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책읽기

 


  아직 겨울이 가시지 않은 2월 한복판에 봄을 생각하며 책을 읽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책을 읽기도 하고, 아이가 만화책을 들여다보는 곁에 엎드려 책을 읽기도 합니다. 따순 봄날, 종이책은 모두 방바닥에 내려놓고 아이들과 신나게 들마실을 하며 꽃노래 부르던 일을 떠올립니다. 이제 얼마 더 기다리면, 흐드러진 봄볕 누리면서 봄들 거니는 하루하루 누릴 수 있겠지요.


  푸른 잎사귀와 노란 꽃망울 빛나는 들판에서 아이들은 푸른 웃음과 노란 노래를 부릅니다. 나도 아이들 곁에서 푸른 숨을 쉬고 노란 생각을 키웁니다. 겨울은 봄을 꿈꾸게 합니다. 겨울에는 봄을 이야기합니다. 새봄을 맞이하면 맑게 피어나라고, 겨우내 온 들판 꽁꽁 얼어붙으며 고이 잠을 재웁니다. 예쁜 동무들아, 곧 봄이니, 다들 기지개 켜고 일어나 숲에서 뛰놀자. 4346.2.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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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사람 비룡소의 그림동화 13
토미 웅거러 / 비룡소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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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48

 


봄이 오는 소리
― 달 사람
 토미 웅거러 글·그림,김정하 옮김
 비룡소 펴냄,1996.2.5./8500원

 


  설이 지나가며 봄이 오는 소리 한결 짙습니다. 북녘은 아직 춥겠지만 남녘은 퍽 포근합니다. 봄을 시샘하는 듯 살짝 찬비가 내리기도 하지만, 찬눈 아닌 찬비입니다.


  봄을 재촉하는 겨울비가 온 들과 숲과 바다를 적십니다. 겨울 막바지 보드라운 빗줄기는 바람 없이 고즈넉하게 찾아듭니다.


  비 그친 이듬날 들판에는 새봄에 피어날 들꽃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겠지요. 구름 걷히고 햇볕 드리우면, 겨우내 웅크리던 나무들도 새눈을 트고 새잎을 내겠지요.


  아이들 옷은 가벼워지리라 생각합니다. 내 옷도 옆지기 옷도 홀가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여느 물로 설거지와 빨래를 할 만할 테고, 이불 한 채 빨아도 곧 마를 테며, 겨울에 입던 두툼한 겉옷도 차근차근 빨고 말려 옷시렁에 건사할 테지요.


  봄은 봄바람처럼 포근하게, 천천히, 나긋나긋, 살며시 찾아옵니다.


.. 별이 반짝이는 맑은 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세요. 달 사람이 달 속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어른어른 비친답니다 ..  (1쪽)


  가을걷이 끝나 꽁댕이만 가득하던 논자락에 낀 얼음이 하나씩 둘씩 깨집니다. 논자락 얼음이 촤라락 껑껑 소리를 내며 깨집니다. 아이들과 논둑에 서서 얼음 깨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제 논자락마다 얼음은 모두 깨지고 녹아 논흙을 보드랍게 어루만지리라 생각합니다. 햇살이 더 따스하게 비추면 유채풀이 자라고 자운영이 자랍니다. 들판마다 노란 물결이 출렁이고 진달래처럼 고운 물결이 넘실거립니다. 올해에도 새봄에 새빛을 한껏 누리겠구나 싶습니다. 봄빛은 즐거운 선물입니다.


.. 며칠 지나서 초승달이 되자, 달 사람도 초승달만 해졌어요. 두 주일이 지나자, 달 사람은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왔어요 ..  (21쪽)


  언제부터인가, ‘봄은 백화점 에누리 소식과 함께 찾아온다’와 같은 말이 퍼지는데, 참말 서울에서는 봄은 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또 여름과 가을은 여름과 가을대로 ‘백화점 에누리’처럼 찾아드는구나 싶어요. 날씨로 맞이하는 철이 아니라, 바람과 햇살로 누리는 철이 아니라, 서울에서는 물질과 물건과 문명으로 달력 숫자를 셉니다.


