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 나의 학급문고 2
채인선 지음, 김동성 그림 / 재미마주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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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65

 


찻길에서는 못 타는 자전거
―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
 채인선 글,김동성 그림
 재미마주 펴냄,1998.6.15./7000원

 


  자전거를 타고 달리려면, 내 다리를 바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자전거 발판을 구르다가 멈추면 어느 만큼 스르르 바퀴가 돌기는 하지만, 이내 느려지고, 조금 뒤에 자전거가 섭니다. 자전거로 달리는 내내 다리를 움직이고 몸을 써야 해요.


  한 시간을 걸어 5킬로미터를 간다면, 자전거로 한 시간 달릴 때에 20킬로미터쯤 갈 수 있습니다. 네 시간을 걸어 20킬로미터를 간다면, 자전거로 네 시간 달릴 때에 80킬로미터쯤 갈 수 있어요. 걸음이 빨라 한 시간에 7킬로미터쯤 갈 수 있으면, 자전거 발판도 더 힘껏 밟아 한 시간에 30킬로미터쯤 갈 만하고, 네 시간 씩씩하게 걸어 28킬로미터쯤 가는 사람이라면, 네 시간 다부지게 자전거로 달려 120킬로미터쯤 갈 만합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면 어떠한가요. 자동차하고 견주면 너무 느린가요? 그러면, 서울 같은 큰도시에서 자동차를 달리는 빠르기는 얼마쯤 될까요. 얼마쯤 될 듯한지 한번 생각해 봐요. 건널목 신호에 걸리고, 밀리는 자동차에 막히는 시간을 헤아려 봐요.


  통계로 나온 숫자를 살피면, 서울 시내 택시 평균속도가 30킬로미터를 살짝 넘는다고 해요. 이나마 밤에 달리는 택시를 헤아리기에 30킬로미터쯤 나온다고 해요. 여느 자가용은 서울 시내에서 평균 15킬로미터가 안 나온다고 해요. 곧, 자전거를 천천히 달리는 사람조차도 서울 시내에서는 자가용보다 훨씬 빨리 달린다는 뜻이고, 자전거를 잘 달리는 사람이라면 서울 시내에서는 택시하고 엇비슷하거나 택시보다 빠를 수 있다는 뜻이에요.


.. 놀이터에 가려고 나오는데 삼촌이 뒤따라 나오며 물었어요. “선미, 자전거 탈 줄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어요. “그럼 내가 자전거 태워 줄까? 나랑 같이 나가 볼래?” ..  (7쪽)


  자동차는 나날이 늘어납니다. 한 번 늘어난 자동차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자동차 회사에서는 새 자동차 꾸준히 만들고, 도시사람이든 시골사람이든 새로 나오는 자동차를 꾸준하게 장만합니다. 도시는 찻길이 자꾸자꾸 더 막히고, 자동차는 시내에서 더 느리게 달릴밖에 없습니다. 이리하여, 자동차 물결이 숨통이 트도록 하려고 찻길을 새로 놓습니다. 찻길을 새로 놓으려고 가난한 골목집을 밀어냅니다. 아파트를 밀어 찻길을 넓히지 않아요. 골목동네 골목집을 밀어 찻길을 늘리지요. 시골에서는 논과 밭과 숲과 멧골을 아무렇게나 척척 잘라 새 찻길을 늘려요.


  그렇지만, 찻길 늘리는 빠르기보다 자동차 늘어나는 빠르기가 훨씬 높아요. 찻길을 늘리고 또 늘려도 자동차 물결을 버티지 못합니다. 찻길이 아주 많이 늘어났다 하더라도 서울 시내뿐 아니라, 부산과 대구와 인천과 대전과 광주 시내에서조차 자동차는 제대로 달리지 못해요. 자동차 계기판에 200이나 220까지 있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도 이렇게 달릴 일이 없어요.


