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자와 유미코라고 하는 분 그림책 <친구에게 주는 선물>을 아이한테 두 번 읽어 주면서, 참 결 곱고 이야기 싱그럽다고 느낀다. 그림이며 줄거리이며 아주 사랑스레 엮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빚으면서 숲(자연)을 넌지시 일깨우는 그림책을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널리 읽을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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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단짝 친구- 친구를 위한 배려
후쿠자와 유미코 글.그림, 엄기원 옮김 / 한림출판사 / 2008년 10월
12,500원 → 11,250원(10%할인) / 마일리지 6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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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네가 필요해!- 큰 곰과 작은 겨울잠 쥐
후쿠자와 유미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한림출판사 / 2007년 2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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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친구야!- 친구를 위한 용기
후쿠자와 유미코 글 그림, 서혜영 옮김 / 한림출판사 / 2007년 5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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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진짜 좋아해
후쿠자와 유미코 글.그림, 양선하 옮김 / 한림출판사 / 2009년 2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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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감옥 문학과지성 시인선 209
이경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2월
평점 :
품절


시와 춤
[시를 말하는 시 14] 이경임, 《부드러운 감옥》

 


- 책이름 : 부드러운 감옥
- 글 : 이경임
-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1998.2.20.)
- 책값 : 5000원

 


  여섯 살 큰아이가 노래를 부르니, 세 살 작은아이가 춤을 춥니다. 큰아이는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작은아이는 즐겁게 춤을 춥니다.


  큰아이는 노래를 따로 배우지 않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면 곁에서 가만히 듣다가 하나하나 받아들입니다. 작은아이는 춤을 따로 배우지 않습니다. 누나가 보여주는 몸짓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받아들입니다. 작은아이 깜냥껏 몸을 움직이거나 놀리며 춤을 즐깁니다.


  스스로 우러나와 즐기는 춤입니다. 마음속에서 샘솟아 활짝 웃으며 누리는 춤입니다.


.. 그렇다면, 나는 왜 아직도 이곳을 서성이는 걸까 / 아직 살해하지 못한 말들이 내게 남아 있단 말인가 ..  (니느웨를 걷는 낙타)


  어른도 아이도, 저마다 이녁 숨결 사랑하면서 홀가분히 춤을 추어요. 저마다 이녁 춤사위가 고스란히 노래 되어 싯말 하나로 영글어요. 오래도록 땀흘리며 가락에 맞추어 춤사위 선보일 수 있겠지요. 춤패 춤벗하고 춤사위 한껏 꽃피울 수 있겠지요.


  어떻게 추든 춤은 춤입니다. 어떻게 쓰든 글은 글입니다. 문예창작학과를 다녀야 글을 잘 쓰지 않듯, 어떤 이한테서 따로 배워야 춤을 잘 추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길 때에 춤이요, 글입니다. 스스로 누릴 때에 춤이고, 글이에요.


  즐겁게 먹으려고 밥을 차려요. 즐겁게 읽으려고 글을 써요. 즐겁게 함께하려고 춤을 춰요.


  솜씨자랑이나 재롱놀이라 한다면, 아이들 춤사위는 재미없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저마다 스스로 즐기는 춤이기에 즐겁습니다. 1등을 뽑으려 하는 춤이 아니고, 겨루듯이 부대끼는 춤이 아닙니다.


.. 나는 텔레비전 드라마 속의 삶을 살지 못한다 / 그렇다고 리모컨을 눌러대고 있는 / 이 삶을 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다 ..  (리모컨 누르는 여자)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날립니다. 바람결 따라 머리카락이 춤을 춥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 흔들리고 나뭇잎 떨립니다. 바람결에 맞추어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춤을 춥니다. 바람이 불어 꽃잎 파르르 움직입니다. 봄날 봄꽃은 봄바람하고 어울리며 봄춤을 춥니다. 여름날 여름꽃은 여름바람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여름춤을 춥니다.


