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섬(무인도)에 가져갈 책

 


  벌써 열 해는 지난 일 같은데, 어느 방송사에서 나를 취재하러 왔을 때에 “무인도에 가시면 어떤 책을 가져가시겠어요?” 하고 물었다. 이때 나는 참 어이없는 이야기를 묻는구나 싶었다. 취재를 나온다면, 취재를 받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조금이나마 살펴야 할 노릇 아닌가. 내가 쓴 글이나 내가 낸 책을 읽었으면, 내가 어떻게 생각하며 삶을 일구려 하는가를 살짝이나마 짚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 물음을 들으면서 곧바로 떠오른 생각은, 취재를 하기 앞서 어느 한 사람을 알아보려고 그이가 쓴 글이나 낸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면서 돌아보지 않는다면, 지식이나 정보는 얻을는지라도, 넋이나 얼은 조금도 헤아리지 못한다. 그래서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뜨고는 대꾸한다. “저는 아무 책도 안 가져갈 생각이에요. 그 섬이 바로 나한테는 책이 될 테니까요. 섬에서 살아가며 누릴 이야기로 이 지구별에 꼭 하나만 있으면서, 내가 새롭게 누릴 책을 몸으로 쓰고 마음으로 새겨야지요.” 연필은 가져가겠느냐, 공책은 가져가겠느냐 하고도 물었던가 모르겠다. 글쎄,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겠지. 그런데, 텅 빈 종이꾸러미와 연필을 가져간달지라도, 몇 쪽을 쓰고는 더 쓸이 없으리라고 느낀다. 하루하루 새롭게 누리는 삶을 적기에는 두툼한 공책 수백 권으로도 모자랄 뿐 아니라, 이렇게 이야기를 쓰느라 막상 외딴섬 사랑스러운 삶을 덜 누릴 수밖에 없다. 외딴섬에 간다는 뜻은, 외롭게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홀로 아름답게 살아간다는 뜻이니까, 종이에 삶을 적바림해서 이야기를 남길 까닭 없이, 내 마음에 이야기를 아로새겨서, 내 입과 눈과 몸과 손으로 누군가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면 넉넉하다. 그러니까, 여느 섬으로 마실을 간다든지, 여느 이웃마을로 나들이를 간다면, 이때에는 공책이랑 연필을 꼭 챙긴다. 이웃마을 둘러보며 누린 아름다움을 글로 정갈히 건사해서 내 ‘글동무’랑 ‘글이웃’하고 알콩달콩 웃음으로 나누면 즐거우니까. 4345.1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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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살아가는 사랑을 차분하며 맑게 그리는 만화 하나 즐겁다. 이러한 이야기를 글로나 그림으로나 사진으로나 누구나 수수하면서 곱게 그릴 줄 안다면, 지구별은 따사롭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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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Girl 마이걸 5- 완결
사하라 미즈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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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3
박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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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샘에서 길어올린 꽃말
[시를 노래하는 시 51] 박지웅,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 책이름 :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 글 : 박지웅
- 펴낸곳 : 문학동네 (2012.12.10.)
- 책값 : 8000원

 


  해는 지고 달이 뜨며 밤이 깊은데, 아이들은 잘 낌새가 없습니다. 얼마나 더 놀면 너희들은 스르르 곯아떨어지겠니, 하고 마음으로 묻습니다. 두 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이리저리 뛰고 구를 뿐입니다. 작은 아이들은 작은 다리로 작은 집 작은 방에서 이리저리 뛰기만 해도 웃음보가 터집니다. 까르르 꺄하하.


  시골마을 작은 보금자리에 무슨 웃음샘이 있다고 웃음꽃이 피어날까 싶지만, 아이들은 저희 마음샘에서 웃음꽃을 길어올리겠지요.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읍내에서도, 기차에서도, 이웃 도시에서도, 어디에서도 아이들은 저희 깜냥껏 웃음꽃을 터뜨려요.