  곰곰이 따질 노릇이에요. 도시 한복판뿐 아니라 도시 언저리에서도 자동차는 30킬로미터로 꾸준히 달리기 힘들다면 자동차를 왜 타야 할까요. 비싼 값을 치르고, 비싼 보험삯과 기름값 치르면서 자동차 달려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자동차 아닌 전차가 다닐 길을 놓을 때에 훨씬 낫지 않을까요. 아니, 누구나 자전거로 달리면 서로서로 즐겁지 않을까요.


  자동차는 장애인이 타도록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장애인이 타는 자전거도 있어요. 다리가 없어도 손으로 바퀴를 굴리는 자전거 있고, 다리를 쓸 수 있으면 누워서 달리는 자전거 있어요. 누운 채 손으로 바퀴를 굴리는 자전거도 있지요. 전기를 먹는 자전거도 있습니다.

 

 


.. 삼촌은 주위를 둘러보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어요. “예전에는 여기가 다 논밭이었어. 개울도 있었고, 물이 참 맑고 깨끗했지.” “개울이 있었다고?” “그럼. 저기 멀리 큰 산 보이지? 그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었어.” ..  (11쪽)


  사람들 누구나 꼭 자전거를 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사람들 누구나 자가용 굴리려고 하는 오늘날 되다 보니, 자가용 구를 찻길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고, 찻길이 도시와 시골을 온통 둘러싸다 보니,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한국에서는 숲이 제대로 깃들지 못해요. 도시에도 숲이 없고, 시골에도 숲이 없어요. 도시사람도 숲내음 마시기 힘들고, 시골사람도 숲내음 누리기 힘들어요.


  채인선 님 글과 김동성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재미마주,1998)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서울 어느 ‘변두리’라 할는지 ‘도시 한복판 가운데 하나’라 할는지,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시냇물 흐르는 논밭 있었다는 곳 이야기를 ‘자전거 여행’을 곁들여 들려주는 목소리로 읽으며 찬찬히 헤아립니다.


  왜 서울은 논밭을 밀어 도시로 바꾸어야 했을까요. 왜 서울은 논밭 그대로 두는 도시로 있지 못할까요. 왜 서울사람은 자동차 넘치는 도시를 바랄까요. 왜 서울사람은 자동차 아닌 사람들이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로 지나갈 넉넉하고 조용하며 사랑스러운 마을로 나아가지 못할까요.


.. “가재, 처음 보니?” “책에서는 많이 봤어.” ..  (24쪽)


  책에서만 만날 가재가 아닙니다. 책으로 배울 들꽃이나 나무가 아닙니다. 책으로 생각하는 전통문화나 전통예술이 아니에요. 한가위나 설 같은 명절과 얽힌 놀이를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나 지식책으로 읽으면 덧없어요. 명절놀이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누려야지요. 전래놀이가 되든 골목놀이가 되든, 아이들 누구나 마음껏 뛰놀면서 물려주고 물려받을 놀이예요. 아니, 놀이는 물려주고 물려받는다기보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즐길 때에 놀이예요.


  고무줄놀이를 굳이 물려줄 까닭 없어요. 고무줄놀이 재미나면 한 시간이나 십 분만에 곧바로 배워서 함께 즐깁니다. 구슬놀이나 흙놀이나 땅금놀이나 온갖 놀이 신나면, 십 분은커녕 일 분만에 놀이를 익혀 다 같이 즐겨요.


  함께 놀면서 자라는 아이들이에요. 서로 돕고 서로 아끼면서 크는 아이들이에요. 까르르 뛰놀면서 골목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와하하 뒹굴면서 마을을 마음으로 껴안아요. 두 다리 있으면 개구지게 뛰고 달리면서 이 땅을 넓고 깊게 헤아립니다. 두 다리로 달리고, 때로는 자전거로 달리면서, 내 마을과 동무들 살아가는 이웃한 마을 나란히 살핍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 마을 좋아하고, 동무들 살아가는 저 마을 좋아해요.

 

 

 


.. “삼촌, 개울이 있던 자리가 바로 여기야?” “그럴 거야.” “바로 이 도로 밑에?” “…….” “햇살도 없고 가재도 안 살고 버드나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맞아. 아무것도 없어.” ..  (38∼39쪽)


  찻길에서는 탈 수 없는 자전거입니다. 찻길에서는 놀 수 없는 아이들이에요. 찻길에서는 자동차 아니면 달리기 어렵습니다. 찻길에서는 아이나 어른이나 느긋하게 못 놀고 한갓지게 못 쉬어요.


