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동백꽃

 


  서른일곱 살에 고흥으로 오면서 우리 보금자리를 장만했고, 서른일곱 살이던 2011년 겨울부터 2012년 봄과 겨울, 또 2013년 봄, 새로운 동백꽃을 새삼스레 만난다. 이웃집이나 이웃마을보다 볕이 살짝 적게 들어 동백꽃도 다른 집이나 마을보다 이레나 열흘쯤 늦고, 그만큼 동백꽃내음과 동백꽃빛 한결 느긋하게 간다. 바라보기만 해도 좋고, 곁에서 들여다보아도 좋으며, 마당에서 아이들과 뛰놀거나 책을 읽거나 평상에 드러누워 해바라기를 해도 좋다. 동백꽃이 나누어 주는 꽃내음을 물씬 누리면서 봄을 즐긴다.


  겨울을 난 잎사귀는 짙푸르다. 무척 짙다. 여기에 겨울을 곰삭힌 꽃송이는 짙붉다. 꽃잎을 하나둘 펼치며 한껏 벌어지는 동백꽃인데, 얼마나 겹겹이 붉은 꽃잎 이루어지는가를 보면 놀라우면서 곱다. 꽃나무 심어 꽃 즐기는 마음을 알겠다. 열매나무 심어 열매 즐겨도 좋은데, 꽃나무에서 꽃내음이 퍼뜨리는 기운은 몸과 마음 모두를 살찌운다. 아늑하게 살찌운다. 아리땁게 살찌운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온통 동백나무이다. 군청에서는 길가에 동백나무를 꽤 많이 심었다. 이 나무들 앞으로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줄기차게 가지를 뻗고 줄기를 올리면, 어느 마을이건 꽃마을 될 테고, 어느 집이건 꽃집 될 테지. 십 미터 이십 미터 쭉쭉 자라난 우람한 동백나무가 봄마다 흐드러진다면, 사람들은 저절로 시골집으로 찾아들리라. 나무 한 그루 얼마나 거룩하며 따사로운가를 사람들은 머잖아 살결과 뼈마디로 느끼리라. 4346.3.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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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8 10:35   좋아요 0 | URL
아우..사진으로만 보아도 가슴이 일렁이여요~~
어쩌면 이렇게 곱고 탐스러울까요~?
함께살기님덕분에 날마다 봄을 마음에 가득 채워놓고 있어요. ^^
정말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3-03-28 10:43   좋아요 0 | URL
저부터 스스로 즐거우니 사진도 찍고,
시골 아닌 데에서 살아가는 분한테도
자연스러운 꽃내음 나누어 주고 싶답니다~
 

제비똥 책읽기

 


  이레쯤 앞서부터 처마 밑 제비집 아래로 제비똥 여럿 보였다. 틀림없이 제비똥이기는 한데 제비 소리는 못 들었고, 다른 새가 이리로 와서 똥을 누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오늘, 2013년 3월 27일 아침에 제비 째째째 소리 울려퍼지기에 슬쩍 내다보니, 지난해 우리 집에서 태어난 새끼제비 세 마리가 옛 둥지에 들어와서 논다. 어, 너희였네. 너희가 돌아왔구나. 그런데 왜 세 마리이지? 한 마리는 어디 갔지? 너희 어미는 또 어디 갔지? 곧 모두 다 볼 수 있겠지?


  그나저나, 지난해에 제비를 처음 본 날짜를 헤아리니, 4월 23일이었다. 올해에는 자그마치 한 달 가까이 일찍 제비를 만난다. 왜 이렇게 일찍 찾아왔을까. 왜 벌써 제비가 왔을까. 제비들 겨울나기를 하는 중국 강남에 무슨 일 있을까. 중국 강남 쪽 시골마을 마구 파헤치거나 무너뜨려, 이 제비들이 너무 이르구나 싶은 봄에 찾아왔을까. 아직은 저녁에 해 떨어지면 몹시 추울 텐데. 3월 끝무렵 전라남도 고흥 퍽 따스하다 하지만, 저녁에 해 떨어지고 새벽 지나 아침이 오기까지 꽤 쌀쌀할 텐데.


  그동안 미루던 똥받이를 얼른 달아야겠다. 우리 집에서 태어난 제비들 저마다 좋은 짝 만나 우리 집 처마 밑으로 찾아들 적에 똥벼락 맞지 않자면, 부지런히 나무판 챙겨서 오늘은 똥받이부터 붙이자. 4346.3.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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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3-03-27 11:32   좋아요 0 | URL
와~~ 제비 본 지 참 오래된 거 같네요~ 어릴 때는 서울시내 한복판 주택에도 제비집이 있었는데말여요.

