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할아버지 보며
천천히 자랐고
할아버지는 당신 할아버지 보며
하루하루 자랐고
나는 아버지 보며
곰곰이 자란다.

 

그런데
아버지가 꽥 소리 지르면
나도 빽 소리 질러야
즐거울까.

 

아냐
아버지가 꽥 소리 질러도
나는 빙그레 웃으며
손 내밀면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며
새롭게 새삼스레
자라겠지.

 


4346.1.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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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읽는 책

 


  외국 도서관 이야기를 담은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책을 드디어 읽어 보았습니다. 2006년에 처음 나온 책을 2013년이 되어서야 읽습니다. 나는 이 책 처음 나올 적부터 살짝 못마땅했습니다. 책이름부터 일본 말투로 붙인 ‘지상의 무엇무엇’ 꼴이 못마땅하고, 도서관이라는 곳은 아름답다거나 안 아름답다고 나눌 일이 없을 텐데 싶어 못마땅했어요. 책이름을 한국말답게 붙인다면 ‘이 땅에 아름다운 도서관’이나 ‘지구별 아름다운 도서관’이나 ‘아름다운 도서관’이라 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도서관은 도서관일 뿐이에요. 한국은 한국입니다. 한국이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도 아니지만, 굳이 가장 아름다워야 하지 않아요. 한국은 한국대로 아름답고, 일본은 일본대로 아름다우며, 부탄은 부탄대로 아름답습니다. 곧, 어느 무엇을 가리킨다고 할 적에는 이렇게 금을 긋거나 저렇게 줄을 세울 까닭이 없어요. 더더구나, 책은 아름답다거나 안 아름답다고 나누어 읽지 않아요. 삶을 누리려고 읽는 책이고, 스스로 삶을 새롭게 짓는 길에 이슬떨이나 어깨동무나 길동무가 되기에 읽는 책입니다. 이러한 책 건사하는 도서관은 아주 마땅히 아름답지요. 아름다움으로 놓고 보더라도, 모든 도서관은 그 도서관대로 아름다워요. 비록 한국 도서관 거의 모두 아직까지 시험공부 하는 공부방 테두리에서 못 벗어난다 하지만, 마치 수용소 같은 열람실을 둔다 하지만, 책이 있고 책 들여다볼 자리 있어 아름다워요.


  가끔 서울마실 하노라면, 서울 한복판에 선 나무를 바라보다가 가슴이 아프고 쓰립니다. 자동차 배기가스에 시달리고, 서울사람 쓰레기에 들볶이는 나무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납니다. 나무는 나무인데, 나무다운 숨결을 건사하지 못해요. 해마다 뭉텅뭉텅 가지 잘리는 모습을 보면 더 슬프고 시립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 나무를 가리켜 ‘이 땅에 슬픈 나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나무’입니다. 서울에 가서도 ‘이렇게 나무를 만날 수 있구나, 서울에도 이렇게 나무가 있구나’ 하고 느끼며 반갑습니다. 이 나무들 아파하고 슬퍼하는 모습 느끼면서 가만히 껴안거나 어루만지지요. 나무이니까요.


  시골에서 자라는 나무라야 ‘참다운 나무’가 아닙니다. 나무는 어디에서나 나무입니다. 시골 들판에서 자라는 들꽃이어야 ‘참다운 들꽃’이 아닙니다. 서울 한복판 거님길 돌 틈 비집고 자라는 들꽃도 참말 들꽃입니다.


  아마,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책에 나오는 ‘건물 아름답다는 도서관’치고, 만화책 《나의 오늘》이나 《금색의 갓슈》나 《은빛 숟가락》을 건사하는 데는 없으리라 봅니다. 소장도서 100만 권이라느니 1000만 권이라느니 하더라도, 이 작은 만화책들 알뜰히 건사하면서 꿈과 사랑 길어올리는 ‘건물 아름답다는 도서관’ 있을까 궁금합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또는 국공립도서관에는, 또는 대학도서관에는, 또는 군립도서관이나 시립도서관에는, 이 조그맣고 ‘아름다운’ 만화책 하나 건사할까요. 이런 도서관과 저런 도서관 지키는 일꾼들은 이 자그맣고 ‘예쁜’ 만화책 하나 건사하려고 마음을 기울이거나 힘을 쏟을까요.


