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서 춤추는 어린이

 


  태풍이 지나간 마당에서 춤을 추는 어린이. 바람이 시원하다고 말하면서 춤을 춘다. 참말 바람은 시원하다. 바람은 차갑지 않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요 겨울에는 따스하게 부는 바람이다. 바람은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려고 분다. 바람은 우리 몸을 예쁘게 어루만지려고 분다. 작은 몸짓으로 바람을 반기며 춤을 춘다. (4345.9.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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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小출판사 순례기 - 출판정신으로 무장한
고지마 기요타카 지음, 박지현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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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읽기 삶읽기 114] 고지마 기요타카,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

 


  저마다 책을 읽습니다.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든다 여기는 책을 읽습니다. 소설책이든 자기계발책이든 스스로 가장 눈길이 닿기에 살포시 집어들어 읽습니다. 일 때문이든 독후감 때문이든, 스스로 어느 책 하나 읽어야겠다고 느끼기에 읽습니다.


  저마다 집을 마련합니다. 맞돈을 치러 내 집으로 마련하든 달삯을 치르며 지내든 누구나 제 집을 마련합니다.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달동네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다닥다닥 붙은 조그마한 집에 딸린 방 한 칸짜리 보금자리일 수 있고, 옥상에 있는 방 한 칸짜리 보금자리일 수 있습니다. 도시 한복판 보금자리일 수 있으며, 도시 변두리 보금자리일 수 있고, 시골마을 보금자리일 수 있어요.


  저마다 삶을 누립니다. 즐겁거나 기쁘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슬프거나 괴롭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쁘거나 고단하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느긋하거나 흐뭇하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어요. 따사로운 햇살과 같이 삶을 누릴 수 있고, 상큼한 바람과 같이 삶을 누릴 수 있어요.


.. 편집부 다섯 명, 모두 열 명이 근무하는 사쿠힌샤처럼 작은 출판사는 전통이라는 게 없는 만큼 편집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고가 직접 반영된다 … 작은 출판사지만 사쿠힌샤는 스스로에게 어려운 숙제를 내며 수준 높고 매력적인 양서를 간행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고 있다 ..  (16, 19쪽)


  사람들이 책을 읽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글 바로쓰기》 같은 책을 읽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녁 말글을 슬기롭게 헤아립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얼마쯤 읽다가 덮고는 하품을 합니다. 때로는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책을 읽기도 하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책을 읽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이 책에서 빛을 느껴 삶을 새롭게 가다듬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 줄거리를 알뜰히 풀어놓으나 삶은 그대로입니다. 누군가는 ‘한 해 독서계획’으로 이 책을 읽을 뿐, 스스로 삶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 해 독서계획’이라든지 ‘백 권 읽기’라든지 ‘천 권 읽기’란 덧없는 외침과 같구나 싶습니다. 책이란 어떤 틀을 세우면서 읽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책은 삶과 같아요. 삶을 어떤 틀을 세우면서 누릴 수 없어요. 어떤 틀에 따라 움직이거나 흐르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결에 따라 움직이거나 흐르는 삶이에요. 어떤 틀에 따라 읽거나 아로새기는 책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결을 북돋우거나 살찌우면서 마음을 넉넉하고 아름답게 돌보는 책이에요.


  곧, 책을 읽으며 지식이 늘지 않습니다. 책을 가까이하며 똑똑해지지 않습니다. 책을 더 많이 읽기에 정보를 가득 누리지 않습니다. 책과 함께하는 삶이라서 슬기롭지 않습니다.


.. 책방에 다니며 그저 책을 보기만 해도 자신이 정화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듯했다 … “책을 만들기 위해 편집이 있고 독자에게 책을 전달하기 위해 영업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모두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책을 만듭니다. 정말 이상해요.” ..  (20, 38쪽)


  지식을 바라는 사람은 지식을 얻겠지요. 정보를 꾀하는 사람은 정보를 쥐겠지요. 자격증을 따고 싶은 사람은 자격증을 따요. 시험성적 높이고 싶은 사람은 시험성적 높일 수 있어요.


