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뱅클럽
그레그 마리노비치, 주앙 실바 지음, 김성민 옮김 / 월간사진출판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사진책 <뱅뱅클럽> 느낌글 1부입니다. 이 느낌글은 1부와 2부로 나누어 올립니다. 원고지로 100장 가까이 되는 글입니다. 차근차근 읽어 주시기를 바라며, 1부와 2부 차례대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54

 


사진이란, 눈물 한 방울
― 뱅뱅클럽
 그레그 마리노비치·주앙 실바 글,김성민 옮김
 월간사진 펴냄,2013.3.11./17000원

 


  ㄱ. 사진을 찍는다, 눈물 한 방울로


  인종차별을 꾀하던 백인 권력자들이 일으킨 피비린내 철철 넘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몰아내려고 애쓴 사람들 삶과 죽음을 사진으로 담아내며 목숨을 바친 젊은 네 사람 있습니다. 이 가운데 둘은 죽었고, 둘은 살았습니다. 한 사람은 평화유지군이 쏜 총알에 맞아 죽고, 다른 한 사람은 살가운 벗이 죽은 일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다가 사진 하나를 놓고 온갖 곳에서 들쑤시는 화살 같은 말에 스스로 채찍질하다가 목숨을 끊습니다. 죽을 고비에서 숱하게 살아남고, 먼저 죽은 사진벗이 간 죽음길을 따라가려고 하다가도 삶을 놓지 않은 두 사람이 사진기 아닌 연필 들어 글을 씁니다. 살아남은 두 사람조차 죽음길로 가고 나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들 네 사람이 젊은과 목숨을 바치면서 지키려고 하던 뜻이 무엇인가를 아무도 모를 테니까요. 비평가나 평론가나 지식인이나 기자나 권력자가 정치꾼이 아무렇게나 들이대는 뭇칼질 같은 글이 아닌, 사랑으로 쓰다듬고 어루만질 사진이야기 하나 헤아리며 《뱅뱅클럽》(월간사진,2013)이라는 책을 써요.


  이 책은 2000년에 비로소 나왔고, 한국에는 2013년 3월에 나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진을 찍다가 죽은 두 사람은 케빈 카터(스스로 죽음) 님과 켄 오스터브룩(총알 맞아 죽음) 님입니다. 씩씩하게 살아남아 글을 남긴 두 사람은 그레그 마리노비치 님과 주앙 실바 님입니다. 책을 쓴 두 사람은 죽은 두 사람 입과 마음을 빌어서, 곧 네 사람 목소리를 하나로 모두어 밝힙니다. “이곳에 내가 만들어야 할 사진이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일이다(226쪽).” 하고.


.. 언제 셔터를 누르고, 언제 사진가로서 활동을 잠시 멈춰야 하는가 … 남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비린내와 살인자들의 땀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에서도, 나는 사진가로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 충격을 받은 만큼 내가 촬영한 사진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어떤 말도 내가 촬영한 충격적이고 잔인한 사진들만큼 오늘 오후에 벌어진 엄청난 사건을 잘 드러낼 수는 없을 것이다 … 나는 너무도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했고, 그 이유로 남아프리카를 떠날 수밖에 없는 엄청난 고통 앞에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 지금까지 총에 맞지 않았다는 안전에 대한 환상은, 내가 총에 맞는 순간, 내가 한없이 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며 모두 날아가 버렸다 ..  (11, 37, 39, 60, 227쪽)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은 눈물 한 방울입니다. 슬픈 나라에서 태어나 슬픈 사람을 이웃으로 사귀면서 슬픈 이야기를 슬픈 사진으로 담습니다. 글을 써서는 아무도 믿지 않을 뿐더러, 글을 써도 제대로 싣는 매체가 없습니다. 이들은 사진을 찍습니다. 끔찍한 죽음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더러운 인종차별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진으로 찍어 남아프리카공화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과 지구별 여러 나라로 사진을 보내어 보여주어야 비로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어떤 일 벌어지는가’를 알릴 수 있습니다. 권력자와 정치꾼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속모습이나 참모습’을 한 차례도 안 밝히고 안 보여줍니다.


