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28] 치마저고리

 


  여섯 살이 된 큰아이가 음성 할머니한테서 설빔 한 벌 얻습니다. 치마저고리입니다. 치마가 있고 저고리 있어 치마저고리입니다. 세 살 된 작은아이는 바지저고리 한 벌 있으며, 아직 넉넉히 입을 만합니다. 세 살 작은아이도 누나처럼 무럭무럭 자라서 몸이 크고 키가 크면, 할머니한테서 설빔 새로 얻을 수 있을 테지요. 먼먼 옛날부터 가시내는 치마랑 저고리를 입고, 아득한 옛날부터 사내는 바지랑 저고리를 입습니다. 우리 겨레는 언제부터 치마하고 바지를 나누어 입었을까요. 가시내는 치마를 입는다지만, 겨울날 추위에는 솜바지를 사내랑 나란히 입었겠지요. 고운 빛깔 눈부신 치마와 저고리를 입는 아이가 환하게 웃습니다. 어여쁜 무늬 아리따운 바지와 저고리를 입는 아이가 맑게 뛰놉니다. 아이도 어른도 정갈한 마음에 정갈한 옷을 갖추고, 따스한 사랑에 따스한 삶을 꾸립니다. 4346.2.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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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치마저고리 어린이

 


  음성 할머니가 사름벼리 새 치마저고리 장만해 주신다. 사름벼리는 설빔을 한 벌 얻는다. 세 살 적 입은 치마저고리는 아주 작고 닳아 더 못 입는다. 이제 여섯 살 새 치마저고리를 받아 신나게 입겠지. 즐겁게 입고 예쁘게 놀며 자라렴. 4346.2.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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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놀이 1

 


  자그마한 아이는 자그마한 들꽃을 꺾어 자그마한 손에 쥐고 논다. 이렇게 한동안 놀다가 자그마한 손에 쥔 자그마한 들꽃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꽃을 꺾어 잘 놀았으면, 꺾은 꽃은 처음 있던 풀섶에 곱게 내려놓아 주렴. 방바닥에 놓거나 아무 데나 놓지 말아 주렴. 자그마한 그릇에 물을 받아 꽃대를 꽂으면 조금 오래 꽃놀이를 할 수 있어. 4346.2.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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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문학의 얼굴
김일주 / 민음사 / 1996년 7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30

 


천천히 찾아서 오래도록 즐기는 맛
― 한국 현대 문학의 얼굴
 김일주 사진
 민음사 펴냄,1996.6.25./35000원

 


