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책읽는 어린이

 


  헌책방에서 노는 어린이는 그림책을 책상에 펼쳐 놓고는 종알종알 읽는다. 아버지가 그림책을 읽어 주니, 저도 스스로 읽겠다며 그림을 보며 종알종알 읽는데, 줄거리 흐름하고는 동떨어진 말을 읊는다. 다섯 살 아이 나름대로 아이가 아는 모든 낱말을 끌어들이고, 아이가 느낀 그대로 읊는다. (4345.10.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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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글꼴 디자인'을 하는 책이 무척 오랜만에 선보인 셈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과 한국글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이란 너무 먼 듯하기도 하고요. 예쁜 책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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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그리다
유래 지음 / 발해 / 2012년 10월
10,500원 → 9,450원(10%할인) / 마일리지 52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1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2년 10월 1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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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글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은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누리는 삶’을 글로 씁니다.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누리는 삶’ 말고 다른 어느 이야기도 글로 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글은 바로 ‘글을 쓰는 사람’ 삶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읽으면 ‘글쓴이 삶’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글은 글쓴이 삶이요, 글에는 글쓴이가 살아오며 품은 생각과 살아가며 겪는 일이 모두 담깁니다. 글에서 글쓴이를 읽을 수 없는 때란 없습니다.


  글을 읽으며 어떤 멋을 느낀다면, 글쓴이는 멋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속멋을 가꾸듯 겉멋을 챙기든 글쓴이가 멋을 좋아하거나 아끼거나 마음을 쓸 때에는 글에서 멋을 느낍니다. 글을 읽으며 따분하다 싶으면, 글쓴이가 어쩌면 따분하다 싶은 삶을 누린다 할 만합니다. 글을 읽으며 웃음이 터진다면, 글쓴이가 늘 웃는 삶을 누린다든지, 늘 웃고픈 삶을 꿈꾼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글에는 참도 담기고 거짓도 담깁니다. 다만, 글쓴이가 글에 담은 넋을 모든 ‘글을 읽는 사람’이 알아채지는 못해요. 글쓴이는 언제나 글쓴이 삶을 글에 담지만, 읽는이가 언제나 글쓴이 삶을 읽지는 못합니다. 읽는이 스스로 글쓴이 삶하고 하나가 되려고 마음을 기울이면서 ‘글읽기 = 삶읽기’가 되도록 힘을 쓰고 사랑을 들여야 비로소 ‘글쓴이가 어떤 삶을 글에 담았는가’를 헤아릴 수 있어요. 읽는이 스스로 온힘과 온마음을 들여 글을 읽지 않는다면, 100번을 읽든 1000번을 읽든 글쓴이 넋을 못 읽습니다. 이를테면, 성경책을 10000번을 읽는다 하더라도 온힘과 온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성경책에 담긴 넋을 읽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요. 때로는 엉뚱하게 읽거나 잘못 읽습니다.


  동무가 나한테 띄운 글월을 읽을 때에도 ‘동무 목소리’와 ‘동무 마음’과 ‘동무 숨결’을 고스란히 살피면서 읽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어요. 동무 삶을 살피지 않고 ‘읽는이 내 틀’에서 글월을 읽으면 으레 잘못 읽거나 엉뚱하게 읽기 마련이라서, 읽는이가 생채기를 받는다고 여기기 마련입니다.


  즐겁게 일구는 삶에서 즐겁게 쓰는 글이 되고 즐겁게 읽는 글로 마주합니다. 슬프게 일구는 삶에서 슬프게 쓰는 글이 되며 슬프게 읽는 글로 이어집니다. 예쁘게 일구는 삶에서 예쁘게 쓰는 글이 되면서 예쁘게 읽는 글로 얼크러져요.


  글쓴이는 글쓴이대로 글쓴이 삶을 담으며 글을 쓰고, 읽는이는 읽는이대로 읽는이 삶에 맞추어 글을 읽어요. 어떤 이가 어느 책을 읽으면서 ‘어느 책에 깃든 알맹이를 알뜰살뜰 받아먹으며 즐긴다’ 한다면, 이 어떤 이(읽는이)는 ‘어느 책을 쓴 사람 넋과 삶과 꿈을 오롯이 아로새기면서 스스로 온힘과 온마음을 들여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글쓴이로서는 언제나 온넋을 바치는 글 하나를 빚을 때에 아름답고, 읽는이로서는 늘 온넋을 기울이면서 글 한 줄이나 책 한 권을 마주할 때에 아름답습니다.


