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문학아카데미 시선 247
장순금 지음 / 문학아카데미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시와 하루
[시를 말하는 시 17] 장순금,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 책이름 :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 글 : 장순금
- 펴낸곳 : 문학아카데미 (2013.1.10.)
- 책값 : 1만 원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모습이 시 한 줄에 담는 이야기 됩니다. 하루하루 마주하는 모든 모습이 시 두 줄에 담는 생각 됩니다. 하루하루 느끼는 모든 모습이 시 석 줄에 담는 꿈 됩니다. 하루하루 바라보는 모든 모습이 시 넉 줄에 담는 사랑 됩니다.


  시로 담을 수 없는 이야기란 없습니다. 시로 담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면, 스스로 ‘이 얘기는 시로 못 담겠네’ 하고 떠올리는 이야기뿐입니다. 곧, 스스로 쓸 마음이 있으면 어느 이야기라 하더라도 시로 담습니다.


  시로 어느 이야기 한 갈래 담을 때에는 즐겁게 담으면 됩니다. 이런 틀이나 저런 뼈대를 헤아리지 않아도 됩니다. 운율이나 글자수는 따질 까닭 없습니다. 연이나 행을 알맞게 나누어야 하지 않습니다. 시를 쓰고 싶다면, 스스로 하고픈 말 한 마디 길어올리면 돼요. 스스로 하고픈 말 없을 때에는, 이런 틀 멋지고 저런 뼈대 놀랍다 하더라도 ‘시’라 할 수 없어요. 사진 찍는 분들이 멋진 구도나 황금분할 잘 맞추어 작품을 빚는다 하더라도 아무 작품이나 ‘사진’이 못 되는 일하고 같아요. 사진은 손재주나 손놀림이 아니에요. 사진은 작품이 아니에요. 사진은 그럴듯한 겉모습이 아니에요. 곧, 시는 손재주로 못 씁니다. 시는 예쁜 말 섞는대서 시가 아닙니다. 시는 문학작품이 아니에요. 시는 그예 시일 뿐이요, 시는 오직 이녁 삶 사랑하는 이야기입니다.


.. 처음에는 모두 순한 새 것으로, 처음에는 선물로 세상에 왔는데 ..  (평화고물상)


  잘난 하루 없고 못난 하루 없습니다. 자가용을 몰지 않고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다니면 훨씬 많은 삶자락 느끼고 바라보며 가슴에 담아요. 그러나, 자가용 없이 천천히 걸어다닌다 하더라도, 이웃을 사랑하거나 아끼는 마음 없으면, 아무런 모습 내 마음밭으로 스미지 못해요.


  자가용을 몰면서 다닌다 하더라도, 이웃을 사랑하거나 아끼는 마음 있을 때에는, 자동차로 달리며 스쳐 지나가는 짤막한 모습 한 가지에서도, 싯말 가득 길어올릴 이야기를 느껴요. 마음밭 일구면 시밭 일구고, 마음밭 못 일구면 시밭이란 없어요. 마음밭 알뜰살뜰 여미는 하루에 따라, 시밭 날마다 찬찬히 북돋우는 손길로 거듭납니다.


.. 대문 앞 아이들이 가방 메고 가는 꽃길, / 약냄새를 밥내처럼 맡으며 / 아이들의 봄을 숨어서 보다 / 울다 / 거품이 빠져나간 내 봄을 메고 / 아홉 살 지나 첫, 학교 가는 길에 ..  (입춘부)


  스스로 내 하루 돌아볼 노릇입니다. 스스로 누리는 하루가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좋은가 하고 돌아볼 노릇입니다. 또는, 스스로 누리는 하루가 얼마나 고단하거나 따분하거나 슬픈가 하고 되새길 노릇입니다.


  즐거우면 즐거운 빛 감도는 뿌리를 헤아리며 이야기를 꾸립니다. 슬프면 슬픈 빛 어리는 줄기를 살피며 이야기를 엮습니다. 즐거움도 시가 되고, 슬픔도 시가 됩니다. 웃음도 시가 되며, 눈물도 시가 돼요. 살림돈 넉넉한 사람도 시를 써요. 살림돈 바닥난 가난한 사람도 시를 써요. 온몸이 아파 몸져 드러누운 사람이 지구별 곳곳 누비는 나들이 이야기를 시로 써요. 온몸이 튼튼해 바깥일 많이 하는 사람이 집에서 아이들과 복닥이는 이야기를 시로 써요.


