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핀다 - 자연에서 찾은 우리 색 보림 창작 그림책
백지혜 글.그림 / 보림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28

 


햇빛이 흙빛 되고 꽃빛 되니
― 꽃이 핀다
 백지혜 글·그림
 보림 펴냄,2007.4.15./8800원

 


  꽃이 피고, 꽃이 집니다. 꽃은 들판에서 피고, 꽃은 들판에서 집니다. 꽃은 흙이 있을 때에 핍니다. 꽃은 흙이 있는 곳에서 풀씨가 뿌리를 내리고 잎사귀가 해바라기 하면서 돋고 나서야 핍니다. 꽃은 흙이 없는 곳에서 피지 않습니다. 물병에 물을 담아 꽃줄기를 넣으면 한동안 꽃잎이 살겠지만, 이내 시들고는 씨앗을 맺지 못해요. 꽃잎이 살아남도록 할 수 있다지만, 꽃이 지고서 열매인 씨앗을 맺어 다시 새 꽃으로 피어나도록 하지 못합니다.


  꽃은 시골에서 피고, 꽃은 시골에서 집니다. 왜냐하면, 흙은 시골에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에는 흙이 없습니다. 아니, 도시에도 흙은 있습니다. 다만, 도시사람은 도시를 만들려고 흙을 기계로 꾹꾹 눌러 다진 다음 시멘트를 들이붓고 쇠막대기를 박으며 아스팔트로 촘촘히 덮습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 밑에 깔린 채 쇠막대기가 쑤셔대는 터라, 도시에 있는 흙은 끙끙 앓습니다.


  그런데, 도시에 ‘흙이 없지’는 않고 ‘흙이 짓밟혔’기에, 짓밟힌 흙이 차근차근 기운을 차리면서 풀씨를 살립니다. 아주 조그마한 틈바구니라도 찾아내어, 풀씨가 뿌리를 내리도록 돕고, 풀씨가 줄기를 올려 잎을 틔우도록 거들어요. 거님길 돌 틈에서 풀꽃이 피거나, 찻길 가장자리에서 풀꽃이 피는 까닭은, 도시에서 짓밟힌 흙이 조금이나마 스스로 숨통을 트고 싶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는 공무원이 따로 시골에서 흙을 사고 꽃씨를 사서 꽃을 심습니다. 아니, 다 자란 꽃을 흙에 담긴 꽃그릇째 돈으로 사서 길가에 놓습니다. 도시에서 꽃잎 흩날리는 꽃들은 언제나 꽃봉오리를 열어야 합니다. 도시에서 공무원들이 길가에 갖다 놓은 꽃들이 꽃잎을 떨구는 날에는 모두 ‘쓰레기’처럼 버려져요. 시든 꽃은 보아주지 않는 도시예요. 시든 꽃은 버리고 새 꽃을 사다 다시 놓는 도시예요.

 

 


.. 빨강, 동백꽃 핀다 ..


  도시사람은 꽃그릇을 사야 합니다. 흙이 햇볕을 쬘 만한 손바닥만 한 틈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도시사람은 집안에 놓은 꽃그릇에서 꽃을 마주하거나,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멀리멀리 시골로 나가서야 꽃을 바라봅니다. 도시에서는 꽃을 마주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는 꽃을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꽃이 없는 도시인 탓에, 도시사람은 꽃집을 꾸려 꽃다발을 만들고, 꽃다발을 돈으로 사서 이녁 사랑스러운 님한테 바칩니다. 도시에는 가게만 있습니다. 도시에는 자동차만 있고 찻길만 있습니다. 도시에는 건물만 있습니다. 지난날 도시에는 공장도 있었으나, 이제 공장은 시골로 보냅니다. 공장이 도시에 있을 적에 도시사람이 매캐한 바람을 너무 많이 마셔야 한다 걱정하기에, 공장을 몽땅 시골로 옮기려 애씁니다. 그러니까, 도시사람은 도시에서 흙을 짓밟고 꽃을 짓뭉개면서 돈만 벌려 해요. 도시를 예쁘게 꾸미려고 꽃을 사려면 시골흙 시골꽃을 사야 할 텐데도, 시골마을을 공장이나 발전소나 쓰레기터나 무덤터나 골프장으로 더럽히면서 ‘도시만 깨끗하도록’ 애씁니다.


  아무래도, 여느 때 여느 자리에서 꽃을 못 보며 살아가는 도시사람이기에, 정작 도시에 꽃을 사다 심을 적에는 시골이 정갈해서 꽃을 돌볼 수 있어야 도시에도 꽃을 둘 수 있는 줄 모릅니다. 늘 마주하는 건물이요 언제나 곁에 두는 자동차이다 보니, 도시사람은 꽃내음을 모르고 꽃빛을 모르며 꽃무늬를 몰라요. 도시사람은 도시를 스스로 망가뜨릴 뿐 아니라, 시골을 나란히 무너뜨리는 줄 몰라요.