  글쓴이로서는 바로 오늘 뜻을 이루어 아름답다 싶은 글을 빚을 수 있습니다. 읽는이로서는 바로 오늘 뜻을 이루어 아름답다 싶은 글을 ‘옳고 바르며 알맞고 슬기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글쓴이는 아직 스스로 깨우치지 못한 나머지 글을 제대로 못 쓸 수 있고, 읽는이 또한 아직 스스로 눈길과 눈빛과 눈높이와 눈썰미가 너무 낮아서 ‘아름다운 글 하나 못 알아보’며 겉훑기조차 엉뚱하게 하곤 합니다.


  말꼬리 잡기가 나타나는 까닭은, 읽는이 스스로 아직 마음그릇이 덜 되었기 때문이에요. 글쓴이가 아직 덜 무르익었다 하더라도 읽는이 스스로 곱게 무르익는 마음그릇이 된다면, ‘글쓴이가 여러모로 어리숙하게 글을 썼다’ 하더라도, ‘이 어리숙한 글 한 줄’에 깃든 어여쁜 사랑씨앗 하나를 느끼면서 북돋울 수 있어요. 글쓴이는 아름다운 꿈을 글에 담아 ‘아름다운 읽는이’를 글로 만나고 싶어 합니다. 말꼬리나 말다툼을 하려고 글을 쓰지 않아요. 생각나눔을 하고 생각빚기를 하고 싶기에 글을 씁니다. ‘글쓰기 = 삶쓰기’이기에, 글을 쓰면서 생각을 나누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녁 스스로 삶을 살찌울 수 있어요. 글을 쓰는 이는 글을 쓰면서 스스로 생각과 사랑을 새롭게 빚어요. 이렇게 생각과 사랑을 새롭게 빚은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들 읽는이 또한 이녁 생각과 사랑을 새롭게 빚으면서 ‘글로 만날’ 수 있으면 아주 아름답겠지요. (4345.10.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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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 - China 1997-2006, 이상엽 사진집
이상엽 지음 / 눈빛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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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을 찍건 한국을 찍건 똑같다
 [찾아 읽는 사진책 116] 이상엽, 《중국 1997-2006》(눈빛,2007)

 


  중국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또는, 중국을 사진으로 찍으려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이상엽 님이 중국을 찾아다니면서 찍은 사진을 그러모은 사진책 《중국 1997-2006》(눈빛,2007)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사진책 이름으로 “중국”이라고 붙일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면서, 왜 사진쟁이는 이렇게 ‘이웃나라 나들이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낼 생각’은 하면서, 막상 ‘제 나라 삶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낼 생각’은 못 품을까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중국 1997-2006”이라는 이름을 걸기 앞서 “한국 1997-2006”이라는 이름을 걸 만하지 않으랴 싶어요.


  중국을 찾아가는 한국사람은 중국을 얼마나 널리 읽는다 할 만할까요. 중국을 돌아다니는 한국사람은 중국을 얼마나 깊이 헤아린다 할 만할까요.


  어떤 이는 울릉섬을 예닐곱 차례 나들이 하고서 울릉섬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내놓습니다. 어떤 이는 제주섬을 한두 차례 나들이 하고서 제주섬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엮습니다. 어떤 이는 서울에서 한두 해쯤 사진을 찍고서 서울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펴냅니다. 어떤 이는 부산에서 마흔 해쯤 살아가면서 부산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꾸밀 엄두를 못 냅니다.


  아주 마땅한 소리입니다만, 누구나 스스로 읽은 대로 말합니다. 스스로 읽지 못한 모습은 말하지 못합니다. 중국땅을 밟으면서 밤하늘 달빛을 느낀 적이 있는 사람은 중국땅을 밟으며 느낀 밤하늘 달빛을 이야기합니다. 중국땅을 누비며 제비 날갯짓을 즐겁게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은 중국땅을 누비며 바라본 제비 날갯짓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중국땅을 드나들며 저잣거리 길바닥에서 헌책 하나 장만하며 찬찬히 읽은 적이 있는 사람은 중국땅 저잣거리 길바닥 책장수 삶자락을 가만히 톺아보는 글을 씁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며 들일과 밭일을 익히 하던 이라면, 또 나이 들어서도 시골에서 흙일을 하는 이라면, 중국땅을 돌아다니면서 ‘중국 시골살이’와 ‘중국사람 흙일’을 눈여겨봅니다. 집에서 언제나 아이들과 복닥이며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놀고 노래하며 밥을 먹던 이라면, 중국땅을 두루 훑는 동안 ‘중국 여느 어린이와 어버이’ 삶자락을 한결 애틋하며 사랑스레 바라봅니다.


