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아버지 받아요

 


  아버지가 걸상에 빈책을 내려놓으니, 산들보라가 이 빈책을 들고는 아버지한테 내민다. 아버지 받아요. 그래, 고맙다. 그런데, 살짝 다른 걸 하려고 내려놓았는데, 네가 이렇게 집어서 내미니 받아야겠구나. (4345.9.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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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젓가락소나무 책읽기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사람들이 나무젓가락처럼 박아 놓은 소나무를 본다. 숲에도 기차역에도 도시 한켠에도, 소나무를 갖다 심는 사람들은 ‘나무심기’ 아닌 ‘나무젓가락 박기’를 한다. 소나무 아래쪽 가지를 모조리 잘라 없앤 다음 맨 위에만 조금 남긴 나무젓가락이 되게 한다.


  소나무는 이렇게 나뭇가지 몽땅 잘리고 솔잎 몇 남지 않아도 살 수 있을까. 아니, 이렇게 나뭇가지와 솔잎을 몽땅 잘라 없애야 소나무는 이리 비틀고 저리 뒤틀며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용을 쓸까. 사람들이 소나무한테 하는 짓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거나 느낄까. 돈과 겉멋에 휘둘리는 사람들이 소나무한테 이런 몹쓸 짓을 한다고만 느끼지 않는다. 여느 사람들조차 이런 소나무가 멋스럽거나 ‘비싸다’고 생각하니, 이런 짓이 끊이지 않는다. 더구나, 나무는 언제나 스스로 씨앗을 맺어 스스로 새끼나무를 퍼뜨리는데, 사람들이 애써 억지로 심어서 기르고 돌봐야(관리) 한다고 잘못 생각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 엉터리라서 엉터리짓을 할밖에 없을까.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 슬기로운 길하고 동떨어지기에 슬기롭게 살아가며 사랑하는 꿈은 헤아리지 않을까. 도시를 만들며 숲을 밀어 없애는 도시사람 마음이기에, 이 마음에 따라 나무를 나무로 여기지 않고 나무젓가락으로 삼는 노릇일까. (4345.9.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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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바람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은 비를 몰고 찾아온다. 그동안 찾아온 바람은 우리 집에서 마당을 바라볼 적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불었다. 어젯밤부터 찾아온 바람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분다. 바람결이 바뀌었다. 이 바람은 전라남도에 들어설 적에 목포나 강진 쪽이 아닌 여수 오른쪽으로 들어서기 때문에 바람결이 이렇게 바뀌었을까. 늘 불던 바람결하고 다른 탓인지 모르겠는데, 집 오른쪽 시멘트담이 와르르 하고 무너진다. 지난 바람이 불 적에 마당 오른쪽 시멘트담이 무너지더니, 이번에는 집 오른쪽 시멘트담이 무너진다.


  시멘트담을 무너뜨린 바람이 차츰 잦아들 무렵, 언뜻선뜻 해가 비친다. 해가 쨍쨍 내리쬐며 빗물을 모두 말리는 데에도 바람은 불다가 멎다가 한다. 하늘 곳곳에 파란 빛깔 눈부시게 드러난다. 문을 꽁꽁 닫고 집에서 놀던 아이들은 맨발로 마당에 내려선다. 아이들은 바람을 맞으며 논다. 햇살을 바라보며 논다.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으며 논다. 이 바람이 부는데에도, 또 바람 따라 비가 퍼붓는데에도, 풀벌레는 곳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바람소리 사이사이 풀벌레도 나즈막하게 노랫소리 들려주었다.


  저녁이 가고 새 아침이 찾아들면 언제 바람이 불었느냐는듯이 햇살이 따사로이 들판을 내리쬘 테지. 알맹이 튼튼히 여물 무렵 찾아든 비바람에 흔들리던 나락은 따순 햇살을 받아먹으며 노랗디노랗게 익겠지. (4345.9.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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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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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글과 생각
 [책읽기 삶읽기 115] 박완서, 《잃어버린 여행가방》(실천문학사,2005)

 


  자가용을 몰지 않는 우리 식구는 다 함께 나들이를 갈 때에 언제나 커다란 가방을 하나 메고, 손에는 자그마한 가방을 듭니다. 커다란 가방에는 아이들 옷가지를 챙기고, 자그마한 가방에는 아이들 먹을거리를 챙깁니다. 등에 메는 커다란 가방에는 옷걸이를 잔뜩 챙깁니다. 우리 식구가 어디에 머무를 때에 작은아이 기저귀와 바지를 빨래해야 하고, 빨래한 옷가지는 옷걸이에 꿰어 널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크든 작든, 아직 아이들 스스로 저희 가방을 메면서 저희 옷가지를 챙길 만한 나이가 아니니, 어버이가 모든 짐을 알뜰히 꾸립니다.