  더욱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조차 바로 옆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살피지 못합니다. 흑인 스스로도 백인 스스로도 참모습을 알아보려 하지 않습니다. 제도권 사회나 독재정권 사회가 억누르는 흐름에 몸을 맡길 뿐입니다.


  피를 흘리며 죽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불에 타서 죽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가슴이 벌렁벌렁 뜁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릅니다. 사진을 찍는 나를 누군가 도끼로 찍거나 몽둥이로 두들겨팰 수 있습니다. 사진 찍는 네 사람은 칼에 찔릴 뻔한 아슬아슬한 고비를 수두룩하게 넘기고, 총알이 빗발치는 한복판에서 이리 달리고 저리 구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 이들 사진기자, 그러니까 사진쟁이 네 사람이 있거든요. 왜나하면, 바로 그곳에 슬픈 남아프리카공화국 속모습이 있거든요.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 인종차별 끝내고 싶은 꿈을 품은 젊은 네 사람이 있거든요.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 백인 권력자한테 휘둘리며 흑인끼리 서로 다투고 괴롭히는 뼈아픈 생채기가 있거든요.

 


.. 유복했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삶을 탐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는 사진을 배웠다 …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그저 사진만 찍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아직도 떨쳐낼 수 없었다 …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이 사건의 참여자 입장과 사건을 냉철하게 관찰해야 하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자문했다 … 나중에 BBC카메라맨인 사이먼이 내게 말했다. “하느님 맙소사, 그 친구가 당신 찌르려고 했던 것 봤어?” 바로 그 결정적인 순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내 감각들은 깨어 있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촬영한 사진들은 나중에 나의 기억들이 회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  (29, 48, 49, 51쪽)


  사진을 찍고 또 찍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사진을 찍다가, 어느새 눈물이 마릅니다. 눈물 흘릴 틈이 없습니다. 또, 눈물 적시며 찍은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사진에 깃든 깊은 이야기’까지 헤아리지 못합니다. 또, 사진을 찍은 사람이 들려주는 엄청난 이야기를 차분한 마음으로 끝까지 들어 줄 만한 ‘여느 사람’이 없습니다.


  죽음과 분쟁과 전쟁과 차별을 사진으로 찍는 젊은 네 사람은 맨마음으로 사진을 못 찍습니다.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합니다. 맨마음으로는 죽음구렁텅이에서 살아나오거나 헤쳐나오지 못합니다. 맨마음으로는 총알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진 못 찍습니다.


  ‘여느 사람’은 총소리를 모릅니다. 총알 한 방 쏘는 소리가 어떠한가를 아는 여느 사람은 없어요. 군대를 가야 비로소 총소리를 듣는달 수 있는데, 자동소총이나 기관소총 방아쇠를 풀고 드드드드 갈기는 소리를 들은 적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방아쇠 풀어 드드드드 수십 수백 발 갈기면, 둘레에 있는 사람은 귀청이 찢어집니다. 총싸움이 그치고 몇 시간이 지나도 귀울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귀가 멍할 뿐 아니라 머리 또한 멍하지요. 이런 전쟁터에서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 푸른 젊은 날 사진을 찍은 ‘뱅뱅클럽’ 네 사람 마음자리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인종차별 일삼는 백인 경찰과 군인은 아예 장갑차를 끌고 다니면서 흑인거주지역에서 아무렇게나 총질을 합니다. 누가 죽거나 말거나 ‘흑인 한 마리 죽은’ 셈 치며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백인 권력자한테서 돈과 작은 권력 물려받은 흑인 권력자들이 서로 내전을 벌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배신자라 헐뜯으면서 몽뚱이와 칼과 도끼로 머리를 내려찍고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다가는 몸에 기름을 들이붓고는, 불에 태워서 아주 끝장을 봅니다. ‘뱅뱅클럽’ 네 사람은 이런 죽음터 죽음판 죽음잔치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말이 나오지 않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속살을 훤히 드러내어, 제발 이 죽음판 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난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잡았다. 인간 횃불이 된 남자는 점차 속도를 줄이고, 마침내 바닥에 웅크린 자세로 고꾸라졌다. 초점을 맞춘 후 나는 타오르는 남자의 바로 뒤에 이른아침 해가 떠 있음을 알아차렸다. 카메라의 노출계가 작동하지 않아 나는 조리개를 완전 개방한 f5.6에 맞추었다 … 그러나 몬티와 파스는 린자예 차발랄라의 살해 사진이 반드시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사진이 너무 강하거나 점잖지 못하거나 혹은 외설스럽다고 해서 겸열하는 것은 독자들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 나는 저널리스트이지 경찰 고발자가 아니다 … 주앙은 두려웠고, 혼란스리웠다. 이것은 그가 상상해 오던 종류의 전쟁 사진이 결코 아니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지만, 그는 뒤로 물러서면서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사진을 찍어 나갔다 ..  (53, 58, 59, 76쪽)


