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그친 하늘 책읽기

 


  비바람 몰아치며 마당에 있는 살림살이 이리 날리거 저리 굴린 끝에 새벽녘 빗줄기 가라앉고 바람 잠잔다. 햇살은 구름 사이사이 고개를 내밀다가 숨는다. 흰빛, 잿빛, 허여물그스름한 빛, 온갖 빛깔 구름이 갖은 모습으로 섞여 흐른다. 봄하늘 파란 빛깔하고 사뭇 다른 새로운 파란 빛깔로 하늘이 열린다.


  저 하늘은 어떤 마음일까. 저 하늘은 어떤 마음이 나타난 모습일까. 누군가 비바람 그친 하늘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으리라. 누군가 비바람 그친 하늘을 가슴으로 담고 마음으로 새기리라. 아기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고, 꽃봉오리 터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든 꽃봉오리 터지든 열매가 맺든 옆지기가 웃든, 그예 가슴속으로 고이고이 아로새기면서 이야기 한 타래 길어올리는 사람이 있다. 책은 우리 둘레 어디에나 있어, 우리는 언제나 숱한 삶말 누린다. 4346.3.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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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사진 만지며 놀기

 


  누나가 작은 사진첩에 사진을 꽂는다. 동생은 누나가 끼운 사진첩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들여다본다. 너희 누나는 사진첩 몇 박살내면서 사진을 뺐다가 넣다가 하며 스스로 사진놀이를 했단다. 그래서 너희 누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사진을 퍽 잘 다루고, 곱게 건사하지. 너도 누나 하는 양 가만히 지켜보면서 사진과 사진첩 곱게 다루어 주렴. 4346.3.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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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17 22:40   좋아요 0 | URL
사름벼리의 예쁜 발..^^
그런데 사름벼리 왼손 두 번째 손가락이 왜 빨갛게 됐을까요~^^ 이궁,
산들보라의 앉은 모양과 발이 의젓해요~~^^

파란놀 2013-03-18 08:50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맨발 맨손으로 시멘트마당이나 동네길에서 놀고 흙 만지고 하느라
늘 이렇습니다 ^^;;;
붓다가 가라앉고 또 붓다가 가라앉고 ^^;;
시멘트란 참 아주 나쁘지요...
 

 

 

 

도화사람 마실 다니기 (13.3.2.)
고흥 길타래 5―올봄·지난봄 들마실

 


  고흥 도화면 동백마을에서 살아가는 우리 네 식구는 지난 2011년 가을부터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2011년 8월에 집 자리와 도서관 자리를 살피러 고흥마실을 처음 했고, 9월에 마음을 굳힌 다음, 10월에 살림집 계약을 하고서, 11월에 도서관으로 쓸 흥양초등학교 건물 넉 칸 빌려서, 고흥에 갓 뿌리를 내렸어요.


  많이 어린 두 아이하고 부대끼는 삶이라 다른 시골이웃처럼 알뜰살뜰 집살림을 건사하지 못합니다. 도서관 또한 제대로 열지 못합니다. 그러나, 집과 도서관 모두 천천히 뿌리를 내리며 튼튼하게 줄기를 올려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리라 생각해요. 새봄을 맞이해 들일·밭일 바쁠 나날이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마을부터 제대로 돌아보고 즐겁게 누리며 반갑게 걷자고 마음을 먹습니다. 시골에서 일구는 삶이란, 느긋하고 넉넉하며 아름답게 삶을 누리자는 뜻이 될 텐데, 아이들이 고운 봄볕 흐드러지게 쬐면서 들길 걷는 일에도 마음을 기울이며 재미있게 놀자고 생각합니다.


  볕 좋은 한낮, 자전거를 끌고 나옵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웁니다. 이웃마을에는 봄볕이 얼마나 드리우는가를 돌아보기로 합니다. 여섯 살 세 살 아이와 거닐면 면소재지까지 오갈 수 있고, 천등산 언저리까지 다녀올 수 있는데, 자전거수레를 몰면 한두 시간 길을 둘러볼 수 있어요.