  어디를 다니든, 내 옷가지는 아주 단출합니다. 웃도리와 반바지 한 벌만 챙깁니다. 겨울에 길을 나서더라도 내 긴바지는 안 챙깁니다. 겨울에는 아이들 옷가지가 두툼해지는 만큼 가방 자리를 더 차지해요. 내 옷가지를 되도록 줄이며 아이들 옷가지를 한 벌이라도 더 챙깁니다.


  애써 챙긴 아이들 옷가지라 하지만,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입히지 못한 옷’도 꽤 되곤 합니다. 그러나 이 ‘입히지 못한 옷’을 안 챙길 수 없어요. 아이들이 이곳저곳에서 개구지게 뛰놀며 언제 어느 옷을 얼마나 더럽힐는지 모르거든요. 나와 옆지기는 아이들이 어디에서든 마음놓고 뛰놀도록 두면서 지켜보기에, 아이들이 신나게 놀며 땀에 옴팡 젖거나 이래저래 지저분해지면 서슴없이 갈아입힙니다. 갈아입히는 옷이 많이 나오면 많이 나오는 대로 빨래하고, 갈아입히는 옷이 적게 나오면 이러한 대로 빨래해요.


  이제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찾아들며 선선한 날인 터라, 시외버스나 기차에서 에어컨 바람이 어떻게 나올는지 모르기도 해서, 두 아이와 옆지기가 덮어야 할 수 있는 담요를 석 장 챙깁니다. 하룻밤 묵을 곳에 손닦는천이 제대로 있을는지 모르니, 손닦는천을 넉 장 챙깁니다. 오줌을 아직 안 가리는 작은아이가 방바닥에 오줌을 지르면 닦을 때에 쓰자고 걸레를 두 장 챙깁니다. 천기저귀는 더 넉넉히 챙깁니다. 마실물은 두 병 챙깁니다. 여러모로 가방이 커다랗고 무겁습니다.


.. 시골 바람이란 소리가 어찌나 듣기 좋던지 선뜻 그러자고 했다 … 친구의 잘못이었는지 고의였는지 광주에서 해남까지의 장거리도 직행버스도 못 타고 수도 없이 정거하는 그냥 시외버스를 타게 됐다. 그러나 그동안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조금도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여행은 과정을 무시한 목적지 위주의 여행이었다. 그게 얼마나 바보 여행이었던가를 알 것 같았다 … 자연은 위대한 영혼을 낳기도 하지만, 위대한 영혼 또한 자연의 정기가 되어 자연을 빛나게 한다 ..  (9, 11∼12, 22쪽)


  나한테 옆지기도 아이들도 없던 지난날, 내 가방에는 오직 책이랑 사진기만 들었습니다. 홀로 살아가던 내 지난날, 집을 떠나 마실길에 오르면, 가방은 마실길에 읽을 책이 있을 뿐, 아직 홀쭉합니다. 마실길에 헌책방을 들르면서 가방은 차츰 무거워집니다. 홀로 다니던 지난날 내 마실길에는 언제나 자전거를 몰았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자전거 나들이라 하지만, 차츰 무거운 자전거 나들이가 됩니다. 그래도 나는 늘 씩씩하고 즐겁게 자전거를 달렸어요. 책으로 꽉 찬 커다란 가방을 빙긋빙긋 웃으며 짊어지고 자전거를 달렸어요. 오르막도 내리막도 즐겁게 달립니다. 집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세우고 가방을 내리면 등때기가 없는 듯하고, 다리도 없는 듯합니다. 찬물로 한 차례 씻고 드러누우면 이런 하늘나라가 따로 없네, 하고 생각합니다. 마실길에 장만한 새로운 책들을 하나하나 꺼내며 괜히 또 웃습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새근새근 잡니다. 하룻밤 밖에서 묵는 마실길이었는데, 오가느라 시외버스와 기차와 택시를 참 오래 타느라 모두 지쳤겠지요. 느즈막하게 넉넉히 자야겠지요.


  곰곰이 돌이켜봅니다. 아이들은 딱히 걱정을 하면서 다니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옷이 더러워지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냥 놉니다. 그냥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냥 씻습니다.


