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소와 작은 유산들 - 김지연 사진집
김지연 사진 / 눈빛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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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57

 


웃음을 남기는 사진
―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
 김지연 사진·글
 눈빛 펴냄,2013.4.16/29000원

 


  사진을 찍습니다. 즐겁게 웃으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슬프게 울고 싶어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싸움터나 전쟁터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굶주린 이웃 모습을 널리 알려 사람들 마음 움직이려고 하는 사진을 찍는다면, 이때에는 슬프게 울고 싶어 사진을 찍는다 하겠지요.


  숲길을 걷다가 사진을 찍습니다. 멧봉우리에 올라 사진을 찍습니다. 바닷가에 서서 사진을 찍습니다. 너른 들판 바라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이 환하게 트이는 곳에서 빙그레 웃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봄날 씨앗 한 톨 심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을 실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가을날 열매 거두어들이며 사진을 찍습니다. 꿈을 노래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여름날 뭉게구름 올려다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이야기 조곤조곤 나누듯 사진을 찍습니다. 겨울날 눈밭에서 뒹굴며 사진을 찍습니다. 까르르 웃음 터뜨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맨 처음 만든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사진이 널리 퍼진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 되어 사진기를 손에 쥘까요.


  자전거를 맨 처음 만든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오늘날 사람들은 어떤 마음 되어 길을 달릴까요.


  사진기를 쥐거나 자전거를 달리거나, 또 밥을 짓거나 아이들 기저귀를 빨래하거나, 사람들은 누구나 늘 같은 마음 되리라 느낍니다. 풀 한 포기 돌보듯 나무 한 그루 돌봅니다. 아이 한 사람 보살피듯 이웃 한 사람 보살핍니다. 흰종이에 정갈한 글씨로 이야기 적바림해서 글월을 띄우듯, 사진기 손에 쥐어 한 장 두 장 찍는 동안, 가슴속에서 자라나는 사랑과 꿈 적바림하려는 마음이지 싶어요.


.. 저는 사진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굳이 말이나 글로 장황하게 떠들 것이라면 이미지로 형상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429쪽)

 

 

 


  밥을 차려 아이들과 함께 먹습니다. 아이들은 배부르게 먹고 나서 저희끼리 뛰어놉니다. 논흙을 퍼서 마당으로 옮기더니, 마당에서 흙놀이를 합니다. 마당에서 잡기놀이도 하고, 자전거놀이도 합니다. 이것저것 손에 닿는 대로 놀잇감 됩니다. 달리면 달리기 되고, 뛰면 뜀뛰기 됩니다.


  아이들 노는 소리를 들으면서 밥상 앞에 앉아 만화책을 읽습니다. 아이들 남긴 밥을 먹다가는, 나중에 아이들이 출출할 때에 더 먹으라 생각하며 아이들이 남긴 밥을 다 비우지 않습니다.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합니다. 기지개를 켜고, 다시 만화책을 들춥니다. 아이들 노는 모습 지켜봅니다. 유채꽃 노란 송이마다 잔뜩 달라붙는 벌을 바라봅니다. 벌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듣고, 들새와 멧새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커지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고, 풀이 자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작은아이는 숟가락질부터 하다가, 두 돌을 앞두고 바야흐로 젓가락질에 재미를 붙입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누나도 모두 젓가락질을 하니, 저도 젓가락질 하고 싶겠지요. 젓가락질은 아직 어려울 테니 숟가락이나 찍개를 쓰더니,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젓가락을 씁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그래, 작은아이로서는 밥자리에서 젓가락만 쓰려 한 때가 오늘 아침이 처음이네. 밥상머리 곁에 둔 사진기를 쥡니다. 작은아이 젓가락질 모습 열 장 남짓 사진으로 담습니다. 큰아이가 서툰 젓가락질 익숙해지기까지 수백 수천 장 찍던 사진을 떠올립니다.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젓가락질을 합니다. 작은아이한테도 남겨 줄 ‘첫 젓가락질 밥먹기’ 사진을 요모조모 살펴 찍습니다. 큰아이 젓가락질 모습 찍던 때에는 미처 헤아리지 않거나, 그때에는 안 찍어 본 새로운 눈높이로 작은아이 모습을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습니다.


