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살리는 이야기와 책 (도서관일기 2013.2.17.)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전남 곡성 죽곡마을에 있는 어느 도서관에서 낸 책이 있다. 마을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시골살이를 시로 써서 책 하나로 엮은 《소, 너를 길러온 지 몇 해이던고》(강빛마을,2011)로, 어느새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진다. 재미난 책이로구나 싶어 미리 장만하기를 잘 했구나 싶지만, 다른 시골 이웃이나 도시 이웃은 이 책을 만날 수 없겠지. 이러한 예쁜 책이 널리 사랑받으면서, 시골사람도 도시사람도 시골살이를 새롭게 되새기도록 이끌면 좋을 텐데. 작은 마을 작은 사람 작은 이야기가 이 나라에서 널리 사랑받으며 읽히기는 아직 많이 힘든 일일까.


  신문이라는 데에, 방송이라는 데에, 인터넷이라는 데에, 책이라는 데에, 온통 정치판 뒷이야기가 빽빽하다. 정치판 뒷이야기 다음으로는 연예인 뒷이야기와 스포츠 뒷이야기가 촘촘하다. 이 다음으로는 돈벌이 뒷이야기 가득하고, 부동산이나 자기계발 뒷이야기가 이어진다. 삶을 즐기거나 빛내는 이야기는 좀처럼 들어설 자리가 없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작은 마을 작은 사람 작은 이야기를 아낄 수 있기를 빈다. 저마다 작은 이야기를 자그마한 책으로 묶어, 오늘 우리들이 즐기고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기를 빈다. 오늘 살아가는 우리가 스스로 새롭게 이야기 빚어 누리면서, 이 이야기를 뒷사람한테 곱게 물려준다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옛이야기란 옛날 살던 옛사람이 ‘그무렵 오늘 이야기’를 갈무리해서 이어올 수 있듯, ‘오늘이야기’를 저마다 오늘 이곳에서 빚을 수 있기를 빈다.


  나도 나대로 살가운 살붙이와 오늘 하루 누리는 이야기를 알뜰살뜰 갈무리해서 마을 살리는 이야기와 책으로 빚자. 나부터 내 이야기를 곱게 여미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 이야기를 어여삐 일굴 수 있도록 돕자.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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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2.18.
 : 내가 바라보는 길

 


- 우체국에 가려고 짐을 꾸리니, 큰아이 작은아이 모두 같이 가겠다며 부산을 떤다. 자전거수레를 마당에 내리고, 소포꾸러미를 가방에 담는다. 지난 설을 앞두고 몹시 추웠을 적에는 뒷멈추개가 얼었다. 오늘은 그리 춥지 않으니 뒷멈추개도 앞멈추개도 잘 듣는다. 꽁꽁 얼어붙는 날에는 자전거도 몸도 언다고 새삼스레 느꼈는데, 춥거나 덥거나 아이들은 자전거마실을 즐겁게 따라다닌다.

 

- 동백마을을 벗어난 뒤 신기마을로 접어든다. 천등산 어귀까지 갔다가 신호리 돌기둥 옆을 따라 논둑길을 달린다. 비스듬히 내리막길 이어지는 논둑길에서 큰아이가 “아아아아!” 하고 소리를 지른다. 작은아이도 누나 따라 “아아아아!” 하고 소리를 지른다. 덜컹거리는 논둑길을 달리면 판판한 찻길을 달릴 때보다 한결 재미나 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어릴 적에 덜컹덜컹 달리는 길에서 콩콩 튀는 느낌이 재미났다고 여겼다. 들새 노랫소리 고즈넉히 퍼지는 들길은 온통 우리 차지가 된다. 가다가 서고, 또 가다가 서면서 봄을 앞둔 겨울들 마지막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으로 담고 마음으로 담는다.