 

 

 


  동백마을부터 달리는 자전거는 동호덕마을과 도화면 소재지를 지나 서오치마을에 이릅니다. 도화면 장날이 예전에는 무척 컸다 하는데, 이제 예전 모습은 찾아볼 길 없습니다. 참말 많은 사람들이 복닥거리며 서로 아끼고 돕는 시골살이 이루던 지난날이었겠지요.


  볕 아주 잘 드는 길가에 있는 시골집 동백나무 소담스레 벌어집니다. 참 빨리 피어나는군요. 그만큼 볕이 좋다는 뜻이요, 볕이 좋은 만큼 다른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도 잘 익는다는 뜻일 테지요.


  전봇대에 챙 넓은 모자 하나 있습니다. 들일 하는 할머니가 이곳에 모자를 꽂으시는 듯합니다. 전봇대에 끈 하나 묶으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겠어요.


  예전에는 길가 가게였음직한 살림집 앞을 지납니다. 유리창에 빛바랜 자국으로 남은 ‘담배’ 종이를 보고 알아챕니다. 이 언저리에서 군내버스를 기다렸을까요. 마을 분들 들일 하다가 이곳에서 담배도 사고 막걸리도 샀을까요. 간장도 사고 조미료도 사고 소금도 사고 과자도 사고 라면도 사고 했을까요.

 

 

 


  지등마을 어귀에 나무 한 그루 섭니다. 아직 그리 큰 나무는 아닙니다. 앞으로 쉰 해를 더 살고 백 해를 더 살면, 이 나무 한 그루 지등마을 밝히는 우람한 나무 되겠지요. 이백 해 더 살고 사백 해 더 살면, 지등마을 지키는 씩씩한 나무 될 테지요. 큰아이하고 나뭇줄기를 쓰다듬고 어루만집니다. 나뭇줄기에 귀와 손바닥을 대고 나무 숨소리 듣습니다.


  지등마을 어귀에는 이곳에 있는 시설을 살펴 적바림한 자국이 아직 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에 이런저런 시설을 살펴 숫자를 적바림했을까요. 우물이 몇이요 가게가 몇이며 주민 숫자 몇이라는 대목을 이렇게 마을 어귀에 적도록 시킨 사람은 누구일까요. ‘무슨무슨 지도자 아무개’와 ‘담당공무원 아무개’ 자국은 아직 햇볕에 바래지 않습니다.


  아이들 태운 자전거를 천천히 몹니다. 겨울바람처럼 드세지 않고 차갑지 않지만, 바람이 제법 붑니다. 자전거를 몰며 마을 한 바퀴 빙 돌아봅니다. 봄햇살 포근히 내려앉는 시골길을 천천히 달립니다. 봄햇살 먹는 들풀은 푸릇푸릇 돋고, 길가에서 자라는 후박나무도 새 잎을 틔우며 꽃봉오리 맺으려고 부산합니다.


  지등마을에서 이목동마을 사이는 오르내리막. 이목동마을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고, 지등마을로 가는 길은 오르막입니다. 자동차로 달리면 오르막도 내리막도 모르겠지요. 자전거로 달릴 때에 비로소 길이 어떠한가 하고 깨닫습니다. 지등마을에는 붉은벽돌로 쌓은 버스터 있고, 이목동마을에는 군에서 새로 지어서 놓은 듯한 버스터 있습니다. 햇살과 빗물 가릴 지붕 있고, 옆과 뒤는 유리로 막음하니, 버스 오가거나 사람들 오가는 모습 살피기에 괜찮겠구나 싶습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버스터 건물 짓기 앞서까지는 아무 푯말 없이 ‘이쯤에서 버스 서고 지나가고’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도 줄기 한쪽에서 새 가지가 나오곤 합니다. 이런 새 가지를 가지치기 하라고도 하지만, 모두 쳐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옆줄기에서 돋은 작은 가지 하나 쉰 해나 백 해쯤 지나면 굵고 튼튼하게 자라, 쉰 해나 백 해 뒤 태어나 뛰놀 아이들이 나무타기를 하며 놀 수 있으리라 느껴요. 사람들은 소나무 가지를 뭉텅뭉텅 잘라 우듬지만 달랑 남기곤 하는데, 나무젓가락 박듯 나뭇가지 모두 치는 일은 나무한테도 사람한테도 안 좋으리라 느낍니다.


