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수도원 민음의 시 100
고진하 지음 / 민음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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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이 나한테 온다
[시를 노래하는 시 22] 고진하, 《얼음수도원》

 


- 책이름 : 얼음수도원
- 글 : 고진하
- 펴낸곳 : 민음사 (2001.4.9.)
- 책값 : 5500원

 


  서울에서는 먹을거리가 지나치게 많아서, 서울에서 살아가다 보면 다들 무언가를 크게 잃어버려요. 그런데 서울에만 먹을거리가 지나치게 많지는 않아요. 부산도 인천도 광주도 먹을거리가 지나치게 많아요. 돈 얼마 치르면 어디에서나 숱한 먹을거리가 내 앞에 놓여요.


  서울사람은 손에 흙 한 줌 안 묻히고도 밥을 먹어요. 부산사람은 손에 핏방울 하나 안 묻히고도 고기를 먹어요. 인천사람은 손에 바닷물 한 방울 안 묻히고도 물고기를 먹어요. 광주사람은 손에 가시 한 번 안 박히고도 포도랑 능금이랑 대추랑 밤이랑 맘대로 먹어요.


  모두들 손에 아무것 안 묻히면서 배만 불러요. 모두들 손에 무엇을 들고 살아가는가를 돌아보지 않고 잔뜩 먹어요. 이러면서 밥쓰레기가 잔뜩 나와요. 여느 밥집에서도, 여느 살림집에서도, 여느 학교나 기관 급식실에서도, 온통 밥쓰레기예요.


  밥쓰레기가 지나치게 많이 나오니까, 따로 밥쓰레기를 건사하는 공장이 서야 해요. 밥쓰레기가 해마다 어마어마하게 나온다 하는 한국인데, 정작 한국 ‘식량자급율’은 20%를 웃돌까 말까 해요. 게다가 20%라는 숫자도 쌀 하나 때문이지, 다른 모든 먹을거리를 헤아리면 한국이라는 나라 식량자급율은 1%도 안 된다고 할 만해요.


.. 아침마다 산을 오르내리는 나의 / 산책은, / 산이라는 책을 읽는 일이다. / 손과 발과 가슴이 흥건히 땀으로 젖고 / 높은 머리에 이슬과 안개와 구름의 관(冠)을 쓰는 / 색다른 독서 경험이다 ..  (꽃뱀 화석)


  무언가 느끼는가요. 무언가 일그러진 삶을 느끼는가요. 스스로 엉터리로 살아가는 줄 무언가 느끼는가요. 재벌 우두머리나 관료 몇 사람이나 정치꾼 아무개가 엉터리라는 소리가 아닌, 바로 여느 사람이라 하는 ‘평범한 사람’ ‘보통 사람’ ‘일반 시민’이야말로 엉터리로 살아가기에 이 나라가 엉터리로 굴러가는 줄 조금이나마 느끼는가요.


  대통령 한 사람이 내놓는 밥쓰레기는 아주 작아요. 정치꾼 삼백 사람이 내놓는 밥쓰레기는 조금 많겠지요. 공무원 수십만이 내놓는 밥쓰레기는 훨씬 많겠지요. 그런데, 모든 밥쓰레기 가운데 가장 많은 부피는 바로 서울에서 나와요. 다음으로 부산이요, 다음으로 대구일 테고, 고양이나 성남이나 용인에서도 엄청나게 쏟아지겠지요.


  시골에는 밥쓰레기가 없어요. 짐승이 함께 먹는 밥이에요. 밥쓰레기가 있는 시골은 없어요. 먹고 남으면 흙으로 돌려보내요. 거름이 되니까 흙이 먹는 밥이 돼요.


  밥을 먹은 사람이 누는 똥오줌도 서울에서는 몽땅 쓰레기예요. 이른바 ‘똥쓰레기’쯤 될까요. 서울 한 곳에서 나오는 똥쓰레기는 얼마나 많을까요. 부산이랑 대구랑 인천이랑 대전이랑 울산에서 나오는 똥쓰레기는 또 얼마나 많을까요.


