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써는 손도마

 


  아이들 아침밥 차리려고 찌개를 끓이며 두부를 송송 썬다. 이제 두부는 사지 않으려 했는데, 가게에서 두부를 지지며 파는 아주머니를 보고는, 한 번만 더 사야겠다고 느낀다. 어느 가게에서나 으레 ‘국산 콩’으로 두부를 빚는다고 말하지만, ‘유전자 건드린 콩’인지 아닌지까지 말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러한 두부를 굳이 먹어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낀다.


  가게에서 사들인 두부는 맛나게 먹자 생각하며 두부를 송송 썰다가 문득 생각한다. 찌개에 넣는 두부를 썰 때에 나무도마에 대고 썬 일이 거의 없다. 언제나 손바닥을 도마로 삼아 송송 썰어서 곧바로 냄비에 넣는다. 도마에 얹어 썰면 더 모양 나게 썰는지 모르지만, 두부는 손바닥에 올려서 썰어도 모양이 잘 난다. 손바닥에 얹어서 냄비에 넣을 때에 냄비물이 덜 튄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는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논다. 밥과 찌개와 이런저런 반찬들 다 차렸다. 아이들을 부른다. 여섯 살 큰아이더러 수저를 놓으라 시킨다. 아이들은 조잘조잘 떠들면서 밥상 앞에 앉는다. 얘들아, 맛있게 먹고 즐겁게 놀자. 싹싹 비우고 개구지게 뛰어놀자. 4346.5.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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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468) 나중의 1 : 나중의 일

 

그가 장례식의 슬픔과 고통을 한층 더해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괴롭게 들리는 곡소리들을 개발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자케스 음다/윤철희 옮김-곡쟁이 톨로키》(검둥소,2008) 182쪽

 

  “장례식의 슬픔과 고통(苦痛)”은 “장례식을 치르는 슬픔과 괴로움”이나 “장례식을 감도는 슬픔과 괴로움”으로 손질합니다. “충분(充分)할 정도(程度)로”는 “넉넉할 만큼”으로 손보고, “개발(開發)한 것은”은 “만든 때는”이나 “지어낸 때는”으로 손봅니다.

 

 나중의 일이었다
→ 나중 일이었다
→ 나중이었다
 …

 

  오늘 일어난 일이라면 “오늘 일”입니다. 어제 일어난 일은 “어제 일”입니다. 지난해 겪은 일은 “지난해 일”이에요.

 

 지금 일 / 나중 일 / 지난해 일 / 이듬해 일 (o)
 지금의 일 / 나중의 일 / 지난해의 일 / 이듬해의 일 (x)

 

  올바르며 알맞춤하게 적을 우리 말씨와 말투를 찬찬히 헤아려 주면 좋겠습니다. 낱말과 낱말을 이어서 글월을 이룰 때에 어떤 토씨를 넣어야 올바른지를 살피고, 군더더기가 될 대목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면서 글을 잘 여미어 주면 좋겠습니다.

 

 곡소리들을 개발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 곡소리들은 나중에야 만들었다
→ 곡소리들은 나중에 가서야 만들었다
→ 곡소리들을 지은 때는 나중이었다
 …

 

 사람마다 말버릇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다른 말씨로 이야기합니다. 이렁저렁 쓰는 사이에 익숙해진 말투가 있습니다. 내 말버릇과 말씨와 말투는 잘 살리거나 지켜 주어야 할 노릇입니다. 그러나, 내 말버릇과 말씨와 말투를 살린다고 하면서, 우리 말법을 흐트리거나 깨뜨리거나 흔들게 된다면 어찌하겠는가를 생각해 볼 일입니다. 4341.7.13.해/4346.5.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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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장례식 치르는 슬픔과 괴로움을 한층 더해 주기에 넉넉하도록 괴롭게 들리는 곡소리들을 나중에 지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69) 나중의 2 : 나중의 문제

 

이 순간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계산서는 맨 나중의 문제였다
《그레그 마리노비치·주앙 실바/김성민 옮김-뱅뱅클럽》(월간사진,2013) 233쪽

 

  “이 순간(瞬間)”은 “이때에”로 손봅니다. 글흐름에서 ‘그녀(-女)’는 ‘옆지기’로 손볼 수 있고, 덜어내어 “이때에 생각할 수 있는”처럼 적을 수 있어요. ‘중(中)에서’는 ‘가운데’로 손질하고, “맨 나중의 문제(問題)였다”는 “맨 나중 일이었다”나 “맨 나중이었다”로 손질하면 ‘문제’라는 한자말을 덜 수 있어요.