  그런데, 삶이란 무엇일까요. 내 삶 한 자락에서 내가 누릴 빛은 무엇일까요. 나는 무엇을 하면서 내 사랑을 다스리고 내 꿈을 키울까요. 내가 즐길 사랑은 무엇이요, 내가 가꿀 꿈은 무엇일까요.


  내 삶에서 지식이 가장 대수롭다 할 만할까요. 내 삶에서 정보를 가장 크게 북돋아야 할까요. 내 삶을 사랑 아닌 독후감 같은 책으로 채워야 하나요. 내 삶을 꿈 아닌 자기계발 같은 책으로 엮어야 하나요.


  책을 읽으려고 하기 앞서, 나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고 싶다면, 나 스스로 내 삶을 어떻게 일구려 하는가를 살펴야 한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면, 나 스스로 어떤 사랑과 꿈으로 하루를 빛내려 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 어린이들이 싫어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주입식 교육이 아닐까 … 나가오는 마르크스나 루소의 사랑을 지식으로만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불만을 갖고 있었다. 경제학 이론과 생활인으로서의 접점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  (40, 50쪽)


  책읽기와 책쓰기는 같습니다. 책을 장만해서 읽는 사람은 삶을 빛내며 읽는 사람입니다. 책을 엮어 책방에 내놓는 일꾼 또한 삶을 빛내며 쓰는 사람입니다. 출판사 일꾼이든 글을 쓰는 일꾼이든, 저마다 삶을 빛내는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니까, 책을 빚는 일이나 밥을 짓는 일이나 같아요. 책을 읽는 일이나 아이를 돌보는 일이나 같아요. 책을 쓰는 일이나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나 같아요. 모든 일이 한동아리가 되어 흐릅니다. 모든 일이 한 물결처럼 움직입니다.


  책을 읽으며 삶을 읽고, 삶을 읽으며 생각을 읽습니다. 생각을 읽으며 내 이웃을 읽고, 내 이웃을 읽으며 풀과 나무를 읽습니다. 풀과 나무를 읽으며 햇살과 바람을 읽고, 햇살과 바람을 읽으며 흙과 벌레를 읽어요. 바야흐로 지구별을 읽습니다. 이윽고 목숨을 읽습니다. 비로소 사람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읽습니다.


  어린이책을 읽든 만화책을 읽든, 책을 읽는 길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찾는 데로 이어집니다. 어느 책을 쓰든, 곧 사람들 스스로 어느 글을 쓰든, 또는 어느 책을 빚든, 모든 삶과 넋과 일은 한 갈래에서 만나요. ‘사람이 무엇인가’를 찾고 ‘사랑이 무엇인가’를 밝히며 ‘꿈이 무엇인가’를 들려줘요.


.. 마이너리티적 발상이 각광받을 것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업출판사에서 마이너리티적 기획은 하지 않는다. 독자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진정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만든 책은 보면 알 수 있다. 판권을 보거나 책을 잡은 순간 느낄 수 있다 ..  (134, 153쪽)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삶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책을 참답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삶을 참답게 좋아합니다. 책을 마주하는 결이 삶을 마주하는 결입니다. 어느 책을 골라서 읽느냐 하는 매무새는 어느 이웃을 생각하거나 살피느냐 하는 매무새입니다.


  책만 알뜰히 아끼지 못합니다. 밥만 알뜰히 짓지 못합니다. 자가용만 알뜰히 돌보지 못합니다. 내 아이들만 알뜰히 보살피지 못합니다. 책한테 하듯 지구별한테 해요. 책하고 마주하듯 둘레 사람하고 마주해요. 책 한 권 장만하는 매무새가 저잣거리에서 물건 하나 장만하는 매무새예요. 책을 읽어 삭히는 몸가짐이 이웃사람 말을 듣고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몸가짐이에요.