  나로서는 내 보금자리가 도서관입니다. 보금자리는 숲이면서 들이요 도서관입니다. 보금자리는 살가운 집이고 마을이며 별입니다. 보금자리는 사랑을 누리는 책 깃든 따사로운 쉼터입니다. 내가 좋아서 읽는 책 하나를 가슴에 품으며 내 보금자리를 돌봅니다. 내가 즐겁게 읽는 책 하나를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받아들이는 동안, 시나브로 내 눈망울 촉촉히 젖습니다. 4346.3.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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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늘 1
하시바 마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05

 


나한테 붙이는 이름
― 나의 오늘 1
 하시바 마오 글·그림,이상은 옮김
 시리얼 펴냄,2012.11.25./7000원

 


  작은아이가 낮잠에서 깨자마자 배고프다 울어대기에 가슴으로 폭 안아서 부엌으로 데려갑니다. 그래그래, 배고파서 깼지?


  낮잠에서 깨면 바로 배고프다 할 듯해서 아이가 일어날 즈음을 어림해 밥을 새로 끓이고 국도 새로 끓이며 고등어 한 마리를 굽습니다. 작은아이가 낮잠을 퍽 길게 자기에 큰아이를 먼저 먹인 다음, 작은아이 곁에서 함께 자고 일어난 옆지기더러 밥 먹으라 합니다. 그러고 한참 뒤 작은아이가 퍼뜩 깨더니 울기부터 합니다.


  우는 작은아이 입에 물고기 한 점 넣으니 울음 뚝 그칩니다. 잡곡밥 씹어서 한 숟가락 주니 허둥지둥 먹습니다. 물고기와 국과 반찬과 밥을 아주 바쁘게 집어넣습니다. 곁눈 한 번 안 팔고 아주 빨리 밥 한 그릇 비웁니다. 그러고도 조금 모자란지 밥상에 붙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밥을 더 씹어서 아이한테 주고, 물고기도 더 덜어 살점을 발라 줍니다.


  되게 배고팠나 보네 하고 생각하다가 빙그레 웃습니다. 아이들은 배고프면 그야말로 말없이 아주 빠르게 밥그릇 비웁니다. 게다가 아주 깨끗이 비우지요. 고픈 배를 넉넉히 채우면 다른 주전부리 없어도 됩니다. 그리고 배부르며 즐거우면, 저희끼리 신나게 잘 놀아요. 밥상 치우고 설거지 하면서 한숨 돌립니다. 이제 네 아버지는 살짝 쉬면서 책 조금 읽어도 되지?


- ‘가끔 나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다.’ (7쪽)
- “몰두하는 게 좋아.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거나, 물건을 만들거나, 뭔가에 집중하고 있으면 주위로부터 차단돼서, 그 세계만 눈에 들어오는 게 즐거워.” (16쪽)

 

 


  밥때를 맞추고 밥을 먹이며 밥상을 치우는 일은 번거롭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즐겁게 먹을 밥이라 여기면서 하나하나 생각하면 즐겁습니다. 무엇을 먹어 내 몸 살찌우고 돌볼까 하고 헤아리면, 밥하기와 밥상차리기는 기쁜 살림이 됩니다. 같은 국을 끓여도 그때그때 양념이나 건더기를 달리합니다. 어느 날은 다시마 불려서 끓이고, 어느 날은 무를 조금 더 넣습니다. 어느 날은 된장을 조금 풀고, 어느 날은 감자를 굵게 썰어 함께 끓입니다.


  감자국을 끓이면서도 감자볶음을 할 때가 있습니다. 콩나물이나 숙주나물 넣은 국을 끓이면서도 콩나물무침이나 숙주나물버무리를 할 때가 있습니다. 말랑두부국을 끓이면서 두부 반 모 함께 끓여 밥상에 올리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보면 좀 바보스러운 밥차림이로구나 싶은데, 바보스럽더라도 맛있게 즐기면 좋은 끼니가 되리라 느낍니다. 마른멸치 함께 올리고, 집과 들에서 뜯은 풀 나란히 올리며, 곤약도 삶아 송송 썰어 올립니다. 느긋하게 밥을 차리는 날에는 들풀 넣은 달걀말이를 하고, 메추리알이나 달걀을 삶아서 살짝 내놓기도 합니다.