  하아, 길게 한숨을 쉬다가 혼자 옆방으로 건너갑니다. 옆방이라 하지만 문이 트인 방이요, 이부자리만 깐 곳입니다. 내 조그마한 빈책을 꺼내고 볼펜을 손에 쥡니다. 끝없이 뛰노는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 아이들과 살아가는 내 마음을 글 몇 줄로 적바림합니다. “달은 / 꽃내음 먹으며 살아요 / 꽃빛 닮고 / 꽃무늬 아로새기며 / 까맣고 까만 / 깊은 밤하늘에서 / 맑게 빛나요. // 별은 / 풀내음 마시며 자라요 / 풀빛 물려받고 / 풀무늬 콕콕 새기며 / 캄캄하고 캄캄한 / 너른 밤하늘에서 / 밝게 웃지요.”


  고개를 들어 옆방을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쉬지 않고 뜁니다. 쉬지 않고 구릅니다. 두 아이가 서로 부딪히고 서로 넘어지며 웃습니다. 놀이가 따로 없습니다. 일어서도 놀이요, 앉아도 놀이입니다. 누워도 놀이요, 기어도 놀이입니다.


.. 나비는 꽃이 쓴 글씨 ..  (나비를 읽는 법)


  내 어린 날, 나도 이 아이들처럼 낮 없고 밤 없이 놀았습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도 나를 바라보면서 어쩜 너는 잠 없이 이렇게 놀 수 있니, 하고 바라보았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내 어린 날은 우리 두 아이하고 사뭇 다릅니다. 나는 우리 두 아이처럼 더 깊게 더 늦게 더 오래 놀지 못했어요. 어른이 불을 끄면 우리도 누워야 하고, 어른이 잠자리에 들면 우리도 목소리를 죽여야 하며, 어른이 조용히 하라면 참말 조용히 있어야 해요. 안 그러면? 안 그러면 큰소리와 함께 꾸지람, 또는 회초리가 날아오지요.


  우리 아이들이 어쩌면 이렇게 신나게 밤까지 잊으며 놀까 하고 생각하다가는, 아무래도 이 아이들 어버이인 내가 이 아이들만 하던 어린 나날, 그야말로 까무라칠 만큼 실컷 개구지게 놀지 못한 탓 아닌가 하고 돌아봅니다. 어버이 내 가슴에 어떤 아쉬움이 씨앗으로 남아 아이들한테 이어질 수 있으며, 이 아이들은 아쉬움 하나 없이 홀가분하게 뛰어노는구나 싶어요.


.. 체육 선생은 밀대자루를 휘두를 때마다 외쳤다 / 새끼들, 그게, 질문, 이 새끼, 말이면, 다, 말 / 세상에는, 물으면, 안 되는, / 숨이 차자 조사를 빼고 때렸다 / 엉덩이에 뜨끈하게 붙어 있는 책을 깔고 앉아 / 아이들은 숨죽여 침묵을 자습했다 / 물으면 안 되는 것들을 조용히 뒤적였다 / 그림자들만 천장에 술렁이고 있었다 ..  (물으면 안 되는 것들)


  고흥 시골마을은 조용합니다. 고흥 시골마을은 따스합니다. 12월 들어 동짓날 지날 무렵 처음으로 마당에 얼음이 업니다. 그래도 물꼭지까지 얼지는 않습니다. 겨울비 내려 마당 한쪽에 물이 고인 뒤 살짝 얼었을 뿐입니다. 아침 되어 햇볕 비추면 얼음은 녹고, 밤이 되어 서늘해지면 이 물이 다시 얼 수 있고 그냥 안 얼 수 있어요.


  두 아이는 얼음조각 슬며시 집어서 우걱우걱 먹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이 꼴을 보면, 두 아이는 헤헤헤 웃으며 나머지 얼음조각을 입에 쑤셔넣습니다. 얼음이 그리 좋니. 얼음이 그리 맛나니. 먹고프면 먹어. 너희 마음이지.


