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라우프 놀이 1

 


  새해 첫날 밝히는 아이들 놀이는 ‘훌라우프 돌리기’. 여섯 살이 된 큰아이는 제법 모양 잡힐 만큼 돌리고, 세 살이 되는 작은아이는 아직 훌라우프 끌고 마당을 걸어다니며 논다. 이름을 붙여 훌라우프이지만, 그냥 큰 동글뱅이라 해도 돼. 허리에 끼고 돌려도 되지만, 끌고 다녀도 되고, 사이사이 지나가도 돼. 나중에 아버지가 동글뱅이넘기를 보여줄게.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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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글쓰기

 


  나는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갓난쟁이였을 적, 어떤 물을 마셨는지 모릅니다. 아니, 모른다기보다 못 떠올립니다. 그러나, 두 아이와 살아가며 어렴풋하게 떠올리곤 합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샘물이든 냇물이든 우물물이든 수도물이든, 그저 물이면 다 마셔요. 이 물은 어떻고 저 물은 어떻고 하면서 가르지 않습니다. 곧, 아이들로서는 어떤 물을 마셔도 몸을 살찌우는 물이 됩니다. 이 물을 바라보는 어른 마음에 안 좋은 생각이 깃들면, 아이들로서는 아무렇지 않을 물이 안 좋은 물이 되고, 어른 마음에 다른 생각 없이 고요한 너그러움 있으면, 이 물 마시는 아이들은 고요한 너그러움을 함께 마셔요.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 운동장 한켠 물꼭지를 틀어 물을 마셨습니다. 수도물이라 안 마시고 샘물이라 더 달다고 여기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방학을 맞이해 내 어버이 시골집을 찾아가서 우물물을 마실 적에 ‘물맛이 다르네’ 하고 처음으로 느낍니다. 중학생 때였는지, 아직 국민학생 때였는지, 인천 월미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영종섬을 걸어서 한 바퀴 돈 적 있는데, 두 시간 가까이 걷다가 어느 시골집 마당에서 물 한 모금 얻어 마시는데, 수도물 아닌 샘물이었을 그 집 물 또한 ‘물맛이 다르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 마음이 다르니 물맛이 달라질 수 있어요. 내 마음은 한결같으나 물맛이 다를 수 있겠지요.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으면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물 한 모금 마시는 동안 물을 둘러싼 여러 가지를 나란히 헤아립니다. 이 물 한 모금이 내 몸으로 스며들기 앞서, 어떤 하늘을 누리고 어떤 햇볕을 머금으며 어떤 흙을 거쳤을까 하고 되새깁니다. 어떤 풀과 나무와 꽃을 살찌우던 물이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어떤 목숨을 북돋우던 물이요, 어떤 숨결로 스며들다가 나한테까지 찾아오는 물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달게 자는 아이들 이마를 어루만지다가, 마당에 내려서서 밤별을 올려다보다가, 식구들 이불깃을 여미다가, 차가운 샘물 길어다 마시다가, 아하 그러네 하고 천천히 깨닫습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아가며 시골살이를 글로 쓸 수 있는 오늘 하루를 참 좋아하는구나. 도시에서는 시골을 그리는 글을 쓸밖에 없지만, 시골에서 살아가니까 시골살이 한껏 누리며 하루하루 실컷 사랑하는 이야기를 글로 마음껏 즐길 수 있구나.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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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고르기

 