 

- 봄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싯누렇던 들판이 푸릇푸릇 빛난다. 머지않아 온 들판에 푸른 물결이 넘실거릴 테지.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다가 노란 물결이 넘실거릴 테고, 다시금 짙누런 물누리가 이루어지다가는 촘촘히 모가 들어서리라. 나도 아이들도 겨울들을 한껏 누리고서 봄들을 맞이한다. 봄들을 맞이하고 나면 여름들을 맞이할 테고, 가을들을 새롭게 맞이하리라. 봄이 가기에 여름이 오고, 겨울이 가니까 봄이 온다. 바람내음이 다르고, 바람맛이 새롭다. 구름결이 다르고, 구름빛이 새롭다.

 

- 우체국에서 소포꾸러미 부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 둘 모두 조용하다. 둘 모두 졸린가. 큰아이는 꾸벅꾸벅 졸며 수레에 머리를 기댄다. 작은아이도 머리를 수레에 기대며 조용하다. 작은아이는 낮잠 한숨 잤지만 큰아이는 오늘도 낮잠을 거른다. 큰아이가 낮잠 자기를 바라며 천천히 달린다. 그러나 집에 닿으니 큰아이가 눈을 번쩍 뜬다. 조금 쉬었다가 놀지. 낮잠 없이 하루 내내 놀면 힘들지 않니.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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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608) 태생적 1 : 태생적으로 고독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라고 합니다만 이런 마음의 상태가 사진의 테마로 빈번히 쓰이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사진가들의 사진 작업이라는 것이 태생적으로 고독하기 때문입니다
《곽윤섭-이제는 테마다》(동녘,2010) 245쪽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다듬고, ‘원래(元來)’는 ‘워낙’이나 ‘처음부터’나 ‘모름지기’로 다듬습니다. ‘존재(存在)’는 ‘목숨’으로 손보거나 앞뒤 말과 묶어 “외롭다고 합니다만”으로 손봅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狀態)가”는 “이런 마음이”나 “이런 마음결이”나 “이런 마음자리가”로 손질하고, “사진의 테마(Thema)로”는 “사진감으로”나 “사진 주제로”로 손질하며, ‘빈번(頻繁)히’는 ‘자주’로 손질해 줍니다. ‘이유(理由)’는 ‘까닭’으로 고쳐쓰고, “사진가들의 사진 작업(作業)이라는 것이”는 “사진가들이 사진을 찍는 일이”나 “사진가들이 하는 사진찍기가”로 고쳐씁니다.


  ‘태생적’은 국어사전에 안 나옵니다. 한자말 ‘태생(胎生)’을 살피면, “어떠한 곳에 태어남”을 뜻한다고 해요. 이를테면, “농촌 태생”, “부산 태생”, “한국 태생의 러시아 문학가”처럼 쓴다고 합니다.

 

 태생적으로 고독하기 때문
→ 처음부터 외롭기 때문
→ 워낙에 외롭기 때문
→ 더없이 외롭기 때문
→ 참으로 외롭기 때문
 …

 

  사진찍기가 처음부터 외로울 까닭이란 하나도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을 찍든 사물을 찍든 숲을 찍든 무엇을 찍든,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나 외롭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나 사람하고 부대끼거나 섞이면서 찍는 사진이요, 늘 사람들과 나누려는 사진이거든요. 사진쟁이가 사진을 찍는 일이 처음부터 외롭다면, 글쟁이가 글을 쓰는 일이나 그림쟁이가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똑같이 외로울 노릇입니다. 춤쟁이가 춤을 추거나 노래쟁이가 노래를 부르는 일 또한 외로워야 할 테지요. 농사꾼이 농사를 짓거나 일꾼이 일할 때에도 외로워야 할 테고요.


  사람한테는 외로움이라는 마음자리가 누구한테나 있습니다. 외로움이 없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따로 사진쟁이가 더 외롭다 할 수 없고, 사진쟁이만 외롭지 않습니다.


