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꽃

 


푸성귀 심지 않은
멧골밭에
칡덩굴 등나무 줄기
하나둘 감겨들어
깊고 넓게
뿌리내린다.

 

칡덩굴도 등나무 줄기도
억세고 단단해
좀처럼 안 뽑힌다.

 

밭 버리네
땅 버리네
마을 할매들
혀 끌끌 차지만,

 

오월 밝히는
칡순 푸르고
등꽃 파랗다.

 


4346.5.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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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손을 바라보면

 


  글씨쓰기 놀이를 하는 아이 손을 바라본다. 늦은 저녁까지 잠들 생각 않는 두 아이하고 부대끼다가 나는 그만 큰아이 앞에 모로 누워서 글씨쓰기를 이끈다. 너희는 참 기운이 넘치네 하고 생각하다가, 곯아떨어질 만큼 놀지 못해서 늦은 저녁에도 기운이 넘칠 수 있겠다고 느낀다. 글씨쓰기 놀이를 하면서 연필 아닌 색연필 집는 큰아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렇게 해서야 언제 글씨를 익힐까 싶다가도, 아직 여섯 살인 큰아이가 굳이 벌써 글씨를 다 알 까닭 없겠다고 생각한다. 놀면서 글씨를 즐기면 되지. 저것 좀 보라구. 어느 빛깔로 글씨를 그릴까 하고 가만히 생각하면서 고르잖아. 아이 스스로 가장 예쁘다 싶은 빛깔로 알록달록 글씨쓰기 놀이를 하고 싶다잖아. 그래, 나는 네 아버지로서 네 손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 4346.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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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99 : 걸으며 읽는 책

 


  걷는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뛰는 사람도, 기는 사람도, 책을 읽지 못합니다. 자전거를 달릴 적에도, 자가용을 몰 적에도, 책을 읽지 못합니다. 오직 걷는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걷는 사람은 걷는 동안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걷다가 가만히 서서 책을 읽으며, 가만히 섰다가 얌전히 앉아서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조용합니다. 책에 깃든 줄거리를 살피니 조용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싸우지 않습니다. 책을 쓴 사람과 마음으로 사귀니 싸우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사랑을 합니다. 책을 일구고 다루는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하니 사랑을 합니다.


  일본사람 이마모토 나오 님이 빚은 만화책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대원씨아이,2011) 3권을 보면, 시골마을 ‘벚나무 꽃잔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골마을 떠나 도시로 간 잘생긴 젊은이가 연예인이 되고 나서 이녁 고향마을 벚나무 꽃잔치 이야기를 방송에서 들려줍니다. 이 때문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여느 때에는 거의 눈여겨보지 않던 시골마을에 몰려듭니다. 주차장이 꽉 찰 뿐 아니라, 자동차가 들어설 길도, 다시 돌아나갈 길조차 없습니다. 이때 어느 할배가 시골 면사무소 일꾼(공무원)한테 말합니다. “하하하, 요즘 관광지는 차로 휙 하고 왔다가 휙 하고 가는 게 대세니까요. 그래도 여긴 산이 많으니 역에서부터 천천히 걷게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사실 연세 드신 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튼튼하거든요. 그나저나 정말 좋네요. 저 벚나무를 보면서 휘파람새 소리까지 듣는 건 최고의 사치죠. 역에서 걸어오는 내내 유채꽃도 피어 있고요. 지역사람들한테야 별 감흥이 없겠지만(97쪽).”


  만화책으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아메나시 면’이라는 곳에는 문화유적지도 대단한 경관도 없다고 해요. 조금 오래된 제법 우람한 벚나무 한 그루 있어요. 면사무소 일꾼이 된 젊은이가 이 벚나무를 도시사람한테 알려 구경하러 오도록 하면, 젊은 기운 거의 사라진 시골마을에 새빛 드리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만화책 줄거리를 찬찬히 살핍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줄거리로뿐 아니라, 참말 오늘날 한국 시골마을 어디에서나 시골사람도 으레 자동차로 움직입니다. 도시사람은 아주 마땅한 듯 자동차로 움직이고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걷지 않아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느긋하게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걸어서 볼일 보는 사람 적어요. 자전거를 몰아 봄바람 여름볕 가을빛 겨울눈 골고루 누리는 사람도 적어요.


