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놀이 1

 


  두 아이가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한참 안 들어오고 조용하더니, 둘이 히히 웃으면서 돌아온다. 뭘 하고 왔는가 하고 들여다보니, 큰아이가 제 팔뚝에 토끼풀을 빙 둘러 팔찌를 만들고, 제 동생 팔뚝에도 토끼풀을 빙 둘러 팔찌를 만들어 주었다. “토끼풀 팔찌야.” 참 곱구나. 토끼풀 쑥쑥 자라 너희 팔목 두 번 감을 만큼 되네. 그런데, 한손에 돗나물꽃 들고 자전거 탈 수 있겠니? 4346.5.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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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5.25.
 : 바다내음 마시기

 


- 오월 이십오일 한낮,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고, 대문을 연 다음, 마을길에 내다 놓으니,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까르르 웃으며 좋아한다. 큰아이는 동생더러 “아직 안 돼. 기다려. 아버지가 밖에다 내놓은 다음 타.” 하고 말한다. 햇볕 따사롭게 내리쬐는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일하기에는 후끈후끈 더울 테고, 자전거 타기에는 꼭 알맞춤하게 좋다.

 

- 시골마을에서는 모두 봄일로 바쁘다. 들판마다 할매와 할배가 푸성귀를 뜯거나 마늘을 뽑거나 씨앗을 뿌리거나 풀을 벤다. 다른 시골에서도 고흥처럼 할매와 할배가 들일을 하며 봄날 보내겠지. 어느 시골에서나 젊은이는 없겠지. 샛자전거에 탄 큰아이는 노래를 부른다. 수레에 앉은 작은아이는 수레를 한손으로 붙잡고 바깥을 내다본다. 얼마 앞서까지 수레에 등을 기대고 앉던 작은아이인데, 이제 수레를 한손으로 잡고는 바깥을 두리번두리번 바라보기를 즐긴다.

 

- 면소재지에 들러 아이들 과자 두 점 장만한다. 빵도 한 봉지 장만한다. 오늘은 발포 바닷가로 가 볼 생각이다. 면소재지 벗어나 당곤마을 옆을 지난다. 오르막 하나를 지난 뒤 천천히 새 오르막을 지나며 화덕마을 앞을 지난다. 오늘은 맞바람 맞으며 이 길 지나가는데 제법 잘 나간다. 이제 고흥에서 세 해째 자전거를 달리면서, 고흥 길자락에 다리가 익숙해지며 새 힘살 붙었을까. 아이들은 나날이 몸무게 늘어나는데다가, 큰아이 타는 샛자전거를 붙이기까지 했는데, 지난해에 이 길 달릴 때보다 한결 가볍게 오르막을 넘는다.

 

- 발포 포구와 바닷가로 가는 길 나뉘는 세거리에 이른다. 샛자전거에 탄 큰아이가 오늘 어디로 가는지 알아챈다. “아, 바다로 가는구나. 아이, 좋아라.” 바다내음이 난다. 짠 기운 머금은 바람이 분다. 자전거를 늦추어 천천히 발포 바닷가로 들어선다. 수돗가에 먼저 간다. 물이 나오는지 살핀다. 나온다. 좋다. 작은아이는 잠들었다. 자전거를 후박나무와 소나무 그늘 드리운 곳에 세운다. 작은아이 안전끈을 끌른 뒤 담요를 덮는다. 큰아이하고 바닷가 걸상에 앉아서 바다바라기를 한다. 오직 우리 세 사람 있는 바다는 호젓하면서 시원하고 고즈넉하다. 과자를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바다 기운을 마신다. 공책을 꺼낸다. 바다가 우리한테 나누어 주는 이야기를 몇 마디 적는다.


 물결은 자동차를 멈추게 하고
 바람은 손전화를 끄게 하며
 햇살은 사진기를 내려놓게 한다.


- 자동차 끌고 바닷가로 오는 사람들 있다. 우리끼리 즐기는 바다일 줄 알았는데, 아니네. 자동차 한 대 섰다 가고, 두 대 섰다 간다. 석 대와 넉 대째 섰다 간다. 모두 살짝 돌아보고는 간다. 이곳에 자전거 타고 찾아올 사람은 없을까.

 

- 작은아이가 잠에서 깬다. 작은아이도 함께 과자를 먹는다. 큰아이가 “나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 “가고 싶으면 스스로 가면 돼. 신 벗고 가.” 큰아이가 신을 벗는다. 천천히 바다로 들어간다. 모래밭에서 뒹굴며 모래를 만진다. 모래로 탑을 쌓고 구멍을 판다. 이윽고 작은아이도 누나 따라 모래밭놀이 하고프다는 얼굴이다. 그래, 너도 신 벗고 들어가면 되지.

