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해 책읽기

 


  서울에서 스무 해 넘은 아파트 사잇길 걷는다. 지은 지 스무 해 넘다 보니, 처음 지으며 ‘옮겨 박은’ 나무들 모두 스무 해라는 나날을 살아냈다. 스무 해라는 나날은 나무로 치면 손톱 끝 때처럼 아주 짧은 겨를일 뿐이지만, 제법 키 자라고 줄기 굵으며 잎사귀 넓적하고 꽃망울 흐드러진다.


  서울사람은 알까? 저 아파트 한 채 두 채보다 이 아파트 사이사이 자라는 스무 해 넘은 나무들이 훨씬 빛나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줄? 그러나, 나중에 아파트 재개발이니 재건축이니 하는 얘기 나돌면서 이 시멘트집 허물 적에 나무를 제대로 파내어 살뜰히 옮겨 다른 데에서 살릴 만한 건축계획이나 도시계획은 없으리라 느낀다. 내가 몰라서일는지 모르나, 나는 아직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마흔 해 묵은 아파트 나무’라든지 ‘쉰 해 먹은 아파트 나무’를 잘 건사해서 옮겨심어 살렸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헌 아파트를 헐고 새 아파트 지을 때에는 언제나 ‘아파트 나무’ 잘라내어 버리기만 한다. 건축설계를 하든 토목공사를 하든, 건축과 토목 일을 하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나무한테 마음을 두지 않고 눈길을 기울이지 않는다. 마흔 해 묵은 나무를 옮겨심으면 아무리 새로 지은 아파트라 하더라도 머잖아 예순 해 살아낸 나무가 되고, 쉰 해 먹은 나무라 하면 일흔 해 살아가는 나무가 될 뿐 아니라, 헐고 새로 지은 아파트를 또 헐 무렵에는 백 해 즈음 살아내는 나무가 된다.


  아직 도시사람은 나무 소담스러운 줄 모르는데, ‘아파트 나무’라 하더라도 백 해를 살아낼 수 있다면, 이제부터 이 나무 때문에 도시는 숲이 될 수 있다. 백 살 넘은 나무가 줄지어 있는 동네라면 이 동네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보금자리 될 만하다.


  오늘날 시골을 둘러보면 안다. 조선 끝무렵, 개화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해방,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 거치며 시골자락 나무들 온갖 뭇칼질에 시달리고 들볶인 나머지, 깊은 멧골에서조차 백 살 넘은 나무 찾아보기 어렵다. 나무를 심어 꽃을 보든 열매를 얻든, 나무 한 그루 적어도 백 살은 살아내고 삼백 살쯤은 숨쉬면서 우리 곁에서 푸르게 뿌리내리도록 북돋아야지 싶다. 집짓는 소나무 되자면 섣불리 가지치기 하지 않으며 곧게 자라도록 돌보아 삼백 살이나 오백 살은 살도록 지켜야 한다. 마을나무 되자면 천 살이나 이천 살쯤은 살아내어 둘레에 풀밭을 마련하거나 평상 하나 놓을 수 있어야 한다.


  나무 한 그루는 오천 살을 살아간다. 오천 살이란 역사학자들 말하는 한겨레 발자국하고 같은 길이가 된다. 반 만 해라는 발자국이 되게 긴 듯 역사학자들 말하지만, 고작 나무 한 그루 살아내는 길이만 할뿐이다. 나무 한 그루는 한겨레 발자국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나라 어디에 한겨레 발자국 고스란히 지켜보며 살아낸 오천 살 먹은 나무 있는가. 천 살 먹은 나무조차 몇 안 된다.