 

 맨 나중의 문제였다
→ 맨 나중 일이었다
→ 맨 나중이었다
→ 맨 나중에 따질 일이었다
→ 맨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

 

  한 번 손이나 귀나 입이나 눈에 익은 말투는 오래오래 갑니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책이나 만화영화에서 “잘 가”나 “잘 있어”나 “다음에 또 봐” 같은 인사말을 들려주지 않고 “바이바이(byebye)”나 “안녕(安寧)” 같은 인사말만 들려주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이 같은 인사말만 익숙해요. 어른들이 “살펴 가”나 “살펴 가셔요”처럼 인사하지 않고 “조심해”나 “조심해서 가”처럼 인사한다면, 아이들은 어린 나날부터 ‘조심(操心)’이라는 한자말에만 익숙할 뿐, ‘살피다’라는 한국말을 어느 자리에 어떻게 써야 알맞을까 하는 대목을 짚지 못합니다.


  이 보기글을 살피면, 한국사람은 예부터 “맨 나중이었다”처럼 말했고, 한자말 ‘문제’를 쓰더라도 “맨 나중 문제였다”처럼 말했어요. 토씨 ‘-의’를 붙이지 않았어요. 그러나, 어른들이 자꾸 이러한 말투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글을 쓰면, 아이들은 이런 말투에 익숙해집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이런 말투를 못 듣더라도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간 뒤, 또 대학생이 되거나 어른이 된 다음 이런 말투를 둘레에서 자꾸 들으면, 시나브로 이 같은 말투에 젖어들어요.


  우리가 늘 쓰는 말투는 어릴 적부터 들은 말투이면서, 어른이 된 뒤에도 늘 듣는 말투입니다. 내가 쓰는 말투가 내 살붙이와 동무와 이웃한테 스며들고, 내 살붙이와 동무와 이웃이 쓰는 말투가 나한테 스며들어요. 서로 사랑스럽게 쓰는 말투라면 서로서로 날마다 사랑스러운 말투로 아름답습니다. 서로 얄궂게 쓰는 말투라면 서로서로 자꾸자꾸 얄궂게 쓰는 말투가 퍼집니다. 4346.5.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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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생각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계산서는 맨 나중이었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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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도다 세이지 단편선 1
도다 세이지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36

 


나란히 웃으며 걷는 길
― story
 도다 세이지 글·그림,김혜리 옮김
 애니북스 펴냄,2007.4.5./8000원

 


  가만히 마음을 기울여 바라보면, 모든 아름다운 것이 나한테 다가오지 싶어요. 가만히 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때에는, 어떤 아름다운 것도 나한테 다가오지 않는구나 싶어요.


  마음을 기울일 때에 다가옵니다. 아름다운 것도, 아름답지 않은 것도, 스스로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다가옵니다. 즐겁게 노래하고 싶은 무언가를 바란다면, 시나브로 즐겁게 노래하고 싶은 무엇 하나 내 곁에 있습니다. 고단하고 아픈 무언가를 떠올리면, 어느덧 고단하고 아픈 어떤 일 내 둘레에 있습니다.


  맑은 멧새 노랫소리를 생각하면, 맑은 멧새 노랫소리 들을 만한 곳으로 찾아갑니다. 고운 개구리 노랫소리를 떠올리면, 고운 개구리 노랫소리 즐길 만한 데로 발걸음 옮깁니다.


  조금만 살펴도 알 수 있어요. 여럿이서 숲속에 있을 때에, 누군가는 어느 멧새 노랫소리를 듣고, 누군가는 나뭇잎 찰랑이는 소리를 들으며, 누군가는 아뭇소리 못 들어요.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소리 하나 나한테 찾아들거든요. 길을 거닐 적에도, 저마다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가게나 간판이나 사람 들을 알아봅니다. 함께 책방으로 마실을 갈 적에도, 저마다 마음을 기울이는 대로 책을 알아보고 살피며 돌아보지요.


- ‘회사라는 공간은 단지 그녀에게 맞지 않는 장소였던 것뿐일지도. 편해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나도.’ (34쪽)
- “사실 언니도 그만두고 싶어 했잖아. 엄마 등쌀에 밀려서 결국 억지로 계속한 거잖아. 단지 내가 언니보다 선수를 친 것뿐이야.” (44∼45쪽)


  차근차근 잘 꾸려도 좋은 삶입니다. 때로는 하나하나 미루어도 좋은 삶입니다. 모든 일을 알뜰살뜰 꾸려도 좋지만, 이럭저럭 하거나 좀 어설프더라도 좋은 삶입니다. 빈틈없을 때에는 훌륭하거나 대단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빈틈없더라도 꼭 아름답지는 않고, 빈틈없대서 반드시 즐겁지는 않아요.