  책 하나에 깃든 ‘글쓴이 넋’이나 ‘책마을 일꾼 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요. ‘책을 읽는 내 마음대로’ 바라보는가요? 글을 쓰거나 책을 엮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를 살피면서 바라보는가요?


  고지마 기요타카 님이 쓴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2007)를 읽습니다. ‘소출판사’라니, 소를 잡는 출판사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일본사람은 ‘小’라 말할 테지만, 한국사람은 ‘작은’이라 말하잖아요. 한국사람 읽을 책이라면 ‘작은 출판사’라 말해야지요.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가만히 헤아립니다. 이 책에 나오는 ‘작은 출판사’는 하나도 작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출판사’일 뿐입니다. 크거나 작다는 갈래는 어느 누구도 나누지 못해요. 그저 출판사요 그저 책을 빚습니다. 널리 팔리는 책이라서 ‘큰’ 책이 되지 않고, 적게 팔리는 책이라서 ‘작은’ 책이 되지 않아요. 언제나 책이에요. 많이 팔린 책이라서 사람들이 ‘옳게’ 읽거나 ‘슬기롭게’ 아로새겨서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찾아 씩씩하게 거듭나도록 이끌까요.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는 재미나게 쓴 책이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가는 출판사 일꾼을 만나는 이야기를 담았기에 재미나게 쓴 책이라고 느낍니다. 다만, 글쓴이는 짚어야 할 대목을 짚지 못합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어떤 즐거운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는가를 또렷하게 짚지 못합니다. 출판사가 처음 생긴 때가 언제요, 어떻게 해서 생겼으며, 그동안 어떤 책을 냈는가 하는 이야기는 그리 재미나지 않고 즐겁지 않은데다가 궁금하지 않아요. 다 다른 출판사 일꾼이 다 다른 사랑과 꿈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털어놓도록 이끌면서, 이 생각을 알뜰살뜰 담을 때에 이 책이 참으로 빛날 수 있으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잖아요. 그러면, 수많은 출판사 일꾼들이 ‘책을 어떻게 좋아하’고 ‘책을 얼마나 좋아하’며 ‘책을 좋아하는 꿈’을 둘레 이웃하고 어떻게 나누려고 책을 만드는가 하는 대목을 건드리며 책을 꾸며야지요.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녁이 살아가는 마을도 참으로 좋아하고, 이녁을 둘러싼 이웃도 참으로 좋아해요. 책을 참으로 좋아하듯 멧새 한 마리를 참으로 좋아할 테고, 풀벌레 노랫소리 한 가락을 참으로 좋아하겠지요. (4345.9.1.흙.ㅎㄲㅅㄱ)

 


―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 (고지마 기요타카 글,박지현 옮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2007.3.10./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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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줄근

 


  자전거를 손질하려고 읍내까지 타고 나간다. 수레에 두 아이를 태우고 나간다. 한낮이 되면 무덥기도 할 테고, 자전거집 일꾼이 밥 먹느라 자리를 비울 수 있으니 바지런히 밥을 지어 아이들 먹이고 신나게 자전거를 달린다.


  팔월 삼십일일 막바지 시골길은 그리 덥지 않다. 비봉산 기슭을 타고 오르는 첫 고갯길은 수월하게 넘는다. 아이 둘을 태우고 이 고갯길을 이렇게 수월하게 넘기도 하네, 하고 생각했지만, 포두면을 지나고 읍내와 가까운 호형마을 고갯길에서는 그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그도 그럴 까닭이 포두면을 지나 호형마을 고갯길에 이르기까지 3.5킬로미터가 오르막인 고갯길이다. 높이가 수백 수천 미터가 아니라 하더라도 고갯길을 넘기란 만만하지 않을 만하다. 그래도 오늘은 무척 잘 달렸다. 뭐랄까. 내가 달릴 만큼만 느긋하게 달리자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읍내 자전거집에서 자전거를 손질한다. 뒷바퀴 튜브는 새것으로 갈아서 끼운다. 여러모로 손질을 하고 기름을 바르니 자전거가 잘 구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집으로 돌아가면서 다리힘이 풀린다고 느낀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 참말 다리힘이 풀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아무 생각을 않고 자전거 발판을 구르기로 한다. 훅훅 숨을 고른다. 많은 사람들은 차분하게 앉아 숨고르기를 하는데, 나는 자전거 발판을 구르면서 숨을 고른다.