  시골에는 똥쓰레기가 없어요. 요사이는 몇 군데를 빼놓고 화학농사를 짓기에 똥거름을 잘 안 쓴다지만, 시골에서는 똥오줌만큼 훌륭한 거름이 없어요.


.. 바짝 말라붙은 섬진강, / 움푹움푹 패인 몇 개의 웅덩이에 / 고인 물이 썩고 있다. / 바위도 자갈들도 썩는지 거무튀튀하다. / 이름뿐인 강, 그렇지만 / 이름 그대로 나그네인 나는 / 정처 없는 이 발길을 멈추지 못한다 ..  (토지문학공원 5)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서울로 가면서 시골살이가 무너져요. 그런데,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이는 서울은 사람살이가 일어서나요.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하는 말은 누가 지었을까요. 이런 말은 어떤 꿍꿍이로 지었을까요.


  사람들 잔뜩 모인 서울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사람살이를 이루는가 궁금해요. 사람이 지나치게 모인 나머지, 서로 금을 긋지 않나 궁금해요. 참말 그렇잖아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입으로는 외치지만, 정작 서울사람 스스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금을 그어요. 그런데, 정규직·비정규직 금을 긋기 앞서 장애인·비장애인 금을 그었어요. 장애인·비장애인 금을 긋기 앞서는 대졸자·고졸자·무학자 금을 그었어요. 요사이는 얼굴이랑 몸매로도 금을 그어요. 또, 은행계좌 크기로도 금을 그어요. 자가용 크기로도 금을 긋잖아요.


  모든 사람을 끌어들이는 서울이라 하는데, 정작 사람을 끌여들여서 하는 짓이란,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 삶에 허덕이도록 내모는 짓으로만 보여요. 왜 서로 다투어야 하나요. 왜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 하나요. 왜 등수와 시험이 있어야 하나요. 왜 서로 겨루고 서로 해코지하고 서로 미워해야 하나요.


  진보도 보수도 부질없어요. 아름다이 살아갈 꿈을 키워야 할 뿐이에요. 거지한테 동냥을 하면서 “이봐, 자네 진보인가? 보수인가?” 하고 물어 보나요. 배고픈 이한테 밥 한 그릇 나누어 줄 적에 “이보게, 자네 대통령 누구를 뽑을 텐가?” 하고 물어 보나요. 예배당에서 떨꺼둥이한테 밥 한 그릇 나누어 주는 자리에서조차 ‘진보와 보수’ 금은 안 그어요. 다만, 몇몇 예배당에서는 예배를 보아야 밥을 준다 하지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누구한테나 밥을 주는걸요. 떨꺼둥이 아닌 사람한테도 밥을 주는걸요. 당신이 진보라면 보수한테는 밥 한 톨 안 줄 생각인가요? 당신이 보수라면 진보한테는 10원 한 닢 안 줄 생각인가요?


.. 수도원보다 오래된 늙은 측백나무, / 한쪽 허파를 떼낸 사람처럼 서 있다 ..  (낙타무릎의 사랑 1, 피정 일기)


  어버이는 누구나 열 손가락이 다 아파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을 턱이 없어요. 팔을 잘라 봐요. 안 아픈가요. 다리를 잘라 봐요. 걸을 수 있나요. 백 마리 양이 있을 때에 한 마리 양이 길을 잃었으면,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야 해요. 아흔아홉 마리를 건사한다고 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양 한 마리를 내동댕이치면, 앞으로는 아흔아홉 마리에서 또 한 마리가 길을 잃을 테고, 아흔여덟 마리에서 다시 또 한 마리가 길을 잃을 테니까요. 모든 양을 골고루 사랑하고 아끼는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야 해요. 아름답게 살려고 해야 아름다웁거든요.


  벚꽃이 아름다우면 매화꽃도 아름답겠지요. 장미꽃이 예쁘면 감꽃도 예쁘겠지요. 철쭉꽃이 어여쁘면 부추꽃도 어여쁘겠지요. 모든 꽃은 저마다 곱게 빛나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맑게 빛나요.