  자전거를 타고 면내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 들판을 바라봅니다. 빈들에는 유채씨를 뿌렸다 하는데, 유채씨 뿌리며 낸 고랑에 고인 겨울빗물이 살짝 얼었습니다. 고흥 웃쪽 구례나 임실쯤 되면, 겨울에 꽁꽁 얼어붙을 테니, 논자락에 물을 대기만 해도 얼음판이 될 테지요. 오늘날 시골에는 아이들이 거의 사라져 논자락에 얼음판을 만든달지라도 얼음을 지치며 놀 아이들이 없다 하겠지만, 참말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겨울이면 모두 논자락 얼음판에서 뒹굴며 놀았지 싶어요.


  얼음판에서는 쇳날 박은 신을 안 신어도 됩니다. 그냥 신을 신어도 얼음을 지치며 놀 수 있습니다. 신으로 얼음을 지치지 못하겠으면 궁둥이로 얼음을 지쳐도 됩니다. 궁둥이가 젖어 시리다면, 나무판이나 나무막대기를 주워 구르면 돼요.


  논자락 얼음판에서는 넘어져도 무릎이 깨지지 않습니다. 논자락 얼음판에서 고꾸라진들 머리가 터지지 않습니다. 쿵 소리 나며 머리가 좀 아플 뿐입니다. 살얼음이 언 데가 폭 빠지더라도 걱정할 일 없어요. 논물은 얕으니까요.


.. 골목 속에 햇빛의 골목이 따로 생기던 아침도 / 골목 속에 달빛의 골목이 따로 생기던 / 자녁도 발길을 끊은 저 골목 ..  (북아현동 후기시대)


  우리 집 작은아이가 칭얼거릴라치면 어깻죽지에 두 손을 폭 집어넣고는, 자, 날아 볼까, 하면서 하늘로 붕 던지면, 칭얼거리며 울먹이던 아이가 어느새 울음을 똑 그쳐요. 하늘을 날다가 다시 아버지 품으로 내려오며 꺄르르 웃습니다. 또, 한 번 날까, 하면서 붕 던지면, 아주 함박웃음 됩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큰아이가, 나도 하늘 날래, 하며 달라붙습니다. 음, 너는 이제 좀 힘든걸. 몇 밤 자면 여섯 살 될 큰아이를 집안에서 천장까지 붕 던지기에는 좀 버거워요. 그래, 큰아이는 어깻죽지에 손을 끼워 척 들어서 한 바퀴 돕니다. 자, 너는 이만큼만 즐겨, 괜찮지?


  이동안 작은아이는 응, 응, 하면서 다시 저를 날려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습니다. 몇 차례 하늘날기를 시키다가는, 아이구 힘드네, 하고 드러눕습니다. 그러면 두 아이는 서로 콧소리 내며, 더, 더, 하고 외칩니다. 슬쩍 엎드립니다. 엎드려서 책 하나 집습니다. 두 아이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아버지 등을 타려고 합니다. 작은아이는 키가 작아 등판을 잘 못 기어오르고, 큰아이는 썩썩 올라탑니다. 나는 아이들한테 말이 되어 책을 읽습니다. 아이는 말을 타며 놀고, 나는 아이들이 저희 몸무게로 내 허리를 눌러 주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책을 읽습니다.


  무릎걸음으로 옆방으로 건너갑니다. 이부자리에서 옆으로 픽 쓰러집니다. 말타기를 하던 큰아이는 이부자리로 폭 엎어집니다. 엎어지면서 깔깔깔 웃습니다. 웃음소리를 들은 작은아이가 뭔가 하고 달려옵니다. 작은아이는 누나 곁에서 부러 폭 엎어지면서 따라 웃습니다. 서로 이부자리에서 쓰러졌다가 섰다가 되풀이하면서 웃고 떠듭니다.