 

 


.. 갈색, 밤이 여문다 ..


  바람이 불어 시골마을 나뭇가지를 흔듭니다. 바람이 불어 바지랑대를 건드리고, 바람이 불어 겨울밭 마늘잎을 살랑입니다. 아마, 도시에서는 바람이 불어 길가 걸개천을 흔들겠지요. 아마, 도시에서는 바람이 불어 광고종이를 흩날리겠지요. 아마, 도시에서는 바람이 불어 높은 건물 유리창을 때리겠지요.


  햇살이 내리쬡니다. 나무가 햇살을 먹습니다. 냇물이 햇살을 먹고, 골짜기 돌이 햇살을 먹으며, 너른 흙이 햇살을 먹습니다. 아마, 도시에서는 아무것도 햇살을 안 먹겠지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봄에도 가을에도 햇살을 안 받아먹겠지요.


  백지혜 님이 빚은 그림책 《꽃이 핀다》(보림,200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백지혜 님은 우리 겨레 옛사람이 즐기던 ‘빛깔’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꽃빛을 새롭게 그립니다. 빨강 노랑 파랑, 이렇게 세 가지 빛깔에, 까망 하양, 이렇게 두 가지 빛살에, ‘풀빛’이라는 빛무늬가 어우러지는 우리 겨레 빛모습을 종이 한 장에 살포시 담습니다.


  참말, 한겨레는 ‘분홍(粉紅)’이라든지 ‘갈색(褐色)’이라든지 ‘주홍(朱紅)’ 같은 말을 안 썼어요. 한겨레는 그예 빨강 노랑 파랑, 세 가지 빛깔만 말했어요. 그러면서 발강 누렁 퍼렁, 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바알갛다라든지 빨그스름하다라든지 불그죽죽하다라든지 새빨갛다라든지, 느낌을 찬찬히 달리해요. 싯누렇다라든지 노오랗다라든지 누리끼리하다라든지, 느낌을 저마다 달리합니다. 여기에, 빛깊이는 ‘옅다’와 ‘짙다’ 두 가지로 나눕니다.


  문화와 역사를 적바림한다는 이들은 한문을 빌어 여러 빛이름을 지어서 쓰곤 하지만, 한겨레 옛사람은 굳이 이런저런 ‘한자말 빛이름’을 안 씁니다. 쓸 일도 쓸 까닭도 쓸 자리도 없거든요.


  밤을 바라보며 밤빛을 생각합니다. 딱히 다른 빛이름으로 가리킬 수 없어요. 진달래를 바라보며 진달래빛을 생각합니다. 다른 어떤 빛이름으로도 진달래 꽃빛을 밝히지 못해요. 개나리꽃은 개나리빛일 뿐이에요. 개구리는 개구리빛이요, 개구리밥은 개구리밥빛입니다. 노을은 노을빛입니다. 해는 햇빛이고 달은 달빛이며 별은 별빛이에요.


  바다는 바다빛이며 하늘은 하늘빛입니다. 흙은 흙빛이요 물은 물빛입니다. 꽃을 바라보며 꽃빛을 읽습니다.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빛을 읽습니다. 풀을 바라보며 풀빛을 읽습니다.


  도시에도 곳곳에 흙이 있기를 빌어요. 건물만 죽어라 세우지 말고, 건물 사이사이 도시사람 스스로 푸성귀를 일구어 먹을 만한 텃밭이 있기를 빌어요. 텃밭 사이사이 나무그늘이 있기를 빌고, 나무들은 저마다 온갖 열매를 맺어 도시사람 누구나 맛나게 즐길 수 있기를 빌어요. 그러면, 도시에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꽃빛이 싱그러이 살아나서 숨쉴 수 있겠지요. 꽃빛이 살아나서 숨쉴 때에는, 마을 어디에서나 사람빛 환하게 퍼질 테고, 사람빛은 서로 얼크러져 사랑빛으로 거듭나겠지요. 사랑빛은 삶빛으로 물들겠지요. 4345.12.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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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제비꽃과 제비빛 책읽기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제비를 익히 보았다. 그러나 제비꽃은 좀처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제비빛’이라 하면, 제비 배때기 하얀빛보다는 제비깃 짙은보라빛이 먼저 떠오른다. 얼핏 보면 새까만 듯하지만, 가만히 바라보면 촤르르 빛나는 짙은보라빛이 제비빛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내 어릴 적에 제비꽃을 못 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 내가 못 알아보았을 뿐, 이 골목 저 골목, 또 이 풀밭 저 풀밭에서 제비꽃은 저희 스스로 조그맣고 앙증맞은 꽃잎이랑 풀잎을 뽐냈으리라 생각한다.


