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깃발

 


  요 몇 달 사이,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푸른 빛깔 깃발이 눈에 확 뜨이도록 부쩍 늘어났다. 서울에는 아직도 나뭇잎 푸르게 빛나지 못하기에 푸른 빛깔 깃발은 한결 눈에 띄고, 시골에서는, 또 부산 같은 남녘땅 큰도시에서는, 푸르게 푸르게 새 잎사귀 돋는 찻길 나무들 사이사이 펄럭이는 푸른 빛깔 깃발 한껏 눈에 뜨인다.


  깃발은 무엇을 말할까. 깃발 하나로 어떤 이야기 들려줄 수 있을까. 깃발을 내거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일까. 깃발을 앞세우는 무리나 모임이나 기관이나 단체는 저마다 어떤 마음일까.


  새로운 마음 되자면서 깃발을 걸까. 새로운 마을 일구자면서 깃발을 높이는 셈일까. 찻길 옆 거님길 걷는다. 자동차 지나다니는 소리로 시끄러운 찻길 옆 거님길 걷는다. 이 길바닥에 굳이 돌을 깔고, 이 돌을 구태여 틈틈이 갈아야 하는지 헤아려 본다. 흙길을 걷거나, 흙길에서 돋는 들풀 밟으며 길을 걸을 수는 없을까.


  돈이 있는 사람이나 공공기관이나 회사는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 돈이 적거나 없는 사람이나 모임은 어떤 일을 하려는 돈을 바라거나 꿈꾸는가.


  온 나라 곳곳에 새봄맞이 푸른 깃발 펄럭이게 하려고 들이는 품과 돈과 겨를이라면, 이 품과 돈과 겨를을 살짝 다른 곳에 들일 때에 얼마나 재미난 삶 짓고 마을 지으며 노래 부를 수 있을까 곱씹어 본다. 거리마다 ‘새 마 을’ 세 글자 나부낀다. 4346.4.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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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쥐 털가죽
미야자와 겐지 지음, 이경옥 옮김, 김선배 그림 / 우리교육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59

 


하늘을 먹고 땅을 마시고
― 빙하쥐 털가죽
 미야자와 겐지 글,김선배 그림,이경옥 옮김
 우리교육 펴냄,2006.5.10./1만 원

 


  미야자와 겐지 님이 쓴 글에 김선배 님이 그림을 붙인 《빙하쥐 털가죽》(우리교육,2006)을 읽습니다. 사람과 숲과 목숨과 짐승과 이웃과 삶터를 찬찬히 아우르는 살가운 이야기에 푸른 빛 넘치는 그림이 잘 어울리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살짝 궁금합니다. 아름다운 글에 아름다운 그림 엮어 그림책 하나 빚었는데, 이 그림책 읽을 아이들은 마음속으로 어떤 꿈을 꿀 만할까요. 미야자와 겐지 님 글에 꼭 그림을 붙여야 할까요. 미야자와 겐지 님 글에는 어떤 그림을 붙일 때에 아름다울까요.


.. “또 빙하쥐 목 부분 털가죽으로 만든 옷도 있다네.” “대단하십니다. 빙하쥐 목 부분 털가죽은 비쌀 텐데요?” “450마리 분이야. 어떤가. 이 정도면 괜찮겠나?” “괜찮고말고요.” “나는 말이야, 주로 검은여우를 잡을 생각이라네. 검은여우 털가죽을 900장이나 가져오겠다고 내기를 했거든.” ..  (17쪽)

 


  밥을 먹습니다. 내가 먹는 밥 한 그릇에는 나락알 아마 천쯤 깃들지 않을까요? 아니, 오백이나 삼백 알쯤 깃들까요? 어쩌면 내 밥그릇에 깃든 밥알은 450알쯤 될는지 모릅니다.


  시골집에서 밥을 차리며 풀을 뜯습니다. 옆지기와 나란히 풀을 뜯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풀을 뜯기도 합니다. 쑥도 뜯고 돗나물도 뜯으며, 미나리와 별꽃나물과 갈퀴나물과 갈퀴덩굴을 뜯습니다. 소리쟁이도 뜯고 고들빼기도 뜯으며, 좀꽃마리와 유채잎과 민들레잎과 부추잎과 초피잎을 뜯습니다.


  나락 거두어 껍질 벗긴 쌀알로 지은 밥을 먹는 내 몸은 들판에서 봄 여름 가을 살아낸 숨결로 이루어집니다. 겨울 이기고 봄에 돋은 풀을 반찬으로 먹는 내 몸은 겨울내음과 봄바람 깃드는 숨결로 새삼스럽습니다.


  식구들과 함께 읍내로 마실을 가서 읍내 어느 밥집에 들러 바깥밥 사먹을 때에는, 바깥에서 사먹는 밥이 내 몸으로 스며들어 내 몸 한 자리를 이룹니다. 내가 먹는 밥은 언제나 내 몸입니다. 내가 마시는 물은 늘 내 몸입니다. 내가 들이켜는 바람은 노상 내 몸이에요.


