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사진비평 원고 한 권을 마무리지었다. 지난해에 나오기로 하고 아직 안 나오는 내 사진비평책 하나, 그 뒤 꾸린 사진비평 원고 두 뭉치, 여기에 새 사진비평 원고 한 뭉치...... 나라밖 사진비평 원고도 책으로 나오기 쉽지 않지만, 한국에서 한국사진을 이야기하는 책이 여러 사람 여러 눈길로도 나올 수 있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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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의 순간들
제프 다이어 지음, 한유주 옮김 / 사흘 / 2013년 1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13년 02월 1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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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을 밝히는 책

 


  책시렁을 환하게 밝히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책시렁에 수십 권이나 수백 권에 이르는 책이 꽂히는데, 여기에 어느 책 하나 살포시 깃들며 다른 책들 모두 환하게 밝히는 남다른 책 하나 있습니다.


  마을을 환하게 밝히는 책방이 하나 있습니다. 수백 수천 군데 가게가 줄줄이 늘어선 마을인데, 여기에 어느 책방 하나 조용히 깃들며 다른 가게를 모두 눈부시게 밝히는 남다른 책방 하나 있습니다.


  도서관이 마을에 수십 군데 있지 않아도 됩니다. 책방이 마을에 열 몇 군데씩 있지 않아도 됩니다. 책방거리나 책방골목이 없어도 됩니다. 꼭 한 군데 조그마한 책방이 있어도 넉넉하고, 꼭 한 군데 조그마한 책방에 책 하나 있어도 즐겁습니다.

 

  내 보금자리에 책이 십만 권이나 백만 권 있을 때에 뿌듯하지 않습니다. 내 보금자리에는 책이 한 권조차 없어도 됩니다. 내 보금자리에 책 하나 있기를 바란다면, 나와 살붙이 눈길을 틔우고 마음을 열도록 북돋우는 아름다운 이야기 깃든 책 하나이면 넉넉합니다. 수십 수백 권에 이르는 책이 삶을 빛내지 않아요.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리는 손길로 살그마니 집어들어 기쁘게 웃음짓도록 돕는 책 하나라면 즐겁습니다.


  햇살 한 조각이 따스합니다. 바람 한 닢이 시원합니다. 물 한 모금이 상큼합니다. 꽃 한 송이가 어여쁩니다. 말 한 마디가 반갑습니다. 돈 한 푼이 고맙습니다. 노래 한 가락이 신납니다. 춤 한 사위가 멋집니다. 이야기 한 꾸러미가 소담스럽습니다. 그리고, 책 한 권이 해맑습니다. 4346.2.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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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와 책쓰기

 


  곰곰이 따지면, 책읽기란 ‘남이 차려 놓은 이야기 읽기’입니다. 스스로 찾아서 챙겨 살피는 이야기 아닌, ‘남이 힘껏 찾아서 챙겨 살핀 이야기를 읽는’ 일이 책읽기입니다.


  예부터 고이 이어온 말을 돌아봅니다. 무엇이든 배우려면 스스로 배우지, 남한테서 배울 수 없다 했습니다. 스승이 있대서 배우지 않습니다. 책이 있대서 배우지 않아요. 언제나 내 맨주먹과 맨몸으로 부대끼면서 배워요. 모든 삶은 스스로 부딪히면서 깨닫고 배우지, 누가 일깨우거나 가르치지 못해요. 곧, 누가 일깨우거나 가르친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 알아차리거나 받아들이지 못할 때에는 하나도 못 배워요.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하더라도, ‘권수로 치면 많이 읽지’만, 마음가짐이 넓거나 트이거나 열리지 않으면, 아무런 줄거리나 고갱이를 못 받아들여요. 다시 말하자면, 마음가짐이 넓거나 트이거나 열린 채로 있다면, 책 한 권을 읽더라도 책 백만 권 읽는 사람보다 깊고 넓으며 환하게 깨우칩니다. 스스로 마음가짐을 넓히거나 트거나 열면, 종이책 한 권조차 안 읽더라도 삶을 깨닫고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책읽기를 하자면 책쓰기를 함께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남이 차린 밥상을 받아서 먹듯, 나도 밥상을 차려 남한테 베풀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책쓰기를 하다 보면, 남이 차린 밥상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느낄 뿐 아니라, 밥상을 차려서 베풀기까지 어떤 삶을 치르거나 겪거나 복닥였는가를 살갗으로 헤아릴 수 있어요. 이러는 동안, 서로서로 이야기꽃 피울 수 있지요. 나는 내가 겪은 삶을 이웃한테 들려주고, 이웃은 이웃이 겪은 삶을 나한테 들려줍니다.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됩니다. 함께 나누는 삶이 됩니다.


