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유령, 용기가 필요해!
나카야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웅진주니어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 무얼 하며 놀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14] 나카야 미와, 《깡통유령, 용기가 필요해》(웅진주니어,2006)

 


  아이들 어머니는 할 공부가 있어 엿새 동안 집을 비웁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공부하기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는 집에서도 공부할 틈을 놔주지 않거든요. 다른 데 쳐다보지 말고 저희를 쳐다보라고 부릅니다. 아버지 혼자 시골집에서 두 아이를 돌보며 집일을 합니다.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합니다. 방바닥을 훔치고 이불을 털어 말립니다. 설거지를 하고는 다 마른 빨래를 걷습니다. 똥 눈 아이 밑을 씻기고, 똥바지를 빨며, 아이들을 씻깁니다. 아이들이랑 마을 들판이라도 쉬엄쉬엄 걷자고 생각하지만, 좀처럼 짬을 못 냅니다. 이제 이럭저럭 아침일과 낮일을 마쳐서 홀가분히 나들이를 할라치면 작은아이가 코코 잠듭니다. 작은아이를 재우고 큰아이하고 놀다가 끝방 문짝 경첩을 떼어 새로 달다가는, 이윽고 큰아이도 졸음이 쏟아져 무릎에 누여 코코 재웁니다. 큰아이를 재울 즈음 작은아이가 잠에서 깹니다. 이제는 다시 작은아이하고 둘이 이리저리 같이 움직입니다. 작은아이도 큰아이처럼 아버지 곁을 1미터조차 안 떨어지려 합니다. 오줌을 누든 응가를 누든, 두 아이는 저마다 아버지 곁 1미터 안팎에서 놀거나 뒹굽니다.


  둘이 나란히 잠들고, 둘이 나란히 뛰놀며, 둘이 나란히 쉬다가, 둘이 나란히 밥을 먹으면 참으로 수월할 텐데 생각합니다. 아니, 둘이 나란히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야, 두 아이 손을 하나씩 잡고 들마실을 하거나 자전거마실을 하지요. 하나는 까무룩 잠들면, 하나만 데리고 다닐 수 없고, 자는 아이를 늦가을 찬바람 맞히며 들마실을 다닐 수 없어요.


  끝방 문짝 경첩을 고친 김에 끝방 창호종이문에 흰천을 풀을 발라 붙입니다. 찬바람 부는데 잘 붙을까 걱정했지만, 흰천은 잘 달라붙습니다. 이만큼 하면 찬바람이 덜 들어오리라 생각합니다. 아예 꽁꽁 틀어막으면 찬바람이 아예 안 들어올 텐데, 꽁꽁 틀어막으면 바람이 못 드나드니 바람갈이가 안 돼요. 찬바람이 좀 들어오더라도 바람갈이를 할 틈을 둡니다. 다만, 우리 집 틈은 너무 많아 바람갈이가 아주 잘 되지요.


  오늘도 혼자서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들 치다꺼리를 하느라 저녁해가 뉘엿뉘엿 기웁니다. 두 아이가 재미나게 노는 모습도 지켜보고, 두 아이가 소꿉을 사이에 놓고 아웅다웅 다투는 모습도 지켜보며, 큰아이가 삶은달걀 까는 모습도 지켜봅니다. 콧물 줄줄 흘리는 작은 아이를 지켜봅니다. 그림책에 적힌 큼직한 글씨를 읽어 달라는 다섯 살 큰아이는 제 공책에 큰 글씨를 옮겨적어 봅니다. 글씨를 배운다기보다 글씨를 그리는 놀이를 하는 큰아이입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한글을 배우지 않습니다. 아직 아이한테 한글을 가르칠 마음이 없기도 하고, 여섯 살이 되든 일곱 살이 되든, 아이가 글을 가르쳐 달라고 바랄 적에 찬찬히 가르치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때까지는 아이가 궁금해 할 적에 ‘이건 이렇게 읽고, 저건 저렇게 읽어.’ 하고만 알려줍니다.


.. 높은 곳도 아주 무서워해요. “아래를 보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걸.” 겁쟁이에 울보, 행동은 늘 꾸물꾸물. 그래서 겁보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어요 ..  (3쪽)

 


  바람이 붑니다. 늦가을에서 이른겨울로 넘어서는 스산한 바람이 붑니다. 늦가을 첫무렵에는 퍽 따순바람이 불어 겨울 앞두고 퍽 포근하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스산한 바람이 찾아드니 참말 겨울이 곧 닥치겠구나 싶습니다.