  읍내 한쪽 귀퉁이에서 구백 해 가까이 살아온 느티나무 곁에 서서 옅푸른 느티잎 톡톡 따서 먹습니다. 느티꽃 피고 지는 이맘때 느티잎은 매우 보드라우면서 싱그러운 맛입니다. 느티잎 훑으며 몸으로 받아들일 적마다, 권정생 할아버지가 어린 나날 느티떡 해 먹으며 굶주림을 이겼다고 하는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서울마실을 하다가 어느 아파트마을 한쪽 조그마한 뒷동산에서 자라는 진달래나무 보고는 진달래잎 몇 따서 먹습니다. 진달래잎은 내 몸으로 스며들어 내 살결이 되고 피가 되며 숨결로 다시 살아납니다. 부산마실을 하면서 어느 언덕배기 조그마한 공원에서 자라는 사철나무 보고는 새로 돋는 사철나무잎 뜯어 먹습니다. 사철나무 푸르디푸른 잎사귀는 내 몸으로 젖어들며 내 살갗이 되고 머리카락이 되며 발톱이 되어요.


  시골집에서 아이들과 해바라기하며 뛰놀 적에 내 마음은 고스란히 아이들 마음과 만나서 하나가 됩니다. 서울이나 부산이나 인천이나 순천이나 어디에서나 반가운 님들 마주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을 적에 내 마음은 시나브로 좋은 이웃들 마음과 만나서 하나가 됩니다. 마음으로 품는 생각이 내 삶으로 드러납니다. 마음으로 담는 생각이 내 말로 나타납니다. 마음으로 받아안는 생각이 내 눈길과 손길과 발걸음이 됩니다.

 


.. “어이, 곰들이여! 너희들이 한 일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우리도 어쩔 수가 없어. 살아가려면 옷을 입어야 하지 않겠나. 너희들이 물고기를 잡는 것과 같아. 하지만 앞으로는 너무 지나치지 않게 조심할 테니 이번만은 용서해 다오.” ..  (34쪽)


  미야자와 겐지 님은 어떤 마음 되어 이야기 한 자락 글로 남겼을까요. 미야자와 겐지 님 글을 읽은 김선배 님은 어떤 마음 되어 이야기 한 자락 그림으로 붙이자고 생각했을까요. 《빙하쥐 털가죽》은 어떤 그림책으로 아이들이 누릴 만할까요. 아이들은, 또 어른들은 이 그림책 하나 펼치면서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사랑을 나눌 때에 아름다울까요.


  사람들은 왜 밥을 먹을까요. 사람들은 어떤 밥을 왜 먹을까요. 사람들은 어떤 밥 한 그릇 어떻게 먹으려고 어떤 일을 어느 곳에서 하는가요. 사람들은 어떤 밥 한 그릇 생각하면서 이녁 일거리를 찾고 이녁 놀잇감을 살피며 이녁 보금자리를 보듬을까요.


  하늘을 먹는 사람입니다. 땅을 먹는 나무입니다. 하늘을 마시는 사람입니다. 땅을 마시는 벌레입니다. 하늘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땅을 나누는 풀입니다. 하늘을 먹으며 하늘사람 됩니다. 하늘을 마시며 하늘빛 품에 안습니다. 하늘을 나누며 하늘사랑 빛냅니다.


  누군가는 빙하쥐 사백쉰 마리를 잡아죽여 털가죽 얻은 다음 옷 한 벌 짓습니다. 누군가는 모시풀 한 아름 꺾어 모시줄기에서 실올 얻은 다음 옷 한 벌 짓습니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생각 그러모아 삶을 짓겠지요. 누군가는 따사로운 생각 갈무리하며 삶을 지을 테지요. 그리고 또 누군가는? 어떤 삶을 생각하며 어떤 삶 짓는 하루 될까요? 4346.4.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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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4-23 11:26   좋아요 1 | URL
"빙하쥐 사백쉰 마리를 잡아죽여 털가죽 얻은 다음 옷 한 벌 짓습니다" - 끔찍하군요.
밍크코트가 생각나는군요. 밍크코트 하나 만들기 위해서 70마리의 밍크를 죽여서
만든다고 했던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인간의 이기심으론 하지 못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파란놀 2013-04-24 04:22   좋아요 1 | URL
이 동화에서 미야자와 겐지 님이 말하고자 하는 대목을
그림 그리신 분이 조금 더 깊이
못 짚으며 그림을 그렸다고 느껴요.

그래도, 이만큼 나올 수 있는 그림책도
한 권쯤 있으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더 헤아려 보면,
빙하쥐 털가죽뿐 아니라...
'실치포' 같은 것도 있고...
참 많지요...
 

