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영화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잊지 않고 나중에 보려고 미리 담는다. 예쁜 사람들 예쁜 이야기가 흐른다고 하니, 틀림없이 예쁜 영화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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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여름부터 푸른책(청소년책)을 꾸준하게 펴내면서 한국땅 푸름이와 교사와 어버이한테 ‘삶을 읽는 길동무가 되는 책’을 나누는 ‘양철북’ 출판사가 있다. 아주 작은 일터로 처음 문을 연 뒤, 어느덧 열두 일꾼이 책짓기를 하는 책터가 되었는데, 출판사 대표 조재은 님(47)은 어릴 적 시골에서 감자묻이·밀사리를 하고 땔나무를 하며 고구마 빼때기를 하던 일을 즐겁게 되새긴다. “대밭골에 가서 대를 자르고 사카린 네 동가리 나눠서 타고, 막대기 꽂고 뒤안에 갖다 놓으면 시골이 참말 춥거든요. 대나무가 꽝꽝 얼어서 갈라지는데, 하루 자고 이듬날 소죽 쑬 때 갖다 넣으면 바깥만 떨어지고 안만 남아서 쏙 나오는데, 그게 아이스크림이에요. 얼마나 추운지 볼과 손이 빨간 거야. 그리고 소죽에 손을 담그면 때가 불어서 둥둥 뜨는데 소는 그걸 맛있다고 잘 먹어요.” 하는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는데, 이 같은 이야기를 그림책이나 청소년소설로 빚으면 퍽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2006년부터 인문책을 차근차근 펴내고 푸른책을 나란히 펴내면서 한국땅 사람들한테 ‘삶을 사랑하는 길벗이 되는 책’을 나누는 ‘철수와영희’출판사가 있다. 처음부터 작은 일터로 열었고, 오늘도 작은 일터로 살림을 꾸리는데, 출판사 대표 박정훈 님(44)은 ‘일하는 사람들이 슬기롭게 사랑을 나누면서 생각을 꽃피울 수 있는 책’을 꿈꾼다. 뚜벅뚜벅 걷는 한 걸음이 모여 천 리 길이 되고, 천 리 길이 만 리 길로 이어지면서 이 나라 골골샅샅 아리따운 이야기 살포시 감돌 수 있으리라. 삶은 사랑으로 누리고, 책은 사랑으로 빚는다.

 


  숲사람 이야기 4 - 사랑으로 빚는 책
  즐겁게 책을 빚는 사람들

 


  책 한 권 읽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책을 읽는 사람’ 모습은 차츰 사라지지 않느냐 싶다. 신문에서도 방송에서도 정부에서도 스마트폰이라 하는 손전화 기계를 널리 알리거나 파는 데에 생각을 기울일 뿐이고, 삶을 다루는 책은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초·중·고등학교 교과목은 잔뜩 늘어났고, 대학교 학과는 수없이 생겼다. 그런데, 초·중·고등학교에서나 대학교에서나 교과서와 교재로 지식과 정보를 가르치려 할 뿐, 교과서를 넘는 책이나 교재를 아우르는 책을 밝히지는 않는다.


  교과서와 교재는 ‘온누리를 밝히는 책’ 가운데 알맹이를 간추렸을까.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교과서와 교재만 달달 외우면 슬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교과서로 시험공부를 하고 ‘논술에 도움 될 몇 가지 문학책과 인문책’을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는 굴레로 열두 해를 보낸 다음, 더 커다란 회사나 공공기관에서 연봉을 더 많이 받을 만한 자리를 살피도록 등을 떠미는 대학교 네 해를 보내는 아이들은 마음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까. 오늘날 아이들은 교과서를 읽으며 무엇을 배울까. 오늘날 아이들은 교과서를 살짝 내려놓고 읽는 문학책과 인문책으로 무엇을 느낄까.


  글 한 줄에 서린 넋을 읽으라는 말을 흔히들 읊지만, 정작 제도권 기본교육 열두 해를 거치는 동안, 아이들 스스로 ‘책 한 권 글 한 줄’ 느긋하게 읽으면서 마음 깊이 아로새기도록 풀어놓지 않는다. 글 한 줄을 읽으면서 삶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사랑을 깨우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1년 평균 독서량’은 대수롭지 않다. 노래꾼 ‘싸이’가 한 해에 한 권조차 안 읽는다고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다. 그렇다면, 한 해에 책을 100권이나 1000권쯤 읽는 이들은 얼마나 훌륭하게 삶을 갈고닦는가. 한 달에 책을 10권이나 30권쯤 읽는 이들은 얼마나 아름답게 사랑을 꽃피우는가. 한국에서 똑똑하다는 이들은 얼마나 착하고 참답게 이웃사랑을 하는가. 한국에서 가방끈 길다 하는 이들은 얼마나 어여쁘고 슬기롭게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는가.