  찻길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삶을 빼앗깁니다. 찻길을 늘리면 늘릴수록 어른들도 삶을 잃어요. 빈터를 빼앗기고 놀이터를 빼앗기는 아이들은 학원으로 쫓겨나거나 인터넷과 손전화에 빠져듭니다. 마을쉼터 없고 정자나무 사라진 어른들은 술집에 찻집에 노래방에 옷집에 젖어들지만, 정작 이웃과 어깨동무하며 누리는 삶은 사라져요.


  어른들은 아이들을 자전거 짐받이에 앉히고 다닐 수 있어야 해요. 아이들은 스스로 힘차게 자전거 발판을 구를 수 있어야 해요. 초·중·고등학교 운동장은 교사들 자가용 대는 땅이 되면 안 돼요. 학교 교사부터 자가용 아닌 자전거로 오가야 옳아요. 아이들도 학교에 자전거 타고 다닐 수 있어야 해요.


  회사원도 공무원도 자가용 아닌 자전거를 타야 맞아요.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시장도 군수도 ‘관용 자가용’ 아닌 ‘관용 자전거’를 타면서 이웃을 마주하고 서민(시민, 군민)과 만나야 해요. 자가용을 타면 서민이라 할 국민이든 백성이든 마주할 길 없어요. 회사일을 하든 행정일을 하든 ‘사람을 만나’려면, 자가용에서 내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지요.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바람을 쐬고 햇살을 마시며 살가운 이웃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섞을 수 있어야 해요. 찻길에는 정치도 문화도 교육도 행정도 민주도 평화도 자유도 평등도 없어요. 골목과 마을과 숲과 시골과 들과 멧골에 비로소 모든 삶과 꿈과 사랑이 있어요. 4346.5.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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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읽었다. 퍽 잘 그렸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자전거 여행'을 다룬 다른 책들을 살펴본다. '불량한'이란 말을 굳이 넣어야 했을까 아리송하지만, '불량'이라는 낱말이 숨기는 다른 이야기가 있겠지. <불량한 자전거 여행>이라는 이 동화책 읽으면서, 어린 벗들이 즐겁게 자전거 나들이를 떠날 수 있을까 헤아려 본다. 먼길 나들이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자전거를 달리면서 삶과 꿈을 가만히 돌아볼 수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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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자전거 여행
김남중 지음, 허태준 그림 / 창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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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수신료 책읽기

 


  아침부터 낮까지 도서관 책꽂이를 옮기고 청소를 한 뒤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오니 우체통에 전기삯 내라는 글월 한 통 꽂혔다. 이달에는 얼마쯤 나왔나 살피는데 12590원이나 된다. 우리 식구 지난 한 달 쓴 전기는 117킬로와트라고 한다. 117킬로와트에도 만이천 원이 넘다니, 전기삯 많이 올랐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달에 TV수신료가 붙었다. 어, 뭐지?


  설마 지난달에도 TV수신료가 붙은 전기삯 고지서가 왔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가 왜 이렇게 TV수신료를 슬그머니 붙였을까? 지난달 것과 지지난달 것을 살피니, 지난달 것에 TV수신료가 우리 몰래 붙었고, 지난달에는 엉뚱하게 2500원을 더 냈다.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지? 텔레비전 없고 텔레비전 안 보는 집에 왜 난데없이 TV수신료를 붙이는가? 고지서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시외요금 나온다는 안내말씀 흐른다. 저희가 남몰래 TV수신료를 붙이고는, 이 TV수신료를 떼려고 전화를 걸 때에 우리더러 돈을 내게 하는가? 참 나쁜 놈들이로구나. 이렇게 나쁜 짓을 저지르며 장삿속으로 일하니 돈을 벌는지 모르나, 이렇게 돈을 벌어서 착하거나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하고는 멀어질밖에 없으리라.


