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잔치

 


  이제 자운영꽃을 본다. 한참 자운영풀 뜯어서 먹으며 자운영꽃 언제 보려나 기다렸더니, 유채꽃 논둑마다 노랗게 피어나고 난 요즈음 자운영꽃 하나둘 고개를 내민다. 진작부터 피어난 냉이꽃 곁에 봄까지꽃 있고, 옆에는 코딱지나물꽃(광대나물꽃) 있으며, 유채꽃에다가 자운영꽃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봄꽃잔치를 이룬다. 이 봄꽃 가운데 사람이 씨를 심은 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들풀 스스로 씨앗을 맺고 흩뿌리면서 이듬해 봄을 한껏 밝힌다. 스스로 뿌리내려 자라난 들풀은 모두 들나물이 된다. 들나물은 들밥이 되고, 들밥은 들사람 들넋 북돋우는 들숨결 된다.


  다 다른 들꽃이 얼크러지면서 봄내음 퍼뜨린다. 다 다른 들꽃이 어울리면서 봄꽃잔치 펼친다. 우리들 사람도 서로서로 다른 꿈과 사랑을 나누면서 고운 살내음 퍼뜨리리라.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빛과 넋으로 어깨동무하면서 살가운 빛잔치와 꿈잔치와 사랑잔치 이루리라. 4346.3.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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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책시렁

 


  서울 독립문 영천시장 한쪽에 헌책방 〈골목책방〉이 있다. 따로 간판이 없이 헌책을 사고파는 이곳은 1971년부터 2013년 오늘까지 씩씩하게 헌책방 살림을 꾸린다. 책이 잘 팔리건 책이 안 팔리건, 날마다 새로운 헌책을 들인다. 이곳에서 들여놓는 책을 사려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 여러 소매 헌책방에서 꾸준하게 찾아온다. 〈골목책방〉은 도매 헌책방이다. 책 좋아하는 어떤 분은 아침과 낮과 저녁 세 차례에 걸쳐 책을 사러 이곳에 들르기도 한다. 그만큼 〈골목책방〉 일꾼은 바지런히 새 헌책을 장만해서 갖다 놓는다.


  요 몇 해 사이, 인터넷책방 〈알라딘〉이 〈알라딘중고샵 오프매장〉을 전국 곳곳에 연다. 헌책방을 다닌 적 없는 사람들이 〈알라딘중고샵 오프매장〉을 다니면서, 마치 ‘헌책방을 다니기’라도 하는 듯 생각하기도 할 텐데, 〈알라딘중고샵 오프매장〉은 이름 그대로 ‘중고샵’이지 ‘헌책방’이 아니다. 인터넷책방 〈알라딘〉 스스로 당신들은 ‘헌책방하고 다르다’ 하고 생각하며 다른 이름을 붙이려 했으리라 느낀다. 그래, 알라딘중고샵은 ‘중고샵’이지 ‘헌책방’이 아니요, 헌책방일 수 없다. 그러나, 퍽 많은 이들은 헌책방 아닌 중고샵을 드나들거나 인터넷을 켜서 이곳에서 책을 사며 ‘헌책방 나들이’라도 한 듯 잘못 생각하곤 한다.


  똑똑히 알아야 하는데, ‘헌책’을 샀대서 ‘헌책방 나들이’를 했다고 말할 수 없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헌책’을 샀더라도, 헌책을 샀을 뿐이지, 헌책방 나들이를 하지는 않은 셈이다. 헌책방에 가서 헌책을 사거나 고를 때에, 비로소 헌책방 나들이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너무 마땅한 노릇 아닌가. 집밥하고 식당밥은 다르다. 식당밥을 먹고서는 집밥을 먹었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돈을 쏟아부어 시멘트로 때려짓고는 수돗물 흐르게 하는 청계천에서 놀았다 해서 ‘냇가 놀이’라든지 ‘물놀이’를 했다 말할 수 있을까. 가재도 게도 다슬기도 개똥벌레도 개구리도 살 수 없는 청계천을 어떻게 ‘냇물’이나 ‘냇가’라 할 수 있겠는가. ‘공원’이라고는 할 수 있을 테고, 세월이 흘러 ‘시멘트 수돗물 공원’에 흙이 조금씩 쌓여 물고기가 알을 낳는다 하더라도, 수돗물 아닌 냇물이 흐르지 않고서야 냇가도 안 되고 냇물놀이라 할 수도 없다.


  새책을 읽든 헌책을 읽든, 모두 책을 읽는 셈이다. 헌책방 나들이를 해서 책을 만나든, 중고샵을 뒤져 책을 마주하든, 똑같이 책을 살피는 셈이다.


  그래, 어디에서건 책읽기를 한다. 그러니까, 어디에서나 책읽기를 하는 셈이다. 다만, 교보문고 나들이와 동네책방 나들이는 다르다. 서울 명륜동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 나들이와 〈알라딘중고샵 오프매장〉 나들이는 다르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 헌책방 나들이 또한 다르다.