  마음으로 꿈을 꾸어요. 마음에 꿈을 담아요. 집에서 집안일만 한대서 시를 못 쓸 수 없어요. 설거지 하는 기쁨, 빨래 삶는 웃음, 비질 하는 재미, 바느질 누리는 나날, 해바라기 즐기며 빨래 말리는 따스함, 아이들 씻기고 함께 놀며 돌아보는 내 지난날, 조그마한 살림집 한 곳에서 쏟아질 시는 그예 끝이 없습니다. 가없이 넓은 시바다요 시하늘이며 시들판입니다.


.. 비타민을 삼켰다 / 목줄기를 타고 동그랗게 식도를 굴러갔다 / ‘내가 너의 비타민이야’ / 비타민 같은 소리가 피곤한 몸속으로 들어오지만 / 살과 피에 닿기도 전에 새나가고 / 알약만 분해되어 / 살과 살 사이 뼈와 뼈 사이 기름을 친다 ..  (종합비타민)


  억지로 시를 짜내지 말아요. 억지로 시를 쓰려 하지 말아요. 이야기를 나누듯이 시를 써요. 내 사랑스러운 아이들한테 ‘너희 엄마는 말이야, 너희를 키울 때에 이런 일이 있었단다.’ 하고 들려주듯이 시를 써요. 쌀을 씻고 냄비에 물을 맞추어 불을 올리는 이야기를 시로 써요. 물고기를 손질해서 굽는 이야기를 시로 써요. 살강을 갈무리하고, 배냇저고리 마련하던 이야기를 시로 써요. 차근차근 시를 써요. 오늘 본 뭉게구름을 시로 써요. 오늘 만난 자전거 아이들을 시로 써요. 오늘 겪은 달빛을 시로 써요. 오늘 찾아온 봄비를 시로 써요.


  등단을 하거나 문학상을 받아야 시가 되지 않아요. 등단을 하거나 문학상을 받으면 아직 ‘작품’일 뿐이에요. 시는 공모전에 내놓지 못해요. 시는 문학비평을 받을 수 없어요. 시는 오직 삶 누리는 사람들 아리따운 하루를 오순도순 나누는 이야기잔치에서 노래하는 사랑스러운 말빛이에요.


.. 네팔의 럭시콜라 마을을 떠나다 / 문득 마주친 하느님도 / 연신 땀을 닦으며 망치로 돌을 깨고 있습니다 ..  (희망 감옥)


  장순금 님 시집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문학아카데미,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즐겁게 쓸 만한 시였으리라 느끼지만, 왜 ‘문학’과 ‘작품’이라는 굴레에 얽매여 ‘이야기’를 놓치고 ‘시’와 멀어졌나 싶어 아쉽습니다. 그냥 이야기를 들려주면 되고, 시를 쓰면 되는걸요. 애써 문학이 되도록 글을 짜맞추지 말아요. 굳이 작품 아니어도 되니, 즐겁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시를 쓰셔요. 문학이 아닌 이야기를 나누고, 작품 아닌 시를 써요.


  우리 삶은 삶일 뿐, 우리 삶은 ‘문화’도 아니요 ‘역사’도 아니며 ‘예술’도 아닙니다. 거꾸로, 문화와 역사와 예술도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붙일 만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 웃고 새로 사랑하며 새로 어깨동무하는 예쁜 사람입니다.


  네팔 럭시콜라 마을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이에요. 그곳 아이들도 하느님이지만, 그곳 아이들과 만난 장순금 님도 하느님이에요. 우리는 모두 하느님이에요. 그곳에 희망과 감옥이 나란히 있다면, 희망과 감옥을 나란히 본 장순금 님 마음자리에도 희망과 감옥이 나란히 있는 셈이에요. 희망과 감옥을 나란히 놓지 말고, 꿈과 숲을 나란히 놓아요. 사랑과 보금자리를 나란히 놓아요. 사람들 가슴속에 곱게 자리한 하느님 고운 빛줄기 느끼면서 맑은 눈길로 시노래 한 가락 불러요. 4346.4.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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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목소리

 


  여섯 살 큰아이가 스스로 그림책을 읽는다. 다만, 그림책에 한글로 적힌 글을 읽지는 않는다. 그림책에 나오는 그림을 바라보며 읽는다. 그림을 보면서 스스로 이야기를 생각해 낸다. 그림에 맞추어 쓰는 글, 또는 글에 맞추어 그린 그림, 이 두 가지를 살피지 않고, 오직 그림만 헤아리면서 그림책을 새로 읽는다.