  나무가 오래오래 살아가도록 보살피지 않으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마음밭 얼마나 깊고 그윽할 수 있는가를 잊는다. 나무가 푸르게 뿌리내리도록 마음 쓰지 않으면서, 사람들은 이웃과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씨를 스스로 잃는다. 서울 아파트마을 한복판을 걷다가 생각한다. 고작 스무 해 남짓 살아낸 ‘아파트 나무’라 하더라도, 스무 살 넘은 나무 있는 이 아파트마을은 조금이나마 ‘사람 깃들 만’한 동네가 되겠다고. 4346.4.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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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2 02:06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저도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에는 15년동안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처음 입주했을 때는 너무나 황량했던 곳이 세월이 지나 나무들이 무성해지니 아주 아이들이 뛰어 놀만한 곳이 되었지요. 오히려 지금 사는 이곳이 연말이면 남은 예산을 처리하랴 그러는지 멀쩡한 나무들과 흙길을 파헤쳐 버리고 시멘트길로 만들곤 해서 오히려 전에 살던 아파트 숲길이 오히려 더 그리울 때가 많아요.
방학동 신동아 아파트라면 아직은 아파트 사이 사이길의 나무길들이 괜찮지요?
왜 그리 사람들은 나무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쉽게 버리곤 할까요?
나무가 없어지는 만큼, 사람들의 본성도 그만큼 잃어 버려 갈텐데요..

파란놀 2013-04-22 02:13   좋아요 0 | URL
어릴 적부터 나무를 제대로 못 보고 자란 탓에
나이 들어 어른이 된다 하더라도
나무한테서 푸른 숨결 받아먹지 못하고 말아,
나무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담스러운가를
삶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올해 새로 심은 나무 여섯 그루에
찬찬히 새싹 돋아
날마다 즐겁게 쳐다보고 쓰다듬어 주어요~
 

집꽃 기다리기

 


  마당이 있고, 꽃밭이 있으며, 텃밭이랑 뒷밭이 있으니, 집안에 꽃그릇 따로 없어도 눈이 환하고 즐겁다. 마루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면 온통 푸른 물결이요, 사이사이 꽃봄이 무르익는다. 새봄에는 새봄대로 새 꽃송이 펼쳐지고, 한봄 무르익으면서 한봄에 피어나는 꽃나무 꽃망울 한껏 터질락 말락 한다.


  흙 밟는 마당이 있어, 흙에서 풀이 자란다. 풀 자라는 밭자락 있어, 밭 둘레로 열매나무 쑥쑥 크며 새잎과 새꽃 베푼다. 꽃이 피어나는 시골집에서 꽃 피어나기를 기다리며 봉오리와 꽃망울 찬찬히 지켜보는 맛 남다르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와 함께 꽃몽우리 시나브로 터지려는 모습을 바라본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였다가 천천히 겨울눈 맺더니, 이윽고 겨울눈 열리고 푸른 잎사귀 돋으면서, 마알간 꽃잎 벌어진다. 하루하루 아주 더디 이루어지는 꽃잔치이다.


  시골집은 풀집이면서 꽃집이다. 시골집에서 피어나는 꽃은 시골꽃이면서 집꽃이다. 시골마을은 풀마을이면서 꽃마을이다. 시골마을에서 흐드러지는 꽃은 마을꽃이면서 또 무슨 꽃일까. 우리 집 밭자락에서 자라는 모과나무에 바야흐로 발그락발그락 새 꽃송이 벌어진다. 하루쯤 있으면 활짝 터질까. 이틀쯤 있으면 한꺼번에 꽃잔치일까. 사흘쯤 있으면 우리 집에 모과꽃내음 물씬 감돌까. 4346.4.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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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2 02:09   좋아요 0 | URL
아 모과꽃 몽우리가 이렇게 생겼군요.
어서 활짝 핀 모과꽃을 보고 싶네요. ^^

파란놀 2013-04-22 02:35   좋아요 0 | URL
활짝 핀 데는 사진 찍기 힘든 데만 있어요 ㅠ.ㅜ
하루나 이틀 뒤에는 사진 찍기 좋은 자리에도
활짝 피리라 생각해요!
 