 

- 한 시간 즈음 논 다음 아이들 손발 씻긴다. 이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자동차를 몰고 큰식구 바닷가에 놀러온다. 그리고, 자전거 짐받이에 아이 태운 아주머니 한 분 들어온다. 뒤따라 혼자 자전거 달리는 아이 하나 들어온다. 아, 이곳에 자동차 몰고 찾아오는 사람만 있지 않구나. 자전거로 바닷가 찾아오는 분이 있네. 아름답다. 우리 식구도 아름답고, 저 아주머니 식구도 아름답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바람이 안 분다. 발포 바닷가 올 적에는 맞바람이더니, 돌아가는 길에는 바람이 없구나. 바람이 없으면 없는 대로 나쁘지 않다. 다만, 쳇 쳇 하는 소리를 실쭉샐쭉 뱉는다. 이제 오롯이 태평양바람 뭍으로 올라가는 여름이 코앞이로구나.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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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13. 꽃말과 사랑말
― 삶과 마음을 가꾸는 말

 


  제비꽃 모습을 잘 보여주는 책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지성사,2013) 을 읽다가 33쪽에서 “운동회 날에는 달리기, 오자미 놀이, 기마전 같은 단체 경기에서” 같은 대목을 봅니다. 책을 가만히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책을 쓴 분은 ‘오자미’라고 적는데, 나는 어릴 적에 ‘오재미’라고 말했어요. 1982∼1987년에 아직 국민학교라는 이름 쓰던 학교를 다니는 동안, 교사와 둘레 어른은 으레 ‘오재미’라 했어요. 그무렵에는 ‘오재미·오제미·오자미’ 같은 낱말이 사투리처럼 조금씩 달리 쓰는 말인 듯 잘못 듣고 잘못 배웠습니다.


  학교에서 ‘오재미’를 마련해서 하나씩 가져오라 할 때마다 ‘천으로 주머니를 만들고, 속에 콩이나 쌀을 넣으라’ 했어요. 천주머니에 콩을 넣으면 ‘콩주머니’인 셈입니다. 모래를 넣으면 ‘모래주머니’ 되고, 쌀을 넣으면 ‘쌀주머니’ 돼요. 지난날에는 먹고살기 어렵던 가난한 집들 많아, 천주머니에 콩이나 쌀을 못 넣기 일쑤였어요. 동무들은 학교 운동장 한쪽을 파서 모래를 담고는 교실에서 바느질을 해서 모래주머니를 내놓곤 했어요.


  콩이나 쌀 아닌 모래 넣은 주머니를 내면, 교사들은 아주 싫어했어요. 모래 담은 천주머니는 몇 번 던지면 가는 모래가 술술 빠져나오며 못 쓰게 되었거든요.


  그나저나, ‘오재미’이든 ‘오제미’이든 ‘오자미’이든 모두 일본말이에요. 일본에서는 콩을 넣은 주머니를 던지며 노는 ‘お手玉(오테다마)’가 있다고 해요. 이 ‘오테다마’가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말꼴이 살짝 바뀌었어요. 국어사전을 살피면 ‘오자미’라 쓰지 말고 ‘놀이주머니’로 고쳐쓰라 나와요. 그런데, 정작 국어사전 올림말로 ‘놀이주머니’도 없고 ‘콩주머니’도 없어요. 올바로 고쳐쓸 한국말을 외려 안 싣고, 일본말만 실은 국어사전이에요.


  사람들 말씀씀이를 살펴봅니다. 아직도 ‘리어카’나 ‘바께쓰’나 ‘오라이’ 같은 일본말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 퍽 많아요. ‘손수레’나 ‘양동이’나 ‘좋아’ 같은 한국말을 써야 알맞고 바르며 고운 줄 못 깨닫는 분 꽤 많아요. 때로는 한국말이 맛이 안 난다 여기며 일본말을 쓰기도 해요. 한국말 ‘병따개’로는 병을 따는 맛이 안 나고, ‘오프너’ 같은 영어를 써야 비로소 병을 따는 맛이 난다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공사장에서 일할 적에는 ‘막일’ 아닌 ‘노가다’라는 일본말을 써야 제대로 일하는 줄 여기곤 해요.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을 더 읽습니다. 115쪽에 “제비꽃 종류도 대부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이른 봄에 꽃이 피는 이른바 조춘早春 식물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이른 봄에 꽃이 피는”이라 말하다가 “조춘早春 식물”이라 말합니다. 쉽고 알맞게 “이른 봄에 꽃이 피는”이라 적었으면 이대로 글을 마무리지어 “이른 봄에 꽃이 핀다”라든지 “이른 봄에 꽃이 피는 특징이 있다”처럼 하면 되지요. 애써 ‘조춘’이라는 어려운 한자말 끌어들이고서, 다시 한자로 ‘早春’처럼 붙여야 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렇게 붙이니 말이 어렵고, 뜻이 뒤죽박죽 섞여요.