박물관도 미술관도 도서관도

 


  유럽 어느 나라에 있다는 널따란 박물관은 몇 날 며칠 들여 돌아보아도 다 돌아보지 못할 만큼 볼거리 많다고 한다. 이 박물관 찾아가서 이 박물관에 깃든 유물을 후다닥 훑는다 하면, 박물관마실 자알자알 했다 할 만할까. 어느 미술관에 깃든 그림은 몇 날 아닌 몇 달 동안 들여다보아도 다 볼 수 없도록 많으리라. 이 미술관에 깃든 그림을 자가용 싱싱 몰아서 휘리릭 훑고 지나가면 그림마실 잘잘잘 했다 할 만할까. 도서관에 책이 100만 권이 있다 하든 10만 권이나 1만 권 있다 하든, 이 책들 꽂힌 책시렁 휘 둘러보면 도서관마실 실컷 했다 할 만할까.


  자가용을 타고 지나가면 박물관에도 미술관에도 도서관에도 스며들지 못한다. 자가용을 몰고 제주섬 한 바퀴 돈다 한들, 또 자가용을 몰아 서쪽 바닷가와 남쪽 바닷가와 동쪽 바닷가를 한 바퀴 돈다 한들, ‘돌았다’라든지 ‘보았다’라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어디를 어떻게 돌았다 할 만하고 어디에서 무엇을 보았다 할 만할까. 어딘가를 마실한다고 할 적에는 자가용도 자전거도 아닌 두 다리로 땅을 밟았다는 뜻이다. 두 다리로 땅을 밟으며, 오래도록 풀밭에 앉거나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했다는 뜻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보았다 할 때에는 하루 이틀 한 달 한 해 찬찬히 지켜보며 봄 여름 가을 겨울 물씬 느꼈다는 뜻이다.


  책을 한 차례 주욱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살폈기에 책읽기 마쳤다 할 만한가. 책읽기란 글자읽기인가 속살읽기인가 줄거리읽기인가 알맹이읽기인가. 아니면, 책 하나 빚은 사람들 삶과 넋과 꿈과 사랑과 믿음과 마음을 읽을 때에 책읽기라 할 만한가. 헌책방거리나 헌책방골목 죽 한 번 돌아봤기에 헌책방 구경 잘 한 셈일까. 헌책방 한두 곳에서 책 한두 권 장만해 보았기에 헌책방 맛과 멋과 내음과 무늬 흐뭇하게 받아먹었다 할 만한가.


  밥은 한 끼니만 먹으면 그만이지 않아. 날마다 꾸준하게 먹어야 밥이다. 숨은 한 번만 들이켜면 되지 않지. 숨은 날마다, 아니 때마다 들이쉬고 내쉬고 잇달아 해야 비로소 숨이다. 물은 한 모금만 마시면 끝이지 않다고. 내 몸을 살피며 알맞게 틈틈이 마실 때에 참말 물이다.


  책이란 무엇인가. 책 한 권이란 무엇인가. 책읽기란 무엇인가. 책을 갖춘 책방이란 무엇인가. 책방마실은 어떻게 해야 책방마실인가. 책읽기는 어떻게 할 때에 책읽기인가. 삶과 사랑과 사람은 서로 어떻게 맺고 이으며 어깨동무하는가. 4346.4.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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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아름다운 책 하나 만납니다.

 

아름다운 손길로 쓰다듬고
아름다운 눈길로 가다듬어
아름답게 빛나는 책터 있기에

 

누구라도 책 하나에 깃든
아름다운 이야기빛
맛나게 받아먹습니다.

 

아름답게 살고 싶은 꿈이
아름답게 어깨동무 하는 마음 되어
아름답게 품앗이 하는 사랑 되지요.

 

흙에서
나무에서
풀에서
바람에서
햇살에서
빗물과 냇물에서
이윽고 사람한테서

 

책 하나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꽃 읽습니다.

 


4346.4.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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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책은 읽으려고 삽니다. 내 마음이 고프니까 읽는 책은 아닙니다. 내 마음이 즐거우니까 읽는 책입니다. 이리하여, 책은 선물하려고 삽니다. 내 살가운 이웃과 동무들 즐거운 삶에 어여쁜 노래씨앗으로 깃들기를 바라면서 책 하나 더 장만해서 둘레에 선물합니다. 한 권은 내가 읽을 책으로 사고, 다른 한 권은 선물할 책으로 삽니다.


  내가 읽을 책으로 한 권 사면서 한 번 읽습니다. 이웃 한 사람한테 한 권 선물하면서 두 번째 읽습니다. 동무 한 사람한테 한 권 선물하면서 세 번째 읽습니다. 한 번 읽고 책시렁에 둔 책을 새삼스레 들추며 네 번째 읽습니다. 기쁘게 읽은 책과 얽혀 느낌글 하나 쓰려고 다섯 번째 읽습니다. 느낌글을 마친 뒤 찬찬히 여섯 번째 읽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언젠가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차근차근 되읽겠지요.


  책은 내 마음 사랑하는 길 헤아리려고 읽습니다. 책은 내 좋은 이웃과 동무들 저마다 이녁 마음밭 사랑하는 길에 길잡이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마음빛 됩니다. 4346.4.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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