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바바라 아몬드 지음, 김윤창.김진 옮김 / 간장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아버지가 아이 돌보기
[사랑하는 배움책 17] 바바라 아몬드,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간장,2013)

 


- 책이름 :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 글 : 바바라 아몬드
- 옮긴이 : 김진, 김윤창
- 펴낸곳 : 간장 (2013.4.11.)
- 책값 : 15800원

 


  아이들은 시외버스를 타면 갑갑해 합니다. 좁은 걸상에 꼼짝 않고 앉아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버티기 힘드니까요. 아이들 아닌 어른도 시외버스에서 견디기 벅찹니다. 시외버스에서 여러 시간 견디기 힘드니, 어른들은 시외버스에 텔레비전을 붙여서 들여다보곤 합니다. 그런데, 시외버스에 붙인 텔레비전에서는 ‘어른들이 보는 연속극이나 영화나 쇼’만 흐르지, ‘아이들이 볼 만한 영화나 만화나 이야기’는 흐르지 않아요. 아이들은 어른들 사이에서 괴롭고 슬프게 낑겨야 합니다.


  시외버스에서 창문이라도 열 수 있으면, 바깥바람 조금 쐬면서 버스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멧자락이든 들판이든 숲이든 시골이든 구경하겠지요. 그러나, 오늘날 이 나라 시외버스는 모두 통유리입니다. 아이들은 바람놀이도 창밖놀이도 즐길 수 없습니다. 과자를 우걱우걱 먹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꼼지락꼼지락 이리저리 움직일밖에 없어요.


  아이를 낳아 돌본 어른이라면, 이리하여 아이들 데리고 시외버스를 타며 돌아다닌 적 있는 어른이라면, 시외버스에 아이들 태우고 움직일 때에 얼마나 고단한가 알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젊은 날 아이를 낳아 돌보았어도 나이들며 이런 고단함을 잊는 어른이 많아요. 아직 많이 젊은 사람들이나 푸름이 들도 이런 대목을 제대로 못 짚기도 해요. 저희가 어릴 적에도 ‘시외버스에서 소리 지르거나 우는 아이’ 모습인 줄 떠올리지 못하지요.


  두 아이 데리고 고흥에서 일산까지, 또 일산에서 음성으로, 다시 음성에서 고흥으로, 이렇게 여러 날 걸쳐 시외버스를 타고 움직이며 생각합니다. 두 아이 어버이는 아이들 옷가지와 여러 짐을 커다란 가방과 작은 가방에 나누어 담고 나릅니다. 아이들 보듬습니다. 이래저래 온몸 쑤십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힘듭니다. 시외버스에서 세 시간 남짓 신나게 놀다가 드디어 마지막 한 시간 즈음 달게 잠들기도 하지만, 대여섯 시간 넘는 시외버스 마실길 내내 몸이 간지럽고 좀이 쑤셔서 이리저리 뒤척거리기도 합니다.


  이럴 때에 우리 둘레에 ‘아이를 데리고 태운 어버이’ 있으면 반갑습니다. 아마 그분도 우리가 반가우리라 생각해요. 그분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내가 반갑고, 우리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그분이 반갑겠지요. ‘아이를 데리고 태운 어버이’가 시외버스에 여럿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홀가분합니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눈 마주치며 잘 놀기도 하고, 어느 아이 하나 소리를 지르더라도 한결 가붓하게 아이들 보듬을 만합니다.


.. 50년 전에는 조부모, 숙모와 삼촌, 그리고 형과 언니들이 종종 아이 키우는 일을 도왔다. 그러나 확대가족의 붕괴는 이제 자녀보육의 부담을 온전히 부모에게, 대개는 어머니에게 지운다 … 어머니를 필요로 하는 우리의 마음은 온 사랑을 쏟고 모든 것을 다 주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어머니를 이상화하며, 거기에는 양가감정 같은 정상적인 감정 반응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 확대가족의 도움 없이도 모두 다 해내고자 하는 것, 즉 일도 하고, 아이들도 ‘제대로’ 키우고, 남편과 친밀한 관계도 지속하고, 취미와 사회생활, 운동 일정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요즘 시대의 어머니들이 품고 있는 기대치이다. 양가감정은 오직 그런 목표들이 야기하는 기력 소진과 불가피한 실패에 의해 악화될 수 있을 뿐이다 ..  (35, 58, 165쪽)


