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책읽기

 


  고흥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고속도로는 반듯합니다. 멧골과 멧골 사이에는 높다란 다리를 놓습니다. 멧자락마다 구멍을 뻥뻥 뚫습니다. 멧구멍은 아주 깊어 1∼2분씩 120킬로미터로 달려도 그치지 않는데, 이런 멧구멍이 열 차례 스무 차례 이어집니다. 아마, 어디에서나 서울로 가는 길은 이처럼 곧고 시원하며 빠르겠지요. 그래요, 참말 곧고 시원하며 빠르기에 고속도로입니다. 구불구불 멧자락 덜 깎으며 가는 길이란 고속도로가 아닐 테지요.


  숲이 나날이 무너집니다. 바람이 나날이 매캐합니다. 햇살이 나날이 시듭니다. 풀꽃이 나날이 집니다. 사람들 얼굴에 웃음이 나날이 걷히고, 사람들 얼굴에 더 빨리 더 빨리 더 빨리, 라는 세 글자 더 굳게 나날이 드러납니다. 4346.3.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모르니까 책읽기

 


  사건과 사고로 넘치는 신문과 방송을 자꾸 읽거나 보면, 사람들은 그런 사건과 사고에 길들고 만다. 사건과 사고 다루는 신문과 방송 이야기에 한숨을 쉬며 이웃을 안타까이 여기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며 찾지 못한다.


  사건과 사고 이야기에 길들면, 밥상머리에서든 술자리에서든 이런 이야기를 자꾸 떠들고 만다. 곧, 스스로 아름다움하고 멀어진다.


  사건과 사고를 말하는 내 입술은 파르르 떨린다. 갑갑하고 답답한 이야기를 하니까.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내 입술은 사르르 웃는다. 즐겁고 기쁜 웃음꽃을 노래하니까.


  한 사람 태어나 몇 살까지 살아갈까. 나는 모른다. 이백 살 살고프면 참말 이백 살 살 테고, 오백 살 살고프면 참말 오백 살 살아갈 텐데, 오늘날 사람들은 백 살이니 여든 살이니 하는 숫자에 얽매인다. 그러니 다들 백 살이나 여든 살 언저리에 죽는다.


  아무튼, 죽든 살든 그리 대수롭지 않은데, 여든 살에 죽는다 치면, 여든 살까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책은 몇 권쯤 될까. 여든 살까지 읽을 책을 헤아릴 때에 어떤 책을 읽어야 내 삶이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 여든 살까지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마음을 쓰거나 사랑을 쏟을까.


  사건과 사고 이야기를 여든 살까지 줄기차게 담을 생각인가? 아니면, 아름답고 즐거우며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여든 살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까지 활짝 웃으면서 나눌 생각인가? 4346.3.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수이 2013-03-06 19:41   좋아요 0 | URL
'곧, 스스로 아름다움하고 멀어진다' 밑줄 쭈욱.

파란놀 2013-03-07 14:46   좋아요 0 | URL
모두들 아름다움하고 즐거이 사귈 수 있기를 빌어요
 
사야와 함께 2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21

 


함께 웃기를 빌어요
― 사야와 함께 2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2012.9.15./4200원

 


  집에서 닭을 잡아서 장작불 때고 삶아서 먹은 적 있는 사람은 ‘집닭’이 얼마나 맛있고 몸을 살찌우는 줄 압니다. 반가운 손님 찾아올 적에 집닭 한 마리 잡아 털 뽑고 삶아서 내놓는 일이 서로서로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 일인가를 몸소 겪은 사람은 뼛속 깊숙하게 압니다.


  집돼지를 잡거나 집소를 잡거나 집개를 잡아서 먹을 적에도, 참말 맛있습니다. 아끼고 사랑하던 집짐승을 잡기에 가슴 한켠으로는 아쉽거나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막상 수저를 들어 살점 하나 집어서 먹으면 그토록 맛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며 기른 짐승을 손수 잡아서 먹으니 맛있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사랑하며 돌본 풀과 곡식과 열매를 먹을 적에도 무척 맛있습니다. 손수 갈무리한 나락으로 밥을 지어 먹을 적하고, 누가 기른 줄 알 턱 없는 쌀밥을 밖에서 사다 먹을 적하고 똑같은 맛이 될 수 없습니다. 내 능금밭에서 능금알 따서 먹을 때, 내 무밭에서 무를 뽑아서 먹을 때, 이 능금 한 알과 무 한 뿌리는 내 몸을 더할 나위 없이 살찌웁니다. 참말 마땅한데, 나는 내 밭뙈기 푸성귀를 알뜰한 사랑과 땀방울로 보살폈거든요. 내 사랑과 꿈과 슬기와 믿음과 마음이 골고루 담긴 밭에서 자란 열매이니, 이 열매는 내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살찌웁니다.


