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10] 외딴섬에서 눈을 뜨다

 


  외딴섬에서 눈을 뜹니다
  바람 햇살 흙 풀 꽃 숲 나무
  고이 어우러져 눈을 틔웁니다

 


  서울에서는 눈을 감습니다. 바람도 햇살도 흙도 풀도 꽃도 숲도 나무도 만날 길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는 눈이 감깁니다. 바람이든 햇살이든 흙이든 풀이든 꽃이든 숲이든 나무이든 싱그러이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부터 누군가 엉터리와 같은 말,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낸다’ 같은 이야기를 퍼뜨립니다. 서울에도 고운 바람 불었고 맑은 햇살 있었지만, 이제 서울로 찾아가는 제비가 없습니다. 서울에도 살가운 흙 푸른 풀 있었으나, 이제 서울에서는 숲도 나무도 꽃도 맑게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자동차 넘치며 아파트가 치솟습니다. 서울사람 스스로도 서울에서 눈을 못 뜨지만, 시골사람도 서울에 깃들면 감기는 눈 지키기 벅찹니다. 4346.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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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잠들다

 


  낮에는 빨래터에서 물놀이를 하고, 곧바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마실을 하던 어느 날,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단하게 잠든다. 이야, 두 아이를 하나씩 안고 내려야 하나. 작은아이는 옆지기가 안고 큰아이는 내가 안는다. 읍내에서 장만한 먹을거리를 담은 무거운 가방 짊어지고 큰아이를 안으며 버스에서 내린다. 옆지기도 작은아이를 안고 내린다. 큰아이는 얼마 뒤 깨어나 “걸을래.” 하고 말한다. 잠에서 살짝 깬 큰아이가 “걸을래.” 하고 말할 적에는 아버지 가방 무거우니 짐을 덜어 주려는 마음이라고 느낀다. “괜찮니?” “응.” “그럼 조금 걸어 주렴.” 작은아이는 곯아떨어져서 깨어나지 않는다. 한참 신나게 놀고 뛰고 달렸으니. 아무 걱정 할 일 없이 실컷 노는 아이들. 아무렴, 네 어머니와 아버지도 너희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믿고 실컷 놀았지. 너희도 네 어머니와 아버지를 믿고 실컷 놀며 곯아떨어지면 돼. 4346.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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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2 10:26   좋아요 0 | URL
힘은 드셨겠지만 ~
엄마도, 엄마 품에 앉겨 가는 산들보라도 다정히
참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파란놀 2013-06-12 10:33   좋아요 0 | URL
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기는 해도
언제나 제가 잠든 아이를 안아야 하니
그야말로 아주 오랜만에
모처럼 한 장 찍었답니다~

이런 사진 남겨야
아이들도 무언가
나중에 알겠지요~ ^^;;;
 
Unfinished Portrait - 오형근 사진집
오형근 지음 / 한미사진미술관 / 201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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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37

 


사진작가는 어디에 있는가
― Unfinished Portrait
 오형근 사진
 한미사진미술관 펴냄,2010.4.9./6만 원

 


  사진작가는 어디에 있을까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어느 자리에 있는가요. 국회의사당에서 정치꾼 모습을 찍는 사진기자는 어느메쯤 서서 사진을 찍을까요. 경기장에서 운동선수 모습을 담는 사진기자는 어디로 가서 사진을 찍는가요.


  골목을 찍거나 도시를 찍거나 시골을 찍거나 숲을 찍거나 바다를 찍는 이들은 어느 만큼 가까이 다가서며 사진을 찍을까요. 이웃을 찍거나 동무를 찍거나 살붙이를 찍거나 낯선 나그네를 찍는 이들은 서로 어느 만큼 살가이 사귀거나 지낸 다음 사진을 찍는가요.


  글을 쓰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사람은 어느 자리에 있는가요. 영화를 찍을 때에, 연극을 할 적에, 만화를 그릴 때에, 저마다 어느메쯤 서서 일을 할까요.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는 언제나 아이 곁에 있습니다. 눈으로 살필 수 있는 거리만큼만 떨어질 뿐, 아이도 어버이도 서로 멀리 있지 않습니다. 구슬땀 흘리며 노는 아이들은 서로 살내음 땀내음 숨소리 고스란히 느낄 만큼 가까이 얼크러져 놉니다.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몸이 닿고 손을 잡으며 어깨를 겯습니다. 흙을 일구는 일꾼은 손에서 발에서 몸에서 흙내음이 납니다. 언제나 흙에서 살아갑니다. 일터도 흙으로 이루어진 들이요, 삶터도 흙으로 지은 집입니다. 하루 내내 흙하고 어울립니다. 버스나 택시를 모는 일꾼은 하루 내내 버스나 택시에서 살지요. 고기를 잡는 고기잡이는 하루 내내 짠내 고기내 받아들이며 살아요. 밥짓는 일꾼 손에서 칼자루와 수저가 떨어질 틈 없습니다.