- ‘난 그저 주위를 의식하고, 주위에 맞추고, 자신의 나약함을 미소로 얼버무릴 뿐. 그래서 정작 중요한 순간에 아무 말도 못 해. 그런 내 자신이 가끔 싫어질 때가 있어.’ (25∼26쪽)
- ‘그때부터 난 이리우마를 좋아했는지도 몰라. 사랑이 아닐까? 갈피를 못 잡던 마음에 이름이 생기자, 갑자기 내 자신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51쪽)


  만두를 손수 빚으면 더 맛있지만, 가게에서 사다 먹으며 즐겁게 누려도 맛있습니다. 양배추랑 양상추를 썰고 소세지도 가늘게 썬 다음 섞어서 먹어도 맛있습니다. 때로는 물고기묵을 가늘게 썰어 섞습니다. 때로는 양배추랑 양상추랑 무만 썰어서 섞습니다. 아침에 먹고 남으면 저녁에 더 먹고, 저녁에도 남으면 이듬날 볶음 한 가지를 하면서 함께 지지거 볶습니다.


  찬밥 남으면 볶음밥 해도 되지요. 뭔가 새로운 볶음밥 있을까 헤아리면서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합니다. 달걀밥을 할 수 있고. 치즈밥을 할 수 있습니다. 달걀을 부치고 나서, 넓적하고 네모난 빵에 밥이랑 달걀이랑 풀이랑 얹어서 먹어도 됩니다. 이렇게 먹어도 되지만, 저렇게 먹어도 돼요. 밥상머리에서 즐겁게 웃으며 먹을 여러 가지를 떠올리면 됩니다.


  굳이 집일을 남녀평등이라든지 가사분담이라는 이름 붙여 갈라야 하지 않다고 느껴요. 서로 스스로 좋아서 할 때에 비로소 집일이라고 느껴요. 저마다 스스로 즐겁게 웃으며 하면 집일은 집살림 되고, 집살림은 집사랑 되겠지요. 그러니까, 집일, 집살림, 집사랑, 집삶, 이렇게 차근차근 흘러요. 겉보기로는 일이지만, 속보기로는 살림입니다. 살림은 사랑으로 일굽니다. 사랑은 삶이 됩니다.


  빨래를 하고 비질과 걸레질 하는 모든 일거리는 시나브로 살림과 사랑과 삶으로 거듭나요. 마음 쓰기에 따라 달라지고, 생각 기울이기에 따라 바뀌어요.

 

 


- “보답을 바란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좋아할 뿐이야.” (73쪽)
- ‘우메타니를 좋아하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리였다. 문제는 우메타니가 아닌 나. 나는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츠바키만 생각했다.’ (88∼89쪽)


  하시바 마오 님 만화책 《나의 오늘》(시리얼,2012) 첫째 권 읽으며 곰곰이 돌아봅니다. 그저 좋아하는 삶입니다. 그저 즐기는 하루입니다.


  어떤 이름이 붙지 않아도 되는 삶입니다. 어떤 이름으로 금을 그을 까닭 없는 사랑입니다.


  이렇게 해야 사랑이 되지 않아요. 저렇게 해야 육아나 교육이나 문화나 복지가 되지 않아요. 그렇게 해야 예술이지 않겠지요.


  삶이면 되고, 살림이면 넉넉하며, 사랑이면 아름답습니다.