 

  책이란 무엇인가


  한 사람은 하루에 책을 몇 권쯤 읽을 수 있을까. 하루에 책 한 권씩 읽을 수 있을까. 여느 책이라 하면 한 권 읽는 데에 너덧 시간이나 대여섯 시간 걸린다고들 말하지만, 책에 따라 다 다르기에, 어느 책은 5분만에 읽을 수 있고, 어느 책은 다섯 해에 걸쳐 읽을 수 있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는 어버이라면, 날마다 그림책 스무 권이나 서른 권씩 읽기도 한다. 같은 그림책 한 권을 하루에도 열 차례나 스무 차례 읽어 주기도 한다.


  아마, 통계에는 ‘어린이책 아이한테 읽히는 어버이’가 날마다 하는 ‘책읽기 부피’까지 담기지 않으리라 본다. 통계에는 안 잡힌다 하지만, 이 나라 숱한 어머니들은 집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참 많이 오래도록 읽는다. 다만, 어머니 스스로 ‘책을 읽는다’고 못 느낄 뿐이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아이들이 읽는 책’으로 잘못 알거나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림책을 쓰거나 동화책을 내는 이는 모두 어른이다. 어른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어린이책을 빚는다. 이 어린이책은 어른들이 책방에서 장만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린다. 그리고, 이 어린이책은 바로 어른들이 ‘먼저 읽’으며 아이한테 읽힐 만한가 살핀다. 어른들은 먼저 한두 번 읽은 뒤, 아이들한테 책을 읽어 준다. 곧, 어느 어린이책이라 하더라도 어른들은 ‘책 한 권을 백 차례쯤은 되읽는다’고 여길 만하다.


  그나저나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모든 어른이 읽는 책이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모든 어른이 느끼고 깨달으며 생각밭을 북돋우도록 이끄는 책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림책을 들고 아이한테 읽히면서 당신 스스로 ‘책을 읽는’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림책을 읽히면서 ‘당신 스스로 미처 못 느끼거나 모르던 새로운 누리’를 깨닫는다.


  여느 어버이라면, 아버지는 회사에서 돈 벌고 어머니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얼거리인데, 여느 아버지들은 회사에서 너무 오래 머무느라 막상 아이들과 ‘아름다운 어린이책을 함께 누리지’ 못하면서 책읽기하고 자꾸 동떨어진다고 느낀다. 나아가, 여느 아버지들은 집에서 아이들과 복닥이면서 ‘아이 삶 읽기’, 곧 ‘아이읽기’와 ‘삶읽기’ 또한 제대로 못 한다고 느낀다.


  책이란 무엇인가. 숲에서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에 잉크를 찍어서 실로 묶거나 본드로 붙여야 비로소 ‘책’일까. 누군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서 담아야 비로소 ‘책’일까. 따로 글을 안 쓰고 그림을 안 그리더라도 말로 조곤조곤 들려줄 때에도 ‘책’이지 않을까. 이른바 ‘입말, 이야기말(구비문학)’ 모두 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종이책은 안 읽는다지만,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이웃들과 어깨동무하며 풀과 나무를 보살피는 이라면 ‘책을 읽는’ 셈이리라.

 

 

  책에서 읽는 삶


  삶을 읽으며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며 삶을 읽는다. 아이들 눈빛을 바라보며 아이한테 서린 ‘하느님 넋’을 읽는다. 숲에서 나무를 쓰다듬거나 숲바람을 쐬면서 숲속에 고이 흐르는 ‘빛과 그림자’를 읽는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이들은 이제 할머니와 할아버지이다.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는 일찌감치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 일꾼이 되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며 시골을 지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당신 흙일을 당신 어버이한테서 몸으로 보고 듣고 배우고 익혔다. 어느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도 ‘농사짓는 길잡이책’을 읽지 않았다. 예나 이제나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는 ‘책으로 흙일을 배우거나 살피’지 않는다. 언제나 몸으로 흙을 부대끼고 만지고 밟고 쓰다듬으면서 흙일을 배우거나 살핀다.