파란놀 2013-03-27 12:01   좋아요 0 | URL
처마가 높아 똥받이 다느라 퍽 애먹었어요. 그래도 즐겁게 달았으니, 제비들도 오늘 밤 포근하게 잘 자고, 똥도 마음껏 누기를 바란답니다 ^^;;
 

[당신은 어른입니까 13] 바람읽기
― 어떤 보금자리, 어떤 배움자리, 어떤 꿈자리

 


  바람맛을 느낍니다. 이웃집 할매가 쓰레기를 태울 적에는 쓰레기내음 실린 바람맛을 느낍니다. 봄꽃이 피어나는 따사로운 봄철에는 봄꽃가루 살포시 내려앉은 봄꽃바람맛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바람내음을 맡습니다. 이웃집 할배가 논이랑 밭에 농약을 뿌릴 적에는 우리 집 마당에까지 농약내음이 바람 따라 흘러듭니다. 가을열매 무르익는 가을철에는 열매와 곡식이 익으며 나누어 주는 고운 내음을 바람결 사이사이 누립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봄에 어떤 바람을 마실까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여름에 어떤 바람을 마실까요. 도시에서 살거나 도시로 마실을 가면, 가을에 어떤 바람을 맛볼까요. 시골에서 지내거나 시골로 나들이를 가면, 겨울에 어떤 바람을 맛보려나요.


  보금자리는 배움자리입니다. 배움자리는 삶자리입니다. 삶자리는 꿈자리입니다. 꿈자리는 사랑자리입니다. 스스로 살아가려는 곳, 그러니까 보금자리에서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배웁니다. 식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도 배움이요, 이웃과 나누는 이야기 또한 배움이에요. 즐겁게 배울 수 있기에 보금자리를 틀며 살지요. 보금자리를 틀며 살아가는 곳에서 앞으로 하루하루 누릴 꿈을 키우고, 꿈을 키우노라면, 이 꿈을 이루는 동안 나눌 사랑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낳기 앞서 어른인 나는 어디에 집을 마련해서 살아갈 때에 즐거울까요. 아이들을 낳고 나서 어른인 나는 어떤 집을 어떤 곳에 두고는 고향마을로 삼을 때에 기쁠까요.


  사람은 누구나 바람을 마시면서 숨결을 잇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숨결을 잇지만, 밥에 앞서 물을 마시고, 물에 앞서 바람을 마셔요. 곡식을 끊으며 백 날 넘게 숨결 건사할 수 있고, 물을 끊어도 퍽 여러 날 숨결 건사하지만, 바람을 끊으면 1분조차 건사하지 못해요. 사람들 몸은, 또 벌레와 짐승과 풀과 나무 모두 바람이 없으면 1분조차 살아남지 못합니다.


  바람을 더럽히는 짓이란 스스로 죽으려는 짓이며, 이웃과 동무 모두 죽이려는 짓입니다. 바람을 보살피는 손길이란 스스로 살아가려는 몸짓이면서, 이웃과 동무 모두 살리려는 사랑입니다.


  논이나 밭에 농약을 치는 일은, 그저 돈을 버는 농사짓기조차 아니에요. 농약 때문에 풀과 흙도 망가지지만, 무엇보다 바람이 망가져요. 농약내음 잔뜩 밴 바람을 마신 사람은 몸이 아프고, 죽을 수 있어요. 자동차를 달리면 더 빨리 간다지요. 그런데 자동차 달릴 적마다 배기가스 잔뜩 뿜어요. 배기가스를 마셔 보셔요. 숨이 막히고 갑갑해요. 자동차 물결치는 커다란 도시는 사람들 스스로 죽으려는 꼴이면서, 이웃과 동무를 조금도 안 살피는 모양새예요. 자동차를 타야 할 때에는 탈밖에 없지만, 자동차를 줄일 수 있어야 하고, 마지막에는 자동차하고 헤어질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숨을 쉬거든요. 그래야, 숨결을 살리거든요. 그래야, 삶을 사랑하거든요.


  바람을 읽어요. 맑은 바람을 읽어요. 맑게 함께 나눌 바람을 읽어요. 바람을 지키고, 바람을 아끼며, 바람을 돌보는 길을 읽어요. 서로서로 즐겁게 바람을 마셔요. 꽃바람을 마시고, 나무바람을 마셔요. 민들레꽃바람을 마시고, 팽나무바람을 마셔요. 도시에서 살건 시골에서 살건, 어디에서나 고운 바람 불 수 있는 터전으로 일구어요. 이런 일을 하건 저런 놀이를 하건, 나와 네가 함께 마시는 바람을 돌아보면서, 바람맛과 바람내음 살찌우는 길을 걸어요. 4346.3.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당신은 어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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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날 집 비우는 어머니

 


  아이들 어머니가 오늘(3/27)부터 다음달(4/15)까지 집을 비운다. 아이들 어머니는 멀리 미국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마음공부(시애틀 옘 람타스쿨)를 하고 오기로 한다. 아이들 어머니는 서른네 해 살아오면서 다른 나라를 밟은 적 없고, 나도 서른아홉 해 살면서 미국을 밟은 적 없다. 비행기삯은 어찌 될까. 옆지기가 카드로 긁은 비행기삯을 여섯 달이나 열두 달로 끊어서 갚을 만할까. 아무튼, 아이들 어머니는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간다. 읍내에서 다시 순천으로 갈 테고, 순천부터 인천공항까지 머나먼 버스길을 달리겠지.


