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아주·환삼덩굴·쇠비름

 


  아이들이 손수 밭을 일구는 이야기를 다루는 그림책을 읽다가 오래도록 책장을 더 넘기지 못한다. ‘밭에서 자라는 잡풀’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인데, ‘밭 푸성귀’가 잘 자라지 못하게 가로막는 풀이라서 ‘김매기’를 해서 뽑아 버려야 하는 풀로 돌피·강아지풀·괭이밥·망초·왕바랭이·쇠뜨기·쇠별꽃을 비롯해 명아주·환삼덩굴·쇠비름을 든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시골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유채조차 잡풀로 여겨 그냥 뽑아서 버리곤 한다. 갓 또한 그냥 버리곤 한다. 유채잎이나 갓잎을 뜯어 집에서 자실 수 있으나, ‘먹는 다른 풀이 많으’니 굳이 유채잎이나 갓잎을 김치로 담가서 먹는 일이란 드물다. 자운영이나 질경이나 미나리조차 애써 캐거나 뜯지 않는다. 모조리 낫이나 기계를 써서 베어 버리거나 풀약을 쳐서 죽이신다.


  그림책에는 ‘나물로 많이 먹는 풀’로 질경이·냉이·꽃다지·쑥·민들레를 든다. 그런데, 시골에서 살아가며 지켜보면, 쑥이든 꽃다지이든, 애써 뜯거나 캐서 먹는 분들은 아주 드물구나 싶다. 배추나 무나 상추를 심어서 드시더라도,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 씩씩하게 돋는 이들 풀을 반찬으로 삼는 분이 매우 드물다.


  새삼스레 더 생각해 본다. 괭이밥이나 쇠뜨기는 약풀로 쓴다. 이들 풀은 날로 먹어도 되며, 풀물을 짜서 마셔도 된다. 우리 식구는 명아주와 환삼덩굴과 쇠비름은 얼마든지 뜯어서 먹고 풀물을 짜서 마신다. 질경이와 민들레도 먹지만, 망초나 쇠별꽃이라서 못 먹을 까닭이 없다. 숲에서 스스로 자라는 망초라면 맛난 풀이요, 숲에서 예쁘게 크는 쇠별꽃 또한 좋은 풀이다.


  그런데,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나서 어른이 되기까지, 시금치라도 맛나게 먹는 아이는 몇이나 될까. 깻잎이든 호박잎이든, 고추잎이든 배추잎이든, 당근잎이든 부추잎이든 모시잎이든, 맛나게 즐기는 아이는 몇이나 되려나.


  밭을 왜 일구는지 모르겠다. 밭 일구는 이야기를 묶은 그림책이 아이들한테 무슨 삶과 생각을 들려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그림책을 장만해서 읽을 어른들은 질경이가 되든 명아주가 되든 가만히 바라보고 살며시 쓰다듬다가는 입에 기쁘게 넣어 냠냠짭짭 맛을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스스로 먹어 보지 않고 먹어 볼 만한 풀이라느니 못 먹을 풀이라느니 하고 금을 그을까. 참말 모르겠다. 우리 집 텃밭 산초나무가 씨앗을 떨구어 새로 나는 어린 산초나무를 가느다란 가지까지 통째로 꺾어 간장이나 된장으로 무친 다음 날로 먹곤 한다. 산초잎과 산초줄기도 참으로 맛난다. 이름을 아는 풀도 이름을 모르는 풀도, 저마다 다 다른 풀내음을 풍기면서 내 몸으로 스며들어 나하고 하나가 된다.


  참말 나는 잘 모르겠다. 밭을 일구는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엮어 내놓는 뜻을 잘 모르겠다. 밭을 일구는 삶을 그림으로 담는 어른들 생각을 잘 모르겠다. (4345.9.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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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으로 읽는 책, 책꽃

 


  연필로 종이에 써서 묶어야 책이 되지 않아요. 밭에서 나는 풀 가운데 무엇을 먹고 무엇을 안 먹나 가리는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려 종이에 담아 보여주어야 책이 되지 않아요. 밭자락에 할머니랑 쪼그려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삶 또한 아름다운 책읽기예요. 구름을 보며 곱다 느끼고, 햇살을 쬐며 따스하다 느끼며, 아이들과 웃고 떠들며 누리는 삶 모두 책읽기예요. 가슴에 피어나는 사랑꽃이 바로 삶꽃이면서 책꽃이에요. (4345.9.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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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북소리

 