  아버지 혼자 아이 둘 데리고 마실을 다니거나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면, 둘레 어른들이 자꾸 “애 어머닌 어디 갔수?” 하고 묻습니다. 할매가 묻든 할배가 묻든, 이런 물음을 들으면 나는 아무 대꾸를 않습니다. 대꾸할 값어치가 없습니다. 이렇게 묻는 분이 있으면 조용히 자리를 옮깁니다. 아이들 귀에도 이런 말이 흘러들거든요.


  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하나 있어요. 누런소와 검은소 두 마리를 바라본 어느 양반네가 흙일꾼한테 큰소리로 물었다지요. 어느 소가 일을 잘 하느냐고. 이 소리 들은 흙일꾼은 논에서 소 두 마리 부리다가 말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와 양반네를 데리고 멀리 자리를 옮기면서 귀엣말로 그런 소리 함부로 말라고, 소가 다 알아듣는다고 했다지요.


  아이들은 다 알아들어요. 아이들은 다 알아보아요. 어른들이 엉터리로 하는 말을 아이들은 다 알아들어요. 어른들이 엉터리로 하는 짓을 아이들은 다 알아보아요.


  어머니 혼자 아이 둘 데리고 마실을 다닐 적에, 아이 어머니더러 “애 아버진 어디 갔수?” 하고 묻는 어른은 없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어디를 다녀야 한다면, 아주 마땅히 ‘아이 어머니’가 도맡아서 움직여야 하는 줄 여깁니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이 뿌리내렸을까 알쏭달쏭합니다. ‘아이 아버지’는 아이를 돌볼 줄 모른다거나, 아이 아버지는 아이들 돌보지 않아도 된다거나, 아이 아버지는 아이들 돌보는 삶을 안 배우고 지내도 되는듯 잘못 흐르는 삶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 찾아보기 참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무얼 하는 사람일까요. 아버지는 어떤 어버이인가요. 아버지는 아이들하고 어떻게 지낼 때에 아름다울까요. 아버지는 집안일과 집살림을 어떻게 꾸려야 슬기로운가요.


.. 내 친구는 자신의 아이에게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고 상상해야만 했다. 아이가 자신과 꼭 닮았기 때문에 아이를 잘 안다고 여기는 것은 그녀에게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 어머니가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더 나은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일 뿐만 아니라, 예전의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제공한다 …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 이면에는 늘 어머니 자신이 유아기와 아동기에 겪었던 경험이 깔려 있다 ..  (46, 67쪽)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야 합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밥도 옷도 모두 놀이로 여기며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은 호미질도 흙일도 설거지도 빨래도 놀이하듯 어버이한테서 배울 노릇입니다.


  아이들이 놀자면 어른부터 홀가분한 삶이어야 합니다. 어른 스스로 삶을 재미나게 일굴 때에,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놀도록 잘 풀어놓을 만합니다. 어른 스스로 어떤 굴레에 매이거나 어떤 수렁에 갇히면, 아이들이 예쁘게 놀도록 지켜보지 못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아버지나 어머니 되는 사람들은 어떤 삶 일구는가요. 오늘날 아버지나 어머니 되는 젊은이는 ‘어버이 자리’로 오기까지 어떤 일 하고 어떤 놀이 하면서 마흔이 되고 서른이 되며 스물이 되는가요.


  입시지옥을 거치면서 사람다운 사람살이 배운 젊은이는 얼마나 있을까요. 대학교를 마치고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된 젊은이는 아버지다움이나 어머니다움, 아울러 어버이다움을 누구한테서 어느 만큼 배웠을까요. 사랑하는 짝을 만나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이 아이를 어떻게 돌보고 가르치며 키울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배운 적 한 차례라도 있을까요.


  어린이와 푸름이를 가르치는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사를 맡는 이들은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다니면서 어떤 삶 배우고 어떤 삶 누리며 어떤 삶 사랑하는가요.


