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긴 빨래

 


  잠을 자는 방을 치우며 쓸고 닦다가 큰아이가 숨긴 빨래 두 점 본다. 큰아이가 마당에서 흙놀이 개구지게 한 다음 슬쩍 벗어서 한쪽 구석에 던져 놓은 듯하다. 큰아이로서는 숨길 마음은 없었을 터이나, 흙옷 벗고는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뒤, 벗은 옷을 잊었지 싶다.


  구석퉁이에서 며칠쯤 묵었을까. 흙자국 손으로 복복 문지르고 비비지만 흙기운 잘 안 빠진다. 하는 수 없지. 오늘 빨고 다음에 더 빨 때에 흙내 가시라 하지 뭐. 날이면 날마다 흙하고 뒹굴며 노는데 흙무늬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머스마 둘 낳아 돌본 우리 어머니는 나와 형이 ‘숨긴 빨래’를 얼마나 자주 많이 오래도록 빨면서 하루를 보내셨을까 돌아본다. 4346.4.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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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에

 


  시골은 저녁 일고여덟 시 되어도 이내 군내버스 끊어진다. 아니, 일고여덟 시 되면 읍내나 면내 가게는 하나둘 문을 닫는다. 아니, 일고여덟 시 되면 웬만한 가게는 모두 문을 닫고, 길바닥에 좌판 펼치는 아지매와 할매는 거의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택시를 부른다. 읍내부터 우리 마을 어귀까지 달린다. 새까만 밤하늘 바라본다. 캄캄한 밤길 숲과 들을 바라본다. 택시 창문 스르르 내린다. 낮은 지붕 작은 마을 위로 별빛 반짝반짝 환하다. 시골에는 가로등이라는 전깃불 없어도 되는걸. 별빛이 얼마나 밝고 달빛이 얼마나 환한데. 시골사람은 등불 하나 없어도 밤길 잘 걷는데. 시골마을은 굳이 불 밝힐 까닭 없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서 하루를 맑게 일구는데.


  택시가 돌아간다. 가방을 질끈 짊어지고 논둑길 걷는다. 개구리 노랫소리 가뭇가뭇 듣는다. 이틀 밤 부산에서 지내고 사흘만에 돌아오니, 그새 개구리 많이 깨어났구나. 이제 하루가 다르게 개구리들 더 깨어나고 더 밤노래 들려주리라. 머잖아 밤이고 낮이고 아침이고 개구리 모둠노래로 온 마을과 들과 숲 빛나리라.


  땅에서는 개구리 노래한다. 나무에서는 멧새 노래한다.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 마룻바닥 콩콩 뛰며 노래한다. 얘들아, 너희 아버지 별밤에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4346.4.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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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5 12:31   좋아요 0 | URL
별밤에 가방을 짊어지고 개구리 노랫소릴 들으며
아이들이 마룻바닥 콩콩 뛰며 노래하는 집으로..논둑길 걸으며 돌아가시는
아버지, 함께살기님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낮은 지붕 작은 마을 위의 반짝반짝,하는 밤하늘도 보이구요..

파란놀 2013-04-25 12:34   좋아요 0 | URL
그 그림을 언제나 appletreeje 님 보금자리에서도
환하게 그려 보셔요~~~
 

신현림 사진책

 


  그림을 그리려다가 시를 쓰고, 시를 쓰다가 사진을 배우다가는, 사진을 찍으며 시를 쓰는 신현림 님 시집을 읽고 사진책을 읽으며 산문책을 읽는다. 문득 생각한다. 신현림 님은 이녁 스스로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그림과 글과 사진을 생각하는데, 신현림 님 책을 펴내는 출판사에서는 이 그림과 글과 사진을 얼마나 사랑하면서 종이에 앉혔을까. 《사과밭 사진관》 펴낸 책마을 일꾼은 사과밭에서 사과꽃 바라보며 사과내음 마셨을까. 《빵은 유쾌하다》 펴낸 책마을 일꾼은 바닷가에서 바닷바람 쐬며 바닷바람 마시다가는 들판에서 들볕 쬐고 들풀 뜯어 먹으면서 신현림 님 글과 사진을 마주했을까. 글 쓰는 사람하고 함께 들마실 즐기면서 책 엮을 만큼 느긋하며 넉넉한 삶 누리는 책마을 일꾼 늘어나면 좋겠다. 사진 찍는 사람이랑 같이 숲마실 즐기면서 책 빚을 만큼 한갓지며 아름다운 삶 누리는 책마을 일꾼 태어나면 좋겠다. 종이로 묶어 인쇄하고 제본해서 새책방 책시렁에 꽂아야 ‘책’이라 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삶을 수수한 손길로 살가이 쓰다듬을 때에 바야흐로 샘물 같은 이야기 흐르고 새봄 같은 이야기 자란다. 4346.4.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http://blog.aladin.co.kr/hbooks/5204987

(사진책 <사과밭 사진관> 느낌글. 편집이 퍽 아쉽다고 느낀 책이다. 그래서 별점이 셋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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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5 12:38   좋아요 0 | URL
저도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과 더불어 <빵은 유쾌하다>를 즐겁게 읽었어요.
그런데 <사과밭 사진관>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고, 책 제목도 좋았는데 서점에서 이 책을 넘기다 보니 왠지..뭔가 아쉬워서 그냥 나온 기억이 납니다.
정말 편집도 많은 영향을 지니는 듯 해요.

파란놀 2013-04-26 07:08   좋아요 0 | URL
네, 그래요.
사진책뿐 아니라... 시집도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읽는 맛이 확 달라지곤 해요.

그렇기 때문에, 책을 빚을 때에는
편집과 디자인에도 여러모로
마음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지요...
 

고흥에 닿다

 


  부산에서 대구 거쳐 순천 지나 고흥 접어든다. 과역면 스칠 즈음 창밖으로 달빛 하얗다. 아직 해는 넘어가지 않아 하늘은 파르스름 하야스름. 시외버스 탄 몸이지만 바람맛 다르다고 느낀다. 보드랍다. 조용하다. 시골마을 나무와 들풀과 봄꽃이 조곤조곤 속살거리며 저녁 맞는다. 4346.4.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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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잎

 


가을은
알록달록 가랑잎
샛노란 나락
산들바람에 실어
선물합니다.

 

봄은
푸릇푸릇 나물
산뜻한 첫꽃
살랑바람에 담아
베풉니다.

 

겨울은
새빨간 동백꽃
차고 하얀 눈타래
된바람에 감싸
보냅니다.

 

여름은
어떤 이야기
글월 한 닢으로
띄울까요.

 

유채잎 씹고
봄볕 마시는
밭자락에서
호미질 놀이하며

 

동생하고 속닥속닥
소꿉놀이 합니다.


 

4346.3.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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