  추운 겨울날 문득 봄제비꽃이 떠오른다. 왜 봄제비꽃이 떠오를까. 겨울 지나 새봄 찾아들면 따스한 바람을 기리려는 듯, 저 먼 바다를 건너 제비들이 무리지어 찾아오기 때문일까. 추운 바람을 맞으면서 제비꽃이 피어나고, 아직 추위 덜 가셨으나 따순 봄바람 불 적에는 온 들판에 ‘자, 모두들 기지개 켜고 일어나 새봄을 맞이하자구요!’ 하면서 제비가 날갯짓 춤사위를 보여주기에, 이 춤사위를 얼른 지켜보고 싶기 때문일까. 4345.12.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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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177) -화化 177 : 스토리화

 

아이들 개개인의 활동을 앵글에 담아서 스토리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상봉-안녕, 하세요!》(공간 루,2011) 186쪽

 

  “아이들 개개인(個個人)의 활동(活動)을”은 “아이들 개개인이 활동하는 모습을”로 손질해서 적어야 뜻이 잘 드러납니다. 이렇게 손질한 다음에는 “아이들이 활동하는 모습을”로 더 손질할 수 있고, ‘아이들이 하는 활동’이 무엇인가를 살펴 또렷하게 밝힐 수 있어요. 보기글에서는 아이들과 교사가 사진찍기를 하며 삶을 새롭게 배운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래서 다시금 손질하면 “아이들이 저마다 사진 찍는 모습을”이나 “아이들이 저희 나름대로 사진 찍는 모습을”처럼 적을 수 있어요.

  “앵글(angle)에 담아서”는 “사진에 담아서”로 손보고, ‘스토리(story)’는 ‘이야기’로 손봅니다.

 

스토리화하고
→ 이야기로 엮고
→ 이야기로 꾸미고
→ 이야기로 빚고
→ 이야기를 이루고
→ 이야기를 만들고
 …

 

  어느 모로 본다면 “사진을 찍다”를 “앵글에 담다”처럼 나타낼 만합니다. 살짝 빗대어 가리킬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굳이 안 써도 될 영어를 살며시 쓰는 버릇이 들면, 이 보기글처럼 ‘이야기’라는 한국말을 잊거나 뒤로 젖혀요. 한국사람이 쓸 일이나 까닭이나 뜻이 없는 ‘스토리’를 자꾸 쓰고야 맙니다.


  한국말 다룬다는 국어사전조차 ‘스토리’를 올림말로 삼습니다. 다만, ‘스토리’는 한국사람이 쓸 만한 낱말이 아니기에 ‘순화 대상 낱말’로 올리는데, 고쳐쓰거나 걸러야 하는 낱말이라면 처음부터 올림말로 삼을 일조차 없어요. ‘북(book)’이나 ‘도어(door)’를 애써 국어사전 올림말로 다룰 까닭이 없거든요. ‘네임(name)’을 국어사전에 실을 까닭이 없어요. 더구나, 한국사람한테는 ‘책·문·이름’이라는 낱말이 있으니, 이들 영어를 써야 하지도 않습니다.


  ‘스토리 + 화’는 ‘-化’만 턴대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말씨는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생각하지 못하는 말버릇에서 비롯합니다. 낱말부터 하나하나 차분히 살피지 못하는 말매무새에서 불거져요.


  어떤 이는 “이야기화하고 싶기 때문이다”처럼 말할는지 모릅니다. 말투, 말매무새, 말결, 말흐름을 모를 뿐더러 스스로 살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을 슬기롭게 살펴야지요. 말과 넋과 삶을 튼튼히 붙잡고 어여삐 보듬어야지요. 흔들리는 말과 넋과 삶이 아닌, 어여삐 피어나는 말과 넋과 삶이 되도록 북돋아야지요. 이야기가 되는 삶이고, 이야기로 거듭나는 넋이며, 이야기로 흐드러져 나누는 말이에요. 저마다 이야기 한 자락 즐겁게 여밀 수 있기를 빌어요. 4345.12.23.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이들이 저마다 사진 찍는 모습을 나도 사진으로 담아서 이야기로 엮고 싶기 때문입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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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얻는 마음

 