.. 한때 누구보다 이 골목을 잘 알던 개와 고양이 / 그림자도 얼씬하지 못한다 다리 달린 것들은 모두 쫓겨났다 / 까치와 라일락과 천 개의 구름, 날개 있는 것들은 모두 쫓겨났다 ..  (천 개의 빈집)

 

  우리들 보금자리는 시골이기에, 웃층 아래층 따로 없습니다. 집안에서 아이들이 떠든들 이웃집까지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큰소리로 소리를 질러도 되고, 방바닥을 쿵쿵 굴러도 됩니다. 한밤에 피아노를 두들기든 북을 두들기든 피리를 불든 하모니카를 불든 다 좋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 겨레는 층집은 안 짓고 살았어요.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도, 달동네 작은 집이라 하더라도 모두 ‘마당집’이었지, ‘땅밑집’이나 ‘옥탑집’이 아니었어요. 일제강점기 언저리에 일본사람이 지은 나무집이 아니라면, 2층짜리 집이 없었어요. 도시에서 제법 살 만한 이들이 지은 새마을주택이 아니라면, 2층이나 다락방이 따로 없었어요.


  다닥다닥 붙은 도시 골목집에서는 아이들이 밤늦도록 놀 적에, 얇은 흙벽이나 나무벽을 타고 이웃집 사람이 좀 시끄럽다 느낄 만한 소리가 퍼졌겠지요. 그러나 이웃집에도 으레 아이들이 있으니, 이쪽에서 떠들든 저쪽에서 떠들든, 어느 집에서나 왁자지껄한 노랫소리가 울렸어요. 누구나 방바닥을 쿵쿵 울리는 놀이를 즐기고, 언제나 방바닥 콩콩 뛰고 구르며 살았어요.


  이제 5층 10층 20층 30층 층층층층 올라서는 집들이 수없이 들어섭니다. 시골 읍내에도 층층집이 들어섭니다. 마당집 아닌 층층집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아이들은 집안으로 들어오면 홀가분하게 뛰지 못합니다. 달리지 못합니다. 노래하지 못하고 구르지 못해요.


  아이들은 낮이고 밤이고 놀고파요. 아이들은 밥을 먹다가도 슬그머니 밥상 앞에서 엉덩걸음으로 뒤로 빼다가는 까르르 웃으며 놀고파요. 이 아이들과 살아가는 우리 어버이들은 어떤 집에서 어떤 사랑을 꽃피울 때에 서로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없다면, 아이들이 실컷 노래하거나 구를 수 없다면, 이런 곳을 ‘아이와 함께 살 보금자리’로 삼아도 될까 궁금합니다.


.. 직장만 바라보고 살던 이들은 모두 눈이 어두워졌다 ..  (합성사진)


  박지웅 님 시집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문학동네,2012)를 읽습니다. 박지웅 님은 시집 첫머리에 “라일락을 쏟았다 / 올겨울, 눈과 나비가 뒤섞여 내리겠다” 하고 노래합니다. 노래하는 이야기는 조그마한 책에 조그마한 사랑으로 담깁니다.


  어쩌다 라일락을 쏟았을까요. 무슨 일이 있기에 라일락을 쏟고 말았을까요. 그러나 라일락을 쏟았으니 눈도 내리고 나비도 내리겠지요. 라일락을 쏟고 보니 눈이랑 나비가 서로 얼크러지며 어여쁜 빛을 베풀겠지요.


.. 웅아, 아버지 돌아가셨다 / 기차가 고향역 들어설 때 누이는 연하고 붉은 말을 전했네 ..  (홍시)


  마음샘에서 꽃말을 길어올립니다. 마음에 깃든 샘이요, 꽃다운 말입니다. 마음을 싱그러이 밝히는 샘이며, 꽃처럼 곱고 환한 말입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가장 이쁜 소리를 뽑아 한 마디 두 마디 또박또박 말합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가장 고운 소리를 뽑아 한 마디 두 마디 웅얼웅얼 말합니다.


  햇살이 드리우는 시골집 마당은 밝습니다. 마당에 넌 빨래가 천천히 마릅니다. 햇살 머금는 겨울바람이 보드랍게 마을을 감돕니다. 멧새가 먹이를 찾아 우리 집 후박나무와 초피나무에 앉았다 갑니다. 작은 멧새는 작은 초피나무 가지에 살포시 앉아 초피나무 열매를 몇 알 따서 먹습니다. 겨울 가고 봄이 와서 후박꽃이 피고 나면, 멧새는 후박꽃 따먹으러 오겠지요. 후박꽃 지면서 후박열매 검붉게 맺히면 멧새는 또 후박열매 따먹으러 오겠지요.


