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바다

 


  벼포기는 무럭무럭 자라 아이들 키보다 웃자랍니다. 옥수수포기도 씩씩하게 자라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 키보다 웃자랍니다. 수수도 해바라기도 모시도 모두 튼튼하게 자라며 높이높이 키를 뻗칩니다.


  여름날 들판에 서면, 이야 풀밭이네 하는 소리 아닌, 이야 풀바다로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자라나는 풀은 어느새 우리 키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풀숲에 깃들며 풀내음 물씬 받아먹습니다. 풀밭에 깃들며 풀소리 담뿍 받아들입니다. 바람이 불어 서걱서걱 노래를 짓습니다. 풀잎이 서로 몸뚱이 비비며 내는 싱그러운 노래를 짓습니다. 푸르게 빛나는 풀잎은 푸르게 속삭이는 노래입니다. 푸르게 싱그러운 풀잎은 푸르게 웃음짓는 노래입니다.


  풀바다에 안겨 춤을 추는 아이는 풀마음을 키웁니다. 풀바다에 뛰어들어 뛰노는 아이는 풀사랑을 보듬습니다. 434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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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맛 읽기

 


  오늘날 한국에서는 술을 곡식이나 물로 빚는다기보다, 화학조미료와 화학첨가물로 빚곤 한다. 이른바 소주란, 또 맥주란, 술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다 싶을 화학조미료덩어리요, 화학첨가물덩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어디에서 어떤 물을 길어올려 빚었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한때 막걸리바람이 불었는데, 막걸리는 달달한 술이 아니다. 막걸리는 시큼한 술이요, 밥이 되는 술이다. 들일을 하며 몸이 쑤시고 결리는 일꾼들이 새로 힘을 북돋우라고 빚는 술이다. 곧, 막걸리는 집집마다 마을마다 손수 정갈히 심어 돌보고 거둔 나락으로 빚는 쌀술이지, 나라밖에서 사들인 쌀이라든지 밀로 빚는 단술이 아니다. 한국쌀 아닌 수입쌀을 써야 단맛이 더 난대서 막걸리조차 수입쌀을 쓰는데다가, 수입밀을 섞기까지 하는데, 이런 단술에 어찌 막걸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게다가 단맛 내는 화학첨가물은 또 얼마나 많이 타는가.


  들에서 힘껏 일하고 나서 한숨 돌리는 참을 먹으며 마시는 술이 아닌,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기름 좔좔 흐르는 먹을거리를 차려서 배가 터지고 골이 핑 돌도록 마시는 술이라면, 이러한 술 또한 술이라는 이름이 알맞지 않다. 골이 핑 돌도록 퍼붓는 술은 술 아닌 알콜덩어리요, 스스로 죽음을 부르는 막짓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왜 이다지도 술을 많이 마시나. 한국사람은 왜 이렇게 술집 많은 마을에서 살아가는가. 삶이 너무 힘들어 술을 안 마실 수 없는 셈일까. 톱니바퀴 같은 도시요 쳇바퀴 같은 일자리라서 술로라도 몸과 마음을 달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노릇일까. 자동차와 공장과 아파트에서 내뿜는 매캐한 바람에 휩싸여 맑은 바람이란 하나도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니까, 술로라도 몸과 머리를 달래야 할까.


  술이면 그예 술일 뿐이라지만, 시나브로 ‘참술’과 ‘거짓술’로 나눌밖에 없다고 느낀다. 어느 모임자리에 가거나 잔치자리에 가면 어김없이 술잔을 받아야 하다 보니, 이래저래 받는 술잔에서 한 모금 두 모금 입술을 적시면서 술맛을 천천히 느낀다. 서울이나 부산이나 인천에서 빚는 막걸리는 무엇보다 물맛부터 맛이 없네. 서울이나 부산이나 인천처럼 커다란 도시에는 흙을 일구어 쌀을 거두는 시골숲이 없다 보니, 서울쌀도 부산쌀도 인천쌀도 아닌 어디에서 사들이는지 알 길 없는 쌀을 쓰느라, 곡식맛도 느낄 수 없네. 화학첨가물을 얼마나 넣었는지 환히 보이네. 탄산은 또 얼마나 섞는지 뻔히 보이네. 포천 막걸리라 한들 대수롭지 않네. 조그마한 시골 면에서 조그마한 시골마을 쌀과 물로 빚는 막걸리가 아니라면, 이제 어느 막걸리도 마실 만하지 않네. 고장마다 소주가 다르다 하지만, 이곳에 간들 저곳에 간들, 화학증류 소주란 내 몸을 살리거나 살찌우는 술이 못 되네. 이런 술을 마시면서 어떤 힘을 낼 만하려나. 이런 술을 마시는 동안 새 넋이나 새 사랑이 피어날 수 있으려나.