  학문을 하며 쓰는 낱말로 ‘조춘 식물’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 글월을 헤아리면, 학문을 할 적에도 ‘이른봄 식물’이나 ‘이른봄꽃’처럼 쉽게 새 낱말 빚을 만해요. 더 생각해 보면, 한자말로만 ‘조춘’이라 한 낱말 쓸 노릇 아니라, 한국말로도 ‘이른봄·이른여름·이른가을·이른겨울’처럼 쓸 수 있어요. 국어사전에는 ‘첫봄·첫여름·첫가을·첫겨울’ 같은 낱말 실려요. ‘조춘·조하·조추·조동’처럼 알쏭달쏭한 한자말은 안 써도 즐겁습니다. 아니, ‘조하’나 ‘조동’이라는 낱말이 무엇인지 알 사람은 아주 적어요.


  제비꽃은 이른 봄에 핍니다. 곧, ‘이른봄꽃’입니다. 찔레꽃은 늦은 봄에 핍니다. 곧, ‘늦봄꽃’입니다. 모과꽃이나 탱자꽃이나 붓꽃은 한창 무르익은 봄에 핍니다. 곧, ‘한봄꽃’이에요. 감꽃은 봄이 저물고 여름이 다가올 무렵에 피니, ‘이른여름꽃’ 또는 ‘첫여름꽃’이 됩니다. 바야흐로 가을이나 겨울 다가올 적에 피는 꽃은 ‘가을꽃’과 ‘겨울꽃’ 될 텐데, 철을 더 헤아려 ‘늦가을꽃’이나 ‘첫겨울꽃’ 같은 낱말 새삼스레 빚을 수 있습니다.


  눈은 겨울에 내려 ‘겨울눈’인데 봄까지 내리면 ‘봄눈’입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가르면 ‘일월눈’이나 ‘이월눈’, 그리고 ‘삼월눈’과 ‘사월눈’처럼 쓸 수 있습니다. 바람을 두고 ‘오월바람’과 ‘유월바람’이라 쓸 수 있어요. 하늘을 놓고 ‘칠월하늘’과 ‘팔월하늘’이라 쓸 수 있고, 비를 가리켜 ‘구월비’와 ‘시월비’라 쓸 수 있어요.


  하루하루 흐르는 삶을 바라보며 말 한 마디 짓습니다. 삶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말을 즐겁게 짓습니다. 즐거운 삶에서 즐거운 말 샘솟는 동안, 내 마음에도 즐거움 샘솟고, 즐거움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이웃과 동무를 사귀면서, 시나브로 사랑씨앗 한 톨 맺습니다. 내 마음에도 사랑씨앗을 한 톨 심고, 이웃 마음에도 사랑씨앗을 한 톨 심습니다. 알맞고 바르며 아름다운 말로 생각을 가다듬고 삶을 빛내는 사이, 어느덧 내 꿈과 사랑도 알맞고 바를 뿐 아니라 아름답게 거듭납니다.


  꽃을 생각하니 꽃다운 말이 됩니다. 사랑을 생각하니 사랑스러운 말이 됩니다. 웃음을 생각하니 웃음 넘치는 말이 됩니다. 기쁨을 생각하니 기쁨 가득한 말이 됩니다. 삶을 가꾸듯 말을 가꿉니다. 삶을 가꾸듯 말을 가꾸면서 마음을 나란히 가꿉니다. 말을 가꾸면서 삶을 가꿉니다. 말을 가꾸는 몸가짐으로 마음을 함께 가꿉니다. 말과 마음을 가꾸면서 저절로 삶을 가꾸고 사랑을 가꿉니다.