- “그보다 너희 누나는 어떤 사람이니?” “어?” “정말로 놀러 가면 안 돼?” “어어어?” “틀림없이 다정하고 예쁜 누나일 거야. 그치?” (21쪽)
- “아, 그렇구나.” “응.” “그,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가족이라고. 형제라고.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지금 생활이 당연하게 느껴지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쭉 같은 집에서 살았어도, 여전히 늘 좋아하고, 함께 있고 싶어 해도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릴 수도 있어.” (22∼23쪽)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집돼지나 집닭을 기르지 못합니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집개나 집고양이를 기를 수 있지만, 이 짐승을 잡아서 먹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사랑과 믿음과 땀방울로 보살핀 목숨이라 하더라도, 내 밥으로 삼지 못합니다. 아마, 처음부터 밥으로 삼으려고 기르는 집짐승이란 없겠지요. 서울에서는.


  그러고 보면, 서울에서는 밥으로 삼으려고 풀을 기르는 일이 무척 드물어요. 몇몇 할매 할배 시골살이 떠올리며 텃밭 가꾸곤 하지만, 여느 서울사람은 가게에서 풀포기 조금 사다가 먹지, 스스로 씨앗 뿌려서 거두지는 않습니다. 곧, 오늘날 서울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사랑 기울인 풀을 먹지 못해요. 닭을 사다 먹거나 돼지고기 소고기 사다 먹을 적에도 스스로 사랑 기울이며 돌보고 아낀 짐승을 잡은 고기가 아니라, 값싼 고기나 좋다 하는 고기를 사다 먹을 뿐이에요.


  영양소만 먹는다고 할까요. 사랑을 먹지 못하고 영양성분만 먹는다고 할까요.


  유기농 곡식을 먹기에 내 몸을 아끼거나 살찌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돌보고 기른 곡식이 아닐 때에는 유기농이든 친환경이든 화학농이든 모두 매한가지예요. 내 사랑이 깃들지 못했거든요. 그러나, 혀는 느끼지요. 혀는 유기농 곡식과 친환경 곡식과 화학농 곡식 맛이 서로 어떻게 다른 줄 느끼지요.


  다만, 혀로도 못 느끼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곡식이든 열매이든 고기이든, 모두 손수 거두어 먹던 삶하고 멀어진 지 고작 백 해조차 안 되었지만, 이제 혀로조차 맛과 밥과 삶을 못 느끼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 “하지만 한 명 한 명은 모두 무척이나 사랑스럽죠.” (40쪽)
- “좋아한다는 감정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쌓여 가거든. 나는 그랬어. 오늘 몇 마디 나눈 잡담이 즐거웠다든가, 지우개를 빌려줬다든가. 그런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들이 점점 쌓이고 쌓여서.” (74쪽)


  함께 웃는 삶이란 얼마나 즐거울까요. 함께 노래하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길거리에 자동차 소리로 시끄럽기보다, 길거리에 사람들 노랫소리 가득하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들판에 경운기 소리보다, 시골 일꾼 두레 하면서 부르는 일노래 넘실거리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즐거움을 헤아리고 싶습니다. 사랑을 바라고 싶습니다. 이제는 시골사람도 조금은 살필 줄 알기는 하는데, 비료와 농약을 안 친 곡식으로 갈무리하면, 비료와 농약을 친 곡식보다 곱절 넘게 값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똥오줌으로 거름을 내어 지은 곡식은 다른 곡식보다 더 나은 값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시골 어르신들은 자꾸 비료와 농약을 치고 맙니다. 비료와 농약을 안 치면 벌레 꼬이고 잡풀 돋아 곡식이 굵게 여물지 못한다고 여겨요.


  참 마땅한데, 유기농 곡식은 알이 덜 굵어도 됩니다. 왜냐하면, 알이 덜 굵어도 속이 단단하기에, 유기농 곡식은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요. 들에서 스스로 씨앗 내려 자라는 풀을 뜯어서 먹으면, 풀잎 몇 뜯어서 먹어도 배가 찹니다. 비닐집에서 따로 심어 돌본 풀을 뜯어서 먹으면, 한 소쿠리 먹어도 배가 안 차요. 따로 유채밭에서 기른 밭유채잎 뜯어서 먹을 때하고, 유채 스스로 씨앗 날려 자란 들유채잎 뜯어서 먹을 때는 맛이 사뭇 다릅니다. 들유채잎 맛을 밭유채잎 맛이 따라가지 못해요.