.. 여자들이 일에서 얻는 만족은 그들을 더 좋은 어머니로 만들고, 스스로에 대한 안도감을 키워 주고, 자신의 가치를 찾고자 아이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을 줄여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독한 갈등과 원망, 죄책감을 유발하여 어머니 노릇을 쉽사리 어긋나게 만들 수도 있다 … 자연스러운 수유 방법인 모유 수유는 1930년대 중·상류층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에 뒤떨어진 방법으로 여겨졌다. 그러니 지금이라면 모유 수유를 했을, 그리고 모유 수유가 제공하는 친밀감과 보살핌의 느낌을 즐길 수 있었을 여자들이, 모유 수유는 곧 하류층을 뜻하며 옳은 방식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아기에게서 그런 경험을 박탈했을지도 모른다 ..  (154∼155, 156쪽)


  바바라 아몬드 님이 쓴 배움책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간장,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배움책은 ‘어머니’ 이야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어버이 가운데 어머니 이야기만 할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도 아이들 낳고서 ‘돌보고 가르치며 키우는 몫’은 온통 어머니한테 떠넘기니까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즐겁고 흐뭇하며 사랑스레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며 키우지 못하잖아요. 아니, 한국 사회나 미국 사회나 두 어버이가 어깨동무하면서 삶과 사랑과 믿음과 꿈을 북돋우도록 이끌지 않잖아요.


  복지제도가 없기 때문이 아니에요. 교육문화가 없기 때문이 아니에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복지제도이든 교육문화이든 엉터리입니다. 그러나, 제도나 문화가 있건 없건, 아이들 삶과 어른들 삶이 그리 살갑지 못해요. 아이들은 갓 태어나서 스무 살 되기까지 시험지옥과 입시지옥에 갇혀요. 홀가분하게 놀 겨를이 없고, 즐겁게 놀 터가 없어요.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이나 유치원이다 학원이다, 게다가 학교이다 하면서, 자꾸 여기저기 얽매이며 들볶여야 합니다. 아이들이 몽땅 얽매이며 들볶이니, 서로서로 동무 되지 못해요. 아이들은 놀이동무가 없어요. 아이들은 손전화나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이 ‘동무’ 구실을 해요.


  이렇게 큰 아이들이 스무 살 되고, 스물다섯 서른 서른다섯 마흔 되어 ‘아이를 낳는 어버이’ 되면 어찌 될까요. 게다가, ‘아이를 낳는 어버이’ 되는데, 아버지 자리에 설 사람은 회사에서 돈 버는 일 맡는다며 ‘아이 돌보는 몫’을 나누어 맡지 않거나 함께 하지 않으면, 어머니 자리에 서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자신의 아이를 사랑할 수 없는 어머니는 대체 어찌해야 할까?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는 아이는 대체 어찌해야 할까 … 어머니의 부재는 어떤 면에서 증오보다도 더 좋지 않다. 증오는 적어도 어머니와 아이 사이에 무언가가 살아 있는 것이니 말이다 … 오늘날 전문 직종과 기업계에 대거 진출한 교육받은 여자들은, 탁아소와 유모들이 아무리 좋고 배려 깊다 해도 자신들이 직접 함께 있을 때만은 못하다는 점(어머니 본인에게도, 또 아이들에게도)을 알아 가고 있다 ..  (206, 215, 349쪽)


  바바라 아몬드 님은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라 하는 배움책에서,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면서 미워한다고 밝힙니다. 그럴 만하겠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나는 새롭게 생각해 봅니다. 자,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면서 미워한다는 ‘두 마음’을 품는다면, 아버지는? 아버지는 어떤 마음일까요? 아버지라는 사람한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오롯이 있기나 할까요? 아버지라는 사람한테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이나마 조금이라도 있기나 할까요? 아버지라는 자리에 서는 사람은 이런 마음도 저런 마음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엉성하게 흘리는 모습 아닐까요? 아버지라는 사람은 ‘두 마음’은커녕 ‘한 마음’조차도, 아니 ‘아무 마음’마저 없는 수렁에서 허덕이는 나날 아닌지요?