  이목동 세거리에서 원도동 쪽으로 꺾어 구암 바닷가를 빙 돌아볼까 하다가 작은아이 새근새근 자고 큰아이도 퍽 졸린 듯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박문터를 지나, 시루봉과 유주산 사이, 사동마을 가는 푯말 있어 이쪽으로 올라갈까 하며 자전거를 끌고 가는데 퍽 가파릅니다. 자전거를 달리지 못하고 내립니다. 땀 뻘뻘 흘리며 수레를 끕니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안 보인다 싶은데, 왼쪽 벼랑 따라 쓰레기 많습니다. 누가 어디에서 왜 여기까지 와서 쓰레기를 버렸을까요. 형광등과 빈 푸대뿐 아니라, 헌 텔레비전까지 있습니다. 술병은 너무 흔한 쓰레기입니다. 멧비탈에 쓰레기를 버리면 이 쓰레기는 누가 치울까요. 이 쓰레기는 어찌 될까요. 쓰레기로 덮인 비탈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시사람이 고흥으로 왔다가 쓰레기를 버렸을까요. 이 둘레 마을 분들이 버린 쓰레기일까요. 아니면, 이 마을에서 좀 먼 다른 마을에서 자동차 몰고 여기까지 와서 쓰레기를 버렸을까요.

 

 


  사동마을까지 가지 못하겠다 싶어, 자전거를 돌립니다. 비탈길을 천천히 내려옵니다. 다시 서오치마을로 들어섭니다. 서오치마을 굵은 팽나무 옆을 지나갑니다. 비탈길에서 작은아이가 잠에서 깼기에 팽나무 곁에서 살짝 쉬었다 갈까 싶었는데, 팽나무를 빙 둘러 울타리를 세웠군요. 이 팽나무는 아무나 찾아가서 누릴 수 없는 듯합니다. 푸른 빛깔 쇠울타리에는 이 마을 아무개가 서울에 있는 ㅅ대학교에 붙은 일을 기리는 걸개천 하나 붙습니다.


  면소재지 가로질러 도화냇물 따라 신호리로 접어듭니다. 누르스름한 빛깔 고운 들길을 달립니다. 논둑 한쪽에 포기를 이루는 유채풀을 봅니다. 햇살은 따사롭게 내리쬡니다. 아이들은 수레에서 하품을 합니다. 자, 집으로 돌아가서 마당에서 신나게 뛰며 놀자.

 

 

 

 * * *


  지난 2012년 3월 언저리에는 들마실 어떻게 즐겼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지난해에는 작은아이가 아직 잘 걷지 못해, 옆지기와 내가 작은아이를 서로 업거나 안으며 큰아이는 걸리면서 걸어다녔습니다. 동호덕마을 마늘밭 사이를 지나가고, 서호덕마을 자작나무를 구경했습니다. 도화냇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어요. 도화냇물에 시멘트 붓고 큰돌 쏟으면서 물고기가 아주 많이 사라진 듯합니다. 왜 냇바닥을 시멘트로 메꾸면서 물고기 삶터를 없애거나 망가뜨려야 할까요. 물고기를 몽땅 죽이면서 수십 억 들이는 ‘냇바닥 공사’는 누구한테 이바지하는 일이 될까요.


  우리 식구는 시멘트로 안 덮은 논둑이 있는 데를 찾아서 걷고 싶었습니다. 이제 고흥군에서 시멘트 안 덮은 논둑은 아주 드뭅니다. 경운기 다니기 좋도록 논둑을 시멘트로 덮고, 잡풀 자라지 말라면서 논둑이랑 밭둑 모두 시멘트로 덮으려 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간다지만, 흙땅이나 풀밭 밟고 거닐기란 퍽 힘들어요.

