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뜯기 1

 


  아버지가 들풀을 바라보다가 “아, 맛있겠다!” 하고 말하면서 한 줄기 뜯어서 입에 넣는다. 냠냠 씹으며, “음, 맛있네!” 하고 말하니, 여섯 살 큰아이가 곁으로 다가와 “나도 뜯을래!” 한다. “그래, 뜯어 보렴. 자, 더 앞으로 와서 뜯어.” 아이가 작은 손으로 작은 풀을 뜯는다. “오잉, 꽃은 안 뜯기고 풀만 뜯겼잖아.” “그럼 꽃 달린 풀 또 뜯으면 되지.” 꽃 달린 들풀 뜯어서 입에 넣는다. 작은아이한테는 아버지가 뜯어서 입에 넣어 준다. 모두들 들풀을 뜯어서 냠냠 먹는다. “맛있니?” “음, 맛있어.” 4346.3.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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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의 유치원 일기 - 아이와 어른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태양의아이 유치원’그 감동의 기록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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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함께 걷는 삶
 [사랑하는 배움책 8] 하이타니 겐지로, 《유치원 일기》(양철북,2010)

 


- 책이름 : 유치원 일기
- 글 : 하이타니 겐지로
- 옮긴이 : 햇살과나무꾼
- 펴낸곳 : 양철북 (2010.12.30.)
- 책값 : 1만 원

 


  아이들이 자랍니다. 날마다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프고, 아이들은 먹고 싶은 대로 먹고픕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나 놀이라면 무엇일까요. 곁에서 어른들이 하는 일이나 놀이를 아이들도 똑같이 하고 싶을까요.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저희가 하고 싶은 일이나 놀이를 새로 찾을까요.


  학교도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없던 지난날을 헤아립니다. 지난날에는 아이들이 무슨 꿈을 꾸면서 자랐을까요. 지난날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일을 배우고 어떤 놀이를 즐기면서 자랐을까요. 지난날 아이들은 학교가 없어서 서운했을까요. 지난날 아이들은 학교가 없어도 아름다운 삶과 따사로운 사랑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으며 씩씩하게 뛰놀며 자랐을까요.


  학교가 막 생기면서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요. 일제강점기에 생긴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쳤는가요. 해방 뒤 이 나라 학교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쳤나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넘어, 2000년대 학교는 아이들한테 어떤 곳이 되는가요.


.. 당연한 일이지만, 능력주의와 주입식 교육이 판을 치는 일본의 교육 현실에서 우리는 성가신 존재였다. 물론 아무리 성가신 존재로 여겨져도, 우리는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우리가 옳다고 믿는 길을 걸어왔다 … 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건물은 대개 아이들을 얕잡아본 건물이라고 생각한다. 건물을 온통 분홍색으로 칠하고 벽에는 스누피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플라스틱제 놀이기구를 설치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정신이 의심스럽다. 창조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유치원은 아이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어른들이 멋대로 생각한 디자인을 들이밀 것이 아니라, 되도록 자연에 가까운 재료를 아이들에게 주어야 한다. 그 재료를 다루거나 표현하는 것은 아이들이어야 한다 ..  (10, 21쪽)


  이웃들은 우리 아이들 볼 적마다 ‘학교 갈 때 안 되었니?’ 하고 묻습니다. 큰아이는 이태 뒤에 초등학교 들어갈 만한 나이가 되고, 두 아이는 모두 어린이집이건 유치원이건 다닐 만한 나이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엇비슷하게 어떤 시설에 보낼 수 있고, 학교에 갈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시설이나 학교에서 시험이나 공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개구지게 뛰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을 시설이나 학교에 보내는 일은 하나도 안 내킵니다. 아이들은 시간표로 착착 짜서 몇 분 가르치고 몇 분 쉬고, 하는 틀로는 하나도 제대로 배울 수 없어요. 아이들은 일곱 살이고 여덟 살이고 아홉 살이고 실컷 뛰놀아야지, 책상 앞에서 이런 지식 저런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시설이나 학교에 갈 수 있어야, 아이들한테 새로운 길이 열릴까 생각해 봅니다. 시설이나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어떤 길을 열어 줄까요.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는 길? 대학교에 들어가서 취업 준비 하도록 재촉하는 길? 시설이나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사랑을 가르쳐 주나요? 시설이나 학교에서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꿈과 노래를 누리도록 이끌어 주나요? 시설이나 학교는 아이들이 숲과 들과 멧골과 바다를 얼마나 실컷 누비도록 북돋아 주나요?


