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박또박 책읽기

 


  집안일 하고, 자전거에 아이들 태워 마실 다녀오고, 이래저래 글쓰기를 하다 보면, 해 기울고 어두운 저녁나절에 몸에서 힘이 쪼옥 빠진다. 일찌감치 드러눕고 싶은데, 아이들은 잠들 생각을 않으면, 나도 섣불리 자리에 눕지 못한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책을 펼치기도 하는데, 이때 큰아이가 빈책을 펼쳐 글씨쓰기 함께하자고 하면, 미리 종이에 또박또박 적은 글판을 내민다.


  큰아이는 글판에 적힌 글을 보며 따라 적는 일은 그리 내키지 않는 듯하다. 그래도, 너 혼자서 이 글판 보고 글씨쓰기를 놀이 삼아 즐길 수 있잖니. 큰아이는 빈책에 내가 먼저 한 줄을 천천히 또박또박 적으며 읽어 주기를 바란다. 내가 몸이 힘들어서 글판을 내밀기는 했지만, 나도 한 줄씩 새 말마디를 생각해서 또박또박 적으며 하나하나 읽어 주면 한결 즐겁다. 고운 낱말을 내 혀로 굴리고, 고운 낱말을 내 눈으로 보며, 고운 낱말을 내 손으로 적바림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새 기운이 솟는다.


  어떤 말을 어떻게 나누려는 삶일까. 어떤 글을 어떻게 빚으려는 삶일까. 어떤 사랑을 어떻게 꿈꾸려는 삶일까. 큰아이는 어버이가 쓰는 글씨대로 제 글씨를 가다듬는다. 어버이로서 또박또박 적바림하는 글씨가 아니라면, 아이도 아무렇게나 흘려쓸밖에 없다. 나 스스로 온누리를 맑고 밝게 사랑한다면, 나부터 즐거우면서 아이한테도 맑고 밝은 사랑이 시나브로 깃든다. 한 마디 말이 씨앗이다. 434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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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넋

 


  언제나 새로 찾아오는 하루입니다. 언제나 새로 누리는 하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루를 살지, 달력 날짜를 살지 않습니다. 1월 1일이건 12월 31일이건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날짜가 바뀌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넋이 거듭나는 삶입니다. 나한테 가장 아름다우면서 즐거울 길을 찾지 않는다면, 나이를 한 살 더 먹거나 어떤 이름값, 이를테면 신분이나 계급이나 직책이 올라간다 해서, 내 삶이 넉넉하거나 따사롭지 않습니다.


  어린이마음일 때에는 사람을 만날 적에 나이를 따지지 않습니다. 어린이마음일 때에는 사람을 사귈 적에 돈을 살피지 않습니다. 어린이마음일 때에는 사람을 마주할 적에 얼굴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른마음이라 하더라도 나이나 돈이나 얼굴을 헤아릴 까닭이 없습니다. 무언가 겉치레나 껍데기를 돌아보는 사람이라 한다면, 이녁은 사람됨을 잃었다 해야지 싶습니다.


  묵은절을 하면서 새날을 맞이합니다. 어제 하루는 기쁘게 마무리하고, 오늘 하루는 예쁘게 누리고 싶습니다. 434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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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사람을 사진으로 담는 최민식 님이, 그동안 내놓은 사진책 <휴먼> 14권을 간추린 사진책을 선보인다. 이제는 찾아보기 몹시 어려운 예전 사진책에서 하나하나 가려뽑은 도톰하고 앙증맞은 사진책이 되겠구나. 이 작고 도톰한 사진책이 우리 사진벗 모두한테 예쁜 선물이 될 수 있기를 빈다.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휴먼 선집- Human Vol.1-14
최민식 지음 / 눈빛 / 2012년 12월
29,000원 → 27,550원(5%할인) / 마일리지 830원(3% 적립)
2012년 12월 3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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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아홉 달째 함께 살아가는 작은아이가 ‘엄마’와 ‘아빠’라는 낱말 말고, 세 번째로 다른 낱말을 한 마디 뱉는다. ‘코’. 눈 코 귀 입 혀 이마 머리 목 많이 있는데, 손 발 다리 배 배꼽 손가락 발가락 많이 있는데, 어떻게 너는 다른 무엇보다 ‘코’를 이렇게 일찍 말하니? 작은아이한테 세 번째 낱말이 생겼으니, 곧 네 번째 다섯 번째 낱말이 줄줄이 이어질까? 무럭무럭 자라며 튼튼하고 씩씩하게 네 생각을 꽃피우렴. 4345.12.3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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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 짓는 애틋한 틀
 (313) 덧- : 덧밀가루