  아이들하고 읽을 그림책을 고르는 일은 즐거우면서 고단합니다. 온누리 아름다이 밝히는 그림책을 어버이로서 마주하는 일이란 몹시 즐겁습니다. 나는 어버이 자리에 있지 않던 예전부터 그림책이 참 좋다고 느꼈어요. 아이들한테 읽히는 책이 그림책이라기보다, 누구한테나 아름다운 삶을 일깨우는 어여쁜 책이 그림책이라고 느껴요. 그런데, 어여쁜 그림책이라 하지만, 섣불리 빚은 그림책을 만나야 하면 고단합니다. 그림은 예쁘장하지만 여러모로 아귀가 안 맞는다든지 어설프다든지 ‘삶을 제대로 안 살피거나 안 겪은 채’ 겉으로 그리는 그림책은 달갑지 않아요. 참말, 그림 솜씨나 재주가 뛰어나도록 그려야 하는 그림책은 아니에요. 알맞고 바른 그림결을 건사하면서 홀가분하고 따사롭게 그릴 수 있는 그림책이면 돼요. 대학교나 나라밖에서 ‘그림(일러스트)’을 배운 이들이 그림책을 곧잘 그리는데, 이를테면 ‘사람몸 비율(인체 비율)’이 어긋난다든지, 여느 삶자락을 잘못 옮긴다든지, 사진으로 찍어서 그리느라 막상 어느 모습을 어떻게 살릴 때에 빛나는가 하는 대목을 놓친다든지, 자꾸자꾸 아쉽다고 느껴요. 한겨레 옛삶을 되살리려 애쓰는 그림책을 볼 때면 이런저런 대목이 눈에 걸립니다. 척 보아도 사진자료 많이 들추며 그린 그림이로구나 싶은 그림책이 많아요. 이럴 때에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차라리 사진으로 찍어 사진책으로 보여줄 때가 낫겠다’ 싶어요. 그림책을 그리는 까닭은 따로 있거든요. 사진처럼 그리거나 사진만 보고 그린다면 그림책이 아니에요. 이런 책은 그림책이 아니라 ‘기록자료를 그림으로 옮겼을’ 뿐이에요. 왜 아이들한테 사진책 보여주기를 꺼릴까요. 그림으로 그려야 더 낱낱이 또렷이 보여줄 수 있나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꼼꼼하게 그린 그림이 사진보다 한결 낫지 않아요. 사진을 찍든 그림을 그리든, 우리 어른들 마음과 넋과 생각이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져요. 사진을 찍든 그림을 그리든, 따사로운 사랑과 꿈과 믿음을 실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책 하나로 태어나 아이들한테 선물로 건넬 수 있어요. 어떤 지식이나 정보나 자료나 역사나 문화나 예술이라는 이름을 섣불리 붙이지 말아요. 무엇보다, 그림책 그리는 그림쟁이 스스로 ‘살지 않는’ 이야기는 되도록 안 그리기를 빌어요. 도시 아파트에서 살아가며 ‘시골 나무집이나 흙집’ 이야기를 그릴 적에는 그림에 나오는 모습이 번드레레하거나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숨결 깃드는 집’다운 모습이 샘솟지 못해요.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려야지요. 스스로 살아가지 않고 ‘전통을 살려서 아이들한테 가르치자’는 뜻이 되어서는 그림책이 그림책답지 않아요. ‘학습교재’나 ‘학습도구’가 되고 말아요.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 누구나 즐거이 누리는 이야기책이에요. 그림책을 ‘학습 보조 교재·도구’로 여기지 않기를 빌어요. 그림책을 사랑 어린 이야기책이며 꿈 담은 이야기꽃으로 느낄 수 있기를 빌어요.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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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아, 미안하다 민음의 시 139
심언주 지음 / 민음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시와 설거지
[시를 말하는 시 8] 심언주, 《4월아, 미안하다》

 


- 책이름 : 4월아, 미안하다
- 글 : 심언주
- 펴낸곳 : 민음사 (2007.3.26.)
- 책값 : 7000원

 


  씻습니다. 밥을 하고 밥을 먹인 뒤 아이들을 씻기고 나서 나도 씻습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면서 나 혼자 달랑 씻는 일이 없습니다. 아이들과 지내니 나부터 씻는 일도 없습니다.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 무렵, 굳이 방바닥 따숩게 덥히지 않을 적에는 아이들 씻기기 앞서 물을 따숩게 하려고 보일러를 돌리며 내가 먼저 씻습니다. 따순물 나오기 앞서 찬물이나 미적지근한 물이 흐를 때에 내가 씻고, 물이 따뜻하다 싶으면 비로소 아이들을 불러서 씻깁니다.


  아이들 옷을 벗기고 바닥에 옷가지를 죽 깝니다. 아이들 씻기며 흐르는 물이 옷가지에 떨어지도록 합니다. 아이들 씻길 때 머리며 팔이며 다리며 비비고 닦고 하노라면, 아이들이 참 작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아이들 키높이에서 아이들을 씻기고 보면, 내 눈높이가 어떠한가 하고 다시금 깨닫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날 아이들이 어떤 몸밥을 먹고 어떤 마음밥을 받아들이는가 하고 천천히 헤아립니다. 어른인 내 몸과 마음을 건사할 밥이란 무엇이요, 아이들 몸과 마음을 다스릴 밥은 어떻게 마련할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돌아봅니다.