.. 우리 어린 시절에 학교는 절반 이상이 놀이터였다 ..  (353쪽)

 


  웃고 싶어서 사진을 찍고, 울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 우리들은, 이야기를 남기려고 사진을 찍는구나 싶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꿈꾸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꾸준히 사진으로 찍으면서, 스스로 마음속에 오래고 한결같은 삶넋 북돋웁니다. 사랑하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사진으로 찍으면서, 스스로 마음속에 차분하고 너른 사랑씨앗 심습니다. 꿈꾸는 이야기를 살몃살몃 사진으로 찍으면서, 스스로 마음속에 따사롭고 포근한 꿈날개 펼칩니다.


  문학을 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즐기려고 쓰는 글입니다. 예술을 하려고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지 않아요. 1등을 하거나 기록을 세우려고 운동경기를 하지 않아요. 즐거움을 누리려고 글을 써요. 기쁨을 나누려고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요. 땀흘리는 보람을 맛보면서 운동경기를 하지요.


  교육 목적에 맞추어 아이들과 놀지 않습니다. 훈육이나 보육 때문에 아이들을 놀리지 않습니다. 어떤 지식이나 사상을 얻어야 하니 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 자격증이나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하기에 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 삶을 빛내고, 사랑을 나누며, 꿈을 이루는 길이 아름답다고 느껴 하나하나 배우고 책을 읽어요.


  문학일 까닭이 없는 글이지요. 예술일 까닭이 없는 그림이에요. 문화일 까닭이 없는 사진입니다. 오직 삶이 되는 글이요, 사랑이 되는 그림이고, 꿈이 되는 사진이에요.


.. 내가 시골로 들어가기 전에는 생활 주변에 있는 회사나 관청의 직책, 즉 회장 사장 전무 부장 과장 등 아니면 높으신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변호사 의사 등이 관심 있게 눈에 들어왔고, 또 그것이 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직책인 줄 알았다. 이장이라니! 아직도 그런 직함이 있었던가 싶었다. 그런데 시골로 들어오면서 이장이 하는 일이 참으로 놀라웠다 ..  (210쪽)

 

 

 

 


  전라북도 진안에서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를 꾸리던 김지연 님은 전라북도 전주로 사진터를 옮겨 ‘서학동 사진관’을 일굽니다. 정미소를 ‘두레박물관’이라 할는지 ‘시골박물관’으로 삼아 시골마을 살림살이를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이장님 이야기도, 이발소 이야기도, 용담댐 이야기도, 보따리 이야기도, 조그마한 방 한 칸 이야기도, 모두모두 사진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사진 한 장에 삶 한 타래 담아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사진 두 장에 사랑 한 자락 실어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사진 석 장에 꿈 한 가지 품으며 들려주는 이야기예요.


  김지연 님 사진은 예술도 문화도 기록도 역사도 아닙니다. 아주 마땅하지요. 김지연 님 스스로 이녁 사진은 예술이나 문화나 기록이나 역사라 여기지 않거든요. 김지연 님은 스스로 즐겁게 살아가는 길벗으로 사진을 곁에 두어요. 김지연 님 살아온 발자국을 사랑하고, 김지연 님을 둘러싼 이웃들 삶을 사랑합니다. 아름답구나, 좋구나, 예쁘구나, 즐겁구나, 환하구나, 따스하구나, 하고 느끼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찬찬히 담아요.


.. 사진 공부를 하던 어느 날, 베허 부부의 사진을 보고 단번에 질리고 말았다. 사진으로서 예술성이 어떻고 하는 문제는 내 추론으로는 버거운 일이었고, 우선 그 엄격성, 단호함, 단순함, 획일성, 그리고 긴 시간과 많은 장소에 대한 이야기 등이 참으로 지루하게 느껴졌다 ..  (153쪽)

 


  사진은 무엇일까요. 사진으로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요. 사진으로 무엇을 이룩할 때에 꿈을 이룬다고 할 만할까요.


  사진은 왜 기록을 한다고 여기는가요. 기록을 한다면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 되어 어떤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진이 되는가요.