 

 

 

 


  집에서 면소재지까지 두 다리로 걸어서 나들이를 하던 어느 날, 면소재지에서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웃마을 할매를 만납니다. 할매는 머리에 짐보퉁이 이고 지팡이 짚으며 씩씩하게 걸으셨어요. 면소재지에서 우리 마을이나 옆마을까지는 1100원이면 되는데, 할머니는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갑니다. 이렇게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가면, 들바람 먹고 들새 노래 마시며 봄볕 한껏 즐길 수 있어요.


  도화초등학교는 운동장이 흙바닥입니다. 가짜 잔디 안 깔아 참 반갑습니다. 깔려면 진짜 잔디를 깔아야지, 플라스틱 호르몬 뭉치라 할 인조 잔디 까는 일은 아이들한테 못할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집부터 도화초등학교까지 걸어서 나들이를 하며 이것저것 타며 놉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들길에서는 막 피어나는 유채꽃을 봅니다. 논을 그득 채운 자운영 풀밭을 바라봅니다. 먹음직스러운 싱그러운 풀을 뜯고, 바람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습니다.


  일찍 핀 동백꽃은 일찍 떨어집니다. 늦게 피는 동백꽃은 늦게까지 붉은 빛깔 베풉니다. 냉이꽃이랑 들쑥갓꽃 어우러진 마을회관 앞자락 작은 꽃밭은 한창 봄물결입니다. 봄을 먹는 봄마실입니다. 4346.3.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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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17 23:21   좋아요 0 | URL
검정 비닐봉투를 머리에 이신 할머님과, 옆지기님과 사름벼리와 산들보라의 사진이 넘 좋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렇게 활짝 핀 동백꽃을 본 적이 없어요. ^^;;;

파란놀 2013-03-18 08:49   좋아요 0 | URL
비닐봉투는 아니고 보따리예요. 서울 언저리에서는 동백나무 보기 힘들지요.
전라남도 경상남도 바닷가 쪽 마을에서는 장미 저리 가라 할.. 참말 그런데, 온갖 동백꽃이 골고루 핀답니다. 분홍빛 동백꽃도 있어요. 참말 깜짝 놀랄 만한 어여쁜 동백꽃이 골골샅샅 피고 진답니다.

올해에는 동백꽃튀김을 한 번 해 볼 생각이에요 ^^;;;

appletreeje 2013-03-18 10:38   좋아요 0 | URL
앗, 보따리군요 ^^;;
그런데 동백꽃튀김의 맛은 어떠할까요~??
생각만 해도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
 

봄햇살

 


눈이 내려 쌓입니다.
냇물에 논바닥에 지붕에
하얗게 눈밭 이룹니다.
숲에 내린 눈은
손으로 떠서 먹고
찻길에 내린 눈은
자동차 밟아 시커멓습니다.

 

눈이 녹으며
봄까지꽃 광대나물 별꽃
하나씩 둘씩 돋아
푸른 잎사귀
퍼집니다.

 

봄풀에는
봄내음과 봄맛과
봄바람과 봄빛이
어립니다.

 

햇살은
눈에 나무에 풀에 꽃에
또 내 살결에
골고루 드리웁니다.

 


4346.2.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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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3-17 14:44   좋아요 0 | URL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 봄햇살이라고 여기며 며칠 전 걸었답니다.

파란놀 2013-03-17 15:47   좋아요 0 | URL
좋은 선물 듬뿍 받으셨겠어요
 

책은 몇 사람이 읽어야 할까
[헌책방에서 책읽기 2] 오태석 외 연극인 10인, 《무대 밖의 모놀로그》(고려원,1978)

 


  연극하는 사람들이 연극 아닌 글로 이야기를 풀어 보인다. 왜 연극 아닌 글로 당신 이야기를 펼쳐 보일까. 연극으로는 성이 차지 않을까. 연극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이야기 있기에 따로 글을 쓸까.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춤을 춘다. 춤을 추던 사람이 꽃씨를 심는다. 꽃씨를 심던 사람이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던 사람이 시를 쓴다. 시를 쓰던 사람이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아이를 낳는다. 아이를 낳던 사람이 밥을 짓는다. 밥을 짓던 사람이 글을 쓴다. 글을 쓰던 사람이 노래를 부른다.