  파주북소리 9월 19일, ‘도서관 날’ 행사로 낮 세 시부터 푸름이들과 ‘우리 말글 이야기마당’을 꾸리기로 했다. 얼추 70∼100 사람쯤 되는 푸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 하는데, 어떠한 마당이 될까 궁금하다. 새벽 다섯 시 삼십 분부터 길을 나서는데, 낮 세 시까지 잘 닿을 수 있겠지. 오늘은 새벽길 자전거를 탄다. 새벽길 자전거는 무척 오랜만이다. 아이들과 살아가며 새벽길 자전거를 타지 못했는데, 가을날 선선한 바람을 쐬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고개를 잘 올라야지. 이야기마당 자료집을 미처 택배로 부치지 못해 들고 간다. 부치려고는 했는데 인쇄소에서 늦게 나온데다가 태풍이 겹쳤다. 잘 달리자. 아이들과 옆지기한테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서자. (4345.9.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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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지구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지음, 조형준 외 옮김 / 새물결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아이들한테 사진을 물려줄 때에
 [찾아 읽는 사진책 112]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하늘에서 본 지구》(새물결,2004)

 


  어제 낮에 주전부리로 이것저것 집어먹느라 저녁에 배고프지 않은 아이들이 새근새근 자다가 새벽녘에 배고픈지 자꾸 칭얼거립니다. 큰아이는 아예 일어났기에, 달걀 한 알 부치고 김치 몇 점 얹어 밥을 줍니다. 새벽 네 시 반에 밥 한 그릇 비운 큰아이는 배부른 몸으로 다시 달게 잠듭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며 아이들 이 삶 저 삶 사진으로 담습니다. 예쁘게 웃는 모습을 비롯해, 마당에서 넘어져 우는 모습이든, 두 아이가 씻는 통에 나란히 들어가 물놀이하는 모습이나, 저희끼리 무언가를 하며 노는 모습 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사진으로 옮깁니다. 글씨 쓰는 놀이를 하거나 그림 그리는 놀이를 하거나 책을 펼칠 적에도 사진으로 찍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아이들을 바라볼 적에 어느 모습이든 예쁘지 않은 모습이 없습니다. 잠든 모습이건 뛰노는 모습이건 예쁩니다. 더없이 마땅한 일이지만, 아이들뿐 아니라 옆지기를 바라볼 때에도 이와 같아요. 내 어버이나 옆지기 어버이는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나와 옆지기를 바라보면서도 ‘참 예쁜 아이(아이들 어버이)들’이로구나 하고 여길 만하리라 느낍니다.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님이 빚은 사진책 《하늘에서 본 지구》(새물결,2004)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지구별 곳곳을 누빈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님은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한 가지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며 사진을 찍었다고 해요. 아이들한테 공장이나 고속도로나 탱크나 총칼을 물려주어야 하는지, 아이들한테 컴퓨터나 졸업장이나 아파트나 땅문서를 물려주어야 하는지, 아이들한테 문화재나 교과서나 자가용이나 도서관을 물려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아이들한테 물려주어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스스로 생각하며 스스로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책 《하늘에서 본 지구》는 참말 ‘하늘에서 본 지구’를 보여줍니다. 때로는 퍽 높은 하늘에서 지구를 바라봅니다. 때로는 꽤 낮은 하늘에서 지구를 바라봅니다. 여러모로 생각하니, 헬리콥터를 타고 여러 곳을 누비며 사진을 찍을 때에는 ‘국경선’이 덧없습니다. 사진마다 씨줄과 날줄(위도와 경도)을 적바림하기는 하지만, 씨줄이건 날줄이건, 또 어느 나라 모습이건 대수롭지 않아요. 어느 한 나라일 때에도 이곳이 전라도인지 경상도인지, 전라도에서 화순인지 남원인지 대수롭지 않아요. 국경선뿐 아니라 마을과 마을을 가르는 금 또한 대수롭지 않아요.


  오직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가슴이라면, 무엇이 아름다운가를 생각합니다.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마음이라면, 어떻게 사랑스러운가를 헤아립니다.


  내가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무엇 하나 물려준다 한다면, 나로서는 돈도 이름도 집도 물려주지 못해요. 그러나, 나와 옆지기가 일군 보금자리를 곱게 건사해서, 이곳에서 풀과 나무를 누릴 수 있는 삶을 물려줄 수 있습니다. 이 시골마을 보금자리에서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 꿈꾸며 누릴 이야기를 물려줄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제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을 만한 무언가를 물려받으면서, 저희 나름대로 새로운 사랑을 빚고 새로운 꿈을 키우겠지요.

 


  숲을 떠올립니다. 들을 되새깁니다. 메를 바라봅니다. 새를 지켜봅니다. 풀벌레와 풀을 들여다봅니다. 바람을 쐬고, 햇볕을 쬡니다. 물을 마시고, 흙을 만집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밑바탕이 되면서, 사람 스스로 곱게 건사하는 보금자리를 하나하나 돌아봅니다.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이웃 아이들도 누구나 사랑스럽게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어버이 누구나 아름답게 생각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누구나 누릴 즐거움이요 웃음이고 빛입니다. 누구나 어깨동무할 꿈이며 사랑이고 하늘입니다.