  한국방송 상담원은 우리 집에 참말 텔레비전 없느냐고 여러 차례 묻는다. 궁금한가? 궁금하면 몸소 우리 집에 찾아오면 알 텐데. 저희가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텔레비전 있는지 없는지 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전기검침원은 왜 있는가? 계량기를 들여다보려고 달마다 다니는데, 달마다 다니면서 텔레비전 있는지 없는지 살피면 되잖은가?


  상담원이 “티브이를 왜 안 보십니까?” 하고 묻는다. 나한테는 참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내가 텔레비전 안 보는 까닭을 꾸밈없이 말한다. “인생이 도움이 안 되니까 텔레비전 안 봅니다. 나는 지난 스무 해 넘게 텔레비전 없이 살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따져 본다. 1994년부터 텔레비전 없이 살았으니, 2013년 올해에 햇수로 치면 스무 해를 꼭 채운다. 1993년과 1992년, 그리고 1991년 고등학교 수험생일 적에도 텔레비전을 안 보았으니, 텔레비전 안 본 햇수를 치면 스물세 해가 되고, 중학생으로 지낸 세 해에도 새벽 여섯 시에 학교에 가서 밤 열두 시에 집에 돌아오느라 텔레비전 안 보고 살았으니, 지난 스물여섯 해 동안 텔레비전을 안 보고 살았다.


  요즘 같은 이 나라에 텔레비전 없는 집은 거의 한 군데도 없다 할는지 모른다. 내 둘레에 텔레비전 안 키우는 이웃을 세어 보니 꼭 다섯 집 있다. 더 세면 더 있을는지 모르는데, 집안에 텔레비전 안 들이고, 손전화나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방송 안 보는 사람이 참말 얼마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한국방송 상담원은 나 같은 사람 전화를 받으며 ‘이 사람 고작 2500원 안 내려고 거짓말 하는구나’ 하고 생각할까? 그러나, 텔레비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틀림없이 있다. 텔레비전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망가뜨리기에, 이런 바보상자를 곁에 안 두려고 하는 사람은 어김없이 있을밖에 없다고 느낀다. 텔레비전 이야기 아닌, 서로서로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는 예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꽃피우고픈 사람은 꼭 있다고 느낀다. 4346.5.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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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13 19:26   좋아요 0 | URL
저희도 이곳으로 이사온 후, 더 볼 필요가 없어서 텔레비전을 없앴습니다.
그리고 전기세에 수신료가 붙어서 전화를 걸었더니 똑같은 질문을 하더군요.
그렇게 못 믿겠으면 직접 우리 집에 와서 확인을 하라 했더니..알겠다 하며 다음달부터는 수신료가 안 나오더군요.
항상..그눔의 수신료가 문제이네요. 무엇을 수신하고 싶은 지는, 헤아리지도 못하면서요..
문득, 1Q84의 덴고의 아버지가 평생 했던..그 직업이 떠오릅니다..

파란놀 2013-05-13 20:48   좋아요 0 | URL
전기검침 달마다 하니까
검침하면서 들여다보면 되는데,
한국전력이나 한국방송은
다 책상맡에서만 일하니
사람을 참 번거롭게 해요.

참 딱한 노릇이에요.
이 나라 한국은...
 

목 긴 신

 


할배 아배 목 긴 신
모두 시커멓고

 

할매 어매 목 긴 신
죄 꽃무늬

 

가시내 목 긴 신은
몽땅 진달래빛

 

머스마 목 긴 신은
모조리 쪽빛

 

재미없어.

 

티벳 칠레 북미 숲사람
옷이랑 신
사진으로 보면

 

할배고 할매고
어른이고 아이고
다 같이

 

어여쁜 무늬와 빛
어우러지는데.