  사진을 찍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사진 한 장 읽는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나요. ‘이 사진은 거짓이야? 꾸몄어? 말도 안 돼? 이런 일이 어디에서 벌어져?’ 하고 생각하나요.


  한국에서 멀디먼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닌, 바로 한국을 생각해 봐요. 한국에서 독재정권 사라진 지 얼마 안 되었어요. 1960년 3월 어느 날 일을 되새겨요. 마산 앞바다에 어린 학생 주검이 떠올랐지요. 눈에 최루탄 박힌 끔찍한 모습으로 주검 하나 떠올랐지요. 이 모습을 누군가 사진으로 찍을밖에 없어요. 에그, 안타깝구나, 하면서도 얼른 최루탄부터 빼내지 못해요. 사진부터 찍을밖에 없어요. 어떤 독재정권이, 어떤 경찰과 군인이, 어떤 못난 놈들이, 어떤 나쁜 짓을 일삼는가를 또렷이 보여줄 사진부터 찍을밖에 없어요.


  윤리와 도덕을 살피거나 재기 앞서 사진을 찍어요. 명분과 이름을 따지거나 내세우기 앞서 사진을 찍어요.


  아, 삶이거든요. 아, 눈물이거든요. 아, 아픔이거든요. 아, 사랑이거든요.


.. 살인 행위가 벌어지는 내내 주앙은 계속 사진 촬영을 했고, 완전히 몰입해서 자신이 촬영하고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 만약 주앙이 폭력 사태가 벌어지고 있던 마을에서 겪었던 일들을 비비안에게 시시콜콜 얘기한다면 그것 또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 상처는 깨끗한 모양이었다. ‘저렇게 작은 구멍이 어떻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었을까’라고 주앙은 생각했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주앙은 카메라를 들어서 사진을 촬영했다. 화가 나고 놀란 간호사가 그를 제지하자, 주앙은 폭발했다. “내가 이 나라에서 죽은 사람들 전부를 촬영할 수 있는 것처럼, 내 친구(죽은 사진작가 켄) 사진도 찍을 수 있는 거요!” 주앙은 등을 돌리고 나가 버렸다 ..  (127, 153, 187쪽)


  1987년 어느 날 서울 어느 대학교 앞을 그립니다. 전투경찰이 대학생 얼굴을 겨누어 쏜 최루탄을 맞은 누군가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며 숨통 끊어지려 합니다. 이 모습 본 사진기자가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기자 눈에서도 피와 눈물이 흐르지만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기 냅다 집어던지고 피를 닦으려고, 병원차를 부르려고, 업거나 어깨를 함께 짊어지며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이렇게 생각하거나 살필 겨를 없어요. 곤봉 휘두르는 전투경찰 막을 틈 없어요. 전투경찰 휘두르는 곤봉에 얻어맞는 앳된 대학생들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밖에 없어요.


  1980년 5월 광주에서, 특수부대 요원들이 길거리 여느 사람들을 두들겨패거나 총질을 해대며 죽이는 모습을 건물 한쪽에 숨어 사진을 찍습니다. 참말 숨어서 사진을 찍습니다. 머리카락 끄트머리라도 들켰다가는 사진기자조차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겠지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서 어느 한갓진 시골 두멧자락 멧자락에 처박힐 수 있습니다. 두려움에 이를 갈고 슬픔에 떨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머리통 아주 짓이겨진 주검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옆에는 유족들이 울부짖습니다. 주검을 사진으로 찍고, 울부짖는 유족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진기자는 사진을 찍을밖에 달리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진기자는 사진을 찍어 다른 사람들한테 슬픔과 아픔과 독재정권과 전쟁과 눈물을 보여주는 길 하나만 있을 뿐입니다.

