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만 마치고 사회로 나온 젊은이를 만나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담은 책 하나를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교만 마쳤고 옆지기는 중학교만 마쳤는데, 우리 식구와 같은 학력자를 요즈음 둘레에서 보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못 볼는지 모르지. 대학교를 간대서 집일을 더 알뜰히 하지 않고, 대학교를 다녔기에 아이들을 살가이 사랑하지는 못하며, 대학교 졸업장으로 사랑을 빛내지는 않는다. 이 작은 책에서 이런 대목까지 슬기롭게 짚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런 대목까지 못 짚더라도, 사회 틀거리에 맞추어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로서는 굳이 대학교까지 가야 할 까닭이 없는 줄, 이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으면 제값 다 하리라 생각한다.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삶이 길이 되고 꿈이 땀이 된 고졸 청년들의 이유 있는 선택
박영희 지음 / 살림Friends / 2012년 11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1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05월 06일에 저장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빛

 


  다 다른 해에 태어난 다 다른 책이 다 다른 빛깔을 보여준다. 다 다른 크기와 다 다른 모양새로 나온 책들이 알록달록 빛나는 책탑을 이루며 차곡차곡 쌓인다. 높다라니 쌓인 책탑 뒤에는 어떤 책들이 어떤 무늬와 빛깔로 있을까. 책탑 뒤에는 어떤 책들이 오래도록 숨죽인 채 책손 손길을 기다릴까.


  책은 책으로 있는 동안에도 빛난다. 책은 책손 손길을 타면서 새롭게 빛난다. 책은 책 하나 사랑하는 사람들 손에 이끌려 새로운 책시렁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새삼스럽게 빛난다.

  읽힐 때에 비로소 책이라 하는데, 읽히지 않을 때에도 모두 책이다. 왜냐하면, 읽히지 않은 책은 없으니까.


  읽혔다 하는 책 가운데 속내와 사랑과 마음까지 샅샅이 읽힌 책은 얼마나 될까. 첫 줄부터 끝 줄까지 훑는 일이 책읽기가 아니다. 줄거리 줄줄 꿰는 일이 책읽기가 아니다. 책에 서린 삶을 읽을 때에 책읽기가 된다. 책에 깃든 숨결을 읽을 때에 책읽기가 된다. 책에 감도는 사랑을 읽을 때에 책읽기가 된다.


  몇 줄을 읽든 대수롭지 않다. 여러 차례 읽거나 스물 서른 마흔 차례 읽든 대단하지 않다. 가슴으로 읽고, 마음으로 새기며, 사랑으로 헤아릴 때에, 비로소 책읽기가 이루어진다. 책빛은 책읽기를 누리는 사람들 눈망울에서 곱게 드러난다.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실 나오는 아이들과

 


  어린이날 맞추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으로 찾아간다. 나는 밤새 집안일 한다. 새벽에 빨래를 하고 밥을 한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잔다. 자다가 칭얼거리는 아이들 쉬를 누인 다음 토닥토닥 재우고는, 다시 이것저것 일손 붙잡는다. 고흥부터 일산까지 가는 길에 아이들 먹을 밥이랑 이것저것 꾸린다. 아침 여덟 시 십오 분 군내버스 타고 읍내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모든 짐 다 꾸린 아침 여덟 시에 아이들 깨운다. 큰아이는 스스로 옷 입으라 하고, 작은아이는 바지 갈아입히고 양말 신긴다.


  부랴부랴 마을 어귀 버스터로 나온다. 한참 기다려도 군내버스 안 온다. 왜 오는가 싶더니, 내가 버스때를 잘못 읽었다. 여덟 시 십오 분 아닌 여덟 시 사십오 분 버스였다.