  삶은 실타래 되어 하나둘 이어진다. 연극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글과 연극이 만나는 대목 있다고 여겨, 새롭게 연극을 하듯 글을 썼겠지. 헌책방 책시렁에서 마주한 책 《무대 밖의 모놀로그》(고려원,1978)를 읽는다. 이 책도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졌지만, 고려원이라는 출판사도 새책방 언저리에서 사라졌다. 연극하는 전무송 님 옆지기는 이녁한테 “나는 연극배우와 결혼했지, 장사꾼하고 결혼한 것이 아니에요(148쪽).” 하고 말했단다. 문득 내 옆지기를 생각한다. 내 옆지기는 어떤 사람하고 짝을 지어 시골집에서 살아갈까. 하루를 바칠 아름다운 집숲이나 밭뙈기 따로 없고, 그저 시골이기만 이 집에서 어떤 마음 되어 나와 아이들하고 하루를 부대낄까.


  연극하는 손숙 님은 “이 연극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바로 시였고 가슴을 치는 감동이었다(205쪽).” 하고 말한다. 그렇구나. 연극으로 읊는 말이 시였기에 시와 같은 글을 쓰겠지. 시와 같은 연극이기에 시와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시와 같은 춤을 추며, 시와 같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하루를 보내겠지.


  누군가 《무대 밖의 모놀로그》를 애틋하게 여겨, 2013년에 새롭게 내놓을 수 있으리라. 어쩌면 2058년쯤 이 책이 다시 태어날는지 모른다. 그러나 2100년이 되거나 2300년이 되어도 이 책은 다시 태어날 일 없을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책 될 수 있고, 헌책방 다니다 보면 이럭저럭 만날 만한 책이 될 수 있다. 반가이 맞아들일 책손이 십만이나 백만쯤 될 수 있고, 살가이 알아보는 책손이 한둘이나 열 몇쯤에서 그칠 수 있다.


  책은 몇 사람이 읽어 주어야 할까. 책은 어떻게 곰삭혀야 아름다울까. 책은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씨앗 남길까. 책은 우리 보금자리에 어떻게 스며드는 이야기밭이 될까. 무대 안에서 꿈을 노래하고 사랑을 속삭이던 열 사람 삶자락 조곤조곤 묻어난 묵은 헌책 하나 쓰다듬는다. 4346.3.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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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3-17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78년것이면 아주 오래된 책이네요. 저도 이렇게 오래된 책 있는데, 읽은 책이라도 없애지 못하겠더라고요. 색깔이 변해도 낡아도 그런 대로 좋더라고요.
신간은 신간대로, 이런 책은 이런 대로 귀하게 여깁니다, 저도요...^^

파란놀 2013-03-17 15:46   좋아요 0 | URL
음, 1978년이면... 그렇게까지 오래된 책은 아니지만, 고려원에서 낸 책들은 참 많이 애틋해요

appletreeje 2013-03-17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 연극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바로 시였고 가슴을 치는 감동이었다."
왠지 알 것 같아요.
삼일로창고극장에서 보았던 추송웅님의 '빨간 피터의 고백'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좋은 밤 되세요.*^^*

파란놀 2013-03-18 08:47   좋아요 0 | URL
극장에서 연극을 보셨군요.
가끔,
추송웅 님 연극 보신 분을 뵙는데,
다들 아주 좋았다고 하시더군요.
영화로도 사진으로도 거의 남지 않아
요즈음 사람들은(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했을까를 알 길 없지만,
추송웅 님 스스로 남긴 자료와 사진을 보면
참 대단했겠구나 싶어요.

서태지가 데뷔할 때 전영록이 퉁 던진 말을 본 사람들,
또 서태지가 갓 텔레비전에 나올 때에 본 사람들... 하고
쉬 견주기 어려울 테지만,
때때로 그런 생각이 들곤 해요.
요즈음 아이들이 서태지가 어떤 노래꾼이었는지 알기는 알까??? 하고...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