  스산한 바람 따라 나무마다 마지막 잎사귀를 떨굽니다. 겨울에도 푸른잎을 고스란히 다는 후박나무와 동백나무는 푸른 숨결을 건사합니다. 소나무와 잣나무도 겨우내 푸른 숨결을 고이 건사할 테지요.


  마당 가장자리와 텃밭에서 아직 푸른 잎사귀 돋우는 들풀도 겨우내 새근새근 겨울잠을 자리라 생각합니다. 모두들 찬바람에 몸을 웅크리며 따숩게 부는 봄바람을 기다리리라 생각해요.


  사람들은 겨울에 겨울잠을 안 잡니다. 겨울이면 집에서 조용히 옹크리기는 하지만, 요즈음 시골에서는 겨울에도 마늘밭을 돌아보고 밀밭이나 보리밭을 살펴봅니다. 옛날 사람들은 겨우내 짚신을 삼든 돗자리를 엮든 부산하게 일손을 놀렸겠지요. 밀린 바느질을 하거나 미룬 길쌈을 했을 테고요. 겨울에 나무하는 사람은 없었을 터이나, 소작농사를 하느라 여느 철에 너무 빠듯하던 이들은 겨울에도 언몸 더 옹크리며 나무를 하러 멧길을 탔으리라 생각해요.


  가을이나 겨울에 아기가 태어나면 이 갓난쟁이 기저귀를 갈고 빨래하느라 퍽 고단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겨울날 시골집에서 기저귀 말리기란 또 얼마나 고단했을까요. 그러나, 이런저런 집일이나 빨래나 살림일이 고단하기만 했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즐거이 맞이하는 일이고, 놀이와 같이 누리던 일이라고 느껴요. 서로가 서로를 달래며 노래를 부릅니다. 일노래를 부르며 즐깁니다. 일이 고되기에 일노래를 부른다 할 테지만, 일노래를 부르는 마음은 고단한 삶을 고단한 모습이 아닌 사랑스러운 삶으로 바꾸어 줍니다. 일노래를 부르고 일얘기를 빚는 나날은 삶을 새로 돌보고 북돋우는 꿈빚기였으리라 느껴요.


  작은 풀집 자그마한 칸에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아이들 모두 모여 복닥거립니다. 할아버지가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머니가 옛이야기에 살을 붙입니다. 아이들은 일손을 거들며 이야기밥을 먹습니다. 낮에는 파란 빛깔 눈부신 하늘을 보고, 밤에는 까만 빛깔 드리운 별빛을 봅니다.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다가올수록 ‘초승달이 저리 밝은 달이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초승달 곁으로 뭇별이 흐릅니다. 뭇별이 흐르는 곁으로 겨울밤을 노래하는 멧새 구성진 가락이 어우러집니다. 삶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이야기가 있습니다. 꿈이 있고, 숲이 있으며, 마음이 있습니다.


.. 겁보는 용기를 내어 ‘유령 깡통’을 열어 보기로 했어요 ..  (7쪽)

 


  나카야 미와 님 그림책 《깡통유령, 용기가 필요해》(웅진주니어,2006)를 읽습니다. 우리 집 다섯 살 큰아이는 이 그림책을 참 자주 펼쳐 읽습니다. 워낙 자주 본 나머지 책이 너덜너덜해지고 맙니다. 다 뜯어질 판입니다.


  뭐가 그리 재미나기에 수없이 되읽을까 싶다가도, 아이 눈썰미로는 더없이 재미나기에 자꾸자꾸 되읽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이 그림책을 장만한 나부터 ‘한 번 읽고는 덮어 두려’ 했다면, 처음부터 장만하지 않습니다. 두고두고 되읽을 만하리라 여기기에 즐거이 장만합니다. 아이는 어버이 마음을 잘 받아들여 이 그림책을 보고 또 보면서 깡통유령 이야기로 빠져듭니다.