  꽃내음 나누려는 마음일 때에는, 내 마음 담아서 나타내는 말마디에 꽃내음 찬찬히 묻어납니다. 사랑빛 함께하려는 생각일 때에는, 내 사랑 드러내려는 말마디에 사랑스러운 빛줄기 곱다시 드리웁니다. 전문가나 학자가 ‘오자미’라는 낱말 파헤쳐 고쳐쓰라 일컫기 앞서, 아이들과 살아가는 여느 어버이와 교사 스스로 고운 넋 담는 고운 말 쓰면서 고운 삶 되기를 빕니다. 학문하는 사람이 전문으로 쓰는 낱말에도 따사롭고 살가우며 넉넉한 숨결 북돋우는 마음 깃들 수 있기를 빕니다. 4346.5.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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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화질] 술 한잔 인생 한입 1 술 한잔 인생 한입 1
라즈웰 호소키 지음, 김동욱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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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39


 

꽃 한 송이에서 삶을
― 술 한 잔 인생 한 입 1
 라즈웰 호소키 글·그림,김동욱 옮김
 AK커뮤니테이션즈 펴냄,2011.9.20./5000원

 


  오늘 듣는 아이들 말소리는 어제 듣던 아이들 말소리와 안 같습니다. 오늘 듣는 풀바람 소리는 어제 듣던 풀바람 소리와 안 같습니다. 오월 막바지에 이르는 요즈음 전남 고흥 시골자락 보금자리를 헤아립니다. 요 이레 사이에 마루문 모두 열고 밤잠 이룹니다. 다만, 모기그물은 치지요. 어제는 그예 뒷문도 열어 앞뒤로 바람 드나들도록 합니다. 어느덧 여름이 코앞입니다.


  모기그물까지 열면 집안으로 바깥소리 한결 크게 스며듭니다. 마루문 닫아도 집안으로 바깥소리 제법 잘 들어옵니다. 우리 보금자리는 바깥소리를 그리 잘 막지 못하거든요.


  여름이 코앞이기에 여름이 코앞인 소리가 들려옵니다. 겨울에는 겨울 한창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지요. 겨울바람에 이은 봄바람, 봄바람에 이은 여름바람, 그리고 이 여름바람 지나 다시 찾아올 가을바람, 바람마다 소리와 맛과 내음과 결이 사뭇 다릅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하루를 엽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고단한 몸 누여 잠을 이룹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개구리와 풀벌레와 멧새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아이들 놀이와 웃음 바라봅니다.


- “어? 이건 유채? 아, 이 향기. 그야말로 봄이 왔구나 하는 느낌인데요?” “어쭈, 제법 먹을 줄 아는데?” (30쪽)


  봄이 왔구나 하는 느낌은 바람을 마시며 깨닫습니다. 갑자기 따스한 날씨 찾아오는 겨울 한복판에는 봄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겨울 한복판에도 살짝 따스한 날씨 깃들기도 한다고 느낄 뿐입니다. 봄날 문득 찬바람 분다 해서 갑자기 겨울이 되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봄 한복판에도 곧잘 봄 시샘하듯 찬바람 불기도 하네 하고 생각할 뿐입니다.


  아이들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떠올립니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얼굴 바라보면서, 이 얼굴에 어떤 사랑 깃들었을까 생각합니다. 놀기도 하고 자기도 하며 일하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내 얼굴 헤아립니다. 내 얼굴에는 어떤 꿈 깃들었을까 헤아립니다.


  내 손으로 내 얼굴 문지릅니다. 내 손으로 아이들 옷가지 빨래합니다. 내 손으로 내 종아리 주무릅니다. 내 손으로 식구들 밥을 짓습니다. 내 손으로 자전거를 달립니다. 내 손으로 아이들 품에 안으며 마실을 다닙니다.


- “솔직히 말해 봐요, 주인장. 실은 하나 더 숨겨 뒀지? 국물 밑바닥에 있는 게 슬쩍 보이던데?” “저, 그러니까. 이, 이건 못 드립니다! 우리 마누라 갖다 줄 거라서요!” (108쪽)


  시골에서는 군내버스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도 잘 지나가는 셈입니다. 그런데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이 버스를 놓치면 두 시간 기다려야 합니다. 멍하니 두 시간 보내야 합니다. 그러나, 시골에서 멍하게 두 시간 보내는 일 없습니다. 한 시간 반 즈음 시골 들길 걷습니다. 한 시간 반 즈음 가만히 해바라기를 하거나 꽃구경을 합니다. 아이들은 버스를 제때에 타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뛰고 그저 달리며 그저 놀면 즐겁습니다.