- ‘나를 진심으로 믿어 주셨다.’ (86쪽)
- “아빠는 늘 무조건 반대만 하죠? 댄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99쪽)


  시골 읍내 저잣거리에서 냉이 한 소쿠리 사다가 된장국 끓여서 먹어도 맛납니다. 내 뒷밭과 옆밭에서 냉이 캐서 된장국 끓여서 먹어도 맛납니다. 맛나기로는 어떤 냉이로 된장국 끓여서 먹어도 맛납니다. 그런데, 아무런 비료도 농약도 없이 겨울을 난 냉이를 내가 손수 내 밭뙈기에서 캐서 된장국 끓이면 더할 나위 없이 맛있어요. 이야 참 좋구나. 아이들과 밥 함께 먹으며 아이들한테 빙그레 웃음짓고 말합니다. 얘들아, 맛있지? 응, 맛있어.


  가만히 보면, 냉이도 씀바귀도 질경이도 민들레도 꽃다지도 돗나물도 광대나물도 …… 오늘날 시골에서는 모두 잡풀로 여깁니다. 이런 풀은 상품 값어치가 없다 하니까요. 이런 풀은 그때그때 뜯어서 그때그때 먹지, 저잣거리나 가게에서 팔 만하지 않다 해요. 그렇지요. 시골 사는 사람이 시골자락에서 늘 얻는 풀이에요.


  그런데, 시골 사는 사람이 왜 가게에 내다 팔 풀만 살펴야 할까요. 시골 사는 우리가 왜 서울사람 살림살이 따르듯 논둑 밭둑 아름답고 어여쁘며 맛난 풀을 농약 쳐서 다 죽여야 하나요. 왜 시골마을 곱고 시원한 바람에 농약을 흩뿌리며 재채기 나게 해야 할까요.


- “미안해. 다들 시끄럽지? 그보다 방도 엄청 좁고. 으아, 미안해. 진짜 갑갑하지?” “아니야. 정말로 좋은 집인걸. 따뜻하고, 북적거리고. 사야가 그토록 착하고 예쁜 이유를 알 것 같아. 아버님도 전혀 편견이 없으시고, 어떻게 하면 우리 아빠도 이해를 해 줄까?” (111쪽)
- ‘어린 시절의 실없는 약속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나를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 미래를 의심한 적이 없다.’ (140쪽)


  청소년들 풋풋한 사랑을 그리는 만화책을 읽습니다. 나는 두 아이 돌보는 서른아홉 살 아저씨인데, 일본사람 타니카와 후미코 님 애틋한 만화책 《사야와 함께》(대원씨아이,2012) 둘째 권을 읽습니다. 셋째 권 언제쯤 한국말로 나올까 손꼽으며 즐겁게 읽습니다.


  우리 아이들 찬찬히 자라면 머잖아 푸름이 되겠지요. 이 아이들 푸름이 되어 저마다 풋풋한 사랑 가슴에 안을 테지요. 우리 아이뿐 아니라 이웃 아이들도 찬찬히 자라 푸름이 되어, 저마다 가슴에 고운 사랑 안을 테지요.


  어여쁜 우리네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사랑을 가슴에 안을 때에 아름답게 웃을까요. 어여쁜 우리 시골마을 고흥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꿈을 가슴으로 안고 아끼며 보듬을 때에 환하게 웃을까요.

  내 어린 날 돌아보고, 우리 아이들과 이웃 아이들 앞날 헤아리면서, 예쁜 만화책을 예쁜 넋으로 즐기자고 생각합니다. 서로서로 기쁘게 웃고 기쁘게 밥먹고 기쁘게 풀 뜯으며 시골살이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4346.3.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노래를 듣는다

 