산들보라 혼자 버스에

 


  세 살 산들보라는 버스를 혼자서 타고 오른 적 아직 한 번뿐이다. 읍내에서 버스를 탈 적이든 마을에서 버스를 탈 때이든, 늘 아버지 품에 안겨 버스에 오른다. 키 많이 작아, 높다란 버스 계단을 혼자 타고 오르자면 퍽 오래 걸리기에, 여느 할매나 할배보다 세 살 산들보라 버스타기는 아직 만만하지 않다. 꼭 한 번 산들보라가 혼자 버스에 탄 날은, 버스에 탈 손님이 우리 식구만 있던 날이다. 먼저 누나가 씩씩하게 버스에 오르고, 동생 산들보라도 아버지 손 안 빌고 혼자 탄다며 잽싸게 척척 손으로 발판 짚고 손잡이 붙잡으며 다부지게 오른다. 4346.4.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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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2 02:11   좋아요 0 | URL
ㅎㅎ 귀여운 산들보라의 모습을 보며
한밤중에 슬며시 웃고 있습니다.~^^

파란놀 2013-04-22 02:34   좋아요 0 | URL
네, 저 궁둥이 보셔요 ㅋㅋ
 

진달래술, 진달래지짐

 


  고흥 시골마을에서 지내며 따로 해 먹지 않던 진달래술과 진달래떡을 서울로 나들이를 가서 뜻밖에 서울 아파트마을 한복판에서 먹는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서 그림 그리며 지내는 강우근 님 댁을 찾아갔다가, 이녁 살림집 있는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낮고 조그마한 숲에서 자라는 진달래나무 볼그스름한 꽃송이를 한밤에 함께 톡톡 따서는 막걸리잔에 띄워 진달래술을 마시고, 이듬날 아침에는 아파트마을 텃밭에 가서 밀반죽에 진달래 꽃잎 놓아 진달래지짐이랄는지, 진달래떡이랄는지, 하나하나 조그맣게 부쳐서 먹는다.


  진달래 꽃송이 띄운 막걸리잔 곁에는 갯기름나물무침 놓는다. 우리 집 뒷밭에서도 자라는 갯기름나물이 이렇게 서울 한복판 조그마한 살림집 밥상에 나물로 올라오네. 갯기름나물무침 먹는 다른 살림집 얼마나 있을까. 우리 집에서는 갯기름나물도 다른 나물도 날푸성귀로 먹는데, 살짝 양념한 갯기름나물은 또 새로운 맛이라고 느낀다.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진달래맛이 있고, 막걸리에 띄운 진달래 꽃송이는 막걸리한테 새 내음 베풀며 새 내음 퍼뜨린다. 밀반죽에 얹은 진달래 꽃송이는 밀반죽맛에 진달래 빛깔과 무늬를 더해 새로운 숨결 나누어 준다.


  서울 한복판에서 갯기름나물 자라기는 힘들 테지만, 시골 어느 마을에서 어느 할매가 꺾은 갯기름나물 서울로 날아와서 나물 한 그릇 된다. 서울 한복판이라 하더라도 낮고 조그마한 숲 있으면, 이곳에서 진달래 꽃송이 한 줌 얻으며 진달래술이랑 진달래지짐 누릴 수 있다. 곁을 볼 수 있으면 누린다. 둘레를 살필 수 있으면 함께한다. 4346.4.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갯기름나물 뒤에는 제가 고흥에서 따서 가져간 유채잎.

 

 

 

 

 꽃지짐 빚는 손은 강우근 님 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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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2 02:13   좋아요 0 | URL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
봄날의 진달래술과 진달래지짐.

파란놀 2013-04-22 02:35   좋아요 0 | URL
서울에서도 공원에 가서 슬쩍 몇 송이 따서 먹으면 돼요~ ^^;;;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 죽음의 땅 일본원전사고 20킬로미터 이내의 기록
오오타 야스스케 지음, 하상련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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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55

 


살아가는 사람들과 사진
―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오오타 야스스케 사진·글, 하상련 옮김
 책공장더불어 펴냄,2013.3.10./11000원

 


  국민학교 다니던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1984년인가 1985년이었는데, 담임 교사가 인천하고 서울 옛이야기 한 자락 들려줍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처음 설 적, 어느 사람이 ‘서울(수도)’로 삼을 곳으로 마땅한 자리를 알아보며 인천이 참 좋겠다 여기며 멧자락 숫자를 세는데, 인천은 꼭 구백아흔아홉 개 있었답니다. 멧자락 천 개 되어야 비로소 서울로 삼겠는데 아무리 세어도 하나 모자라는 바람에 안 되겠다며 접고는, 다른 자리 알아보며 오늘날 ‘서울’을 서울로 삼았다고 해요.