  아이들 싱그럽게 자라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일은 ‘기록’이라 해야 할까요. ‘역사’나 ‘문화’나 ‘예술’ 같은 이름표를 굳이 붙여야 할까요.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면서 영양소라든지 요리라든지 뭔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즐겁게 먹고, 알맞게 먹으며, 배불리 먹으면 좋다고 여길 뿐입니다. 아무렇게나 먹이지 않으나, 철분이니 단백질이니 탄수화물이니 열량이니 하고 따지지 않아요. 나는 내 아이들이 어버이한테서 사랑 담아 차린 밥을 받아서 먹을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입니다. 나는 오늘 하루 아름답게 누릴 수 있는 길을 생각해요.


  쑥을 뜯으며 쑥맛을 생각하지요. 꽃마리와 돗나물 뜯으며 꽃마리맛이랑 돗나물맛을 생각해요. 민들레잎 뜯으며 이 민들레잎에 서린 푸른 숨결 생각합니다. 차츰차츰 봉오리 단단하게 여무는 후박꽃 올려다보면서 이 후박꽃 흐드러지게 피어나면 얼마나 고운 빛 우리 집에 드리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마늘쫑 뽑을 때에는 뽕뽕 소리와 마늘줄기에서 피어나는 싸한 냄새를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소나무를 찍어 사진예술 빛낼 수 있을 테고, 누군가는 마늘밭에서 마늘쫑 뽑는 손길을 찍어 사진삶 나눌 수 있어요. 누군가는 골목길을 찍거나 도시 한복판을 찍어 사진문화 뽐낼 수 있을 테고, 누군가는 씨앗 한 톨 흙에 심으면서 사진꿈 펼칠 수 있어요.


.. 어떤 사람들은 나를 추억을 찍는 사진가라고 이야기한다. 시대에 뒤처진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감정을 사진을 빌어서 말하는 사람이라 여긴다 … 물론 여기에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것을 나 혼자 생각하고 있으면 향수지만, 모두와 함께 공유하면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된다 … 간혹 이발소 주인은 반문한다. 당신 혼자 이 사진을 찍고 다닌다고 해서 역사에 기록되는 것도 아닐 텐데 뭐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하고 다니느냐고. 그렇다! 역사에 남을 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을 함께 공유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  (154, 155쪽)

 

 


  사진은 어디에서나 찍습니다. 사진관이나 스튜디오에서만 찍어야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집에서도 들에서도 밭에서도 찍는 사진입니다. 돌쟁이 아이를 찍어도 사진이고, 아리따운 모델을 찍어도 사진입니다. 가난한 나라 찾아가서 가난한 사람들 찍어도 사진이고, 여느 마을 여느 아이들 늘 마주하듯이 살포기 찍어도 사진입니다.


  미국 어느 우람한 도서관에 찾아가서 찍어도 사진이겠지요. 내 보금자리에서 내 아이들하고 그림책 읽으며 찍어도 사진이에요.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운동선수 찍어도 사진이겠지요. 우리 아이들 우리 마당에서 뛰노는 모습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두 장 찍어도 사진이에요.


  단추를 눌러 파일을 만들 때에는 아직 파일입니다. 파일 하나마다 이야기를 담아 나눌 수 있으면, 이때부터 사진이라는 옷을 입습니다. 단추를 눌러 필름에 그림을 앉힐 때에도 아직 필름입니다. 필름 한 장마다 이야기를 얹어 함께할 수 있으면, 이때부터 사진이라는 이름을 얻어요.


  두툼한 책으로 파일이나 필름을 묶었다 해서 모두 사진책 되지 않습니다. 어떤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보여주는 모습마다 이야기 새록새록 깃들지 않으면 사진책 되지 않아요. 으리으리한 전시장에 값진 틀로 끼워 내걸어 잔치마당 열어야 사진전시 되지 않아요. 사진 하나하나 이야기 감돌며 서로 얼크러져 한 동아리 흐름을 이룰 때에 바야흐로 사진잔치라는 이름 쓸 수 있습니다.