  그런데, 서울이든 부산이든, 이 땅에서 도시라 하는 곳에서는 어떠한 사람도 맑게 빛나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안 빛날 만한 사람이란 없어요. 안 고운 꽃이 없고, 안 맑은 사람이 없어요. 그러나, 서울은 너무 커진 나머지, 서울 스스로 아름다운 사랑을 버렸어요. 부산은 지나치게 커진 탓에, 부산 스스로 아름다운 꿈을 버렸어요.


  돈을 번대서 살아갈 수 있지 않아요. 사랑을 나누어야 살아갈 수 있어요. 큰 아파트를 한 채 장만한대서 느긋하게 지낼 수 있지 않아요. 꿈을 꾸어야 너그러이 지낼 수 있어요.


  사랑을 먹으며 자라는 아이들이듯, 사랑을 나누며 활짝 웃는 어른들이에요. 사랑을 꽃피우며 크는 아이들이듯, 사랑을 품앗이처럼 나누며 어깨동무하는 어른들이에요.


.. 집에 돌아와 신발 끈을 풀어도 내 / 산책은 끝나지 않습니다 / 하루가 천년 같은 나의 하루는 / 이렇게 깊습니다 ..  (이렇게 깊습니다)


  모든 책이 나한테 옵니다. 종이책이 나한테 오고, 삶책이 나한테 오며, 사랑책이 나한테 옵니다. 아이들을 보살피는 동안 아이들 조그마한 손길을 타고 콩닥콩닥 뛰는 숨소리가 나한테 옵니다. 이 어여쁜 ‘어린이책’이라고는! 들길을 거닐다 유채풀 한 포기 살며시 뜯어 입에 넣고 냠냠 씹습니다. 유채잎을 타고 봄기운 여름기운 가을기운 살그마니 스며듭니다. 이 어여쁜 ‘풀책’이라고는!


  파란 하늘 올려다보면서 하늘책을 누립니다. 초롱초롱 빛나는 별을 바라보면서 별책을 누립니다. 살가운 동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야기책을 누립니다. 밥을 지으며 밥책을 누리고, 빨래를 하며 빨래책을 누려요. 온통 책입니다. 온통 사랑이요, 온통 꿈입니다.


.. 뚝, 뚝, 꺾어다 찐 옥수수마다 통통한 벌레들이 / 둥지를 틀고 살았던 흔적이 / 꺼뭇꺼뭇하다 / 나는 마음놓고 옥수수를 뜯어먹는다 ..  (나는 마음놓고 하모니카를 분다)


  시집 하나 펼칩니다. 고진하 님이 쓴 《얼음수도원》(민음사,2001)입니다. 왜 얼음수도원일까 궁금하지만, 고진하 님 스스로 생각하며 사랑하고 살아가는 꿈이 ‘얼음수도원’이니까 이러한 이름을 붙여 이러한 싯말을 길어올리는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얼음을 빗대어 사랑을 말할는지 모르고, 수도원을 빗대어 책을 말할는지 몰라요. 어머니 삶을 돌아보며 수도원을 헤아릴 수 있고, 잎사귀 하나 바라보며 얼음을 떠올릴 수 있어요.


.. 뜸뜨는 밥솥 곁에서 평생을 사신 어머니, / 밥 냄새는 구수하다 ..  (85쪽)


  스스로 찾는 삶이고, 스스로 찾는 넋이며, 스스로 찾는 책입니다. 스스로 찾는 사랑이고, 스스로 찾는 말이며, 스스로 찾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읽는 책은 ‘내가 읽는 책’입니다. 나는 ‘추천도서’를 읽지 않습니다. 나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읽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할 책’을 읽습니다.

  내가 사랑할 책이란 ‘백만 사람이 읽었다는 책’일 수 있고, ‘백 사람조차 안 읽고 사라진 책’일 수 있습니다. 어느 책이든 나는 나 스스로 사랑할 만한 책을 찾아서 즐겁게 읽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할 책을 읽으면서 내 가슴속에서 사랑 한 줄기 샘솟도록 이끕니다.


  내 삶은 내가 누립니다. 남이 내 삶을 누리지 않습니다. 내 아이들 삶 또한 내 아이들이 누리지 내가 누리지 않습니다. 내 삶은 내가 누리지 내 어버이가 누려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바라보고 싶기에 하늘을 날아가는 새를 바라봅니다. 스스로 마주하고 싶기에 아이들 상긋 웃는 얼굴을 마주합니다. 스스로 즐기고 싶기에 늦가을에도 찬바람 맞으면서 들길을 아이들이랑 자전거로 달립니다.