 


4346.4.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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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푸른빛이었다 -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우주로 가는 길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 지음, 김장호.릴리아 바키로바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지구별 느끼기
 [환경책 읽기 43] 유리 가가린, 《지구는 푸른빛이었다》(갈라파고스,2008)

 


- 책이름 : 지구는 푸른빛이었다
- 글 :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
- 옮긴이 : 김장호,릴리아 바키로바
- 펴낸곳 : 갈라파고스 (2008.4.5.)
- 책값 : 9000원

 


  개구리가 있기에 메뚜기를 잡아먹습니다. 제비가 있어 나비를 잡아먹습니다. 메뚜기가 있어 풀을 뜯어먹습니다. 나비가 있어 꽃가루받이를 시켜 줍니다. 풀이 있으니 흙을 붙잡으며 한 해를 살다가 천천히 시들어 흙을 북돋우는 거름이 됩니다. 나비가 있으니 애벌레가 풀잎과 나뭇잎 알맞게 갉아먹으며 자라서 허물을 벗고, 허물은 땅으로 떨어져 흙을 살리며, 나비 또한 즐겁게 한삶 누리다가 땅을 살리는 거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지구별 이루는 목숨을 돌아보면, 어느 하나 쓸모없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풀이나 나무나 벌레나 짐승을 ‘사람한테 도움이 되는’ 쪽과 ‘사람한테 도움이 안 되는’ 쪽으로 섣불리 가르지만, 어느 목숨이든 도움이 안 될 수 없습니다. 아니, 어느 목숨이든 도움이 되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느 목숨이든 지구별을 살찌우는 숨결이 되고, 어느 목숨이든 지구별 이웃 숨결을 한껏 누리면서 삶을 잇습니다.


  풀열매나 나무열매를 먹는 새들은 멀리멀리 날아다니면서 풀씨와 나무씨를 퍼뜨립니다. 풀과 나무는 맛나고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애쓰고, 새들은 맛나고 좋은 열매를 얻어먹으면서 풀과 나무가 어디에서나 씩씩하게 뿌리내리면서 퍼지도록 해 줍니다.


  구름이 모여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리며 냇물을 이룹니다. 시냇물이 되고 골짝물이 됩니다. 도랑물이 되고 못물이 됩니다. 들과 멧골을 흐르는 물은 흙을 실어 날라 냇가와 못가와 바닷가를 빚습니다. 비가 내리고 내리면서 들과 멧골에 있던 흙이 바다로 쓸리며 사라질 듯 생각할 수 있지만, 들과 멧골에서는 풀과 나무와 짐승과 벌레가 끝없이 나고 스러지면서 새로운 흙이 생깁니다.


.. 그전처럼 대자보를 편집하고, 딸과 놀아 주고, 셰익스피어의 비극이나 체호프의 단편을 읽었고, 빅토르 위고의 《바다의 노동자》를 독파했다 … 나는 자주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벤치 위로 가지를 늘어뜨린 큰 나무는 어린 싹들을 이미 사방으로 퍼뜨렸을 것이다. 혼자가 되어서 하루의 지난 일과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반성해 보는 것이 정신적으로 좋다. 해질 무렵은 대자연뿐만 아니라 공기까지 빨갛게 물드는 시간이자, 은하계의 별이 연기처럼 밤하늘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  (24, 40쪽)


  한겨레가 쓰는 말 사이에는 처음부터 한자말이 없었습니다. 한겨레가 사이좋게 어울려 지내는 삶 아닌, 권력을 휘두르거나 거머쥐려는 이들이 정치를 세우고 행정을 닦는다 하면서 이웃나라 중국에서 ‘중국 권력자와 지식인’이 쓰던 글을 끌어들여 처음으로 한자말을 썼습니다. 한겨레에서 권력자와 지식인 노릇을 하던 이들은 중국글을 쓰면서 중국말을 나누었고, 이런 말마디 가운데 한 가지 두 가지씩 ‘한자말’이라는 모습으로 여느 사람들 사이에 스며듭니다. 오늘날 영어가 여느 사람들 사이에 자꾸 스며드는 모습하고 똑같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말이 수없이 스며든 모습하고 똑같습니다.