 


.. 우리가 언제 개입하고, 언제 사진을 계속 촬영해도 되는지에 대한 고정된 규칙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주앙과 내가 1992년에 충격적인 기아를 취재하기 위해 소말리아로 갔을 때,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았지만, 한 명도 구조한 적은 없었다. 보디가드들에게 굶주린 사람들을 데려다가 우리의 픽업트럭 뒤에 태우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가 직접 도움의 손길을 내민 적은 없었다. 우리는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았고, 그들의 사진을 촬영했다. 자신의 아이가 무릎 위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기아에 허덕이는 아버지가 지켜보는 사진을 촬영하면서 무기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저 아버지가 딸의 눈을 감겨 주는 것을 렌즈를 통해 목격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  (215쪽)


  사진을 왜 찍느냐고 묻지 말아요. 사진을 어디에 쓰느냐고 묻지 말아요. 묻고 싶으면, 왜 사느냐, 하고 스스로 물어요. 물을 이야기는 오직 하나예요. 삶은 무엇이고 사람은 무엇이며 사랑은 무엇인가, 이 하나만 물을 만해요.

 


  ㄴ.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스로 일구는 삶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 이야기는 학교에서도 세계사 수업을 하며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중·고등학교 다니던 1988∼1993년 사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얼마나 끔찍하며 어느 만큼 아프며 슬픈가 하는 대목을 짚은 교사는 없습니다. 시험 문제에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낱말 적어 넣는 ‘정답’만 가르칠 뿐,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사람들이 겪는 숱한 이야기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요즈음 학교에서도 인종차별을 가르칠까요. 요즈음 학교에서는 인종차별을 어떻게 가르칠까요. 한국에는 인종차별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삼십만 훌쩍 넘는다는 이주노동자는 한겨레하고 살빛이 다르고 말이 다르며 문화가 다른데, 이들 이주노동자를 한겨레는 어떤 눈길로 바라보는가요. 이주노동자와 한겨레 노동자는 똑같은 권리를 누릴까요. 이주노동자와 한겨레 노동자는 ‘일하는 시간과 받는 일삯’이 같을까요.


  이주노동자한테 푸대접을 한다면, 한겨레 노동자 사이에서도 ‘학력에 따라’ 대접이 달라집니다. 고졸 노동자와 대졸 노동자 일삯이 달라요. 중졸 노동자와 국졸 노동자, 또 무학력 노동자는 일삯이 사뭇 벌어집니다. 한국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총질과 싸움질이 마구 벌어지지 않는다지만, 언제 어디에서나 인종차별이 버젓이 있어요.


  돌이켜보면, 예나 이제나 학교에서 ‘한국 사회 차별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가르친 적 없다고 느낍니다. 학교에서는 ‘대학 입시 문제 가르치기’에 온힘을 기울이지, 누가 차별을 받거나 누가 따돌림을 받거나 누가 고단한 삶 짊어지는가를 밝히거나 푸는 길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요. 곧잘 지식으로 이러한 대목을 다룬다 하더라도,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문제풀이에 나서지 않아요.


.. 국제사회로부터 남아공이 고립되고 백인으로 구성된 소수 정부에게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회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프리카 백인들은 자신들이 창출해낸 낙원에거 안락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남아공의 백인들은 방어태세를 갖추고 엄청난 돈을 자급자곡 시스템에 쏟아부었고, 유순한 유권자들에게 엄청난 물질적 보상을 해 주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 진정한 의미의 화폐 유통은 소웨토 내에서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소웨토 주민들은 백인 정부에게 세금과 수입의 형태로 수많은 돈을 지불함으로써 자신들을 억누르는 세력을 후원하고 있는 셈이 돼 버린 것이다 ..  (22, 106쪽)


  인종차별은 인종차별로 그치지 않습니다. 계급차별과 신분차별과 학력차별과 지역차별과 남녀차별로 차근차근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차별이니까요. 거꾸로, 사랑도 차근차근 이어져요. 다른 인종을 사랑하든, 다른 계급과 신분과 학력과 지역과 남녀를 사랑하든, 사랑 또한 차근차근 이어집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도 이어지고, 서로를 해코지하는 몸짓도 이어집니다. 서로를 따사롭게 보듬는 손길이나 살가이 바라보는 눈길도 이어지고, 서로를 등지거나 따돌리는 몸짓 또한 이어져요.