.. 비에 젖어도 푸른 잎새엔, / 비의 지문이 남지 않을 것이다 ..  (뻐꾸기의 지문)


  서울에 깃든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밥쓰레기로 만들지 않으면서 돈 아닌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때에는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부산에 보금자리 마련한 사람들이 손수 흙을 만지며 푸성귀 몇 가지를 거둘 수 있을 때에 사람살이가 얼마나 예쁘게 거듭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총칼을 든 혁명으로도 나라를 바꾸겠다면 바꾸겠지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뽑는 일로도 나라를 고치겠다면 고치겠지요.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이 나라를 바꾸고 이 마을을 고치고 싶어, 내 삶부터 내 손으로 가다듬습니다. 멧새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시를 읽습니다. 가을바람 살랑이는 보드라운 결을 느끼면서 밥을 짓습니다. 아이들 씻기고 나서 아이들 옷가지를 복복 빨아 풀벌레 노랫마디 읊으며 빨래를 넙니다.


.. 펼쳐 읽지 않고 품에 안고만 있어도 좋은 책이 있다 한다. // 그런 품을 지닌 이가 / 지금은 바다를 안고 있다 ..  (그런 품)


  모든 책이 나한테 옵니다. 모든 그리움이 나한테 옵니다. 모든 사랑이 나한테 옵니다. 모든 이야기가, 모든 꿈이, 모든 믿음이, 모든 노랫가락이, 모든 손길이 나한테 천천히 다가옵니다.


  하늘은 파랗고 들판은 누렇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들면 하늘은 새삼스레 파랗게 빛날 테며 들판은 푸르게 달라지겠지요.


  숲에서 나무가 자라고, 바다에서 물고기가 헤엄칩니다. 하늘을 나는 제비가 저 먼 바다를 가로질러 우리 집 처마로 찾아들 테고, 옛 보금자리를 손질해서 새로운 새끼를 낳겠지요. 새로운 새끼는 무럭무럭 자라는 우리 아이들 머리 위에서 노래를 부를 테고, 햇살은 따사롭게 온누리를 감싸겠지요. (4345.11.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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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재미

 


  밥을 먹으면서 밥이 맛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밥맛이 어떠한가는 느낀다. 바람을 쐬면서 바람이 시원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바람맛이 어떠한가는 느낀다. 물을 마시면서 물이 싱그럽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물맛이 어떠한가는 느낀다.


  문득 돌아보면, 어느새 나는 ‘좋다 싫다’라든지 ‘반갑다 나쁘다’ 같은 말을 아예 안 하면서 살아간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왜 나는 이런 말을 안 할까. 참말 이런 말은 할 일이나 까닭이 없어서일까.


  글이 좋아서 글을 쓰지 않는다. 사진이 좋아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 더 말하자면, 아이들이 좋아서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다. 한 걸음 나아가면 삶이 좋아 살아가지 않는다. 좋아서 하거나 나빠서 안 한다든지, 좋아서 찾아나서거나 싫어서 등돌린다든지 하는 적이 없다. 그저 누리면서 살아간다.


  글을 쓰는 재미란 무엇인가. 살아가는 재미가 글을 쓰는 재미가 될까. 삶을 누리는 재미가 글을 쓰는 재미라 할 만할까.


  여름 더위가 싫거나 겨울 추위가 싫지 않다. 모두 나한테 찾아오는 선물이자 꿈이다. 여름에는 겨울을 떠올리고 겨울에는 여름을 떠올리는가? 글쎄, 아니라고 본다. 여름에는 오직 여름을 떠올리고, 겨울에는 오로지 겨울을 떠올린다. 글을 쓸 적에는 오직 글을 생각한다. 밥을 지을 적에는 오직 밥을 생각한다. 아이들을 재우거나 아이들과 놀 적에는 오직 아이들을 생각한다.