  곧, 이상엽 님이 내놓은 사진책 《중국 1997-2006》은 중국을 바라보는 ‘열 해 발자국’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중국을 거닐며 한국을 읽는’ 이야기라 할 만합니다. 중국에서 느끼는 중국 이야기이기도 할 테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살아온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 그대로 중국에서도 느끼던 이야기라 할 만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중국 1997-2006”이 아닌 “한국 1997-2006”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이 사진책에 실린 빛과 그림이 고스란히 나타나리라 느껴요.


  이상엽 님은 “흑룡담 기념촬영. 이제 중국에서 오지다운 오지도 찾기 힘들다. 리장 인근, 윈난성, 2005(32쪽).” 하고 적바림합니다. 그러면 ‘오지’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중국말(또는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을 아무렇지 않게 써 버릇하니 말뜻도 말느낌도 말삶도 옳게 헤아리지 못하기 일쑤예요. 참말 ‘오지’란 어떤 곳일까요. 국어사전 말풀이를 따르면, ‘오지(奧地)’는 “해안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대륙 내부의 땅. ‘두메’로 순화.”라 나옵니다. 그러니까, ‘오지’는 한국말 아닌 중국말이나 일본말이기 때문에 “순화해야 할 낱말”이라는 뜻이에요. 한국말로 올바로 바로잡아 ‘두메’라 하니까, 다시 국어사전에서 이 낱말을 찾아봅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로 ‘두메’는 “도회에서 멀리 떨어져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변두리나 깊은 곳”이라 합니다. 자, 그러면 ‘두메’란 어떤 곳일까요? 어렵다 싶은 물음은 아니겠지요? 두메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골’입니다.

 

 

 

 

 


  한국에서 시골다운 시골은 어디에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서울사람이 느낄, 또는 도시사람이 느낄 시골다운 시골은 한국에서 어디쯤일까 헤아려 봅니다. 어떤 곳이 시골이고,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삶을 일구어야 시골일까요. 한국에서 시골이 시골답게 남아날 수 있을까요. 시골마다 온통 공장을 짓고 골프장을 지으며 고속도로이니 고속철도이니 때려짓는데다가, 4대강사업이니 무엇이니, 또 핵발전소이니 화력발전소이니, 송전탑이니 쓰레기매립지이니, 도시에는 안 짓는 ‘위험·위해시설’을 몽땅 시골에다 짓는 흐름이에요. 도시사람은 도시 한복판에 핵발전소이든 화력발전소이든 들여놓지 않으려고 똘똘 뭉쳐 반대를 해요. 이러면서 도시사람은 전기를 펑펑 쓰고, 도시에서 전기를 펑펑 쓸 수 있도록 하려고 시골마을 한복판에 핵발전소이든 화력발전소이든 짓겠다고 나서요. 돈(지역발전기금)을 줄 테니까 ‘깨끗한 시골 삶터를 망가뜨리’면서 시골 한복판에 발전소를 왕창 지으려고 해요.


  한국에 시골다운 시골이 사라지는 흐름이나 중국에 시골다운 시골이 사라지는 흐름이나 똑같습니다. 중국에서 시골다운 시골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면, 한국에서도 시골다운 시골을 찾아보기 어렵겠지요. 그러나, 중국 어디에나 시골다운 시골은 있어요. 중국 경제가 크게 발돋움하든 갑자기 곤두박질치든, 이런저런 경제나 정치나 사회나 문화나 교육이란 아랑곳하지 않는 고요하며 한갓지고 사랑스러운 시골마을이 있습니다. 이와 같아요. 한국에도 한국 경제나 정치나 사회나 문화나 교육이란 아랑곳하지 않는 조용하며 호젓하고 믿음직스러운 시골마을이 있어요.


  도시에 깃들어 살아가니까 시골을 모르고 못 느낄 뿐이에요. 도시사람 눈썰미로 바라보니까 시골을 못 찾고 못 껴안을 뿐이에요.


  그러나, 이상엽 님 사진책 《중국 1997-2006》이 아쉽다거나 서운하거나 어설프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왜냐하면 거의 모든 도시사람은 이와 같이 바라볼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뿌리를 도시에 두며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중국도 한국도 일본도 미국도 러시아도 파키스탄도 네팔도 베트남도 스리랑카도 티벳도 핀란드도 네덜란드도 어슷비슷 보일밖에 없습니다. 큰회사 최고경영자가 브라질을 찾아가면 무엇을 보려 할까요. 농사꾼 할머니가 칠레를 찾아가면 무엇을 보려 할까요. 젊은 도시내기 대학생이 영국을 찾아가면 어디에서 무엇을 보려 할까요. 아이들 여럿 보살피는 아주머니가 포르투갈로 나들이를 가면 어디에서 무엇을 보거나 느낄까요.