  달린다, 달린다, 하늘을 본다, 숲을 본다, 땅을 본다, 논과 밭을 본다, 뒷거울로 아이들을 본다, 또 달린다, 달린다.


  이리하여 집에까지 닿는다. 집에 닿아 대문을 열려고 하는데 힘이 없다. 소리를 내어 옆지기를 부를까 싶다가도 고단해서 낮잠을 잘는지 모르니 겨우 무릎을 버티어 문을 연다. 후박나무 그늘에 자전거를 댄다. 옆지기는 안 잔다. 아이들 내려서 씻기는 몫을 옆지기한테 맡긴다. 온몸에서 후끈후끈 뜨거운 김이 난다. 후줄근한 몸을 눕히고 쉬어야겠다. (4345.8.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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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8-31 15:11   좋아요 0 | URL
다른 페이퍼에 몸앓이 한다고 쓰셨던데, 좀 쉬셔야겠어요. 마음이 하는 말 처럼 몸이 하는 말도 귀기울여 주어야지요.
혼자 몸으로 자전거 타고 고갯길 오르기도 쉽지 않은데 아이 둘을 태우고...

하늘바람 2012-08-31 16:40   좋아요 0 | URL
세상에 님처럼 배려하는 옆지기가 어디있을까요
님 나인님 말씀처럼 쉬셔야할 것같아요
 
열애 민음의 시 142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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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깨문 복숭아
[시를 노래하는 시 29] 신달자, 《열애》

 


- 책이름 : 열애
- 글 : 신달자
- 펴낸곳 : 민음사 (2007.10.12.)
- 책값 : 7000원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복숭아를 깨물어 먹습니다. 맛나게 깨물어 먹습니다. 두 아이는 능금도 깨물어 먹습니다. 어금니까지 곱게 난 큰아이는 복숭아도 능금도 혼자서 척척 잘 깨물어 먹습니다. 어금니가 아직 돋지 않은 작은아이는 앞니로 깨물 수는 있으나 제대로 씹지 못합니다. 어버이가 오물오물 씹어서 숟가락에 받은 다음 건네야 먹을 수 있습니다.


  큰아이는 혼자서 밥을 먹습니다. 숟가락을 들고 젓가락을 쥡니다. 큰아이는 제 밥그릇에 담긴 밥을 푸고, 제 국그릇에 담긴 국을 뜹니다. 작은아이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입으로 씹은 밥을 먹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숟가락에 국을 뜨거나 국그릇을 들고 입에 대 주어야 국을 마실 수 있습니다. 돌을 지나면서 물잔을 혼자 들고 마실 수는 있는데, 스스로 알맞게 맞추지는 못해 물을 왈칵 쏟곤 합니다.


  작은아이는 큰아이 하는 양을 바라보며 저도 혼자 숟가락을 들고는 밥을 푸고 싶습니다. 작은아이는 스스로 국을 뜨고 싶습니다. 숟가락을 들어 이리저리 휘젓습니다. 밥상은 이내 어지럽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지르면서 숟가락질을 익히고 젓가락질을 익히는걸요. 두 아이 나란히 온 방에 온갖 것을 늘어놓으면서 놀고, 이렇게 놀면서 크는걸요.