  생각을 씻고, 삶을 씻으며, 살림을 씻습니다. 따스하게 흐르는 물에 씻고, 시골마을 촉촉히 적시는 빗물에 하나씩 씻습니다.


.. 안성군 대덕면 삼한리 / 아버지 무덤 위에도 풀들이 자란다. / 아버지를 따라왔는지, 아버지가 끌고 왔는지, 아버지가 모셔 왔는지 잔디 사이로 고들빼기, 개망초들이 비죽비죽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  (예감)


  겨울바람이 차갑습니다. 겨울이거든요. 차가운 만큼 옷을 여러 겹 껴입습니다. 찬바람 쐬며 마당에 서면, 그예 겨울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밤에 아이들 쉬를 누이며 마당에 내려서면, 이야 별 좋네, 하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늦게까지 잠들지 않아 찬바람 듬뿍 쐬며 마당에 서거나 마을 한 바퀴를 돌 때면, 아이들도 이 추위를 새삼스레 느낍니다. 추위를 느끼며 밤하늘 올려다보고, 찬바람 하늘에도 밝게 빛나는 별을 누립니다. 밤이 깊을수록 별빛이 밝고, 밤이 깜깜할수록 달빛이 곱습니다.


  그런데, 별과 달은 시골에만 있지 않아요. 도시에서도 별과 달은 어김없이 있어요. 그저, 도시에서는 도시를 이루는 건물과 자동차와 아스팔트가 빚는 먼지덩이 때문에 별빛과 달빛이 막힐 뿐입니다.


  밤이 가시고 새벽이 찾아오면 환한 햇살이 드리웁니다. 환한 햇살은 겨울에도 여름에도 온누리를 따사로이 보듬습니다. 햇살은 시골 들판에만 드리우지 않습니다. 조용한 숲에도 드리우고, 도시에도 드리우며, 공장 굴뚝이나 고속도로 새까만 길바닥에도 드리워요. 다만, 도시사람은 건물에서 등불 켜고 살아가느라,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안쪽에만 머무니까, 햇살이 드리우는 줄 못 느낍니다. 아니, 햇살을 안 먹으려고 창문을 가립니다. 땅속으로 파고들기까지 합니다.


.. 김밥천국 아줌마는 천국을 말고 있어요. 어두운 하늘 같은 김 한 장을 펼쳐 놓고 곤두서는 밥알을 꾹꾹 눌러요. 밥알 위에 당근 채찍 우엉 부엉 어영부영을 눕히더니 검은 멍석을 둘둘둘 말아요 ..  (안녕, 김밥)


  누구나, 살아가는 대로 바라봅니다. 누구라도, 스스로 이루어 누리는 삶결 그대로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도시사람답게 온누리를 바라봅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에서 살아가는 결대로 온누리를 바라봅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숲결대로 온누리를 바라보고,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바다결대로 온누리를 바라봐요.


  대통령이라면 대통령 자리에서 바라보겠지요. 시장이나 군수라면 시장이나 군수 자리에서 바라보겠지요. 서른 살 어른이라면 서른 살 어른이라는 자리에서 바라봐요. 두 아이 키우는 어버이라면 두 아이 어버이 자리에서 바라보지요. 누구나, 스스로 어떤 자리에 서며 삶을 누리느냐에 따라 눈길·눈썰미·눈높이·눈빛·눈매가 다릅니다. 좋거나 나쁜 금으로 가르지 않아요. 누리는 삶에 따라 바라보는 눈이 다를 뿐이에요.


  더 깊이 바라보는 사람은 더 깊은 삶을 누리는 셈이지요. 더 넓게 바라보는 사람은 더 넓은 삶을 즐기는 셈이에요. 더 따숩게 바라보는 사람은 더 따순 삶을 나누는 셈이요, 더 넉넉히 바라보는 사람은 더 넉넉한 삶을 펼치는 셈입니다.


  아는 대로 바라보지 않고, 사는 대로 바라봐요. 아는 대로 사랑하지 않고, 사는 대로 사랑해요. 아는 만큼 말할 수 없어요. 살아가는 만큼 말할 뿐이에요. 아는 만큼 일하지 않아요. 살아가는 결 고스란히 일해요.