  어떠한 삶을 바라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길 걸어가면서 삶을 누릴 때에 아름다운가 하고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연필을 들기 앞서, 붓을 들기 앞서, 사진기를 들기 앞서, 나 스스로 어느 곳에서 어떠한 넋 되어 어떠한 삶을 꽃피우려 하는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참 마땅한 일이지만, 작품을 만들려고 쓰는 글이 아닙니다. 삶을 밝히려고 쓰는 글입니다. 예술을 하려고 그리는 그림이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하면서 그리는 그림입니다. 다큐멘터리 작업 때문에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서로 어깨동무하는 꿈을 노래하는 하루를 즐기는 사진입니다.


.. 우리는 이러한 잔혹한 살인행위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죽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모습이고, 매일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확신했다 … 우리가 없었다면 대학살에 관한 유일한 정보원은 경찰과 정당들의 대변인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 진상조사위원회가 발족되었지만, 이들이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경찰이 자신들의 개입 증거를 모두 없애버렸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러나 보이파통의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 결국 피하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경찰들이 조준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  (95, 120, 125쪽)

 


  서울에 깃을 두며 서울에서 일어나는 정치와 경제와 사회 이야기를 다루는 신문이 무척 많습니다. 이들은 서울에서 일어나는 정치·경제·사회 이야기 다루는 데에도 벅차, 서울 바깥으로는 눈길을 거의 못 돌립니다. 서울 곁 인천 이야기조차 못 다루고, 대전이나 대구나 부산이나 광주 이야기도 거의 못 다룹니다. 무언가 서울보다 커다란 사건이나 사고가 터질 때라야 비로소 취재기자를 보냅니다. 이리하여, 서울에 깃을 둔 숱한 매체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 골골샅샅 이야기를 두루 보듬지 못하고, 한국을 벗어난 이웃나라 이야기를 차분히 들여다보지 못해요.


  우리 식구는 전라남도 고흥에서 살아갑니다. 고흥에서 나오는 종이신문을 가끔 들여다보지만, 고흥에서 나오는 종이신문에서 고흥 이야기를 다룬다고는 못 느낍니다. 전라남도에서 나오는 신문을 면사무소나 읍내 우체국에 가면 들출 수 있는데, 이들 전라남도 신문에서 전라남도 이야기 두루두루 짚거나 보듬는다고는 못 느낍니다. 그렇지만 신문은 날마다 나와요. 신문에는 날마다 온갖 글과 그림과 사진이 실려요.


  모두들 무슨 이야기를 신문에 담을까요. 모두들 신문을 펼쳐 어떤 이야기를 살피나요. 모두들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여다보거나 마음에 담을까요.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차분히 살피는가요. 이웃들 웃고 우는 이야기를 매체나 책에서 깊고 넓게 만나는가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학살 이야기를 다룰 사람은 경찰도 군인도 정당도 공무원도 아니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학살 현장에 찾아가거나 이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사진을 찍는 사람도, 바로 그곳에 찾아가거나 그곳에서 살아갈 때에 비로소 참모습을 마주하면서 참글을 쓰고 참사진을 찍습니다.


.. 사진과 텔레비전의 명백한 취재 자료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민족주의 정치인들은 이 이미지들이 조작된 것이고, 사람들이 죽음과 부상까지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 취재를 가로막는 온갖 제약과 시스템에 맞서 싸우며 폭력사태를 취재하는 것은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했다. 흑인 사진가들은 흑인 언어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던 백인들과 달리 흑인들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했기 때문에, 보다 깊이 있는 취재를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흑인 저널리스트들은 경찰들에게 자주 저지당하거나 구속되었다. 어떤 백인 저널리스트도 피터처럼 아무 이유 없이 18개월 동안이나 구금되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을 잃은 것을 비롯해, 많은 대가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피터는 자신보다 쉽게 성공을 거둔 사진가나 백인들을 결코 원망하지 않았다 … 흑인들은 수십 년 동안의 고통 끝에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백인을 해치면 반드시 엄청난 보복을 불러온다는 것이었다 ..  (126, 156, 160쪽)


  사진 한 장이 모든 참모습을 밝힐 수 있을까요. 글 한 줄이 모든 속내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사진 한 장 감추면 참모습을 숨길 수 있을까요. 글 한 줄 지우면 속내가 안 드러나도록 꽁꽁 틀어막을 수 있을까요.