  한겨레는 한겨레 말을 하지요. 요샛말로 하자면 한국말입니다. 1400년대에 어느 임금이 훈민정음(한글)을 빚지 않았어도, 여느 사람들은 누구나 한국말을 나누었습니다. 글이 없대서 걸리적거리지 않았고, 글이 없기에 말을 못하지 않았습니다. 여느 사람들로서는 글은 그닥 쓸모없었어요. 흙을 보듬고 숲을 살리며 물을 섬기는 여느 사람들은 이녁 말(한국말)로 풀이름 짓고 나무이름 지으며 벌레이름 짓습니다. 벼, 볍씨, 쌀, 밥, 겨, 쭉정이 같은 낱말은 임금님이 짓지 않았습니다. 호미, 괭이, 쟁기, 쇠스랑, 코뚜레, 새끼줄, 짚신, 키, 절구, 방아, 솥, 아궁이, 부엌 같은 낱말은 지식인이 짓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옷, 밥, 집 같은 낱말을 누가 지었을까요. 사람, 마음, 사랑 같은 낱말을 누가 지었을까요. 생각, 꿈, 믿음 같은 낱말을 누가 지었을까요. 이웃, 두레, 다리, 섬, 하늘, 땅, 흙, 나무, 풀 같은 낱말을, 또 바다, 배, 바람, 해, 달, 별 같은 낱말을 누가 지었을까요.


  흙을 보듬고 숲을 살리며 물을 섬기는 여느 사람들은 글 한 줄 안 쓰더라도 말빛으로 삶빛 일구었어요. 여느 사람들은 말숨으로 삶자락에 푸른 숨결 북돋았어요. 여느 사람들은 말마디로 삶무늬 보살폈어요.


.. 짧은 기간 동안 우리는 무려 40회나 낙하했다. 한 회 한 회가 결코 같지 않았고 매번 다른 체험을 했다. 그래서 언제나 불안과 희열이 교차되는 감정을 맛보았다. 뛰어내리기 직전 온몸에 밀려오는 피로감, 내려오면서 느끼는 스릴과 쇼크, 그리고 바람을 찢는 소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낙하훈련은 인격을 단련시키며 의지를 굳게 한다 … 우주공간을 날다 보면 연락이 두절되어 갑작스레 혼자 고립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우주비행사의 모든 정신과 신경계통은 우연한 사고, 예상치 못한 사건에 반드시 대비해야 한다. 완전한 고독에 접어들면 인간이란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고, 지난 인생을 다시 돌이켜보게 된다. 그러나 나는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려 했고, 주변의 신뢰를 한몸에 받으며 우주로 날아가는 날만을 생각했다 ..  (45, 74쪽)


  우리가 오늘날 쓰는 말과 지난날 사람들이 예전에 쓰던 말을 헤아려 봅니다. 여느 사람들도 ‘다투다’라든지 ‘싸우다’ 같은 낱말을 썼으나 ‘전쟁’ 같은 낱말은 권력자와 지식인이 한자말로 지어 끌어들였습니다. ‘독재’라든지 ‘부정부패’ 같은 한자말도 그렇지요. ‘범죄’라든지 ‘차별’ 같은 한자말도 그래요.


  한국말에 ‘거짓’이나 ‘잘못’이나 ‘해코지’ 같은 낱말이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런 한국말은 왜 생겼을까요. 이런 한국말은 어느 자리에 썼을까요. 이 나라뿐 아니라 이웃한 나라에서도 여느 사람들은 이웃나라로 쳐들어 간다거나 이웃나라를 짓밟겠다는 생각을 품지 않습니다. 권력자와 지식인이 ‘전쟁’을 생각합니다. 예나 이제나 권력자와 지식인이 ‘부정부패’를 저지릅니다. 예나 이제나 권력자와 지식인이 ‘범죄’라든지 ‘차별’을 만들고, 여느 사람들을 꽁꽁 묶으려고 ‘법’을 만듭니다. 누구나 생각을 기울이면 쉬 알 텐데, 먼먼 옛날부터 시골에서 흙 만지고 살던 사람들은 ‘법’을 몰랐어요. 법을 몰랐어도 법을 어긴 적 없고, 법을 모르지만 ‘흙’을 알고 ‘숲’을 알기에, 흙과 숲을 사랑하고 아끼는 길을 걸어가며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고 두레를 하며 품앗이를 했어요.