.. 나 알몸으로 누워 산을 받아들이면 / 산 하나 품어 나오리 ..  (저 산의 녹음)


  아이들이 복숭아를 잘 먹고, 옆지기와 나도 복숭아를 잘 먹으니, 우리 집 어느 한켠에 복숭아나무를 심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복숭아를 먹으며 씨앗이 나올 적에 심어야지 생각하는데, 으레 잊고는 그냥 버립니다. 나물비빔을 좋아하면 텃밭에 온갖 푸성귀가 자라도록 해서 즐겁게 뜯어서 먹으면 됩니다. 옥수수를 좋아하면 밭 가장자리에 옥수수를 줄줄이 심으면 됩니다. 고구마를 좋아하면 조금 너른 땅뙈기를 마련해서 고구마줄기를 하나씩 묻으면 돼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을 심습니다. 목련도 심고 장미도 심으며 동백도 심습니다. 양파를 잘 먹으면 양파를 심습니다. 마늘을 좋아하면 마늘을 심어요. 양파나 마늘이 돈이 될 만하니 심는다 하면 쓸쓸합니다. 돈을 벌어 어떤 즐겁고 좋은 일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할 때에는, 돈만 벌어서는 부질없으리라 느껴요. 즐겁게 돈을 벌고 즐겁게 돈을 쓰며 삶을 즐겁게 누릴 때에 아름다운 하루가 된다고 느껴요.


  두 아이 노는 모습을 아침부터 밤까지 지켜봅니다. 두 아이는 끝없이 놉니다. 쉬지 않고 놉니다. 등판이 땀으로 젖습니다. 이마에서 땀이 흐릅니다. 콧잔등에 땀이 맺힙니다. 그러나 두 아이 모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놀이에 빠지니 좋고, 놀이에 흠뻑 빠져 즐거우며, 놀이에 온통 사로잡히니 재미나는구나 싶어요.


.. 아무 미련 없이 어딘가로 가고 있는 모습 편안하다 ..  (코스모스 영가靈歌)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싫어할 만한 일을 굳이 하지 않습니다.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좋아할 만한 일을 합니다. 달갑지 않은 일을 즐거이 하려는 아이는 없습니다. 못마땅하거나 안 내키니는 일을 애써 하려는 아이는 없습니다.


  아이라면 모름지기 스스로 가장 즐거우며 재미나고 신나는 일을 합니다. 아이라면 마땅히 스스로 가장 좋아하며 사랑하고 멋진 일을 해요.


  그런데, 어른도 아이와 마찬가지예요. 스스로 가장 즐겁다 여길 일을 할 때에 즐겁습니다. 스스로 가장 재미나다 여길 일을 해야 재미나요. 스스로 가장 좋아한다고 여기는 일을 해야 좋겠지요. 스스로 가장 사랑스러운 마음이 될 일을 할 때에 사랑을 나눌 수 있어요.


  좋아하지 않는데 돈을 벌 수 있어 한다면 얼마나 고될까요. 사랑하지 않으나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찾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생각합니다. 마음을 북돋우는 일을 누립니다.


.. 그 똘똘하고 뿌듯한 하늘이 다섯 살이 되는 새해에도 나는 그저 /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세뱃돈 줄게 고추 좀 보자 / 강아지가 물고 갔음 어째 좀 보자 한 번만 보자 보채는 나에게 / 이놈 눈 딱 부라리고 날 쳐다보며 하는 말 / 할머니는 변태야! ..  (변태)


  아직 쉬를 옳게 가리지 못하는 작은아이는 곧잘 이불에 쉬를 눕니다. 이불은 쉬로 젖으니 틈틈이 햇볕에 말리고, 퍽 자주 빨래합니다. 이불 빨래를 손으로 하기도 하지만, 빨래기계를 장만한 뒤로는 빨래기계한테 맡깁니다.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제금난 지 열일곱 해인데, 빨래기계는 제금난 지 열일곱 해째에 비로소 장만했습니다. 올봄까지 이불도 기저귀도 모두 손수 빨래했어요.


  이불을 꾹꾹 발로 밟으며 빨 적에, 기저귀와 숱한 옷가지를 손으로 복복 비비며 빨 때에, 가만히 생각에 젖습니다. 이 옷을 입고 이 이불을 뒤집어쓰는 살붙이는 하루를 즐겁게 누렸을까. 정갈히 빨아서 예쁘게 갠 옷을 입을 살붙이는 새 하루를 새로운 넋으로 맞이할까.