  내 살가운 이웃 누구나 마당집에서 나무 한 그루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나날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5.1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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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프다

 


후끈후끈 달아올라
눈물까지 줄줄 흘리는
큰아이
작은아이
곁에서 밤새
다독이고 쓰다듬고
이불 여미면서
마음속으로 되뇐다.

 

다 나아 다 나아 다 나아,
씩씩하게 튼튼하게 말끔하게 일어나자,
곱고 새롭고 당차게 놀자,
느긋이 넉넉히 달콤하게 자자,
아침이 밝으면,
네 몸도 마음도 밝을 테니까.

 


4345.11.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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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성과 사랑 - 건강한 성과 행복한 사랑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8
노을이 지음, 스튜디오 돌 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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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01

 


사랑하며 살아갈 나와 너
― 10대와 통하는 성과 사랑
 노을이 글,돌 스튜디오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2012.12.14/12000원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면서도 생각하지만, 나 스스로 한 사람 목숨 받아 찬찬히 살아오는 동안 ‘성교육’은 굳이 없어도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베풀 가르침이라면, 또 나 스스로 배울 가르침이라 한다면, 꼭 하나 ‘사랑교육’이면 넉넉하지 싶어요. 성관계·성문제·성평등 같은 대목은 굳이 이야기할 까닭이 없으리라 느껴요. ‘사랑하며 어깨동무할 삶’을 이야기하면 모든 실타래가 솔솔 풀릴 수 있으리라 느껴요.


.. 많은 기업과 방송 매체들이 성으로 돈을 벌기 위해 쾌락을 소비하도록 부추기고, 점점 더 강한 자극을 만들어 내요. 그런데 이들이 부르짖는 성의 자유 이면에는 성 소비를 위한 도구가 되어 자신의 성을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성매매 여성들이나 포르노 배우들이죠. 이들은 대부분 성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서 그렇게 살아요. 그리고 비인격적인 대접을 받고 소외당하죠 … 대중매체들은 ‘원하는 대로 누릴 권리가 있다’는 핑계로 자극적이고 왜곡된 성 문화가 담긴 정보를 만들어 내고, 파괴적인 연애관을 담은 작품들을 쏟아 냅니다. 이러한 정보들은 ‘네가 선택할 자유가 있다’라고 말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매체가 주는 자극에 익숙해지고 그 메시지를 믿도록 해요 ..  (16, 19쪽)


  내 어린 날과 내 푸른 날을 돌이켜보면, 나는 성교육도 받은 적 없지만, 사랑교육 또한 받은 적 없어요. 학교에서는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쯤에서야 비로소 성교육이랍시고 비디오 한 번 보여주고 끝이었어요. 고등학교에서는 아예 성교육조차 없었어요. 고등학교에서는 오직 대학입시 교육만, 아니 대학입시를 바라보는 문제풀이만 있었어요.


  그러니까, 나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 동안 사랑을 배운 적이 한 차례도 없어요. 교사도 어버이도 사랑을 이야기하거나 다루거나 밝히지 않았어요. 교과서에서는 사랑을 들려주지 않고, 여느 책에서도 사랑을 말하지 않아요. 인문책은 인문사회과학 지식에만 파묻힌 채, 사람이 누릴 사랑을 깨우치도록 이끌지 않아요.


  사랑이 없는 삶이란, 슬프며 어둡고 퀴퀴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이란, 차갑고 매몰차며 어리석습니다. 사랑이 없는 나라란, 경제성장율이나 전쟁무기나 물질문명으로 치닫습니다.


  사랑 없는 채 돈만 밝히는 사람이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가요. 사랑 없는 채 전문가라 우쭐거리는 사람은 얼마나 건방지고 무시무시한가요. 사랑 없는 채 지식을 앞세우는 사람은 얼마나 번드르르하면서 속은 텅 비는가요.


  꽃 한 송이도 사랑으로 핍니다. 풀 한 포기도 사랑으로 푸릅니다. 나무 한 그루도 사랑으로 우람합니다.