  사람한테는 외로움이라는 마음자리와 함께 어깨동무라는 마음자리가 나란히 있습니다. 어느 한때에는 살며시 외롭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한때에는 하나도 외롭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외려 호젓하거나 조촐하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우리 생각을 펼칠 때에 제대로 깊이 살펴야 합니다. 제대로 깊이 살피지 않으면서 우리 생각을 펼치려 한다면 어줍잖거나 어리석은 말이 튀어나오기 일쑤입니다. 생각바탕부터 단단히 다스린 다음 즐겁고 넉넉하게 나누는 넋이며 말이 되도록 애쓸 노릇입니다. 생각바탕이 단단히 야물지 않은 탓에 생각바탕을 담는 말이 야물지 못합니다. 생각바탕을 단단히 가다듬으면, 삶에서 비롯하는 싱그럽고 야무진 넋이 피어납니다. 참되고 착하며 고운 말이란 야무지거나 씩씩한 삶에 뿌리를 두고 태어납니다.

 

 남녀 뇌가 태생적으로 다르다고?
→ 남녀 뇌가 다르다고?
→ 남녀 뇌가 처음부터 다르다고?
 대중가요의 태생적 한계에서
→ 대중가요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어서
→ 대중가요는 워낙 한계가 있어서
 태생적으로 부지런한 DNA를 갖고 있다
→ 날 때부터 부지런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
→ 처음부터 부지런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
 …

 

  한국말이 아닌 ‘태생적’을 곱씹어 봅니다. 먼저, ‘태생(胎生)’이라는 낱말부터 한국말이 아닙니다. 이 한자말 ‘태생’은 ‘태어남’을 가리키기만 합니다. “농촌 태생”이 아닌 “농촌에서 태어남”이거나 “농촌내기”입니다. “부산 태생”이 아닌 “부산에서 남”이나 “부산사람”입니다. “한국 태생의 러시아 문학가”가 아닌 “한국에서 태어난 러시아 문학가”이거나 “한국 핏줄을 가진 러시아 문학가”입니다.


  우리는 우리 말을 할 노릇입니다. 우리 말이 아닌 얄딱구리한 말을 할 노릇이 아닙니다. “가난한 집 태생이라 고학으로 학업을 마쳤다” 같은 글월은 겉보기로는 한글이지만, 속보기로는 우리 말이 아닙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힘들게 배웠다”라든지 “가난한 집에서 자라며 어렵게 학교를 다녔다”처럼 적어야 비로소 우리 말입니다. “나는 태생은 서울이나 자라기는 시골에서 자랐다” 또한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자라기는 시골에서 자랐다”나 “나는 서울에서 났으나 자라기는 시골에서 자랐다”처럼 적어야 바야흐로 우리 말이라 할 만합니다.


  껍데기가 한글이라 해서 모두 한국말이 되지 않습니다. 한글로 적바림했다고 죄 한국말로 여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모로 즐겨쓴다 해서 한국말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오래도록 널리 쓴다지만 한국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진쟁이가 사진 찍는 일이 더없이 외롭기 때문입니다
 사진쟁이가 사진을 다루는 일이 늘 외롭기 때문입니다
 사진쟁이가 사진을 하는 일이란 퍽 외롭기 때문입니다
 사진쟁이한테 사진찍기란 한결같이 외롭기 때문입니다
 …

 

  삶을 밝히고 넋을 북돋우면서 사랑을 나누며 고운 믿음을 섬길 때에 시나브로 한국말로 자리잡습니다. 사람을 아끼고 얼을 살찌우며 따스함으로 감싸는 한편 착하고 너른 마음결로 손을 맞잡을 때에 차근차근 한국말로 뿌리내립니다. 말다워야 말이고, 한국말다워야 한국말입니다. 4343.8.5.나무/4346.2.19.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람은 모름지기 외롭다고 합니다만, 이런 마음자리를 사진감으로 자주 쓰는 까닭은 따로 있습니다. 사진가들이 사진을 찍는 일이 처음부터 외롭기 때문입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657) 태생적 2 : 태생적으로 다르다

 

사진은 회화·영화와는 태생적으로 다르다. 프레임 안이든 바깥이든, 사진의 유전자는 판이하다
《윤현수-사진의 비밀》(눈빛,2010) 46쪽

 

  ‘회화(繪畵)’는 따로 거르기 어려운 낱말이라 할 수 있을 텐데, 보기글에서는 ‘그림’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사진과 그림과 영화를 견주어 이야기하니, 쉽게 ‘그림’이라 적을 때에 한결 어울리지 싶어요. ‘프레임(frame)’은 ‘틀’이나 ‘사진틀’로 손보고, “사진의 유전자(遺傳子)”는 “사진을 낳는 씨앗”이나 “사진을 이루는 씨앗”으로 손봅니다. ‘판이(判異)하다’는 ‘사뭇 다르다’나 ‘아주 다르다’나 ‘매우 다르다’나 ‘서로 다르다’로 다듬어 봅니다.