  어릴 적 이 이야기 들으면서 믿거나 말거나 아니겠느냐 여기지 않았습니다. 참 그러네 하고 여겼습니다. 이 이야기 아니더라도 인천은 멧자락 많아요. 지리산이나 설악산이나 한라산이나 백두산처럼 높은 멧자락 아니지만, 나즈막한 멧자락 참 많아요. 높다란 멧자락 아니니 쉽게 올라가서 놀 만합니다. 높다란 멧자락 아니지만, 얕은 뒷동산이라 하더라도 꼭대기나 언덕받이에 오르면 동네를 훤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어느 동네이든 계단이 참 많습니다. 계단 많고 비탈길 많다 보니, 헉헉거리며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가 뒤를 문득 돌아보면 이제껏 올라온 계단길 내려다보입니다. 새삼스럽게 동네를 다시 살펴봅니다. 높은 멧자락 오르면 얼마나 멀리 바라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높디높은 멧골에서는 얼마나 머나먼 데까지 환하게 바라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꼭대기 집 언저리에서 놀 적하고, 아래쪽 집 둘레에서 놀 적하고 바람맛이 다르다고 느낍니다. 트이는 눈길도 다르지만, 마시는 바람과 먹는 햇살도 다르다고 느낍니다. 다만, 어릴 적에는 이렇게만 느꼈어요. 더 깊이 내다보지는 못했어요.


.. 구조 활동을 하면서 현장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우리 집 고양이 이야기나 올리던 조용한 블로그가 비참한 사진으로 채워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후쿠시마에서 본 비참한 개와 고양이는 사고만 없었다면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을 그런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버려지고 굶어죽는 비극의 주인공일 리가 없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일본에는 원전이 54기나 있다. 원전에 대해 모두 침묵해 버리는 비정상적인 이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  (5∼6쪽)

 


  국민학교를 다니며 동무들하고 골목길에서 놀며 골목 구석구석에서 돋는 풀이나 꽃을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꽤 많이 보았어요. 공놀이를 하면서, 구슬치기를 하면서, 땅금놀이를 하면서, 곳곳에서 자라는 풀이나 꽃은 으레 보지만,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지나쳤어요. 민들레쯤 되어야 꽃이 피는 줄 깨닫고, 다른 조그마한 꽃은 꽃인 줄조차 못 느꼈어요. 중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새벽에 학교로 붙들리고 늦은 밤 열한 시에야 비로소 학교에서 놓여나니, 골목길 거닐어 학교를 오갔어도, 골목마다 피어나던 골목꽃을 살피지 못했어요. 골목꽃뿐 아니라 골목나무도 못 알아보았어요. 골목사람들 빨래 너는 눈부신 빛깔을 깨닫지 못했어요.


  고등학교 마치고 고향인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지내고, 충청도 멧골로 들어가서 살았어요. 이러다가 서른 몇 살 즈음 되어 인천으로 돌아왔어요. 열아홉 살에 떠난 고향을 서른서너 살 즈음 돌아왔는데, 열너덧 해 사이에 달라진 모습보다는 열너덧 해 동안 고스란히 이어지는 모습을 곳곳에서 참 많이 보았어요.


  그동안 달라진 모습이라면, 내 어릴 적 나처럼 골목을 뛰놀던 아이들이 거의 몽땅 사라진 대목이에요. 이제 아이들은 집에서 자라지 않아요. 이제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자라요. 이제 아이들은 동네에서 놀지 않아요. 이제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나 공부방에서 놀다가는, 집으로 바삐 돌아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쳐다봐요.


