에미는 괜찮다》라는 이야기책은 소설을 쓰는 딸아이 이경희 님이 글을 엮습니다. 이녁 어머님과 주고받은 전화 이야기를 책으로 갈무리했다는데, 목소리를 담아서 글로 옮겼는지, 그때그때 빈책에 옮겨적고는 갈무리했는지, 아니면 들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되새기며 갈무리했는지 궁금해요. 이 대목은 안 밝히거든요. 어쩌면 여러 날 주고받은 전화 이야기를 한 가지 ‘이름(주제)’을 붙여 새롭게 엮었을는지 모르지요.


  아무튼 나는 시골마을 할머니 목소리를 책으로 읽습니다. 우리 집 네 식구 살아가는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 할머니들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책을 읽습니다. 시골마을 할머니는 충청도이든 전라도이든 경상도이든 강원도이든 경기도이든 서로 매한가지로구나 하고 느끼며 책을 읽습니다.


  참말 그래요. 할머니(에미)들은 한결같이 말해요. “에미는 괜찮다” 하고. 그런데,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인 나도 이렇게 말해요. “응, 아버지는 괜찮아.”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요. 졸려도 괜찮다고 말해요. 배고파도 괜찮다고 말해요. 후끈후끈 덥거나 오들오들 추워도 괜찮다고 말해요.


.. 즌화 끊자마자 그 길로 니 동생네로 달려갔다. 까짓 품앗이구 뭐구 눈에 뵈는 게 읎더라. 모 안 심는다구 박힌 논이 워디로 도망갈 것두 아니구, 베 아니면 보리 심어 먹으면 그만이지 싶은 것이 아무 생각두 안 나더라. 손주새끼 살 냄새 맡을 생각을 허니께 가슴이 벌렁벌렁히서 그냥 있을 수가 읎어. 부랴부랴 옷 주서 입구 회관 앞으로 가 뽀스를 지달리는디 망할놈의 뽀스가 와야지. 뽀스 오기 지달리다가는 우리 손주 오줌 가리겄다 싶어서 냅다 택시 잡아탔다 … 내가 아무리 귀가 먹었어두, 내 새끼들 음성을 뭇 알아듣겄냐. 따르릉 소리만 듣구두 누군지 다 안다. 밭에서 일허다가두 즌화 소리 들리면 누가 즌화허는지 알 수 있단다 ..  (58, 77쪽)


  말 한 마디에 사랑을 담고 싶어요. 아이들과 마주하든 옆지기하고 마주하든 언제나 사랑 담은 말을 하고 싶어요.


  몸짓 하나에 사랑을 싣고 싶어요. 아이들을 쓰다듬든 옆지기하고 어깨동무하든 늘 사랑 싣는 몸짓으로 살고 싶어요.


  아무래도 나 스스로 오늘 하루 사랑스레 말하지 못한 나머지 이렇게 꿈꾸는구나 싶기도 해요. 아이들 앞에서 그야말로 사랑스러운 몸짓을 보여주지 못한 탓에 이렇게 바라는구나 싶기도 해요.


  아끼고 사랑한다면, 좋아하고 보살핀다면, 함께 살아가며 서로 꿈을 꾼다면, 내 하루와 아이들 하루는 어떻게 열릴까요. 나는 어떤 하루로 아침을 열고 저녁을 닫을 때에 즐거울까요. 아이들은 어떤 햇살을 맞으며 아침을 열고 어떤 달빛을 받으며 저녁을 닫을 때에 기쁠까요.


  어버이로서 생각하기도 하고, 한 사람으로서 생각하기도 하며, 나 또한 내 어버이한테는 아이인 만큼 나부터 아이 눈길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잠든 아이들 이불을 여미며 생각합니다. 개구지게 노는 아이들 옷을 벗겨 씻기면서 빨래를 새로 하며 생각합니다. 이 자그마한 몸뚱이에도 내 커다란 몸뚱이하고 똑같은 넋이 깃들어요. 이 조그마한 몸짓에도 내 커다란 몸짓하고 똑같은 얼이 흘러나와요.


