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책읽는 아이

 


  큰아이는 한복을 아무 때나 꺼내어 입는다. 참으로 자주 입다 보니 저고리는 다 튿어지고 옷자락은 다 닳는다. 벌써 세 해째 입으니 이렇게 될 텐데, 제 몸에 작은 옷이 되어도 좋다며 입는다. 다가오는 설에는 할머니한테 설빔 한 벌 선물로 받을 수 있겠지. 그때에도 늘 활짝 웃으며 새 한복 입고 즐겁게 만화책도 그림책도 신나게 읽으렴. 4346.1.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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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구름 책읽기

 


  밤에 올려다보는 구름은 달빛이 어리며 환합니다. 깊고 깊은 밤에 바라보는 구름은 별빛이 내려앉으며 곱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자그마한 별이 구름과 구름 사이에 고개를 내밉니다. 저 먼 별에서 지구를 바라볼 적에도 구름과 함께 환한 빛이 어릴까 궁금합니다. 저기 저 먼 별에서도 지구와 지구를 둘러싼 여러 별을 고운 눈길로 바라볼까 궁금합니다.


  내 마음이 환할 때에는 구름빛을 환하게 느낄까요. 내 마음이 어두울 때에는 구름이고 바람이고 풀빛이고 나무이고 바라볼 겨를이 사라질까요. 내 마음에 사랑이 넘실거리면서 구름빛을 맑게 들여다볼까요. 내 마음에 미움이나 다툼이 스며들면서 구름이고 하늘이고 흙이고 바다이고 아랑곳하지 않는 삶이 될까요.


  두 아이 밤오줌을 누이고 나도 밤오줌을 눕니다. 겨울바람 겨울나무 사그르르 흔드는 소리를 듣습니다. 구름이 흐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별빛이 드리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토닥토닥 재운 두 아이가 가르르 나즈막한 숨소리를 내며 꿈꾸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작은아이가 잠에서 깨어 아버지한테 볼볼 기어옵니다. 더 자야지. 아직 깊은 밤인걸. 작은아이는 아버지 무릎을 찾습니다. 나는 아이한테 무릎을 내줍니다. 그래, 너는 네 아버지가 ‘아이를 무릎에 누이며 깊은 밤에 글을 쓰는 즐거움’을 누리라면서 이렇게 밤잠을 살몃 잊고 놀려 하는구나. 4346.1.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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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oren님의 "아무리 생각해도 책은 '가격'보다는 '가치'에 따라 움직여야......"

 

진작에 알라딘이나 교보문고하고 거래정지를 한 '작은 출판사'가 꽤 있습니다. 그래도 이들 출판사 책은 도매상을 거쳐 알라딘이나 교보문고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들 작은 출판사 책은 알라딘이나 교보문고에 소개되는 일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구간할인이 되어야 '독자도 책을 사'고 '작가 인세 수입이 늘어난다'는 주장은 참으로 터무니없어요.

읽을 만하기에 살 만한 책이기에 사는 책이지, 값이 싸대서 사들이는 책이란 없으니까요. 더구나, 반값할인을 해서 두 권을 판들, 작가 인세 수입이 늘어나지 않아요. 이렇게 되면, 출판사는 인터넷책방이랑 작가한테 두 차례 제살깎기를 해야 하는데, 출판사 스스로 문닫을 생각이 아니라면, 작가 인세를 깎거나 인터넷책방 출고율을 높이거나 해야겠지요.

반값할인으로 책을 판대서 유통비라든지 창고비 또한 반값으로 줄어들지 않거든요.

그런데, 무엇보다 궁금한 대목이 있어요. 반값할인을 해서 책을 사는 독자들은, 이렇게 해서 사들인 책으로 '스스로 사서 읽는 책'을 쓴 작가와 이 책을 낸 출판사가 제살깎기를 하면서 굶주리더라도 '즐겁게 책읽기'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해요. 독자는 그저 '책만 사서 보면 그만'인 사람일까요. 작가는 굶고 출판사는 문을 닫아도, 독자는 그저 '책을 싸게 살 수 있으면 그만'일까요.