.. 나이 든 부모를 기꺼이 돌보고자 하는 딸(또는 아들)의 마음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들의 초기 관계가 어떠했는가와 많은 관련이 있다. 양가감정과 원망의 응어리가 충분히 풀려서 자녀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선뜻 보살핌을 준비하고 제공하는가? … 그저 남을 모방하기만 할 경우에는, 좋지 못한 자녀양육 관행들(사탕을 뇌물로 사용하거나 TV를 보모로 사용하는 것, 또는 과도한 신체적 훈육)을 영속시킬 수도 있다 ..  (345, 354쪽)


  아버지는 아이를 돌보아야 합니다. 할아버지는 아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아이한테 밥을 차려 먹일 줄 알아야 하고, 아버지는 아이를 씻기고 옷을 빨래하며 집안을 쓸고 닦으며 치울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텃밭 일굴 줄 알아야 하고, 아버지는 나무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자가용 몰 줄 알기보다는 숲을 아낄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달빛과 별빛과 햇빛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풀꽃을 들여다보며 개구리와 제비 노랫소리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아이 돌볼 줄 모르는 사회에서, 어머니 혼자 아이를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사랑하며 따스하게 품기를 바란다면, 참 쓸쓸하고 슬픕니다. 4346.5.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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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 책읽기

 


  은행잎이 돋는다. 시골에는 은행나무 드물어 은행잎 돋는 모습을 구경하기는 퍽 힘든데, 도시에는 찻길 한켠에 으레 은행나무 심으니, 도시에서는 조금만 눈여겨보면 늦봄으로 접어든 이즈막에 은행잎 여린 잎사귀 푸르게 빛나는 물결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어릴 적에 국민학교에서 ‘도시에 은행나무 심는 까닭’을 배웠다. 은행나무는 공해나 매연을 잘 견디고, 공해나 매연을 잘 걸러낸대서, 도시에서 으레 심는다고 어른들이 가르쳤다. 이런 말을 듣고 배우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언젠가 한 번 담임 교사한테 여쭈기도 했으리라 느낀다. 아마, 이렇게 여쭈었겠지. “선생님, 그러면 은행나무 많이 심은 곳은 사람이 살기 나쁜 공해로 더러운 곳이네요?” 담임 교사는 이렇게 여쭙는 개구쟁이 꼬마 머리통에 꿀밤을 먹였겠지.


  어느 때부터인가 도시에서 은행나무 사라지고 벚나무 늘어난다. 은행나무 사라지는 까닭이 ‘도시에서 공해와 매연이 사라지기 때문’이 아니다. 은행나무 은행꽃 알아보는 사람 없으니, 벚나무 벚꽃을 구경시켜서 ‘도시가 얼마나 지저분하고 더러우며 슬픈 공해와 매연으로 얼룩졌는가를 감추려’ 할 뿐이다.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아가며 은행나무를 거의 못 보지만, 우리 집 한쪽에 은행나무 두 그루 심어야 한다고 느낀다. 도시 아닌 시골이라지만, 자동차 거의 안 드나드는 시골이라지만, 우리 집 한쪽에 은행나무 두 그루 심어야 한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시골마을 이웃집들은 비닐이나 비료푸대나 농약병이나 가리지 않고 날마다 태운다. 오늘은 이 집에서 태우면 이듬날은 저 집에서 모레에는 그 집에서 태운다. 어느 시골집이건 흙과 바람과 물을 헤아리지 않고 아무 쓰레기나 아무렇게나 태운다. 이런 시골에서 시골내음 마시며 즐겁게 살아가자면,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도 은행나무 두 그루쯤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손을 뻗어 은행잎 만진다. 살살 쓰다듬는다. 얘들아, 씩씩하게 자라고 튼튼하게 크렴. 푸른 잎사귀처럼 푸른 꽃망울 한껏 터뜨려, 사람들한테 푸른 숨결 곱게 나누어 주렴. 4346.5.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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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기 2

 


  ‘사재기 출판사’를 생각하다가 한 가지 떠오른다. 2013년 5월에 ‘사재기 짓’으로 도마에 오른 이 출판사는 아예 사라지면 좋겠구나 싶다. 이런 짓 예전에도 저질렀으나 똑같이 다시 저지르는데, 앞으로도 이런 짓 안 하리라 믿을 수 없다. 이럴 때에 이런 출판사는 조용히 사라지는 쪽이 훨씬 낫다. 아름다운 책 내려고 아름다운 손길로 아름다운 살림 일구는 출판사 살리자면, 비뚤어진 짓 저지르는 출판사는 하나하나 파묻혀야지 싶다. 파묻혀서 ‘거름이 되어야’지 싶다.