.. 세 사위 모두 책상머리에 앉아 펜대만 굴리는 인사들인디, 멋모르구 밭고랑을 뛰어다녔으니 지금쯤은 아마 허리깨나 아플 것이다 … 도시에서만 살아 먹어 보기만 힜지, 언제 고구마를 캐 봤겄냐. 아마 일두 아니라구 생각힜겄지. 소풍 나온 거보다 더 재밌게 생각힜을 것이다. 지 식구들이 캔 고구마는 몽땅 가져가라구 힜으니 신이 날 만두 허지 … 일 안 허구 놀이 나오니 좋긴 좋더구나. 언제 그렇게 꽃이 피었는지 밭고랑에 엎드려 있느라구 봄이 가는 줄두 물렀다 ..  (73, 92, 151쪽)


  아침에 식구들 모두 이웃마을로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돌아왔습니다. 이웃마을 어느 빈터 돌울타리에 부추풀이 자라는 모습을 보았어요. 옆지기와 아이들도 이 모습을 보았나 궁금한데, 아이들이 앞서 빨리 걷느라 미처 붙잡지 못하고 사진만 찍고 지나갔어요. ‘풀’이니까 흙에 뿌리를 내릴 노릇이요, 시골은 어디에나 흙인데, 이 부추풀은 돌울타리에 얹은 기왓장에서 자라더군요. 똑똑히 말하자면, 돌울타리에 얹은 기왓장에 이끼가 꼈고, 이끼가 오래되면서 흙처럼 되었으며, 이 자리에 부추풀이 씨앗을 드리우며 씩씩하게 자랐어요. 하얀 몽우리가 쌀알만 한 꽃잎을 한창 터뜨리더군요.


  논둑에 우람하게 자란 쑥풀을 감싸던 어느 덩굴은 샛노라면서 무척 고운 냄새를 짙게 풍겨요. 마을 할머님한테 무슨 풀인지 아시느냐고 여쭈었더니 “지심이여, 지심.” 하고 말씀합니다. ‘김’이란 소리요, ‘잡풀’이란 얘기예요.


  논둑길이나 밭둑길을 걸어가면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뜯어서 내놓은 ‘지심’을 많이 봅니다. 이 지심들 가운데에는 바랭이풀도 많고 이런저런 풀도 많은데, 질경이도 미나리도 지칭개도 모시도 있어요. 나물로 먹을 생각이 아니면 돗나물도 지심꾸러미에 들어가는 풀이 돼요. 자운영도 광대나물도 온통 지심으로만 여기셔요.


.. 읍내만 히두 우리 동네허구 공기가 달라서 쪼끔만 서 있어도 가슴이 답답허구 머리가 무거워 … 봄이면 꽃 피구 겨울이면 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 아니겄냐 … 이 방송 틀어두 먹을 거, 저 방송 틀어두 먹을 거만 나오니, 노인네들조차 배가 북통만 히서 다니지. 그리들 먹어 놓구는 또 살을 뺀다구 굶거나 약을 먹으니 뭔 조홧속인지 모르겄다 ..  (125, 140, 193∼194쪽)


  큰아이가 오줌그릇에 눈 오줌을 비웁니다. 나도 오줌을 눕니다. 낮에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밤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뭇별을 올려다봅니다. 날마다 입으로 마음으로 ‘좋다’ 하고 읊습니다. 하늘이 좋아 좋다고 읊습니다. 구름도 별도 달도 해도 좋아서 좋다고 읊어요. 그러다 문득, 옆지기랑 아이들한테 다들 참 좋네, 하는 말을 얼마나 즐겁게 읊었는가 하고 곱씹습니다.


  애써 밥을 차려서 밥 먹으라 불러도 밥상 앞에 앉을 생각을 안 한다고 이맛살을 찌푸리거나 골을 부리는 내 모습입니다. 밥상 앞에서 깨작거리는 젓가락질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내 모습입니다. 참 딱한 노릇인데, 이맛살을 찌푸리거나 한숨을 쉬는 내가 그야말로 딱합니다. 즐겁게 맞이하는 밥상이 되도록 하고, 즐겁게 누리는 밥 한 그릇이 되도록 하면 되거든요. 밥을 차리는 일은 무슨 ‘공양’도 ‘인덕’도 아니에요. 그저 ‘밥 한 그릇 차리기’예요. 빨래도 다른 집일도 그래요. ‘해 주는’ 일이 아니라 ‘즐기는’ 일이고 ‘누리는’ 일이에요. 내 목숨을 살찌우는 일이고, 내 사랑을 북돋우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이 땅 모든 ‘에미’들이 한 마디로 말하겠지요. “에미는 괜찮다” 하고.