  아이가 그림책 읽는 목소리 들으면 좋다. 마음이 따스해지고 하루 동안 쌓인 고단함이 스르르 녹는다. 이렇게 씩씩하게 자라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듯 말하는 숨결이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아이 깜냥껏 줄거리를 새로 엮어서 읽는 이야기 들으면 재미있다. 아이 나름대로 이야기를 엮을 때에는 그림책에 적힌 글을 아랑곳하지 않으니 즐겁다. 아이들 그림책이라 하지만, 옳거나 바르거나 알맞다 싶은 한국말로 슬기롭게 글을 쓴 책이 아주 드물다. 아이들한테 그림책에 적힌 글을 읽어 줄라치면, 몽땅 새까맣게 지우고 새로 글을 적어 넣어야 할 판이다. 아이가 한글을 익힐 때가 되니 되도록 그림책 글을 그대로 읽어 주려 하면서도, 영 못미더워 자꾸자꾸 그림책 글을 죽죽 긋고 고쳐서 적어 넣는다.


  아버지가 아이 목소리를 좋아하듯, 아이도 아버지 목소리를 좋아할까. 아이가 아버지한테 그림책 읽어 달라 할 때에는, 한글을 익힌다는 생각이 아니라,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야기를 생각하고픈 마음이기 때문일까.


  잠자리에서 자장노래 부를 적에도, 어떤 노래를 꼭 불러야 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서로서로 목소리를 듣고 나누며 들려주는 즐거움이 크다고 느낀다. 목소리를 나누면서 살내음 나누고, 이야기를 조곤조곤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나누는 삶이겠다고 느낀다. 4346.4.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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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아들이 당신 아버지를 되새기면서, 당신 아버지 둘레에서 있던 일을 하나하나 그러모으고 갈무리한 이야기를 아로새긴 책이다. 그렇구나. 박헌영이라는 분한테 아들이 있구나. 게다가 북녘에도 박헌영 님 다른 아이들 있다 하는데. 저마다 어떤 삶을 꾸릴까. 저마다 어떤 길 걸어왔을까. 독립과 혁명을 함께 이루려 힘쓴 사람 발자국과 함께, 이녁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이 땅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다는 대목이 아주 놀라우며 반갑다. 이제, 우리 나라도 이러한 책이 나올 만큼 조금 무르익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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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트라우마- 그의 아들 원경과 나눈 치유 이야기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3년 4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2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04월 05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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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꽃

 


  꽃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해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본다. 여섯 살 큰아이가 해 그림을 보더니 문득, “하늘에 꽃이다.” 하고 말한다. 하늘에 꽃이라, 그래, 아침놀 물들이며 오르는 해는 아침꽃이고, 저녁놀 퍼뜨리며 지는 해는 저녁꽃이로구나. 그러면, 우리가 마당과 밭자락과 마을에서 늘 마주하는 꽃들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땅햇살이나 흙볕이라 할 수 있구나. 하늘에는 꽃이 있고, 땅에는 해가 있구나.


  아이들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른들 가슴속에는 무엇이 있으려나. 아이들 마음밭 밝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어른들 사랑밭 일구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문학은 언제 어디에서 누가 빚어서, 어느 곳에서 무얼 하며 살아가는 누가 즐기는가. 글은 언제 어디에서 누가 쓰면서, 어느 곳에서 무얼 하며 살아가는 누가 읽는가.


  아이들과 살아가며 글을 쓴다. 아이들 밥을 차려 주면서 글을 쓴다. 세 살 작은아이는 어금니 아직 옹글지 않아, 어머니나 아버지가 밥을 잘근잘근 씹어서 건넨다. 작은아이는 처음에는 스스로 씹어서 먹는다 하더니 으레 꿀꺽 삼키기만 하고, 꿀꺽 삼키기만 하기에 몽땅 똥으로 나오니, 작은아이도 이제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씹어서 줄 때에 더 즐겁게 받아서 먹는다. 몸으로 겪으니 알 테지.


  마음은 마음밭이 되기에 마음은 마음꽃이 되기도 하리라. 마음은 마음바다처럼 넓게 일렁이기도 하기에 마음은 햇살처럼 마음햇살 되기도 하리라.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꽃을 깨달아 글을 한 타래 쓴다. 어버이가 들려주는 말꽃을 좋아하며 아이들이 말문을 튼다. 아이가 노래하는 이야기빛을 맞아들여 글을 한 꾸러미 쓴다. 어버이가 들려주는 말빛을 사랑하며 아이들이 삶을 사랑한다. 4346.4.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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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걷는 고흥 들길 (13.3.30.)
고흥 길타래 7―제비고을 고흥 삶터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시골 아이들은 아주 마땅히 들길을 걷거나 달렸고, 숲길을 오르내리며 풀과 나무하고 사귀었습니다. 서른 해나 마흔 해쯤 앞서는 시골마을마다 아이들 북적거렸을 테고, 스무 해쯤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아이들 웬만큼 복닥거렸겠지요. 1970년대 어느 통계를 보면 포두면에 있는 첨도라는 섬에 국민학생이 백 명 넘었다고 했어요. 그러나, 이제 포두면 첨도는 온통 빈집이 되고, 시골마을 사랑하는 두 분이 새집 짓고 살아갈 뿐, 아이들 목소리나 노랫소리 들을 수 없습니다.