  책은 누구나 씁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이녁 깜냥껏 삶을 누리거나 즐기거나 빚기 때문입니다. 책은 누구나 읽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이녁 슬기를 빛내어 하루하루 누리고 즐기며 빚으니까요. 삶을 다루는 책인 만큼, 내 삶을 들여 읽고 내 삶을 바쳐 씁니다. 4346.2.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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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하는 남자 친구의 편지 한림 저학년문고 1
키르스텐 보예 지음, 스테파니 샤른베르그 그림, 유혜자 옮김 / 한림출판사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29

 


서로 재미있게 놀자
― 발레하는 남자 친구의 편지
 키르스텐 보이에 글,스테파니 샤른베르그 그림,유혜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2006.4.30./9000원

 


  시골에서 살아가든 서울에서 살아가든, 우리들은 재미있게 살아갈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든 어느 집안에서 태어나든, 저마다 재미있게 삶을 일굴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시골에서 태어났으면 시골사람답게 시골을 누리면 됩니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면 서울사람답게 서울을 누리면 돼요. 살림 가멸찬 집안에서 태어나면 이 집안살림 곱게 누리면 되고, 살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면 이 집안살림 넉넉히 누리면 됩니다.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삶입니다. 어떤 마음이 되어 하루하루 맞아들이려 하는가에 따라 바뀌는 생각입니다. 마음자리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마음빛에 따라 생각이 거듭나요.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파랗게 눈부신 하늘과 푸르게 뒤덮인 들과 숲을 누리면 됩니다. 서울에서 살아가기에 마당을 돌보고 텃밭이나 꽃밭을 가꾸며, 빈 터가 보이면 나무씨앗 한 톨 심어 씩씩하게 자라기를 빌 수 있어요. 시골에서는 시골숲을 보살피고, 서울에서는 서울숲을 돌보면 즐겁습니다.


.. 그런데 생각해 보니 선생님이 쓰기 공부를 가르치는 것보다 수산네라는 동창생 이야기를 하는 게 차라리 잘 된 일인 것도 같았다 ..  (12∼13쪽)


  정치를 꾀하는 이들은 진보나 보수 같은 이름을 만듭니다. 아마 오늘날 정치에서는 진보하고 보수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금긋기를 하며 싸워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진보는 무엇이고 보수는 무엇일까요. 시골에서는 정치를 안 하고 몽땅 서울에서만 정치를 하는데, 서울에서 정치꾼이 꾀하는 진보나 보수란 서로 어디로 나아가려 하는가요.


  정치꾼이든 기업꾼이든 으레 ‘일자리 만들기’를 얘기해요. 우리 시골집으로도 ‘국회의원 의정보고서’가 날아와요. 시골 국회의원이 정치꾼으로서 무슨 일을 했는가 죽 돌아보니, 하나같이 ‘토목건설 사업’을 이래저래 벌이며 몇 억이나 수십 억 돈을 타내었다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러니까, ‘일자리 만들기’라 한다면, 우리 여느 사람들 주머니에서 돈을 거두어들여 ‘토목건설 일자리’를 만든다는 셈이고, 토목건설 일꾼들이 무언가 짓고 부술 적에 곁에서 밥을 팔거나 술을 팔거나 기계를 팔거나 부속품이나 장비를 팔아 돈이 돌고 돌게 한다는 뜻입니다.


  백 해쯤 앞서를 생각합니다. 오백 해나 천 해나 만 해쯤 앞서를 생각합니다. 한국말에 ‘진보’나 ‘보수’는 없습니다. 서양 학문을 일본 학자가 옮기며 ‘진보’나 ‘보수’ 같은 한자말을 지었습니다. 문명 사회가 되었다 하기에, 서양 학문이 한국으로도 흘러들어 이런 이름으로 정치나 사회나 문화를 읽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흙을 만지는 일꾼한테 진보가 있을까요. 갯벌에서 바지락 캐고 고깃배 몰아 고기를 낚는 일꾼한테 보수가 있을까요. 아이를 낳아 젖을 물리는 어머니한테 진보가 있을까요. 아이들 똥바지 오줌기저귀 손빨래하는 아버지한테 보수가 있을까요.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은 진보나 보수를 알까요. 노래를 부르며 놀고, 마당에서 뒹구는 아이들한테 진보나 보수라는 금을 가를 까닭이 있을까요.


  봄꽃에 진보가 있을까요. 여름숲에 보수가 있을까요. 가을걷이에 진보가 있을까요. 낫질이나 써레질이나 갈퀴질에 보수가 있을까요. 아궁이에 불을 때고 밥물 맞추는 데에 진보가 있을까요. 겨우내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며 고구마 쪄서 먹는데 보수가 있을까요.

 

 


.. “알렉산드라라는 애야. 줄여서 알렉스라고 한대. 네가 직접 읽어 봐. 글씨를 읽을 수 있다면.” “정말 글씨 되게 못 쓴다.” 발레스카가 안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착한 아이일지도 몰라. 글씨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  (36쪽)


  우리 시골마을 고흥에서는 군청에서 앞장서서 ‘비전 5000 프로젝트’를 꾀한다고 밝힙니다. 시골 흙일꾼이나 고기잡이마다 한 해에 5000만 원 넘게 돈을 벌도록 무언가 한다는 뜻인데, 흙을 만지거나 고기를 낚거나 갯일을 하며 꼭 5000만 원 넘게 벌어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4500만 원을 번다든지 3900만 원을 벌면 안 될는지요. 2000만 원을 벌면 먹고살기 힘들는지요. 흙을 일구어 거두는 푸성귀나 곡식을 굳이 내다 팔아 돈을 만져야 할는지요. 스스로 살림 꾸릴 만큼 흙을 일구어 식구들 밥을 차리는 삶으로 나아가면 어떠할는지요.