  그동안 안 달라진 모습이라면, 골목꽃 골목나무 골목빨래 골목집 골목문패처럼, 골목사람 삶자취입니다. 그리고, 빈집이 하나둘 늘면서 골목밭이 넓어져요. 빈집을 헐고 돌과 쓰레기를 골라서 골목밭을 일구더군요. 요즈음 인천 골목동네에서 아이들 만나기란 참 힘들지만, 다른 도시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일 텐데, 고즈넉하면서 어여쁜 빛깔과 무늬는 쉽게 마주할 수 있어요.


.. 교차로에 개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선뜻 다가오는 녀석. 목걸이를 하고 있는 개. 누군가가 키우던 개였을 것이다. 일단 배를 채우라고 사료를 내밀자 입에 슬쩍 댔다가 이내 내게 기대 온다. 배고픔보다 외로움이 컸던가 보다 … 돼지 축사는 더 끔찍했다. 겹겹이 쌓인 돼지 사체 사이로 간신히 살아남은 돼지가 보였다. 살아남은 돼지들은 서로 의지하며 힘없이 조용히 기대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내버려진 채 죽음을 기다리는 생명들 … 오래전부터 인간은 가축을 사육해 왔다. 나도 고기를 먹어 왔고,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 내 앞의 지옥을 만든 것은 원전 사고이다. 그러나 이 지옥을 만든 것은 근본적으로 원전을 만든 인간이다 ..  (17, 34, 54쪽)

 


  고향사람으로서 찍는 사진일 수 있지만, 이보다는 동네사람으로서 찍는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난 곳이라서 더 애틋하게 찍는 사진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살아가는 곳이라서 즐겁게 살내음 부비면서 찍는 사진이라고 느껴요.


  고향이나 ‘살아가는 동네’가 아닌데 찾아가서 찍는 사진이라면 어떤 사진이 될까요. 이때에는 다큐사진이 될까요. 관광사진이나 여행사진이 될까요. 아니면, ‘구경하는 사진’이 될까요.


  고향이니까 더 예쁘게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동네이니까 더 아리땁게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고향이 아니니 아무렇게나 찍어도 되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동네가 아니니 함부로 찍어도 되지 않습니다.


  고향인 곳이든 처음 찾아간 곳이든, 언제나 똑같은 마음결 되어 찍어야 사진이 됩니다. 살아가는 동네이든 마실하며 찾아간 동네이든, 늘 똑같은 마음자락 되어 찍어야 사진이 되지요.


  내가 이름을 아는 아무개를 찍어야 활짝 웃는 얼굴을 사진으로 찍지 않아요. 내가 이름을 모르는 아무개를 찍으니 방긋 웃는 얼굴을 사진으로 못 찍지 않아요. 그러나, 내가 이름을 아는 아무개라 하지만 속삶과 속내와 속사랑을 사진으로 못 찍기도 해요. 내가 이름을 모르는 아무개라 하더라도 속삶과 속내와 속사랑을 사진으로 알뜰히 찍기도 해요.


.. 가사오무라는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이다. 펼쳐진 논밭 사이로 깨끗한 냇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일본의 풍경 그대로인 곳이다. 그런데 워너전으로부터 30킬로미터 이내인 이 마을이 계획적 피난 구역으로 지정되어 주민들이 모두 피난을 가 버렸다. 목가적인 전원마을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  (40쪽)

 


  사진을 찍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삶을 일구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사람을 사귀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서울사람을 더 잘 찍지 않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제주마을을 더 잘 찍지 않습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부산골목을 더 잘 찍지 않습니다. 강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강진시골을 더 잘 찍지 않아요.


  살아가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는 마음과 사진을 읽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누구하고 살아가려 하느냐 하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살아가려 하느냐 하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오오타 야스스케 님이 빚은 사진책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책공장더불어,2013)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오오타 야스스케 님은 어떤 마음이 되어 후쿠시마로 찾아가서 사진을 찍었을까요. 오오타 야스스케 님은 어떤 마음이 되어 후쿠시마에서 들짐승이나 집짐승을 찾아다녔을까요.


