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아이 8. 2013.6.8.

 


  밥보다 책에 폭 빠진 아이가 자꾸자꾸 묻는다. 책에 적힌 글이 무엇이냐 하고 묻는다. 궁금해서 묻겠지. 그림으로 살피며 어떤 이야기인지 얼추 헤아리기는 하지만, 막상 글을 못 읽으니 속내를 살피지 못해 궁금할 테지. 아이한테 그림책뿐 아니라 만화책도 읽어 주어야겠다고 느낀다. 차근차근 읽어 주고, 똑똑히 읽어 주면서, 아이가 마음속으로 이야기꾸러미 일구도록 도와야겠다고 느낀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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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7. 2013.6.7.

 


  인천 큰아버지네 마실 마치고 고흥집 돌아온 큰아이, 집에서 맨 먼저 한 일은 ‘도라에몽’ 만화책 집어서 읽기. 집에 오자마자 ‘도라에몽’ 만화책 그토록 보고 싶었니? 다음에 마실 갈 적에는 ‘도라에몽’ 만화책 한 권 꼭 챙길까?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밥 차리기 힘들어, 너희들 잘 먹는 짜장면 끓였는데, 너는 짜장면 그릇도 안 쳐다보고 ‘도라에몽’ 만화책에 폭 빠졌구나.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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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09 14:35   좋아요 0 | URL
아유~얼마나 책이 재미있으면
짜장면을 앞에 두고도 저렇게, 책에 콕 빠져있을까요~? ^^
음, 근데 저도 짜장면 먹고 싶네요. ^^;;

파란놀 2013-06-09 15:23   좋아요 0 | URL
오늘은 즐겁게 집에서 볶아서 함께 드셔 보셔요~~

도라에몽은... 어른이 봐도 재미있는 만화예요 @.@
 

[시로 읽는 책 7] 시골 흙일꾼 삶

 


  시골에서 흙 만지는 사람은 모두 흙일꾼
  새내기도 헌내기도, 초보도 원로도 없이
  서로서로 사랑스러운 흙 만지는 삶.

 


  시골에서 지내며 둘레를 살피면, 시골마을 어르신은 ‘나이 여든’이건 ‘나이 일흔’이건 아무렇지 않게 흙일을 합니다. 흙 만진 지 쉰 해가 넘었건 예순 해가 넘었건 이녁 스스로 ‘전문가’라든지 ‘고수’라든지 ‘원로’라고 여기지 않아요. 그저 흙일꾼(농사꾼)이에요. 이와 달리, 도시에서는 모두 전문가요 고수요 원로예요. 시를 쓰거나 기자로 일하거나 법을 다루거나 정치를 하거나 컴퓨터를 만지거나 사진을 찍거나 사회운동을 하거나 무엇을 하든, 온통 ‘-가(家)’나 ‘작가(作家)’ 같은 이름 얻으려 애써요. 스스로 ‘님’이 되어요. 기자님, 판사님, 대통령님, 간호사님, 요리사님, …… 되지요. 농사꾼더러 농부님처럼 가리키는 분이 더러 있지만, 참말 농사꾼 들은, 또 아이들 보살피며 사랑하는 살림꾼(주부) 들은, ‘님’도 ‘-가’도 ‘작가’도, 또 ‘선생님’도 바라지 않아요. 농사꾼과 살림꾼한테는 이런저런 높임말이랑 꾸밈말이 어울리지 않아요. 흙을 만지고 물을 만지며 숨결 푸르게 북돋우는 자리에 서면, 누구라도 빙그레 웃으며 가장 맑은 넋 되는구나 싶어요. 4346.6.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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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517) 눈물의 2 : 눈물의 아우성이요

 

진짜는, 터지는 억장으로 토해 내는 한 맺힌 절규요. 눈물의 아우성이요
《김수정-아기공룡 둘리 (7)》(예원,1990) 7쪽

 

  ‘토(吐)해’는 ‘뱉어’나 ‘쏟아’로 다듬습니다. ‘한(恨)’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응어리’나 ‘아픔’으로 손보면 한결 낫고, ‘절규(絶叫)’는 ‘울부짖음’이나 ‘부르짖음’으로 손봅니다. 가만히 따지면, ‘진(眞)짜는’도 그대로 둘 만한 한편, ‘참말은’으로 손볼 수 있어요. “터지는 억장(億丈)”도 “터지는 가슴”으로 손볼 만합니다. 한자말 ‘억장’은 “썩 높은 것”을 뜻한다고 해요. 관용구처럼 “억장이 무너진다”처럼 쓰는데, “가슴이 무너진다”나 “마음이 무너진다”고 쓸 수 있어요.

 

 눈물의 아우성이요
→ 눈물겨운 아우성이요
→ 눈물나는 아우성이요
→ 눈물지는 아우성이요
→ 눈물어린 아우성이요
 …

 

  슬프거나 가슴 벅찬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눈물을 왈칵 쏟아낼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들은 “눈물바다를 이룬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눈물바다’가 아닌 ‘눈물의 바다’처럼 말하는 분이 드물게 있습니다.


