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마루 책읽기

 


  동생하고 복닥복닥 놀던 큰아이가 갑자기 조용하다. 뭐 하나 궁금해서 슬그머니 들여다본다. 오호라, 혼자서 책을 읽는구나. 무슨 책을 읽나 가만히 어깨너머로 살펴본다. 도라에몽 만화책이네. 그런데 넌 아직 글을 익히지 않아 그림만 보지? 글도 익히면 그 만화책에 담긴 이야기를 더 재미나게 헤아릴 수 있단다.


  그나저나, 이제 환하고 따스한 봄이라 마룻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을 만하구나. 추운 겨울 모두 물러났구나. 꽃샘바람도 꽃샘추위도 모두 가셨구나. 앞으로 가을까지 마룻바닥에서 뒹굴며 놀다가 책도 읽다가 밥도 먹다가, 또 한여름에는 마룻바닥에 이불 한 장 깔고 시원하게 잠들 수 있구나.


  마루에 앉아 바람소리를 함께 듣지. 마루에 앉아 마당을 내다보며 개구리 노랫소리와 제비 춤사위를 즐기지. 마루에 앉아 푸른 잎사귀와 노란 유채꽃망울 바라보지. 종이책도 책이요, 풀꽃도 책이며, 개구리도 책이고, 봄볕도 책이다. 4346.5.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지 못한 책

 


  사려고 벼렸으나 일곱 달째 사지는 못하고 구경만 하던 책을 본다. 어, 이렇게 덩그러니 놓였네. 헌책방 사장님이 이제 이 책을 내놓아 주었구나, 그러면 살 수 있겠네, 하고 생각하며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는다. 언제 보아도 ‘이 사진책에 깃든 사진’이 재미있구나 하고 느끼며 ‘사진책 모습을 사진으로 담다’가 그만, 이 책을 골라서 사기로 하던 생각을 깜빡 잊는다. 애써 부산까지 마실을 해서 이 책을 보았으나 또 놓친 셈인가.


  참 바보스럽지. 사진을 찍지 않고 책만 골랐으면 ‘책 모습을 담는 사진’이야 우리 집에서도 얼마든지 찍을 수 있잖아. 굳이, 이 사진책 하나 헌책방 책시렁 한쪽에 곱게 놓인 모습으로 사진을 찍겠다고 하다가 그만 ‘책을 사려고 하던 생각’을 잊을 수 있을까.


  한눈을 팔았다기보다 한마음을 판 셈일까. 이 사진책도 장만하고 다른 책도 더 장만하자고 책시렁 찬찬히 돌아보다가 그만 다른 책에 푹 빠져들면서 이 사진책은 까맣게 잊은 셈일까.


  사들인 책은 내 곁에 있다. 사들이지 못한 책은 사진에 남는다. 앞으로 언제쯤 다시 이 사진책 있는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갈 수 있을까. 그때까지 이 사진책 안 팔린 채 곱게 이 자리에 그대로 있으려나. 이 사진책은 내 품에 포근하게 안길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무화과나무 아래에서”라 하는 이 일본 사진책은 종이로 된 겉상자 따로 있다. 겉상자 없이 알맹이만 있는 사진책이 나왔을까. 겉상자는 다른 데에 따로 건사하셨을까. 사지 못한 책을 두고, 사진으로 남은 모습 한참 들여다보며 아쉬움 달랜다. 4346.5.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글과 그림

 


  풀과 꽃과 벌레를 그리는 어느 분을 만나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그림’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찬찬히 떠오르는 대로 짤막하게 글월 하나 적는다. 우리 아이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내 나름대로 적는다. 그러고 나서, 흰종이에 정갈하게 옮겨적고, 글월 하나 옮겨적은 뒤 빈자리에 그림 몇 붙인다. 치마 좋아하는 큰아이를 그리고, 큰아이가 좋아하는 웃는 얼굴로 그리며, 꽃 두 송이와 나비 한 마리 그린다. 꽃은 두 송이라지만 나비는 한 마리라 여길 이 있을 텐데, 큰아이 스스로 나비이니까 한 마리만 그리면 된다. 그런 다음 아이 손에는 호미 한 자루와 연필 한 자루 그려 넣는다.


  마음을 담으니 글이고, 마음을 보여주니 그림이다. 마음을 쓰기에 글이고, 마음을 노래하기에 그림이다. 아닐까? 다른 사람은 어찌 생각할는지 모를 노릇이고, 나는 글과 그림을 이렇게 생각한다. 4346.5.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무냄새 (도서관일기 2013.5.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전남 순천에 있는 〈일광서점〉이 곧 문을 닫는다고 한다. 우리 식구 고흥으로 와서 살아온 지 이제 세 해째라, 고흥 곁 순천에 어떤 책방 있었고, 어떤 발자국 있었는가 아직 잘 모른다. 우리 도서관에 들일 책꽂이 때문에 알아보다가, ‘문을 닫는 도매상에서 쓰던 책꽂이’를 나누어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순천 〈일광서점〉 책꽂이였다.