  서울로 사진강의를 오면서 긴밤 장례식장에서 샌다. 술잔 기울이며 밤을 잊고 자리를 지키려다가 어느새 나도 자리에 드러눕는다. 그러다 퍼뜩 깬다. 아차, 잠을 안 자고 버티려 했는데. 눈을 부비고 보니 맞은편에 서너 아저씨 드러누워 새근새근 잔다. 모두들 밤을 새우며 자리를 지키려 애쓰다가 쓰러졌구나 싶다. 몇 시간쯤 잤을까. 낯을 씻고 손을 씻는다. 고흥 시골집에서 담아 들고 온 물을 마신다. 도시로 나오면 시골집서 가져온 물만 마시면서 기운을 찾는다. 시계를 살피니 두 시간 즈음, 또는 한 시간 반 즈음 잔 듯하다. 그래도 이나마 잤으니 몸을 살핀 셈일까. 부시시한 몸이지만, 가방에서 시집 하나 꺼내어 읽는다. 100쪽쯤 읽으며 마음을 깬 뒤 짐을 꾸린다. 이제 장례식장 지킴이는 상조회사 일꾼한테 삯을 치르고 나가야 한다. 나도 가방을 멘다. 장례식장 지킴이한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천천히 나온다. 아직 밖은 깜깜하다. 초승달 보인다. 이야, 인천에서도 초승달 보네. 훗.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잖아. 무엇이 새삼스럽다고. 초승달 바라보며 새벽길 거닐어 피시방 찾는다. 예전에 가 본 피시방은 문이 잠겼다. 문을 닫았나. 다른 피시방을 찾는다. 음식물쓰레기 거두는 청소차 지나간다. 문을 연 피시방으로 들어간다. 피시방에서 잠을 자는 젊은 아가씨 하나 보이고, 게임으로 밤새우며 시끄러운 젊은 사내 하나 보인다. 셈틀마다 귀에 꽂고 소리 홀로 즐기는 연장 있기에, 한 번 써 본다.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이래저래 찾으며 듣는다. 퍽 좋다. 아니, 꽤 좋다. 시골집에서는 늘 아이들 목소리 노랫소리 듣는데, 집 바깥으로 나와 볼일을 볼 적에는 자동차 소리로 귀가 따갑다가, 이렇게 피시방에서 나를 보드랍게 감싸는 노래를 고즈넉하게 들으니 좋다. 그래, 나는 내 노래를 부르면서 내 삶을 누릴 때에 즐겁구나. 내 둘레 이웃들도 저마다 이녁이 사랑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이녁 삶을 누린다면 다 함께 사랑스럽고 아름답겠지. 4346.3.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놀 2013-03-06 08:19   좋아요 0 | URL
http://www.youtube.com/watch?v=po09lcDxXIA

이 주소로 가면, 부에노비스타소셜클럽 '체 게바라' 노래 들을 수 있어요.
동영상 퍼서 올리기는 잘 못 해서, 이렇게 주소를 따로 붙입니다.
 

서울지하철

 


  사람들이 계단으로 오르내리지 않는다. 자동계단이 멈추어도 자동계단을 밟고 오르지, 돌계단으로 오르지 않는다. 사람들이 여느 거님길을 걷지 않는다. 가만히 서도 도르르 움직이는 길을 걷는다. 스스로 다리를 쓸 일이 없다. 스스로 다리를 쓸 일을 줄인다. 스스로 다리를 쓸 일을 없앤다. 아직 자가용으로 다니지 않기에 지하철을 타는구나 싶다. 앞으로 자가용을 탄다면 지하철이든 시내버스이든 탈 일이 없겠구나 싶다. 서울에서는 자가용을 굴려야 비로소 다닐 만한 길이 된다. 서울에서는 두 다리로 거닐어서는 가고픈 곳을 즐겁게 다니기 힘들다.


  지하철은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먹는다. 지하철을 타자면 전기를 엄청나게 쓰는 땅밑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환한 낮에도 지하철은 전기를 써서 불을 밝힌다. 까만 밤에도 지하철은 전기를 들여 불을 켠다. 낮에는 낮이 없고 밤에는 밤이 없다.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 하더라도 낮에 낮을 느끼지 않고 밤에 밤을 느끼지 않지만, 자가용을 타지 않더라도 낮에 낮을 마주하기 어렵고 밤에 밤을 만나기 힘들다.


  사람들이 밟을 흙이 없다고도 하지만, 사람들 스스로 흙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만질 흙이 없다고도 할 텐데, 사람들 스스로 흙을 헤아리지 않는다. 서울에 오면 숨이 막히는 까닭은 내 발이 흙을 못 밟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 곁을 스치는 여느 사람들 마음에 흙내음이 없으니까. 내 둘레에서 예쁘게 웃고 곱게 수다를 떠는 사람들 넋에 흙기운이 서리지 않으니까. 4346.3.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