  내 살가운 사진벗 가운데 한 분은 로모사진기로만 사진을 찍습니다. 한 팔을 곧게 뻗어 거리를 잰 다음 찰칵 하고 눌러 사진을 빚습니다. 한 통을 다 찍으면 사진을 값싸게 만들어 주는 데에서 필름을 찾습니다. 누리사랑방에 ‘필름 한 통 찍은 사진’을 통째로 고스란히 올립니다. 이 사진들을 바라보며 참 좋구나 하고 느낍니다. 사진을 좋아하며 누리는 삶이랄까요, 사진과 벗삼으며 하루하루 즐기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여러 해째 ‘로모 사진’을 그분 누리사랑방에서 지켜보면서 오늘 문득, ‘사진은 천천히 찾아서 오래도록 즐기는 맛’이 있어 재미있다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김일주 님이 한국 문학가를 찾아다니며 찍은 ‘얼굴사진’을 그러모아 엮은 사진책 《한국 현대 문학의 얼굴》(민음사,1996)을 곰곰이 들여다봅니다. 책머리에 “모쪼록 이 사진집의 발간으로 우리 문학과 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보다 더 문학과 가까워지고 우리 문학이 풍성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발간사).” 하는 말이 실립니다. 참말, 이 책머리 이야기처럼 이 사진책 하나가 조그맣게 밑거름 구실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진책 《한국 현대 문학의 얼굴》은 그닥 재미있지 않습니다. 이런 시인 저런 소설가 골고루 얼굴사진 실으려 하면서, 너무 밋밋한 책이 되고 말아요. 이런 작가한테는 이런 삶이 있을 테고, 저런 작가한테는 저런 생각이 있을 텐데, 사진책 《한국 현대 문학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이런 작가한테 어떤 삶이 있고 저런 작가한테 어떤 생각이 있는가 읽기 몹시 힘들어요. 여러 작가들 얼굴은 들여다볼 수 있지만, 작가마다 다른 삶과 생각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온갖 작가를 만나기 쉽지 않은 만큼, 비슷비슷한 행사 자리에서 마주치며 바지런히 찍은 사진을 실을밖에 없기도 하리라 봅니다. 그런데, 비슷비슷한 행사 자리에서 마주친다 하더라도, 작가마다 어떤 삶을 일구며 어떤 생각을 글에 녹였는가를 찬찬히 헤아린다면, 다 다른 얼굴빛 다 다른 삶빛 다 다른 넋빛을 사진으로 실을 만하지 않았을까요. 2008∼2009년에 사진잔치를 열 적에 김일주 님은 ‘8만 장’에 이르는 얼굴사진을 마흔 해에 걸쳐 찍었다고 밝혔습니다. 틈틈이 사진잔치를 여는 만큼, 8만 장 가운데 새롭게 선보이는 사진이 있을 테고, 거듭 선보이는 사진이 있겠지요. 그러면, 1996년에 처음 나온 《한국 현대 문학의 얼굴》 고침판을 한 번쯤 낼 만하지 않으랴 싶어요. 밋밋하거나 싱거운 ‘백과사전 같은 사진책’을 넘어, ‘작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사진책’을 기쁘게 베풀 만하리라 생각해요. 작가들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태우는 모습도, 작가마다 다른 삶과 넋으로 술과 담배를 벗삼는 모습으로 보여줄 수 있어요. 작가들이 마이크 앞에서 이야기하는 모습도, 작가마다 다른 빛과 얼로 이야기꽃 피우는 모습으로 밝힐 수 있어요. 작가 한 사람 모습을 예전과 오늘을 견주며 드러낼 수 있겠지요.


  더 많은 글작가를 만나서 더 많은 사진을 남겨야 하지 않습니다. 흔한 말로 ‘아카이브 쌓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 사람을 즐겁게 마주하면서 즐거운 사랑을 느끼며 즐거운 사진으로 일굴 수 있으면 돼요.


  천천히 찾아서 오래도록 즐기는 맛이 사진에 있는 줄 되새길 수 있기를 빕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찾아 즐기는 ‘바로사진(즉석사진)’도 있는데, 사진이 바로 나온다 하더라도, 종이에 그림이 뜨기까지 ‘천천히 기다리’지요. 디지털사진이라면 찍자마자 창에 짠 하고 뜨기에 ‘기다리는 맛’은 없다 할 텐데, 디지털파일로 들여다볼 때에는 어떠한 사진이든 ‘오래도록 즐기는 맛’이 없어요. 필름으로 찍거나 디지털로 찍거나, 내 집이나 일터에 붙이려 한다면 종이에 앉히잖아요. 종이에 앉히기까지 ‘잘 앉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벽에 ‘종이로 앉힌 사진’을 붙이고 나면 한 달 한 해 열 해 스무 해 두고두고 바라보는 ‘오래도록 즐기는 사진’으로 거듭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사진’이나 ‘얼굴사진’이란 사람 겉모습을 찍거나 얼굴 생김새를 찍는대서 이루지 못합니다. 이런 시인 저런 소설가를 더 많이 찍어야 “한국 현대 문학 얼굴”을 말하는 사진책을 엮을 수 있지 않습니다. 시인한테 어떤 삶이 있고 소설가한테 어떤 사랑이 있으며 수필가한테 어떤 꿈이 있는 한편 극작가한테 어떤 생각이 있는가를 환하게 드러내는 웃음꽃이 ‘사람들 얼굴 모습에서 피어날’ 때에 비로소 사람사진이나 얼굴사진이 됩니다. 한 사람을 찍더라도 ‘기나긴 해를 글 한 줄 쓰며 살아온 글벗 넋’을 내 넋으로 받아들여 어깨동무하는 손길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시인이라 하더라도 시를 쓰는 동안에는 가난도 뭐도 모두 잊어요. 오직 글 하나에 삶을 바칩니다. 글꽃이란 삶꽃입니다. 빙그레 웃거나 슬프게 울면서 시를 씁니다. 웃음꽃이 시꽃이 되고, 눈물바람이 시바람이 됩니다. 노랫가락이 싯가락이 되며, 춤사위가 싯사위가 되어요.