  들일 하던 들사람이 들밥 먹고 들술 마시면서 하루하루 아름다이 누린 한겨레인데, 이제 들일 하던 들사람 없고, 들밥 먹고 들술 마시던 삶이 사라졌대서, 막술과 거짓술만 나돌아도 되려나. 아니, 들판을 메꾸거나 밀어 없애 찻길을 닦고, 도시를 넓히며 아파트를 지으니까, 이렇게 막돼먹은 터전에서는 막돼먹은 밥과 술을 퍼부을밖에 없으려나.


  정갈한 시골마을에는 정갈한 술내음이 흐르고, 조용한 시골마을에는 조용한 밥내음이 흐른다. 왁자지껄 어수선하거나 시끄러운 도시에는 어수선한 술내음과 시끄러운 밥내음이 어지럽게 춤춘다. 434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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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연약한 1
이쿠에미 료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198

 


내가 아는 마음
― 깨끗하고 연약한 1
 이쿠에미 료 글·그림,박선영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06.2.25.

 


  누구나 배운 대로 살아가요. 어떤 삶을 가르쳐서 어떻게 살아가도록 이끄는가 하고 슬기롭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해요. 슬기롭게 생각하지 못하는 바람에 어떤 삶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잊거나 놓치면, 서로서로 힘겹거나 고단한 나날이 되고 말아요.


  누구나 배운 대로 사랑해요. 어떤 사랑을 보여주거나 나누는 하루인가를 곱게 돌아볼 수 있어야 해요. 따사롭게 사랑하지 못하는 바람에 어떤 나날을 어떤 사랑으로 누릴 때에 즐거운가를 잊거나 놓치면, 서로서로 아프거나 슬픈 이야기가 자꾸 태어나요.


- ‘꾹 참고, 전철을 타고, 학교에 간다.’ (12쪽)
- ‘함께 있어 달라는 것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공기를 공유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뭐랄까.’ (44쪽)


  그냥 먹는 밥이란 없습니다. 내 온 사랑을 담아 짓는 밥입니다. 어버이가 빚은 사랑이 깃든 밥을 먹는 아이들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사랑을 새로 지어 밥 또한 새로 짓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를 바라보며 사랑을 새로 누리고 밥 또한 새로 누립니다.


  어버이와 아이가 주고받는 말 또한 서로서로 새로 일구는 사랑입니다. 둘은 아무 말이나 섞지 않습니다. 가슴속 가장 깊은 데부터 길어올린 사랑을 담은 말을 주고받아요. 마음속 가장 너른 터에서 보듬고 건사한 사랑을 실은 말을 나눕니다.

 

 


- ‘왜 다들 그를 보지 않는 걸까. 왜 그를, 신경쓰지 않는 걸까. 이상하다. 내 눈에는, 제일 먼저 들어오는데.’ (65쪽)
- “그런데 왜 늘 넷이 붙어 다니는데?” “그야 친구니까.” (91쪽)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삶입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는 사랑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합니다. 마음이 없는데 사랑이 싹트지 않아요.


  마음으로 내 하루를 짓습니다. 마음속으로 지은 하루를 몸으로 누립니다.


  그런데, 나는 어려서부터 이 마음을 아끼거나 보살피는 길을 학교에서 조금도 느끼지 못했어요.

 

  학교는 늘 시험공부에 바빠요. 학교는 늘 시험성적에 목을 매달아요. 학교는 늘 숙제와 체벌과 규칙이 판쳐요. 학교는 늘 꾸지람과 윽박지름과 주먹질이 어지러웠어요.


  학교를 벗어나면서 시나브로 내 마음을 찾아요. 학교 울타리를 떠나면서 천천히 내 마음을 느껴요. 학교 졸업장을 버리면서 드디어 내 마음을 알아요.


  생각해 보면, 학교라서 나쁠 수 없어요. 학교를 학교 아닌 감옥처럼 만들어 교사는 교사 아닌 감옥지기처럼 학생을 다스리려 하니까 나빠요. 학교도 스스로 나쁜 길로 빠지고 교사도 스스로 나쁜 길로 허덕이며 학생마저 스스로 나쁜 길에서 헤매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도 턱없이 모자란 삶이라 하는데, 왜 우리는 학교에서 시험공부에 들볶이면서 동무 아닌 시험성적으로 서로를 바라보아야 할까요. 함께 좋아하고 사랑하며 어깨동무하면 즐거운 나날일 텐데, 왜 우리는 학교라는 울타리에 갇힌 채 너른 숲과 들과 메와 바다하고는 동떨어진 데에서 쳇바퀴를 굴려야 할까요.


