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61) 존재 161 : 분명히 존재

 

하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존재했다
《타니카와 후미코/이지혜 옮김-편지》(대원씨아이,2012) 109쪽

 

  ‘그러하지만’을 잘못 간추려 적는 ‘하지만’은 ‘그렇지만’으로 바로잡습니다. “근본적(根本的)인 부분(部分)에서”는 “밑바탕에서”나 “처음부터”나 “깊은 뿌리에서”나 “저 깊은 곳에서”로 손볼 수 있어요. ‘분명(分明)히’는 ‘틀림없이’나 ‘어김없이’로 손봅니다.

 

 분명히 존재했다
→ 틀림없이 있었다
→ 어김없이 도사렸다
→ 꼭 감돌았다
→ 반드시 흘렀다
 …

 

  있기에 ‘있다’고 말하는데, 흐름이나 기운이나 느낌이 있다고 할 때에는 ‘도사리다’나 ‘감돌다’나 ‘흐르다’나 ‘맴돌다’ 같은 낱말을 넣어서 나타낼 수 있어요. ‘쌓이다’나 ‘고이다’나 ‘넘치다’ 같은 낱말을 넣어도 어울립니다.


  보기글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 보였다”나 “어쩔 수 없는 것이 드러났다”처럼 적어도 돼요. ‘불거지다’나 ‘나타나다’나 ‘튀어나오다’같은 낱말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4345.10.14.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렇지만 저 깊은 곳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 꼭 불거졌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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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고립되었다 - 기륭전자비정규직투쟁 1890일 헌정사진집
정택용 사진, 송경동.기륭비정규투쟁승리 공대위 기획 / KCWC(한국비정규노동센터)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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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뜻밖에도 이 사진책에 붙은 느낌글(서평)이 거의 안 보인다.

사람들이 입으로는 기륭 기륭 비정규직 비정규직... 을 읊지만,

정작 이들 이야기를 담은 책을 사서 읽으며 나누려는 마음은 얕은가.

 

..

 

 

 


 얼굴 찡그리는 싸움은 없다
 [찾아 읽는 사진책 117] 정택용, 《너희는 고립되었다》(한국비정규노동센터,2010)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0일 헌정 사진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진책 《너희는 고립되었다》(한국비정규노동센터,201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정택용 님이 여섯 해에 걸쳐 기륭전자 일꾼들을 만나며 담은 사진책이라 하는데, 책 첫머리에 기륭전자비정규 분회 일꾼이 “우리 얼굴에 이런 미소가 있음을 자꾸 확인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지갑 속에 이 사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여는 글).” 하고 적바림합니다. 여섯 해에 걸쳐 비정규직 싸움을 하는 동안 정택용 님은 바지런히 사진을 찍었고, 정택용 님이 찍은 사진 가운데 ‘활짝 웃는 모습’이라든지 여러 모습을 종이에 뽑아 나누어 주었다고 해요. 거의 아줌마로 이루어진 오랜 나날 싸우는 이들은 사진에 담긴 당신들 얼굴을 보며 다시 웃는다고 합니다. 웃는 얼굴 담긴 사진은 웃음을 새삼스레 불러들이고, 웃는 얼굴로 싸운 기나긴 나날은 웃음을 씨앗으로 뿌립니다.


  사진쟁이 정택용 님은 “그깟 사진으로 폭력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급박한 싸움 중에서도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게 하려고 돌아가며 연락을 해 준 분들이 기륭분회 조합원들이셨다(작업노트).” 하고 말합니다만, 사진은 ‘그깟 사진’이 될 수 있지만 ‘고마운 사진’이나 ‘반가운 사진’이 될 수 있어요. ‘즐거운 사진’이나 ‘아름다운 사진’이 될 수 있어요. 정택용 님은 사진 하나로 “폭력을 막을 수 없”는 듯 여기지만, 참말 사진 하나 있기에 “폭력을 막”거나 “싸움을 끝내”기도 해요. 요즈음은 전투경찰이나 사복경찰도 사진기를 들고는 마구 사진을 찍는데, 가녀린 이들한테 휘두르는 주먹다짐을 누군가 곁에서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주먹다짐이 곧잘 움추러들곤 해요. 사진기자도 신문기자도 방송기자도, 그야말로 ‘뭣도 아니라’ 할 만한 사람이 고작 사진기 하나 들며 바라볼 뿐이지만, 사진기 앞에서 그야말로 “폭력이 수그러들”기도 해요. 나도 이 같은 일을 숱하게 보고 겪었어요. 중앙언론사에서 취재를 나오지 않는 조그마한 집회, 이를테면 재개발과 막개발을 밀어붙이는 골목동네 한켠에서 공무원과 건설업자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밀어붙이는 자리라든지, 시골마을 조그마한 집회 같은 자리에 사진기 하나만 들고 함께 있을 뿐인데, 사진기 하나가 제법 힘을 써요.