  5000만 원을 벌어 무엇을 하면 즐거운 삶이 될까요. 5000만 원 넘게 벌어 누구하고 이 돈을 나눌 때에 아름다운 삶이 될까요. 5000만 원 못 되게 벌어 살림은 어떠하게 꾸릴 때에 재미난 삶이 될까요.


  돈을 버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아요. 다만, 돈벌이에만 마음이 사로잡히면 슬프거나 안쓰럽다고 느껴요. 시골마을 군청에서 할 몫이라면, 시골마을 사람들이 ‘돈을 더 벌라’고 부추기거나 채찍질을 하기보다는, 돈을 적게 벌거나 아예 안 벌더라도, 하루하루 재미나게 삶을 누리는 길을 밝혀야지 싶습니다.


  우리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는 ‘서울로 가서 지내는 딸아들’이 손자를 낳아 돌보는데 아토피 때문에 유기농 곡식이며 약값이며 무어며 하면서 다달이 백만 원이나 이백만 원씩 쏟아붓는다고 걱정해요. 한 해에 5000만 원을 벌든, 또는 1억 원을 벌든, 아토피를 비롯해 온갖 몸앓이를 한다면, 이렇게 버는 돈은 어디에 뜻이 있을까요. 돈벌이를 하느라 막상 삶을 누리지 못하거나, 느긋한 겨를이 없다면 어떤 보람이 있을까요.


  돈을 벌고 싶으면 벌 노릇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누구도 ‘돈을 벌려고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어요. 우리는 누구나 ‘삶을 재미있게 누리려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 “이런 바보 같은 애를 뭐 하러 만나러 가요? 축구도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하는데!” “그런 말을 썼다고 그 애를 보러 가지 않겠다고? 너 생각이 제대로 돌아가는 애니? 설마 온 세상 사람들이 네가 좋아하는 것을 다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49∼50쪽)


  시골마을 고흥은 ‘비전 5000 프로젝트’를 외치면서 다른 한켠에서는 ‘하이 고흥 해피 고흥’을 외쳐요. 높고 즐거운 고흥이라는 소리인데, 돈을 많이 번대서 높고 즐거운 시골살이가 되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아이들 웃음꽃이 흐드러지고, 마을에서 사람들 노랫소리 흐드러지며, 숲과 들에 맑은 바람 산들산들 불 때에 높고 즐거운 시골살이가 이루어집니다.


  멧새와 들새가 농약에 시달리지 않을 때에, 도랑물과 냇물을 언제 어디에서라도 두 손으로 떠서 마실 수 있을 때에, 바닷가에 관광객 쓰레기가 넘치지 않을 때에, 자동차보다 자전거와 두 다리를 믿고 들길과 시골길 거닐 수 있을 때에, 멧골짝 시냇가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놀이가 아니라 멧골짝 시냇물에서 발 벗고 찰방찰방 노닐며 노래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즐거운 시골살이입니다.


.. 다시 거실로 돌아간 로빈은 알렉스의 회색 눈빛을 보면서 역시 북해 출신 아이답다고 생각했다 ..  (76쪽)


  키르스텐 보이에 님 글이랑 스테파니 샤른베르그 님 그림이 어우러진 어린이책 《발레하는 남자 친구의 편지》(한림출판사,2006)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내가 발레를 해도 스스로 즐거우면 재미난 삶입니다. 가시내가 축구를 해도 스스로 즐거우면 재미난 삶입니다. 발레에도 축구에도 진보나 보수는 없습니다. 집안일이나 들일이나 바닷일에도 진보나 보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누리는 삶에서 스스로 무엇을 찾고 생각하며 나눌 때에 아름다운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어른부터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면서, 이 땅 어린이와 푸름이가 아름다운 빛을 실컷 누리고 느낄 수 있도록 이끌기를 바랍니다. 서로 재미있게 놀기를 빕니다. 4346.2.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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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놀이 3

 


  큰아이는 할머니 장갑을 얻어 눈놀이를 하고, 작은아이는 그냥 맨손으로 눈놀이를 한다. 큰아이는 작은아이보다 일찍 눈놀이를 하느라 손이 빨갛게 꽁꽁 얼어 할머니 장갑을 얻고, 작은아이는 뒤늦게 나와 누나 곁에서 누나처럼 눈을 만지며 노는 재미에 흠뻑 빠진다.


  눈발 거의 안 날리는 고흥에서 살아가느라 너희가 눈 만질 겨를 거의 없네. 어쩐지 미안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만나러 나들이를 할 적에 눈 실컷 만나면 되지. 언손은 녹이면 되니까 질릴 때까지 놀다가 들어가자. 4346.2.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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