우리들이 정작 나눌 이야기는 '책을 사랑하는 길'일 텐데, 자꾸자꾸 엉뚱한 데로 끄달리도록 하는 요즈음 흐름 아닌가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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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소비자’와 ‘알라딘’

 


   도서정가제가 옳으냐 그르냐를 놓고 인터넷책방 알라딘이 한창 시끌벅적합니다. 인터넷책방 알라딘은 스스로 옥신각신합니다. 참 덧없는 옥신각신 아니랴 싶습니다. 책 읽는 사람을 ‘삶벗’으로 여긴다면, 이런 옥신각신은 드러나지 않겠지요. 책 읽는 사람을 ‘소비자’로 여기니까, 이런 옥신각신이 드러나겠지요.


  대형마트와 재래시장 사이, 또 대형마트와 구멍가게 사이, 이래저래 말이 많고 탈이 많아,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법이 따로 생깁니다. 흔히 이런 일을 놓고 ‘소비자’를 들먹이지만, ‘소비자’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을사람이 있고 동네이웃이 있을 뿐입니다. 정치꾼은 으레 ‘국민’을 읊지만, 국민이라는 낱말은 일제강점기에 제국주의자들이 ‘천황을 모시는 나라 사람’이라는 뜻에서 지은 어처구니없는 낱말이자, 이름도 얼굴도 없는 낱말입니다. 이 땅에 ‘국민’이란 없어요. ‘사람’이 있고, ‘이웃’이 있으며, ‘동무’가 있을 뿐입니다.


  인터넷으로든 매장으로든 책을 사는 사람은 ‘소비자’가 아니라 ‘책손’이자 ‘책벗’입니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돈을 쓰는 ‘소비자’란 없습니다. 책을 사는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책을 팔아 돈을 벌려고 한다면,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할는지, 돈을 얼마나 벌고 싶은지, 알라딘책방 스스로 생각할 노릇입니다. 도서정가제가 책장사에 도움이 안 된대서 반대하고 싶다면, 속내를 밝히면 될 노릇입니다. 스스로 즐겁게 책장사를 해야지요. 소비자 아닌 독자를 앞세우거나, 마치 작가와 출판사 권리를 지킬 수 있다는 듯이 내세워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이보다 엉뚱한 연극(연기)이란 없겠지요.


  도서정가제가 있거나 없거나,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맑으며 가장 사랑스럽게 책을 다룰 수 있어야 비로소 ‘책방’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습니다. 생각하거나 지키려고 하는 것은 어떤 법이나 규제여서는 안 되지요. 사람을 바라보고, 삶을 생각하며, 사랑을 나누는 길을 걸어야지요.


  알라딘이라는 곳이 알라딘‘책방’으로 있기를 빕니다. 알라딘‘할인사이트’로 가지 않기를 빕니다. 4346.1.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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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 49
미우치 스즈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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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12

 


환하게 빛나는 생각
― 유리가면 49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2013.2.15./4500원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13) 49권을 읽습니다. 《유리가면》 49권에서는 이야기 흐름을 빠르게 잇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먼저, 츠기카게 선생님이 마야 마음을 잘 붙잡고 다독이면서 이야기 흐름을 빠르게 잇습니다. 다음으로, 보라빛 장미로 나타나는 마스미 씨 곁에서 숨은 비서로 일하는 히지리라는 사람이 마스미 씨한테 당신 마음을 더는 숨기지 말고 참모습을 드러내라고 일깨우면서 이야기 흐름이 한결 빠르게 이어지도록 북돋웁니다. 바야흐로 《유리가면》도 막바지로 달리는 셈일까요. 길고 오래도록 꾸린 이야기를 마무리짓고자 차근차근 ‘고빗사위 없애기’로 접어드는 셈일까요.


  연극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만화 《유리가면》이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마야와 마스미 두 사람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사랑이 가장 큰 줄거리요 이야기입니다. 이제 49권에 이르러 마스미 씨는 단단히 다짐합니다. 49권을 마무리짓는 끝자락에서 마스미 씨는 “아버지! 제가 당신 ‘아들’을 연기하는 건 이걸로 끝입니다! 전 제 인생을 살겠어요(184쪽).” 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아하, 그렇지요. 만화책 《유리가면》에서 마야가 누구보다 연극, 곧 연기를 잘 하는 아이로 나오지만, 어느 모로 본다면, 마스미 씨야말로 연극, 그러니까 연기를 더할 나위 없이 잘 하던 사람이라 할 만합니다. 속내를 숨기며 기나긴 해를 살았고, 속마음을 감추며 온갖 일을 했으니까요. 이제 양아버지 앞에서 양아들 노릇을 하던 연극(연기)은 그만두고, 모든 이름과 돈과 힘을 내려놓고 사랑 하나로 달리겠다고 하는 마스미 씨 다짐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환하며 빛나는지요.