 

 태생적으로 다르다
→ 처음부터 다르다
→ 뿌리부터 다르다
→ 바탕부터 다르다
 …

 

  말뜻을 살피면, “태어날 적부터 다르다”입니다. 이 말뜻 그대로 쓰면 됩니다. 태어날 적부터 다르기에 “처음부터 다르”고, “뿌리부터 다르”며, “바탕부터 다르”겠지요. 꾸밈말을 보태어 ‘맨 처음’이나 ‘밑뿌리’나 ‘밑바탕’이나 ‘밑자리’ 같은 낱말을 쓸 수 있어요. 생각을 기울이면서 새 낱말을 빚고, 새 낱말을 하나둘 빚으며 이야기를 살찌웁니다. 4346.2.19.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진은 그림·영화와는 밑뿌리부터 다르다. 사진틀 안이든 바깥이든, 사진을 낳은 씨앗은 사뭇 다르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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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이 언제부터 900원? (교보문고 중고장터)

 


  참 많은 사람들이 돈을 바라보고 움직인다. 돈을 바라본대서 잘못이 아니요, 돈을 바라보기에 나쁘지 않다. 다만, 돈만 바라보는 나머지 사람을 안 바라본다거나, 돈바라기에 바빠 사랑바라기하고 등돌릴 때에는 하나도 안 반갑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재단에서 ‘아름다운헌책방’을 만든다 할 적에 안 반가웠고, 영풍문고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 같은 데에서 ‘중고책방·중고장터·중고샵’이라는 이름으로 헌책 장사를 할 적에 안 반가웠다. 왜냐하면, 아름다운재단도 큰 인터넷책방(이랑 매장책방 모두)도 돈을 바라보면서 ‘헌책방 작은 일꾼 삶자리’를 파먹으려고 했으니까.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접어들 무렵, 헌책방에서 값싸게 사서 읽는 여느 책 한 권 값이 500원에서 1000원으로 바뀌었다. 이즈음 적잖은 책손이 500원 오르는 헌책 값을 참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1990년대 한복판을 지나며 여느 헌책 한 권 값이 1500원 즈음 했고, 2000년대로 접어들 무렵 여느 헌책 한 권 값이 2000원 즈음 했다. 2000년대 한복판을 지날 무렵 여느 헌책 한 권 값이 2500원 즈음 했고, 2010년대로 접어들 무렵 여느 헌책 한 권 값이 3000원 즈음 했다. 이제 2010년대 한복판에 가까운 요즈음 여느 헌책 한 권 값은 3500원 즈음이다. 곧 4000원 즈음 하리라.


  헌책방에서 다루는 헌책이라서 ‘터무니없이 쌀’ 수 없다. 책을 사들이는 값, 가게를 꾸리는 값, 책방을 지키는 일꾼 품삯, 책시렁에 쌓인 채 자리를 잡아먹는 값, 오래도록 안 팔려 버려야 하는 값, 여러 가지를 헤아리며 헌책 한 권 값을 붙인다. 1980년대 첫머리까지 웬만한 헌책 한 권 500원이면 살 수 있다 했는데, 그무렵에는 헌책방에 들어오는 책 10권 가운데 5권이 팔렸다 했다. 이만한 흐름이라면 헌책 한 권 값이 퍽 눅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만큼 헌책방에 책을 내다 팔 적에도 눅은 값으로 팔아야 한다.