  그러고 보면, 바람사위는 춤사위로구나 싶어요. 바람결은 춤결이 되는구나 싶어요. 바람내음은 춤내음이 되고, 바람빛은 춤빛이 될 테지요.


.. 나의 유일한 유희는 언제나 나 자신인 것이다 ..  (달팽이는 시들지 않는다)


  아침바람 쐬면서 아침을 맞이합니다. 동트는 하늘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낮바람 쐬면서 낮을 누립니다. 환하게 밝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새삼스레 파란 빛깔을 생각합니다. 저녁바람 쐬면서 저녁을 노래합니다. 천천히 저물며 보라빛에서 검은빛으로 바뀌는 하늘빛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면서 별이 빛납니다. 별이 빛나며 하늘은 더 까맣게 물들고, 하늘이 까맣게 물들수록 밤바람은 고즈넉하게 마을을 감돕니다.


.. 거리에 가로등이 켜진다 가로등은 따뜻한 새알 같다 ..  (부드러운 감옥)


  이경임 님 시집 《부드러운 감옥》(문학과지성사,1988)을 읽는 시골마을 이른아침에 들새가 속닥속닥 지저귑니다. 봄빛이 가득 물들고, 봄비가 들판 적시며, 봄새가 노래로 하루를 엽니다. 봄빛은 봄이 베푸는 춤사위와 같고, 봄비는 봄을 반기는 춤노래와 같으며, 봄새는 봄을 즐기는 봄동무와 같습니다.


  이경임 님은 “부드러운 감옥”을 시로 노래하는데, 왜 부드러운 감옥을 노래해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차가운 감옥이나 메마른 감옥 아닌 부드러운 감옥입니다. 부드러운 품이나 부드러운 들판 아닌 부드러운 감옥입니다. 서울살이란 감옥이되 부드러운 감옥일까요. 가끔 서울을 벗어나 시골을 맛보며 바람을 쐬는 나들이는 다시 돌아가야 하는 감옥을 떠올리는 부드러운 굴레일까요.


  스스로 부드러운 감옥에 머물기에 부드러운 감옥을 이야기할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부드러운 감옥에 깃들기에 부드러운 감옥을 노래하고 춤추다가는 글로 빚을밖에 없습니다.


.. 굴비 두름처럼 집들이 엮여져 있는 길을 벗어난다 한 개의 잎새도 매달려 있지 않은 나목들이 서 있다 나목들은 하얗게 부풀어오른다 골목이 지워지고 해장국집이 지워지고 야근이 지워지고 아내가 지워지고 신문사가 지워진다 바람이 분다 ..  (겨울 산행)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으면 아름다움이 환하게 빛나며 눈앞에 나타납니다. 따스함을 가슴에 품으면 따스함이 맑게 빛나며 우리 곁에 나타납니다. 사랑도 내가 부르고, 미움도 내가 부릅니다. 꿈도 내가 부르고 낭떠러지도 내가 부릅니다. 나는 무엇을 부르면서 내 삶을 누리는 사람이 될까요. 나는 누구하고 어떤 삶을 빚으며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짓는 사람이 될까요.


  이 나라에 따스하고 포근한 손길이 늘어나기를 빕니다. 이 마을에 넉넉하고 살가운 눈길이 자라나기를 빕니다. 4346.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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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673) 프리바스켓(freebasket)

 

프리바스켓이란 요리에 쓸 만한 재료들을 계절에 맞게 그때그때 신선하게 준비한 뒤 손님이 직접 고르도록 해서 요리하는 것이다
《용서해-삶의 마지막 축제》(샨티,2012) 167쪽

 

  “요리(料理)에 쓸 만한 재료(材料)” 같은 대목은 애써 손질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요리’란 ‘밥하기’요, ‘재료’란 ‘감’입니다. 글을 쓸 거리를 가리켜 ‘글감’이라 하고, 그림을 그릴 거리를 가리켜 ‘그림감’이라 하듯이, 밥을 지을 거리를 가리켜 ‘밥감’이라 새 낱말 빚을 수 있습니다.