  사진 한 장 찍으려고 전쟁터에 뛰어드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요. 전쟁터에서 목숨 건사하며 찍은 사진 한 장을 매체에 싣는 사람은 어떤 생각일까요. 전쟁터에 뛰어들어 목숨 건사하며 찍은 사진이 실린 매체를 받아서 읽는 사람은 어떤 뜻을 헤아릴까요.


  사진에 담긴 사람이 눈물을 흘립니다. 사진에 나오는 사람이 웃음을 짓습니다. 사진에 찍힌 사람이 땅바닥에 고꾸라진 채 붉은 핏물 줄줄 흘리며 꼼짝을 않습니다. 사진에 있는 사람이 총칼을 옆구리에 낀 채 누군가를 노려봅니다. 이 사진은 무엇을 말하는가요. 이 사진은 우리한테 어떤 삶을 말하는가요. 이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우리 삶자락에서 무엇을 생각하도록 이끄는가요.


.. 난 충격을 받았다. 평화유지군이었던 이 친구가 우리를 향해 총질을 해댄 것을 지금 인정한 것인가? … 나는 평화유지군들이 우리들에게 총질을 해댄 순간을 떠올렸고, 총을 발사했던 그들과 나와의 관계를 알고 싶었다. 그것은 분명 사고였다고 확신하지만 무언가 더 있지는 않을까? 설사 사고라고 할지라도 저널리스트들의 죽음이나 부상을 악의적으로 즐거워하는 녀석들이 있지는 않을까? 혹은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궁금했다 … 그는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평화유지군들에게 호스텔을 공격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을 때, 자신들이 느꼈던 공포에 대해 묘사했다. 자신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었고, 아무 생각 없이 발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가 마침내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디선가, 어쨌든 …… 우리들 중 누군가로부터 너희 형제를 죽인 탄환이 나왔다. 그 탄환은 바로 우리가 발사한 것이다.” ..  (307, 308, 310쪽)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녁 나라 속살을 밝히려 한 누군가 있기에, 우리들은 한국에서 사진 몇 장과 글 몇 줄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속살을 살짝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 나라 속살을 밝히려 하는 누군가 있으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웃들은 이녁 나라에서도 사진 몇 장과 글 몇 줄로 한국 속살을 살며시 읽을 수 있겠지요.


  사진은 나라와 나라를 넘나듭니다. 사진은 울타리를 허물고 냇물을 가로지릅니다. 사진은 겨레와 겨레를 아우릅니다. 사진은 두꺼운 가림천을 치우고 하늘을 날아오릅니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사진 한 장으로 나타나 널리 퍼집니다. 사랑을 꿈꾸는 마음이 사진 한 장으로 스며들어 두루 퍼집니다.

(1부 마무리. 2부로 이어집니다.)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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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어머니

람타 공부 하러

미국 시애틀에 간 지

오늘로 여드레.

앞으로 열나흘쯤 있어야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1/3이 지났구나.

아이들은 어머니 없는 나날에

차츰 익숙해지면서도

어머니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다만, 울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어머니 미국에 보내려고

비행기삯 바지런히 벌어야 하는 만큼

이모저모 챙기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이랑 덜 놀며

혼자 일에 파묻혀 버린다.

아차, 싶어 일을 그치며

아이들하고 논다.

 

그러나, 이러다가도 곧바로

밥 차려 먹일 때가 다가오고

밥을 먹인 뒤에는

졸린 아이 토닥이며 재우고,

졸리면서 안 자는 아이랑

그림 그리고 이래저래 놀면서

자장노래 부르면서 재운다.

 

재우고 나서는 이불 걷어차면 이불 여미고,

끙끙거리며 쉬 마렵다 칭얼대면

밤오줌 누인 다음

한참 안고 달래고 자리에 눕힌다.

 

어머니 없이 여드레 보내는 아이들

되게 얌전해지고 속이 깊어진다.

어머니 돌아오는 날 기다리며

씩씩하게 보내는 모습 어여쁘다.