  섬 아닌 뭍에서도 아이들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집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순천이나 광주, 때로는 수원이나 인천이나 부산이나 서울로 보내는 어버이가 제법 많고,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에 도시로 보내는 어버이가 꽤 많으며, 고등학교를 마치면 거의 모두 도시로 나갑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흥 시골마을에서 흙을 만지거나 물을 만지는 젊은이는 거의 찾아볼 길 없어요. 대학교를 가야 하기에 도시에 가거나, 공장이나 회사에서 일자리 잡으려고 도시로 가요.


  시골마을 고흥을 떠나 도시로 간 아이들은 명절날 아니라면 두 번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일이 없습니다. 나중에 예순 살 넘어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하면 ‘귀촌’이나 ‘귀향’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올는지 모르지만, 예순이나 일흔 되어도 도시에서 그대로 뿌리박는 사람이 더욱 많습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마을 일구는 가장 튼튼한 밑힘은 젊은이와 푸름이인데, 정작 고흥 시골마을에서는 시골 아이가 시골에서 뿌리내리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일에는 눈길을 안 두어요. 대학교를 보내는 데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고, 도시에 있는 공장이나 공공기관에 일자리 얻도록 꾀하는 데에 지나치게 마음이 사로잡힙니다.

 

 


  우리 집 두 아이와 조용한 들길을 걷습니다. 이 마을에도 저 마을에도 아이들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면소재지 언저리까지 가면 아이들 모습이 있지만, 면소재지 아이들이라 해서 들놀이를 하거나 숲놀이를 하지는 않아요. 면소재지 편의점에서 놀거나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사먹을 뿐입니다. 면소재지 한켠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조금 뒹굴다가 집으로 돌아가 손전화기 만지거나 텔레비전을 볼 뿐이에요.


  삼월이 저물 무렵부터 들판에 자운영 꽃물 번집니다. 한 송이 두 송이 피어나는 자운영이 고랑마다 고개를 내밉니다. 자운영 꽃물 번지기 앞서 유채꽃 노랗게 피어났으니, 이제 사월 한복판 즈음 되면, 들판마다 유채빛과 자운영빛 흐드러지며 예쁜 꽃무지개 생기겠지요.


  볕 잘 드는 돌울타리 한켠에서 딸기꽃 하얗게 핍니다. 자운영꽃 필 무렵, 들딸기와 멧딸기도 하나둘 하얗게 꽃을 피워요. 멧골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꽃을 피우고, 앵두나무도 발그스름한 빛 살짝 감도는 하얀 꽃 터뜨립니다. 매화꽃 질 즈음 피어나는 앵두꽃잔치 곁에 서면 온몸에 앵두꽃내음 번집니다. 앵두알 붉게 맺히면 앵두알내음 번지고, 앵두꽃 흐드러질 때에는 앵두꽃내음 번져요.


  도화고등학교 앞문 곁에 봄꽃 가득한 나무 우람합니다. 도화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이 봄꽃 기쁘게 누릴 테지요. 고등학교를 마친 뒤 고흥을 떠나 도시로 가면, 봄마다 꽃잔치 벌이는 우람한 나무를 떠올리며 고향을 그릴까요.

 

 

 

 


  논둑 어디나 시멘트로 바릅니다. 아이들과 시멘트 논둑길을 걷습니다. 아이들은 들판 앞에 서서 한참 들여다봅니다. 무엇을 들여다볼까요. 푸릇푸릇 봄풀 들여다볼까요. 냉이꽃 들여다볼까요. 푸른 잎사귀 사이로 볼볼 기어다니는 개미나 거미를 들여다볼까요.