  그러네. 마실을 할 적에는 마실을 생각할 뿐이다. 자전거를 탈 적에는 자전거를 생각할 뿐이다. 아이들과 바다에 가면 ‘아이들과 바다에 가는 삶’만 생각한다. 다른 것을 생각할 일이나 까닭이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여러 날 마실을 하면서 ‘우리 집 마당에 풀이 얼마나 더 돋을까’를 생각할 일이 없다. 나는 오직 오늘 내 자리를 생각하며 누릴 뿐이다.


  그러면 내 삶은 아름다운가. 아름답다. 왜 아름다운가. 내가 누리는 삶이기에 아름답다. 무엇이 아름다운가. 아침을 느끼고 저녁을 느끼며 햇살을 받아먹고 물을 들이켜는 하루가 아름답다. 아이들이 예쁜가. 예쁘면 어떻게 예쁜가. 아이들은 저마다 저희 빛을 실컷 뽐내면서 뒹구는 삶이 예쁘다. 그러니까, 나는 이 모든 삶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글을 쓴다. 내가 쓰는 글은 오직 내 삶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오직 내가 누리며 즐기는 이야기이다. 다른 사람은 어떠한가를 알 까닭이 없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필 까닭이 없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 샘솟는 꿈과 사랑을 읽는다. 내가 꽃피우는 꿈을 생각하고, 내가 즐기는 사랑을 헤아린다.


  코를 훌쩍이는 아이를 바라본다. 콧물이 주룩 흐른다. 천으로 톡톡 문지르며 닦는다. 작은아이는 코풀기를 아직 모르고, 큰아이는 혼자서 코풀기를 할 줄 안다. 아이들은 코가 흘러도 흐르는 대로 논다. 아이들은 놀이를 생각하지 콧물을 생각하지 않으니까. 아이들은 마음껏 뛰노는 삶을 생각한다. 아이들은 어떤 옷차림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구멍난 옷이면 어떻고 가시내 옷을 사내가 걸치면 어떠한가. 나는 나를 바라보고 느낄 뿐이다. 민들레가 부추를 흉내내는 일이란 없다. 후박나무가 동백나무를 흉내내는 일이란 없다. 비둘기가 까치를 흉내내는 일이란 없다. 사마귀가 개미를 흉내내는 일이란 없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 눈치를 살피며 흉내를 내거나 따르는 일이란 얼마나 덧없고 형편없으며 바보스러운데다가 끔찍한 짓일까.


  내가 학교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공무원 달삯쟁이 노릇이 부질없다고 여기는 까닭은 이런 생각에 밑뿌리를 둔다. 온갖 나무가 저마다 흐드러질 때에 숲이다. 온갖 아이들이 저마다 흐드러질 때에 배움터이다. 그런데, 오늘날 도시에 있는 ‘공원’은 어떠한가. 몇 가지 나무와 꽃과 풀만 돋도록 하고, 나머지 나무와 꽃과 풀은 무시무시하게 베어서 죽인다. 게다가 공원에 살아남은 나무는 끝없이 나뭇가지가 잘려야 한다.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어떠한가.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똑같은 차림새와 얼굴을 한다. 더군다나 다 다른 아이들 머릿속에 다 똑같은 시험공부 지식을 처넣고야 만다. 다 다른 아이들이라고 느끼기 어렵다. 다 똑같은 아이들이 가슴에 붙이는 이름표에만 다 달라 보이는 이름을 가질 뿐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아 학교에 보내는 어버이 가운데 이 끔찍한 굴레를 느끼는 이는 얼마나 되는가. 이녁 사랑스러운 아이가 노예처럼, 기계처럼, 붕어빵처럼, 네모반듯한 성냥갑처럼, 다람쥐 쳇바퀴처럼, 아주 판박이가 되어 생각날개가 꺾이는데, 이 슬프며 안쓰러운 모습을 알아보는 어버이는 몇이나 되는가.


  나는 내 글을 쓴다. 나는 내 글을 쓸 뿐, 옆지기 글이나 아이들 글조차 쓰지 못한다. 나는 내 글을 쓰지, 내가 박경리 글이나 황순원 글을 쓸 일이란 없다.