  어떻게 사진기 하나가 힘을 쓸까 아리송하다가도, 몇 시간쯤 조그마한 집회에 함께 있다 보면, 시나브로 가슴속으로 스미는 느낌이 있습니다. 삶에 좋고 나쁨은 없지만, 얄궂은 몸짓으로 슬픈 생채기를 내려는 이들은 ‘누군가 지켜보는 눈길’을 두려워합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작은 사진기 하나를 든 작은 구경꾼 하나조차 두려워합니다. 거꾸로, 중앙언론사 사진기나 촬영기가 있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으며 주먹다짐을 휘두르는 이들은 두려움이 없어요. 두려움이 없기에 그네들 주먹다짐이 사진이나 방송으로 찍히건 말건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쳐다보지 않아요. 그네들은 두려움이 없으니 사진으로 수두룩하게 찍혀도 외려 고개를 뻣뻣이 듭니다. 두려움 없는 주먹다짐은 작은 사람들을 무시무시하게 짓밟아요. 이를테면, 1980년 광주에서 외신기자가 사진을 찍건 말건 사람들을 끔찍하게 죽였어요. 1960∼70년대 군사독재정권 또한 외신이건 내신이건 사진을 찍든 말든 사람들을 끔찍하게 짓밟거나 죽였어요. 이런 일 저런 모습을 살핀다면, 어느 모로 볼 때에 ‘그깟 사진’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깟 사진’이 아닌 ‘반가운 사진’이 되기 일쑤예요. 권력자가 그야말로 초라하거나 자그맣다 여기는 기륭전자 일꾼은 서로 똘똘 뭉쳐 여러 해에 걸쳐 맞서거든요. 참 많은 이들은 ‘싸움이 될 수 없다’고 여기지만, ‘숫자로 얼마 안 되는’ 작은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여러 해에 걸쳐 맞서 싸워요. ‘그깟 비정규직 몇 사람’이 오래도록 힘을 내며 슬기롭게 싸우고, ‘그깟 아줌마 몇 사람’이 여러 해에 걸쳐 활짝 웃으며 즐겁게 싸워요.

 


  정택용 님은 “6년의 기억을 톺아보는 것이 괴로운 일만은 아니었다. 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추위와 비바람에 맞서면서도, 끝이 잘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 덮쳐도 조합원들한테는 항상 웃음이 있었다. 그 폭력에, 막막함에 먼저 지쳐 떨어져나가는 것은 부끄럽게도 조합원들이 아니라 카메라였다(작업노트).” 하고 밝힙니다. 사진을 찍는 정택용 님이 힘들다 여기고 고되다 여기더라도, ‘그깟 몇 안 되는 조합원’은 힘이 들면 힘이 드는 대로 드러누워 쉬다가도 다시금 벌떡 일어나서 싸움판을 일구어요. 고된 나날 눈물짓거나 한숨지으며 하루하루 보내다가도 새삼스레 떨쳐 일어나 두 주먹을 불끈 쥐어요. 왜냐하면, ‘늘 웃으며 살아가’기 때문이에요.


  웃음이 있어 삶이 있습니다. 웃음이 있는 싸움판입니다. 아니, 싸움판이라는 낱말은 걸맞지 않습니다. 웃음이 꽃피우는 일판이요 삶판입니다.