  요즈음 시설이나 학교는 지난날처럼 주먹다짐이나 몽둥이질을 섣불리 안 하리라 생각합니다. 요즈음 보육교사나 학교교사는 지날날처럼 아이들한테 막말이나 거친 말을 함부로 읊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 슬기롭게 다스리는 교사는 얼마나 있을까 모르겠어요. 아이들 앞에서 바르며 고운 넋으로 바르며 고운 말 들려주면서, 교사 스스로 바르며 고운 삶 일구려는 분이 얼마나 될까 알쏭달쏭합니다. 교사라는 자리는 교사자격증을 땄대서 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태양의아이 유치원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자기 눈높이를 맞추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높은 곳에서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움직이는 일이 거의 없다 … 아이들에게 화를 내기 전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이 마음을 열어 줄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한다 … 우리 스스로 창조력이 풍부해야 하며, 아이들과 함께 변화해 가야 한다 … 아이들은 진지하게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말을 획득한다. 그리고 말을 획득함으로서 더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  (38, 39, 110, 192쪽)


  어떤 어버이도 ‘어버이 자격증’을 따고서 혼인을 한 다음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다만, 어버이 자격증이 따로 없다 하더라도, 어른 된 두 사람은 ‘어버이로 지내는 길’을 그닥 깊이 헤아리지 않고 아이를 낳곤 해요. ‘어버이 길’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살피지 않기 일쑤예요.


  그런데,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오늘날 여느 어른’들한테 ‘어버이 길’을 안 가르쳐 주었을 수 있어요. 갓 스물을 넘거나 서른 넘은 사람들한테 ‘오늘날 어버이’들은 어떤 삶길 보여주거나 들려주거나 알려주나요. 오늘날 쉰 예순 나이를 누리는 분들은 이녁 아이들한테 어떤 어른 되는 길을 밝히는가요. 학교에서 교사 자리 맡는 분들은 숱한 아이들한테 어떤 사람 되는 길을 열어 주는가요.


  때 되면 밥 차리고, 때 되면 씻기고, 때 되면 옷 갈아입히고, 때 되면 빨래하고, 때 되면 쓸고닦고, 때 되면 예방주사 맞히고, 때 되면 놀이공원 가고, 때 되면 장난감 사 주고, 때 되면 바깥밥 사먹고, …… 이런저런 모습이 ‘어버이 길’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어버이 길이라 한다면, 이 땅에서 사람답게 아름다이 살아가는 길이라고 느껴요.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한껏 맞아들이면서 스스로 새 이야기 빚고 새 살림 일굴 때에 비로소 어버이 길을 연다고 느껴요.


..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아이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시인이다 … 아이들은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다 ..  (104, 132, 163쪽)


  아이들이 스스로 노래를 부릅니다. 누가 가르치지 않은 가락과 노랫말을 스스로 지어서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이 곁에서 들은 노랫가락과 노랫말 되새기며 노래를 부릅니다. 어버이가 부른 노래나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흐르던 노래를 떠올리며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이 조잘조잘 떠듭니다. 스스로 터져나오는 소리대로 조잘조잘 떠들고, 둘레 어른이나 또래 아이들 조잘조잘 주고받던 말소리 곱씹으면서 새삼스레 조잘조잘 떠듭니다.