  아이들이 방을 어질러도 되지요. 아이들이 밥을 먹다가 흘려도 되지요.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방을 어지를 수 있고, 어른들도 밥을 먹다가 흘릴 수 있어요.


  좀 어지르더라도 즐겁게 놀면 됩니다. 어지른 방은 나중에 치우면 돼요. 좀 흘리더라도 맛있게 먹으면 됩니다. 흘린 밥이나 국은 나중에 치우면 돼요.


  버스를 놓쳐도 됩니다. 시골버스는 으레 두 시간에 한 대쯤 있는데, 두 시간 더 기다려서 타도 되고, 다른 버스 지나가는 길로 좀 걸어서 가도 됩니다. 아예 두 시간 동안 걸어서 내 갈 길 가도 돼요. 두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길을 가면서 다른 삶을 느끼거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길을 헤매도 됩니다. 꼭 어느 길로 가야만 하지 않아요. 낯선 길 거닐면서 내 이웃들 새롭게 만날 수 있어요. 엉뚱한 길로 접어든다지만, 나한테 오늘 엉뚱하다 싶을 뿐, 이 길에는 이 동네에서 지내는 다른 이웃들 있어요.


- “어째서 엄마 맘을 이렇게 몰라주니? 너희들은 내 꿈이야!” “그럼 엄마가 수용하든지! 우리들은 엄마의 도구가 아니야!” (65쪽)
- “하지만 아빠도 우리처럼 고민한 끝에 회사 일을 물려받으셨을 거야. 분명히.” “그렇다면 더욱 누나 마음을 이해해 줬어야지. 그 사람은 달라. 그 사람은 하고 싶은 일도 없어.” “히로. 아마 아버지는 하고 싶은 일을 찾을 틈도 없었을 거야. 할아버지가 워낙 엄격한 분이셨으니까.” (95쪽)

 

 

 


  아이를 봅니다. 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낳을 아이를 떠올립니다. 개구리는 올챙이 적 모습 모른다지만, 사람도 아이일 적 모습 곧잘 잊습니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자꾸 잊어요.


  내 아이를 바라보거나 이웃 아이를 바라보면서 내 어릴 적 모습 떠올립니다. 때로는 내 어버이 모습까지 아이들 모습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가만히 헤아립니다. 오늘을 미루어 어제와 모레를 헤아립니다. 내가 살아가는 길을 헤아리고, 내 둘레 고운 이웃과 벗과 살붙이 삶자락을 헤아립니다. 내 모습을 미루어 내 아이들과 이웃 아이들 삶을 느끼고, 내 아이들과 이웃 아이들 모습을 미루어 내 삶을 느낍니다. 서로 아름답게 어울릴 길을 생각합니다. 서로 즐겁게 걸어갈 길을 살핍니다.


  나란히 웃으며 걸어갈 길이란 어떤 길일까요. 자동차 쏟아지는 찻길은 아니겠지요. 비행기 뜨고 내리거나 기차나 전철 끝없이 지나가는 길도 아니겠지요. 나란히 웃으며 걸어갈 길은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 주고받을 만한 길입니다. 새와 벌레와 바람이 들려주는 노랫소리 들을 만한 길입니다. 서로 어깨동무하며 길을 걷자면, 이 거님길에 오토바이 함부로 다녀서는 안 됩니다. 다 함께 천천히 걷는 길이요, 천천히 걷다가도 틈틈이 다리쉼을 하면서 바람을 맛보고 햇살을 먹는 길입니다.


  손전화 끄고, 라디오 끄며, 텔레비전 끄는 길입니다. 마음에서 샘솟는 고운 목소리 뽑아내는 길입니다. 책에서 읽은 글 아닌 삶으로 길어올린 이야기 나누는 길입니다.


- ‘눈을 뜨니 식물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팔을 길게 뻗고 있었다.’ (100쪽)
- ‘아내의 솔직하고 구김살 없는 성격은 고향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109쪽)


  들일 하다가 책을 꺼내어 읽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마당에서 놀다가 평상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 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멧길이나 숲길 거닐면서 책을 읽을 수 있어요. 들바람 쐬면서, 아이들 뛰노는 모습 느끼면서, 나무와 새와 돌과 바람이 서로 고운 소리 나누어 주는 기운 받으면서 새록새록 이야기 하나하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면, 시끄러운 기찻길이나 전철길이나 버스길뿐 아니라,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도 책을 읽습니다. 나는 책 하나 바라볼 뿐, 시끄러운 소리를 받아들일 마음 아니니까요. 그런데, 마음 느긋하게 쉬면서 책 하나 누릴 수 있으면 훨씬 좋아요. 보드랍고 포근한 기운 감도는 멧자락이나 숲속에서 책을 펼치면, 내 마음은 느긋하게 쉬면서 내 머리는 아름다운 줄거리를 한결 깊이 느낍니다.