  얼굴 찡그리는 싸움은 없습니다. 신문기자나 사진기자가 으레 ‘얼굴 찡그리며 두 주먹 불끈 쥐고 하늘을 찌르는 모습’만 사진으로 찍어서 내보내 버릇하니까, 집회가 언제나 이런 모습인 양 잘못 아는데, 서울시청 앞 너른 터에서 이루어지는 집회이든,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화력발전소를 반대하는 조그마한 집회이든, 사람들은 늘 웃습니다. 싸움에서 이기거나 지거나 크게 대수로이 여기지 않습니다. 집회를 연다는 뜻은 싸움에서 홀가분하다는 소리입니다. 집회를 여는 이들은 이기고 지는 금긋기가 아닌, 스스로 펄떡펄떡 숨쉬고 살아가는 빛나는 목숨이라고 밝히는 꿈꾸기를 생각합니다.

 


  목청을 높여 외치면서 웃습니다. 주먹을 흔들면서 웃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웃습니다. 쉬는 짬에 도시락을 까먹거나 담배 한 개비 물면서 웃습니다. 찻길에 자동차 못 다니게 사람들이 떡 하니 버티면서 웃습니다.


  시위를 찍고 집회를 찍는 일이란 ‘웃음’을 찍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웃고 싶은 삶을 바라는 사람을 찍는 일이요, 참말 집회이든 시위이든 스스로 웃음을 터뜨리며 싸우는 사람을 찍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웃고 싶어서 싸우지, 울고 싶어서 싸우는 사람은 없어요. 웃고 싶어서 싸우는 만큼 집회이든 시위이든 언제나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요. 웃는 삶을 꿈꾸며 싸우기에 신나게 춤을 춥니다. 웃는 삶을 이루고 싶기에 집회터나 시위터에서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우두머리 이름을 동네 강아지 이름 부르듯 부를 수 있습니다. 참말 웃고 싶거든요.


  정택용 님은 “2005년 여름 기륭에서 처음 본 것은 철문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조합원들이었다. 한 아이가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안에 있는 엄마와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눴다. 1970년대도 아닌 2005년에 보아서는 안 되는 장면이었다. 그때부터 이 기록은 시작됐다(작업노트).” 하고 말합니다. 따지고 보면, 2005년에 보아서는 안 되는 모습이란 없습니다. 한국 사회는 1970년대이나 2010년대이나, 또 1950년대이나 2000년대이나, 그닥 다르지 않아요.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발돋움하는 한국 사회가 아니에요. 학력차별 신분차별 외모차별 지역차별이 버젓이 있을 뿐 아니라, 더욱 골이 깊어지는 한국 사회예요. 노동차별과 계급차별 또한 어엿하게 또아리를 트는 한국 사회예요. 말이 안 될 만하다 싶은 일이 ‘말이 되는’ 한국 사회입니다. 뚱딴지 같은 모습이 사진으로 곧잘 찍힐 만해요. 정택용 님은 기륭전자 비정규직 일꾼들한테서 ‘뚱딴지 같은 한국 사회 모습’ 한자락을 느껴 사진을 꾸준히 찍었다고 합니다만, 뚱딴지 같은 모습은 어디에나 있어요. 참말 뚱딴지 같은 한국 사회인데, 이 뚱딴지 같은 한국 사회에서도 더욱 뚱딴지 같은 곳을 보았고, 그런데 우악스럽게 뚱딴지 같은 곳에서 뜻밖이라 할 만한 웃음꽃을 피우는 사람들을 보았겠지요. 뚱딴지와 웃음꽃이 어우러지는 모습에 넋을 잃었겠지요. 삶꽃을 피우려는 사람들한테서 빛을 보았겠지요. 삶꽃으로 사랑꽃을 이루고, 사랑꽃으로 꿈꽃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을 보았겠지요.


  사진책을 덮습니다. 책이름을 곰곰이 되뇝니다. “너희는 고립되었다”라 읊는 외침말은 바로 ‘웃음꽃 잃은’ 권력자한테 들려주는 말이로구나 싶습니다. 웃음꽃 잃고 사랑꽃 놓은 권력자들한테, 꿈꽃을 버리고 삶꽃은 등돌리는 가녀린 권력자한테 들려주는 말이로구나 싶어요. 꽃피우지 못하는 몸짓이란 얼마나 외롭고 슬프며 힘겨울까요. 권력을 놓고 즐겁게 얼크러지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 기쁠 텐데요. 권력을 버리고 어여쁜 보금자리 일구는 두레를 다 같이 하면 즐거울 텐데요. (4345.10.14.해.ㅎㄲㅅㄱ)