  바람소리 듣고 자란 아이들은 바람소리를 살갗으로 느끼면서 알아차립니다. 자동차 붕붕 소리 듣고 자란 아이들은 자동차 소리 느끼고 자동차 이름 하나하나 되새깁니다. 들판에서 풀 뜯고 꽃이랑 노래하던 아이들은 풀빛과 꽃빛을 가슴속으로 아로새깁니다. 높다란 아파트와 건물 비죽비죽 솟은 데에서 거님길 바깥으로는 못 다니도록 꽥 소리지르는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자란 아이들은 봄빛과 여름빛과 가을빛과 겨울빛 하나도 모르는 채 나이를 먹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저마다 무엇을 보면서 자랄까요. 이 나라 어른들은 저마다 무엇을 생각하면서 아이들과 어울릴까요. 이 나라 도시 아이들은 날마다 무엇을 느끼며 클까요. 이 나라 시골 아이들은 나날이 무엇을 마주하며 생각밭 키울까요.


.. 자연의 것을 자연 그대로 먹을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음식 만드는 일에는 많은 지혜가 필요하다 … 동물과 함께 생활할 기회가 거의 없는 요즘 아이들은 동물이라는 존재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덮어놓고 무서워했다 … 장애아 교육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불행이다 … 기요코와 아이들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이 아이들을 격리시키거나 외톨이로 만드는 것은 큰 죄이며, 인간 전체로 봤을 때도 큰 손실이라고 ..  (25, 67, 123, 130쪽)


  하이타니 겐지로 님이 쓴 《유치원 일기》(양철북,2010)를 읽습니다. 하이타니 겐지로 님은 일본에서 ‘새로운 유치원’을 엽니다. 당신이 쓴 책을 널리 팔아서 벌어들인 돈을 밑바탕 삼아, ‘틀에 박힌 채 지식 쑤셔넣고 아이들을 톱니바퀴에 가두는 유치원’이 아니라 ‘아이들이 실컷 놀며 스스로 생각을 일구는 유치원’이 되기를 바라면서 유치원을 엽니다.


  유치원은 건물이나 시설이 아닙니다. 유치원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삶터요 배움터이자 만남터이고 쉼터입니다. 삶터인 유치원이기에 유치원 교사는, 또 초·중·고등학교 교사는 어떤 자격증보다도 마음속에 품는 사랑이나 꿈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나 꿈은 없이 자격증만 있다면 ‘새로운 유치원’에서 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자격증이야 언제라도 딸 수 있는걸요. 자격증이야 없어도 되는걸요. 곁에서 여러 해 궂은 일 도맡으며 어깨너머로 구경하거나 지켜보면서 일손 하나둘 거들면서 천천히 익힐 수 있고, 둘레에서 오래도록 크고작은 일 함께하면서 어깨동무와 두레와 품앗이가 무엇인가를 깨달으며 찬찬히 배울 수 있어요. 굳이 시험을 치러 점수를 살펴야 따는 자격증이란 뜻이 없어요. 곧, 가르치는 어른도 자격증이나 시험점수 따야 하지 않고, 배우는 아이도 자격증이나 시험점수 따야 하지 않아요. 가르치는 어른부터 스스로 삶을 생각하고 사랑을 나누면 즐겁지요. 배우는 아이도 스스로 삶을 깨닫고 사랑을 물려받으면 기뻐요.


.. 아이들의 흥미를 이끌어 내려면 어른이 먼저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야 한다 … 아이들에게서 뭔가를 발견하고 거기에 놀라거나 감동했다는 것은 벌써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아이들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감동에서 시작해서 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것이다 … 원래 모든 아이들은 상냥하다. 아이들의 마음이 황폐해지는 때는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낄 때뿐이다 ..  (57, 82, 152쪽)


  교사들 누구나 교사일기 쓰기를 바랍니다. 아이들한테만 일기쓰기 시키지 말고, 교사부터 스스로 교사일기를 써서, 이웃 교사랑 학부모한테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아이들 일기를 교사들만 살피면서 동글뱅이 그려 주거나 맞춤법 바로잡지 말고, 교사일기를 이웃 교사하고 학부모한테 보여주어 ‘교사로 지내며 아이들과 마주하는 웃음과 눈물과 기쁨과 슬픔’을 서로서로 아리땁게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곧, 대통령은 대통령일기를 써서 사람들한테 날마다 보여주어야지요. 국회의원도 국회의원일기 쓰고, 시장은 시장일기를, 군수는 군수일기를 써야지요. 의사도 변호사도 판사도 간호사도 모두 일기를 쓸 노릇입니다. 회사 대표도, 회사 일꾼도, 저마다 하루일 돌아보면서 이녁 삶을 일기로 쓸 노릇입니다. 아이들과 지내는 어버이도 일기를 쓸 노릇입니다. 이 나라 푸름이도, 젊은이도, 모두모두 이녁 삶 밝히는 일기를 찬찬히 적바림하면서, 스스로 삶을 가꾸며 알알이 보듬는 길을 생각할 노릇이에요.