  후쿠시마에는 사람이 싹 사라졌습니다. 죽어서 사라지기도 했고, 죽고 싶지 않아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후쿠시마에서는 사람들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아니, 후쿠시마에서는 사람들 얼굴이나 몸짓은 몽땅 사라졌고,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과 손길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살던 짐승들, 사람들이 고기로 먹으려고 키우던 짐승들, 또 사람들 손길을 받으며 자라던 나무와 사람들 손길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스스로 숲을 이루고 들을 이루던 풀을 살펴볼 수 있어요.


.. 나는 계속 용서를 빌며 사진을 찍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진을 찍는 것밖에 없었다. 사진을 찍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그게 지금 죽어 가는 소들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신음하듯 울부짖으며 셔터를 눌렀다 … 돼지들이 가까이 다가오기에 가져간 개 사료를 주며 기운 차리고 살아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다음날 밤에 가 보니 모두 살처분 당해 있었다 ..  (56, 98∼99쪽)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늘 이야기를 오늘 사진으로 찍습니다.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오늘 모습을 오늘 그림으로 그립니다.


  어제를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모레나 글피를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꼭 오늘 모습만 사진으로 찍습니다.


  웃는 얼굴이건 찡그린 얼굴이건, 바로 오늘 짓는 얼굴빛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웃음을 찍든 눈물을 찍든, 바로 오늘 찍는 사진이에요.


  외치듯이 찍는 사진입니다. 울부짖는 외침을 찍는 사진입니다. 노래하듯이 찍는 사진입니다. 따사롭고 포근하게 노래하면서 찍는 사진입니다. 밥을 짓듯이 찍는 사진입니다. 빨래를 하고 걸레질을 하듯이 찍는 사진입니다. 아이들 품에 안아 자장자장 재우듯이 찍는 사진입니다. 꽃을 바라보듯이 찍는 사진이요, 나무를 쓰다듬듯이 찍는 사진입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붙잡아서 찍는 사진입니다. 마음밭에서 자라나는 이야기를 수수하게 다스리며 찍는 사진입니다. 마음결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를 꾸밈없이 보듬으며 찍는 사진입니다.


.. 이 시대 원전 지역은 대도시의 식민지이다. 원전이 없으면 정말 전력 대란을 맞을까? 원전이 멈춘 일본에서 전력대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그 말이 거짓임을 증명했다. 에너지에 의존해서 살던 우리 삶의 방식, 진실을 말하지 않는 자들에게 의문을 제기할 때이다 ..  (132∼133쪽)

 


  삶을 생각하기에 사진을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하기에 사진을 사랑합니다. 삶을 생각하지 못하면 삶을 속속들이 사진으로 찍지 못합니다. 삶을 사랑하지 못하면 삶을 따사롭거나 넉넉하거나 즐겁거나 곱게 사진으로 찍지 못합니다.


  오오타 야스스케 님은 후쿠시마에 ‘남겨져야’ 하던 짐승들을 떠올리고 생각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을 빚어서 내놓습니다. 이 책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마음이 되어 이 책을 읽을까요. 구경하는 사진찍기 아닌 살아가는 사진찍기로 책 하나 태어났어요. 구경하는 사진읽기 아닌 살아가는 사진읽기로 이 책 하나 만날 수 있는가요. 구경하는 삶읽기 아니요, 스쳐 지나가는 사랑읽기 아닌, 어깨동무하는 삶읽기와 손 맞잡는 사랑읽기로 이 책 하나 만날 수 있나요.


  후쿠시마 짐승들도, 후쿠시마 사람들도, 이 나라 짐승들도, 이 나라 사람들도 모두 한 가지를 바라요. 다 함께 어깨동무하며 사랑할 수 있는 삶을 바라요. 서로서로 아끼며 보살피는 따사로운 삶 이룰 수 있기를 꿈꾸어요. 사진 하나로 빛을 살리고, 글 한 줄로 빛을 살찌웁니다. 4346.4.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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