 


― 너희는 고립되었다 (정택용 사진,한국비정규노동센터 펴냄,2010.11.7./25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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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케익

 


  마당 한켠에서 흙을 그러모아 도톰하게 다지던 큰아이가 ‘고양이 케익’을 만들었다며 들여다보라고 한다. 흙더미에 가랑잎을 꽂고는 고양이한테 줄 케익이라고 말한다. 고양이 케익을 함께 들여다보던 작은아이가 손으로 만지며 흐트러졌는데, 큰아이는 나중에 다시 토닥토닥 다져서 모양 좋게 만들어 놓는다. 우리 집 마당을 저희 마당처럼 여기며 날마다 수없이 돌아다니는 마을고양이들은 이 흙케익을 알아보려나. (4345.10.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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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꽃 책읽기

 


  아이들 얼굴 크기만 한 꽃을 본다. 요즈막 어느 시골에나 흔하게 피는 코스모스 언저리에 코스모스하고 똑 닮았으나 잎사귀가 무척 큰 옅은분홍빛 꽃을 본다. 먼 데에 있어도 꽃내음이 물씬 풍긴다. 큰꽃이 맑은 내음 풍기는 들판에서 자라는 벼는 이 꽃내음도 담뿍 담으며 무르익겠지. 꽃내음 맡는 아이는 꽃내음도 함께 먹으며 자란다. 꽃잎이 바람에 한들거리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꽃바람도 함께 누리며 자란다. 큰아이가 큰꽃 한 송이를 꺾어 논둑길을 달린다. 머리에 핀을 꽂고 핀 사이에 꽃대를 물리며 꽃순이가 된다. (4345.10.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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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친다는 것 (만화) - 교실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든 교사들에게
윌리엄 에어스 지음, 홍한별 옮김, 라이언 앨릭샌더 그림 / 양철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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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하루란 무엇일까
 [만화책 즐겨읽기 185] 윌리엄 에어스·라이언 앨릭샌더 태너, 《가르친다는 것》

 


  도시를 지은 사람들은 무엇을 꿈꾸었을까요. 도시를 지은 사람들은 이 삶터에 깃들 사람들이 어떤 꿈을 꾸면서 어떤 사랑을 나누리라 생각했을까요.


  볼일을 보러 가끔 도시로 마실을 하면서 도시사람 스스로 꿈이나 사랑을 꽃피운다거나 나눈다고는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나는 서른 해 가까이 도시에서 살았어요. 도시에서 살아가며 꿈도 꾸고 사랑도 꽃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도시를 지은 사람들은 도시사람이 꿈을 꾸거나 사랑을 꽃피우기를 바랐을까 헤아리다 보면, 으레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해요. 어쩐지 도시라는 삶터는 꿈이나 사랑하고는 동떨어지지 싶어요.


  도시에서 집을 짓거나 길을 닦거나 건물을 세우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늘 이렇게 느껴요. 왜 가난한 사람들 작은 보금자리 모인 데를 통째로 허물려고 하지? 왜 자꾸 따사로운 마을을 무너뜨리면서 아파트를 짓거나 공장을 세우거나 무슨무슨 건물이나 운동장을 만들려 하지? 왜 부잣집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찻길은 안 닦으면서 가난한 동네 한복판으로는 전철길이든 기찻길이든 넓은 찻길이든 뚫으려 하지? 왜 부잣집 언저리에는 공장을 안 지으면서 가난한 동네 옆에 찰싹 붙여 공장을 짓지?


  나이가 들며 천천히 생각합니다. 가난한 동네 어른들은 공장 일꾼이 됩니다. 부잣집 도련님이나 아가씨는 공장 일꾼이 안 됩니다. 가난한 동네 어른들은 도시 밑바탕을 이루는 톱니바퀴와 같습니다. 스스로 쳇바퀴 다람쥐처럼 살림을 꾸리도록 내몰아야 도시가 버틸 수 있어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퍽 가난하게 살아가야 비로소 도시가 버티는구나 싶어요. 더욱이,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도 ‘곡식과 열매를 매우 값싸게 팔아서 가난하게 지내야 하는 흙일꾼’이 있어야 도시가 버텨요.