  ‘계절(季節)’은 ‘철’로 손보고, “신선(新鮮)하게 준비(準備)한”은 “싱싱하게 마련한”이나 “싱그럽게 장만한”으로 손봅니다. ‘직접’은 ‘손수’나 ‘스스로’로 손질하고, “요리(料理)하는 것이다”는 “차린다”나 “밥상을 차린다”로 손질해 줍니다.

 

 프리바스켓
→ 맘대로바구니
→ 마음바구니
→ 바로바구니
 …

 

  ‘basket’은 영어입니다. ‘free’도 영어입니다. ‘바스켓’은 한국말로 ‘바구니’입니다. ‘프리’는 ‘마음껏’이나 ‘홀가분한’이나 ‘자유로운’을 가리키는 영어입니다.


  한국사람이어도 영어를 쓸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이지만 영어로 새 낱말 지어도 됩니다. 참말 자유이니까요.


  그런데,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새 낱말 빚지 않으면, 일본사람이나 미국사람이나 중국사람이 한국말로 새 낱말을 빚을까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한국말을 사랑해야 할까요.


  보기글에 나오는 ‘프리바스켓’은 ‘자유로운 장바구니’를 가리키지 싶습니다. 조금 더 헤아리면, 저마다 마음대로 골라서 밥감을 담는 장바구니라 할 텐데, 이러한 쓰임새를 살펴 ‘마음바구니’쯤으로 새 낱말 지으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또는 ‘사랑바구니’나 ‘꿈바구니’처럼 새 낱말 지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이 바구니에 담은 밥감으로 밥상을 차려서 먹을 때에, 사람들 모두 사랑이나 꿈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면, 이러한 이름이 더없이 알맞습니다.

 

 싱싱바구니
 상큼바구니
 산뜻바구니

 

  싱싱한 밥감을 담는 바구니라면 ‘싱싱바구니’라 할 수 있습니다. 뜻이 비슷한 다른 낱말을 넣으며 바구니 느낌을 상큼하거나 산뜻하게 붙일 수 있습니다. 생각을 아름답게 추스르면서 말 또한 아름답게 추스를 수 있기를 빕니다. 4346.3.1.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싱싱바구니란, 밥감을 철에 맞게 그때그때 싱싱하게 장만한 뒤 손님이 손수 골라 밥상을 차리도록 돕는 것을 가리킨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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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176 : 갈급渴急


갈급(渴急)하게 바라보아야 할 대상을 찾고 있거나
《권산-아버지의 집》(반비,2012) 210쪽

 


  ‘대상(對象)’ 같은 한자말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무엇’이나 ‘무언가’나 ‘누군가’로 손볼 수 있습니다. “찾고 있거나”는 “찾거나”로 손질합니다.


  한자말 ‘갈급(渴急)’은 “부족하여 몹시 바람”을 뜻합니다. 보기글에서는 ‘갈급하게’ 꼴로 나오는데, 이 대목에서는 ‘애타게’로 다듬으면 알맞습니다.

 

 갈급하게 바라보아야 할
→ 애타게 바라보아야 할
→ 애끓으며 바라보아야 할
→ 애틋하게 바라보아야 할
→ 가슴 졸이며 바라보아야 할
 …

 

  한자말을 묶음표에까지 넣어서 글을 쓰려 할 적에는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하면서 한자말을 써야 하느냐고. 이렇게 글을 쓰려는 매무새로 가장 알맞고 더없이 싱그럽다 할 한국말을 살피고 찾으면 얼마나 글맛이 살고 글멋이 어여쁠는지 헤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6.3.1.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애타게 바라보아야 할 무언가를 찾거나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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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15] 숲읽기
― 밥과 옷과 집

 


  고등학교를 마치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며 이 대목을 배운 적 없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고등학교 교육 얼거리’에 맞추어 교과서 지식을 집어넣으려 했을 뿐, 내 삶을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교과서 지식을 집어넣으면서 시험을 치르는데, 시험점수가 어떠한가에 따라 몽둥이찜질과 줄세우기를 함부로 했습니다(1991∼1993년).