  글을 읽으면 글쓴이 삶을 읽는다. 어느 글이건 글쓴이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글을 읽으면서 글쓴이 삶을 읽지 못한다면, 이러한 글읽기로는 ‘내 삶읽기’도 못한다 할 만하다. 글 아닌 말을 읽기도 한다. 사람들이 저마다 뇌까리는 말을 들으며 이녁 삶을 읽을 만하다. 말 아닌 낯빛을 읽기도 한다. 낯빛으로도 저마다 어떤 삶인가 읽을 만하다. 누군가는 손금을 읽겠지. 누군가는 뼈마디를 읽겠지. 누군가는 눈빛을 읽겠지. 그리고, 누군가는 흙을 읽는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는 흙을 흘끔 쳐다보기만 해도 어떠한 흙인가를 곧장 알아챈다. 손으로 만지면 훨씬 더 많이 읽어낸다. 씨앗을 손으로 만지며 어떠한 씨앗인가를 느낀다.


  읽으려면 삶을 읽어야지, 껍데기를 읽을 노릇이 아니다. 꽃이름 풀이름 나무이름 몰라도 된다. 꽃 풀 나무가 저마다 어떤 삶이며 사랑인가를 읽으면 된다. 유적지나 관광지에 가서 ‘저것은 언제 지었고, 이것에는 어떤 옛이야기가 얽혔고’ 하는 말을 들을 까닭이 없다. 이른바 ‘문화유산답사’란 가장 못난 나들이요 가장 어리석은 톱니바퀴질이라 할 만하다. 이 땅 모든 곳이 문화유산인데, 굳이 문화유산답사를 할 일이 있을까. 문화유산 지식을 퍼뜨리거나 심을 까닭이 있는가. 아니, 나부터 스스로 내 삶을 읽어 내가 누리는 기쁨과 웃음과 사랑과 꿈을 곱게 펼치면 될 노릇인데, 왜 자꾸 딴 데를 쳐다보려고 할까.


  쓰려면 삶을 쓸 노릇이다. 글을 쓰려면 삶을 쓸 노릇이다. 나는 사진도 찍는 사람이라서, 내가 살아가는 나날을 사진으로 찍는다. 내 사진에는 아이들 모습이 곧잘 담기지만, ‘모습’은 아이들이로되, 바로 내가 누리는 삶이다.


  글을 쓰는 재미가 있을까. 글을 쓰는 즐거움이 있을까. 있고 없고 같은 금긋기부터 없는 셈일 텐데, 글은 글이기에 쓰고, 삶은 삶이기에 누린다. (4345.11.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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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빛, 책은 밝은 데에서 읽자

 


  내 눈은 나쁘지 않았다. 국민학교를 다닐 적에 내 눈은 1.5였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고부터 학교에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시키는데다가 운동장에서 뛰놀 겨를이 몽땅 사라지고 보니, 차츰 내 눈이 나빠진다. 빽빽한 감옥과 같은 교실에서 형광등 불빛만 받으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시달리기를 여섯 해 하면서 내 눈은 아주 나빠진다.


  어떤 아이는 이런 곳에서 지내더라도 안경을 안 쓰고 눈알이 똘망똘망 살아남기도 한다. 용한 노릇일까. 집에서나마 눈을 쉬었기 때문에 더 나빠지지는 않았을까.


  곰곰이 돌아보면, 나는 새벽버스나 밤버스를 타고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에도 책을 읽었다. 교과서 아닌 책을 읽으려고 바둥거리며 살았다. 어두운 새벽녘 버스 등불이나 길가에 켜진 등불에 기대어 책을 읽었기에 눈이 나빠졌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눈뿐 아니라 몸과 마음 모두 차가운 시멘트교실에서 지나치게 짓눌렸기에 몸뚱이와 마음 모두 깊이 아프면서 고달팠구나 싶다.