  도매를 하는 〈일광서점〉이 먼저 문을 닫고, 소매를 하는 〈일광서점〉은 5월 10일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도매를 하던 자리에서 뜯어낸 책꽂이를 본다. 서른 해는 훨씬 더 묵었다고 하는 책꽂이인데, 나무가 참 좋다. 서른 해 훨씬 지나도록 나무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뜯어내면서 여기저기 생채기가 생기거나 갈라진 데가 생기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요, 이런 틈은 나무를 덧대면 말끔히 사라진다. 무엇보다, 책꽂이 만지면서 결이 참 좋다. 나무로 짠 제대로 된 책꽂이는 이런 내음 이런 결 이런 느낌이로구나. 나무 아닌 합판으로 댄 책꽂이일 때, 또 나무 아닌 이것저것으로 압축한 책꽂이일 때, 이러면서 페인트를 입히고 무얼 바르고 한 책꽂이일 때, 그러니까 요새는 나무 책꽂이 보기 참 힘든데, 아무것 안 바른 나무결 고스란히 있는 책꽂이를 쓰다듬으며 느낌이 아주 좋다.


  순천에 사람이 적어 책방이 문을 닫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사람 숫자는 예나 이제나 엇비슷할 테니까. 문을 닫은 〈일광서점〉 가까이에는 순천대학교 있고, 순천에는 이밖에 다른 대학교도 있으며, 초·중·고등학교 제법 많다. 순천사람 스스로 책을 읽지 않을 뿐더러, 마음과 삶 밝히는 책하고 사귀지 못했기에 책방이 하나둘 문을 닫고 사라진다.


  우리 도서관에 들이는 책꽂이는 오래오래 잘 있기를 빈다. 순천에 있던 옛 새책방 한 곳 발자국 곱게 건사하면서, 나무냄새 두고두고 나누어 줄 수 있기를 빈다. 나무로 만든 종이로 묶은 책을 꽂는, 나무로 짠 책꽂이가, 나무로 둘러싸인 시골 도서관에서 푸르게 빛나기를 빈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당신은 어른입니까 16] 마음읽기
― 스스로 사랑하려는 마음일 때에 사랑

 


  글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그냥 나오는 글이란 없이, 모두 이녁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쓰는 글은 내 마음이고, 내 이웃이 쓴 글은 내 이웃 마음입니다.


  내 마음과 이웃 마음은 다릅니다. 내 삶과 이웃 삶이 다르니까요. 내 목소리와 이웃 목소리는 다릅니다. 내 생각과 이웃 생각이 다르니까요.


  글을 읽을 때에 ‘줄거리’를 읽으려고 하면 마음을 못 읽습니다. 누가 쓴 글이든 마음을 쓰기에,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고서는 서로 말다툼으로 번지기 쉽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삶에 따라 다 다른 목소리로 쓰는 글이기에, ‘내 삶과 내 생각과 내 목소리’에 맞추어 다른 사람 글을 읽으면 엉뚱하게 풀어내고 맙니다. 글 아닌 말에서도 이와 같아요.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읽어야지요.


  누군가는 말투가 좀 거칠 수 있어요. 누군가는 말끝마다 욕지꺼리가 섞일 수 있어요. 누군가는 말투가 나긋나긋하겠지요. 누군가는 말끝마다 상냥한 기운 감돌겠지요.


  말투가 거칠면, 이녁 마음도 거칠까요. 말끝마다 욕지꺼리 섞으면 이녁 말은 들을 값어치조차 없을까요. 문학을 떠올려요. 문학에 나오는 말을 떠올려요. 문학에 나오는 줄거리를 떠올려요. 문학을 읽는 우리들은 ‘줄거리’를 읽으려는 뜻이 아니에요. 문학을 읽는 까닭은 마음을 읽고 싶기 때문이에요.


  어떤 사람은 글을 읽든 책을 읽든 문학을 읽든 ‘줄거리’만 좇을 수 있어요. 누구한테나 자유이니, 줄거리가 좋으면 줄거리로 갈 뿐이에요. 다만, 줄거리를 붙잡을 때에는 마음을 잡지 못해요. 줄거리에 얽매이면 마음읽기하고 멀어져요.


  글 한 줄에서 마음을 읽는다 할 때에는, 글을 쓴 이녁 마음이 어떠한가를 살펴, 서로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뜻이에요. 살을 섞거나 쓰다듬어야 사랑이 아니라, 마음을 읽고 나누려 할 때에 사랑이에요. 살을 섞는 일은 살섞기예요. 살을 쓰다듬는 일은 쓰다듬기예요. 마음을 읽을 때에는 마음읽기이고, ‘마음’이란 바로 삶을 사랑하는 바탕이니, 저절로 사랑읽기로 흘러요.


  마음을 따사롭게 추스르는 사람은 삶을 따사롭게 추스릅니다. 마음을 너그럽게 북돋우는 사람은 삶을 너그럽게 북돋우지요.


  우리 어른들은 마음을 슬기롭게 읽으며 삶을 슬기롭게 지을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한테 슬기로운 삶·넋·사랑을 찬찬히 물려줄 수 있기를 빌어요. 스스로 사랑하려는 마음일 때에 사랑이에요. 땅에서 솟아나거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랑은 없어요. 스스로 일구는 사랑이고, 스스로 짓는 사랑이에요. 마음을 읽으면서 사랑을 나누고, 마음을 헤아리면서 사랑을 빛내요. 4346.5.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