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찬바람은 겨울에 불고
따순바람은 봄에 불어요.
봄날 따순바람
새싹 새눈 깨우지만,
겨울날 찬바람
흙 품 안긴 씨앗들
튼튼하고 씩씩하게 여물어
천천히 뿌리내리라고
노래부릅니다.

 

봄은 겨울에 베푸는 사랑
겨울은 가을이 꾸는 꿈
가을은 여름이 띄운 쪽글
여름은 봄이 품는 빛.

 

오늘은
내가 나를 살리는
보드라운
산들거리는
버들잎 살랑이는 샘가.
풀잎이 속삭이는 춤사위.

 


4346.1.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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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가 듣기 좋은 소리는 아이들도 듣기 좋습니다. 아이들이 듣기 좋은 소리는 나도 듣기 좋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소리는 아이들도 들으며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듣고 싶은 소리는 나도 들으며 좋아할 만합니다.


  사랑을 담아 부르는 소리는 따스합니다. 꿈을 담아 부르는 노랫소리는 아름답습니다. 이야기를 담아 읊는 싯말 한 대목 두 대목은 달콤합니다. 여섯 살 아이가 한글과 숫자를 익히려고 놀이 삼아 ㄱㄴㄷ을 읽습니다. 123을 읽습니다. 곁에서 세 살 아이가 누나 목소리를 흉내냅니다. 혀가 짧은 소리를 내며 웃습니다. 혀가 짧은 소리를 저희 나름대로 굴리며 노래를 부릅니다.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풀잎을 건드립니다. 바람이 불어 구름이 흐릅니다. 바람이 불며 햇살내음 퍼뜨리고, 꽃내음 흩뿌립니다. 봄날 피어나는 크고작은 꽃이 바람결 따라 나긋나긋 춤을 춥니다. 일찌감치 깨어난 봄나비 한 마리 밭자락을 맴돕니다.


  온누리 밝힐 수 있는 소리에는 사랑이 감돕니다. 온누리 감쌀 수 있는 소리에는 꿈이 서립니다. 즐겁게 웃는 소리로 지구별에 사랑을 부릅니다. 반갑게 노래하는 소리로 숲에 푸른 싹 틔웁니다. 4346.2.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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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공주님 크레용 그림책 29
나카가와 치히로 글 그림, 사과나무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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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50

 


고운 생각으로 빚은 고운 삶
― 내가 진짜 공주님
 나카가와 치히로 글·그림,사과나무 옮김
 크레용하우스 펴냄,2001.9.1./8500원

 


  밥을 맛나게 먹고 싶으면, 스스로 밥을 맛나게 차리면 됩니다. 밥을 맛없게 먹고 싶으면, 스스로 골을 부리며 밥을 차리면 됩니다. 정갈하게 거름을 삭혀 논밭에 뿌리고 푸성귀와 곡식을 알뜰살뜰 돌보면, 석 달 뒤에 아름다운 열매를 얻습니다. 풀약을 치며 풀을 잡느라 부산스러우면, 풀약을 치면서 숨이 갑갑하고, 열매를 거둘 때에도 풀약을 함께 먹는 셈입니다.


  생각하는 대로 삶이 움직이고, 삶이 움직이는 대로 나한테 돌아옵니다. 풀약을 안 치면 벌레가 꼬인다지만, 겨울 지나 봄이 오면 다시 겨울이 찾아들 때까지 벌레가 있기 마련입니다. 제비가 봄을 맞이해 따순 나라로 찾아오듯, 이제 벌레도 기지개를 켜며 새롭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곧, 벌레 걱정으로 풀약 칠 일은 없습니다. 벌레는 벌레대로 살되, 사람은 사람대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논둑이고 밭둑에, 숲이나 들에, 벌레들 먹을 맛난 풀이 없으면, 논밭 푸성귀와 곡식을 갉아먹을밖에 없습니다. 논밭에 한 가지 곡식이나 푸성귀나 나무만 심어 돌보면, 온갖 병치레가 찾아들밖에 없습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풀이 골고루 섞여 자라도록 해야 하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나무가 골고루 섞여 자라도록 할 때에 병치레가 찾아들지 않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풀약을 친들 벌레가 사라지지 않거든요. 풀약을 치더라도 ‘곡식이나 푸성귀 아닌 풀’은 이내 다시 돋거든요. 즐겁게 살아갈 길을 생각하고, 아름답게 어울릴 길을 생각해야 합니다.