.. 그동안 크고 작은 변화를 거치면서 다져진 감수성으로 작은 일상의 풍경 속에서 겪어 온 기억들을 소박하게 정리하려고 한다 … 예전에는 동네마다 다른 물맛이 있었기에 콩나물, 두부, 만두, 막걸리 등의 맛이 달랐다. 큰 공장에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그 무엇이 이제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  (101, 103쪽)

 

 


  김지연 님 사진에는 김지연 님 사진삶 있습니다. 김지연 님 사진에는 김지연 님 사진사랑 있습니다. 김지연 님은 이녁 사진꿈을 하나둘 보여줍니다. 김지연 님은 이녁 사진길을 씩씩하게 걷습니다.


  어느 훌륭하다는 사진작가하고 닮아야 하는 김지연 님이 아닙니다. 어느 대단하다는 사진교수한테서 배워야 하는 김지연 님이 아닙니다. 사진기 다루는 손길이라든지, 사진작가 뒷이야기쯤이라면 사진학교에서 배울 수 있어요. 그러나,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 일구면서 다 다른 사진 사랑하는 길은, 늘 스스로 깨우치고 돌아보면서 배워요.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삶이듯,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사진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일구는 삶이듯, 날마다 새롭게 일구는 사진이에요.


  다시 말하자면, 김지연 님은 다른 사람들한테 사진을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한테서 사진을 배울 수도 없고, 다른 사람한테 사진을 가르칠 수도 없어요. 다만, 서로서로 다른 삶을 놓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서로 다른 삶을 마주하면서 저마다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하고 헤아립니다. 서로서로 다른 삶마다 얼마나 다른 사진 태어나는가 하고 놀라면서 기쁘게 어깨동무를 합니다.


  마을 백 군데 있다면, 백 군데 물맛과 막걸리맛과 밥맛이 있어요. 사진작가 백 사람 있으면, 백 사람 사진맛과 사진삶과 사진사랑과 사진꿈이 다 다르겠지요. 백 가지 사진빛이 환하게 어우러져요.


  더 눈부신 사진 없고, 덜 환한 사진 없어요. 더 돋보이는 사진 없고, 덜 돋보이는 사진 없어요. 김지연 님은 언제나 김지연 님 삶을 추스르고 보듬습니다. 그럴밖에요. 김지연 님은 김지연 님 하루를 살아가는걸요. 김지연 님 사진을 사랑하고, 김지연 님 이야기를 김지연 님 손놀림과 눈썰미로 사진 하나에 싣는걸요.


..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만이 확장하고 변화하고, 생산하고 소비하고, 짓고 부수고, 흥하고 망하고, 절망과 희망을 노래한다 … 시골 정미소에서 더 이상 쌀을 빻지 않고 한 귀퉁이에서 참기름, 들기름을 짜는 장사를 하는 남자가 이야기했다. “시골에 사는 일이 가끔 무서운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고. 희망이라고는 없어요.” 그는 어떤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  (81, 82쪽)


  사진책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눈빛,2013)은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 발자국을 432쪽에 걸쳐 그러모읍니다. 열 해 남짓 한 발자국을 고작 432쪽으로 갈무리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전주 ‘서학동 사진관’ 새롭게 일구는 손길과 꿈으로 지난 발자국을 찬찬히 갈무리합니다. 사진책 이름처럼 “작은 유산들”이 되는 사진이요 삶이며 사랑이라 할 수 있고, ‘작다’라느니 크다라느니 하는 모양새를 넘는 사진이요 삶이며 사랑이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유산’이라느니 무엇이라느니 하는 이름이나 틀을 아우르는 사진이요 삶이며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그저 사진일 뿐이니까요. 사진유산 되어야 사진이나 유산이지 않아요. 사진은 그예 사진이에요. 사랑하는 삶일 때에 사진이고, 삶을 사랑하는 눈빛일 때에 사진입니다. 사랑으로 삶을 일구면서 사진을 사랑스레 일구고, 삶을 사랑 가득 채우면서 사진에 얹는 이야기를 온통 사진으로 채웁니다.