  아이들이 배고프다 한다. 시외버스에서 주려 하던 빵을 꺼낸다. 잼병도 꺼낸다. 달기잼을 발라 두 장씩 준다. 시골마을 아침볕 받으며 나무걸상에 앉아 군내버스 기다리는 동안 빵조각 먹는다. 아이들 곁에 내가 짊어질 가방을 놓고 바라보니, 내가 짊어질 가방은 아이들 몸피보다 크고 아이들 몸무게보다 무겁다. 서울 가는 시외버스 탈 때까지 졸음을 참자.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지 못한 책을 사다

 


  처음 만난 지 일곱 달 지나도록 사들이지 못하고 멀거니 구경만 하던 사진책을 드디어 다른 헌책방에서 만난다. 참 뜻밖에, 아주 뜻밖에 만난다. 그런데, 다른 헌책방에서 만난 이 사진책을 가만히 올려다보니, 꽂힌 모습으로 보건대 퍽 여러 해 그 자리에 있은 듯하다. 몇 해쯤 먼지 먹으며 있었을까. 다섯 해? 열 해? 열다섯 해?


  예전에 이 헌책방에 찾아왔을 적에도 이 사진책은 저 자리에 멀쩡히 있었을 테고, 내 눈이 요 사진책을 여태 못 알아보았을 뿐이로구나 싶다.


  헌책방 책시렁 한쪽에서 받침대 구실을 하며 먼지만 먹던 책을 꺼낸다. 헌책방 일꾼이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천천히 꺼내어 준다. 이 사진책 위에 얹힌 무거운 다른 책을 옆으로 옮긴 뒤 내려 준다.


  겉상자를 하나씩 연다. 두 겹으로 된 겉상자를 벗기니 서른 해 남짓 묵었어도 빛 하나 바래지 않은 예쁜 알맹이 나온다. 얼른 겉상자 다시 입힌다. 셈대 옆에 살짝 세운다. 이리 보아도 좋고 저리 보아도 좋구나. 이 책 하나 내 품에 들어오면서 내 마음 조금 더 연다.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느릅나무에게
김규동 지음 / 창비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울나무와 시 한 줌
[시를 노래하는 시 48] 김규동, 《느릅나무에게》

 


- 책이름 : 느릅나무에게
- 글 : 김규동
- 펴낸곳 : 창비 (2005.4.20.)
- 책값 : 8500원

 


  봄이 되면 서울에 있는 나무에도 새움이 틉니다. 봄이 되면 이 나라 크고작은 도시 곳곳에 풀싹이 돋습니다.


  여름이 되면 서울에 있는 나무도 푸른 잎사귀 우거집니다. 여름이 되면 이 나라 크고작은 도시 곳곳에 풀숲 이루어집니다.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바른 도시라 하지만, 한 해 흐르고 열 해 흐르면서 시멘트가 살살 갈라지고 아스팔트 군데군데 파입니다. 풀씨는 이런 조그마한 틈바구니에서 고개를 내밉니다. 풀씨는 이 조그마한 틈을 좋은 보금자리로 삼아 씩씩하게 줄기를 올립니다.


  민들레도 피어나고, 고들빼기도 자랍니다. 비름나물도 뻗고, 별꽃이랑 꽃마리도 자랍니다. 망초도 애기똥풀도 달맞이꽃도 봉숭아도, 이런 틈 저런 구석에서 씩씩하게 고개를 들며 기지개를 켭니다. 사람들이 알아보건 안 알아보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풀씨는 해바라기 하면서 자랍니다. 풀씨는 하늘숨 마시고 하늘볕 먹으면서 튼튼하게 자랍니다.


.. 닭이나 먹는 옥수수를 / 어머니 / 남쪽 우리들이 보냅니다 ..  (어머니는 다 용서하신다)


  나무 곁에 서면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나무는 온몸으로 떨며 노래를 부릅니다. 시골마을 조용한 마당에 서거나 시골자락 고즈넉한 숲속에 깃들면, 나무들이 부르는 모둠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큰나무 줄기에 손바닥 대거나 몸을 대면서 나무떨림 깊이 헤아립니다. 바람결 따라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는 나무를 느낍니다. 나무 움직임 느끼면서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 듣고, 나뭇가지마다 빽빽하게 붙은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 듣습니다.