.. 마리는 늘 공주님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  (2쪽)

 


  고운 생각이 고운 삶을 빚습니다. 미운 생각이 미운 삶을 빚습니다. 착한 생각이 착한 삶을 빚습니다. 궂은 생각이 궂은 삶을 빚습니다.


  서울로 가고 싶다 생각하는 이는 어떻게 해서든 서울로 갑니다. 시골로 가고 싶다 생각하는 이는 어떻게 해서는 시골로 갑니다. 저마다 생각하는 대로 삶을 이룹니다. 대학교 졸업장 거머쥐고 싶은 사람은 여러 해 애써서 대학교에 가려고 합니다. 시골에서 내 삶 손수 짓고 싶은 사람은 여러 해 힘써서 시골살이 밑터를 닦습니다.


  아이들을 하루 내내 돌보며 즐겁게 웃거나 떠들거나 노래하고 싶은 사람은, 스스로 책을 뒤지든 스스로 어린 날 놀던 모습을 되새기든 하면서 아이들과 신나게 얼크러집니다. 아이들과 하루 동안 어떻게 지내야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그냥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학교나 학원에 보냅니다.


  맑은 생각이 맑은 삶을 빚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맑게 가다듬을 때에 스스로 삶을 맑게 보듬습니다. 환한 생각이 환한 삶을 빚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환하게 추스를 적에 스스로 삶을 환하게 밝히기 마련입니다.


  좋은 짝꿍을 사귀고 싶다고요? 네, 아주 쉬워요. 언제나 좋은 생각을 하면 돼요. 내 생각을 언제나 좋은 마음과 이야기로 그득그득 채우면 돼요. 이렇게 하면, 내 삶은 차츰 좋은 결로 거듭나고, 바야흐로 온통 좋은 마음과 이야기로 넘실거릴 무렵, ‘내가 사귀고 싶은 짝꿍한테서 느낄 좋은 기운’을 바로 나 스스로 갖춥니다. 이리하여, 좋은 삶으로 거듭난 나한테 좋은 짝꿍이 저절로 찾아옵니다.


.. 진실을 알아내는 공부도 아주 중요하지요. 겉모습은 화려하고 멋있지만 속마음은 나쁜 왕자님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왕자님이 얼마나 똑똑하고 지혜로운지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가요? 어려운 문제를 내어 풀 수 있는지 시험해 보면 되지요. 그래서 여러 가지 알쏭달쏭한 문제들을 많이 공부해야 해요 ..  (19쪽)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결로 삶을 움직입니다. 첫째, 마음으로 삶을 움직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내 삶이 바뀝니다. 웃고, 노래하며,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가꾸면, 내 삶은 시나브로 웃음과 노래와 이야기가 흐드러지는 무지개빛이 됩니다.


  둘째, 몸으로 삶을 움직입니다. 바지런히 땀흘리며 흙을 일구듯, 몸으로 삶을 빛내는 길이 있습니다. 땀에서 보람을 찾고, 구리빛 살결에서 보람을 누립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몸으로만 삶을 움직이다가 옷치레·밥치레·집치레에 끄달릴 수 있어요. 마음 아닌 몸으로만 느끼려 할 때에는, 눈으로 보이는 겉모습에 휘둘릴 수 있습니다.