  헌책방을 찾아가 보지 않고서 ‘헌책방’을 말하는 목소리는 아슬아슬하다. 헌책방을 차분히 누리거나 즐기지 않고서 ‘헌책’을 말하는 글은 아찔하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든 도서대여점에서 빌리든, 똑같이 ‘책’을 빌려서 ‘책읽기’를 하는 셈이다. 도서관에 간대서 훌륭하지 않고, 도서대여점에 간대서 낮지 않다. 스스로 즐길 수 있으면 모두 아름다운 책삶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스스로 책을 좋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책과 헌책방과 책삶을 슬기롭게 가누어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헌책방 책시렁을 알고 싶으면, 바로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 된다. 헌책방 책시렁을 말하고 싶으면, 스무 해쯤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면서 천천히 오래도록 헌책방 책시렁을 마음으로 껴안으면 된다. 헌책방 문턱을 밟지 않고, 또 헌책방에 사진기나 촬영기 들고 찾아가서 얼쩡거리고 난 다음, 막상 헌책방 책시렁에 꽂힌 책을 하나하나 만져서 넘기지 않고는, ‘헌책방 책시렁 말하기’를 함부로 하는 일이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으려나.


  헌책방 책시렁은 책손 마음을 두근두근 설레게 한다. 4346.3.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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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곰곰생각하는발님의 "새책은 출판사가 만들지만 헌책은 책 주인이 만든다. "

 

알라딘중고샵은 '헌책방'이 아닌 '중고샵'이기에,

헌책을 다루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헌책방 속성'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중고샵 아닌 헌책방 책시렁을 살피면,

자기계발서도 어김없이 있지만,

자기계발서보다는 인문책이 훨씬 많고,

중고샵 아닌 '진짜 헌책방'에는

자기계발서보다 인문책이 '더 먼저' '더 많이'

들어와서 꽂힙니다.

 

헌책방으로 오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계발서 찾는 사람이 아주 많으니

그런 책도 갖추지만,

헌책방까지 오는 사람들은

인문책을 조금 더 오래 깊이 찾곤 하기에,

어느 헌책방이든 인문책을 알뜰히 갖추려 하지요.

 

자기계발서와 참고서 중심으로 책시렁 갖추던 헌책방은

이제 거의 다 문을 닫았고,

인문책으로 책손 기다리는 헌책방만

삼십 해, 사십 해, 오십 해를 살아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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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3.3.23. 큰아이―무지개빛 그림

 


  종이에 먼저 연필로 밑그림 그린 다음, 까만 빛연필로 테두리 굵게 하고, 여러 빛연필을 써서 무지개빛을 입힌다. 큰아이와 함께 무지개빛 그림을 한 장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서로 따로따로 종이 한 장을 채운다. 아이는 아이대로 그림을 그려 예쁘다 말하면서 벽에 붙여 달라 한다. 나도 내 그림을 아이 그림 곁에 붙인다. 다음에 또 함께 그리자.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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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전업주부

 


  어린이책 《아빠는 전업주부》라는 어린이문학을 읽는다. 독일사람 키르스틴 보예 님이 쓴 책이 하나 있고, 이 책과 이름이 같고 한국사람 소중애 님이 쓴 책이 하나 있다. 한국사람이 쓴 책은 아직 모르겠는데, 한국사람 어린이문학은 판이 끊어졌기에 찾아 읽자면 좀 오래 걸리겠구나 싶다.


  독일 어린이문학을 읽으며, 첫머리부터 깊고 너른 이야기를 짚는구나 하고 느끼며 즐겁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면서 곁가지 다른 이야기로 빠진다. 곁가지 다른 이야기를 다루면서 ‘남자가 바깥 돈벌이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삶’을 소홀하게 다룬다.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청소를 하고 아이들 돌보는 삶을 찬찬히 보여주지 못한다. 너무 얼렁뚱땅 넘어간다.


  한국 어린이문학은 어떻게 그릴까? 남자 어른이 ‘집안일은 참 어렵구나!’ 하고 깨달으며 뉘우치는 대목을 그리면서 쉬 마무리짓고 말까? 새삼스레 완다 가그 님 그림책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가 떠오른다. 그림과 글로 아주 쉽고 단출하면서 또렷하게 ‘집안일 이야기와 삶’을 보여주는 책이다. 집안일을 하찮게 보는 남자 어른 코를 아주 납작하게 해 주되, 사랑스레 품어 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무렴, 그렇지. 여자 어른이 집안일을 오래도록 맡아서 했으니, 남자 어른이 바깥일도 할 수 있지, 남자 어른이 집안일을 맡아서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으리라. 남자 어른 가운데 집안일 알뜰히 잘 하는 이도 더러 있을 테지만, 여자 어른은 바깥일뿐 아니라 집안일까지 몽땅 도맡아야 하지 않을까? 그나마, 여자 어른이 집안일을 많이 맡아서 하니, 바깥일을 덜 맡아서 해도 되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이 알쏭달쏭한 사회 얼거리가 이루어지는구나 싶기도 하다.


  생각해 보라. 남자 어른치고 집안일 이야기를 찬찬히 쓰거나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을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이런 시인이나 소설가나 사진작가나 화가가 있는가? 남자 어른 가운데 아이 돌보는 삶을 찬찬히 쓰거나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을 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두말할 것 없다. 남자 어른 스스로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제대로 쓴 책이 여태 한 권도 없는걸! 밥과 옷과 집을 옳고 바르며 슬기롭게 그리며 건사할 줄 아는 남자 어른은 어디에 있을까.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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