  누군가는 너무 바쁜 나머지 달력 숫자조차 못 세면서 봄을 맞이할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달력 숫자를 세면서도 봄인 줄 못 깨달을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여름이나 가을이 되어서야 ‘어라, 봄이 지나갔네.’ 하고 돌아볼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새봄이 찾아왔다가 여름과 가을 지나 겨울이 닥치더라도 봄이 지나간 줄조차 헤아리지 않고 살아갈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봄이고 무엇이고 안 따지며 살아갈는지 몰라요.


  봄 어귀에 생각합니다. 봄 들머리에 구름바라기와 별바라기를 하며 생각합니다. 내 살가운 이웃 누구나 이 봄에 기지개 켜고 두 팔 벌려 하늘 너르게 안기를 바라며 생각합니다. 자, 발걸음 멈추어요. 천천히 쪼그려앉아요. 발 언저리를 살펴봐요. 푸릇푸릇 돋는 봄풀을 느껴요. 보드라운 흙을 손가락으로 파서 봄풀을 캐요. 호미 없어도 돼요. 손가락으로도 넉넉해요. 아니, 새봄 새풀은 손가락으로 캐요. 손가락마다 봄흙을 묻히면서 봄풀을 얻어요. 흐르는 도랑물에 봄풀 흙기운을 털어 천천히 먹어요. 겨울빛 사그라드는 봄맛을 누려요. 온몸으로 봄소리를 듣고, 온마음으로 봄노래를 불러요. 온빛을 맞아들여 온넋을 맑게 보살펴요.


  따사로운 봄날 따사로운 봄마음 되어, 따사로운 이야기를 꽃피우고 따사로운 손길로 나무를 쓰다듬어요.


.. 박사는 달 사람에게 우주선의 첫 번째 손님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지요. 달 사람은 기꺼이 우주선을 타겠다고 대답했어요. 결코, 지구에서는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  (31쪽)


  토미 웅거러 님이 빚은 그림책 《달 사람》(비룡소,1996)에 나오는 ‘달 사람’은 지구별 사람들 따사로운 봄잔치에 나들이를 하고 싶었으리라 느껴요. 새봄을 새롭게 즐기는 지구별 사람들하고 기쁘게 노닐고 싶었으리라 느껴요. 봄이 와도 봄인 줄 모르는 채 서울에서 복닥복닥 치대는 지구별 사람들이 아닌, 봄이 오기에 봄이로구나 노래하며 숲에 깃들어 춤추고 활짝 웃는 지구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으리라 느껴요.


  봄이 오는 소리는 어디에서 비롯할까요. 봄이 오는 소리는 누구한테 퍼질까요. 봄이 오는 소리는 어디에서 솟구칠까요. 봄이 오는 소리는 누구한테 반가울까요. 봄이 오는 소리는 어디에서 빛날까요. 봄이 오는 소리는 누구한테 사랑스레 스며들까요.


  봄이 오면 바다는 찰랑찰랑찰랑, 봄이 오면 하늘은 몽실몽실몽실, 봄이 오면 냇물은 쫄랑쫄랑쫄랑, 봄이 오면 멧새는 찌륵찌륵찌륵, 온누리가 환하고 싱그럽습니다. 4346.2.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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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2-18 12:13   좋아요 0 | URL
겨울 준비(월동 준비)엔 왠지 서글픔이 깃드는데 봄 준비는 신이 나요.
저는 벌써부터 봄 햇살 가득 등에 받으며 많이 걸어야지, 하고 있어요.
봄 햇살 푸짐한 날들을 기다려요. ^^