.. 운길산에서 천남성을 만났다 호들갑을 떨었떠니 어떻게 생겼느냐고 그가 물었다 ..  (천남성)


  겨울 설거지는 여름 설거지와 다릅니다. 그러나, 겨울이든 여름이든 틈틈이 조금씩 설거지를 합니다. 겨울에는 따순 물로 설거지를 하며 손을 녹이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로 설거지를 하며 더위를 식힙니다. 겨울에는 틈틈이 물을 쓰면서 물이 얼지 않도록 하고, 여름에는 틈틈이 물을 쓰며 더위가 가실 수 있게끔 합니다.


  사랑이 흐르고 생각이 흐르며 마음이 흐릅니다. 내 마음속에서 사랑을 길어올려 이웃과 나눕니다. 내 가슴속에서 생각을 끌어내어 동무와 주고받습니다. 내 삶자리에서 꿈을 피워내면서 살붙이랑 어깨동무합니다.


  그릇을 부시며 시를 씁니다. 걸레를 빨아 방바닥 훔치면서 시를 씁니다. 아이들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시를 씁니다. 잠자리에 나란히 드러누워 노래노래 부르다가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곯아떨어지며 시를 씁니다. 깊은 밤에 팔이 저려 문득 잠에서 깨고 보니, 나도 아이도 모두 새근새근 잠들었네요. 찌릿찌릿한 팔을 천천히 빼고, 작은아이 머리를 가만히 바닥에 내립니다. 이불깃을 여밉니다. 또 한 번 밤별을 구경하고 기지개를 켭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바르게 앉습니다. 허리를 폅니다. 마음을 엽니다. 지난 하루를 기쁘게 되새기고, 오는 하루를 고맙게 맞이합니다. 깊디깊은 한겨울이기에 멧새 소리는 없습니다. 머잖아 봄이 찾아오면, 이 깊은 밤과 새벽에도 멧새는 우리 집 둘레에서 맑은 봄노래 부르겠지요.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에는 마을 개구리 모두 깨어나 밝은 물노래 부를 테고, 이윽고 풀벌레 하나둘 깨어나 싱그러운 풀노래 부를 테지요.


.. 쪼끄만 새알들을 누가 / 추위 속에 품어 주었는지 / 껍질을 쪼아 주었는지 / 언제 저렇게 가득 깨어나게 했는지 / 가지마다 뽀얗게 새들이 재잘댄다 ..  (목련)


  심언주 님 시집 《4월아, 미안하다》(민음사,2007)를 읽습니다. 4월이 왜 미안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4월한테 무엇이 미안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 무엇을 굳이 미안해 해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든 내가 뭘 잘 알아보지 못했든, 딱히 미안해 할 일은 없으리라 느껴요. 미안해 하지 말고, 즐겁게 웃으면서 4월한테 웃음을 베풀면 넉넉하리라 느껴요. 우리 삶에는 잘 하고 못 하고 하는 금이란 없거든요. 그저 삶이니까요. 그예 삶이니까요.

  시험을 치르는데, 50점을 받아서 못 했다거나 100점을 받아서 잘 했다 할 수 없어요. 99점은 못 했을까요. 51점은 잘 했을까요.


  밥을 짓는데, 물이 조금 더 깃들 수 있고 덜 깃들 수 있어요. 쌀알 부피에 맞게 물 부피를 ㏄로까지 재서 밥을 지어야 하지 않아요. 밥물에 올리는 불크기를 몇 분 몇 초로 재서 살펴야 하지 않아요. 깜냥으로 쌀과 물을 맞추고, 냄새와 느낌으로 불을 올려요. 반찬을 하든 국을 끓이든 그렇지요. 빨래를 할 적에도 그렇지요. 아이들하고 나눌 사랑을 숫자로 재거나 따지지 않아요. 몇 시간 놀아 주면 될 일이 아니에요. 몇 시간 가르치면 될 일이 아니에요. 온통 삶으로 누릴 뿐이에요.