  길을 나서기 앞서 여러 날 짐을 꾸렸다. 짐을 꾸리는 동안 아이들이 묻고 달라붙는다. 우리 식구들 어디로 마실을 갈 적마다 짐꾸러미 잔뜩 꾸린 만큼, 아이들도 다 알았으리라. 얼마나 먼길 얼마나 오래 다녀올는 지 다 헤아렸으리라.


  마을회관 앞에서 군내버스를 타는 아이들 어머니가 손을 흔든다. 아이들도 손을 흔든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겨 손을 흔들고, 큰아이는 삼십 미터쯤 버스 뒤를 따라가며 손을 흔든다. 잘 다녀와야지. 잘 지내야지. 바람 조용한 봄날 햇볕 먹으며 들꽃이 기지개를 켠다. 이제 들꽃 하나둘 봉오리 벌리며 봄볕 듬뿍 먹는 아침이로구나. 4346.3.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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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3-03-27 11:33   좋아요 0 | URL
저 짐 들고 인천공항까지 가시는 길도 머나머네요~

파란놀 2013-03-27 12:01   좋아요 0 | URL
네, 12시에 순천서 버스가 있으니, 저녁 늦게 공항에 닿겠지요 @.@

수이 2013-03-27 21:46   좋아요 0 | URL
와 멋진 가족의 모습입니다.

파란놀 2013-03-28 01:37   좋아요 0 | URL
식구들이 예쁘지요~
 
소꿉놀이 - 자연아 자연아
달연 예쁠아 지음 / 깊은책속옹달샘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49

 


봄꽃은 얼마나 작은지
― 소꿉놀이
 개성 전래동요,달연 예쁠아 풀꽃그림
 깊은책속옹달샘 펴냄,2006.5.30./9500원

 


  봄꽃은 얼마나 작은지, 눈을 크게 뜨고 가만히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꽃빛 느끼고 꽃내음 맡습니다. 참말 봄꽃은 얼마나 작은지, 귀를 쫑끗 세우고 두 팔을 가만히 벌리며 마음을 열어야 비로소 꽃결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풀꽃그림책 《소꿉놀이》(깊은책속옹달샘,2006)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기자기하게 엮은 풀꽃그림책은 풀이랑 꽃으로 놀이하는 그림책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예쁘게 이어온 소꿉놀이를 앙증맞게 되살리는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을 빚어 아이들한테 나누어 주는 어른들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곱습니다. 그림책 받아 웃으면서 읽을 아이들은 더없이 기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림책을 덮고 나서 소꿉놀이 할 만한 빈터가 없는 도시입니다. 시골에서도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켜거나 컴퓨터를 켜고 싶습니다. 시골 아이들도 손전화 갖고 놀기를 더 좋아합니다. 시골에서조차 흙땅 밟거나 흙마당에서 나뭇가지로 그림 그리기 힘듭니다. 도시이고 시골이고 빈터와 흙땅을 몽땅 없앴거든요. 우리 어른들은 자동차 다니기 좋도록 모든 길에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깔거든요. 논둑조차 시멘트로 덮는걸요.


  봄꽃은 얼마나 작은지 아시나요? 봄꽃은 작디작아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꽁꽁 덮으면 너무 아파 소리도 못 내고 죽습니다. 그러나, 작디작은 봄꽃은 시멘트나 아스팔트 밑에서도 기다려요. 이 두꺼운 뚜껑 걷히고 햇살 드리울 날을 기다려요. 아이들 목소리를 기다리는 봄꽃이에요. 아이들 노랫소리를 바라는 봄들이에요.


  나뭇가지 하나로 밥을 지어요. 꽃잎 하나로 떡을 찧어요. 풀줄기 하나로 집을 짓지요. 풀잎 하나로 고픈 배를 채우지요. 아이들 모두, 그러니까 도시 아이들이랑 시골 아이들 모두, 흙땅에서 뒹굴며 흙옷 입고 흙얼굴 되어 흙놀이 즐기는 소꿉놀이 소꿉동무로 자랄 수 있기를 빕니다. 4346.3.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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