- “하지만 난 이 학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모두랑 같이 있으니까 재밌잖아.” (110쪽)
- ‘오래된 (아파트)단지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바뀐 게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내년, 내후년, 10년 후, 어떻게 변해 갈까?’ (121쪽)

 

 


  학교에서 직업훈련이나 직업교육을 할 까닭은 없어요. 학교에서 교과서 지식을 끝없이 외울 까닭은 없어요. 직업은 저마다 스스로 찾으면 돼요. 지식은 스스로 책을 읽어서 얻거나, 스승을 찾아가서 몸으로 익히면 돼요. 그러니까, 따로 학교라는 데가 없어도 돼요. 아니, 오늘날과 같은 학교는 참말 없어져야 해요. 졸업장과 시험성적으로 사람을 뭇칼질하는데, 이런 곳에서는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거든요.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으니 아무것도 배울 수 없지요. 초등학교이든 중·고등학교이든 아이들은 어떤 삶도 사랑도 꿈도 배우지 못해요. 제도권학교 열두 해 동안 아이들은 주눅이 들고 풀이 죽으며 기운을 잃어요. 열두 해 학교살이를 하면서 흙하고 동떨어지고 숲하고 등지기만 해요. 열두 해 학교살이를 하느라 살림짓기하고 동떨어질 뿐 아니라 사랑짓기하고도 등지고 말아요. 학교를 다니며 스무 살이 된 아이들 가운데, 사랑을 참다이 깨달은 아이는 몇이나 될까요. 학교를 다니며 스무 살을 맞이한 아이들 가운데, 꿈을 참다이 품은 아이는 몇이나 되나요.


- ‘난 아무것도 몰라. 하루타의 마음도, 아사미가 사실은 누굴 좋아했었는지도, 아무것도, 몰라.’ (149쪽)
- ‘남자들은 다 벌레 같아. 좋은 사람도 있찌만, 이상한 사람이 더 많아. 그런데도 소중한 사람은 별로 없고, 하루타, 하루타가 없는 세상은 너무나 이상해.’ (174쪽)


  이쿠에미 료 님이 그린 만화책 《깨끗하고 연약한》(학산문화사,2006)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뿐 아니라, 여느 일본만화책 어느 것을 보든,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이야기에 ‘사랑’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일본만화책을 보면, 일본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학교에서 사랑만 나누나 싶을 만큼, 참으로 사랑 이야기 그리는 만화가 아주 많아요.


  그러나, 일본만화만 이와 같지 않아요. 어느 나라 어느 만화라 하더라도, 중학교를 다니건 고등학교를 다니건, 아이들 삶에는 ‘시험공부’ 이야기가 흐르지 않습니다. 아이들 삶에는 오직 ‘사랑’이 흐릅니다. 시험성적은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직업교육이나 직업훈련은 조금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스스로 꾸리며 가꿀 사랑을 얼마나 곱고 따사롭게 돌볼 수 있느냐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곧, 교사나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사랑을 보여주고 가르치며 물려줄 때에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교사나 어버이한테서 저마다 스스로 일구며 빛내고픈 사랑을 여쭙고 배울 때에 아름답지요.


-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득한 저편에, 불빛이 보인다.’ (182쪽)


  어른과 아이가 마음과 마음으로 만날 수 있기를 빌어요. 어버이와 아이가 마음과 마음으로 보금자리를 일굴 수 있기를 빌어요. 의무교육 때문에 보내는 학교가 아닌, 아이들이 참말 사랑을 보고 듣고 배우며 익힐 만하다 싶으면 학교에 보낼 수 있기를 빌어요. 그러니까, 굳이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사랑을 꽃피웁니다. 아니, 학교를 보내지 않을 때에 환하고 맑은 사랑을 꽃피우는구나 싶어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말을 배우지, 교과서로 말을 배우지 않아요. 아이들은 어버이 어깨너머로 밥짓기를 배우지, 요리책이나 요리학원에서 밥짓기를 배우지 않아요. 아이들은 어버이 손길에서 빨래와 청소와 살림일을 배우지, 가정실습이나 가사수업이나 대학교 가정학과 같은 데에서 빨래와 청소와 살림일을 배우지 않아요. 아이들은 이녁 어버이가 어떤 사랑으로 저를 낳아 돌보았는가 하는 기나긴 삶을 톺아보면서 ‘육아’를 배워요. 따로 육아책이나 육아방송을 들여다보아야 아이를 사랑하며 돌보는 이야기를 배우지 않아요.