  한 집안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집안일 나누기(가사노동 분담)’를 이렇게 저렇게 딱딱 숫자와 크기에 맞추어 자를 수 없어요. 서로 즐겁게 함께 나누는 집안일이요 집안살림이에요. 공무원이라면 어떤 성과물이나 결과나 실적이 있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우리 삶은 공무원 삶이 아닐 뿐더러,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어떤 숫자와 실적’이라 하는 ‘눈에 보이는 뭔가’가 있어야 할 턱이 없어요. 우리는 누구나 서로서로 삶을 누리고 사랑을 나눌 사람이거든요. 경제성장율 몇 퍼센트를 따지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따사로이 얼싸안거나 어루만지는 보드라운 손길로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시 한 줄도 사랑이요 꿈이며 삶입니다. 사랑으로 쓰는 시요, 꿈으로 빚는 시이면서, 삶으로 나누는 시입니다.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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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님과 ‘우리 글 바로쓰기’
[말사랑·글꽃·삶빛 45] 말과 삶과 넋은 모두 하나

 


  나는 이오덕 님을 딱 두 번 뵈었습니다. 한 번은 1999년 2월 즈음이었지 싶습니다. 나는 1994년 12월에 ‘우리말 한누리’라는 이름으로 동아리를 하나 열어, 우리 말글 이야기를 꾸준히 쓰면서 조그마한 이야기책을 꾸몄습니다. 1995년 가을에 군대에 가서도 이야기책을 꾸몄습니다. 남들 자는 틈에 혼자 조용히 깨어 손으로 글을 써서 열 몇 쪽짜리 이야기책을 꾸몄어요. 휴가를 나오면 복사집에 들러 이야기책을 복사해서 둘레에 나누어 주었지요. 1998년에 사회로 돌아온 뒤에도 ‘우리 말글 이야기책’은 혼자서 씩씩하게 꾸몄습니다. 이즈음 이오덕 님은 과천에서 사셨고, 어떻게 이오덕 님 사는 곳을 알아서 편지로 내 작은 이야기책을 꾸준히 보냈습니다. 오래도록 내 이야기책을 받아보던 이오덕 님이 어느 날 저한테 전화를 걸어, “젊은이가 대견한 일을 하는데 우리 집에 한번 찾아와 보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몸이 힘들어 나를 보러 찾아가고 싶어도 찾아가지 못한다고 하셨어요. 과천에 있는 조그마한 아파트는 벽이며 부엌이며 뒷간이며 수많은 책으로 빼곡합니다. 나는 이오덕 님 앞에서 두 시간 남짓 말없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젊은이가 대견한 일을 하기는 하되, 조금 더 생각할 대목이 있다며 찬찬히 짚어 주시는데, 부끄럽고 얼굴이 벌개져서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내가 쓰는 글에서 ‘가끔씩’은 겹말이니 틀린 말이라 ‘가끔’으로 바로잡아야 하고, ‘불린다’라는 낱말은 사람을 ‘부르는’ 자리 말고는 쓸 수 없으니 이 또한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밖에 더 길게 말씀했지만, 다른 이야기는 떠올리지 못합니다.


  이듬해 2000년 여름에 다시 한 번 뵙니다. 이때에는 먼발치에서만 바라봅니다. 이오덕 님을 처음 뵌 자리에서 《아무도 내 이름을 안 불러 줘》라는 책과 《허수아비도 깍꿀로 덕새를 넘고》라는 책 두 가지를 선물로 받았는데, 나는 바로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일꾼으로 들어갔어요. 출판사 일꾼 모두 한국글쓰기연구회 여름모임에 함께하느라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에 갔고, 강의 하는 자리에서 가만히 당신 말씀을 귀담아들었습니다.