  사내라면 모두 끌려가는 군대에서는 강원도 양구 비무장지대에 있었으니 눈길이 확 트이는 멋스러운 터전이라서 눈이 맑아진다고 여길 만한데, 군대 내무반은 학교 교실이나 감옥이랑 똑같다. 어느 모로 보면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다. 더 어둡고 더 무서우며 더 끔찍하달 만하다. 늘 죽음이 감도는 군대에서 나 스스로 삶을 얼마나 생각했을까. 아니, 모든 것이 온통 죽음인 곳에서 ‘그래,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고 생각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다섯 살 큰아이가 그림책을 펼칠 때면 으레 가만히 바라본다. 넌지시 한 마디 한다. “벼리야, 책을 보려면 밝은 데에서 보자. 몸을 밝은 곳으로 돌려서 책을 보자. 엎드려서 읽어도 좋고 누워서 읽어도 좋아. 다만 밝은 데에서 보면 돼.”


  밝은 빛은 밝은 빛이다. 밝은 빛에 수많은 이야기가 감돌며 찾아든다. 가을날 밝은 빛살을 느낀다. 새롭게 열린 아침에 환하게 흐드러지는 빛줄기를 느낀다. 햇빛은 내 가슴속 빛을 깨운다. 햇빛은 아이들 가슴속 빛을 함께 깨운다. 햇빛은 종이책에 서린 나무 기운을 살그마니 건드리면서 책빛으로 다시 태어난다. (4345.11.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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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루비아 책읽기

 


  작은아이가 잠들어 큰아이만 데리고 자전거마실을 하다가 이웃마을로 살짝 에돌아 집으로 돌아오던 날, 맞바람이 너무 모질어 도무지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기에 마을 안쪽길을 달리며 바람을 긋는데, 이웃마을 끝집 시멘트벽 한켠에 사루비아가 소담스레 꽃을 피운 모습을 본다. 사루비아가 이맘때쯤 꽃을 피우던가? 아무튼 반갑다고 인사하며 자전거를 세운다. 큰아이가 왜 자전거 세우냐고 묻기에 빙긋 웃고는, 사루비아 꽃술을 석 장 따서 둘을 아이한테 내밀고 하나는 내가 쪽 빤다. 아이더러 빨아 보라고 한 다음, 나는 꽃술을 잘근잘근 씹어 본다. 아이는 처음에는 못미덥다 하는 눈치였으나, 이내 나더러 “더 줘.” 하고 말한다. 더 뽑아서 내민다. 또 “더 줘.” 하고 얘기하지만, 우리 집 꽃도 아니니 더 뽑을 수 없기에, 이제 그만 먹고 집으로 가자고 얘기한다.


  어릴 적부터 사루비아 꽃술은 많이 뽑아서 빨았는데, 씹어 보기는 처음이다. 꽃술을 빨아 단물이 나오면 꽃술도 먹을 만하지 싶어 씹는데, 처음에는 달달하다가 나중에는 꽤 쓴맛이 돈다. 먹으면 안 되는 꽃술인가? 그래도 다른 푸성귀랑 섞어서 밥이랑 함께 먹으면 이런 쓴맛은 없으리라 느낀다. 외려, 밥을 먹을 때에는 쓴맛 나물도 즐거울 수 있겠지. 씀바귀가 쓴맛인데에도 나물로는 즐겨먹으니까.


  다시 모진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맨 처음 누가 사루비아 꽃술을 쪽 빨아먹는 맛을 알았을까. 사루비아 꽃술은 왜 뽕 하고 뽑아서 쪽 빨아서 먹도록 생겼을까. 다른 짐승은 사루비아 꽃술을 어떻게 먹을까. 그냥 통째로 우걱우걱 씹어서 먹으며 단맛도 즐기고 쓴맛도 즐길까. 벌이나 나비는 사루비아 단물을 어떻게 빨아먹을까. 꽃술을 잡아뽑지 않더라도 단물을 먹을 수 있을까. (4345.11.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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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11.17.
 : 찬바람 싱싱 자전거

 


- 늦가을 찬바람이 싱싱 분다. 그야말로 늦가을이로구나 싶다. 인천에서 살 적에는 이런 바람을 보지 못했고, 충청북도 멧골집에서 살 적에도 이런 바람을 만나지 못했다.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은 바다와 가깝다. 저 먼 태평양부터 부는 바람이 맨 먼저 닿는다 할 텐데, 겨울 추위가 다가오니 겨울나기를 슬기롭게 하라는 바람이지 싶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될 때부터는 바람이 조용하고, 거센 비바람이 올 때를 빼고는 이른가을까지 바람이 거의 없다. 이동안 아이들을 수레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기에 더없이 좋다. 그렇다고 찬바람 싱싱 부는 철에 아이들하고 자전거마실을 안 하지는 않는다. 이제 아이들도 나도 찬바람 싱싱 맞으며 자전거를 달린다.