  마음은 사랑을 먹으며 자랍니다. 마음은 사랑을 나누면서 밝게 웃습니다. 마음에 사랑이 있을 때에 몸 또한 사랑스레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는 이웃과 동무한테 웃음꽃 선물합니다. 마음에서 샘솟는 꿈으로 하루하루 기쁘게 일굴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꿈이 아닙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흐르는 꿈이 아닙니다. 사랑은 책으로 배우지 못합니다. 상담교사나 심리학자가 마음을 다스려 주지 못합니다. 사랑은 손짓 발짓 또는 돈짓으로 거머쥐지 않습니다. 사랑은 보드라운 산들바람 같은 마음씨앗 뿌리면서 나눕니다. 마음은 정갈히 쓰다듬는 손길처럼, 새롭게 돋는 풀잎처럼, 아침에 드리우는 햇살처럼, 아주 천천히 알맞게 넉넉히 누구한테나 이어지는 꿈타래입니다.


  함께 생각해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함께 생각해요. 내 고운 살붙이하고 하루를 어떻게 누리고 싶은지 생각해요. 내 어여쁜 아이들하고 하루를 어떻게 즐기고 싶은지 생각해요. 내 반가운 이웃하고 하루를 어떻게 빛내고 싶은지 생각해요.


.. 마리는 잠깐 생각하다가 깃털 달린 펜으로 이렇게 썼어요. “우리 집 공주님.” ..  (30쪽)


  나카가와 치히로 님 그림책 《내가 진짜 공주님》(크레용하우스,2001)을 읽습니다. 그림책 《내가 진짜 공주님》에 나오는 가시내는 공주님이 되고 싶습니다. 늘 공주님 되겠다고 꿈을 꿉니다. 다만, 공주님이 되고 싶을 뿐, 공주님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고, 공주님은 무엇을 하며, 공주님은 삶을 스스로 어떻게 일구는가 또한 몰라요.


  그래서, 그림책 가시내는 ‘공주님 가르치는 학교’에 들어갑니다. 공주님 가르치는 학교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새롭게 배웁니다. 이쁘장한 치마 펑퍼짐하게 입고 아무 일 안 하는 공주님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지으며 사랑을 나누는 공주님이 되는 길을 걸어요. 오랜 나날 알뜰살뜰 ‘공주님 되기 공부’를 한 가시내는 이제 모든 시험을 거쳐 ‘진짜 공주님’이 됩니다. 진짜 공주님이 되었기에, 가시내는 ‘어떤 공주님’이 되겠느냐 하고 이녁 이름을 손수 쓸 수 있습니다. 왜, 공주 참 많잖아요. 백설공주, 인어공주, 평강공주, 엄지공주, ……처럼 온갖 공주가 있어요.


  자, 수많은 공주 가운데 ‘어떤 공주님’이 되면 즐거울까요. 나는 이 많은 공주 가운데 ‘어떤 공주님’이 되어 내 삶을 누릴 때에 아름다울까요. 4346.2.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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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96 : 겨울과 책, 봄과 삶

 


  겨울 봄 여름 가을 없이, 참새는 늘 지저귀고 날아다닙니다. 참새는 서울에서나 시골에서나 제 보금자리 마련한 곳에서 먹이를 찾고 새끼를 낳습니다. 사람들이 참새를 눈여겨보거나 말거나, 참새는 언제나 저희 삶을 누립니다.


  서울에서 참새가 무어 먹을거리가 있느냐 싶지만, 참새는 서울에서도 이녁 목숨 나름대로 살아갑니다. 서울에서는 맑은 물 마시기 힘들다지만, 빗물 고인 웅덩이를 찾아 목을 축입니다. 나무가 없으나 전봇대 있습니다. 나뭇가지 없으나 전깃줄 있습니다. 지렁이나 벌레 없으나, 술에 절은 사람들이 게운 것이 길바닥에 있고, 사람들이 아무 데나 버린 밥찌꺼기가 있습니다. 서울 참새는 서울 참새대로 서울 문명과 문화를 누리면서 삶을 짓겠지요. 먹이를 누리겠지요.