  그 뒤 나는 어린이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합니다. 2001년 1월 1일부터 이 일을 하다가 2003년 8월 31일에 그만두었어요. 이오덕 님은 2003년 8월 25일에 돌아가셨지요. 어린이 국어사전 만들기는 내 오랜 꿈이었지만, 출판사 흐름과 제 뜻이 안 맞아 그만 꿈을 접어야 했는데, 회사 그만둘 즈음 이오덕 님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기운이 한풀 더 꺾였습니다. 내 몫을 다른 이한테 물려주도록 ‘인수인계 서류’를 꾸미는 틈틈이 ‘이오덕 님 기리는 글’을 썼어요. 하루에 한 꼭지씩 원고지로 치면 40∼50장쯤 되는 글을 다섯 꼭지 썼어요. 그러고는 출판사는 그만두고 홀로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나날을 보냈지요. 아프고 슬픈 마음을 달래려고 전화기는 끄고 살았어요. 한 달 즈음 전화기 없이 지내다가 어느 곳에 전화할 일이 있어 퍽 오랜만에 켜는데, 갑자기 전화기가 울렸어요. 왜 그동안 전화가 안 되었느냐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하다고,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누가 이렇게 전화를 하는가 싶었는데, 뜻밖에 이오덕 님 큰아들이었습니다. 이오덕 님 큰아들은 제 아버지하고 비슷한 또래입니다. 큰아들 되는 분은 당신 아버님을 흙에 묻은 뒤 여러모로 ‘추모글’을 찾아서 읽다가 내가 쓴 기나긴 글을 읽으셨다는데, 당신 아버님을 잘 헤아리는구나 싶어 만나고 싶다 하셨어요. 한 주쯤 망설이다가 충북 충주로 찾아갑니다. 그 자리에서 그분은 저더러 “아버지 원고와 책을 자네가 정리해 주면 좋겠는데.” 하고 말씀했어요. “원고와 책 정리는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그런 일은 제가 늘 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정리를 하자면 적어도 세 해는 걸려요. 세 해 동안 아무것(원고를 정리한 결과물인 책)도 안 나올 수 있어요.” “삼 년이면 될까?” “세 해 동안 꼬박 붙어서 하면 되지요.” “그럼 진짜로 해 볼래요?” “다만, 저는 서울에 집이 있으니까 서울 오가는 찻삯은 주시면 좋겠어요.” “차비야 주지. 인건비도 주어야지.” “아니에요. 저는 인건비는 바라지 않아요. 돌아가신 선생님 원고와 책을 정리하는 일로도 저한테는 큰 공부가 되는걸요.”


  나는 고등학교만 마친 학력이고, 출판사에서 국어사전 기획·편집자로 일하기는 했지만, 딱히 어떤 경력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오덕 님 기리는 글’ 다섯 꼭지를 먼저 알아보시고는 나를 믿고 당신 아버님 글과 책을 맡기셨어요. 그래서 나는 2003년 9월부터 이오덕 님 남긴 글과 책에 파묻혔습니다. 주마다 사나흘씩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 멧골집에 머물면서 먼지덩이와 씨름했습니다. 이오덕 님 돌아가신 집은 마을이름 ‘무너미’에서 알 수 있듯 물이 많아요. 이오덕 님 계시던 돌집도 물기가 많아 벽이 온통 새까만 곰팡이였어요. 곰팡이 낀 책을 닦고 털며 햇볕에 말립니다. 곰팡이 기운 퍼지는 원고도 닦고 털며 햇볕에 말립니다. 하도 먼지가 많아 물안경이랑 입가리개를 한 채 일했어요. 일하다가 힘들면 이오덕 님이 드러누워 주무셨다는 침대에 나도 가만히 누워서 생각에 잠겼어요. 어떤 넋과 얼로 이 시골집에서 숱한 이야기를 길어올리셨을까 하고 떠올렸어요. 나는 어떤 인연으로 이오덕 님과 이렇게 ‘글·책’으로 만나는 사이가 되었을까 하고 돌아보았어요.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 돌집에서 먼지덩이에 파묻혀 글과 책을 살피기 앞서까지, 나는 내 깜냥껏 이오덕 님 책을 많이 읽고 갖추었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못 보고 모르던 책이 제법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는 원고지와 공책과 책하고 씨름을 합니다. 새벽과 밥때에는 ‘아직 못 읽은’ 이오덕 님 책을 읽으며 지냅니다. 책으로 나온 원고를 한쪽으로 모읍니다. 책으로 안 나온 원고를 다른 한쪽으로 모읍니다. 신문과 잡지를 샅샅이 훑어 책에 안 실린 글을 따로 추립니다. 이동안 권정생 님 글 실린 잡지와 신문을 따로 모았고, 이 글은 나중에 《죽을 먹어도》라는 작은 책으로 태어났어요.