  중학교를 마치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나는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이 대목을 배운 적 없습니다. 중학교에서는 고등학교에서처럼 ‘중학교 교육 얼거리’에 맞추어 교과서 지식을 집어넣기만 했습니다. 중학교에서 우리한테 할 수 있던 일이라면 ‘고등학교에 보내기’였어요.


  곰곰이 돌아보면, 고등학교가 하는 일도 ‘대학교 보내기’에 머무는구나 싶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니라면 ‘공장 보내기’나 ‘회사 보내기’가 될 테지요. 그러면, 인문계 고등학교는 왜 대학교에 보내려 하는가요. 대학교에 보내면 아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또, 대학교를 여러 해 다녀서 마치는 아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도시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무엇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대목에서 갈팡질팡했습니다. 오직 입시시험만 가르치는 고등학교를 마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하나도 몰랐습니다. 다른 대목보다 ‘먹고 입고 자는’ 대목을 생각했습니다. 이른새벽부터 늦은밤까지 학교에 붙들린 채 입시교육만 받는데, 밥하기와 바느질부터 빨래나 집일 어느 하나 익히거나 배울 틈이 없습니다. 집에서 어머니가 혼자 김치를 담그셔도 도우러 갈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문제집 한 번 더 들추어야 한다고 말할 뿐, 김치가 어쩌고 자시고 아랑곳하지 않아요. 설이나 한가위를 앞둔대서 수험생이 집일을 거들 틈이 없습니다. 명절 코앞까지 밤늦도록 입시교육을 시키니까요.


  그러니까, 고등학생이 대입시험을 치러 붙지 않으면, 그야말로 할 줄 아는 일이 없습니다. 책상맡에서 문제집 들여다보기 빼놓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짐을 나를 줄 아나, 연장을 고칠 줄 아나, 삽질을 할 줄 아나, 망치질을 할 줄 아나, 도무지 어느 하나 스스로 하도록 가르치거나 이끌지 않는 학교입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고추포기를 고추나무로 잘못 알고, 벼 또한 벼나무라도 되는 줄 잘못 안다고 나무라는데, 도시 아이들은 곁을 둘러볼 겨를이 없습니다. 도시 아이들한테 둘레를 살펴볼 틈을 안 줍니다. 도시에는 논도 밭도 없어요. 고추이든 벼이든 구경할 수 없어요. 사내도 가시내도 스스로 밥상 차릴 일이 없습니다. 사내도 가시내도 제 옷을 스스로 빨아서 입을 일이 없습니다. 사내도 가시내도 제 방을 스스로 쓸고 닦을 일이 없습니다. 이 얼거리는 대학생이 되어 여러 해 지난 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된 다음에도 늘 매한가지입니다. 대학생이 된대서 집일을 배우거나 집살림을 배우는 아이는 없어요. 대학교를 마치고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니까 집일하고 집살림을 익히려는 젊은이는 없어요. 한 마디로 간추리면, 오늘날 아이들은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어린이집에 한 번 들어가고 나면, 그 뒤로 집일하고 집살림하고는 아예 등을 지고 맙니다.


  과학 수업에서 별이름을 배웁니다. 원소가 어떠하고 화학조합물이 어떠하고 배웁니다. 옛 임금들 이름과 이런저런 옛 제도와 정책 줄거리를 외웁니다. 때때로 나무이름도 외우지요. 그러나, 학교 언저리에 심은 나무가 소나무인지 향나무인지 알 턱이 없습니다. 알려주는 교사가 없고, 푯말이 붙지도 않습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어떻게 다른지 배울 길 없고, 가르치는 교사가 없습니다. 참나무는 왜 참나무이고, 참나무 열매가 왜 도토리이며, 도토리를 열매로 맺는 참나무 갈래는 어떻게 되는가를 배울 수 없고, 알려줄 만한 교사가 없어요. 대나무조차 못 알아보는 동무가 있습니다. 감이 열린 감나무를 바라보면서 저 불그스름한 알이 무언지 모르는 동무가 있습니다. 포도가 나무에 열리는지, 능금꽃이나 배꽃이 어떠한지 생각하거나 헤아리거나 아는 동무가 거의 없습니다.