  이때에 비로소 새 길 열 수 있겠지요. 이렇게 마음을 트고 서로 만날 수 있을 때에, 거짓이 스러지고 참삶을 열면서 빙그레 웃겠지요. 서로 마음속에 꿍꿍이 아닌 꿈을 품고, 마음밭에 미움 아닌 사랑 심을 때에, 다 함께 아름다운 보금자리와 마을 가꾸겠지요.


..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더욱 꼼꼼하게 살피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다 …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성장하는 생명체만큼 아름답지 않다 … 뭔가를 창조했을 때만이 인간은 성장한다 … 아이들이 위대한 창조자라는 사실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바로 코앞에 훌륭한 본보기가 있는데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수없이 많다. 아이들과 함께 걷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154, 180, 200쪽)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걷는 삶입니다. 아이 낳은 어버이라 하든, 아이 안 낳는 어버이라 하든, 또는 짝을 안 맺고 혼자 살아가는 어른이라 하든, 모두들 곁에는 늘 아이들이 있어서 함께 걷는 삶이에요. 내가 마신 다음 내뱉는 숨을 숲에서 나무가 마시고, 이 숨이 다시 푸르게 흘러나오면 이웃 아이들이 마셔요. 내가 쓰고 내놓는 물을 숲과 바다와 들과 갯벌이 걸러서 하늘로 올려보내 구름을 이루면, 이 구름은 온누리를 촉촉히 적시면서 이웃 아이들 마시는 물이 돼요.


  모든 삶이 하나로 이어집니다. 바람과 물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햇살은 어느 곳이든 골고루 비춥니다. 사람들 생각과 마음도 따로따로라 하지만, 처음과 끝은 늘 하나입니다.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인데, 삶이 나아가는 길은 모두 한 갈래로 같아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을 가르치며 배우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학교’라는 이름을 쓰든 안 쓰든 배움터이면서 삶터가 됩니다. 사랑을 가르치지 못하고 배울 수 없으면서 이름은 ‘학교’라 한다면, 이곳에서는 삶도 문학도 문화도 사랑도, 그리고 어떠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할 갑갑한 쇠울타리 감옥이 됩니다. 4346.3.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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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글쓰기

 


  아이와 함께 그린 빛깔 고운 그림을 셈틀 곁에 붙인다. 두 아이는 벽에 죽죽 금을 그으며 놀았다. 온통 새까맣게 된 벽에 그림을 붙이면서, 새까만 그림 아닌 빛깔 고운 그림을 늘 쳐다본다. 아이들 그림에는 아이들 마음에 드러난다. 내가 함께 그린 그림에는 내 마음이 드러난다. 기쁨도 슬픔도 웃음도 눈물도, 이 그림 하나에 고스란히 밴다. 나는 아이 마음에서 무엇이 드러나기를 바랄까. 나는 내 마음속에서 무엇이 샘솟아 아이들 그림에 살포시 드리우기를 바랄까.


  지난밤 빗소리를 듣는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자고, 나는 문득 일어나 자리에 앉아서 빗소리를 듣는다. 바람이 불지 않는 비인 만큼 섬돌에 놓은 신이 젖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마루문 열고 밖을 내다본다. 작은아이 타는 세발자전거가 비를 맞는다. 아차, 세발자전거는 처마 밑으로 옮기지 않았네. 그냥 둘까, 옮길까.