  ‘모내기 하는 법’을 책으로 읽어야 책읽기일까. 모내기 하는 법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맨발로 무논에 들어가 배울 때에 책읽기일까. 김매기와 피사리는 ‘책으로 읽어’야 알아채거나 깨달을까. 낫질과 호미질과 쟁기질과 삽질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 책으로 엮어’야 비로소 이야기가 될까. 몸으로 보여주고 입으로 말할 때에, 그러니까 낫질을 몸으로 보여줄 때에는 어떤 이야기가 될까. 호미질로 풀을 캐는 삶을 굳이 글로 쓰거나 책으로 빚어야 할까.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바라볼 때면, 이분들 누구나 날마다 ‘책을 수십 권’ 읽는구나 하고 느낀다. 할머니들은 풀책을 읽는다. 할아버지들은 나무책을 읽는다. 할머니들은 해책과 달책을 읽는다. 할아버지들은 새책과 벌레책을 읽는다. 할머니들은 물책을 읽고, 할아버지들은 불책을 읽는다. 가을에 나락을 거두며 ‘나락책’을 읽는다. 수수를 털고 서숙을 까부르며 ‘수수책’과 ‘서숙책’을 읽는다. 서숙 한살이를 따로 책으로 써야 제대로 알거나 살필 수 있지 않다. 흙을 만지며 시골에서 한 해를 살면 몸과 마음으로 깊디깊이 서숙을 알거나 살핀다.


  봄에 찾아오는 제비는 ‘제비 그림책’이나 ‘제비 사진책’을 만들어야 제비 한살이를 깨닫도록 돕지 않는다. 제비가 둥지를 틀 만한 물 맑고 바람 좋으며 햇살 따스한 시골마을에서 흙집을 짓고 예쁘게 살아가면, 날마다 제비를 바라보고 인사하고 노래하고 마주하면서 ‘제비읽기’를 한다. ‘제비책’을 읽는 셈이다.


  요즈음 아이들은 손전화 기계에 푹 빠져 종이책은 잘 안 읽는다고들 한다. 그렇다. 종이책은 잘 안 읽겠지. 그러나, 손전화 기계를 징검다리 삼아 동무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 이야기는 덧없는 쪽글질이나 개구진 말놀이가 아니다. 요즈음 아이들 나름대로 ‘마음껏 뛰놀 흙땅’과 ‘걱정없이 뒹굴 빈터’와 ‘사이좋게 얼크러질 놀이터’가 없는 마당에, 손전화 기계라도 붙잡으면서 마음을 열거나 가꿀밖에 없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이책 읽고, 흙땅에서 흙책 읽으며, 동무들과 사이좋게 뛰놀면서 동무책을 읽어야 아름답게 자랄 수 있다.

 

  책은 어디에 있는가


  책은 사람들 가슴속에 있다. 책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책시렁에 있지 않다. 책은 사람들 가슴속에 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책시렁에는 ‘종이꾸러미’가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새책방이나 헌책방으로 마실을 다니면서 종이꾸러미를 돈 주고 장만한다. 저마다 장만한 종이꾸러미를 펼치면서 ‘삶을 읽으려’ 마음을 기울일 때에 책읽기가 된다. 스스로 장만한 종이꾸러미를 손수 넘겨 삶을 읽으려 할 때에 시나브로 ‘글마다 감도는 뜻과 꿈’을 살핀다.


  그런데, 글마다 감도는 뜻과 꿈을 살피자면, 종이꾸러미를 장만한 사람 스스로 가슴속에 뜻과 꿈이 있어야 한다. 내 가슴속에 사랑이 없다면 연애소설을 읽는다 하더라도 사랑이든 연애이든 알아채지 못한다. 내 가슴속에 꿈이 없으면 어떤 수필책이나 자기계발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앞으로 이루고픈 꿈이 무엇인가를 헤아리지 못한다. 박경리 님이 쓴 《토지》이든 펄벅 님이 쓴 《대지》이든 톨스토이 님이 쓴 《죄와 벌》이든, 아무나 이 작품을 ‘읽지’ 못한다. 종이꾸러미를 장만해서 줄거리를 살피거나 꿰뚫을 수는 있다. 그러나 아무나 책을 ‘읽어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책읽기란 ‘줄거리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읽기란, 책을 쓴 사람들이 살아온 나날마다 스스로 빚은 꿈과 사랑을 읽는 즐거움이다. 《토지》에 담긴 꿈은 못 읽고 줄거리만 욀 수 있대서 ‘《토지》를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대지》에 서린 사랑은 못 읽고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꿰찰 수 있대서 ‘《대지》를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죄와 벌》이라는 작품을 읽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주 쉽다. 우리 스스로 ‘《죄와 벌》을 읽을 만한 눈높이와 눈썰미와 눈길과 눈빛과 눈결을 갈고닦으면서 알차게 기르면’ 된다. 삶을 즐겨야지.