  가만히 돌아보면, 내가 저이를 읽은 만큼 저이 모습이 내 사진 하나로 다시 태어납니다. 내가 내 삶벗을 헤아린 만큼 내 삶벗 이야기를 내 사진 하나로 살포시 앉힙니다. 어느 작가가 내놓은 작품을 열 권쯤 읽은 뒤하고, 어느 작가가 내놓은 작품을 아직 한 권도 안 읽은 뒤하고, 내가 찍을 사진은 같지 않습니다. 어느 작가하고 도란도란 오랜 나날 이야기꽃을 피운 뒤하고, 어느 작가하고 처음 마주한 자리하고, 내가 느끼며 찍을 사진은 조금도 비슷하지 않아요.

  천천히 찍으면 됩니다. 천천히 오래도록 찍으면 됩니다. 사진을 읽을 사람들이 천천히 오래도록 즐기기를 바란다면, 사진을 찍는 사람부터 천천히 오래도록 찍으면 됩니다. 사진을 읽을 사람들이 ‘더 많은 작가’ 얼굴을 바라보기를 바란다면, 사진을 찍는 사람도 그저 ‘더 많은 작가’를 만나려고 잰걸음 놀리면서 더 많은 작가를 찍으면 됩니다. 4346.2.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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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14] 층집읽기
― 아파트에서 놀 수 없는 아이들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 집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실컷 뛰고 노래하며 구릅니다. 집안에서건 마당에서건 뒷밭에서건 논둑에서건 들판에서건 숲속에서건, 아이들은 뛰고 싶은 대로 뛰며, 노래하고 싶은 대로 노래하다가는, 구르고 싶은 대로 굴러요.


  내 어릴 적을 돌이켜보면, 나는 골목동네에서 실컷 뛰고 노래하며 굴렀습니다. 몸이나 옷이 흙투성이가 되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집으로 들어가기 앞서 ‘아차, 오늘도 옷이 지저분하네.’ 하고 생각하면서 흙을 터느라 바빴어요. 어머니는 당신 아들내미가 또 옷을 다 더럽히고 들어온 줄 뻔히 알아챕니다. 땀에 절고 흙에 절어, 겉보기로 흙기운 털었다 하더라도 땀내음과 흙내음이 물씬 풍기니까요.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옷차림을 보면 아주 말끔합니다. 옷에 흙을 묻히고 다니는 아이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예전처럼 흙길이 있는 도시는 없고, 시골에서도 흙길을 시멘트로 덮으니까, 아이들 옷에 흙 묻을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 할 텐데, 아이들은 시멘트길에서든 흙길에서든 놀 겨를이 없곤 해요. 학원에 다니거나 방과후학교에서 지내느라 바쁜 오늘날 아이들이에요. 신나게 뒹굴거나 구르거나 뛰놀면서 옷과 몸이 흙투성이 되는 일을 찾아볼 수 없는 아이들이에요.


  방방 뛰고 싶은데 뛸 자리가 없으면, 아이들은 집에서라도 뛰고 싶습니다. 뜀박질과 달음박질로 땀을 흘리고 싶은데, 학교나 학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얌전히 앉아 텔레비전만 바라보아야 한다든지 이런 영어교육이나 저런 학습지도에 따라야 한다면, 아이들은 온몸에 좀이 쑤셔서 견디지 못합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비로소 뛰거나 구르려 합니다. 도시에서는 저녁이건 밤이건 바깥이 전깃불로 환하니 아이들이 일찌감치 잠들지 않아요. 게다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저녁에 일찍 불을 다 끄고 잠자리에 누우려 하지 않아요. 도시 어른들은 저녁 예닐곱 시면 ‘아직 낮’으로 여겨요. 도시 어른들은 저녁 열 시가 넘어도 ‘아직 저녁이 아니라’고 여겨요.