  홀가분한 넋이요 몸이기에, 어디에서라도 해맑게 웃으면서 뛰놀 만하리라 느낍니다. 나들이를 다니는 어른도 스스로 홀가분한 넋이 된다면, 가방이 제아무리 무겁다 하더라도 아이와 함께 홀가분할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서로 즐기려고 다니는 나들이예요. 서로 웃으려고 다니는 나들이예요.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려는 꿈을 키우는 나들이예요. 짐을 많이 짊어져서 힘들지 않느냐구요? 글쎄요, 어깨가 빠질 듯한 느낌은 들겠지요. 그러나, 짐이 무겁다뿐, 나들이가 고단할 까닭은 없어요. 설레는 마음과 두근거리는 몸입니다. 꿈꾸는 마음과 사랑하는 몸입니다.


..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북경역이 바라다보였고, 큰길을 가득 메운 자전거의 흐름이 말할 수 없이 유연했다. 고요하고 느긋하면서도 생기가 넘쳐 보였다. 끝없이 흐르는 반짝이는 은빛 바퀴와 아침 바람에 나부끼는 머릿결과 색색가지 고운 치맛자락을 바라보면서, 만약 저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대신에 자동차를 한 대씩 몰고 출근을 하게 된다면, 하고 상상하니 끔찍한 일로 여겨졌다 … 땅의 숨결이란 무엇인가. 나무와 풀과 푸성귀의 씨앗을 품고 싹트게 하고 밀어올리는 거대한 에너지가 아닌가 ..  (75, 107쪽)


  박완서 님이 쓴 글을 그러모은 《잃어버린 여행가방》(실천문학사,2005)을 읽습니다. 할머니 나이가 되어 ‘여행가방’을 꾸려 나들이 다닌 이야기를 적바림한 책입니다. 1997년에 한 번 나온 적 있고, 2005년에 다시 나온 이야기꾸러미입니다. 2012년에 이르러 이 이야기꾸러미를 비로소 펼칩니다. 할머니 박완서 님이 사랑한 나들이는 무엇일까 헤아리며 책을 읽습니다.


.. 나는 떡집에서 증편을 두 개 사서 먹으면서 다니다가 공원 잔디밭에 누워서 나무 그늘에서 연인들이 쌍쌍이 정답게 속삭이는 것도 보고, 노인들이 한가롭게 작대기 같은 걸로 공 굴리기를 즐기는 것도 구경했다 … 네팔에서 어쩌다 우리 나라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는 걸으러 온 사람이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 ..  (86, 252쪽)


  박완서 님은 “잃어버린 여행가방”을 이야기합니다. 책을 다 읽고 덮기까지, 나는 새롭게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박완서 님이 할머니 나이가 되어 쓴 이 여행글은, 박완서 님으로서는 “잃어버린 글과 생각”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여행글이라 하지만, 여행글답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다니며 스스로 느낀 이야기’라든지 ‘이곳과 저곳을 누리며 스스로 사랑을 누린 이야기’는 얼마 안 됩니다.


  나는 박완서 님 ‘여행글’을 읽으면서 ‘박완서 님이 주섬주섬 그러모은 티벳 지식’을 읽고 싶지 않습니다. 티벳과 중국이 서로 어떤 사이인가 하는 이야기는, 박완서 님 여행책 아닌 다른 역사책이나 인문책에 알뜰히 잘 나옵니다. 구태여 ‘박완서 님이 옮겨적은 글’로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박완서 님은 무엇을 느끼려고 여러 나라로 나들이를 다녔을까요. 그저 몸이 얼마나 더 지치는가를 바라보려고 여러 나라로 나들이를 다녔을까요. 그저 아는 사람들과 돌아다니는 일이 도움이 되리라 여겨 여러 나라로 나들이를 다녔을까요.


  싱그러이 살아서 숨쉬는 ‘생각’을 읽을 수 있기에 여행글을 즐겁게 읽습니다. 맑게 빛나는 ‘넋’을 느낄 수 있기에 글을 고맙게 읽습니다. 스스로 지치는 몸이 되면 스스로 지치는 마음으로 달라지면서, 지친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고 맙니다. 스스로 기쁜 몸이 되면 스스로 기쁜 마음으로 거듭나면서, 기쁜 이야기를 오순도순 풀어놓기 마련입니다.


  교황 아무개 죽은 자리에 갈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빛’이 될까 궁금합니다. 콩나물 한 꾸러미 사려고 저잣거리에 다녀오는 일 또한 좋은 나들이요 마실이며 여행이 돼요. 좋은 동무랑 수다를 떨려고 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일 또한 재미난 나들이요 마실이고 여행이 돼요.


  어디를 가야 여행이지 않습니다. 누구하고 가야 여행이지 않아요. 무엇을 보거나 누구를 만나기에 여행이지 않아요. 스스로 느끼는 삶이 있고, 스스로 누리는 빛이 있으며, 스스로 깨닫는 꿈을 보살필 때에, 비로소 여행이 되는구나 싶어요.