  수많은 원고더미 사이에 파묻힌 어느 과일상자에서 이오덕 님 일기가 한 꾸러미 나왔습니다. 얼추 여섯 달 즈음 글과 책을 갈무리하던 때였지 싶어요. 곰팡이 먹는 책을 하나하나 닦고 손질하며 해바라기를 시키던 때인데, 한참 책더미 파고들어 닦다가 만난 상자에서 드디어 이오덕 님 일기장이 나타났어요. 그러고 몇 달 지나서, 이오덕 님이 ‘이원수 님 시에 손수 가락을 붙인’ 악보가 나왔어요. 1960∼70년대에 이원수 님 동요가 널리 나오기는 했지만, 더없이 아름답다 할 동시에 아직 가락이 붙지 못하고, 또 가락이 붙었어도 썩 부를 만하지 못하다 싶은 몇 가지 동시에, 이오덕 님이 손수 가락을 입히셨더군요. 그러고 또 몇 달 지나, 이오덕 님이 경상도 멧골자락에서 멧골아이를 가르치며 손수 등사를 밀어 만든 ‘학교신문’ 꾸러미를 찾습니다.


  이오덕 님 글과 책 갈무리는 두 해 반쯤 될 무렵 모두 마칩니다. 그 뒤 한 해를 더 충북 충주 멧골집에 머물며 이오덕 님 옛글이 새로 빛을 보도록 일합니다. 이오덕 님이 《우리 글 바로쓰기》에 이어 마무리지으려 하셨던 《우리 말 살려쓰기》는 세 권으로 엮어서 내놓았습니다. 다만, 아쉽다면, 이오덕 님이 《우리 말 살려쓰기》 다음으로 내놓고 싶으셨던 ‘우리 말 바로쓰기 사전’까지는 내 손으로 마무리짓지 못했어요. 글과 책 갈무리하는 일은 세 해면 된다고 여겼지만, “우리 말 바로쓰기 사전”을 엮자면 적어도 열 해는 걸리리라 느꼈어요.


  무너미마을 멧골집에서 일을 끝내고 내 고향 인천으로 돌아갑니다. 고향마을에서는 지자체 공무원이 막개발 일삼으며 살가운 골목마을 이웃들 삶터를 짓밟으려 했어요. 나는 고향마을 인천으로 돌아가서 내 책들을 밑천 삼아 ‘사진책도서관’을 열었어요. 내가 마음 기울여 하는 일은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살찌우는’ 일인데, 한국말 자료를 찾으려고 헌책방을 자주 드나들었고, 헌책방을 자주 드나들며 헌책방 사진도 찍고 헌책방 이야기도 글로 쓰는데, 이렁저렁 하는 동안 시나브로 ‘사진책’이 많이 모이더군요. 그래서 ‘우리말도서관’ 아닌 ‘사진책도서관’을 열었어요. 내 사진책도서관에는 온갖 국어사전과 한국말 자료를 이천 가지 즈음 갖추었습니다. 이 자료는 나 스스로 앞으로 ‘한국말 사전’이나 ‘한국말 살려쓰기 사전’ 엮을 밑책 노릇을 하리라 생각해요.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93년에 《우리 글 바로쓰기》(한길사,1989)라는 책을 처음 알아보았어요. 이때부터 이 책을 틈틈이 되읽어요. 요즈음 이 책을 되읽다가 1권 328쪽에서 다음 같은 대목을 천천히 다시 밑줄 그으며 읽었어요. “지식인들의 말과 글이 백성들의 말이 아니고 남의 말글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이 남의 것, 즉 백성들 속에 살면서 그 삶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 책에서 얻은 지식이요 관념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 지식이나 관념만으로 자기의 관점을 세워 나갈 때 문제가 일어납니다. 책에서 얻은 사상은 자기의 삶에서 몸으로 가지게 된 생각과 하나로 될 때 비로소 그 사상은 제것으로 되지요. 제것은 없고 지식만 가지고 제것인 양 여긴다면 그것이 문젭니다. 말은 잘못되었는데 생각만은 바르게 가질 수 있는 것인가? 그럴 수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 시를 쓰는 사람이든지 소설을 쓰는 사람이든지, 우리 말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비판하는 몸가짐이 없이는 옳은 생각을 가질 수가 없다고 봅니다.”