  도시에서는 자동차 물결치는 소리에 묻혀 나무들 노랫소리 잠기곤 합니다. 그래도, 자동차 물결 뚝 끊길 때면 나무들 베푸는 고운 노랫소리 쏴라락 흐릅니다.


  은행나무도 좋고 벚나무도 좋습니다.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나뭇줄기에 귀를 대어 보셔요. 귀와 손과 몸을 살며시 대며 나무가 우리한테 들려주려는 노래를 들어 보셔요.


  때때로 울부짖고, 때때로 잠잡니다. 때때로 노래하고, 때때로 수다를 떱니다. 사람도 할 말 많겠지만, 나무도 할 말 많습니다. 사람도 할 일 많겠으나, 나무도 할 일 많아요.


.. 부드러워라 / 부드러우니 살그마니 들치고 / 반쯤 누워보는 / 이 흙내음 ..  (봄빛은 이불처럼)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마당 한 뼘 없으니 나무 심을 자리 없다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학교나 회사 언저리 빈터를 찾아봐요. 빈터에 나무씨앗 하나 슬그머니 심어요. 또는 어린나무 한 그루 꽃가게에서 장만한 다음 즐겁게 심어요.


  가까운 시골자락 마실하면서 길가에 어린나무 한 그루 심어도 좋아요. 시골에 아는 벗 있으면, 아는 벗 찾아가는 길에 한 그루씩 길가에 나무를 심어도 즐거워요.


  내 보금자리에 심을 수 있으면 가장 좋고, 내 보금자리에 흙땅 없으면, 가깝든 멀든 사람들 오가는 길가 흙땅 한쪽에 정갈한 손길로 나무를 심어요.


  꽃나무도 좋고 열매나무도 좋습니다. 느티나무도 좋고 느릅나무도 좋습니다. 밤나무나 감나무도 좋지요. 초피나무나 동백나무도 좋아요. 어떤 나무라도 좋습니다. 나무 한 그루 심을 수 있는 사람은 사랑 한 자락 펼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무 한 그루 아낄 수 있는 사람은 이웃과 동무하고 살가이 품앗이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겨울나무를 바라보고 봄나무를 바라보셔요. 여름나무를 마주하고 가을나무를 마주하셔요. 나무는 철 따라 다 다른 빛과 무늬와 내음과 결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나무는 날과 달 따라 다 다른 이야기와 소리와 노래로 우리 둘레에 있습니다.


  작은 새들이 나무에 깃듭니다. 작은 새들이 나무에서 작은 꽃봉오리와 열매를 따먹습니다. 작은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다리를 쉽니다. 작은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고 어여쁜 노래 부릅니다.


.. 먹었단 말입니다 / 연한 이파리 / 무지개 같은 진달래를 / 순이와 난 따 먹었어요 / 함경도의 3월은 / 아직 쌀쌀하나 / 허전한 육체에 / 꽃은 피로 녹아 / 하늘하늘 떨었지요 ..  (육체로 들어간 진달래)


  나무 있는 마을에서는 사람들 마음이 푸릅니다. 나무 우거진 마을에서는 사람들 마음이 싱그럽습니다. 나무 없는 마을에서는 사람들 마음이 쌀쌀합니다. 나무 깃들 수 없는 마을에서는 사람들 마음이 차갑습니다.


  청와대이든 국회의사당이든, 널따란 주차장이나 아스팔트 광장 없애고, 푸르게 우거진 숲 두면 좋겠습니다. 대학교에 도서관 건물 우람하게 있어야 마땅할 텐데, 대학교 도서관 곁에 대학교 도서관 건물보다 조금 큰 숲 한 군데쯤 있으면 좋겠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도 학교숲 있어, 아이들이 입시공부에 파묻히더라도 머리를 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초등학교와 유치원에도 학교숲 있어, 아이들이 숲놀이를 즐기고 숲학교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돈있는 회사들이 높다라니 건물 올릴 적에, 건물 앞에 열 평이든 스무 평이든 조그맣게 숲 하나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관공서 건물 지으면서, 관공서 마당에 주차장만 놓지 말고, 아니 처음부터 주차장일랑 들이지 말고, 푸르고 싱그러운 숲을 들이면 좋겠습니다.