  학교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학교는 허울일 뿐이에요. 학교가 있어 따돌림이나 괴롭히기가 생긴다 할 만해요. 학교 때문에 아이들이 시들거나 아프구나 싶어요.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아요.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해요. 마음으로 삶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삶을 살찌워요. 434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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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에 핀 꽃>을 쓴 조혜영 님이 쓴 시집이 2012년 4월에 나왔구나. 2012년 11월에 나온 정세훈 님 시집 하나를 읽고 나서 책날개를 펼치다가 알아본다. 책 하나가 다른 책 하나로 징검다리를 놓아 준다. 이 시집 하나도 나중에 다른 이야기로 솔솔 길 하나 열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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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덧나다
조혜영 지음 / 푸른사상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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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 같은 사람들 - 영월 사람들의 사진 속의 삶 이야기
엄상빈 지음 / 눈빛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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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25

 


누구와 무엇을 하는 사진일까
― 들풀 같은 사람들
 엄상빈 글·사진
 눈빛 펴냄,2008.4.1./2만 원

 


  2013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큰아이는 여섯 살, 작은아이는 세 살, 아버지는 서른아홉 살, 어머니는 서른네 살이라는 숫자를 되새깁니다. 아이들은 제법 나이를 먹고, 어버이도 퍽 나이를 먹습니다. 여섯 살이나 세 살이라면 어른 나이로 보자면 꽤 어리다 할 만하지만, 아이들과 부대낀 나날을 헤아리면 참 긴 해를 함께 살았구나 싶습니다.


  어느새 여섯 살이고 세 살이라니. 어느덧 큰아이는 혼자 건사하는 일이나 놀이가 많고, 작은아이도 똥오줌 거의 다 가릴 줄 알아요. 하루가 새삼스럽고 한 주는 놀라우며 한 달은 대단하고 한 해는 아름답습니다.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고도 하지만, 아이만 낳아서는 어른이 못 되고, 아이하고 부대끼는 나날을 누려야 비로소 어른으로 나아가는구나 싶어요.


  큰아이가 태어난 2008년 8월부터 아이들 사진을 찍었으니 2013년이면 여섯 해째 아이들 사진을 찍는 셈이요, 아이들 사진을 날마다 30∼50장은 너끈히 찍었으니까 여섯 해 동안 쌓인 아이들 사진은 아주 많다 할 만합니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 자라고 또 자라며 새로 찍을 사진을 헤아리면 훨씬 더 많겠지요.


  아이들과 살아가며 사진 찍는 하루를 돌이켜보면, 이 아이들과 살아가니까 사진을 찍습니다. 언제나 즐겁고 늘 반가우니 사진을 찍습니다. 이 모습도 귀엽고 저 모습도 사랑스럽습니다. 이곳에서도 예쁘고 저곳에서도 고와요. 하루하루 마음으로 담는 이야기를 그때그때 사진을 빌어 간직합니다.

 

 


  사진기가 없다면 어떠했을까요. 사진기가 없으면 사진으로 적바림하지 않을 테지만, 마음으로 건사하겠지요. 눈으로 바라보고 귀로 들으며 마음으로 느낍니다. 눈으로 담고 귀로 담으며 마음으로 담습니다. 그래서, 사진기 있어 사진을 찍는 오늘날에도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사진기 단추를 누르기 앞서 눈으로 바라봅니다. 필름이나 디지털파일로 담기 앞서 귀로 듣습니다. 사진을 종이로 뽑기 앞서 마음으로 느낍니다.


  이야기를 날마다 새롭게 빚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하루인 만큼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이야기를 늘 새록새록 짓습니다. 늘 새록새록 빛나는 삶인 만큼 늘 새록새록 푸른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사진에는 노랫소리를 못 담는다고 하지만, 고운 목소리 뽑아 노래하는 넋을 담습니다. 사진에는 싱그러운 풀내음을 못 담는다고 하지만, 싱그러운 풀내음 듬뿍 누리는 손길을 담습니다.


  역사가 있으니, 이를 사진으로 찍어 ‘사진으로 남기는 역사’를 이룹니다. 문화가 있으니, 이를 사진으로 옮겨 ‘사진으로 남기는 문화’를 이룹니다. 이야기가 있으니, 이를 사진으로 담아 ‘사진으로 남기는 이야기’를 이뤄요. 사진으로 찍기에 역사나 문화나 이야기가 되지 않아요. 사진에 앞서 스스로 역사요 문화요 이야기이기에, 사진으로 찍으면 ‘사진으로 찍는 무엇’으로 거듭납니다.