 

아버지로서,

어머니 없는 동안 집청소 좀 말끔히 하고프지만

이래저래 마음 쓸 일이 많으니

청소도 좀 더디다.

그래도 이럭저럭 조금 하고,

밭뙈기 흙 뒤집기도 조금 한다.

 

두 아이 모두 재우고 나서

이제 홀가분하게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들 만한가 생각하고 보면,

나도 하루 내내 아이들과 복닥이느라

기운이 쪽 빠져서

머리가 구르지 않는다.

하고 쳇 쳇 쳇 하다가

아이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야지,

뭔 수가 있겠나.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남자(아버지)가 두 아이 도맡으면서

밥 먹이고 빨래랑 청소랑 집일 모두 거느리면서

집살림 꾸리느라 바깥일까지 홀라당 하면서,

어린이집이고 유아원이고 유치원이고 안 보내고

집에서 아이들 놀리고 가르치는 사람은

없으려나? 있을까?

나와 같이 집안일과 아이돌보기 도맡는

아버지 몇 사람 틀림없이

이 나라 어딘가에 있겠지?

아무렴 있겠지?

 

가정주부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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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2 23:18   좋아요 0 | URL
울지 않고 아버지와 ,어머니 오실 때까지 씩씩하게 잘 지내는 사름벼리와 산들보라!
참 착하고 예뻐요~^^
힘드시겠지만, 함께살기님 마음 즐겁고 아름답게 사시니 늘~~보기 좋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파란놀 2013-04-03 04:30   좋아요 0 | URL
저도 씩씩하게 하루 누려야지요... 아아아... @.@

BRINY 2013-04-03 11:39   좋아요 0 | URL
생활인으로서 공감이 팍팍 갑니다.

파란놀 2013-04-03 11:48   좋아요 0 | URL
이궁. 아이들과 지내며
하루는 그야말로 쏜살과 같이 흘러갑니다 @.@
사진을 안 찍고 글을 안 쓰면
몇 해는 훌쩍 지나가서
아무 이야기도 떠올리지 못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해요 @.@
 

종이접기 책읽기

 


  옆지기하고 함께 살아가기로 한 날이 2007년 6월 4일이다. 이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내가 국민학생 적부터 종이접기를 하며 유리병에 모은 몇 가지를 방바닥에 죽 늘어놓았다. 두루미랑 옷이랑 여러 가지 접은 종이꾸러미 담은 유리병은 오뚜기 회사에서 만든 마요네즈병이다. 1980년대 첫머리쯤에 나온 유리병을 이때까지 잘 건사했으니 스무 해 남짓 그대로 둔 셈이었겠지. 여기에다가, 국민학생 때 쇠돈 알뜰히 모아 저금통에 모으기도 했기에, 오래된 저금통을 함께 열어 방바닥에 죽 늘어놓아 보았다.


  나는 이때 다른 무엇보다 ‘어라, 이제 종이두루미 어떻게 접는 줄 생각 안 나네?’ 하면서 스스로 놀랐다. 게다가 유리병에 담은 종이두루미는 옛날 껌종이로 접었는데, 옛날 껌종이는 바른네모 아닌 긴네모라서 종이 꼬다리가 남는다. 그래서 나는 종이 꼬다리로 더 작은 종이두루미를 접곤 했다. 껌종이로 접는 종이두루미도 작지만, 껌종이를 바른네모로 접으며 남는 조그마한 꼬다리로 접는 종이두루미는 훨씬 작다. 그런데 나는 국민학생 때에 그 쪼꼬마한 꼬다리로도 그야말로 쪼꼬마한 종이두루미를 손가락 놀려 접었다.


  허허 웃으며, 다시 종이두루미 접어 볼까 하는데 안 된다. 손가락이 뭉툭해졌기 때문일까. 어릴 적 마음이 안 되기 때문일까. 그러나, 뭉툭해진 손가락이건 어른 마음이건, 스스로 하려 하면 되겠지. 큰아이가 종이접기 하고프다 말하면, 나는 다시 종이접기 익혀서 큰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내가 어릴 적 접은 몇 가지 보여주면서, 큰아이더러 종이접기책 뒤적이며 스스로 접으라 해서야 되겠는가.