  성경책은 아무나 읽어내지 못한다. 불경책은 아무나 곰삭히지 못한다. 종이꾸러미에 찍힌 글자를 소리내어 말하는 일이야 누구나 하리라. ‘글자읽기’는 일곱 살 어린이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곱 살 어린이가 글자를 또박또박 읽는대서 ‘너 참 책을 잘 읽는구나’ 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글자를 잘 읽을’ 뿐이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한다는 ‘책읽기’는 책읽기라고 말하기 어렵다. 아직 너무 많은 사람들은 ‘글자읽기’에 머문다. ‘줄거리읽기’에서 맴돈다. 책을 읽으면서 삶을 읽어야 즐겁고, 책을 읽으면서 사랑을 읽어야 즐거우며, 책을 읽으면서 꿈을 읽어야 즐겁다. 다른 사람이 쓴 책을 하나 읽으며 내가 가꾸고픈 삶을 읽을 때에 즐겁다. 여러 사람이 온삶을 들여 쓴 책을 하나 읽으며 내가 아끼고픈 사랑을 읽을 때에 즐겁다. 숱한 사람이 기나긴 해를 바쳐 쓴 책을 하나 읽으며 내가 이루고픈 꿈을 읽을 때에 즐겁다.

 

 

  책을 짓는 삶


  양철북 출판사에서 펴낸 책을 하나씩 헤아려 본다. 2002년 7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하이타니 겐지로), 《아이들》(야누스 코르착), 《로빙화》(중자오정),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기너트), 《권력과 테러》(노암 촘스키), 《자라지 않는 아이》(펄벅), 《소녀의 마음》(하이타니 겐지로), 《꼬마 모모》(마쓰타니 미요코), 《사랑의 매는 없다》(앨리스 밀러), 《두 친구 이야기》(안케 드브리스), 《나무소녀》(벤 마이켈슨), 《산다는 것의 의미》(고사명), 《분홍바늘꽃》(질 페이턴 월시),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눈물나무》(카롤린 필립스), 《별을 헤아리며》(로이스 로리), 《지로 이야기》(시모무라 고진), 《안 뜨려는 배》(팔리 모왓), 《시타델의 소년》(제임스 램지 울만), 《반칙 선생님》(우다가와 유코), 《여우와 토종 씨의 행방불명》(박경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최종규),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이상석), 《청소년 인권 수첩》(크리스티네 슐츠 라이스), 《인간의 벽》(이시카와 다쓰조),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요시노 겐자부로),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진 리들로프), 《크리스티나에게 보내는 편지》(파울루 프레이리), 《덴코짱》(노다 미치코), 《원예반 소년들》(우오즈미 나오코), 《태평육아의 탄생》(김연희), 《첫사랑》(구드룬 파우제방), 《가르친다는 것》(윌리엄 에어스) 같은 책을 내놓았는데, 어느덧 150가지 남짓 된다. 이 가운데에는 무척 널리 사랑받는 책이 있고, 좀처럼 사랑받지 못하는 책이 있다. 사람들이 조금 더 눈여겨보는 책과 제대로 눈여겨보지 못하는 책이 있달 수 있는데, 어느 책이든 ‘한 사람으로서 사랑을 꽃피우는 삶에서 스스로 찾는 아름다운 길’을 들려준다고 느낀다.


  철수와영희 출판사에서 펴낸 책을 곰곰이 되짚어 본다. 2006년 8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우리는 말썽꾼이야》(양승완), 《철들지 않는다는 것》(하종강),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이득재),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박노자·전쟁없는세상·한홍구),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서경식), 《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안미선), 《길은 복잡하지 않다》(이갑용), 《10대와 통하는 불교》(강호진), 《정당한 위반》(박용현) 《동네 숲은 깊다》(강우근),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백남호), 《덤벼라 인생》(고성국·남경태), 《진보와 저항의 세계사》(김삼웅),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손석춘), 《우리 학교 텃밭》(노정임·안경자),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최종규), 《적을 삐라로 묻어라》(이임하) 같은 책을 내놓았는데, 이제 40가지 남짓 된다. 이 가운데에는 사람들이 여러모로 아끼는 책이 있고, 아직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책이 있달 수 있는데, 어느 책이든 ‘한 사람으로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삶을 누리며 꿈을 즐기는 예쁜 길’을 들려주는구나 싶다.


  책을 짓는 삶이란 무엇인가? 한 권이라도 더 많이 펴내는 삶인가,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히는 삶인가. 책을 즐기는 삶이란 무엇인가? 한 권이라도 더 읽으려는 삶인가,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으려는 삶인가. 책을 사랑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책을 많이 읽거나 건사하는 삶인가, 책을 읽으며 삶을 톺아보고 사랑을 나누는 삶인가.