  고성국·남경태 두 분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그러모은 《열려라, 인생》(철수와영희,2013)을 읽다가 “수도권에 2500만 명이 살아. 인구의 절반이 흙을 밟지 못하고 사는 거야. 실제로 학교에서 모종 만드는 숙제를 냈는데 결국 흙을 못 구해서 포기하더라는 거야. 요즘은 학교 운동장도 우레탄 같은 걸로 깔잖아. 그런 환경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고. 이건 자연과이 소통이 심각하게 단절되었다는 뜻이야(131쪽).” 같은 글월에서 가슴이 턱 막힙니다. 서울 참새도 흙을 못 밟고, 지푸라기 못 물며 살아가는데, 서울 어른과 아이 모두 흙 없는 채 살아가요. 흙이 없는데 쌀밥 콩밥 먹는 서울내기입니다. 흙이 없는데 능금 딸기 버섯 포도 귤 감 옥수수 아무 때나 실컷 먹는 서울내기입니다. 흙이 없는데 유기농 친환경 저농약 무농약 마음대로 골라서 먹는 서울내기입니다.


  서울 참새는 흙이 없는 곳에서 얼마나 즐거운 하루를 누릴까 어림해 봅니다. 흙이 없어도 밥과 물을 얻으니, 서울 참새로서는 그닥 걱정없을는지 모릅니다. 서울 어른은 흙이 없는 곳에서 얼마나 재미난 하루를 누릴까 헤아려 봅니다. 흙이 없어도 돈을 벌어 밥과 물과 전기를 쓰니, 서울 어른으로서는 그닥 근심없을는지 모릅니다. 서울 아이는 흙이 없다 하더라도, 학원이 있고 학교가 있으며, 손전화랑 컴퓨터가 있습니다.


  레나가 지은 《우리는 크리스탈 아이》(샨티,2013)를 읽다가 “자연은 순수한 사랑 그 자체예요. 자연은 아주 아름다운 에너지를 발산하죠(177쪽).” 같은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밀레 님이 시골에서 시골이웃 마주하며 그림 그린 까닭이 있어요. 고호 님이 시골에서 그림을 익히며 이녁 삶을 빛낸 까닭이 있어요. 그러나, 오늘날 여느 사람을 비롯해서 예술쟁이 지식인 전문가 학자 공무원 정치꾼 모두 서울로 몰립니다. 서울 아니고서는 환경운동도 사회운동도 노동운동도 못 하리라 여깁니다. 아름다운 숲과 살아가며 아름다운 사랑 얻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아름다운 삶을 지을 때에, 내 입에서는 아름다운 말이 흘러나옵니다.


  겨울 지나 봄입니다. 푸릇푸릇 산뜻한 볕이 내리쬐면서 산들산들 맑은 바람 붑니다. 4346.2.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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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길타래 3, 풍양중학교와 별학산 기슭 (13.2.22.)
― 나무, 뒷산, 버스타는곳

 


  지난 2012년, 고흥군 도화면에 깃든 도화중·고등학교 운동장에 있던 흙이 사라졌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우레탄을 깔며 흙땅이 사라지고, 운동장 언저리는 딱딱한 시멘트바닥으로 바뀝니다. 오늘날 도시에 있는 웬만한 학교는 흙운동장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도시 아이들은 가뜩이나 흙 밟거나 만질 일 없는데, 그나마 학교에서 운동장 흙이라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흙이 아예 없는 도시로 바뀝니다.