  돌이켜보면, 나는 종이두루미 접기를 어머니한테서 배웠다. 어머니는 몇 가지 종이접기를 보여주었는데, 나는 종이비행기나 종이배를 찬찬히 보면서도 따라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종이공 접기도 나는 잘 못했다. 오직 하나, 종이두루미 접을 때에는 잘 되었다. 종이접기에서 어느 접기를 못해서 어느 단계를 못 넘어간 셈이라 할 텐데, 씩씩하게 더 작은 종이에 더 작게 똑같은 것 접기는 곧잘 하면서도 새로운 접기로는 못 넘어가곤 했다. 이런 내 손놀림이나 손짓이라 한다면, 나는 우리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들려주며 무엇을 물려줄 만할까. 우리 아이는 저희 아버지한테서 무얼 보고 무엇을 들으며 무엇을 물려받을 만할까.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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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2 23:11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종이 두루미만 잘 접은 것 같아요.^^
그나저나, 아래의 사진도 이야기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

파란놀 2013-04-03 04:3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appletreeje 님도 종이접기에서 어느 단계에서 넘어가시지 못하셨네요 ^^;;;
옆지기 하는 말이,
그 단계 못 넘어가는 까닭은 스스로 종이접기를
더 잘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더군요.
그 말 듣고 오래도록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구나 싶어 되게 부끄러웠습니다 @.@
 

아름다운 사람들

 


  2007년에 6월 4일 낮, 옆지기하고 나는 도서관에 쓸 걸상을 사려고 동네 가게에 갔다. 등받이 없는 동글뱅이걸상을 여럿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플라스틱으로 만든 동글뱅이 걸상이 하나도 안 무겁지만, 살짝 쉬자 하기에 걸상을 길바닥에 내려놓고는 걸상에 앉는다. 그래, 걸상을 사서 들고 나르니까 다리쉼을 할 적에는 이 걸상에 앉으면 되지. 참 좋구나. 걸상이란 이렇게 좋구나.


  옆지기도 예쁘고, 옆지기 사진을 찍는 나도 예쁘고, 동네 사람들도 예쁘고, 모두모두 예쁘구나. 예쁘면서 아름다운 사람들이고, 아름다우면서 예쁜 사람들이로구나. 즐겁게 웃을 때에 즐거운 삶이고, 예쁘게 춤출 때에 예쁜 삶이며, 아름답게 노래할 때에 아름다운 삶이로구나.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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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2 23:07   좋아요 0 | URL
정말 아름다운 분들이에요...*^^*

파란놀 2013-04-03 04:32   좋아요 0 | URL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빛으로 아름답구나 싶어요
 

버스에서는 잔다

 


  두 아이 데리고 군내버스 타며 읍내로 나갔다 온다. 아이들 그림놀이 할 적에 쓸 빛연필을 두 아이가 서로 분지르는 바람에 제대로 쓰기 어렵기에, 종이를 돌돌 벗겨 쓰는 굵은 빛연필 새로 장만하기로 한다. 조각맞추기도 하나 장만하고, 큰아이 글쓰기 공책도 여러 권 더 장만한다. 과일집에서 과일 몇 가지 사고, 두 아이 나누어 먹을 과자 한 가지 산다. 그러고 나서 다시 군내버스를 타려는데, 자리 하나에 큰아이랑 작은아이 나란히 앉히려 했더니 작은아이가 칭얼칭얼한다. 작은아이가 저는 안아 달란다. 그래, 너 안고 가마.


  군내버스에 빈자리 몇 보이지만, 바로 다음 역인 봉황골에서 할매 할배 많이 타실 줄 뻔히 아니, 빈자리에 앉지 않는다. 할매 할배 빈자리 다 채우고 여럿 서서 가신다. 나는 작은아이 안고 동백마을까지 간다. 이동안 작은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긴 채 잔다. 코코 잘 잔다. 그런데, 동백마을 닿아 가방 메고 내리려 할 무렵, 작은아이가 퍼뜩 깬다. 쳇. 어쩜 너는 버스에서만 자고 버스에서 내릴 때에는 깨니. 집에 가서도 한 시간 즈음 더 자면 얼마나 예쁘니. 집으로 와서 먹으라 한 과자를 평상에 내려놓는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가서 등허리를 편다. 아이구 허리야.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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