  이레쯤 앞서 나한테 누리편지 하나 온다. 교보문고에서 교보 회원 모두한테 보내는 글월이다. 이 글월을 여니 “베스트 중고책은 900원에 사고, 쌓여 있는 책은 팔아도 보고!” 하는 이름이 굵직하게 나온다. 책 한 권에 900원이라니. 게다가 1000원이면 살 수 있는 헌책이라니.


  교보문고를 비롯해 알라딘이나 여러 새책방들은 헌책을 다루면서 ‘헌책’이라는 낱말을 안 쓴다. 굳이 한자말 ‘중고(中古)’를 붙인다. 새책을 다루면서도 ‘새책’이라는 낱말보다 ‘신간(新刊)’이라는 한자말을 좋아하고, ‘뉴(new)’라는 영어를 좋아하니 어쩔 수 없을는지 모르지만, 그만큼 우리 책마을에서 헌책방이 헌책을 다루며 이어온 책삶을 모르는 척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헌책방이 이 나라 마을마다 한두 군데씩 뿌리를 내리며 마을 책삶을 일군 흐름을 뒤흔들어 송두리째 돈잔치를 꾀하기까지 하니, 이들 큰 새책방들이 벌이는 ‘헌책 장사’는 장사라기보다는 차떼기에 가깝고, 큰 할인매장이 작은 가게를 잡아먹는 모습하고 닮는다. 큰회사 빵집이 동네빵집 500미터 언저리에 문을 열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 나왔다 하는데, 큰 새책방이 헌책 다루지 못하게 하는 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큰 새책방이 헌책 값을 마구 후려쳐서 책마을 어지럽히는 짓을 다그치는 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새책 값으로 3000원인 만화책이라면 헌책 값으로 1000원이 알맞다. 새책 값으로 10000원인 문학책이라면 헌책 값으로 3000원이 알맞다. 그런데 교보문고에서 말하는 “베스트 중고책 900원”이란 무엇일까. 책을 이렇게 깎아내려도 될까. 책을 이처럼 깎아내리면서 사람들한테 글월을 띄워도 될까. 책을 즐겁게 읽을 사람들이 ‘책’ 아닌 ‘떨이 물건’을 ‘엉터리 헐값’으로 사들여도 책읽기를 할 수 있을까.


  더 싸게 판대서 훌륭한 책방이 될 수 없다. 아름다운 책을 다뤄야 아름다운 책방이 된다. 아름다운 책을 알맞고 올바른 값으로 다룰 때에 훌륭한 책방이 된다. 전국에 여러 새끼가게 거느리는 교보문고가 제넋을 찾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4346.2.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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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왜나무 앞에서 울었다 신생시선 33
이민아 지음 / 신생(전망)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시와 물고기
[시를 말하는 시 9] 이민아, 《아왜나무 앞에서 울었다》

 


- 책이름 : 아왜나무 앞에서 울었다
- 글 : 이민아
- 펴낸곳 : 신생 (2012.12.20.)
- 책값 : 8000원

 


  읍내 저잣거리에서 언 명태 한 마리를 삽니다. 물고기 파는 아주머니한테 “동태 어떻게 주시나요?” 하고 여쭈니 “언 명태요?” 하고 말씀하시기에, 이때부터 나도 ‘언 명태’라고 말합니다. 고장마다 쓰는 말이 다르잖아요.


  한 번은 언 명태하고 오징어를 장만합니다. 언 명태 끓인 찌개를 즐겁게 먹고 나서, 다음에는 언 명태하고 갈치를 장만합니다. 지난번에 언 명태 장만해서 찌개 끓일 적에는 무와 감자를 함께 넣었고, 이번에는 언 명태 장만하며 얻은 조개를 함께 넣습니다. 콩나물도 넣고, 버섯에 칼집 잘게 내어 함께 넣습니다.