파란놀 2013-02-19 08:01   좋아요 0 | URL
새봄에는 새빛 듬뿍 품으며
즐거이 노래하며 곳곳 사뿐사뿐 걸어다니시리라 믿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좋아하는 책을 읽을 적에 좋은 마음이 샘솟는구나 싶습니다.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책을 찾아서 읽으며, 스스로 좋은 삶을 누리고, 천천히 좋은 마음이 됩니다. 좋아할 만하지 않은 책을 굳이 읽으면, 썩 좋다 하기 어려운 생각이 찾아들고, 그닥 즐겁지 않거나 좋지 않은 하루를 누리는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좋아하는 삶을 누릴 만한 자리를 찾아 보금자리를 이룹니다. 좋아하는 하루를 빛낼 만한 터전에서 일을 하고 놀이를 즐깁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땅을 디디고 바람을 마시고 햇살을 먹고 풀을 쓰다듬고 나무를 안고 숲을 바라봅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나하나 헤아립니다. 마음이 가장 따스한 때를 떠올립니다. 사랑이 싹트는 곳을 되새깁니다. 꿈이 자라도록 북돋우는 책 하나 마주합니다.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며, 스스로 좋은 이야기가 됩니다. 스스로 좋은 눈빛을 밝히고, 스스로 좋은 말을 건네며, 스스로 좋은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밥상머리에서 《도라에몽》 만화책을 무릎에 얹어 읽는 큰아이를 바라봅니다. 그래, 예쁘게 읽으렴. 네 아버지가 숟가락에 밥과 반찬을 떠서 네 입에 넣어 주마. 4346.2.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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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싹 글쓰기

 


  풀싹이 돋는다. 봄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온 들에 풀싹이 돋는다. 뒷밭에도 앞밭에도 옆밭에도 풀싹이 돋는다. 흙으로 된 땅바닥 어디에나 풀싹이 돋는다. 풀싹은 따스한 바람과 햇살을 먹으면서 씩씩하게 돋는다.


  기지개를 켠다. 싱그러운 바람과 상큼한 햇살을 나도 냠냠 하고 받아먹는다. 바람결에는 어떤 기운이 서렸을까. 햇살자락에는 어떤 넋이 담겼을까. 풀싹은 빗물과 햇살과 바람이 있으면, 여기에 고운 흙이 있으면 고 조그마한 씨앗에서 아주 커다란 줄기와 잎사귀를 올리면서 자란다. 어쩌면, 먼먼 옛날 슬기로운 사람들은 바람과 햇살과 빗물과 흙, 이렇게 네 가지로 목숨 잇는 숨결을 얻지 않았을까.


  풀싹이 돋듯 글을 쓴다. 따스한 기운 받는 풀싹이 씩씩하게 돋듯, 나 또한 마음밭에 따스한 사랑을 담아 글을 쓴다. 마음이 따사로운 사랑으로 가득할 때에는 즐거운 이야기 담는 글이 태어난다. 마음이 차가움이나 메마름이나 매몰참이나 슬픔으로 넘실거릴 적에는 무겁거나 딱딱한 글이 태어난다. 슬픈 이야기도 글이요 기쁜 이야기도 글일 테지. 눈물 젖은 밥도 먹을 수 있을 테고, 웃음 피어나는 밥도 먹을 수 있을 테지. 그런데, 곰곰이 돌아보면, 밥을 먹는 까닭은 살고 싶기 때문이다. 살아도 아무렇게나 살고 싶어 먹는 밥이 아니라, 즐겁게 살고 싶어 먹는 밥이요, 기쁨과 웃음을 누리고 싶어 먹는 밥이다. 웃으려고 먹는 밥이고, 따뜻하게 살고 싶어 먹는 밥이며, 사랑을 꽃피우려는 넋으로 먹는 밥이다. 글을 쓴다고 한다면, 이런 글도 쓰고 저런 글도 쓸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풀싹처럼 씩씩하게 살아가며 푸르게 빛나는 삶을 꽃피우려고 쓰는 글이지 싶다.