  ‘사재기 출판사’에서 내놓은 ‘좋은 책’이라면, 참말 좋은 넋으로 좋은 책살림 일구면서 좋은 책문화 북돋우는 ‘좋은 출판사’를 만나야 한다고 느낀다. 책을 쓴 사람 스스로 ‘크고 이름나며 돈있는’ 출판사 말고, ‘착하고 조그마하며 좋은’ 출판사를 알아보고는 이녁 스스로 나서서 책 판권을 옮기면 되리라 느낀다.


  책을 쓰는 작가는 스스로 출판사를 잘 살펴야 한다. 책을 쓰는 작가도 ‘책을 읽는 사람’이다. 작가 스스로 ‘책을 꾸준히 읽으’면서 이녁 책 내놓을 만한 좋은 출판사를 찾을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사재기 출판사’ 탓만 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사재기 출판사’에서 이녁 책 나온 일을 작가 스스로 부끄럽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작가 스스로 “난 모르는 일이다” 하고 말한대서 이녁 얼굴이 깨끗할 수 없다. 맑은 마음으로 맑은 책 가꾸는 출판사를 작가부터 키우고 돌보는 몫 할 수 있기를 빈다. 4346.5.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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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으로 책 묶기

 


  지난날에는 책방마실 하는 사람들이 집으로 택배를 부치는 일이 드물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장만하더라도, 누구나 으레 가방에 집어넣거나 끈으로 묶은 책덩이를 손수 들고 집까지 날랐다. 한 번에 나르기 힘들 만큼 많이 골랐으면 이듬날이나 다음에 다시 찾아와서 마저 가져가기로 하고 책방에 묶어 두곤 했다. 책방 일꾼이라면 책을 단단히 묶을 줄 알았고, 책손 또한 책을 단단히 여미는 손품을 ‘책방 일꾼한테서’ 배웠다. 살림집 넉넉히 마련해서 오래도록 안 옮기는 책사랑꾼도 있지만, 살림집을 자주 옮겨야 하는 책사랑꾼도 있다. 살림집 옮겨야 하는 책사랑꾼은 헌책방 일꾼한테서 ‘십자 매듭’과 ‘옥매듭’을 배운다. 찬찬히 배운 ‘책 매듭짓기’를 이녁 살림집 옮길 때에 몸소 즐긴다. 책을 잘 묶을 줄 알면, 다른 짐도 잘 묶을 줄 알기 마련이요, 책덩이뿐 아니라 다른 짐도 잘 옮길 줄 안다.


  책을 끈으로 묶으면 비닐봉지를 안 쓴다. 책을 묶은 끈과 신문종이는 얼마든지 되쓴다. 돈이 많아 책을 잔뜩 장만하든, 돈이 적어 책을 조금 장만하든, 책을 장만해서 읽는 사람은 ‘스스로 가방으로 짊어지거나 손으로 들어서 나를 만한’ 무게와 부피를 건사한다. 자가용에 실어서 나른다거나 택배로 맡긴다거나 할 때에는 ‘스스로 다 읽어내지 못할 책’을 장만하는 셈이다.


  깊은 시골에서 살아간다면, 띄엄띄엄 책방마실을 하면서 한 달이나 두 달이나 석 달 즈음 읽을 책을 한꺼번에 장만할 수 있겠지. 그러지 않고 도시에서 지낸다든지 도시와 가까운 시골에서 지낸다면, 틈틈이 책방마실을 즐기면서 그때그때 읽을 만큼 알맞게 책을 장만하면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자주 찾는 만큼 책이 잘 보인다. 틈틈이 마실하는 만큼 책이 내 앞으로 나타난다. 4346.5.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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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기

 


  텔레비전 새소식에서 ‘사재기 출판사’를 다룬 뒤, 사재기 짓을 저질렀던 출판사는 불이 활활 피어나는구나 싶다. 그런데, 앞으로 석 달쯤 지난 뒤, 또는 한 해가 지난 뒤, 다섯 해나 열 해가 지난 뒤에는 어떠할까? 그때에는 이러한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으면서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가 퍼질 만할까?