  도시에서라면 버스 한 대 놓치고 십 분이나 오 분 뒤에 다시 오더라도 갑갑하거나 애가 탈 수 있으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도시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맑은 노랫소리나 밝은 햇살이나 고운 바람이나 싱그러운 풀벌레 이야기 누리지 못하거든요.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가 물결치는 도시에서는 고작 1분 기다리는 틈조차 고달픕니다.


  사람들은 으레, 아니 도시사람은 으레 시골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시골은 시간이 느리게 가지 않아요. 시골에서는 1분도 1초도 한껏 누립니다. 1분도 1초도 한껏 누리며, 이렇게 누리는 하루가 깁니다. 이와 달리, 도시에서는 1분이나 1초를 아끼려고 모두 달음박질입니다. 달리고 겨루고 부딪히고 싸우는 도시예요. 이런 도시에서는 시간이 너무 빠듯해요. 시간이 넉넉하거나 느긋한 사람이 있을 수 없어요.


- “사실 제가 워낙 전근을 많이 다녀서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보니 각 지방 술이란 술은 다 마셔 보게 되더군요. 하지만 아직 가 본 적 없는 지방이나 술도 얼마든지 있지요.” (121쪽)


  라즈웰 호소키 님 삶을 보여주는 만화책 《술 한 잔 인생 한 입》(AK커뮤니테이션즈,2011) 첫째 권을 읽습니다. 라즈웰 호소키 님은 술 한 잔에서 삶 한 자락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럼요. 술 한 잔뿐이겠어요. 꽃 한 송이에서도 삶 한 타래 느껴요. 나무 한 그루에서도 삶 한 꾸러미 누려요. 풀 한 포기에서도, 개구리 노랫소리 한 가락에서도, 제비 한 마리한테서도, 우리는 언제나 삶을 살포시 마주합니다.


  꼭 술을 마셔야 하지 않습니다. 아마, 누군가는 골골샅샅 맛난 물줄기 찾으러 마실 다니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골골샅샅 예쁜 꽃송이 만나러 나들이 다니겠지요.


  맛집과 멋집 찾아다녀야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해바라기 누리면서 마실이 됩니다. 들길에 서고 흙을 맨발로 밟으며 나들이가 됩니다. 어디에서나 삶이고, 언제나 삶입니다. 4346.5.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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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몸에 독이 쌓이고 있다> 같은 책을 읽은 어른 가운데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서,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하고 등을 진 채, 똥오줌 거름을 써서 텃밭을 가꾸면서, 대농이 아닌 소농으로서 자급자족 즐기고, 이웃 어르신들과 오순도순 어울리는 삶 빛내겠다고 마음 먹을 사람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도시에서 생태환경 사랑하며 살아갈 길'을 씩씩하고 슬기롭게 찾으면서, 생협을 사랑하고 마을 작은 협동조합(두레, 품앗이)을 이루어, 대기업 계열사 가게에 휘둘리지 않는 '작은 가게' 작은 삶 사랑할 사람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아이 몸에 독이 쌓인다고 걱정할 까닭 없다. 왜냐하면, 아이 몸에 앞서 우리 도시 문명 사회 어른들 몸은 온통 독덩어리이니까. 어른들 마시는 술은 얼마나 화학첨가물덩어리인 줄 아는가. 어른들 입는 옷과 신은 얼마나 화학약품투성이인 줄 아는가. 어른들 모는 자가용은 얼마나 화학조합물더미인 줄 아는가. 어른들 스스로 몸에 독을 가득 쌓으며 사는 주제에, 아이들 걱정할 때가 아니다. 어른부터 스스로 똑바로 살면 된다. 그러면 아이들 몸에는 독이 깃들지 못할 뿐 아니라, 아이들 몸에 어쩌다 스며들 독도, 아이들 스스로 정화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영어공부에 유치원 조기교육에 뭐다 하면서 잔뜩 길들이고 괴롭히는데, 아이들이 죽지 않고 살 길이 있겠는가. 부디, 이 책 읽을 사람들 모두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울까'를 생각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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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몸에 독이 쌓이고 있다- 담배보다 나쁜 독성물질 전성시대
임종한 지음 / 예담Friend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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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 25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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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두 아이와 살아가는 아버지로서 생각하고 말한다. 시골에서 내 땅 누리면서 내 땅을 내 사랑으로 일구면 아무 걱정 없을 뿐 아니라, 날마다 사랑 샘솟아요. 우리, 이제 시골에서 살아갈 길 찾아요. 그러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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