-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유치원 반을 맡은 첫날 아침 일이었다. “왜 공이 튀어요?” “어.” ‘이런! 아직까지 난 그것도 모르는구나!’ (12쪽)
- 퀸이 표준시험에서 배운 것은 시험이 원하는 답을 어떻게 찾느냐는 것뿐이었지만, 나는 시험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 시험은 교직과 시험 응시자 둘 다를 격하시켰습니다. 표준시험은 교사의 여러 자질 중에서 아주 일부만 충족시키면 된다고 말합니다. 만점을 맞을 수도 있고 시험에 낙방할 수도 있지만, 그 결과만 가지고 내가 좋은 교사가 될지, 형편없는 교사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96쪽)


  시골을 지은 사람은 따로 없습니다. 시골은 스스로 태어납니다. 시골 숲은 풀과 나무가 스스로 씨앗을 내어 스스로 이룹니다. 시골에 이루어지는 마을은 시골에서 흙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짓습니다. 흙과 나무와 풀을 써서 짓는 조그마한 집이 군데군데 생깁니다. 흙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 곧 ‘흙사람’은 흙집을 짓고 흙밥을 먹습니다. 흙일을 합니다. 흙일 하는 흙사람 흙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저절로 흙아이가 돼요. 흙놀이를 하고 흙꿈을 꿉니다. 차근차근 흙사랑을 깨닫고 흙누리를 박차고 일어섭니다.


  시골에서는 쓰레기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처음 시골이 이루어진 때부터 아주 오래도록 시골에서는 ‘쓰레기’라는 낱말이 안 쓰였습니다. 모든 삶자락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갔어요. 집도 신도 옷도 사람 몸뚱이도 흙에서 비롯하면서 흙으로 돌아갔어요.


  쓰레기는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흙이 없거나 흙을 멀리하거나 흙을 깎아내리는 도시에서 쓰레기가 태어났어요. 도시에서 짓는 집은 백 해를 버티지 못하고 쓰레기가 되어요. 도시에서 먹고 마시고 입고 누리는 모든 것은 열 해를 버티지 못하고 쓰레기가 되어요. 그런데, 도시는 쓰레기를 만들고 쓰레기를 버리면서 ‘날마다 생기는 쓰레기를 어디에 버려야 할는지’ 가늠하지 못해요. 도시에서 흙을 내팽개치고 도시에서 흙을 등지면서, ‘쓰레기가 흙으로 돌아가 새 숨결이 되도록 하는 얼거리’를 짜지 않아요. 더구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쓰레기를 만들고 버리고 묻으면서 이 쓰레기가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이 쓰레기 때문에 도시뿐 아니라 이 나라 삶터가 어떻게 될는지 생각하지 않아요.


- 선생님들이 늘 읽고 고민하고 탐구하고 수집하고 영화관, 박물관, 연주회, 강연회, 전시회에 가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모든 것을 알기에는 부족하다. 우주는 팽창하고 지식은 무한하다. 그러니 좋은 교사라면 아이들과 함께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어 같이 모험을 해야 한다. (15쪽)
- “뭘 배우는 건 쉬운 일입니다. 요즘 학교에서 강조하는 건 그것뿐이지요. 하지만 생각하고 느끼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제 관심은 바로 그런 거예요.” (68쪽)


  살아가는 하루란 무엇일까요. 삶이란 무엇일까요. 스스로 생각하는 삶이란 어떤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요.


  어버이는 스스로 살아가는 하루를 아이들한테 보여줍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누리는 삶을 아이들한테 물려줍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바라거나 좋아하거나 즐기는 삶을 아이들한테 가르칩니다.


  교사는 학교에서 지식을 가르치는 몫을 맡는다 하는데, 학생들이 배워야 한다는 지식은 학생들 삶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할까요.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마치는 아이들은 이녁 삶을 어떻게 일굴 때에 즐거울까요. 대학교에 가야 즐거운 삶이 될까요. 대학교를 마친 뒤 큰회사나 공공기관에 들어가 연봉을 많이 받아야 즐거운 삶이 될까요. 더 커다란 도시에서 더 커다란 아파트를 장만하고 더 새까만 자가용을 굴려야 즐거운 삶이 될까요.