  물고기 끓이는 찌개는 그리 익숙하지 않았지만, 한 번 두 번 끓이면서 차츰 손에 붙습니다. 처음부터 익숙하게 잘 끓이는 사람은 없을 테지요. 누구나 즐겁게 자주 끓이면서 차근차근 맛나게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문득 어떤 날들이 그리울 때는 / 하나서점으로 간다 ..  (하나서점)


  나물을 볶습니다. 날로 뜯어서 먹는 나물을 퍽 좋아하기에, 날나물도 한쪽에 차리고, 다른 나물 한 가지는 폭 삶으며, 또 다른 나물 두 가지는 볶습니다. 나물은 나물맛이 나고 나물내음이 납니다.


  날마다 밥을 새로 지으며 날마다 새로운 밥맛을 누립니다. 똑같이 밥을 차려서 먹는다지만, 똑같은 밥은 없습니다. 새롭게 쌀을 씻고 새롭게 물을 맞추며 새롭게 불을 올려요. 김 모락모락 나는 밥을 그릇에 새롭게 풉니다. 아이들을 새롭게 부르고, 숟가락을 새롭게 듭니다. 모두 새로운 삶이고 흐름입니다.


  봄에 돋는 봄나물은 봄맛입니다. 여름에 올라오는 여름나물은 여름맛입니다. 가을에는 가을맛을 누리지요. 겨울에는 겨울맛을 즐깁니다. 똑같은 풀이 없고, 똑같은 맛이 없어요. 나는 들풀 한 가지를 가리켜 늘 같은 이름으로 부르지만, 이 들풀 한 가지는 돗나물만은 아니고 미나리만은 아니며 쑥만은 아닙니다. 같은 쇠비름이라 하더라도 줄기와 잎과 뿌리가 모두 다른걸요.


.. 옥탑방 가득 고인 내 아버지 시린 청년을 읽는다 ..  (혁필화를 보며)


  구름이 낍니다. 바람이 붑니다. 멧새가 날아갑니다. 바람결에 풀잎이 간들거립니다. 후박나무에 새싹이 움트려 하고, 동백나무 봉우리가 터질듯 말듯 말랑말랑합니다.


  빗방울이 들어 흙이 녹습니다. 구름이 흐르며 햇살을 가립니다. 달이 고개를 내밀고, 별이 몇몇 구름 사이로 보입니다. 이웃 할머니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가고, 경운기 모는 할아버지가 저 멀리 보입니다.


  하루가 흐릅니다. 아침이 찾아오고, 낮이 지나갑니다. 저녁이 찾아들며, 밤이 익습니다. 삶은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는데, 늘 새롭게 찾아오는 하루라 한다면 늘 새롭게 찾아오는 사랑으로 삶이 이루어질까요. 내 몸은 얼마나 새롭고, 내 마음은 어느 만큼 새롭다 할까요. 내가 부르는 노래는 얼마나 새로우며, 아이들 웃음과 몸짓은 얼마나 새삼스럽다 할는지요.


.. 굴비와 어머니, 둘은 참 닮았지만 또 닮지 않았지요 ..  (굴비)


  웃음은 웃음으로 이어집니다. 골을 내거나 성을 부리면 골이나 성으로 이어집니다. 풀 한 포기 뜯으면 풀줄기는 더 씩씩하게 퍼집니다. 풀 두 포기 뜯으면 풀잎은 더 푸르게 돋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어떤 마음이 되어 하루를 빛낼까요. 사람은 서로서로 어떤 넋이 되어 하루를 일굴까요.


  소쿠리 하나 들고 집 언저리 풀밭을 기웃거리면, 한 끼니 넉넉히 먹을 풀을 얻습니다. 식구들 누릴 풀포기는 흙에 뿌리를 내린 채 바람과 햇살과 빗물을 먹으며 자랍니다. 비료도 농약도 항생제도 비타민도 뭣도 뭣도 따로 안 먹습니다. 바람을 먹고 햇살을 마시며 빗물을 들이켜서 스스로 자랍니다. 더군다나, 똑같다 싶은 바람과 햇살과 빗물을 먹고 즐기면서도 다 다른 풀이 되어 자라요. 한 갈래 풀이라 하더라도, 돋아서 자라는 자리에 따라 빛깔이랑 크기랑 맛이랑 냄새가 조금씩 달라요.