  동사무소에는 동사무소숲 있으면 좋아요. 군청에는 군청숲 있으면 좋지요. 군수 이름으로 나무 한 그루 심어도 됩니다. 시장 이름이나 구청장 이름으로 나무 한 그루 해마다 심어도 됩니다. 저마다 나무 한 그루 해마다 꾸준히 심어, 도시와 시골 모두 예쁜 숲누리 이룰 수 있으면 좋아요.


.. 깍두기 한가지만으로 / 밥 한그릇 비우게 되니 / 이 감격을 / 오래 간직하고 싶어요 / 광주의 음식맛은 / 깍두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 정성을 다해요, 전라도 광주는 / 어머니 / 광주 음식맛을 / 못 보여드리는 게 한입니다 ..  (어머니에게)


  책이란 나무입니다. 전자책은? 글쎄, 전자책도 나무라고는 못 느끼겠습니다. 전자책은 그저 글덩이 아닌가 싶어요. 글보따리나 글꾸러미라고도 하겠지요.


  종이로 빚은 책은 모두 나무입니다. 종이로 빚은 연필도 몽땅 나무입니다. 공책도 수첩도 교과서도 모두 나무예요. 나무가 있기에 종이를 만들고, 종이로 책과 공책과 수첩을 만들어요.


  나무로 만든 공책에 나무로 만든 연필로 글을 씁니다. 나무로 만든 원고지나 수첩에 나무로 만든 연필로 이야기를 쓰고, 그림도 그리며, 만화도 끄적입니다. 나무로 만든 책을, 나무로 우거진 크거나 작은 숲에 깃들어 읽습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들 꾸미는 보고서나 서류도 모두 나무예요. A4라 하는 종이도 나무이지요. 나무 없으면 아무 종이를 못 써요. 나무가 있기에, 그러니까 숲이 있기에 종이를 얻어요. 숲에서 우람하게 자라던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지, 도시 한복판 길가에서 매연 먹으며 콜록거리는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지 못해요. 아름답고 깨끗하며 푸른 숲에서 자라던 어여쁜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어요. 아무 나무나 베어 종이를 만들지 않아요.


  가장 씩씩하고 가장 튼튼하며 가장 푸르게 자란 가장 아름다운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듭니다. 곧, 책 하나란, 그냥 책이 없어요. 어떤 책이든, 가장 빛나는 나무로 만드는 책이에요.


.. “싸우지 말고 / 살아야 합니다 / 만일 싸움이 시작되면 / 한쪽이 먼저 참으세요” / 이런 간단한 주례사는 / 처음 들었다 / 그래서 모두는 / 하하 웃었다 / 나지막하나 뜻있는 / 송건호의 주례사였다 ..  (주례사)


  책을 읽는 사람들은 숲으로 가야 합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숲에서 살아야 합니다. 책을 쓰는 사람들은 숲을 가꾸어야 합니다. 숲이 있기에 종이와 연필과 책이 있어요. 숲이 있기에 도시도 태어나고 문명도 일구며 과학기술도 뽐내요. 숲이 없다면 자동차를 못 만들고, 숲이 없을 때에는 고속도로이건 기찻길이건 낼 수 없어요.


  숲을 돌보지 않고 옷장이나 책상이나 걸상을 쓸 수 없습니다. 숲을 사랑하지 않고 젓가락이나 주걱이나 찻잔을 쓸 수 없습니다. 숲이 있기에 야구방망이 하나 만들어요. 숲이 있으니 사랑편지 한 통 쓰고, 숲이 있는 터라 손전화 설명서 하나 꾸리지요.


  석유도 가스도 숲에서 태어납니다. 숲이 태어나고 죽으면서 묻혀 지하자원 되어요. 숲에서 살던 벌레와 짐승들 나고 죽으면서 묻혀 지하자원 되지요. 석탄도 다른 광물도 모두 숲이 있었기에, 수만 수십만 수백만 해에 걸친 우람한 숲이 있었기에, 온갖 지하자원 오늘날 쓸 수 있어요.