  사진을 찍으면 기록이 될까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글쎄, 사진을 찍으면 기록이 될까요? 아마 누군가는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삼을 수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으며 웃음을 남겨요. 누군가는 사진을 찍으며 사랑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으며 꽃노래 흐드러지게 부릅니다. 김지연 님 사진찍기는 어떤 삶짓기일까요. 김지연 님은 어떤 삶노래 부르고 싶어 사진하고 살갑게 사귀는 하루를 누릴까요. 김지연 님은 삶을 어떻게 사랑하기에 사진하고 어깨동무하는 이야기를 이처럼 적바림하고 싶을까요. 4346.4.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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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9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살기님의 호흡,같은 훌륭한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오월에는 이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을 소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야겠습니다.
늘 좋은 글과 좋은 책들 좋은 사진들..감사드려요. *^^*

파란놀 2013-04-29 21:26   좋아요 0 | URL
이 책은 김지연 님이 그동안 내놓은 여러 사진책 이야기를
한 자리에 그러모았어요.

김지연 님 다른 사진책을 하나하나 사서 모아도 좋고
(저는 도서관을 하니까 그렇게 합니다 ^^;;)
이 도톰한 작은 책 하나로
열 몇 해 발자국을 찬찬히 살펴도 좋아요.

사진 좋아하거나 사진길 걷고 싶은 분들은
이 책으로 여러모로 좋은 생각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군내버스 책읽기 3

 


  군내버스는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와 푸름이와 어린이 들이 탄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자가용 있는 사람은 군내버스를 안 탈 뿐더러, 군내버스 지나다니는 때를 모른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겠다고 삶터 바꾼 이들 가운데, 자가용 없이 군내버스로 이곳저곳 오가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시골에 살면서 곰곰이 생각한다. 시골살이 첫째는 두 다리로 걷기이다. 시골살이 둘째는 자전거 타기이다. 시골살이 셋째는 군내버스 타기이다. 시골살이 넷째는 시골택시 타기이다. 이러고 난 뒤에 비로소 자가용 장만할 수 있겠지.


  자가용 장만해서 모는 일이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자가용한테 지나치게 기댄다. 걸어도 되고, 자전거를 타도 되는데, 게다가 군내버스와 택시가 있는데, 자가용한테 너무 기댄다.


  운전대 붙잡고 아스팔트 찻길이나 다른 자가용만 바라보는 틀에서 벗어나자. 운전대 놓고 아이 손을 잡자. 아스팔트 찻길 아닌 숲을 바라보자. 다른 자가용 쳐다보지 말고 아이 눈망울과 한솥지기 볼우물 바라보자. 자가용에서 내려, 들내음을 맡자. 자가용은 고이 자라 하고서는, 들풀을 뜯자. 자가용은 가끔 한 번 타고, 여느 때에는 들길을 걷자.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서는, 다른 군내버스로 갈아타서 이웃마을로 나들이를 간다. 호젓한 시골마을에서 내리며 ‘군내버스 타는곳’ 둘레 참 예쁘다고 느낀다. 떠나는 군내버스 꽁무니를 사진으로 한 장 담고, 돌아갈 군내버스 탈 곳 언저리를 사진으로 두 장 담는다. 군청에서 돈을 들여 지은 ‘군내버스 타는곳’도 나쁘지 않지만, 마을사람 울력으로 짓고 손글씨로 정갈하게 적은 ‘군내버스 타는곳’이 한결 환하게 빛난다. 앞으로 서른 해만 지나도, 또는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만 지나도, 이 조그마한 쉼터는 아름다운 ‘생활문화유산’ 될 테지. 4346.4.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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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68) 변신의 1 : 변신의 시간

 

“변신의 시간이니?” 엄마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키르스텐 보이에/박양규 옮김-아빠는 전업 주부》(비룡소,2003) 52쪽

 

  같은 한자말 가운데에도 일본 한자말과 한국 한자말이 있습니다. ‘가족(家族)’이 일본 한자말이라면, ‘식구(食口)’가 한국 한자말입니다. ‘현관(玄關)’은 일본 한자말이고, ‘문간(門間)’이 한국 한자말이에요. 어차피 한자말이니 어느 쪽을 쓰든 달라질 없다 여길 수 있고, 영국사람과 미국사람이 ‘같은 영어’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영어를 쓰듯, 한국사람도 한국 삶자락과 알맞도록 찬찬히 가다듬을 수 있어요. 보기글에서는 “현관문을 열고”보다는 “대문을 열고”라든지 “문을 열고”라고만 적어도 됩니다.