  풀섶 한쪽에서 하얀제비꽃 핍니다. 도랑 바닥도 시멘트로 발라, 가재이고 다슬기이고 살아갈 터 없습니다. 그러나, 시멘트 도랑 바닥이라 하더라도, 큰비 몰아치고 나면 논흙 쓸려서 새롭게 흙바닥 이루어집니다. 새로 생긴 흙바닥에 논생물 다시 찾아올까요. 논생물 다시 찾아들면 가재도 다슬기도 다시 돌아오고, 가재와 다슬기 다시 돌아온 이곳에 개똥벌레 숨결 이을 수 있을까요. 지난해에는 개똥벌레 여럿 만났으니, 올해에도 우리 마을 둘레에서 개똥벌레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꽃을 맺는 갈퀴나물을 뜯습니다. 꽃을 맺기 앞서 신나게 뜯어서 먹었습니다. 꽃이 맺은 뒤에도 즐겁게 뜯어서 먹습니다. 나물이거든요. 볕이 덜 드는 곳에서는 키가 좀 작은 유채꽃 피고, 볕이 잘 드는 곳에서는 벌써 어른 키만 한 유채꽃 핍니다. 꺽다리 유채꽃 옆에는 앉은뱅이꽃이라 할 만한 꽃다지 앙증맞습니다.


  고흥 아이들은, 다른 시골자락 아이들은, 봄날 봄마실 다니면서 봄꽃맞이 얼마나 즐길까 궁금합니다. 제아무리 고3 수험생이라 하더라도, 한껏 흐드러진 봄날에는 학교 수업쯤이야 하루 거른 채 다 같이 가까운 들판을 손 잡고 거닐며 까르르 웃음꽃 터뜨리며 봄나물 뜯어서 도시락 먹으면 얼마나 재미날까요. 아니, 봄날에는 아예 학교수업일랑 그만두고, 날마다 들판에서 들일을 하고 들놀이를 누리면서 들바람 마실 수 있으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자운영 꽃빛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습니다. 생물 교과서에도 미술 교과서에도, 어떠한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들판에서 들일을 하다가 쉬면서 자운영 꽃송이 하나 톡 따서 냠냠 씹어먹어요. 자운영내음 온몸으로 번지며 목마름이 가시고 배고픔도 가라앉습니다.


  이름을 아는 들풀은 이름을 아는 대로 뜯어서 먹습니다. 이름을 아직 모르는 들풀은 네 이름이 무엇일까 헤아려 보며, 내 나름대로 살짝 새 이름 붙입니다. 잎맛과 꽃맛 헤아리면서 풀이름 어떻게 붙이면 어여쁠까 생각합니다.


  하얗게 꽃이 필 적에도 고소하면서 향긋한 찔레꽃이요, 푸릇푸릇 새잎 돋을 적에도 맑으면서 향긋한 찔레잎입니다. 찔레잎을 따고, 쇠뜨기꽃을 뽑습니다. 봄까지꽃이며 자주광대나물이며 마음껏 뜯어서 먹습니다.

 

 

 

 


  나 한 입 먹고 아이 한 입 먹습니다. 들마실을 하니까 들풀을 들밥 삼아 먹습니다. 여섯 살 세 살 어린 아이들은 온 들판 저희 것으로 삼아 뛰놉니다. 우리 집 처마에서 살아가는 제비들이 우리와 함께 들길에서 놉니다. 우리는 땅을 밟고 달립니다. 제비들은 들판 위를 훨훨 납니다. 아이들은 들노래 부르고, 제비들은 하늘노래 부릅니다.


  그런데, 들판에서 만난 제비가 ‘우리 집 제비’인 줄 어찌 아느냐고요? 우리 집 처마 밑에 지난 삼월 십오 일 즈음부터 제비가 다시 왔거든요. 지난해 우리 집 처마에서 새끼를 깐 제비들이 올해에는 아주 일찍 찾아왔어요. 새벽부터 저녁까지 마당에서 늘 바라보는 ‘우리 집 제비’들이라서, 들판에서 만나도 곧장 알아볼 수 있어요. 너희도 우리하고 같이 놀고 싶구나, 하고 손을 흔듭니다. 이제 보름쯤 더 지나면 이웃집에도 봄제비 찾아올 테고, 고흥 마을 어디에나 제비춤잔치 벌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예쁜 시골마을 고흥에서 한국에 가장 내로라할 만큼 뽐내며 내놓거나 나눌 아름다운 한 가지를 꼽는다면, ‘우주 산업’ 아닌 ‘숲과 들과 제비’가 되리라 느껴요. ‘우주관문 고흥’ 아닌 ‘제비고을 고흥’으로 다시 태어나, 고흥 아이들이 고흥 아끼며 사랑할 길을 곱게 열 수 있기를 빕니다. 4346.4.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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