- ‘결국 회사도 물건을 만들어 내는 곳이지만, 진짜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는 여자뿐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에게는 일밖에 없는데, 그것마저도 여자들에게 빼앗긴다면 대체 무엇이 남을까? 그래서 사회 진출을 막고 저지하며 깔보는 거다. 그 마음은 이해해. 하지만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잘못된 거야. 그래 봐야 허무해질 뿐이잖아.’ (114쪽)
- ‘어쩜 이렇게 사람이 착할까. 내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상으로 이 사람을 만나게 해 준 걸까?’ (130쪽)


  도다 세이지 님 만화책 《story》(애니북스,2007)를 읽습니다. 영어로 적어 ‘story’인데, 한국말로 하자면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책입니다. 이야기란, 어디 하늘에서 똑 떨어지거나 땅에서 펑 샘솟지 않습니다. 바로 내 삶이 이야기입니다. 우리 아이들 삶이 이야기입니다. 내 옆지기나 이웃 삶이 이야기입니다.


  아이들 자전거에 태워 마실 다닌 하루가 이야기입니다.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빨래를 하는 삶이 이야기입니다.


  바람소리 들어요. 바람소리 한 자락도 이야기입니다. 후박꽃 봉오리 가만히 쓰다듬어요. 꽃 피어날 꽃봉오리 하나도 이야기입니다.


  우리 둘레에 이야기 아닌 삶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기쁜 이야기, 슬픈 이야기, 반가운 이야기, 달갑잖은 이야기, 온갖 이야기 있어요.


  스스로 생각하면 됩니다. 어떤 이야기가 내 삶 북돋우는지 가만히 살피면 됩니다.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내 삶을 어떤 이야기로 채울 때에 아름답거나 즐거울까 하고 돌아보면 됩니다. 다 함께 살아가는 이 지구별에서 어떤 이야기를 빛낼 때에 고운 꿈 피어날까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 ‘한 걸음이라도, 아니, 반 걸음이라도 좋다. 내 인생을 걸어 보고 싶다.’ (132쪽)
- “행복한 사람이 그렇게 신세 한탄을 하겠어? 난 엄마, 아빠가 행복해 보이지 않아.” (148쪽)


  이야기를 길어올려요. 내 이야기를 내 손으로 길어올려요. 이야기를 나누어요. 저마다 어떤 꿈을 품고 어떤 사랑을 돌보는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어요.


  그림을 그려 벽에 붙여요. 내 꿈 담은 그림 한 장 벽에 붙여요. 글을 써서 책상맡에 붙여요. 내 사랑 적은 글 한 장 책상맡에 붙여요.


  내가 스스로 그린 그림 한 장에서 꿈이 피어나요. 내가 손수 적은 글 한 장에서 사랑이 태어나요. 이야기란 바로 오늘 이루어지고, 이야기는 늘 내 마음속에 있어요. 4346.5.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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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책을 읽는 뒷모습

 


  작은아이는 누나 하는 모든 것 따라하면서 하루를 누린다. 누나가 무얼 잡고 놀면 그걸 가로채서 놀고 싶고, 누나가 마당으로 내려서면 저도 마당으로 내려서고 싶으며, 누나가 방바닥에 드러누워 놀면 저도 방바닥에 드러누워 놀고 싶다.


  큰아이가 만화책 하나 집어 볕 들어오는 마루 바라보며 앉는다. 작은아이도 만화책 하나 찾아내어 누나 곁에 착 달라붙어 앉는다. 누나 곁에 앉아 만화책 들여다보는 시늉을 하다가 자꾸 누나 책을 들여다본다. 넌 네 거 보시지?


  아이들은 어버이가 하나하나 가르치거나 물려주기도 하지만, 큰아이가 동생을 가르치거나 물려주기도 하고, 또 둘째가 셋째를, 셋째가 넷째를, 차근차근 가르치면서 물려주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본다면, 학교를 세워 아이들 가르치려 할 적에 나이 같은 아이들을 같은 교실에 우르르 집어넣기보다는 ‘나이 울타리’를 없애고 언니 오빠 동생 누나 서로 어울리며 배우고 놀도록 할 때에 훨씬 나으리라 느낀다. 4346.5.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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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 뒤집어 읽는 어린이

 


  큰아이는 글씨를 조금씩 읽는 나이가 되니 책을 뒤집어 읽는 일이 없다. 그러나 가끔 동생 흉내를 내면서 책을 뒤집어서 보곤 한다. 뒤집어서 보면 재미있니? 아마 재미있겠지? 똑바로 들고 볼 때하고는 사뭇 다른 느낌 들겠지. 4346.5.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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