  자다가 빗소리 듣는 사람이 있을 테고, 잠들지 않고 깬 채 있어도 빗소리 못 듣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제비 노랫소리와 다른 들새 노랫소리를 하나하나 나누어 듣는다. 그렇지만, 제비인지 참새인지 박새인지 직박구리인지 멧비둘기인지 노랑할미새인지 하나도 못 헤아리는 사람이 많다. 돌이켜보면, 내 어릴 적 충남 당진에 있던 어머니네 어머니 댁에 마실을 갈 적에, 내 외삼촌이요 이모인 형과 누나 들은 새소리 낱낱이 알았고, 빗소리이며 바람소리이며 풀잎 흔들리는 소리이며 찬찬히 알았다. 메추라기 둥지를 찾아서 메추리알 꺼내기도 했고, 나무 타고 올라가 새알 구경을 하기도 했다. 내가 시골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어도 새소리를 차츰차츰 알아차릴 수 있는 까닭이라면, 어릴 적부터 내 외삼촌과 이모 들처럼 새소리를 알아차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빛을 품으면 시나브로 빛이 흘러나온다. 마음속에 햇살을 품으면 천천히 따스한 햇살 새어나온다. 마음속에 구름을 품으면 어느새 몽실몽실 피어나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잔뜩 찌푸린 채 빗물 떨구기도 하겠지.


  빛을 품는 사람은 빛을 이야기한다. 빛을 사랑하는 사람은 빛을 글로 쓴다. 빛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이들한테 빛을 물려준다. 4346.3.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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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50) 가운데 3 : 바쁘신 가운데

 

바쁘신 가운데 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시다 이라/김윤수 옮김-날아라 로켓파크》(양철북,2013) 243쪽

 

  ‘감사(感謝)합니다’는 ‘고맙습니다’로 바로잡습니다. 한국말은 ‘고맙습니다’이지만, 한국말을 알뜰히 쓰는 분이 자꾸 줄어들어요.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바이바이’ 같은 말을 쓰는데, 즐거움이나 재미나 귀여움 삼아 이런 말을 쓴다 하지만, 아이들한테는 알맞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은 말을 함부로 길들이는 셈이 됩니다. 아이들한테 사탕 한 알 쥐어 주면서 “‘감사합니다’ 그래야지.” 하고 말하는 분들을 보면, 좋은 뜻은 알겠지만, 사탕 함부로 주니 안 달갑고, 말투 또한 슬기롭지 않으니 안 반갑습니다. 차라리 “‘잘 먹겠습니다’ 그래야지.” 하고 말하면, 그나마 말투는 받아들일 만한데요.

 

 바쁘신 가운데
→ 바쁘신 데에도
→ 바쁜 틈에도
→ 바쁜 짬을 내어
 …

 

  행사나 잔치가 있는 자리에 가면, 사회를 맡은 분들이 으레 “바쁘신 가운데”라느니 “바쁘신 와중(渦中)”이라느니 하고 말합니다. 워낙 굳은 말버릇이니 이렇게 말한달 수 있지만, 제아무리 굳거나 뿌리박은 말투라 하더라도, 올바르지 않거나 알맞지 않으면, 하나하나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쁜 법도 법이라 하지만, 나쁜 법은 ‘나쁜 법’이지 ‘법’이 아닙니다. 잘못 뿌리박힌 말투는 ‘그대로 써도 될 우리 말투’가 아니라, 알맞게 바로잡을 ‘잘못 뿌리박힌 말투’예요.


  이 보기글 같은 자리라면, “바쁜 일정(日程)에도”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와중’도 한자말이고 ‘일정’도 한자말이지만, ‘와중’은 “(1) 흐르는 물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2) 일이나 사건 따위가 시끄럽고 복잡하게 벌어지는 가운데”를 뜻해요. 이 뜻을 헤아리자면 ‘와중’을 넣는 말투도 알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헤아리면, 한자말 ‘와중’을 “-하는 가운데”로 풀이한 말마디가 알맞지 않다 할 수 있어요. 잘못 풀이한 말마디라 할 만합니다. ‘와중’을 애써 ‘가운데’로 풀이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렇게 잘못 풀이할 바에는 그냥 한자말 ‘와중’을 쓰는 쪽이 낫다고 해야지 싶어요. 4346.3.31.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바쁘신 데에도 와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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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383) 가장 1 : 가장 큰 집들 가운데 하나

 

샤샬은 마을에서 가장 큰 집들 중 하나에 산다
《존 버거,장 모르/김현우 옮김-행운아》(눈빛,2004) 96쪽

 

  ‘중(中)’은 ‘가운데’로 손질해 줍니다. 한자 ‘中’은 한글로 적는다 해서 한국말이 되지 않아요.