- ‘나도 내 머리 정도는 스스로 묶을 줄 알아야겠다. 나오는 정말 귀여워.’ (115쪽)
- ‘미안해, 아빠. 내 긴 머리를 좋아했는데. 12년간 계속 묶어 줬는데. 하지만 이제 똑같은 리본도, 댕기머리도, 나도, 전부 다 싫증이 났어.’ (134∼135쪽)


  내가 누리는 삶이 곧 내가 나한테 붙이는 이름입니다. 내가 나한테 붙이는 이름이 바로 내가 누리는 삶입니다. 나는 나한테 ‘함께살기’라는 이름을 붙여 주는데, 능금나무라든지 살구나무라든지, 집숲이라든지 보금자리숲이라든지, 딸기꽃이라든지 봄꽃이라든지, 햇살이라든지 여름햇살이라든지, 바람내음이라든지 바람결이라든지, 시골살이라든지 시골마실이라든지, 이런 이름 저런 이름 그때그때 되새기면서 하나둘 붙이곤 합니다. 참말 이런 이름처럼 내 하루가 달라지거든요. 참으로 저런 이름대로 내 삶이 흘러요.


  그래서 ‘매니아’라든지 ‘광’이라 붙이는 이름, 또는 ‘책벌레’ 같은 이름이 달갑지 않아요. ‘즐김이’라는 이름이 보드랍고, ‘살림꾼’이나 ‘살림이’ 같은 이름이 따사롭습니다. ‘육아 전담’이나 ‘가사 전담’ 같은 이름도 내키지 않아요. 즐거이 누리는 삶이고, 기쁘게 맞이하는 하루입니다. ‘여행’이나 ‘투어’나 ‘순례’나 ‘답사’ 같은 이름이 하나도 안 즐거워요. 나는 ‘마실’이나 ‘나들이’라는 이름을 좋아합니다.


  밥을 먹으며 살아가기에 밥을 짓습니다. 아이들과 얼크러져 살아가기에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책을 곁에 두고 살아가기에 책을 사랑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시골자락 아끼고 보듬는 길을 찾습니다. 내 이름은 내 삶입니다. 4346.3.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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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3.8.
 : 샛자전거 붙이기

 


- 샛자전거를 붙이기로 한다. 아무래도 큰아이와 작은아이를 수레에 나란히 태우기에는 너무 좁다. 둘 다 버겁다. 큰아이는 곧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하겠구나 싶어, 큰아이가 혼자 자전거 다니는 삶에 익숙할 수 있게끔 ‘연습’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한다. 좋은 이웃한테서 얻은 외발 샛자전거를 내 자전거 뒤에 붙인다. 처음 이 샛자전거를 받을 적에는 큰아이 키보다 많이 컸지만, 이제는 발끝이 닿는다. 아니, 발판에 발을 올려놓고 다닐 만하다. 안장을 낮추고 손잡이도 내리니 이만큼 된다. 큰아이가 앞으로 십 센티미터쯤 더 크면 아버지 뒤에서 함께 발판을 구를 수 있겠지. 큰아이가 샛자전거 발판을 구르며 함께 달려 준다면 한결 수월하게 수레를 끌 수 있을 테고.

 

- 샛자전거이지만, 튼튼해야 하는 만큼 무게가 제법 나간다. 내 자전거와 샛자전거에다가 수레를 붙이니 참말 묵직하다. 그래도 뭐, 잘 달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힘은 더 들 테지만, 잘 달리리라 생각한다.

 

- 처음 수레를 붙이고 달리던 일을 떠올린다. 그때에는 수레 무게라든지 여러모로 낯설어서 퍽 고되었지만, 얼마 안 지나 익숙하게 달렸다. 이제는 수레 안 붙이는 자전거가 외려 안 익숙하기도 하다. 내 자전거 발구르기는 수레 붙인 흐름에 맞추어 굳었다고 할 만하다. 아주 가끔 수레를 떼고 홀몸으로 자전거를 달리고 보면, 자전거질이 너무 가볍다고 할까. 거의 날듯이 자전거질을 한달까.

 

- 도서관에 들러 책을 가져오려 하는 동안 큰아이가 자전거를 붙잡아 준다. 착하고 씩씩하며 대견하다. 작은아이는 곧 잠든다. 작은아이는 느긋하게 잘 잔다. 큰아이는 아아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좋아한다. 쉬지 않고 조잘조잘 쫑알쫑알 떠든다. 수레에 앉을 때하고, 샛자전거에 앉아 달릴 때에는 사뭇 다르지. 쐬는 바람이 다르고, 바라보는 둘레 모습이 다르다.