  지구별이 아름답다면, 지구별 이루는 흙과 숲을 제대로 헤아리면서 제대로 보듬고 제대로 누릴 줄 아는 사람이 함께 있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지구별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사람들이 차츰차츰 흙과 숲을 멀리하거나, 흙과 숲을 잊거나, 흙과 숲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참 그렇습니다. 예나 이제나 전쟁을 일으키거나 일삼은 권력자와 지식인은 흙을 안 만지고 숲에 깃들지 않았습니다. 예나 이제나 돈·힘·이름을 거머쥐려 용쓰고 다툼질 벌이는 권력자와 지식인은 흙이랑 숲하고 동떨어진 데에서 살았습니다.


.. “이름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이름도 없고 단지 실험용 번호만 붙여졌을 뿐이란 대답을 들었다. 이름도 없고 여권도 없는 여행객을 우주로 보내다니! 그럴 수는 없다. 우리들은 개의 이름을 짓기로 했다. 흔한 개 이름이 열 개 정도 거른됐지만 이런 귀여운 털북숭이에게는 어느 것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때 나는 누군가 날 부르는 바람에 개를 땅에다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말했다. “자, 잘 있어, 즈뵤즈도치카(작은 별).” ..  (93쪽)


  작은 벌레도 흙과 숲을 압니다. 작은 풀 한 포기도 흙과 숲을 압니다. 아직 어린 조그마한 나무 한 그루도 흙과 숲을 압니다. 그런데, 대학교를 마치거나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온 사람들은 흙도 숲도 모릅니다.


  국토해양부 장관이나 공무원은 흙과 숲을 얼마나 아나요. 대통령은, 국회의원은, 시장은, 군수는, 도지사는, 구청장은, 면장은, 시의원은, 군의원은, 흙과 숲을 얼마나 아나요. 아파트 끝없이 올려세우는 건설회사 일꾼은 흙과 숲을 얼마나 아나요. 판사나 검사나 의사나 간호사는 흙과 숲을 얼마나 알까요. 교사나 교수는, 학자나 기자는, 운전수나 공장 일꾼은, 저마다 흙과 숲을 얼마나 아는가요.


  흙을 모르고 숲을 모르니 지구별을 모릅니다. 지구별을 모르니 지구별 빛깔과 무늬와 냄새를 모릅니다. 지구별이 어떤 빛깔이고 무늬이며 냄새인가를 모르기에 지구별을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합니다.


  풀을 모르는 사람이 풀을 아끼지 못해요. 나무를 모르는 사람이 나무를 사랑하지 못해요. 풀과 나무와 흙과 숲을 아는 사람이 땅에 섣불리 농약이나 비료를 치지 못해요. 풀과 나무와 흙과 숲을 알아 지구별 사랑하는 사람이 함부로 자가용 장만해서 굴리지 못해요.


.. 우주선 선실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직전에 나는 신문과 라디오를 위한 메시지를 발표했다. 정신이 고양되며 일찍이 없었던 힘이 느껴졌다. 내 육체와 영혼에 자연의 음악이 들렸다. 처음에는 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서 바람이 윙윙거리는 소리로 바뀌었고, 잠시 후 그 소리는 절벽 해안을 찢어 놓는 격렬한 파도소리에 흡수되어 버렸다 … 나는 구름을 보았다. 멀리 그리운 지구에 떨어뜨린 옅은 그림자를 보았다. 잠시 내 마음속에 콜호스의 한 어린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검게 덮인 하늘이 마치 갈아엎은 밭처럼 보였던 것이다. 거기에는 별이라는 씨앗이 심어져 있다..  (124∼125, 139∼140쪽)