  “가장 큰 집”은 하나입니다. 둘일 수 없습니다. ‘가장’은 “여럿 가운데 어느 것보다 더”를 뜻하거든요. 오직 한 가지를 맨 앞이나 위에 내세울 때에 쓰는 ‘가장’인 만큼 이 보기글처럼 쓸 수 없어요. 그러니 “가장 큰 집에 산다”처럼 적거나 “무척 큰 집들 가운데 하나에 산다”처럼 적어야 올발라요. ‘가장’하고 뜻이 같은 한자말 ‘제일(第一)’ 말풀이를 살피면 “여럿 가운데서 첫째가는 것”이라고 나와요. 한국말 ‘가장’ 아닌 한자말 ‘제일’을 넣는다 하더라도 “제일 큰 집들 중 하나”처럼 적으면 알맞지 않아요. ‘가장’이든 ‘제일’이든 오직 하나만 가리킵니다.

 

 가장 큰 집들 중 하나에 산다
→ 가장 큰 집에 산다
→ 아주 큰 집들 가운데 하나에 산다
→ 더없이 큰 집에 산다
 …

 

  보기글에서는 샤살이라 하는 사람이 사는 집이 무척 크다는 뜻에서 이와 같이 적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아주 크다”라든지 “무척 크다”라 적으면 돼요. 그나저나 “가장 무엇무엇한 것 가운데 하나”라는 말투를 왜 쓸까요. ‘무척’이나 ‘아주’나 ‘퍽’을 넣어야 알맞을 자리에 왜 ‘가장’이라는 낱말을 넣을까요.


  이 말투는 영어에서 비롯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는 교재를 보면 “가장 무엇무엇한 것 가운데 하나”라는 번역 말투를 찾아볼 수 있어요. 영어를 가르치면서 번역을 얄궂게 하는 바람에 어느새 퍼진 말투 가운데 하나로구나 싶어요.


  그러고 보면, 영어를 가르치는 자리에서는 으레 영어만 헤아리지 한국말은 거의 헤아리지 않아요. 영어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는 생각해도, 영어를 한국말로 옮길 적에 알맞고 바르며 슬기롭게 나타내도록 가르칠 생각은 안 하기 일쑤예요. 학교나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분을 비롯해, 영어 교재 엮거나 쓰는 분들 모두 한국말 깊고 넓게 살피면서 배우기를 빌어요. 4338.1.3.달/4346.3.31.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샤샬은 마을에서 아주 큰 집에 산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87) 가장 2 : 가장 중요한 생태계의 하나

 

습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생태계의 하나입니다
《강병국-원시의 자연습지, 그 생태보고서 : 우포늪》(지성사,2003) 139쪽

 

  “지구상(-上)에 존재(存在)하는”은 “지구에 있는”으로 풀면 됩니다. “생태계의 하나입니다”는 “생태계 가운데 하나입니다”로 고치면 되고요. ‘습지(濕地)’ 같은 낱말은 학문하는 사람들이 즐겨쓰는데, ‘늪’이라 적을 수 있어요. 한국말 ‘늪’을 알맞게 쓰며 학문밭 넓힐 수 있습니다. 우포‘늪’을 다루면서 정작 ‘늪’이라 말하지 않고 ‘습지’라고만 가리키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서글픕니다.