  무엇이 즐겁다 할 만한 삶일까요. 어디에서 즐겁다 할 만한 삶을 누릴까요. 누구하고 사귀거나 만나면서 즐겁다 할 만한 삶을 빛낼까요. 그러니까, 학교란 어떠한 곳이고, 학교에서 교사 몫을 맡는 이들은 어떤 지식을 아이들한테 가르치면서 스스로 즐겁고 아이들이 즐겁도록 삶을 누리는가요.


  어쩌면, 교사도 학생도 모두 즐거움하고는 동떨어진 채 하루를 보내지 않나요. 곰곰이 살피면, 교사도 학생도, 게다가 어버이까지, 또 교장과 교감을 비롯해 국회의원과 시장과 군수와 대통령까지, 모두들 즐거움하고는 등을 진 채 삶을 흘리지는 않나요.


- 비극은 모든 아이들이 (위대한 재즈 가수) 엘라였다는 것이다. 가치와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 그런데 학교에서는 그걸 모른다. 나도 내 반에서 엘라를 놓쳤을까? 내가 그 재능과 슬기를 드러나게 만들 수 있었을까? 어떻게? (34쪽)


  하루를 누리면서 가장 즐겁다 여기는 때를 돌아봅니다. 하루를 즐기면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때를 헤아립니다. 왜냐하면 삶이거든요. 좋아하기에 스스로 즐기는 삶이에요. 사랑하기에 스스로 빚는 삶이에요.


  웃고 싶어요. 낯을 찡그리고 싶지 않아요. 노래하고 싶어요. 꽁한 채 있고 싶지 않아요. 밥을 먹고 싶어요. 내 손으로 마련한 먹을거리를 내 손으로 다루어 맛나게 밥상을 차리고 싶어요. 내 옷가지와 아이들 옷가지를 손수 빨래해서 햇볕에 말리고 싶어요. 다 마른 옷가지를 아이들과 천천히 개고 싶어요.


  밤하늘 별을 바라보며 자장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빈 들판을 아이들과 느긋하게 거닐며 흙기운과 풀기운을 새삼스레 느끼고 싶어요. 낮에는 흰구름이 어떤 그림을 하늘에 그리는가를 살피고, 밤에는 뭇별이 어떤 빛깔을 하늘에 선보이는가를 마주하고 싶어요.


  새들이 지저귑니다. 벌레도 우짖습니다. 태평양하고 맞닿은 전라남도 바닷가 마을은 한가을에도 퍽 포근해서, 감나무이든 모과나무이든 벚나무이든 매화나무이든 새잎이 하나둘 돋습니다. 올겨울에도 동백나무 몇 봉오리는 찬눈을 맞으면서도 바알간 꽃잎을 활짝 펼치리라 생각해요.


- 학생들은 배우는 사람일 뿐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이 된다. 교사는 학생의 성장과 배움을 돕기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사와 학생은 세상을 알기 위해 나란히 함께 애쓴다. (36쪽)


  국민학교 여섯 해, 중학교 세 해, 고등학교 세 해, 이렇게 열두 해에 걸쳐 내가 무엇을 배웠는가 돌아봅니다. 열두 해에 걸쳐 학교에서 삶을 배운 적이 있는가 돌아봅니다. 글쎄요, 참말 ‘글쎄요’ 말고 내 입에서 튀어나올 말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국민학교는 중학교를 바라보는 시험공부를 시킵니다. 중학교는 고등학교를 바라보는 시험공부를 시킵니다. 고등학교는 대학교를 바라보는 시험공부를 시켜요. 이 다음에 대학교에서는 큰회사나 공공기관을 바라보는 시험공부를 시켜요.


  온통 시험공부뿐이에요. 학교는 시험공부만 시키는 데예요. 학교에서 마음껏 놀지 못해요. 학교에서 마음껏 놀면 교사들이 우락부락 얼굴을 찡그리며 몽둥이를 휘둘러요. 때로는 손찌검을 하고 퍽 자주 발길질을 해요. 낮밥을 먹은 뒤이든, 50분 수업 뒤 찾아오는 10분 겨를이든, 또 모든 수업을 마친 뒤이든, 우리들은 널따란 운동장에서 흙바람 일으키며 놀고 싶지만, 교사들은 하나같이 윽박지르기만 해요. 내가 국민학교 6학년이던 때 앞반 담임교사는 운동장에서 뛰노는 우리들을 4층 교실 창문에서 내려다보며 “이놈들 집에 안 가고 뭐해! 너희들 내일 시험 봐서 60점 이하이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하고 외쳤어요. “시험 봐서 60점 넘으면 놀아도 되죠?” 하고 맞받아 외치니, “너 누구야!” 하고 더 큰 소리가 튀어나왔어요.