  ‘변신(變身)’이라는 한자말을 생각해 봅니다. 이 한자말 뜻은 “몸의 모양이나 태도 따위를 바꿈”입니다. 한국말로 쉽게 풀어내자면 ‘바꿈’이거나 ‘몸바꿈’이거나 ‘모습 바꿈’입니다. 누군가는 이 같은 한자말 스스럼없이 쓸 수 있을 테지만, 누군가는 이 같은 한자말 굳이 안 쓸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한자말 없이 말삶 곱게 일구는 사람이 있고, 이러한 한자말에서 홀가분하게 풀려나며 말밭 넓고 깊게 돌보는 사람이 있어요.

 

 변신의 시간이니
→ 변신하는 시간이니
→ 바뀌는 시간이니
→ 확 달라지는구나
→ 확 달라졌는걸
→ 새 사람이 되었네
 …

 

  한자말 쓰느냐 마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한자말 ‘변신’을 쓰더라도 말틀 잘 가누면 됩니다. 곧, “변신의 시간” 아닌 “변신하는 시간”이나 “변신 시간”처럼 적으면 돼요. 말넋 고이 추스르지 못하면서 토씨 ‘-의’까지 붙이면 여러모로 얄궂습니다.


  바뀌는 모습이니 “확 바뀌었구나?”처럼 손보면 됩니다. “딴 사람이 되었네?”라든지 “멋지게 바뀌었네?”처럼 손보아도 돼요. “못 알아보겠는걸?”이라든지 “눈부시게 달라졌네?”처럼 손볼 수 있어요. 자리와 때를 살펴 말을 합니다. 흐름과 줄거리를 돌아보며 글을 씁니다. 4346.4.29.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새 사람이 되었네?” 엄마는 문을 열고 나갔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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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팔에 안고

 


  여섯 살 큰아이와 세 살 작은아이는 늘 아버지와 어머니 팔과 어깨와 등과 가슴에 안긴 채 돌아다닌다. 두 아이는 스스로 신나게 뛰고 걷고 달리고 날고 할 적에는 어버이 품을 떠나지만, 졸립거나 힘들거나 고단하거나 잠들면 언제나 어버이 품에 찰싹 달라붙는다.


  여섯 살 큰아이 데리고 여섯 해 살아오는 동안 날마다 느낀다. 이 아이가 바깥에서 잠들어 집까지 고이 안고 들어와서 자리에 눕힐라치면, 어느새 벌떡 일어난다. 집으로 오기까지 퍽 먼 길에 일어나서 걸어 주어도 되련만, 이때에는 걷지도 일어나지도 않는다. 이리하여, 아버지는 온갖 짐을 짊어지고 든 채 아이를 안고 걷는다. 팔에 힘이 다 빠진다. 좀 쉬자, 하고 생각할 무렵 큰아이가 눈을 번쩍 뜬다.


  큰아이는 알까? 이럴 때마다 얼마나 얄미운지. 그런데 이 얄미운 짓을 벌써 여섯 해째 한다.


  일곱 살이 되어도, 여덟 살이 되어도, 아홉 살이 되거나 열 살이 되어도 이 같은 모습을 보여줄까? 히유. 아버지 팔뚝이 무쇠 팔뚝이 되면 될까? 아버지 어깨가 무서 어깨가 되면 될까? 아버지 등짝이 무쇠 등짝이 되면 될까? 얘야. 좀 자자. 4346.4.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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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풀 한 포기
햇볕 있어도
햇살 밝아도
해님 잠자도
해가 올라도

 

천천히
뿌리 뻗으면서
줄기 올리고
조그마한
꽃송이 올라옵니다.

 

봄이구나
여름이네
가을이었네
겨울이잖아

 

풀은
숲을 살립니다.

 


4346.3.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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