  새로운 날은 참말 새롭습니다. 어제와 같은 하루는 없습니다. 오늘과 같은 하루도 없습니다. 어제는 어제대로 즐겁게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궂은 일이 잦았건 기쁜 일이 넘쳤건, 하루는 하루대로 반갑다고 여깁니다.


.. 아파트 일 층인 내 방 창에는 / 녹음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 사월부터 연둣빛 땡땡이 무늬가 어른거리더니 / 서너 달 지나며 창은 짙푸린 비단으로 출렁거렸다 ..  (바라본다는 것)


  이제 유월과 칠월에 이은 여름철 팔월이 저뭅니다. 꼭 달력 날짜 때문은 아니나, 팔월 막바지, 이른바 늦여름에 이르면 밤날씨가 살짝 서늘합니다. 팔월 삼십일 밤, 곧 팔월 삼십일일로 넘어서는 밤에는 집안 온도가 26도로 내려옵니다. 오월이 끝나고 유월로 접어들 적부터 본 적 없는 온도입니다. 구월 어귀에 비로소 후끈후끈 무더운 밤이 사라집니다. 바야흐로 가을일까요.


  들판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벼는 누렇게 익습니다. 드센 비바람이 휘젓고 지나갔어도 씩씩하게 서며 누렇게 익습니다.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몰 때면 으레 곳곳에서 메뚜기를 봅니다. 아, 메뚜기로구나. 우리 식구 살아가는 이곳 시골마을은 지난해까지 풀약을 꽤 많이 쳤다는데, 올해부터는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며 이제껏 치던 풀약을 꽤 많이 줄였다고 해요. 그러나 풀약을 아예 안 치지는 않습니다. 치기는 치되 좀 적게 칠 뿐입니다.


  풀약을 아예 안 친다면 메뚜기를 더 많이 만나겠지요. 풀약이 없는 논이랑 밭이라면 사마귀와 여치와 풀무치와 방아깨비 모두 마음껏 노닐겠지요.


  개구리가 살아가니 뱀도 살아갑니다. 뱀이 살아가니 소쩍새도 살아갑니다. 들쥐가 살고 까마귀가 삽니다. 숱한 멧새와 들새가 살아갑니다. 멧비둘기와 참새는 아직 덜 여문 나락 알을 먹고 싶어 자꾸 들판으로 내려앉습니다. 모두들 제 밥을 찾습니다. 저마다 제 삶을 누립니다.


.. 강의실은 구 층에 있었다 / 지하 삼 층 차고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 한순간 하늘로 치솟아오르는 일이 / 나에겐 예삿일이다 / 높은 곳을 죽 올라가는 그 재미로 / 계단을 잊은 지 오래다 ..  (버들잎 강의)


  내가 우리 아이들만 하던 나이였을 적을 곧잘 되새기곤 합니다. 내 어릴 적 내 어버이는 방학 때면 나와 형을 데리고 시골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내 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사였기에 아버지는 여름과 겨울에 긴 방학을 맞습니다. 방학철이면 으레 시골집에서 열흘이든 스무 날이든 묵습니다. 시골집에서는 시골 할머니가 차리는 밥을 먹습니다. 시골집에서는 시골 이웃을 만나 시골살이를 누립니다.


  이때 나는 메추리가 알을 낳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고, 메추리알이 왜 메추리알인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시골집 사촌형을 따라 메추리집을 털 적에 어미 메추리가 빽빽 울면서 우리 머리에 똥을 지르던 일이 새삼스럽습니다. 도시에서 먹는 메추리알은 플라스틱 꾸러미에 촘촘히 놓이는 알인데, 이 메추리알이란 메추리가 낳는 제 새끼라고 새삼스럽게 생각했어요. 다른 목숨을 내가 먹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닭우리에서 닭이 낳은 알을 꺼낼 적에도 달걀이란 목숨이지 그냥 먹을거리가 아니로구나 하고 느꼈어요. 갓 낳은 말랑말랑하며 따스한 목숨을 먹으면서 내가 오늘 하루 또 신나게 뛰놀 기운을 얻는다고 느꼈어요.