  요즈음은 시골에서도 숲을 마주하거나 누리기 어렵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시골자락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가 지나가는 길목’이거나 ‘공장하고 골프장하고 발전소 짓는 터’이거나 ‘관광지’로 꾸미는 데가 됩니다. 도시에서는 아파트와 건물 늘리느라 바빠, 그나마 도시 바깥쪽에 있던 논밭이나 뒷동산조차 사라집니다.


  도시에서는 자가용 몰아 ‘수목원’이라 따로 이름을 붙이는 데로 찾아가야 나무내음 맡을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나비박물관 아니고서야 나비조차 볼 수 없습니다. 참새나 비둘기가 더러 도시에서도 살아간다지만, 멧새나 들새를 볼 수 없는 도시예요. 소쩍새나 참수리가 살 터가 없는 도시요, 들쥐나 멧쥐조차 살 터가 없는 도시예요.


  입시공부에 찌들리던 지난날, 나는 무엇보다 ‘숲을 모른다’는 대목이 부끄럽습니다. 매캐한 자동차 냄새는 그만 맡고 싶습니다. 갑갑하고 어두운 시멘트 교실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내가 태어나 자란 인천 어디에나 수두룩하게 많은 공장마다 내뿜는 매연덩어리에서 홀가분하고 싶습니다. 송전탑과 전봇대하고 헤어지고 싶습니다.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바람에 실리는 꽃내음과 풀내음을 맡고 싶어요. 바람결에 살랑이는 햇살을 쬐고 싶어요. 바람 따라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고 싶어요. 창밖을 바라보아도 잿빛투성이일 뿐이었지만, 창밖으로 숲이 있기를 빌었어요. 나무그늘에서 책을 펼치고, 풀밭에 앉아 도시락을 즐기며, 나무타기를 하며 쉬다가는, 싱그럽고 푸른 맛난 풀 뜯어먹고 싶었어요.


  밥과 옷과 집은 어디에서 얻을까요. 바로 숲에서 얻지요. 숲이 있어야 밥을 얻지요. 숲이 있어야 옷을 얻지요. 숲이 있어야 집을 얻지요. 공장에서 가공식품 찍어낸대서 배부르지 않아요. 공장에서 천을 짜고 옷을 짓는대서 예쁘지 않아요. 공장에서 시멘트와 플라스틱과 쇠붙이 얽어 높다란 아파트 짓는대서 반갑지 않아요. 숲에 푸른 숨결 가득한 나무가 있을 때에 먹을거리가 나와요. 숲에 푸른 숨소리 가득한 나무가 있어 비로소 입을거리를 빚어요. 숲에 푸른 숨빛 해맑은 나무가 있기에 튼튼히 기둥 세우고 서까래 얹으며 집을 지어요.


  학교는 모름지기 숲학교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모두 숲배움터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숲배움터가 되면서, 아이들이 나이와 눈높이에 맞게 ‘밥·옷·집’ 스스로 건사하는 슬기와 넋을 익힐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이든 실업계 고등학교이든 예체능계 고등학교이든, 모두 너른 숲 한복판에 깃들어, 숲내음 맡고 숲살이 익히면서 차근차근 자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운전면허증은 아예 안 따거나 나중에 따도 돼요. 굳이 열아홉 살이나 스무 살에 대학생 되어야 하지 않아요. 대학생 애써 안 되어도 즐겁지요. 삶을 누릴 수 있을 때에 즐겁고, 삶을 사랑할 수 있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숲이 곧 살림터요 배움터일 수 있기를 꿈꿉니다. 나는 숲배움터를 조금도 누리지 못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숲배움터를 실컷 누릴 수 있기를 꿈꿉니다. 숲에 깃들 때에 시나브로 사람다움과 참다움과 나다움을 다스릴 수 있구나 싶어요. 4346.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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