 

- 누군가 나한테 선물로 준 아주 두꺼운 겉옷을 ‘자전거 수레 덮개’처럼 쓰기로 한다. 나로서는 너무 두꺼운 겉옷이라 입을 일이 없는데, 아이들더러 덮으라 하기에 걸맞구나 싶다. 큰 가방을 짊어지고 사진기를 손에 쥐며 자전거를 타기도 하는 사람한테는 두꺼운 겉옷이 아주 거추장스럽다. 얇은 옷을 여러 벌 껴입기만 할 뿐, 두꺼운 옷은 입을 수 없다. 두꺼운 옷을 입으면 따뜻하다지만 몸이 굼뜰밖에 없다. 늘 몸을 많이 움직이며 지내야 하니 나는 두꺼운 옷을 안 입는다. 더구나 자전거를 타니 한겨울에도 아주 춥지 않으면 반바지를 입는다.

 

- 면소재지까지만 다녀오기로 한다. 마을 들판은 모두 텅 비었다. 따지고 보면 ‘텅 비었다’는 말은 옳지 않다만, 들판을 가득 채우던 나락이 모두 사라졌다. 누렇게 익은 나락이 사라진 가을들인데, 나락이 있을 때와 엇비슷한 누런 빛이다. 나락을 베며 떨어진 볏줄기가 논마다 가득 깔렸기에 누런 빛이다. 일찌감치 나락을 벤 빈 들에는 푸른 빛이 감돈다. 마늘을 심은 데에서는 어느덧 푸른 싹이 돋고, 유채씨를 뿌린 데에서도 어느새 잘디잔 싹이 돋는다. 아직 누런 빈 논이 있으며, 차츰 푸릇푸릇하게 바뀌는 빈 논이 있다. 어느 논은 유채싹도 마늘싹도 아닌 여느 들풀 싹이 돋겠지. 사람들은 유채싹이 무럭무럭 자라서 노란 꽃송이를 터뜨리면 예쁘다고들 말하는데, 내가 보기로는 유채꽃이 한들거리는 모습만 예쁘지 않다. 여느 들풀이 서로 흐드러지면서 나부끼는 모습도 매우 예쁘다. 아니, 온갖 풀이 저마다 푸르게 돋아 활짝 웃는 들판이 가장 들다우면서 예쁘다고 느낀다.

 

- 숲은 숲이기에 숲이다. 이 나무를 심는다거나 저 나무를 심기에 예쁜 숲이 아니다. 숲에서 자라는 풀은 저마다 스스로 씨앗을 날려 스스로 돋는다. 어떤 사람이 따로 심는다고 해서 이 풀만 자란다거나 저 풀만 돋지 않는다. 풀은 스스로 숲을 이룬다. 나무 또한 스스로 숲을 이룬다. 어떤 사람이 따로 어린나무를 심거나 큰나무를 옮겨서 심기에 숲을 이루지 않는다. 풀도 나무도 저마다 스스로 씨앗을 틔워서 숲을 이룬다.

 

- 사람살이란 숲살이하고 서로 매한가지라고 느낀다. 저마다 스스로 일구는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저마다 스스로 예쁘게 빛나는 삶이 아닐까. 나는 나대로 빛나는 예쁜 삶이요, 우리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대로 빛나는 예쁜 삶일 테지.

 

- 면소재지를 찍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수레 비닐덮개를 내린다. 아이들이 몹시 추워 하는구나 싶다. 그래도 자전거를 타며 살짝 나들이를 하니 좋아들 한다. 찬바람을 너무 많이 쐬면 또 재채기질을 할 테니까, 맛보기로만 가볍게 자전거를 달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부랴부랴 저녁을 차려 먹인다. 만화영화 몇 가지 보여주고 두 아이를 재운다.

 

(최종규 . 2012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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