 

 

  책으로 여는 꿈


  책에는 길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나, 책에서 길을 찾을 수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스스로 삶을 짓는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길을 찾는다. 스스로 삶을 짓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은 책을 수없이 읽어도 ‘줄거리 지식’과 ‘등장인물 정보’만 머리에 담을 뿐, 삶을 짓는 길을 느끼지 못한다.


  길을 찾고 싶으면 길을 찾으면서 책을 읽으면 된다. 스스로 가장 사랑하고 좋아할 만한 삶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길을 걷다가 책 하나 길동무로 삼으면 된다.


  책으로 꿈길을 열 수 있다. 내 하루를 가장 아름다운 무늬와 빛깔과 결로 보듬으면서 곱게 꿈을 꾸면 된다. 하루아침에 이루는 꿈이 아니다. 한결같이 누리면서 이루는 꿈이다. 오늘 하루 이루면 끝나는 꿈이 아니다.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꾸준하게 누리면서 이루는 꿈이다. 이를테면, 밥을 한 끼니만 잘 먹으면 되지 않는다. 밥은 날마다 잘 먹어야 한다. 끼니마다 잘 먹을 밥이요, 끼니마다 스스로 가장 맛나게 차리면서 한솥밥을 나눌 때에 즐거운 삶이다.


  삶은 하루만 잘 누리면 되지 않는다. 날마다 잘 누릴 삶이다. 어린이와 푸름이하고 즐거이 나눌 책을 짓는 책마을 일꾼은 ‘책 하나만 잘 지으’면 되지 않는다. 새롭게 내놓는 책마다 잘 지어서 내놓을 책삶이요, 차근차근 한 권씩 책살림 늘리면서 이 땅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언제나 살가우며 반가운 마음밥이 될 책밥을 지을 노릇이다.


  책으로 꿈길을 연다면 바로 이 대목에 있지 않을까. 한 번 읽고 나서 책꽂이에 얌전하게 꽂고는 오래도록 가슴이 촉촉히 젖도록 이끄는 책이 있으리라. 여러 차례 되풀이 읽느라 책상맡에 늘 두면서 두고두고 가슴이 해맑게 부풀도록 이끄는 책이 있으리라. 올해에 읽고 다섯 해 뒤에 읽으며 열 해 뒤에 읽고, 또 열다섯 해나 스무 해 뒤에 새삼스레 읽으면서, 내 발자국을 튼튼하게 어루만지는 길동무처럼 곁에 있는 책이 있으리라.


  책 한 권 웃으면서 빚는다. 어제도 오늘도 활짝 웃으면서 삶을 사랑으로 누린다. 오늘도 모레도 환하게 웃으면서 책을 사랑으로 빚는다. 웃음 가득한 사랑이 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는 사람은 웃음 어린 꿈을 마음밭에 심을 수 있겠지. (4345.10.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시민사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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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놀이

 


  전남 고흥에서 눈이 쌓이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예전에는 고흥에도 얼음이 두껍게 얼었단다. 나날이 지구별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면서 고흥에서는 이제 눈 구경이나 얼음 구경이 몹시 힘들다.


  마당에 놓은 평상에 눈이 소복소복 앉는다. 햇살이 드리우며 차츰 녹는데, 그나마 마당에 떨어진 눈은 내리자마자 모두 녹고, 평상 눈만 겨우 남는다. 큰아이는 평상에 쌓인 눈을 알아채고는 평상에 신을 신은 채 올라가 뛰논다. 따순 남녘땅 눈밭이랄까.


  눈을 밟다가 눈을 줍다가 눈맛을 보다가 눈길을 슥슥 밀며 걷다가, 눈이 다 녹을 때까지 흐드러지게 눈놀이를 한다. 4345.1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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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아줌마 2012-12-07 00:43   좋아요 0 | URL
ㅎㅎ 고흥에도 눈이 왔다고 하더니 이렇게 조금이나마 쌓였나 보네요.. 우리 어렸을적엔 고흥도 눈이 제법 왔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힘들다고 하더니 이렇게 나마 내려서 따님이 참 행복해 했겠어요..
고흥분이라고 그러셔서 얼른 다녀갑니다~~

파란놀 2012-12-07 04:06   좋아요 0 | URL
아, 반갑습니다.
거의 안 왔다고 해야 할 테지만,
그래도 살짝 티가 나더라고요.