 

- 우체국까지 샛자전거 끌고 다녀온다. 다른 때보다 땀이 더 난다. 작은아이는 집에 닿으니 잠에서 깬다. 더 자도 될 텐데. 자전거 바람넣개를 들고 논다. 재미있니? 큰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제 자전거를 타며 마당에서 논다. 샛자전거와 수레 붙인 자전거를 집 한쪽 벽에 기댄다.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가니까, 이렇게 샛자전거랑 수레 붙인 채 고이 둘 수 있구나. 좋다. 참 좋다. 몸이 뻑적지근하지만 다 좋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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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3.15.
 : 풀 뜯는 자전거

 


- 봄을 맞이한 시골에서는 풀 뜯는 재미가 한창이다. 집에서도 집 둘레에서도 마을에서도 온갖 풀이 돋으며 비로소 살 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봄이란 모든 숨결 푸르고 싱그럽게 깨어나면서 아름답다. 면소재지 우체국 다녀오는 길에 풀을 뜯고, 아이들과 함께 집 언저리에서 풀을 뜯는다. 네 식구 다 먹지 못할 만큼 풀이 많이 자란다. 밭자락에 따로 푸성귀를 심지 않아도 갖가지 풀이 골고루 자란다. 자운영은 우리 집에서는 안 자라기에, 자전거마실 다녀오는 길에 잔뜩 뜯는다. 유채잎도 뜯고 갓잎도 뜯는다. 갓잎은 우리 집에도 많아 예쁘게 생긴 잎만 조금 뜯는다.

 

- 풀을 뜯다 보면 손에 풀내음 짙게 밴다. 갓 뜯은 풀을 입에 넣어 살살 씹으면, 혀끝에서 사르르 녹는다. 꽃봉오리도 먹고 몽우리도 먹는다. 꽃을 먹으며 꽃내음과 꽃숨이 내 몸으로 스민다. 꽃을 먹을 적에는 스스로 꽃과 같은 넋과 얼이 되자고 생각한다. 아이들한테 꽃을 줄 적에는 아이들 마음마다 새삼스러운 봄꽃 기운 살아나리라 생각한다. 큰아이는 스스로 씹어서 먹고, 작은아이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밥과 함께 씹어서 먹인다.

 

- 풀을 먹고 보면 사람으로서 굳이 다른 어떤 것을 더 먹어야 하지 않으리라 느낀다. 다만, 겨울에는 풀을 먹지 못하니까, 옛날 사람들은 이 좋은 풀들을 잘 건사해서 겨울나기를 했겠지. 겨울나기를 할 만한 뿌리푸성귀를 골고루 심어 흙땅에 묻으며 지냈겠지. 봄부터 가을까지는 냉장고 없어도 그날그날 풀을 뜯어 그날그날 먹으며 몸을 살찌웠겠지. 도시에서 제아무리 유기농 푸성귀를 사다가 먹는다 하더라도, 시골에서 집과 마을 둘레에서 스스로 돋는 풀을 뜯어서 먹는 만큼 되기는 어렵다고 올봄에도 다시금 느낀다. 참말 누구나 시골에서 살림을 꾸리면 먹을거리 걱정 없을 텐데. 돈버는 근심이 있다 하지만, 돈을 벌어 먹을거리 장만하는 흐름인 줄 깨달으면, 애써 돈벌이에 근심하기보다 즐겁게 삶을 누리며 먹는 밥을 살피고 지키면 한결 즐거우리라 느낀다.

 

- 작은자전거 바구니에 풀을 뜯어 담는다. 이내 바구니가 넘친다. 등에 멘 가방으로 옮긴다. 한 꾸러미 된다. 시간을 보니 풀 뜯는다며 삼십 분 훌쩍 지나갔다. 와, 시간도 잘 가고 즐거운 놀이가 되는 풀뜯기이네. 내 좋은 이웃들 모두 풀 뜯는 기쁨과 웃음 실컷 누릴 수 있기를 빈다. 마을 어르신들 농약하고 조금씩 헤어지면서 논둑 밭둑 어디에서나 풀 마음껏 뜯을 수 있기를 빈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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