- “네, 어릴 때 공원에서 자주 연극놀이 하던 게 생각나서. 미끄럼틀 꼭대기가 산의 정상이나 절벽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미끄럼틀 자체가 성이 되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시소는 로켓 발사대, 그네는 정글의 나무덩굴. 나무덤불에 숨어서 닌자놀이도 했어요. 여길 보니 그때 생각이 나는 게 …… 재밌겠다 싶은 거 있죠?” (10∼11쪽)
- ‘방금 전 잠시 이 폐허가 매화골로 보였어. 왜지? 시력이 약해지니 마음속 이미지가 시각화된 건가? 그러고 보니 아까 그 바람도 매화골 바람이랑 닮았던 것 같아. 어떻게 이런 일이!’ (25쪽)

 


  연극에 온삶을 바치는 마유미라는 아가씨는 ‘내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연극에 온넋을 쏟는 마야라는 아가씨는 ‘즐거운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삶이 다르기에, 연극하는 몸짓이 다르고, 연극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다릅니다. 츠기카게 선생님은 두 아이가 얼마나 다른 넋인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빙그레 웃습니다. 〈홍천녀〉 배역을 누구한테 줄는지는 처음부터 손꼽았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손꼽았다 하더라도, 두 가지 다른 삶을 바라보면서, 두 가지 다른 삶이 저마다 가장 어여삐 흐드러질 수 있기를 바라기에, 굳이 〈홍천녀〉가 아니더라도, 두 아이가 서로 다른 삶을 아름다이 꽃피울 때까지 ‘사랑을 스스로 느끼도록 가르치’고 싶어서 오래도록 담금질을 시킬 뿐입니다.


  마유미라는 아가씨한테는 연극이 온삶입니다. 모든 것을 연극에 바칩니다. 그래서 마유미라는 아가씨한테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대단히 크게 있더라도, 마유미라는 아가씨는 이를 대수로이 여기지 않아요. 굳이 이것들을 즐기거나 누리지 않아요. 오직 연극 한길에 온삶을 바치며 곁눈 파는 일 없이 갈 길만 걸어갈 뿐입니다.


  마야라는 아가씨는 온넋을 쏟아 연극을 하지요. 꼭 연극을 안 해도 돼요. 그러나, 어느 일을 하더라도 연극에 온넋을 쏟기 때문에, 다른 길을 걷거나 다른 삶을 일구어도 ‘연극을 즐기는 듯한’ 재미난 나날입니다. 연극 없이 못 산다는 하루가 아니라, 연극을 하며 삶을 재미나게 누린다는 하루예요.


- ‘그렇구나! ‘놀이’란 원래 상상력을 발휘해서 노는 거지? 부서진 승강장을 〈홍천녀〉의 세상으로 보고 연극을 하는 거야!’ (30쪽)
- “연극은 웅장한 ‘상상놀이’다. 자신들의 세상을 자유자재로 만들어 낼 수 있는!” (109쪽)

 


  마유미는 가야 할 길을 뚜벅뚜벅 걷기 때문에, 나날이 새롭게 발돋움합니다. 새롭게 배우고 새롭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새롭게 배울 수 있을 뿐, 새롭게 가르치지는 못해요. 새로운 것을 맞닥뜨리면서 비로소 깨닫는데요, 스스로 새로운 것을 짓지는 못합니다.


  마야는 즐거운 길을 신나게 걷기 때문에, 나날이 새롭게 웃음꽃을 피웁니다. 새롭게 노래하고 새롭게 춤춥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빚습니다. 따로 누구를 가르친다거나 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야 곁에 있는 사람들은 마야를 바라보며 늘 새롭게 배워요. 마야는 누구를 가르치려 하는 생각이 없으나, 둘레 사람들한테 새 이야기를 늘 들려주기 때문에 ‘새로운 눈길과 마음길’을 가르치는 셈입니다. 즐거운 삶이 즐거운 연극이 되고, 즐거운 연극이 즐거운 사랑으로 거듭나요.