  싱그러운 바람을 들이켜면서 싱그러운 글을 쓰자고 생각한다. 상큼한 햇살을 받아먹으면서 상큼한 글을 쓰자고 다짐한다. 봄을 부르는 비가 찾아들며 별빛이 살짝 숨는다. 바람이 조용하다. 아침저녁으로 멧새 노랫소리가 짙다. 이제 두 달 뒤면 새봄 새날 맞이하는 씩씩한 제비들 우리 집 처마 밑에 들겠구나. 4346.2.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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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집 - 고택 송석헌과 노인 권헌조 이야기
권산 글.사진 / 반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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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31

 


옛집, 옛사람, 옛나무, 옛들
― 아버지의 집, 고택 송석헌과 노인 권헌조 이야기
 권산 사진·글
 반비 펴냄,20122.11.25./25000원

 


  삼백 해를 머금은 옛집이라는 ‘송석헌’을 사진과 글로 담아 보여주는 《아버지의 집》(반비,2012)을 읽습니다. 전라도 구례에서 ‘지리산닷컴’을 꾸리는 권산 님이 사진과 글로 빚은 사진책으로, 옛집에서 삶을 잇고 꾸린 권헌조라고 하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살그마니 곁들입니다.


  권산 님은 “그 PD 역시 그랬다. 나는 그 ‘흔하디흔한 감나무 잎’을 쫓는, 은퇴를 앞둔 소년 같은 PD가 흥미로웠고, 그는 내 사진과 글의 어떤 대목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10쪽).” 하는 말로, 이 사진책 엮은 까닭을 밝힙니다. 방송국에서 옛집을 찍어 보여주려 하면서 권산 님하고 끈이 닿고, 권산 님은 방송에 나갈 사진을 찍으며 경상도 봉화에 있는 옛집을 찾아갔다고 해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스스로 좋아서 찾아간 옛집은 아니요, 스스로 천천히 찾아간 옛사람이 아니며, 스스로 느긋하게 찾아가며 마주하는 옛나무나 옛들은 아닌 셈입니다. 사진을 찍는 권산 님은 자꾸 혼잣말을 합니다. 이를테면, “바람을 찍는 것도 아닌데 연사모드로 설정했다. 이른 아침 고택에서 셔터 소리는 유난했다. 하지만 노인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48쪽).” 하는. 또는, “노인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지팡이를 쥔 저 손을 찍어야 한다고 머리는 판단했지만 나의 호흡은 너무 거칠었다.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55쪽).”와 같은.


  사진을 찍는 이라면 누구나 느낄는지 모르고, 또 누구나 안 느낄는지 모르는데, 어떤 모습을 찍더라도 ‘바로 오늘 이곳’일 때에 찍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 아닌 모습은 못 찍습니다. 골짜기를 흐르는 냇물을 찍더라도 스스로 골짜기 냇물 곁에 서서 ‘바로 오늘 이곳’인 줄 느껴야 찍어요.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적에도 아이들 곁에 서서 아이들 노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며 ‘바로 오늘 이곳’이 아이들 곁인 줄 느껴야 찍습니다.

 

 


  봄꽃을 사진으로 찍으려면 봄이 오기까지 기다려요. 그리고, 봄이 지나면 봄꽃은 못 찍어요. 마땅한 노릇인데, 여름에는 여름꽃을 찍지, 봄꽃을 못 찍습니다. 곧, 봄에는 ‘바로 오늘 이곳’이 봄이기에 봄꽃을 찍고, 여름에는 ‘바로 오늘 이곳’이 여름이라서 여름꽃을 찍어요. 오직 봄꽃 한 가지만 사진으로 찍고 싶다면, 여름 가을 겨울 지나 봄이 오기를 기다릴 노릇이요, 봄이 지나가면 다시 봄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노릇입니다.