  그림책 《깡통유령, 용기가 필요해》에는 겁보 아이가 나옵니다. 겁보라 하니 겁이 많은 아이라 할 텐데, ‘겁’이란 ‘두려움’이나 ‘무서움’을 일컫습니다. 곧, 무언가를 두렵게 여기거나 무섭게 여긴다는 셈입니다. 스스로 겪어 보거나 치러 보아서 두렵게 여기거나 무섭게 여기지는 않아요. 스스로 해 보지 않고서 지레 두렵게 여기거나 무섭게 여겨요.


  깡통유령은 겁보라는 아이한테 이것저것 시킵니다. 겁보라는 아이는 깡통유령과 함께 여러 가지를 처음으로 비로소 겪는데, 막상 겪으면서 생각하니 하나도 두렵지 않고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멋없이 두려움에 떨며 지낸 셈이요, 바보처럼 무서움에 사로잡혀 지낸 셈이에요.


.. “눈을 가려 봐!” “어어어? 생각만 해도 무서웠는데, 해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네!” ..  (21쪽)

 


  아이들은 높은 데에서 가볍게 뛰어내립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든 신나게 달립니다. 넘어져서 까지거나 다칠 때가 있습니다. 팔다리가 부러지는 아이도 있을 테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달립니다. 훨훨 납니다. 물을 보면 물놀이를 하고, 조금 깊다 치면 헤엄놀이를 합니다. 나뭇가지가 보이면 막대기 삼아 새 놀이를 합니다. 돌멩이가 보여도 놀잇감으로 삼아 새 놀이를 즐겨요. 모래 한 줌이 놀잇감이 됩니다. 흙 한 줌이 놀이마당이 됩니다. 줄 하나로 꿈나라를 누빕니다. 종이 한 장으로 꿈누리를 오갑니다.


  우리 무얼 하며 놀까요. 우리 어디에서 놀까요. 아이들은 어디에서 놀 적에 즐거울까요. 어른들은 무얼 하며 놀 적에 즐거운가요.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 많아요.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놀이가 많아요. 생각만 해도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많아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랑 어떤 삶을 함께 일구면서 하루를 빛내고 싶은지, 저마다 곰곰이 생각을 기울일 수 있기를 빌어요. (4345.11.20.불.ㅎㄲㅅㄱ)

 


― 깡통유령, 용기가 필요해 (나카야 미와 글·그림,김난주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6.2.17./7500원)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집 아이들이 나카야 미와 그림책을 아주 좋아해서 아주 너덜너덜해졌기에, 새로 한 권 더 장만할까 하고 살펴보았더니, 지난해와 올해에 새로운 이야기로 그림책이 두 가지 나왔다. 아쉽게도 <깡통 유령> 그림책은 두 권 번역으로 끝났구나 싶은데, 뒷이야기도 더 번역해 주면 좋을 텐데. 다른 그림책은 잘 팔리고 사랑받으니까 <깡통 유령>도 뒷이야기가 번역되기를 손가락 빼물며 기다린다...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도토리 마을의 빵집
나카야 미와 글.그림, 김난주 옮김 / 웅진주니어 / 2012년 9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2년 11월 20일에 저장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림자 남기는 어린이

 


  가을햇살 곱게 받으며 마당에서 노는 사름벼리는 그림자 곱게 뒤로 남기면서 달린다. 빨간 꽃 한 송이 핀 자리로 공을 주으러 간다. 공을 줍고는 즐겁게 휙 던지며 논다. (4345.1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손빨래가 힘들다는 거짓말

 


  손빨래를 늘 하면서 손빨래가 힘들다고 생각하거나 느낀 적은 없다. 그런데, 둘레 사람들은 마치 손빨래가 힘든데 굳이 그 짓을 왜 하느냐고 말하기 일쑤이다. 몸소 손빨래를 해 본 적 없기 때문일까. 손수 손빨래를 한 적은 있으나, 누가 시켜서 억지로 했기 때문일까.


  기계한테 빨래를 맡기면, 기계는 속옷이든 양말이든 겉옷이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기저귀이든 아이 바지이든 아이 웃옷이든 달리 주무르지 않는다. 빨래하는 기계는 모든 옷가지를 똑같이 흔들고 섞으면서 빨고 짠다. 이와 달리, 사람은 모든 옷가지를 다르게 비비고 헹구고 짠다. 사람이 손빨래를 할 적에는 기저귀는 기저귀대로, 겉옷은 겉옷대로, 속옷은 속옷대로 찬찬히 주무르고 비비며 헹군다.