고흥이 고향인 분들이
도시살이를 잘 갈무리한 다음
고향에서 오순도순 예쁘게
지낼 날을 기다려요.

또는, 조용하며 아름다운 시골살이를
꿈꾸는 분들이
고흥으로 들어와서
어여삐 살아가면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하기도 하고요~ ^^
 
은빛 숟가락 1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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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197

 


보면 ‘아는’ 사람
― 은빛 숟가락 1
 오자와 마리 글·그림,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2012.11.19./5000원

 


  언제나처럼 새벽 일찍 아침밥 헤아리며 찬찬히 마련하고, 아침밥이 익는 동안 빨래를 합니다. 빨래를 다 마칠 무렵 아침밥 차리기는 끝내고, 식구들 모두 불러 밥상에 앉혀 밥술을 뜨게 할 즈음, 나는 다 마친 빨래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 빨래를 넙니다.


  이제 겨울에 접어든 시골마을이기에, 햇살이 드리우는 1분과 1초가 아깝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햇살을 받으며, 조금이라도 더 오래 햇살을 누리면서 보송보송 잘 마르기를 빌어요.


  다른 곳은 영 도 밑으로 십 도이니 십오 도이니 하며 오들오들 떠는 날씨라 하는데, 전남 고흥 시골마을은 아직 영 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깊디깊은 한밤에는 영 도 밑으로 살짝 내려가는 듯합니다. 어젯밤 올겨울 들어 고흥에서는 처음으로 얼음을 보았습니다. 그래 봐야 살얼음이라 톡 치면 바스락 부서지지만, 살얼음이라도 한밤에 언 적은 올들어 처음입니다.


  따스한 햇살과 바람과 냇물이란 더없이 고마운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따사로운 햇살을 먹고 따뜻한 바람을 마시며 포근한 냇물을 들이켤 수 있는 삶이란 내 몸과 마음을 한껏 북돋우면서 살찌운다고 느낍니다.


  그렇다고 찬바람 찬물이 싫거나 꺼림칙하지 않아요. 나는 그동안 영 도 밑으로 이삼십 도 가뿐히 내려가는 멧골에서 언물 녹이며 손빨래를 하며 살았고, 손발 꽁꽁 얼어붙는 차가운 방에서 글을 쓰며 지냈어요. 살림돈이 나아져서 따스한 시골에서 살지는 않아요. 아이들이랑 옆지기하고 한결 따사로운 품을 느끼면서 시골숲을 껴안고 싶어 전남 고흥으로 왔어요. 이렇게 따스한 터에 보금자리를 일구고 보니, 햇살과 바람과 물과 흙을 남다르게 돌아볼 수 있어요. 삶도 밥도, 여기에 사랑과 꿈도, 따사로운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일 적에 가없이 맑게 빛나며 곱구나 싶어요.


- “게임은 하루에 1시간만 하고, 둘이 싸우지 말 것. 시라베는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고, 카나데는 거울만 보지 말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것. 냄비에 4일치 카레 만들어 놨으니까, 저녁은 밥만 지으면 될 거야.” (9쪽)
- “이런 설명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 오늘 토당인데.” “토당?” “토끼한테 먹이 주는 당번! 다녀올게!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전해 줘!” (15∼16쪽)
- ‘리츠 오빠, 입시 포기했어? 우리 집이 가난해서 그래? 리츠 오빠는 얼굴이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도 공부도 잘 하는데. 요즘엔 요리까지. 입시를 포기해야만 하다니. 그래선 안 되잖아.’ (110∼11쪽)

 

 


  빨래가 마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를 듣습니다. 밥상을 차려 아이들과 옆지기와 장인 어른을 부릅니다. 밥상 앞에서 수저 부딪는 소리를 듣습니다. 작은아이는 밥먹기보다는 밥놀이를 합니다. 혼자서 숟가락질을 한다면서 국을 뜨지만 몽땅 밥상과 부엌바닥에 쏟습니다. 용케 국을 숟가락로 떠서 입으로 가져가지만, 웃옷에 주르륵 쏟습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처럼 밥먹기보다 밥놀이를 하며 컸어요. 다섯 살 큰아이는 “아버지, 나 혼자서 밥 다 먹었다!” 하고 외칩니다. 그래, 참 잘 했어요. 작은아이도 누나를 따라 아버지를 보며 “엄마!” 하고 외칩니다. 열아홉 달째 되는 작은아이는 아직 말이 더디기에 무엇이든 그예 ‘엄마’ 하고 말합니다. 누나가 “혼자서 밥 다 먹었다!” 하고 외치니, 작은아이도 누나처럼 말하고 싶은가 봐요.