 

 

 

 

 


  삶이 바로 사랑입니다. 삶이 바로 눈길입니다. 삶이 바로 꿈입니다. 삶이 바로 생각입니다. 삶이 바로 책입니다. 이리하여, 삶이 바로 노래요 춤이면서 사진입니다.


  이상엽 님은 “정부가 준 것. 도로, 전기, 무선통신. 문제는 가진 것이 없다. 암도 티베트, 쓰촨성, 2005(178쪽).” 하고 적바림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책 《중국 1997-2006》은 재미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을 찍건 한국을 찍건 똑같기 때문입니다. 중국을 찍은 사진을 읽으며 한국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책 《중국 1997-2006》을 읽다가 가만히 생각합니다. 다 다른 삶터에서 다 다른 일을 누리는 사람들이 다 같은 때에 중국이든 한국이든 마실을 하거나 살아가면서 사진을 찍어 ‘열 해 삶 발자국을 그러모은’ 사진책을 엮어서 내놓을 수 있으면 참 재미있으리라 느낍니다. ‘똑같은 사진감’으로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백 사람은 백 가지 ‘다 다른 사진이야기’를 빚을 테지요. 또는 백 사람한테 한 해치 이야기를 맡겨, 첫째 사람은 2012년을 찍고, 둘째 사람은 2013년을 찍고, 셋째 사람은 2014년을 찍으면서, 해마다 ‘같은 곳’을 ‘다른 사람’이 죽 돌아보며 담은 사진들로 사진책을 엮어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재미나리라 느껴요.


  살아가는 대로 바라봅니다. 살아가는 대로 사랑합니다. 살아가는 대로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대로 사진기를 손에 쥐고 사진 한 장 곱다시 그립니다. (4345.10.11.나무.ㅎㄲㅅㄱ)

 


― 중국 1997-2006 (이상엽 사진,눈빛 펴냄,2007.1.26./45000원)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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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과 책읽기

 


  시골집으로 돌아와서 달을 본다. 닷새나 시골집을 떠나 부산 한복판에서 지내며 달 한 조각, 별 한 모금 바라볼 수 없었다. 부산 보수동 꼭대기 집에서든, 부산 연산동 여관에서든, 다시 부산 보수동 여관에서든, 달이나 별을 바라볼 틈바구니가 없을 뿐더러, 길거리와 가게와 자동차 불빛은 달빛과 별빛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꽁꽁 가로막기만 했다. 밤에 밤을 느끼지 못하고, 저녁에 저녁을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는 몸과 마음이 힘들기만 하다.


  비로소 밤을 느끼고 저녁을 헤아린다. 비로소 달을 바라보고 별을 마주한다. 10월 10일에서 10월 11일로 넘어가는 깊은 밤, 마당에 설 때 내 왼편 하늘 멧자락 위로 봉긋 올라온 초승달이 웃는다. 큰아이가 종이에 그리는 웃는 얼굴 입 모양처럼 빙그레 웃는 초승달이로구나 싶다. 고개를 위로 꺾어 까만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쏟아진다.


  기지개를 켠다. 별을 내 가슴에 담는다. 한갓진 시골마을 누렇게 익는 들판 풋풋한 벼내음이 퍼진다. 자동차 시끄러운 소리에서 풀려난 몸이 가뿐하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곯아떨어졌다. 오늘부터 아이들한테 ‘풀만 먹이’고 나도 ‘풀만 먹자’고 생각한다. 도시로 마실을 가면 다른 무엇보다 풀을 먹을 수 없고, 누런쌀로 지은 밥을 먹을 수 없어 괴롭다. 잇몸이 아프다. 흰쌀밥을 먹으면 밥을 씹는 맛을 못 느끼고, 맵고 짜고 달고 시고 기름진 반찬을 먹으면 입안이 찝찝하다.


  달아, 너는 무얼 먹고 사니. 달아, 너는 누구와 함께 사니. 도시에서는 그나마 별 한 모금 볼 수 없어도 달 한 조각 가끔가끔 구경할 수 있기는 한데, 오늘날 사람들 거의 모두 달빛을 잊으며 지내는 마당에 달은 어떤 즐거움으로 살아가려나. (4345.10.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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