  온삶을 바치는 일이 ‘더 낮지’ 않습니다. 거룩하고 훌륭합니다. 온넋을 쏟는 일이 ‘더 높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야지요. 온삶을 바치되, 어떤 넋인가를 헤아려야지요. 딱딱하거나 차갑거나 메마른 넋이라 한다면, 웃음기 없거나 살가운 손길이 없는 넋이라 한다면, 이렇게 온삶을 바쳐서야 살아가는 재미나 즐거움이 어디에 있겠어요. 마유미가 자꾸 마야한테 뒤처진다고 느끼는 뿌리는 여기에 있어요. 마유미가 못하거나 잘못하는 일은 없어요. 그러나, 마유미는 스스로 즐거움이나 재미를 찾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며 느끼지 못해요. 그저 가야 할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에요.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데 아름다움을 연극으로 보여주지 못합니다.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데 사랑을 연극으로 나누지 못합니다.


- “땅, 바위 ,나무에도 신이 깃들어 있죠. 그들 모두를 관장하는 신도 있어요. 인간도 원래는 신이랍니다. 인간도 원래는 신? 모르겠어. 이게 무슨 소리지? ‘신’이란 게 뭐야?” (130쪽)
- ‘내가 생각하면 물도 움직인다. 내가 생각하면 물에 ‘신’이 깃든다!’ (135쪽)
-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은 서로 울리거든. 네가 끌리는 것처럼 그 사람도 네게 끌릴 테고, 네가 갈구하는 것처럼 그 사람도 널 갈구할 수밖에 없을 거야.” (166쪽)

 


  츠기카게 선생님이 마유미한테 〈홍천녀〉 연기를 시키는 까닭이 49권째에 살짝 드러납니다. 마유미가 혼자 폐허에서 연기를 해 보다가 문득 “내가 생각하면 물도 움직인다. 내가 생각하면 물에 ‘신’이 깃든다!” 하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렇게 느끼면서도 이 느낌이 무엇인지 아직 더 생각하지 못해요. 깊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50권째나 51권째에는 받아들일까 모르겠는데, 아마 마야가 〈홍천녀〉 연기를 하고, 마지막으로 츠기카게 선생님이 평가를 할 적에 비로소 뒷통수를 때리듯 깨우치지 않으랴 싶습니다.


  이와 달리, 마야는 주연 배우가 되느냐 마느냐는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창 연기를 하다가 마음이 축 처지면서 츠기카게 선생님한테 찾아갑니다. 당돌하거나 당차다기보다, 아직 어리고 어리숙합니다. 무엇보다 마야한테는 ‘나한테 찾아온 사랑’이 ‘즐거운 삶’인지 무엇인지 알쏭달쏭합니다. 마야 곁에는 이런 사랑과 삶을 차분히 알려주거나 들려줄 만한 벗이나 어른이 없습니다. 츠기카게 선생님은 연기를 가르친 스승이기 앞서, 삶을 일깨운 이슬떨이요, 사랑을 느끼도록 속삭이는 고운 벗이에요.


- “내 말을 명심해라. 만약 그 사람이 정말 내 영혼의 반쪽이라면 마음은 분명 너와 같을 터. 그런 태도를 취한 데는 필시 뭔가 사정이 있었을 게다.” (149쪽)
- “책임감과 동정만으로 결혼해 봤자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평생 체념과 괴로움 속에 살아가실 생각이세요 …… 그리고 행복해질 결심을 하는 겁니다. 앞으로 어떤 폭풍이 몰아칠지라도. 부디 자신에게 솔직해지십시오!” (163∼164쪽)


  환하게 빛나는 생각이 환하게 빛나는 삶을 부릅니다. 환하게 빛나는 생각으로 환하게 빛나는 사랑을 이룹니다. 빛나지 못하는 생각은 빛나지 못하는 삶을 부릅니다. 어두운 생각은 어두운 삶을 부릅니다. 스스로 품는 생각이 스스로 누리는 삶입니다. 스스로 짓는 생각이 스스로 걸어가는 길입니다. 4346.1.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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