  이제 나는 조금 숨을 돌리고서는 설거지를 해야지요. 설거지를 하고 나서 마당으로 내려와 겨울빨래 어느 만큼 마르는가를 만져야지요. 아침에 넌 빨래를 뒤집어 말리고, 잘 마르는 빨래를 바라보며 얼른 보송보송 되어 주렴 하고 속삭입니다. 어젯밤 빨래한 옷가지를 천천히 개고, 밥을 먹고 나서 또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오늘 내 몫으로 할 일을 어림합니다.


- “아냐, 외모뿐 아니라 성품도 남신이라구!” “얘기해 본 적 없잖아?” “아니, 얘기 안 해 봐도 알아. 보면 안다구.” “그 신념은 뭐냐? 그럼 얘기해서 확인해 봐.” (20∼21쪽)
- “좋겠다. 엄마도 리츠(큰아들)가 만든 군만두 먹고 싶은데.” “퇴원하면 만들어 드릴게요.” “그래, 그럼 리츠가 만든 군만두가 먹고 싶으니까 서둘러서 퇴원해야겠구나.” (44∼45쪽)
- “애당초 우리 회사는 요 2∼3년 사이에 급성장한 거라, 괴로운 시기도 상당히 길었거든.” “그걸 알면 착실하게 공부해야지. 어머니 아버지가 고생하셔서 키운 회사를 물려받을 거 아냐.” “네가 내 엄마냐?” “아. 그럼 네가 우리 집에 올래?” (167쪽)

 


  아이들과 복닥이면 책 하나 손에 쥘 겨를 없습니다. 참 바쁘구나 싶지만, 아이들이 바로 책이라고 느끼면서 내 마음을 다스립니다. 내가 종이책 펼쳐 읽는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살며시 손을 맞잡고 놀면서 ‘몸으로 이야기를 느껴 받아들이’면 한결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삶’을 다룬 종이책을 굳이 안 읽더라도, 내가 오늘 이 시골집 보금자리에서 ‘아이들과 복닥복닥 부대끼면서 놀고 뒹굴고 뛰고 노래하’고 보면, 바로 이러한 삶과 놀이와 하루가 책읽기인 셈이에요. 아니, 이처럼 즐거이 놀자는 뜻을 보여주는 종이책이에요.


  사랑을 읊는 문학책이란, 글로만 누리라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글로 읽는 문학에서 받아들인 아름다운 사랑을, 나 스스로 온몸 부대끼는 삶에서 흐드러지게 맞아들이도록 이끌려는 문학이요 책이로구나 싶어요.


  시를 읽든 수필을 읽든 소설을 읽든 늘 이와 같습니다. 인문책을 읽건 환경책을 읽건 언제나 이와 같아요. 지식으로 살피는 책이 아니에요. 삶을 돌아보도록 이끄는 책이에요. 정보를 얻자는 책이 아니에요. 삶을 사랑하도록 내 마음을 일깨우자는 책이에요.


  아이한테 무언가 가르치는 까닭은 아이들이 반갑고 살가우며 예쁘기 때문이에요. 아이가 커서 지식인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무슨무슨 석·박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아이가 똑똑해진다거나 공부를 잘해 이름난 대학교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아요. 무언가 가르치는 어버이인 내 마음이 흐뭇하고, 무언가 배우는 아이들 마음이 환하게 트이는 모습을 느끼는 기쁨이 사랑스럽기에, 서로서로 가르치며 배울 수 있어요.


  고무줄은 고무줄놀이입니다. 공은 공놀이입니다. 나뭇가지는 막대기놀이입니다. 어떤 체험학습도 체험활동도 아닙니다. 어떤 학습도 교육도 아닙니다.

 


- “괜찮다면 받아. 가다랑어포! 나, 바로 저기 있는 우동가게에서 알바 하는데, 사장님이 튀김조각이나 가다랑어포를 자주 주시거든. 쪄서 말린 가다랑어를 매일 직접 깎아서 만든 거라 맛있어. 참고로 말하자면 오늘은 내가 깎았어.” (23쪽)
- “네 노력은 틀림없이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조바심내지 않아도 돼. 뭐, 엄마는 스타팅멤버로 뽑히길 빌겠지만 말야.” “응. 그래 줘요.” (88∼89쪽)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2)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 줄거리를 살짝 엿보면, 고3 수험생 큰아들, 중1 농구선수 작은아들, 초6 연예인 꿈꾸는 막내딸, 이렇게 세 아이들이 빚는 삶을 보여줍니다. 세 아이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세 아이네 어머니는 몸이 아파 그만 병원에 들어가 오랫동안 지냅니다. 세 아이끼리 작은 집에서 살아가는데, 큰아들이 집살림 도맡아요. 집안일을 도맡는 하루를 누리면서 ‘대학입시보다 동생들 예쁘게 보살피는 삶이 훨씬 보람차고 즐겁다’고 느껴요. 대학교에는 굳이 안 들어가도 되고, ‘살아가는 꿈’은 저 먼 교토 대학교 어느 학과 아닌, 바로 이곳 우리 작은 보금자리 예쁜 동생과 살가운 어머니한테 있다고 느낍니다.