 

 가장 중요한 생태계의 하나입니다
→ 아주 중요한 생태계 가운데 하나입니다
→ 아주 중요한 생태계입니다
→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생태계입니다
 …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말을 배웁니다. 학교에 가서 배우든 집에서 배우든 말을 배웁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든 식구나 이웃이 가르치든 ‘어른이나 어버이가 아는 말’과 ‘어른이나 어버이가 쓰는 말’을 아이들한테 가르칩니다. 그래서 어른이나 어버이가 말과 글을 알맞게 잘 쓰면 아이들은 알맞고 바른 말을 배웁니다. 그렇지만 어른이나 어버이가 말과 글을 알맞게 못 쓰거나 엉뚱하게 잘못 쓰면, 아이들은 알맞지 못하거나 엉뚱한 말을 배우겠지요.


  요즈음 아이들은 영어도 배우고 한자도 배우며 온갖 것을 참 많이 배웁니다. 이 가운데 영어와 한자를 살펴보면, 아이들이 배우는 영어 말법이나 한자 뜻풀이는 예나 이제나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스무 해 앞선 때 말법하고 요새 말법이 다르지 않겠지요. 1950년대 영어 말법과 2000년대 영어 말법은 똑같을 테고, 1900년대 영어 쓰임새와 2000년대 영어 쓰임새가 똑같겠지요.


  그러나,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은 1950년대와 1900년대와 2000년대가 너무 다릅니다. 아니,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이 달라져야 한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한국사람다운 말투를 버리거나 잊습니다. 한겨레다운 말법과 말틀을 쉬 내팽개칩니다. 아니, 처음부터 살피지 않고, 아이들한테 슬기롭게 물려주지 못해요. 얄궂은 낱말과 말투와 말법을 자꾸 만듭니다. 올바르지 않은 낱말과 말투와 말법을 무턱대고 씁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망가뜨려요. 한국땅 어른과 어버이는 한국말을 제대로 갈고닦지 않아요.


  외려, ‘얄궂게 쓰는 말’조차 새로운 흐름에 맞는 낱말이거나 말투이거나 말법인 듯 받아들입니다. 아이들한테 ‘얄궂게 쓰는 말’을 물려주고 말아요.


  말이란 흐르기 마련이라 나날이 조금씩 바뀝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쓰는 이 나라 말만 ‘얄궂은’ 쪽으로 뒤틀리거나 비틀리거나 엉망이 되어야 할까요. 왜 한국말이 한국말다움을 지키지 못하고 영어를 닮거나 한문 틀에 매여야 하거나 일본 말투에 찌들어야 할까요.


  아이들이 깨끗하고 싱그러운 마음을 품기를 바란다면, 아이들이 슬기롭고 맑은 넋을 건사하기를 바란다면, 아이들이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우리 어른들은 말부터 깨끗하고 싱그러우며 슬기롭고 맑은 한편 착하고 아름답게 추슬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른들부터 똑바로 말하고 생각해야지 싶어요. 어른들부터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야지 싶어요. 맑은 넋에서 맑은 말 태어나고, 맑은 말에서 맑은 삶 이루어집니다. 4340.1.24.물/4346.3.3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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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은 지구에서 아주 중요한 생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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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38) 가장 3 : 가장 위대한 사람들

 

그는 가장 위대한 사람들 중 하나였어요
《브뤼노 몽생종/임희근 옮김-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포노,2013) 168쪽

 

  ‘위대(偉大)한’은 ‘훌륭한’이나 ‘빼어난’이나 ‘뛰어난’으로 다듬고, ‘중(中)’은 ‘가운데’로 다듬어 줍니다.

 

 가장 위대한 사람들 중 하나
→ 아주 훌륭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
→ 무척 뛰어난 사람들 가운데 하나
→ 몹시 빼어난 사람들 가운데 하나
 …

 

  보기글처럼 ‘가장’을 쓰면, 훌륭한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한 사람이 아주 빼어나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여럿 가운데 한 사람이 가장 훌륭하다 한다면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어요”처럼 적어야 해요. 이러한 뜻이 아니라 한다면, “아주 훌륭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처럼 다듬어야 알맞습니다. 또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어요”라든지 “무척 뛰어난 사람이었어요”처럼 단출하게 다듬습니다. 굳이 “아주 (무엇무엇한) (무엇) 가운데 하나” 꼴로 적지 않아도 됩니다. 4346.3.3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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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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