  때리거나 말거나, 윽박지르거나 말거나, 수업과 시험에 가두거나 말거나, 숙제로 어깨를 내리누르거나 말거나, 어찌 되든 놀고 보았습니다. 내가 떠올리는 학교는 ‘넓은 흙땅이 있어 동무들하고 놀기 좋은 데’입니다. 흙땅 말고는 어느 것도 떠올리지 못해요. 시험공부도 시험문제도 시험성적도 떠올리지 못해요. 내 동무들 누구나 다른 어느 것도 떠올리지 못해요. 누가 1등을 했든 10등을 했든 꼴등을 했든, 그때에나 오늘에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무렵 얼마나 실컷 놀았는가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학교에서 어떤 지식을 배웠는가 안 배웠는가 또한 대수롭지 않습니다. 산수이든 자연이든 국어이든 몰라도 돼요. 철학이든 과학이든 역사이든 잊어도 돼요. 함께 삶을 누리는 동무를 떠올리고, 같이 사랑을 꿈꾸던 짝꿍을 되새길 수 있으면 돼요.


- “그래! 너희들 모두 너희가 원하는 게 될 수 있어. 세상을 보는 시각은 주관적이니까.” “그게 뭐예요?” “그 말은 세상을 너희가 원하는 대로 바라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야.” (42쪽)
- “우리는 모두 우리 삶의 전문가이니까, 모두가 자기 이야기의 저자라는 것이죠.” (49쪽)


  윌리엄 에어스 님 글과 라이언 앨릭샌더 태너 님 그림이 어우러진 만화책 《가르친다는 것》(양철북,2012)을 읽습니다. 학교가 학교다울 수 있는 길을 찾는 이야기책이고, 배움이 배움다울 수 있는 자리를 살피는 이야기책입니다. ‘가르침’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어른과 아이가 다 함께 사랑스러운 숨결인 줄 깨닫자고 하는 줄거리를 조곤조곤 펼칩니다.


- “왜 바퀴가 굴러가요?” “모르겠는데! 같이 알아보자.” (133쪽)


  함께 걷는 길입니다. 살아가는 하루란 함께 걷는 길입니다. 어깨동무하며 사랑하는 길입니다. 살아가는 하루란 서로 어깨동무하며 사랑하는 길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들과 어깨동무하며 사랑합니다. 우리 식구는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하고 어깨동무하며 사랑합니다. 햇볕은 들판을 사랑합니다. 바람은 냇물을 사랑합니다. 숲은 벌레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아끼며 좋아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삶을 일구면서 따사로운 마음으로 믿음을 키웁니다.


  대한민국 수도가 어디인가는 몰라도 돼요.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지 몰라도 돼요. 국보 1호나 보물 1호가 무엇인가 몰라도 돼요. 대통령 이름이든 군수 이름이든 몰라도 돼요. 내 어머니 이름을 한자로 적을 줄 몰라도 돼요. 내 생일이 언제인가 몰라도 돼요. 다만 하나, 오늘 하루 살아가며 누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야지요. 사랑을 마음껏 누리며 북돋우는 꿈이 어떠한가 알아야지요.


  사랑을 알면서 꿈을 알아요. 꿈을 알면서 삶을 알아요. 삶을 알면서 사람을 알고, 사람을 알면서 뭇목숨에 깃든 숨결을 알아요. 학교, 이른바 배움터란 삶터입니다. 삶터란 쉼터입니다. 쉼터란 놀이터입니다. 놀이터란 일터입니다. 일터란 꿈터입니다. 꿈터란 사랑터입니다. 사랑터란 믿음터요, 믿음터란 숲터예요. (4345.10.13.흙.ㅎㄲㅅㄱ)

 


― 가르친다는 것 (윌리엄 에어스 글,라이언 앨릭샌더 태너 그림,홍한별 옮김,양철북 펴냄,2012.9.25./9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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