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 잎사귀 책읽기

 


  삼월에 접어든 고흥 들판에는 먹을 만한 풀로 가득하다. 이 풀도 먹고 저 풀도 먹는다. 봄까지꽃이나 별꽃보다 일찌감치 꽃봉오리 올린데다가 씨앗을 벌써 맺어 퍼뜨리기에 바쁜 들쑥갓까지 노란 꽃송이를 냠냠 즐겁게 먹는다. 아주 일찍 꽃대 올린 유채는 노란 꽃이 터질 듯 말 듯하다. 유채잎을 따면서, 곁에서 볕 잘 먹고 무럭무럭 크는 자운영 잎사귀를 솎는다. 자운영도 곧 꽃송이 함초롬히 피우겠지. 꽃이 피면 꽃까지 함께 먹는 자운영이지만, 아직 꽃봉오리 안 맺힐 때에도 잎줄기를 알맞게 솎아 먹는다. 얼기설기 뒤엉킨 잎줄기를 솎으며, 네 봄기운이 아이들한테도 곱게 스며든다고 느낀다. 4346.3.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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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35] 풀숨

 


  나뭇잎이 우거지며 나무그늘 이루어집니다. 나뭇잎은 푸른 빛깔입니다. 소나무도 잣나무도 느티나무도 감나무도 매화나무도 뽕나무도 잎사귀는 모두 푸른 빛깔입니다. 나뭇잎 빛깔은 모두 푸르지만, 나무마다 잎빛이 다릅니다. 같은 나무에서도 같은 나뭇가지에 나란히 달린 잎사귀조차 살짝살짝 다른 빛깔이곤 합니다. 모양이나 크기나 무늬나 빛깔이 똑같은 잎사귀는 하나도 없어요. 땅바닥에서 자라는 풀 또한 푸른 빛깔입니다. 풀잎도 풀포기도 하나같이 푸른 빛깔입니다. 풀 빛깔을 바라보며 풀빛이라는 낱말이 나왔을 테고, 풀빛을 헤아리며 나뭇잎 빛깔을 살폈겠지요. 풀과 나무는 잎사귀가 푸르기에 바람이 쏴르르 지나가면 풀내음 물씬 풍기는 풀빛으로 춤춥니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면 풀기운 담뿍 서리는 풀볕 깃들며 노래합니다. 나뭇잎 톡톡 따서 말리고 덖어 찻잎으로 씁니다. 풀잎과 풀줄기 툭툭 끊고 물에 씻어 나물로 먹습니다. 풀을 먹으니 풀밥입니다. 풀을 마시니 풀물입니다. 풀마다 어린 숨결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니 풀숨입니다. 입으로는 풀밥 먹으며 풀숨 맞이하고, 코와 살결로는 푸른그늘, 풀빛그늘, 풀그늘을 누리면서 풀숨 마주합니다. 4346.3.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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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숨 마시는 어린이

 


  마을 어르신들은 독재정권과 함께 찾아든 새마을운동 바람에 휩쓸린 뒤로 농약과 비료 듬뿍 쓰는 농사짓기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다. 마을에서 놀 적에는 자꾸자꾸 농약내음에 코가 맵고 재채기가 난다. 마을하고 살짝 벗어난 멧골 절집에서는 농약을 함부로 쓰지 않으니, 이곳에서만큼은 아이도 어른도 푸른숨 마실 수 있다. 아이야, 가슴도 눈길도 풀빛 그늘에서 쉬자. 4346.3.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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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숲속 푸른그늘

 


  아이들 씩씩하게 커서 두 시간 즈음 안지 않고 다닐 수 있으면, 네 식구 나란히 숲길 멧길 신나게 쏘다닐 꿈을 꾼다. 세 살 자그마한 산들보라야, 너도 네 다리힘 바지런히 키워야지. 네 누나 따라 달리고 뛰고 걷고 하면서 네 다리 올록볼록 살점 곧게 펴며 이 땅을 튼튼하게 디뎌야지. 숲속 푸른그늘 날마다 누릴 우리 삶을 기다린다. 4346.3.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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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앞에 서다

 


  퍽 깊어 발을 담그기 어려운 바닷가에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던 일을 문득 떠올립니다. 식구들은 모두 바다를 바라보았고, 바닷물과 고기잡이배와 섬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닷물 빛깔은 황해와 남해와 동해가 모두 다르고, 남녘 끝자락을 떠나 제주섬을 거쳐 일본으로 가거나 태평양으로 나아갈 적에도 모두 다릅니다. 짙게 파란 쪽빛 바닷물이 있고, 뻘흙과 모래흙이 감돌며 노르스름한 바닷물이 있으며, 바닷풀 기운 잔뜩 서린 옅푸른 바닷물이 있어요.


  하늘을 올려다볼 적에도 하늘빛이 늘 다른 줄 느낍니다. 눈부시게 파란 빛깔이 있고, 희뿌윰한 빛깔이 있으며, 짙파랑빛이 있다가는, 파르스름한 빛깔이 있습니다. 해가 막 뜨거나 곧 질 적에도 하늘빛은 새삼스럽습니다.


  하루가 흐릅니다. 아이들이 자랍니다. 나도 아이들도 하루를 새로 누립니다. 아이들은 몸과 마음과 머리가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러면 어버이인 나는? 내 몸은? 내 마음은? 내 머리는? 하는 일이 늘고, 한 일이 늘며, 할 일이 느는 나는? 읽은 책이 늘고, 읽을 책이 기다리며, 쓸 책도 늘어날 나는?


  1초조차 가만 있지 않으면서 뛰거나 구르거나 달리거나 뒹굴거나 기거나 복닥거리는 아이가 퍽 오래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을 쳐다보며 내 오늘을 곰곰이 되새깁니다. 4346.3.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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