  도시 아파트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저녁 아홉 시나 열 시나 열한 시까지도 콩콩 뛸밖에 없습니다. 도시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웃집이나 아랫집 아이들이 참말 늦은 밤에까지 콩콩 쿵쿵 쾅쿵 우르르 소리를 내며 뛰거나 내지르는 소리에 들볶일밖에 없습니다. 더 생각해 보면, 도시에는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뛸 터가 없어요. 조금이나마 빈 터가 있으면 자동차를 대는 도시예요. 아주 작은 빈 터조차 무슨 물건을 놓거나 가게를 차리거나 하는 도시예요. 흙이 몽땅 사라지는 도시이면서, 비어서 한갓진 터조차 없는 도시예요. 또한, 조금 빈 으슥한 데는 중·고등학교 푸름이들이 어른 몰래 담배 태우는 자리가 돼요. 아이들은 이래저래 놀 자리, 뛸 자리, 쉴 자리, 뒹굴 자리 없어요. 흔히 말하는 ‘층간소음’은 도시 얼거리 스스로 빚는 끔찍한 괴로움이에요. 도시에서 아이들이 놀 자리 쉴 자리 뛸 자리 있으면, 집에서 안 뛰어도 돼요. 집에서 뛰고 싶으면 바깥에서 한참 뛰다 들어오면 되거든요. 저녁 아홉 시나 열 시라 하더라도, 집 바깥 놀이터나 마당이나 빈 터에서 공차기를 하든 줄넘기를 하든 배드민턴을 하든 무얼 하든, 한참 땀을 쏟고 나서 집으로 들어오면 돼요. 그러나, 생각해 봐요. 오늘날 어느 도시 어느 아파트나 골목동네 한켠에 ‘한갓지게 비었으면서 늦은 저녁에 아이들이 걱정없이 뛰놀 자리’가 있는가요. 아이들은 다세대주택에서건 아파트에서건 ‘층을 이룬 집’에서 콩콩콩콩 뜁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쿵쿵쿵쿵 소리를 낼 적마다 뿔이 납니다. 아이들은 우당탕탕 꺅꺅 소리를 지르며 ‘갑갑한 속을 풀고’ 싶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이리 뒹굴거나 저리 뛸 적마다 골이 아픕니다.


  아파트에서는 아이들이 놀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놀 수 없는 아파트는 어른들 또한 놀 수 없는 자리입니다. 어른들이 술잔치를 벌인다 하더라도 아하하하 까르르르 웃음보 터뜨리면서 노래 몇 가락 뽑을 수 없어요. 어른들이 밤 열두 시나 새벽 두어 시에 노래를 부르면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서 어찌 될까요.


  층으로 쌓는 집 아닌 마당을 두는 집을 마련해야 어른도 아이도 숨통을 트리라 생각합니다. 층으로 쌓는 집 아닌 마당을 두는 집을 마련하면서, 마당 한켠에 나무를 심어 돌보고, 마당 또한 시멘트로 바닥을 대지 말고 흙으로 바닥을 살려 빗소리와 눈소리를 새록새록 누릴 수 있어야, 도시사람이건 시골사람이건 숨결을 살리리라 생각합니다.


  한겨레는 예부터 층집을 세우지 않았어요. 한겨레는 예부터 누구나 흙땅 딛고 살았어요. 한겨레는 예부터 누구나 흙을 만지며 숨을 쉬고, 흙에 몸을 눕혀 살았어요. 한겨레는 예부터 어른도 아이도 흙하고 한몸이 되어 넋과 얼을 살찌웠어요. 층집이 늘면 늘수록 한겨레 삶자락은 더 메마르거나 차갑거나 갑갑하거나 쓸쓸하게 뒤틀리겠다고 느낍니다. 4346.2.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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