  권산 님은 경상도 봉화 옛집에 세 차례 찾아가서 사진을 담습니다. 고작 세 번뿐이라 할 수 있지만, 자그마치 세 번이라 할 수 있어요. 송석헌 권헌조 할아버지가 옛어른 무덤으로 오르는 길에 200장 안팎 사진을 찍었다 하는 만큼, 스스로 사진을 찍고 싶으면 얼마든지 사진을 찍어요. 다시 말하자면, 권산 님 스스로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면, 참말 권산 님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찍을 사진보다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사진만 찍습니다.


  어떠한 사진을 찍더라도 나쁠 구석 없으며, 더 좋을 대목 없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찍는 사진입니다.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모습’을 찍는 사진이라면 이러한 사진대로 재미있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어울리며 사진을 찍겠다면, 이러한 사진은 이러한 사진대로 재미있습니다.

 

 


  권산 님은 권헌조 할아버지 새벽마실(옛어른 무덤 찾아뵙기)을 그날 아니면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일이라 여겼지만, 권헌조 할아버지는 누가 지켜보거나 말거나 스스로 ‘바로 오늘 이곳’에서 누리려는 일을 누립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날이 궂든 맑든, 스스럼없이 옛어른 무덤을 찾아뵈어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모습’이 아니라, ‘권산 님 스스로 경상도 봉화 옛집에 다시 찾아와서 이 모습을 보기 어렵다’고 해야 옳습니다. 권산 님 스스로 더 마음을 기울인다면, 경상도 봉화에서 여러 날 느긋하게 머물면서 여러 날 새벽에 권헌조 할아버지하고 함께 무덤마실을 즐기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어느 날은 사진기 안 들고 무덤마실을 즐기고, 어느 날은 사진만 신나게 찍으며 무덤마실을 즐깁니다. 어느 날은 두런두런 말씀을 여쭙고 들으며 무덤마실 즐길 수 있고, 어느 날은 하루 내내 무덤 곁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삶을 즐길 수 있어요.

  스스로 즐기는 삶만큼 스스로 찍는 사진입니다. 바라보는 대로 찍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스스로 즐기는 삶에 따라 스스로 바라봅니다. 스스로 즐기는 삶이 아닐 때에는 느끼지 못하기에 바라보지 못해요. 이를테면, 시골길 천천히 걷기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시골길 언저리에 돋는 조그마한 풀과 꽃을 못 느끼며 자가용을 내몰아요. 시골길 천천히 걷기를 즐길 때에는 시골길 언저리 조그마한 풀과 꽃을 느끼는 한편, 시골 멧자락을 감도는 구름을 느끼고, 시골숲에서 노니는 멧새가 지저귀는 노랫가락을 느낍니다. 이렇게 느낄 때에는 이렇게 느끼는 여러 가지를 마음으로 받아들여 사진 하나로 새롭게 빚습니다. 이렇게 느끼지 못할 때에는 이런 여러 가지가 내 사진에 스며들지 못합니다.


  권산 님은 옛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전라도 구례에서 겪은 ‘중앙정부 옛집 되살리기’를 떠올립니다. “국가는 집을 보호한다고 한다. 몇 억, 몇 십억 원의 예산을 고택 수리에 투여한다. 그들에게는 건축물인 집만 보일 뿐 그 집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12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참말, 중앙정부는 옛집이라 하는 ‘문화재’를 바라볼 뿐, 옛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삶’을 바라보지 못해요. 아니, 못 느끼니 못 바라봅니다. 못 느끼기에 모르고, 모르기에 바라보지 못하며, 못 느끼고 못 바라보기에 모르면서 ‘옛집에 깃드는 사람들 삶’을 사랑하거나 아끼는 길을 찾지 못해요.

 

 


  고속도로를 왜 내야 하고, 공장과 골프장을 왜 지어야 하며, 발전소나 관광단지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공무원과 개발업자는 왜 시골자락 갈아엎어 무언가 뚝딱뚝딱 시멘트와 쇠붙이와 아스팔트와 플라스틱을 들이부으려 할까 하고 돌아볼 노릇입니다. 참말, 이들 공무원과 개발업자는 삶을 느끼지 않기에 삶을 바라보지 못할 테지요. 시골자락 시골살이를 느끼지 않으니 시골마을 시골사람을 바라보거나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할 테지요.