  나는 처음부터 한국말을 가다듬거나 살찌우거나 다스리는 길을 걸을 뜻이 있지는 않았어요. 이오덕 님 책에서 이 대목을 읽을 적에도 내가 오늘 같은 길을 걸으리라고는 느끼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 대목은 내 생각을 크게 흔들었어요. 이오덕 님 말씀은 아주 쉽거든요. ‘말 = 삶’이란 이야기예요. 말에 이녁 삶이 모두 드러난다는 이야기예요. 말을 올바로 쓰지 않고서는 삶이 올바로 서지 못한다는 이야기예요.


  참말 그런가? 참말 그와 같을까? 두고두고 생각합니다. 두고두고 생각하며 사람들을 만납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면서 늘 깨닫습니다. 참 그렇구나. 말이 번드르르한 사람은 삶 또한 번드르르합니다. 알맹이는 없지요. 말이 수수한 사람은 삶 또한 수수합니다. 알맹이가 야무집니다. 말을 곱게 하는 사람은 차림새도 곱습니다. 어떤 값진 옷을 입어서 곱지 않아요. 정갈한 마음이 정갈한 말에 드러나고, 정갈한 낯빛과 몸빛으로 드러나더군요.


  말만 그럴듯하게 잘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들은 참말 말도 삶도 그럴듯합니다. ‘아름답다’거나 ‘훌륭하다’는 모습이 아닌 ‘그럴듯하다’는 모습입니다.


  이오덕 님은 《우리 글 바로쓰기》라는 책을 내놓기 앞서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이라는 책을 내놓았어요. 책이름부터 환히 드러나지요. 삶을 가꾸는 글(말)이어야 하고, 글(말)을 가꾸면서 삶을 가꾸어야 아름답다는 이야기예요. 우리 글을 바르게 쓰자는 이야기는 우리 삶을 바르게 일구자는 이야기예요. 삶을 바르게 일구지 않고서는 말을 바르게 일구지 못해요. 참 많은 사람들이 ‘우리 말글 바르게 쓰기가 어렵다’고 얘기하는데, 왜 어려운가 하면, 당신 삶부터 바르게 고치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당신 삶부터 바르게 고치는 나날을 즐거이 누리는 분들은 ‘우리 말글 바르게 쓰기’도 수월하게 하지요. 즐겁게 합니다. 익산에 사는 여든 살 할머니 한 분이 이오덕 님 ‘우리 글 바로쓰기’를 몸소 즐겁게 펼쳐 보이시는데, 내가 느끼기로는 익산 할머니 그분은 ‘삶 바로세우기’부터 늘 즐겁게 하셔요. 삶이 바로서니까 말 또한 저절로 바르게 서요. 삶을 바로세우니 넋도 찬찬히 바르게 섭니다.


  말과 삶과 넋은 모두 하나입니다.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말만 앞세울 때에는 삶이나 넋 모두 겉치레가 됩니다. 말을 알차게 가다듬을 때에는 삶이나 넋 모두 알차게 가다듬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 나라 어린이와 푸름이와 어른 모두 말·삶·넋을 아름다이 일굴 수 있기를 빌어요. 말·삶·넋을 아름다이 일굴 때에는 이 땅이 아름답게 거듭나거든요. 말·삶·넋을 사랑스레 돌볼 때에는 이 나라가 사랑스레 거듭나요. 말·삶·넋을 착하게 보듬을 때에는 이 겨레가 착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요.


  말과 글을 바르게 쓰자는 소리, 또 말과 글을 살려서 쓰자는 소리는, 말과 글에만 얽히는 소리일 수 없습니다. 말부터 정갈히 건사하면서 넋을 정갈히 건사하려는 몸짓입니다. 말과 넋을 정갈히 건사하면서 삶을 정갈히 북돋우려는 몸가짐입니다.  사랑과 꿈과 이야기를 우리 모두 아름다이 아끼면서 믿음과 빛과 웃음을 서로서로 나눌 줄 아는 착하고 참된 길에 설 수 있기를 빕니다. 나는 전라남도 고흥 두멧시골에서 옆지기와 두 아이와 오붓하게 지내며 꿈꿉니다. 나는 이 두멧시골에서 조용히 말삶과 책삶을 밝히고, 내가 밝히는 삶자락은 아이들 꿈날개로 이어져 온누리에 곱게 흐드러지기를 꿈꿉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시골에서 살아가며 쓰는 글은 ‘말사랑’이고 ‘글꽃’이며 ‘삶빛’입니다. 434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국어사전 뒤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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