  힘이 없으면 힘이 있는 놈한테 잡아먹힌다고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엉터리입니다. 사랑은 없이 오직 껍데기로만 살겠다는 뜻인데, 사랑이 없으면서 어떤 삶을 누리겠어요. 사랑은 없으면서 힘으로만 누르겠다면, 차츰 늙어 힘이 빠지면 당신 또한 다른 힘센 놈한테 잡아먹혀야 한다는 소리일밖에 없어요. 힘을 앞세우거나 돈을 앞세우거나 이름을 앞세우는 짓은, 나 스스로 갉아먹는 바보놀음이에요.


.. 야동의 힘은 대단해요. ‘보기만 하는 건데 뭐 어떄?’라고 십게 생각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머리는 분명히 영향을 받고 있어요. 야동에서 강간을 하면 강간을 해도 되는 것 같고, 야동에서 여성이 성관계를 좋아하면 모든 여성은 성관계를 좋아하는 것 같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에요 … 보기에는 엄청난 쾌감을 느끼는 것 같은 배우들은 사실 누구보다 고통스러워하는 우리의 이웃이에요.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죠. 야동은 결코 진실을 보여주지 않아요. 연출된 환상에 불과합니다 … 야동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진짜 성관계가 어떤 건지 말하지 않아요. 여러분 부모님은 야동에서처럼 성관계를 해서 여러분을 낳은 게 아니에요. 여러분의 엄마 아빠가 나눈 성관계는 쾌락과 욕구 충족만을 위해 나눈 관계가 아닌,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따듯하고 부드럽게 공유한 관계예요 ..  (63, 76, 84쪽)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손길이 좋은 아이들입니다. 짓궂게 더듬는 손길은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따뜻하게 얼싸안는 품이 반가운 아이들입니다. 거칠게 다루는 품은 어느 누구라도 달갑지 않아요.


  따사로운 손길로 씨앗을 건사해서 흙을 살찌웁니다. 기름진 흙은 씨앗을 곱게 보듬어 튼튼히 뿌리를 내리도록 돕습니다. 밝은 햇볕은 여린 새싹이 싱그러운 풀포기로 자라도록 이끕니다. 맑은 바람은 풀줄기에 싯푸른 빛이 감돌도록 거듭니다. 시원한 빗물은 풀잎에 드리우며 고운 숨결 피워냅니다.


  사람도 짐승도 새도 풀을 먹습니다. 풀은 사람과 짐승과 새한테 먹이를 내어주며 스스로 한결 푸르게 빛납니다. 풀은 잎사귀를 내주어도 다시 새 잎사귀가 돋습니다. 풀은 뿌리째 내주어도 다시 새 뿌리를 내어 자랍니다.


  풀은 꽃도 잎도 열매도 씨앗도 모두 내줍니다. 그러고도 넉넉히 우거져서 풀숲을 이루고 나무숲을 이뤄요.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무엇을 만드는데, 이렇게 나무를 쓰고 또 써도 숲은 그예 우거집니다. 왜냐하면, 풀과 나무는 사람들하고 사랑을 주고받거든요. 사람들한테서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마음을 받으며 저희 몸통을 모두 내줍니다. 사람들은 풀과 나무를 고맙게 받아 쓰면서, 이녁이 늘 찬찬히 일구며 북돋운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마음을 사랑스레 건넵니다.


  어느 과학자는 따로 실험을 해서 ‘풀도 나무도 클래식 노래를 들으면 더 싱그럽고 튼튼하게 자란다’고 밝혀요. ‘풀도 나무도 사람들이 고운 말로 얘기하면 더 싱그럽고 튼튼하게 자라지만, 풀도 나무도 사람들이 거친 말을 마구 일삼으면 제대로 못 자라거나 시든다’고 밝혀요.


  굳이 과학을 빌지 않아도 어린이도 아는 일이에요. 어린이들은 ‘과학이라는 낱말을 몰라’도, 이녁 스스로 살살 예쁘게 풀잎 어루만질 때에 더 푸르게 빛나는 줄 몸으로 알아요. 어린이들은 ‘과학실험을 몰라’도, 이녁 스스로 가만가만 곱게 나무줄기 얼싸안을 때에 더 튼튼히 자라는 줄 마음으로 알아요.