  내가 씨앗을 맨 처음 본 때가 언제인지 또렷하게 떠오르지는 않습니다만, 국민학교 1학년 적에 학교 관찰일기 숙제를 내려고 콩을 심어 돌본 일은 환하게 떠올라요. 관찰일기 숙제를 해야 하기에 어머니한테 “콩알 주셔요.” 하고 말씀드리니, 밥으로 지어 먹는 콩을 석 알쯤 주셨어요. 나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속 비치는 동그란 그릇에 솜 깔고 물 적셔 콩알을 놓고 볕 잘 드는 자리에 두었어요. 날마다 신나게 오래오래 들여다보는데, 자고 일어난 석 밤째던가, 콩알 한쪽에 살짝 비져나온 꼬리가 보였어요. 뿌리라 할는지 싹이라 할는지 조금 돋았어요. 손가락으로 살살 만지는데 얼마나 보드랍고 앙증맞든지요. 이렇게 싹이 튼 콩을 꽃그릇에 흙 담고 하나하나 손가락 복복 눌러 심었고, 언제 흙 위로 삐죽 돋을까 하고 기다렸어요. 그리고 이 콩이 자라는 모습을 바지런히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써서 관찰일기를 다 꾸렸지요. 관찰일기는 담임선생이 거두어서 돌려주지 않아 이제 나한테는 없는데, 내가 어머니한테서 얻어 심은 콩 몇 알로 밥그릇 수북하게 담을 만한 열매(콩알)가 맺히고, 이 열매로 저녁에 소담스레 밥을 차려서 먹으니 얼마나 맛났는지 몰라요.


  그 뒤, 어머니는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자, 여기 나팔꽃씨.” 하고는 몇 알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어요. 작은 손바닥에 작은 꽃씨. 누르면 톡 터질 듯한 누런 알맹이 안쪽에는 새까만 꽃씨가 여럿 깃들었는데, 이 꽃씨 두서너 알 심고 나머지는 책상맡에 두고는 늘 바라보며 좋아했어요. 예쁘고 예쁘니까요.


  가을이 되어 나팔꽃 모두 지고 씨알을 맺으면, 씨주머니 터뜨리지 않게 곱게 건사해서 빈 필름통에 담아요. 그러고는 학교에 가져가서 동무들한테 보여주지요. 그러면 동무들은 저마다 저희 집이나 동네에서 건사한 ‘다른 꽃씨’를 이듬날 가지고 와서 보여줍니다. “나도 나팔꽃씨 있다! 너네는 이런 꽃시 없지?” 하고 으쓱대던 동무들이 많았어요. 그러면 나는 어머니한테 달려가서 ‘다른 꽃씨’도 찾아 달라고 조릅니다. 어머니는 이런 꽃씨 저런 꽃씨를 찾아서 줍니다. 해바라기씨를 받고, 민들레씨는 살살 떼어서 건사해 봅니다. 이동안, 씨 한 알이란 참 놀랍다고 느낍니다. 이 작은 씨앗에서 얼마나 고운 꽃 태어나 한 해 내내 즐거운 웃음꽃 피워내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곡식 씨앗은 따사로운 밥이 되고, 꽃 씨앗은 해맑은 마음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씨앗으로 왜 장사를 하려 들까요. 왜 씨앗을 자꾸 이리 고치고 저리 바꾸면서 ‘개량·변형·조작’을 하려 드나요. 풀씨를 바꾸듯 사람씨도 바꾸려는 뜻은 아닌가요. 꽃씨를 고치듯 사람씨까지 고치려는 뜻은 아닌가요. 나무씨를 건드리지 않기를 빌어요. 살구씨는 살구씨대로 좋아요. 잣씨는 잣씨대로 좋아요. 볍씨는 볍씨대로 좋고, 이 좋은 기운 살포시 담아 내 사랑씨를 정갈히 다스릴 때에 아름답구나 싶어요.


  믿음씨를 서로 마음밭에 심어 고운 마음씨 될 때에 이 지구별에 밝은 햇살 드리우겠지요. 글을 쓰는 사람은 글씨를 심습니다. 글씨가 담겨 책씨가 됩니다. 책씨에는 생각씨가 깃들고, 생각씨가 모여 슬기씨로 이어집니다. 나는 아이들한테 꿈씨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시골마을에서 별바라기를 하며 별씨와 달씨를 아이들이랑 나누고 싶습니다. 흙을 보듬어 씨앗 하나 건사하니, 이웃이랑 즐거움을 나눕니다. 4345.12.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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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지놀이 1

 


  ‘씨드림 잔치마당’에서 고등학교 형아랑 초등학교 엉아가 딱지를 접어서 치며 논다. 다섯 살 두 살 아이들도 어느새 끼어들어, 딱지를 던져서 맞추려고 용을 쓴다. 이 어린 두 사람은 딱지를 맞추지도 못하는데,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려우리라. 그런데, 딱지치기는 언제 생겼을까. 아주 먼 옛날에도 있었을까. 어떤 아이가 어떤 종이를 어떻게 접어 딱지를 처음 만들고, 이 놀이를 즐기면서 온 하루 뻘뻘 땀흘리며 누리도록 이끌었을까.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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