  바람소리를 떠올립니다. 시골마을은 온통 바람소리입니다. 풀벌레 노랫소리를 떠올립니다. 시골마을은 온통 풀벌레 노랫소리입니다. 그래, 이때 메뚜기가 보이면 곧장 잡아서 병에 모으거나 밟아서 죽이라 했어요. 메뚜기가 벼를 다 갉아먹는다 했으니까요. 애꿎은 메뚜기는 도시 아이 하나 잘못 만나 애꿎게 숨을 잃습니다. 방아깨비와 사마귀를 나란히 한손에 잡아 애꿎게 싸움을 붙입니다. 방아깨비가 파르르 떨고 사마귀가 먹이를 잡으려고 안달하는 기운이 손가락을 거쳐 마음속 깊은 데까지 쩌렁쩌렁 울립니다. 내가 무얼 보자고 이런 짓을 하나.


  방아깨비를 잡아 손가락 사이에 끼면, 그야말로 방아를 찧습니다. 한참 방아를 찧다가 똥을 지립니다. 똥을 지리면 그제서야 놓아 주는데, 똥까지 지린 방아깨비는 기운을 잃어 풀숲에서 거의 꼼짝하지 못합니다. 방아 찧는 모습을 구경한다며 넋을 잃은 어린 나는, 방아깨비가 똥을 지려 놓아 준 다음,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풀숲에서 천천히 숨을 잃는 모습을 보며 또 생각합니다. 내가 무얼 알자고 이런 짓을 하나.


.. 나는 문득 / 김이 무럭무럭 나는 하얀 밥을 짓고 싶어 ..  (우리들의 집)


  길을 가다가 뒤집어진 벌레를 보면 그냥 지나치려 하다가도 우뚝 멈춥니다. 손가락 하나를 뻗어 벌레가 이 손가락을 붙잡고 일어서도록 합니다. 물에 빠진 무당벌레를 건져 풀숲으로 옮깁니다. 거미줄에 갓 걸린 나비나 잠자리를 보면 거미줄을 스윽 끊습니다. 거미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거미줄을 새로 치겠지요. 그래도 거미야 미안하구나. 너한테 걸맞는 다른 먹이를 기다리렴.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던 엊그제 우리 집 시멘트블록담 한쪽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무너진 시멘트블록이 고샅길에 흩어졌기에 한쪽으로 치우는데, 시멘트블록 안쪽 구멍에 개미집이 있더군요. 수만에 이르는 개미는 집을 잃었다며 아우성입니다. 네 녀석들이 이 속에서 또아리를 트느라 시멘트담이 허술해졌을까.


  빨래대를 받치려고 마당에 놓은 큰돌을 옮길 적에도 개미집을 봅니다. 그저 큰돌 밑일 뿐인데, 이곳을 저희 집으로 삼는 개미는 어떤 마음일까 하고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흙땅 돌밑에 집을 지어야지, 시멘트바닥 돌밑에 어설피 집을 꾸리면 어떡하니.


..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쓸어내리는 것을 / 자위행위라고 말합니다만 / 나의 손은 나의 어머니입니다 / 내 손이 내 몸의 성감대를 찾아가는 것을 / 내 손이 내 몸의 흐느끼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 야릇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  (손)


  옆을 돌아보면 모두 내 이웃입니다. 둘레를 살펴보면 모두 내 동무입니다. 이웃집도 이웃집이요, 풀과 나무와 꽃도 이웃입니다. 무화과나무 매화나무 감나무 모두 이웃입니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모과나무 모두 동무입니다.