  사재기 짓 저지른 출판사는 ‘베스트셀러 순위’에 책을 집어넣어 ‘책 어마어마하게 팔아서 돈 많이 벌고픈 생각’을 했겠지. 그러면, 인터넷책방에서 ‘반값 후려치기’로 책을 판다거나 ‘적립금 잔뜩 주는 일’은 무엇일까. 이렇게 해서 매출을 높여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어서게 하는 일은 어떤 이름으로 가리켜야 옳을까.


  책을 책으로서 섬기지 못한다. 출판사에서 책에 붙인 값 그대로 팔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책을 책답게 섬긴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출판사로서는 가장 알맞춤한 값을 붙여서 책을 팔 노릇이고, 이 알맞춤한 값으로 책을 팔아 돈을 벌면, 앞으로 새로운 다른 책을 즐겁게 펴내어 사람들한테 좋은 이야기 들려주는 책밭 구실이 되겠지. ‘어차피 인터넷책방에서 에누리할 값 생각해서 책값 비싸게 붙인다’는 말은 함부로 하지 말자. 이런 출판사도 많지만, 이렇게 안 하는 출판사도 제법 많다.


  그런데 왜 사재기를 할까. 그런데 왜 사재기까지 하려 할까. 그런데 사재기 아니고서는 책을 팔 길이 없나.


  사재기를 해서 ‘베스트셀러 순위’를 건드리면, 사람들은 거짓놀음에 휘둘리는 꼴 아닌가. ‘사재기를 했다지만, 좋은 책 아닙니까?’ 하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사재기를 안 한 좋은 책’은 뭐가 되는 꼴인가. ‘사재기를 하면서 책 좋아하는 사람들 손에 처음부터 다가설 길 막힌 책’은 뭐가 되는 셈인가.


  책방에서 책을 파는 사람이라면, 많이 팔리는 책이라 해서 잔뜩 쌓아서 팔지는 말아야 한다고 느낀다. 책방에는 ‘베스트셀러 순위’부터 없애야 한다고 느낀다. 아름다운 책을 넓고 깊이 갖추어, 사람들이 넓고 깊은 책을 골고루 살피면서 골고루 읽도록 북돋울 노릇이라고 느낀다. 몇 가지 책 꽂는 자리를 넓게 마련하면서, 사람들이 몇 가지 책만 읽도록, 그러니까 틀에 박힌 흐름으로 가도록 내몰지 말면서,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다 다르게 사랑하도록 북돋우는 ‘다 다른 아름다운 책’이 책방 책시렁에서 빛나도록 가꿀 노릇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새책방도 도서관도 출판비평가도 언론매체도 몽땅 ‘베스트셀러 순위’에 드는 책을 너무 자주 말하거나 들먹이거나 다룬다. ‘아름다운 좋은 책’을 골고루 이야기하는 매무새 찾아보기 참 어렵다. 낱낱이 따지고 보면, ‘사재기 출판사’만 사재기를 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책방 반값 후려치기 하는 출판사도 똑같이 사재기 짓이다. 적립금 잔뜩 안기는 출판사도 똑같이 사재기 짓이다. 끼워주기라든지 덤 얹어주기도 사재기 짓이다. ‘서평단 책읽기’와 ‘서평단 독후감’도 사재기를 부채질한다. ‘베스트셀러 비평’ 또한 사재기로 이끌고 만다.


  책방은 책을 다루어야 한다. 책지기는 책을 보살펴야 한다. 책손은 책을 사랑해야 한다. 그뿐이다. 책을 쓰고, 책을 엮고, 책을 읽고, 책을 다루고, 책을 이야기하면 넉넉하다. 4346.5.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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