 

 


  엄상빈 님은 강원도 영월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새로 찍습니다. 강원도 영월에서 뿌리내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먼먼 지난날 삶을 누리던 발자국 남은 사진을 돌아보면서 옛이야기를 새로 갈무리합니다. 사진책 《들풀 같은 사람들》(눈빛,2008)은 책이름 그대로 ‘들풀 같은’ 사람들, 아니 고스란히 ‘들풀인’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래된 다른 사진을 청해 보았지만 그것 또한 한낱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 시절에 한가롭게 사진이나 찍고 있을 시간과 여력이 어디 있었겠는가. 이 사진 한 장이라도 용케 남길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일 것이다(21쪽).”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사진 하나라도 용케 남겼다기보다, 종이에 앉힌 사진은 이 하나로도 넉넉하지요. 마음에 이야기를 아로새겼고, 몸에 이야기를 돋을새김했으니까요. 입으로 들려주는 목소리에 숱한 이야기 피어납니다. 손마디와 주름살을 바라보면서 지나온 삶자락 이야기꽃 환하게 피어납니다.


  “지금으로선 믿기 어려운 우리 민중의 고단한 삶이 밭에서 고구마 캐듯 줄줄이 이어져 나온다. 언제부턴가 배경과 광선을 고민하며 담아내는 한 컷 한 컷의 사진보다 이분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더욱 소중하고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125쪽).”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틀이나 빛이 있어야 사진을 찍는다고 하지만, 틀이나 빛을 잘 몰라도 사진을 찍어요. 틀이나 빛을 잘 맞춘 사진은, 말 그대로 ‘틀이나 빛을 잘 맞춘’ 사진이에요. 이러한 틀이나 빛을 잘 맞춘대서, 이 사진에 이야기가 깃들지 않아요. 그리고, 이야기 깃들지 않은 사진을 바라보면 ‘이야, 잘 찍었네’ 하고 느낄 테지만, ‘이야, 재미난 이야기네’ 하고 느끼지 못해요. 이야기 깃든 사진을 찍는다면, ‘이야, 재미난 이야기네’ 하고 느낄 테고, 재미난 이야기 깃든 사진에서 틀이나 빛이 좀 어긋나거나 어수룩하다 하더라도, 이를 대수로이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글이든 노래이든 사진이든 춤이든 무엇이든, 모두 ‘이야기가 있느냐 없느냐’를 대수로이 살피니까요.

 


  엄상빈 님은 영월마을 이웃을 마주하며 비로소 사진을 다시 읽고 사진을 거듭 찍으며 사진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아마, 예전에는 이 같은 대목을 살피지 못하셨겠지요. 이제서야 사진에 눈을 뜬다 할 만하지만, 이제부터 사진에 눈을 뜬다고 할 수 있어요. 뒤늦게 사진을 깨닫는다기보다, 시나브로 사진과 살가이 사귀면서, 사진을 이루는 사람살이를 즐길 수 있다고 할 만해요.


  “집 옆 비닐하우스에서는 토마토가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고, 거실에는 아들·딸·사위 그리고 손자들과 함께 찍은 커다란 가족사진과 회갑 기념사진, 그리고 그 옆에 노래경연대회에서 타 온 커다란 벽시계가 그간 살아온 과정들을 요약하여 보여줄 뿐이다(155쪽).” 하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아무도 귀담아 들어 준 적도 없고 남달리 인정받을 것도 없는 그녀의 일생이지만, 이름 모를 들풀처럼 살아온 이분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역사이고 뿌리일 것이다(170쪽).” 하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누구와 무엇을 하는 사진일까요.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내 사진기는 나한테 어떤 삶벗 구실을 할까요. 내 이웃이 들풀과 같다고 느낀다면, 내 이웃과 마주한 나는 어떠한 숨결인가요. 나도 내 이웃처럼 들풀과 같은 숨결인지요. 나부터 내 이웃이랑 알뜰살뜰 어깨동무하는 어여쁜 들풀로 살아가는가요.


  생각하는 삶에서 생각하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랑하는 삶에서 사랑하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맑은 삶에서 맑은 사진이 태어납니다. 몸가짐을 추스르고 마음가짐을 다스립니다. 새롭게 맞이하는 하루를 기쁘게 누립니다. 아이들과 복닥이는 하루란 얼마나 고마운 빛인가 헤아리며 빙그레 웃습니다. 살아가는 결이 사진을 찍는 결입니다. 살아가는 빛깔이 사진을 읽는 빛깔입니다. 하루하루 모여 이야기가 되고, 하루하루 모인 이야기가 사진이라는 옷을 입으며 곱다시 흐드러집니다. 4346.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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