.. 우리 오매두 워쩌면 나처럼 시집살이가 고되서 굴뚝 뒤에 숨어서 울기두 힜을 것이다. 혼자 실컷 울구 나서는 다시 방긋거리는 새끼들을 쳐다보며 살어야지 생각힜을 것이다 … 아래채는 새로 지은 건물이라 위채만은 뭇허다. 위채는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이라 낡긴 힜지만 콘크리트 같지 않구 구수한 냄새가 난단다 … 나는 아파트라닌 디 영 마땅찮더라. 토끼장 같이 지어 놓구는 왜 또 그리 비싸다니 ..  (175, 211, 240쪽)


  그나저나, 참말 에미들 누구나 괜찮은지는 알쏭달쏭해요. 굴뚝 뒤나 처마 밑에서 그렇게 눈물짓던 에미들 누구나 오늘 하루 시골집에서 홀로 밭일을 하고 집일을 하면서 혼자 밥상을 차려서 먹는 삶이 얼마나 괜찮은지 아리송해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왜 하나같이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아파트에 스스로 갇혀 살아야 하나요. 아이들한테 자연을 아끼도록 이끌고 아이들이 자연을 사랑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하면서, 왜 정작 도시에 숲을 일구지 않을 뿐 아니라, 도시를 떠나 숲 어여쁜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살아갈 생각은 안 하나요.


  흙으로 지은 집에서는 흙내음이 나요. 시멘트로 지은 집에서는 시멘트내음이 나요. 나무 기둥을 세운 집이니 나무내음이 나겠지요. 쇠붙이와 플라스틱을 쓴 아파트에는 아주 마땅히 쇠붙이랑 플라스틱이 풍기는 내음이 가득해요.


  들판에서 일하는 시골 할매와 할배는 흙을 맡고 햇살을 맡으며 바람이랑 나무랑 냇물을 맡아요. 자동차를 몰고 전철을 타며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도시 젊은이는 자동차와 전철과 컴퓨터 내음을 맡겠지요.


  좋게 누리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즐겁게 누리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즐겁게 누리는 사랑은 어떤 그림으로 나타날까요. 《에미는 괜찮다》를 읽는 내내 내 마음속에서는 한 가지 생각이 피어오릅니다. 시골 할머니는 다 괜찮다고 말씀하지만, 당신이 낳은 아이들이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즐거우며 가장 아름다울 보금자리에서 다 함께 얼크러지며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삶을 가장 바라며 기다린다고 느껴요. 돈 없어도 최시금 할머니는 충청도 시골집에서 잘 살아가시잖아요. 왜냐하면, 돈이 없다 하더라도 집이 있고 옷이 있으며 밥이 있어요. 사랑이 있고 꿈이 있으며 믿음이 있어요. 학력이나 종교나 재산은 없으시겠지요. 그렇지만, 흙을 누리고 햇살을 누리며 숲을 누려요. 참말, 시골 할매 최시금 님은 이녁 아이들이 부디 ‘저희 나고 자란’ 멧골집으로 돌아와서 오순도순 예쁘게 살아갈 나날을 기다리시는구나 싶어요. (4345.8.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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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방은 2010년 8월 13일에 열었다. 이무렵, 알라딘서재를 그만둘까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알라딘서재는 그만두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는 내가 좋아해서 쓰는 글을 내 둘레 좋은 이웃하고 나눌 생각으로 쓰기 때문에, '따로 편집자한테서 원고 독촉을 받거나 원고 채점을 받는' 일이 있는 인터넷신문이 아니라 한다면, 내가 어디를 그만두거나 새로 들어갈 까닭이 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알라딘서재가 영 어수선하게 흐르는구나 싶어, 마음을 둘 만하지 않다고 느낀다. 아마, 언제가 될는지 모르나, 어느 곳에도 글을 안 쓸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저 '단행본 책'으로만 글을 내놓고, 어떠한 인터넷 터에도 글을 안 쓸 날이 오겠지.

 

그때가 언제가 될까 모른다면, 올리는 동안에는 즐겁게 올리자고 생각한다. 예스24에는 느낌글(리뷰)을 올리며 사진을 못 붙이고 말아 많이 아쉬운데, 어느 모로 보면, '오직 글로만 생각하도'록 도우니까 좋다고도 할 만하다. 다만, 왼쪽이나 오른쪽에 자질구레한 메뉴가 어쩔 수 없이 많이 붙는다.

 

아무튼. 예스24 방에는 느낌글만 올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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