  맑게 갠 파란 빛깔 하늘을 흐르는 티없이 하얀 구름도 내 이웃입니다. 따사로이 내리쬐는 햇살도 내 동무입니다. 우렁차게 우는 매미와 숱한 풀벌레도 내 이웃입니다. 조잘조잘 지저귀는 들새와 멧새 모두 내 이웃입니다.


  저마다 좋은 아침을 맞이합니다. 저마다 좋은 밥을 생각합니다. 저마다 좋은 하루를 빚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새 날을 마주합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새 이야기를 꾸립니다.


  오늘은 무얼 먹을까. 오늘은 어떤 밥을 차릴까. 오늘은 아이들이랑 무얼 하면서 놀까. 복숭아는 다 먹었는데 어떤 열매를 장만해 볼까. 산들산들 부는 아침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 나는 너에게 지금도 내가 아는 귀여운 / 여자의 이름을 달아 주고 싶은데 / 사랑을 축하하며 / 예쁜 꽃다발을 가슴에 안겨 주고 싶은데 / 세상의 정보를 가장 먼저 주우려고 / 컵라면을 손에 든 채 / 너는 밤새 컴퓨터 화면만 뜨겁게 마주하고 있다 ..  (딸의 하이힐을 수선하며)


  신달자 님 시집 《열애》(민음사,2007)를 읽습니다. 한자말로 된 책이름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열애’가 뭘까?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국어사전에는 두 가지 한자말이 나옵니다. 먼저, ‘悅愛’가 있고, 말뜻은 “기쁜 마음으로 사랑함”입니다. 다음으로, ‘熱愛’가 있으며, 말뜻은 “열렬히 사랑함”입니다. ‘열렬(熱烈)’은 또 뭔가 싶어 국어사전을 새삼스레 뒤적이니 “어떤 것에 대한 애정이나 태도가 매우 맹렬하다”라 합니다. 그러면 ‘맹렬(猛烈)’은 또 뭐람? 다시 국어사전을 뒤적여 “기세가 몹시 사납고 세차다”라는 말뜻을 얻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열애’란 “기쁜 사랑”이나 “뜨거운 사랑” 둘 가운데 하나가 되겠군요.


  아무튼, 나는 둘 다 좋습니다. 사랑은 기뻐서 좋습니다. 사랑은 뜨거워서 좋습니다. 나는 둘 모두 좋습니다. 기쁘게 나눌 수 있는 사랑이 좋습니다. 뜨겁게 불을 피워 둘레를 따사로이 살찌울 수 있는 사랑이 좋습니다.


  나는 내가 받는 사랑으로 따스한 나날입니다. 나는 내가 주는 사랑으로 따스한 나날입니다. 사랑을 받으면서 따스하고, 사랑을 주면서 따스합니다. 따스한 사랑을 느끼기에 싯말이 태어납니다. 따스한 사랑을 나누기에 시노래를 짓습니다.


  사랑이 있어 시를 씁니다. 사랑을 느껴 책을 읽습니다. 사랑을 꿈꾸어 삶을 짓습니다. 사랑을 노래해 밥을 나눕니다. 사랑을 어깨동무하며 지구별이 따사롭습니다. (4345.8.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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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수수 아이들

 


  아이들이 옥수수를 먹는다. 두 아이가 나란히 씻고 나서 새 옷을 입지는 않고, 알몸으로 옥수수를 먹는다. 마지막 무더위를 누릴 늦여름, 읍내 마실을 하며 장만한 옥수수가 있고, 전남 고흥하고는 아득하게 먼 강원도 양양에서 보내 온 옥수수가 있다. 아이들은 옥수수를 잘 먹는다. 한 소쿠리 있어도 둘이서 다 먹을 낌새이다. 한 아이가 입에 물면 다른 아이가 입에 물고, 한 아이가 입에서 내리면 다른 아이가 입에서 내린다. 서로서로 마주보면서 옥수수를 먹는다. 서로 나란히 앉아 옥수수를 먹는다. 요것들이 섬돌 시멘트 바닥에도 알몸으로 퍼질러 앉아 옥수수를 먹는다. (4345.8.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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