  걷지 않기 때문에 마을이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모릅니다. 걷다가 서서 쉬지 않으니 이웃집이 어떤 무늬인지 똑똑히 모릅니다. 걷다가 털썩 주저앉아 다리쉼을 하며 구름바라기 해바라기 하지 않으니 내 보금자리와 이웃 삶자락이 어떤 숲이요 풀이며 나무로 이루어졌는가를 깨닫지 못합니다.


  책을 읽으려면 책하고 사귀어야 합니다. 책을 읽으려면 자가용 손잡이를 놓아야 합니다. 책을 읽으려면 전쟁이나 경쟁을 물리쳐야 합니다. 책을 읽으려면 이웃을 아끼고 동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걸어다니는 어른들이 책을 읽습니다. 4346.6.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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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0 19:31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런 듯 싶습니다. ^^

저는 외출할 때마다 바쁠 때는 큰 길로 가지만 그렇지 않을 적이나 돌아오는 길은,
이 골목 저 골목을 천천히 걸어오지요. 저 집에는 어떤 꽃들이 피었고, 또 저 골목의 그 집에는 오동나무의 보라빛 꽃이 탐스럽게 피어 감탄을 자아내고 또 그 파란대문 집의 대문 아래에는 늘 누렁이가 오가는 사람들을 살펴 보고 있는 모습들로 즐거워요...^^

파란놀 2013-06-11 00:24   좋아요 0 | URL
천천히 걸어다닐 때에는
'삶책'이라 하는
아주 재미난 책을
늘 즐겁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아요
 

[시로 읽는 책 8] 아이가 태어날 때에

 


  아이가 태어날 때에
  나무 한 그루 심어
  삶동무 삼습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마당에 나무 한 그루 심을 수 있어, 언제나 마당나무 바라보며 놀고 자랍니다. 밭이 있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밭둑에 나무 한 그루 심을 수 있으니, 날마다 자라며 밭나무 마주하고, 어느덧 어른 되면 밭나무는 시원한 그늘 드리워 모두한테 기쁜 웃음 베풉니다. 숲을 돌보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숲 한켠에 나무 한 그루 심기도 하지만, 해마다 나무 스스로 떨구는 씨앗에 따라 씩씩하게 자라는 어린나무를 동무나무로 삼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숲에 깃들며 숲내음 먹고 숲바람 들이켜면서 푸른 숨결 건사합니다. 나무를 안고 나무를 사랑하며 나무를 아끼는 아이들은 모두 시인이고 작가이며 살림꾼입니다. 시인은 총을 들지 않습니다. 작가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살림꾼은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사랑으로 돌봅니다. 4346.6.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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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글 읽기
2013.6.9. 큰아이―빛글

 


  큰아이와 글씨쓰기를 한다. 큰아이가 오늘은 색연필로 쓰고 싶단다. 그래, 너 하고픈 대로 하렴. 큰아이는 글씨 하나마다 다른 빛깔로 그리려고 애쓴다. 다른 빛깔로 알록달록 그리면서 좋아한다. 좋지? 재미있니? 네가 좋으면 다 좋지. 네가 재미있으면 모두 재미있지. 네 마음으로 스며드는 빛글을 네 두 손으로 씩씩하게 쓰자.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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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6-10 14:23   좋아요 0 | URL
글 쓰면서 그림 그리는 즐거움도 느끼고 싶군요 사름벼리가 ^^
어떤 글자를 따라쓰고 있는지도 보고 있답니다.

파란놀 2013-06-10 18:43   좋아요 0 | URL
아이도 어른도
늘 좋은 생각 불러일으키는 낱말
가슴속에 곱게 담으면
온누리 아름다우리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