  시골에서는 학교 운동장에 섣불리 우레탄을 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골에서도 학교 운동장 흙을 걷어내어 우레탄을 깔아야 ‘문화’나 ‘문명’이나 ‘복지’나 ‘교육’이라도 되는 듯 여기는 이들이 차츰 늘어납니다. 고흥읍 고흥동초등학교는 진작부터 운동장 흙이 사라졌어요. 고흥읍도 고흥군에 있는 여러 시골마을 가운데 하나라지만, 읍내 아파트나 빌라에서 살면서 읍내 마트만 들락거린다면, 이 아이들은 시골살이를 한다 하기 어렵습니다. 흙을 만지고, 흙을 마시며, 흙을 돌볼 때에 비로소 시골살이요, 시골학교이며, 시골사람입니다.


  풍양면 풍양초등학교는 아직 정갈한 흙운동장입니다. 풍양중학교도 아직 아름다운 흙운동장입니다. 운동장이 흙일 때에는 운동장 한켠을 텃밭으로 일굴 수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자라나는 풀을 만날 수 있고, 풀뽑기를 하다가 ‘먹는 풀’을 곧잘 보겠지요.

 

 


  도시학교에서는 교사 많고 교사마다 자가용 굴리니 자가용 댈 데 모자란다며 운동장 한켠에 시멘트를 부어 주차장 만든다는데, 시골학교에서도 자가용으로 드나드는 이가 많다 하더라도, 운동장 한켠 얼마든지 텃밭이나 나무밭으로 일굴 수 있어요. 석류나무 심어 석류를 딸 수 있고, 감나무 심어 감을 딸 수 있습니다. 면소재지 조그마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라면 어버이가 으레 흙일꾼이나 고기잡이라 할 테고, 집에 감나무 한 그루쯤 어김없이 있다 할 텐데, 집에서는 집이고 학교에서는 학교예요. 학교에서 학교급식을 하는 만큼, 학교 운동장 한켠에서 학교 텃밭을 일구어 교장선생님부터 학생 하나하나 두 평쯤 밭자락 돌보며 이녁 먹을거리를 거두어 돌본다면, 전국 어디에서도 손꼽힐 아름다운 학교밥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또한, 교사와 학생 스스로 흙을 아끼고 사랑하는 길을 더 오래 누릴 테니까, 허울뿐인 환경교육이나 환경운동에서도 벗어날 만하리라 생각해요.


  풍양초등학교와 풍양중학교는 학교 울타리 따라 나무가 우람하게 자랍니다. 나뭇가지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아, 좋은 나무그늘 이루어집니다. 학교 아이들도 쉴 터전이 되고, 마을사람 누구라도 쉴 자리 됩니다. 풍양면이 좋다는 얘기 듣고 이곳으로 마실을 할 나그네들도 이곳 나무그늘에서 다리쉼을 하면서 아름다운 우리 시골과 삶터를 숨쉴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풍양초등학교 곁에는 작은 문방구 〈학생사〉가 있습니다. 〈학생사〉 옆에는 예전에 꽃집이던 가게가 옛 자취만 보여줍니다. 꽃집이던 가게 곁에는 〈두뇌개발주산학원〉이 옛 자취를 새삼스레 보여줍니다. 풍양면 주산학원 다니던 분들은 어디에서 오늘 하루 일구실까요.

 

 

 


  마을이름으로도 볕이 잘 들겠다 싶은 풍양인데, 참말 풍양마을 천천히 거닐면서 따순 햇살 듬뿍 누립니다. 바람도 길자락도 따스하구나 싶습니다. 멧자락이 둥그스름하게 예쁩니다. 마을집과 마을길 모두 올망졸망 어여쁩니다.


  풍양중학교 옆문 언저리에서 자라는 비파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다가, 중학교 옆문하고 나란히 붙은 살림집 우체통을 한참 쳐다봅니다. 우체통에 제비 두 마리를 새겼어요. 좋은 이야기 물고 오는 제비라는 뜻이로군요. 이제 두 달 즈음 있으면, 머나먼 태평양 가로질러 제비무리 고흥자락으로 힘차게 찾아오겠지요.