  그동안 오자와 마리 님 다른 만화책, 이를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나 《니코니코 일기》나 《퐁퐁》이나 《민들레 솜털》이나 《이치고다 씨 이야기》를 읽을 적에도 느꼈는데, 이번에 새로 나온 《은빛 숟가락》을 읽을 적에도 ‘오자와 마리 이분은 결 곱고 무늬 환한 사랑이랑 꿈을 만화로 담는 하루를 더없이 즐기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스스로 결 고운 사랑과 무늬 환한 꿈을 즐기지 못한다면, 이 같은 만화를 그리지 못해요.


  만화는 줄거리가 아닙니다. 만화는 그림결이 아닙니다. 만화는 주제가 아닙니다. 만화는 주인공이나 눈부신 그림이 아닙니다. 만화는 사랑과 꿈을 어떤 이야기로 빚어 즐겁게 누리는 삶인가를 보여줄 때에 비로소 ‘만화’라는 이름이 빛납니다.


- ‘두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내일은 좀더 제대로 된 밥을 만들자.’ (34쪽)
- ‘동생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 줄 생각만 늘 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작업은 가끔 밀려오는 잡다한 감정으로부터 날 해방시켜 주었다.’ (80쪽)
- ‘아마, 동생들의 ‘맛있는 표정’에 빠져든 것이 내가 요리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겠지.“ (96쪽)


  동생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만화에 나오는 큰아들 스스로 환하게 웃을 수 있기에, 즐겁게 ‘살림꾼’이 됩니다. 대학생은 언제라도 될 수 있거든요. 대학교는 언제라도 갈 수 있거든요. 그러나, 열넷 열셋 어린 동생들이 이 나이에 환하게 웃고 떠들며 노래하는 삶을 누리도록 이끄는 ‘집안 기둥’ 노릇은 바로 오늘 아니면 할 수 없어요.


  만화책 큰아들은 ‘대학교에서 배워 스스로 이루고픈 꿈’을 접지 않아요. 살짝 뒤로 미룰 뿐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입시를 새롭게 치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 배고파 우는 아이들한테는 오늘 즐거이 밥을 차려 맛나게 함께 먹을 노릇이에요. 오늘 아버지와 어머니 없이 쓸쓸한 집에서 홀로 카레만 뎁혀 먹어야 하는 동생들한테 그때그때 갓 지은 따끈하고 고소한 밥을 차려 까르르 웃고 떠들며 누리는 밥은, 참말 오늘 이곳에서 내 사랑어린 손길로 지을 노릇이에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척 보면 척 알아요. 아이들 얼굴을 바라보면 아이들이 즐거운지 슬픈지 기쁜지 놀라는지 알아요. 아이들 눈빛을 바라보면 아이들이 졸린지 신나는지 재미있는지 따분한지 알아요. 아이들 몸짓을 바라보면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픈지 알아요.


  어른끼리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어른도 서로서로 사랑으로 바라보면 척 하고 알아챌 수 있어요. 살가운 꿈길을 떠올리며 따사로이 바라보면 다 함께 씩씩하게 어깨동무하며 일굴 빛나는 열매를 알아볼 수 있어요. 4345.1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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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2-06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으로 살피는 책이 아니에요. 삶을 돌아보도록 이끄는 책이에요."
요즘 저의 책읽기가 그러해요. 삶을 돌아보도록 만들어요.

빨래와 설거지 하시는 님의 아름다운 일상을 엿보고 갑니다.^^

파란놀 2012-12-06 16:05   좋아요 0 | URL
늘 고우면서 즐거운 삶이 되리라 생각해요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만화일까? 예전에 해적판이나 다른 책으로 소개되었을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단편과 장편(또는 중편)이 처음으로 정식판이 나오는 듯하다. 두 가지가 한꺼번에 나온다면, 그만큼 작품성과 깊이가 있다는 뜻이라고 여겨, 단편집부터 장만해서 읽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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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초록빛
하시바 마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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