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집과 삶과 책과

 


  1000년 살아온 나무를 베어 집을 지으면 1000년이 끄떡없다. 500년 살아온 나무를 베어 집을 지으면 500년이 끄떡없다. 100년 살아온 나무를 베어 집을 지으면 100년이 끄떡없다. 30년 살아온 나무를 베어 집을 지으면 30년이 끄떡없다.


  오늘날 한국에서 집을 짓는 이들은 어떤 나무를 베어서 집을 지을까. 오늘날 한국에는 1000년 살아온 나무를 베어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아니, 한국에는 500년은커녕 100년이나 50년 살아온 나무를 베어 집을 지을 만할까. 아니, 한국에는 앞으로 100년이나 500년이나 1000년 뒤를 살아갈 뒷사람이 집을 짓도록 나무를 예쁘게 건사하는 삶을 누리는가.


  1000년을 생각하며 쓰는 글은 1000년을 읽히는 책이 된다. 100년을 헤아리며 쓰는 글은 100년을 읽히는 책이 된다. 저마다 마음을 기울이는 대로 저마다 다르게 읽히는 책이 된다. (4345.9.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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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들이 하나 끝나는 길에

 


  네 식구 함께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로 마실을 다녀온다. 옆지기가 마음닦기를 배우는 모임 사람들이 이곳에서 서로 만나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하기에 먼 나들이를 나선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몸소 느끼는데, 시골에서는 서울로 가는 길이 가장 빠르고 가장 곧으며 가장 많다. 시골에서는 서울 아닌 데로 가는 길은 너무 적고 느리며 구불구불하다. 시골사람을 온통 도시로 빨아들이려는 나라 정책이요 길이라 할까.


  남원역까지 마중을 나와 자가용을 태워 준 분이 있어, 다섯 시간 반 만에 장계면에 닿는다. 네 식구가 대중교통으로 장계면까지 가고, 또 이곳에서 시골버스를 기다려 대곡리로 들어서야 했다면 여덟 시간 가까이 걸렸으리라. 한국에서는 이쪽 시골에서 저쪽 시골로 나들이를 하는 길이 아주 고되며 길다.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한다. 이 나들이를 끝으로 새로운 나들이가 앞으로 펼쳐지겠지. 새 나들이가 찾아들어 끝나면, 또 새 나들이가 찾아들겠지. 삶이 이어지는 동안 나들이가 이어진다. 나들이를 즐기는 동안 스스로 무엇을 바라거나 찾는가에 따라 내 마음이 달라진다.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 그런데 책을 손에 쥐어 읽기 앞서,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삶을 어떻게 새로 태어나도록 하겠는가 하고 생각하지는 않기 일쑤이다. 그냥 읽는 책이 아니요, 그저 읽는 책이 아니다. 내 삶을 나 스스로 새롭게 가꾸고 싶은 꿈을 꾸면서 읽는 책이다. 나들이는 나와 식구들한테 삶으로 아로새기는 책읽기가 된다. (4345.9.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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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자전거 함께 타기

 


  큰아이가 작은아이를 가슴으로 안아 작은자전거 뒷자리에 세우곤 한다. 이제는 작은아이 스스로 작은자전거 뒷자리에 올라타기도 한다. 큰아이 다리힘이 제법 붙어, 누가 끌거나 밀지 않아도 동생을 뒷자리에 태우고 마당을 휘휘 돌 수 있다. 다만, 아직 좀 힘드니까 오래도록 태워 주지는 않는다. 작은아이도 누나가 태워 주는 자전거를 오래 타려고 하지는 않는다. 서로 날마다 조금씩 자라고, 둘이 나날이 무럭무럭 크면, 이제 자전거 타며 노는 겨를이 늘겠지. 너희가 고무바퀴 자전거를 타는 날은 자전거수레에서 벗어나 저마다 씩씩하게 제 길을 달리는 날이 되리라. (4345.9.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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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꽃 책읽기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발포 바닷가로 가는 길에 꽃을 본다. 길에서 피고 지는 가을꽃이다. 바야흐로 가을에 접어드니, 여느 사람들은 가을날 지는 노랗거나 붉은 가랑잎을 떠올릴까. 그렇지만 이 가을에 길섶이나 풀섶에 예쁘장하게 피고 지는 조그마한 꽃이 많다. 예나 이제나 적잖은 이들은 살살이꽃(코스모스)을 두고 가을을 말하곤 하는데, 관청에서 씨앗을 잔뜩 뿌려 길가에 나풀거리는 살살이꽃이 길에서 길꽃처럼 피기도 하지만, 누가 씨앗을 뿌리지 않았어도 바람에 날리고 들짐승 털에 붙어 옮기며 천천히 자리를 넓히는 들풀이 조그마한 꽃을 피우기도 한다. 관광지라면 관청 공무원이 ‘자활 근로 일꾼’을 일삯 몇 만 원에 부려 코스모스를 뺀 다른 길꽃은 모조리 뽑거나 베지 않았을까. 관광지 아닌 여느 시골이라 온갖 들꽃이 길가에서 흐드러지며 서로 어여쁜 길꽃잔치를 벌인다. 어느 마을 어귀를 보니, 길가를 따라 관청에서 길게 심었음직한 동백나무 둘레로 마을 할머니가 심었음직한 호박이 노랗고 커다란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다. 관청에서 뭘 하지 않아도, 마을은 할머니들이 지켜 주신다니까요. (4345.9.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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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에 바다에 들다

 


  가을바다는 온통 우리 차지가 된다. 자가용을 몰고 바닷가 걸상에 앉아 담배를 태우는 아저씨가 한둘 드나들었지만,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뛰놀며 모래를 만지는 사람은 나와 아이들뿐. 집부터 자전거를 몰아 발포 바닷가로 온다. 칠 킬로미터 길인데 생각보다 한결 가깝다. 아이들을 수레에 태우고 이십 분이면 넉넉히 올 수 있다. 나중에 아이 어머니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넷이 달리자면 삼사십 분에 걸쳐 천천히 올 만하겠지. 발포 바닷가로 달리는 길을 지나가는 자동차도 아주 드물기에, 자전거로 다니기에도 좋으리라 느낀다. 무엇보다, 여름 물놀이철을 지난 바다는 아주 고즈넉하며 아름답다. 다만, 바다 저쪽에서 밀려 내려오는 스티로폼 조각이 널리고, 화장실을 쓸 수 없는 대목이 아쉽다. 물놀이철과 물놀이철이 아닐 적 바닷가는 시설도 다르구나.


  가을 바닷물은 살짝 서늘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오래 놀도록 하지 않는다. 조금만 물에서 뒹굴게 하고는 어찌저찌 물을 받아 모래를 씻기고는 옷을 갈아입힌다. 면소재지에서 장만한 김밥과 도시락을 먹인다. 잘 놀고 잘 먹은 아이들이 낮잠에 빠져들 만하지만, 작은아이만 잠들고 큰아이는 잠을 안 자며 버틴다. 그래도 좋다. 가을바다 한 번 누렸지? 한가위 지나고 또 함께 찾아오자. (4345.9.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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