  조계산 끝자락이 풍양중학교 뒷자리까지 이어졌을까요. 학교 뒷편에 뒷동산 조그맣게 있습니다. 교사도 학생도 뒷산에서 바깥수업 할 만하고, 뒷산 나무그늘에서 시 한 자락 쓸 만하며, 그림 한 장 그릴 만합니다.

 

 

 

 


  하얀 플라스틱판 아닌 분필 쓰는 칠판이 붙은 교무실을 살짝 들여다봅니다. 새로 오는 교사 이름과 떠나는 교사 이름을 한쪽에 적습니다. 골마루 따라 학교 아이들 작품을 걸고, 학교 건물 문간에는 여러 상패를 놓습니다. 1970∼80년대 상패에 새긴 글월과 숫자가 아련합니다.


  구령대로 나와 율치마을 쪽을 바라보는데, 군내버스 지나갑니다. 도화면에서 풍남항 거쳐 풍양면 지나 고흥읍으로 가는 버스일까요. 왼쪽과 오른쪽 모두 마늘밭 넓게 펼쳐진 길 한쪽에 ‘농어촌 버스(군내버스)’ 타는 곳이라고 알리는 작은 기둥 하나 있습니다. 자동차 많이 오가는 넓은 길에는 비를 그을 만한 자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비를 그을 지붕 있는 버스타는곳(정류장)에는, 이 버스타는곳 세운 이 이름을 새긴 조그마한 돌이 붙어요. 이제는 비와 바람과 햇살에 바래 글씨 읽기 어렵지만, 스무 해나 서른 해 앞서 이 작은 건물 지어 마을에 바친 이들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 가득했겠지요.

 

 

 

 


  노루목마을 어귀에 마을 우물터 있습니다. 건너편에는 마을 어느 분 회갑을 기리며 놓은 앉음돌이 있습니다. 앉음돌 하나 놓고, 마을나무 한 그루 심었을까요.


  노루목마을 우물터는 안 쓴 지 꽤 오래되었겠지요. 아예 우물터를 없애는 데가 많은데, 노루목마을 어귀 우물터는 지난날 마을살이 한 자락 보여주는 아름다운 자취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 뒤에도 아름다운 자취(문화유산)가 될 테지만, 바로 오늘에도 ‘지난 마을살이 돌이켜보는 자취’ 구실을 해요. 오늘날에는 수도물을 써야 문화이거나 문명으로 여기지만, 이 땅 사람들은 긴긴 나날 우물물 긷고, 냇물 마시며, 빗물 받아서 살았어요. 우리 숨결 이은 우물물이고 냇물이며 빗물이에요.


  내율마을 곁을 지나갑니다. 별학산 기슭을 따라 천천히 오르막을 걷습니다. 억새가 춤추는 한갓진 멧자락을 바라봅니다. 겨울 끝무렵 들바람과 멧바람을 마십니다. 조용하며 맑은 숲입니다. 시원하며 깨끗한 바람입니다. 햇살은 숲을 살찌우고, 숲은 사람을 살찌웁니다. 바람은 흙을 북돋우고, 흙은 사람을 북돋웁니다.

 

 


  볕 잘 드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무덤이 있습니다. 볕 잘 드는 곳에서 마을을 굽어살피겠지요. 볕 좋은 날 마을 어른들은 낫 들고 무덤가로 풀 베러 마실을 오겠지요.


  자동차 뜸한 길가에서 자라는 후박나무는 한 해 두 해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직 키가 작은 후박나무는 열 해쯤 뒤에는 시원한 그늘 드리우는 ‘후박나무 길’로 거듭나겠지요. 나무가 있고 사람이 있습니다. 숲이 있고 사람이 있습니다. 군내버스는 조용히 마을 사이를 지납니다. 마을길 걷는 사람은 조용히 멧새 소리를 듣습니다. 4346.2.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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