.. 사랑은 정직하게 나의 마음을 보여주고, 또 상대의 진실한 마음도 수용할 줄 아는 가장 친밀하고 소중한 만남, 바로 ‘관계’예요 ’ 남성에게 스킨십이 중요하다면 여성에게는 정서적 관계가 중요해요. 여성은 임신과 양육을 하도록 성장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훨씬 신중해요. 이 사람이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는 채로는 섹스를 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이 있죠. 이성적으로 하나하나 따지지 못해도 소녀들의 마음에는 이런 본능적인 경계선이 있어서 훨씬 고민도 많고 조심스러운 거예요.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스킨십을 거부하는 게 아니랍니다. 지금도 계속 사귀고 있는 이유는 도리어 많이 좋아하고 관계를 잘 만들고 싶기 때문이에요 … 연애를 하는 데 진도가 왜 중요한가요 … 상대방은 원하지 않는데 내가 원한다고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 남자 친구는 지금 날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날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걸 해 보고 싶은 거죠 ..  (86, 104, 105, 114쪽)


  사랑하며 살아갈 나와 너입니다. 사랑을 배우고 가르칠 나와 너입니다.


  다만, 학문으로 가르칠 사랑이 아닙니다. 삶으로 가르칠 사랑입니다. 삶으로 가르쳐, 삶으로 배울 사랑이에요.


  밥짓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밥을 차려서 함께 나누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빈 밥그릇을 치우며 설거지하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옷을 짓거나 깁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옷을 입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옷을 빨고 널고 개고 건사하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집을 짓고 손질하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집을 돌보며 즐거운 보금자리 되도록 꾸리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이리하여, 나를 사랑할 짝꿍을 찾는 길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내가 사랑할 짝꿍을 만나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기에 즐거이 가르치며 기쁘게 배웁니다.


  졸업장을 따려고 배우지 않아요. 자격증 때문에 가르치지 않아요. 졸업장으로 일자리를 얻어야 하니까 배우지 않아요. 자격증으로 뭔가 자랑하려고 가르치지 않아요.


.. 자신이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연애를 할 때도 그 가치를 지키세요 … 상대를 배려하며 자신도 잘 가꾸는 사랑의 실력을 키워 가세요. 그러다 이별을 경험한다 해도 괜찮아요. 헤어진 것을 후회할 필요도 없어요. 우린 성장하는 중이니까요 … 두 사람을 위해서 지금 당장 피임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임신이라는 엄청난 문제가 닥쳤을 때 정말 책임질 것 같나요? 이 순간의 분위기와 흥분된 감정은 성행위가 끝나면 지나가 버리고 말아요 ..  (117, 121, 135쪽)


  도덕은 따로 가르치지 못합니다. 도덕은 삶으로 받아들여 누리는 하루입니다. 철학은 따로 가르치지 못합니다. 철학은 하루하루 알차게 누리는 삶입니다. 그러면, 사랑도 못 가르친다고 하겠지요. 맞는 말이에요. 사랑도, 하나하나 따지면, 누가 누구한테 가르치지 못해요. 그러나, 사랑을 가르치고 배운다 할 때에는, 스스로 사랑스럽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사랑스레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집을 돌봅니다. 사랑스레 말을 하고 꿈을 꾸며 일을 합니다.


  사랑스레 놀이를 즐깁니다. 사랑스레 심부름을 합니다. 사랑스레 글을 씁니다. 사랑스레 사진을 찍고, 밭에서 김을 매며, 등짐을 져 나릅니다.