  식구들 옷가지를 날마다 여러 차례 만지작거리며 생각한다. 손빨래란, 손으로 밥을 짓는 일하고 같다. 손으로 밥을 짓는 일이란, 손으로 씨앗을 심어 흙을 돌보는 일하고 같다. 손으로 흙을 돌보는 일이란, 손으로 아이들을 살살 어루만지며 아끼는 일하고 같다.


  나이 스물이 되도록 손빨래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나이 서른이 된대서 손빨래를 할 수 있으리라 느끼지 않는다. 손빨래를 하지 않던 아이들이 걸레를 빨아서 방바닥 훔칠 줄 알리라 느끼지 않는다. 손빨래 한 적 없는 아이들이 혼인을 해서 갓난쟁이를 낳은 다음, 똥기저귀나 똥바지를 어떻게 빨래할까 하고 걱정하거나 갈팡질팡할밖에 없으리라 느낀다.


  식구들 옷가지를 기계한테만 맡겨 빨래할 적에는, 스스로 즐거운 삶을 놓칠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아무런 삶을 못 보여주고 못 가르치며 못 물려주리라 느낀다. 손으로 씨앗을 흙에 심어 먹을거리를 거둔 다음, 손으로 밥을 지어 함께 먹듯이, 손으로 옷가지를 건사한다. 손으로 바느질을 한다. 손으로 빨래를 하고, 손으로 갠다. 손으로 옷을 꺼내어 입는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비질하고, 손으로 서로를 따사로이 어루만지며 사랑한다. (4345.1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머니 없이 아버지하고만 엿새

 


  이제 아이들 어머니가 ‘람타’ 공부를 마치고 오늘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몇 시쯤 시골집에 닿을까. 저녁에 아이들 잠들고서 닿을까. 아무튼 아이들은 어머니 없이 닷새 밤을 자고 엿새째 맞이한다. 어머니 없는 허전함은 두 아이 모두 느끼지만, 작은아이가 훨씬 크게 느끼는구나 싶다. 이럴 때일수록 더 따스하고 살가이 맞이해야 하는데, 아버지 되는 사람은 아이들 칭얼거림을 조금 더 따스하거나 살가이 맞이해 주지 못한다.


  문득문득 내 말투에서 나 스스로 ‘훈육’과 같은 기운을 느낀다. 이런 기운을 느끼면서 생각을 다스린다. 나는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잖니. 그래, 아직 나는 나 스스로 사랑하지 못해서 아이들한테까지 어머니 없는 엿새 동안 ‘훈육’ 같은 말을 쏟아내지 않는가.


  아침놀을 바라본다. 저녁놀을 바라본다. 밤별을 보고 새벽별을 본다. 작은아이는 스물네 시간 아버지 바짓자락 붙잡고 달라붙는다. 똥을 누러 갈 수도 없고, 빨래를 널러 나올 수도 없다. 밥도 겨우겨우 짓는다. 밥하는 곁에서 구경하는 일은 좋으나, 불 옆에서 자꾸 손잡이를 돌리려 하니 쫓고야 만다. 불 곁에서 알짱거리는 작은아이 큰아이한테 마음쓰다가 커다란 냄비 뚜껑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아이들 어머니가 돌아오는 오늘, 옆지기가 오는 때에 맞추어 읍내에 나가 마중을 할까 싶기도 하고, 그냥 마을 언저리에서 마실을 다닐까 싶기도 하다. 밤새 잠을 이루지 않고 아버지 곁에 붙어 아버지도 잠을 못 이루게 하던 작은아이는 새벽 여섯 시 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잠이 든다. 아침 일곱 시를 넘기니 큰아이가 일어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지.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놀아야 할밖에 없고,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밤새 못 이룬 잠을 달게 자도록 곁에서 토닥여야 할 테지. 이번 엿새 동안 작은아이가 젖을 뗄 수 있을까. 어머니가 다시 와도 젖을 안 물고 밥만 먹을 수 있을까. 젖이 없으니 물을 많이 마시고 밥도 바지런히 먹던데, 어찌 보면, 아이들은 개구지게 놀도록 지켜보다가 꽤 배가 고프다 싶을 때에 짠 하고 밥상을 차려야지 싶기도 하다. 스스로 배가 고파 노래노래 부를 때에 마지못해 주는 척하며 밥을 내주어야 다들 맛나게 밥그릇을 비우리라 본다. (4345.1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