  유리 가가린 님이 쓴 《지구는 푸른빛이었다》(갈라파고스,2008)라는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바깥으로 나간 첫 사람인 유리 가가린 님은 지구별 바깥으로 나가서 지구별을 바라보면서 “아! 아름답다!” 하고 말했다 합니다. 그러나 이내 이 아름다움 느끼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이녁한테 주어진 몫(정보수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선을 만들고, 우주개발을 꾀하며, 우주탐사를 하려는 소련과 미국이었으니, “아름다운 지구별” 느끼기보다는 서로 툭탁툭탁 다투면서 “정보수집”에 핏대를 올릴밖에 없었으리라 싶습니다. 그래서 《지구는 푸른빛이었다》라는 책에서도 유리 가가린 님은 “아름다운 지구별”을 더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나, 자꾸자꾸 ‘소련 중앙당 섬기는’ 말을 섞습니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한 시간 반 동안 한 바퀴 돌며 느낀 아름다운 생각을 들려주기보다는 ‘우주개발에서 첫 업적 이룬 소련 중앙당 섬기는’ 말로 자꾸 기울어집니다.


.. “아! 아름답다!” 무의식중에 감탄사가 터졌다. 그러나 즉시 입을 다물었다. 나의 임무는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일이 아니다 … 지구는 선명한 색조로 아름다움이 넘쳐났으며 옅은 푸른빛이었다. 그 옅은 푸른빛은 서서히 어두워졌고 터키석 같은 하늘색에서 파란색, 연보라색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석탄 같은 칠흑이 되어 갔다. 이 변화는 정말로 아름다웠고 눈을 즐겁게 했다 … 나는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고, 고독도 느끼지 못했다 ..  (133, 140∼141쪽)


  우주선 타고 달에 내려간 미국사람은 맨 먼저 미국 깃발을 달에 꽂고 사진을 찍었어요. 생각이 참 얕아요. 아니, 스스로 얕은 생각에 머물고 말아요. 달에 미국 깃발 꽂으면 달이 미국 것 될까요. 지구별에서 우주선 타고 우주로 나왔으면 우주가 미국 것이나 소련 것 될까요.


  비행기에 폭탄과 미사일 잔뜩 싣고 어느 나라로 쳐들어 가서 폭탄과 미사일 마구 퍼부으면 ‘어느 한 나라’가 전쟁무기 많은 나라 것이 될까요. 주먹질과 발길질로 어느 한 사람 두들겨패면, ‘어느 한 사람’은 주먹힘 센 사람 밑에 꿇어앉아 노예가 되어야 할까요.


.. 미국의 우주비행사들은 우리들처럼 평화적인 일에 종사하게 될까, 아니면 전쟁준비를 위한 노예가 될까 … 복잡한 일을 계속하면서도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모두 유쾌하고 떠들썩한 것들이었다 … 밀려오는 행복함을 주체할 수 없어서 나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큰 소리로 부리기 시작했다 ..  (143, 148, 151쪽)


  개구리 우는 철이 돌아옵니다. 매미와 풀벌레 나란히 우는 철이 다가옵니다. 이윽고 가을걷이에 바쁜 철이 돌아올 테고, 조용한 들판에 멧새 노래하는 철이 다가오며, 호젓한 들과 멧자락에 소복소복 흰눈 내리는 철이 다가옵니다. 흰눈 맞으며 동백꽃 붉은 철 지나면, 맑고 푸른 바람이 온누리 보듬는 철이 다가오고, 풀꽃과 나무꽃 흐드러지면서 들딸기 익고 살구랑 복숭아 익는 철 다가오겠지요.


  제비가 돌아와 집을 짓지 못하는 곳에 농약과 비료를 자꾸 씁니다. 개구리가 노래할 수 없는 곳에 기계와 시멘트가 자꾸 들어섭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서 흙이 사라지고 숲이 없어집니다. 아름다운 지구별에서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꿈과 빛이 어느덧 옅어지고 흐려집니다. 흙이 없이 아스팔트 있는 터전은 얼마나 살 만할까 궁금합니다. 숲이 없이 시멘트 층집 우람한 터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어깨에 짊어진 짐을 내려놓아요. 두 손에 품을 사랑과 꿈을 생각해요. 귀를 찢는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요. 귀를 살며시 보듬는 따사로운 노랫소리 감도는 마을 되도록 생각을 모아요. 아름답게 태어나 아름답게 살아갈 숨결입니다. 아름답게 서로 아끼면서 함께 웃을 우리들입니다. 4346.5.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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