  성교육 아닌 사랑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은, 어떤 지식이나 정보로 ‘사랑은 바로 이렇지! 이걸 알라구!’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사랑으로 누리는 삶은 어떠한가를 몸소 빛내면서 즐길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랑교육입니다. 이를테면, 볕 잘 드는 숲속 풀밭에 앉아 눈을 감고 해바라기를 해요. 밭뙈기에 씨앗 한 알 심고는 흙을 잘 도닥여 봐요. 아이를 품에 안고 가장 고운 목소리를 뽑아 노래를 불러요. 들길을 함께 걸어요. 바람을 함께 들이켜요. 신을 벗고 흙땅을 맨발로 달려요. 냇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마셔요. 풀밭에 앉았으면 풀내음을 맡고, 멧새와 들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요. 풀벌레 속삭이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요.


.. 임신하면 원치 않아도 아기가 삶의 중심이 된답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살던 학교생활과 친구 관계, 취미 생활, 미래에 대한 꿈도 송두리째 바뀌죠. 나만큼이나 중요한 또 한 사람(아기)이 내 인생에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 서로가 사랑하기로 했다면, 그 관계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세요 … 돈 때문에 자신을 팔아서는 안 돼요. 그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버리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까지 상처 입히는 일이 돼요 … 아시다시피, 부모님께서 건강한 성 인식을 갖지 못하면 아이에게도 건강한 성을 가르쳐 주기 어렵습니다 ..  (138, 144, 152, 211쪽)


  ‘노을이’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성과 사랑》(철수와영희,2012)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참말,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이러한 ‘사랑책’을 읽히면서, 우리 어른과 어버이도 이 같은 사랑책을 슬기롭게 읽을 수 있을 때에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사랑이 샘솟는 자리를 헤아리고, 사랑이 흐드러지는 길을 살피며, 사랑이 빛나는 꿈을 돌아볼 때에, 사람들은 저마다 활짝 웃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대학교에 붙어야 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랑을 하며 살아갈 아이들입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어야 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랑스레 일하고 사랑스레 살림을 꾸릴 아이들입니다. 유명인사가 되거나 이름을 드날릴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랑스레 웃고 사랑스레 노래할 아이들입니다.


  내가 나를 아끼고, 네가 너를 아끼면서, 서로가 서로를 아낍니다. 내가 나를 슬기롭게 보살피고, 네가 너를 슬기로이 보살피며, 서로가 서로를 슬기로이 보살피며 어깨동무합니다.


  별빛이 곱게 흐릅니다. 햇빛이 온누리를 골고루 비춥니다. 바닷바람은 들바람이 되고, 들바람은 숲바람이 됩니다. 냇물은 빗물이 되고, 빗물은 다시 냇물이 됩니다. 구름은 무지개가 되고, 무지개는 어느새 안개가 되며, 안개는 새삼스레 아지랭이가 됩니다. 달팽이가 풀잎을 먹습니다. 풀잎에 풀벌레 알이 붙습니다. 풀꽃에 나비가 앉습니다. 애벌레가 풀잎을 먹습니다. 사람이 풀을 뜯습니다. 사람들 옷에 풀씨가 붙습니다. 바람이 휭 불더니 풀잎노래 흐드드 퍼뜨리며 지나갑니다. 고래는 깊은 바다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달빛이 흘러 물결이 넘실거립니다. 참새는 도시에서도 고운 이야기꽃을 나누어 줍니다. 지렁이는 똥을 고운 거름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잠자리가 날고, 제비가 집을 짓습니다. 개구리가 논에 알을 낳고, 가재가 도랑에서 새끼를 칩니다. 도룡뇽이 지나가고, 다람쥐가 나무열매를 갉습니다.


  저마다 삶을 빚어 이야기를 빚습니다. 모두들 삶을 일구며 사랑을 일굽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너무 오래 가두지 마셔요. 아이들을 학원에 자꾸 가두지 마셔요. 아이들이 서로 사랑하며 지낼 수 있도록 자리를 넓혀 주셔요. 아이들이 스스로 사랑하는 넋으로 지낼 수 있게끔 숨통을 터 주셔요. 다 다른 아이들한테 모두 똑같은 옷을 입히지 마셔요. 다 다른 아이들이 마을마다 집마다 저마다 고운 사랑으로 거듭나는 길을 맑은 눈빛으로 지켜보아 주셔요. 4345.1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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