  그런데, 권산 님도 경상도 봉화 옛집을 조금 더 살가이 바라보지 못합니다. 권산 님 스스로 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만 “나는 짧은 시간에 미션을 완료하는 이 일에 나의 진정성이 얼마나 투여되는 것인지 스스로 가늠하지 못한다(204쪽).” 하고 털어놓습니다.


  짧은 겨를에 바삐 찍는 사진이니 참말 권산 님 말마따나 ‘참다움(진정성)’을 제대로 못 담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사흘 동안 찍는 사진 아닌 엿새 동안 찍는 사진이라면, 또는 서른 날이나 삼백 날 찍는 사진이라면, 또는 세 해나 서른 해 찍는 사진이라면, 조금 더 참다움을 담을 만할까 궁금해요. 사흘 나들이로 찍는 사진이라면, 사흘 나들이대로 홀가분하게 즐기면서 사진을 찍으면 넉넉하리라 생각합니다. 사흘이든 이틀이든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꼭 하루 동안 찍는 사진이어도 되고, 한 시간 사이에 찍는 사진이어도 됩니다.

 


  즐겁게 찍으면 즐거움을 나눕니다. 사랑스레 찍으면 사랑스러움을 나눕니다. 사진책 《아버지의 집》에서 권산 님은 즐거움으로도 사랑스러움으로도 송석헌 옛집을 마주하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권산 님 삶과 일이 너무 바쁘면 어때요. 바쁘다 하지만 사흘이나 짬을 내고 다른 일을 미루면서 봉화마실을 했어요. 다른 일을 젖히고 봉화마실을 하면서 권헌조 할아버지를 뵙고 권헌조 할아버지 ‘늙은 아들’도 뵈었어요. 방송에 나가야 하는 무언가 그럴듯한 그림을 못 찍으면 어때요. 그저 즐겁게 찍으면 돼요. 새벽녘에도 바라보고, 환한 낮에도 바라보며, 어두운 밤에도 바라보면 돼요. 안채에 이런저런 어수선한 것들이 있으면 어수선한 대로 바라보면 되고, 어수선한 모습 사이에 살가이 깃든 ‘예쁜 삶’과 ‘고운 삶’과 ‘따순 삶’을 느끼면 돼요.


  옛집을 보고, 옛사람을 봅니다. 옛나무를 보고, 옛들을 봅니다. 집 한 채 삼백 해 먹었다는데, 멧자락 하나 삼만 해나 삼억 해를 묵습니다. 옛나무 한 그루 삼백 해나 삼천 해 즈음 먹을 수 있고, 옛나무에서 옛나무로 이어오는 숲은 삼십만 해나 삼십억 해를 묵을 수 있어요. 오래된 들판에 한해살이풀이나 두해살이풀이 돋는다지만, 이 풀은 먼먼 옛날부터 씨앗과 씨앗으로 이어졌어요. 만해살이풀이나 억해살이풀일 수 있어요.


  삶을 바라볼 수 있기를 빌어요. ‘옛집을 지킨다는 중앙정부가 여러 억 들여 뚝딱뚝딱거리는 모습’이 달갑지 않다면, 중앙정부 일꾼 스스로 삶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중앙정부 일꾼 누구나 삶을 즐겁게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부터 스스로 삶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사진을 즐겁게 찍을 수 있기를 빌어요. 멋들어진 모습으로 찍는 사진이 아닌, 즐겁게 찍는 사진으로, 즐겁게 삶을 잇고 지은 옛집 옛삶을 마주할 수 있기를 빌어요. 사진책 하나에 즐거운 웃음 물씬 드러나는 이야기 한자락 살포시 실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6.2.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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