 

“잠깐, 여러 장 달라붙었잖아. 덧밀가루 뿌렸어?”
《오자와 마리/노미영 옮김-은빛 숟가락 (1)》(삼양출판사,2012) 53쪽

 

  만화책을 읽다가 문득 멈춥니다. 어, ‘덧밀가루’라는 말이 있나? 국어사전을 들춥니다. 국어사전에는 ‘덧밀가루’라는 낱말이 안 나옵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쓴 적도 없습니다. 만두를 빚을 적에 우리 어머니는 늘 “밀가루를 뿌리라.”고만 하셨지 “덧밀가루를 뿌리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덧밀가루’라 한다면, “덧붙이는 밀가루”인 셈이요. 하지 않아도 될 만하지만, 부러 더 놓거나 쓰는 밀가루라 할 만합니다. 그래서, 만두를 빚으면서 도마에 밀가루를 뿌린다든지, 만두껍질을 편다든지, 다 빚은 만두를 쟁반에 올린다든지, 이런저런 자리에 밀가루를 ‘더 뿌린다’고 할 적에 쓰는 낱말로 잘 어울립니다. 참 알맞다 싶은 낱말입니다.

 

 덧말 . 덧글 . 덧이야기
 덧셈 . 덧생각 . 덧마음
 덧일 . 덧돈 . 덧손

 

  무언가 더한다고 할 때에는 ‘덧-’을 앞가지로 삼을 수 있습니다. ‘덧셈’ 같은 낱말을 빼고는 국어사전에조차 안 실린다 할 텐데, 국어사전에 실리고 말고를 떠나, 이러한 낱말을 알맞게 쓸 만하다면 쓸 노릇입니다. 인터넷에서는 ‘댓글’이나 ‘덧글’ 같은 말마디를 즐겁게 쓸 수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마친 다음, 따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덧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생각을 더하며 ‘덧생각’이 되고, 모자라다 싶은 돈이든 넉넉하다 싶은 돈이든, 여기에 조금 더 보태고 싶은 돈이면 ‘덧돈’이 돼요. 일손이 넉넉하다 하더라도 내 손길을 보태면 ‘덧손’이 됩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한다면, ‘덧노래’ 같은 낱말을 지을 수 있습니다. 노래잔치를 하면 으레 ‘앵콜(encore)’을 외쳐요. 표준말로는 ‘앙코르’요, 줄여서 ‘앙콜’처럼 쓰기도 한다는데, 표준말 아닌 ‘앵콜’을 참 많이 씁니다. 요즈음은 ‘한 번 더’ 같은 말을 외치기도 하지요.


  노래를 듣는 쪽에서는 ‘한 번 더’ 하고 외칠 만합니다. 그러면, 노래를 부르는 쪽에서는? 노래를 부르는 쪽에서도, “자, 그러면 ‘한 번 더’ 부르겠습니다.” 하고 말할 만하지요. 그런데 으레 ‘앵콜곡(앙콜곡)’이라고 덧붙여요.


  노래잔치 나누는 자리에서는 ‘덧노래’를 부른다 할 수 있습니다. 노래를 다 불르서 마치는 자리에, 노래 한두 가락을 더하니까 ‘덧노래’입니다. 어떤 상을 주는 자리에서, 상을 받은 기쁨을 말한 다음, 몇 마디 더하고 싶으면 ‘덧말’을 한달 수 있겠지요. 글월 한 쪽 띄울 때에는 흔히 ‘추신(追伸)’이라는 한자말을 쓰곤 하지만, 한국사람 한국말로는 ‘덧말’입니다.


  저마다 한 숟가락씩 덜어 새로 밥 한 그릇 이루는 일을 가리켜, 한자말로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 하지만, 이 또한 ‘덧밥’인 셈이에요. 조금씩 나누어 보태는 밥이거든요.


  생각을 더하고 더해서, 곧 생각 한 자락에 덧생각 하나를 얹어, 말삶과 글삶을 북돋웁니다. 아름다이 기울이는 마음에 따스한 마음을 살며시 보태어, 덧마음을 넉넉히 주고받습니다. 4345.12.3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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