  마음속에서 울려퍼지는 이야기를 들어 보셔요. 가슴속에서 샘솟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셔요.


  “예상과 달리 뤽상부르 공원의 벽에 전시된 사진들은 훼손되지 않았다. 지구의 아름다움이 그 자체로서 존경심을 불러일으킨 것 같았다. 전시회가 끝난 다음 사진들은 경매에 붙여져 자선기금으로 사용되었다(책끝에/안 얀켈리오비치).” 하는 끝말을 읽으며 사진책을 덮습니다.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려요. 사랑스러움을 마주하는 사람은 사랑스러움을 한껏 빛내요.


  아이들한테 사진을 물려준다 한다면, 나는 예술이 되는 사진이나 문화가 되는 사진은 물려주지 못합니다. 나는 그저 ‘아이들과 맑게 웃고 밝게 누린 삶’을 비추는 사진을 물려줍니다. 아이들과 서로 맑게 웃으며 들여다볼 만한 사진을 물려줍니다. 아이들과 나란히 즐기며 벽에 걸어 놓을 만한 사진을 물려줍니다. (4345.9.19.물.ㅎㄲㅅㄱ)

 


― 하늘에서 본 지구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사진,새물결 펴냄,2004.5.31./83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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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9-20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히 돌아보면, 아이들을 바라볼 적에 어느 모습이든 예쁘지 않은 모습이 없습니다. 잠든 모습이건 뛰노는 모습이건 예쁩니다."

- 아이들을 예쁘다고 느끼며 바라보는 어른의 모습도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

파란놀 2012-09-21 06:10   좋아요 0 | URL
누구나 예쁜 모습이 있어요
스스로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
살며시 갈릴 뿐이로구나 싶어요
 


 시골에서 누리는 글쓰기

 


  식구들 다 함께 시골에서 살아온 지 이태가 된다. 누군가 내 삶을 바라본다면, 도시에서 훨씬 길게 살았고, 시골에서는 얼마 안 살았다고 여기리라. 이오덕 님 글을 갈무리하느라 세 해 반 시골에서 살던 나날을 더하고, 강원도 양구 멧골짜기 군대살이를 더하면, 내 서른여덟 해 가운데 일곱 해 반은 시골살이요, 서른 해 반은 도시살이라 할 만하다. 도시에서 살아가고 놀며 일할 적에는, 아주 마땅하게도 도시 이야기를 글로 쓴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놀고 일할 때에는, 아주 마땅히 시골 이야기를 글로 쓴다. 도시에서는 내가 보금자리를 꾸린 도시 둘레 이야기를 눈여겨보며 읽는다. 시골에서는 내가 살림자리 일구는 시골 둘레 이야기를 살펴보며 읽는다.


  도시에서 살아가던 나는 언제나 ‘귀를 찢는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에 시달렸다고 생각했으니, 내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자주 튀어나온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나는 늘 ‘귀를 달래는 사랑스러운 풀벌레 노랫소리’에 젖어들며 좋다고 생각하니, 내 글에 이런 이야기가 곧잘 튀어나온다.


  좋아하기에 더 자주 글로 쓰지 않는다. 싫어하기에 자꾸자꾸 글로 쓰지 않는다. 마음을 기울이는 이야기를 글로 쓴다. 생각이 닿는 삶을 글로 쓴다. 옳거나 그르기에 글로 쓰지 않는다. 스스로 사랑을 품거나 꿈을 빚는 이야기를 글로 쓴다.


  내가 심어서 거두는 가을 열매나 곡식이어도 즐겁고, 이웃이 심어서 거두는 가을 열매나 곡식이어도 즐겁다. 온갖 풀내음이 온 집안을 감돈다. 이웃집에서 논밭에 풀약을 칠 때면 집 밖으로 나가기조차 싫고 힘들었지만, 태풍이 몰아치며 풀약 기운을 몽땅 휩쓸어 날리니, 어느 들판이고 홀가분하게 설 만하구나 싶다.


  맑은 기운 실어나르는 바람이 좋다. 궂은 기운 싹 걷어치우는 바람이 좋다. 예쁘게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예쁜 바람이 찾아온다. 구지레하게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구지레한 바람이 찾아든다. (4345.9.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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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9-20 16:24   좋아요 0 | URL
"맑은 기운 실어나르는 바람이 좋다." - 정말 그럴 것 같아요.^^

파란놀 2012-09-21 05:51   좋아요 0 | URL
사람들 스스로 삶과 글과 책과 모두를
아름다이 얽어서 즐기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