  할머니 박완서 님은 여행길에 ‘여행가방’을 잃어버렸다 말씀하지만, 정작 할머니 박완서 님이 잃어버린 한 가지라면 ‘삶을 사랑하는 글’과 ‘사람을 좋아하는 꿈’이 아닌가 싶습니다. (4345.9.17.달.ㅎㄲㅅㄱ)


― 잃어버린 여행가방 (박완서 글,실천문학사 펴냄,2005.12.22./98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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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물려타는 책읽기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을 가꾸지 않으며 살아가기에 ‘새로운 한국말’이 예쁘면서 슬기롭게 태어나지 못하곤 한다. 새로운 문화나 예술이 흐드러지게 꽃피운다면, 이러한 문화와 예술에 걸맞게 ‘새로운 한국말’이 흐드러지게 꽃피울 만큼 새로 태어나야 알맞다. 그렇지만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을 예쁘거나 슬기롭게 안 하느라, 언제나 서양말이나 일본말이나 중국말로 ‘새로운 문화나 예술’뿐 아니라 ‘새로운 문명이나 기계’에다가 ‘새로운 학문과 넋과 이야기’를 나타내려고만 한다.


  이를테면, ‘물려주다’에서 테두리를 넓혀 ‘물려읽기’라든지 ‘물려쓰다’라든지 ‘물려타기’라든지 ‘물려하다’ 같은 낱말을 새로 지을 줄 모른다.


  나는 자전거를 ‘물려탄다’고 생각한다. 내 어버이가 즐겁게 타면서 고이 건사하는 자전거를 내가 물려타고, 내가 물려타면서 즐기고 돌본 자전거를 내 아이가 물려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 자전거나 물려줄 수 없다. 뼈대가 튼튼한 자전거일 때에 물려줄 수 있다. 부품은 열 해 스무 해 지나고 보면 닳거나 바스라져서 갈아야 하곤 한다. 그렇지만 뼈대는 서른 해 쉰 해를 흘러도 그대로 이어간다. 자전거를 손질한다 할 때에는 뼈대를 뺀 부품을 갈거나 손질하지, 뼈대를 손질하는 법이 없다. 튼튼하고 훌륭한 뼈대 하나만 있으면 자전거는 언제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어느 삶에서라도 같은 흐름이 된다고 느낀다. 내가 두 아이를 태우는 자전거수레는 뼈대가 아주 튼튼한 자전거이다. 이 자전거는 그야말로 뼈대만 빼고 모든 부품을 다 갈았다. 다만, 아직 ‘바퀴’는 그대로라 할 텐데, 바퀴살이 부러져서 바퀴살을 갈아 넣은 적이 있다. 바퀴도 퍽 튼튼하기에, 뼈대와 바퀴 두 가지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어가리라 보는데, 바퀴도 어느 때에는 새로 갈아야 할는지 모르는데, 뼈대만큼은 훨씬 오래 건사할 수 있다.


  밑앎과 밑삶이 튼튼하며 훌륭한 줄거리일 때에 책이 되리라 느낀다. 밑앎과 밑삶이 허전하거나 얕을 때에는 ‘가벼운 읽을거리’는 될는지 모르나, 두고두고 건사할 만한 책은 못 된다고 느낀다.


  나는 날이 갈수록 신문을 안 좋아한다. 신문이란 그야말로 ‘읽을거리 없는 종이뭉치’라고 느낀다. 날마다 뚝딱뚝딱 뒤집는 정치 이야기가 너무 많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도 부질없는 주식시세표나 방송편성표를 왜 실어야 할까. 누리신문(인터넷신문)이라고 다르지 않다. 누리신문에 실리는 이야기는 하루도 아닌 한나절도 아닌 반나절도 아닌 한 시간조차 값을 하는지 안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고작 하루치 목숨밖에 안 되는 글과 사진과 자료를 실어야 한다면, 신문이 할 몫은 무엇일까. 오려서 두고두고 읽을 만한 글을 얼마나 싣는 신문일까. 곧, 책 가운데에는 예쁘게 보살피는 넋으로 책시렁에 꽂고는, 두고두고 물려읽힐 만한 책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스스로 얼마나 ‘물려읽힐 책’을 장만해서 갖추는가. 나 스스로 열 차례 스무 차례 되읽을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물려읽히고, 이 아이들이 자라서 새 아이를 낳으면, 새 아이한테까지 기쁘게 물려읽힐 책을 장만해서 갖추는가. 그저 바로 오늘 읽어야 한다고 여기는 책을 장만해서 갖추는가. (4345.9.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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