  오늘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집어넣는 학교를 문득 생각합니다. 학교는 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똑같은 틀로 맞추는 구실을 해요. 학교를 다닌 아이들 가운데 좀 다르다 싶거나 새롭다 싶은 모습을 찾기 무척 어렵습니다. 어쩌면, 우리 어른들은 우리한테 찾아온 다 다른 아이들을 다 똑같은 틀로 맞추어 다 똑같은 도시에서 다 똑같은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도록 길들이는 셈이로구나 싶어요.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삶을 누리도록 다 다른 사랑을 저마다 펼치거나 나누기보다는,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똑같은 돈을 벌도록 다 똑같은 지식과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도록 떠미는 셈이지 싶어요.


.. 배에서는 마주치는 사람의 /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 ..  (세석에서)


  언 명태 찌개를 끓이면서, 나물을 볶고 무치고 삶고 씻으면서, 밥을 안치면서, 밥상을 차리면서, 아이들과 옆지기를 부르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터에서 다 다른 이야기를 일군다면, 다 다른 사람이 쓰는 글은 다 다른 문학으로 피어나겠지요.


  잘나거나 못난 문학이 없습니다. 돋보이거나 그저 그런 문학이 없습니다. 어느 문학이든 그 문학을 빚은 사람 삶을 드러낼 테니까요.


  그러면,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문학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글쓰기를 배울 수 있을까요. 문학을 배울 수 있을까요. 문학상이란 무엇일까요. 문학밭에 왜 상장이나 훈장이 있어야 할까요. 등단은 무엇이고 책은 무엇일까요. 대학교에는 왜 문학 가르치는 학과 있어야 할까요. 대학교에는 왜 흙일꾼이나 고기잡이나 집살림꾼 이끄는 교수는 한 사람조차 없을까요. 아니, 고등학교와 중학교와 초등학교조차 흙일꾼이나 고기잡이나 집살림꾼 이끄는 교사 한 사람 만나기 어려운가요.


.. 법원에서 서류가 도착했다 /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 / 냉면 먹으러 가요 갑자기 냉면이 먹고 싶어요 / 내가 조르자 어머니, 밥상 치운지 얼마나 됐다고! / 그러면서도 어머니 앞장서서 함흥냉면집 들어서는데 / 주문이 오기도 전에 냉면 둘이요! / 나도 어머니도 매운 냉면 둘이요! ..  (냉면, 매운)


  이민아 님 시집 《아왜나무 앞에서 울었다》(신생,2012)를 읽습니다. 물고기 비릿한 내음 짙은 시집 읽습니다. 아왜나무는 보기 드문 나무라 할 수 있지만, 스스로 눈여겨보면 우리 곁에 흔하게 자라는 나무라 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은 언 명태이든 안 언 명태이든 물고기 모습으로 흔히 볼 테지만, 집에서 살림 안 하는 사람은 누군가 차려서 내놓는 찌개 모습으로만 명태를 흔히 봅니다.


  나물을 뜯으며 풀줄기와 풀포기와 풀잎과 풀꽃을 마주합니다. 풀꽃 사진만 찍는다면 풀꽃 맛이랑 내음이랑 빛깔을 다른 테두리에서 바라보겠지요. 스스로 아이를 낳아 날마다 복닥이면서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때하고, 골목마실이나 인도마실이나 티벳마실을 다니며 ‘문명하고 퍽 떨어진 데에서 지내는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만 할’ 때하고는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아이는 똑같이 아이라 할 테지만, 아이를 마주하는 사람(어른)들 삶이 다릅니다.


  언 명태에 서린 비릿한 기운을 빼려고 오래도록 물에 담그고, 틈틈이 물갈이를 합니다. 나물에 깃든 쓴 기운을 빼려고 한참 물에 담그고, 자주 물갈이를 합니다. 내 삶을 북돋우고 싶어 졸졸 흐르는 냇물을 마시고, 구름을 이끌며 흐르는 바람을 마십니다. 시 하나로 태어나는 글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하고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4346.2.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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