.. 동이에 물을 퍼 담아주거나 / 무거운 짐을 들어줄 때면 / 함경도 우리 고장 아주머니들은 / 아심챤슷꾸마 하고 인사했다 / 애교는 없어도 정이 담긴 이 말을 / 잊지 못한다 ..  (비문)


  김규동 님 시집 《느릅나무에게》(창비,2005)를 읽으며 숲을 떠올립니다. 네 식구 누리는 우리 집 시골살이 되새깁니다. 나 스스로 시골살이 누리지 않고서야 이 시집 즐거이 읽지 못했으리라 느낍니다. 나 스스로 시골살이 아닌 도시살이 누렸다면, 시골에서 살더라도 둘레에 나무 한껏 누리지 않는다면, 이 시집에 깃든 숨결 하나하나 받아먹지 못했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나무를 모르고서도 시를 읽을 수 있겠지요. 나무를 곁에 두지 않고서도 시를 즐길 수 있겠지요. 나무를 사귀지 않고서도, 나무를 사랑하지 않고서도, 나무를 알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시를 읽거나 쓰거나 말하거나 할 수 있겠지요.


.. 가난해 보라고 / 그래야 뭐 좀 알게 되리라고 / ‘중정’에서 책 3천부를 압수해 갔다 / 영세한 출판사 하고 있을 때다 / 1975년 첫여름 / 그날은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 / 책과 함께 남산에 붙들려가 / 한 열흘 갇혀 있었지 / 사회당 당수 김철이 쓴 / 《오늘의 민족노선》이란 단행본 / 책이 시중에 나가보기도 전에 / 일이 이렇게 되니 / 5푼 이자 주기로 하고 빌려다 쓴 / 개성할머니 돈은 어떻게 갚나 ..  (혼자 웃는다)


  요즈음 시골마을 아이들은 벼도 보리도 잘 모르고, 나무도 잘 모릅니다. 요즈음 시골마을 아이라 하더라도 시골일 거드는 아이는 아주 드물고, 시골일 거들더라도 숲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노는 아이 몹시 드물어요. 요즈음 도시 아이도 똑같아요. 요즈음 도시 아이들이 어떤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와 나무와 풀과 꽃을 알 만할까요. 부전나비 모시나비 제비나비 팔랑나비 가눌 줄 아는 요즈음 아이는 몇이나 될까요. 나비를 생각하거나 풀포기 하나 헤아리는 요즈음 아이는 얼마나 있을까요.


  그러니까, 나비를 생각하는 요즈음 어른은 몇이나 될까요. 풀포기 하나 곱게 쓰다듬으며 하루를 짓는 어른은 얼마나 있을까요.


  숲에서 시를 읽습니다. 숲에서 살림을 일굽니다. 숲에서 배웁니다. 숲에서 사랑합니다. 숲에서 숨을 쉬고, 숲에서 밥을 얻습니다. 숲에서 노래하고, 숲에서 춤추며, 숲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 아이는 / 사탕과자를 넣고 나가더니 / 동네 아이들한테 / 다 나눠주고 나서 / 아, 내 건 하나도 없어 / 하고 / 당황한 얼굴을 했다 / 빨갛게 언 두 볼이 / 나긋나긋했다 ..  (나눔의 경이)


  김규동 님은 느릅나무한테 사랑편지 하나 쓰며 시집 《느릅나무에게》를 내놓습니다. 시집 《느릅나무에게》를 읽는 분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어떤 나무 한 그루 심을 수 있나요. 시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며 삶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녁 보금자리에 어떤 나무를 건사하면서 생각 한 줌 곱게 모시는가요.


  생각 한 줌이 시가 됩니다. 나무를 쓰다듬는 손길 하나 생각 한 줌으로 자랍니다. 숲을 꿈꾸는 사랑 한 줌으로 나무를 쓰다듬습니다. 지구별 얼싸안는 가슴으로 숨을 꿈꾸는 사랑씨앗 한 톨 가만히 심습니다.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