  사람들 아픔을 먹고 자란다고 하면서 ‘눈물꽃’이나 ‘눈물나무’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때에도 ‘눈물꽃-눈물나무’처럼 알맞게 적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사이에 토씨 ‘-의’를 넣어서 ‘눈물의 꽃-눈물의 나무’처럼 적으려고 하는 분이 꼭 있습니다.

 

 눈물바다 / 웃음바다 (o)
 눈물의 바다 / 웃음의 바다 (x)

 

 웃음이나 눈물을 학문으로 파고드는 분들은 으레 “눈물의 미학”이나 “웃음의 해학”이니 하고 읊조립니다. “아름다운 눈물”이나 “익살스러운 웃음”처럼 읊조리는 일은 없습니다. 아름다움을 말하는 학문이면서도 ‘아름다움’이 아닌 ‘美學’이라 말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만, 우리 삶을 꾸밈없이 담아내거나 드러내려는 움직임을 찾아보기가 퍽 어렵습니다.


  학문과 삶은 따로따로인지, 학문은 삶에 터잡지 않아도 되는지, 학문은 삶하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삶이 없이 어떤 문화나 역사나 예술이 있을까 싶습니다. 삶에 뿌리내리는 말을 하지 않고 무슨 생각을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눈물의 외침입니다 (x)
 눈물로 외칩니다 (o)

 

  어쩌면, 뿌리 잃고 떠도는 모습이 우리 삶일까요. 뿌리 없이 맴도는 모습이 우리 삶인가요. 뿌리가 없어도 얼마든지 줄기를 올리고 잎을 틔우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수 있다고 여기는 우리 삶인지요. 4341.8.10.해./4346.6.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참말은, 터지는 가슴으로 뱉어내는 응어리 진 울부짖음이요. 눈물나는 아우성이요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79) 눈물의 4 : 눈물의 밥

 

피곤에 전 방석모와 방패 / 한쪽으로 치워놓고 / 우리들의 형제 우리들의 친구들이 / 빗속에서 눈물의 밥을 먹는다
 곽재구 《서울 세노야》(문학과지성사,1990) 32쪽

 

  ‘피곤(疲困)’ 같은 낱말은 스스로 쓰고 싶을 때에 씁니다. 이런 낱말 안 쓰고 싶다면, “피곤에 전”은 “고단한”으로 손봅니다. “우리들의 형제 우리들의 친구”는 “우리들 형제 우리들 친구”나 “우리 형제 우리 동무”로 손질합니다.

 

 눈물의 밥을
→ 눈물밥을
→ 눈물어린 밥을
→ 눈물 나는 밥을
→ 눈물 흘리며 밥을
→ 눈물 뚝뚝 밥을
 …

 

  말로 빚는 예술을 가리켜 시라고 합니다. 한국말로 빚는 한국예술이란 한국문학이 되겠지요. 국어사전을 살피면 ‘눈물밥’도 ‘웃음밥’도 없어요. 그러나, 말로 빚는 예술인 시인 만큼, 시를 쓰는 우리들은 ‘눈물밥’이나 ‘웃음밥’ 같은 낱말 즐겁고 아름답게 빚을 수 있습니다.


  ‘사랑밥’이나 ‘꿈밥’ 같은 낱말 빚을 수 있어요. ‘이야기밥’이나 ‘노래밥’ 같은 낱말 일굴 수 있어요. 아름다운 생각 길어올리면서 새말 빚어요. 생각이 밥이 되어 ‘생각밥’ 되고, 마음을 살찌우기에 ‘마음밥’ 되지요. 들에서는 나락이 익어 몸을 살찌우는 밥 되고, 시를 쓰는 우리들은 마음을 살찌우는 글밥 짓습니다. 4346.6.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고단한 방석모와 방패 / 한쪽으로 치워놓고 / 우리들 형제 우리들 친구들이 / 빗속에서 눈물밥을 먹는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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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3.6.7. 큰아이―시그림 함께

 


  아이가 그림을 그리도록 이끌고 싶을 때에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곁에서 그림을 함께 그리면 된다. 아이는 스스로 그림이 좋아,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어머니나 아버지가 말없이 그림을 즐기다 보면, 아이는 저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 곁에 앉아 얌전하고 예쁘게 그림을 즐긴다. 큰아이는 어제에 이어 계단을 그린다. 아버지는 무언가 다른 그림 그리고 싶어, 파란 빛깔 연필로 하늘과 구름을 그리다가, 꽃 한 송이 그리고, 굵직한 나무 한 그루 그린다. 나무는 굵직하고 커서 가지가 안 보이도록 키가 크다고 생각하며 그린다. 그런 뒤, 아이들 이름을 곱게 적어 넣고, 큰아이한테는 ‘숲’을, 작은아이한테는 ‘빛’을 선물한다. 큰나무 오른쪽에 어머니와 아버지 자리도 그린다. 그러고는 어머니한테는 ‘하늘’을 아버지한테는 ‘땅’을 선물한다. 자, 그러면 이제 무얼 그릴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연필로 또박또박 글을 적어 본다. 내가 읽으면서 즐겁고, 아이한테 한글 가르치면서 재미날 만한 글을 적는다. 누구나 시인이니, 누구나 시그림 그릴 수 있다고 느낀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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