  사진작가한테서는 언제나 필름내음(또는 디지털파일내음이라 해야 할 텐데, 디지털파일에도 냄새가 있겠지요)이 풍겨야지 싶습니다. 사진작가 손에는 늘 사진기가 있어야지 싶습니다. 사진을 찍는 작가는 스스로 사진으로 찍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머물거나 살거나 이웃하겠지요.


  숲을 찍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숲에 머뭅니다. 숲내음 풍깁니다. 멧골을 찍거나 시골을 찍는 사람이라면 멧골이나 시골에서 오래 머뭅니다. 멧골내음이나 시골내음 풍겨요. 모델을 찍는 사람도 이와 똑같아요. 모델하고 하루 내내 어울려 스튜디오에서 땀방울 쏟습니다. 모델내음 풍길 테지요. 골목을 사진으로 담자면, 저잣거리를 사진으로 옮기자면, 정치판이나 사회운동 흐름을 사진으로 찍자면, 운동경기를 사진으로 싣자면, 저마다 이녁 ‘사진자리’를 찾아서 오래도록 머물거나 지켜보아야 합니다. 골목내음 풍기고, 저잣거리내음 풍기며, 정치꾼내음이나 운동선수내음 물씬 풍깁니다.

 

 

 


  오형근 님이 빚은 사진책 《Unfinished Portrait》(한미사진미술관,2010)를 생각합니다. 한국말 아닌 영어로 책이름 붙입니다. 책이름이 뜻하듯, 오형근 님 스스로 어떤 자리에 서는가를 보여주는 ‘사진말’이 되고 ‘사진자리’가 되는구나 싶습니다. “Unfinished Portrait”는 한국말일까요? 영어일까요? 무슨 뜻일까요? 사진작가 오형근 님은 스스로 어떤 뜻으로 이러한 이름을 붙였을까요?


  ‘끝나지 않은’ 모습인가요. ‘마무리되지 않은’ 모습인가요. 한자말로 ‘미완성(未完成)’이라 하면 될까요. 그런데, 한자말 ‘미완성’은 한국말로 “덜 된”을 뜻합니다. 그러면 ‘덜 된’ 모습인가요. 또는 다른 한자말로 ‘중간인(中間人)’이라 하면 어울릴까요. 그런데, 한자말 ‘중간인’은 국어사전에 없어요. 다만, 한자말 ‘중간’은 한국말로 “이쪽도 저쪽도 아닌 사이”를 가리켜요.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습인가요.


  한국말도 영어도 아니라 할 “Unfinished Portrait”는 그야말로 온갖 말마디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아마,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읽고 느끼겠지요. 똑같은 한국말이라 하더라도 ‘끝나지 않은’이라 말할 때하고 ‘마무리되지 않은’이라 말할 때에는 뜻과 느낌이 사뭇 달라요. 또는 ‘끝맺지 못한’이라 할 수 있고 ‘마무리하지 않은’이라 할 수 있어요, 말끝 하나 살며시 바꿀 뿐인데, 이때에도 뜻과 느낌이 참 다릅니다.


  때로는 ‘설익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푸름이(청소년)’라 할 수 있어요. 어느 사람은 ‘징검다리’라 할 수 있겠지요. 아직 무르익지 않았대서 ‘설익은’ 모습입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밝고 푸른 빛이라 해서 ‘푸름이(청소년)’ 모습입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넘어서는) 이야기라 해서 ‘징검다리’ 모습입니다.


  사진작가 오형근 님은 무슨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 어떤 이야기를 스스로 빚고 싶었을까 궁금합니다. 오형근 님 스스로 어떤 사진자리를 찾으려 하는지 궁금합니다. 오형근 님이 일구어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사진말은 어떤 무늬와 결로 빛나는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이 읽기 나름’이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말하기 나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진 한 장 이렇게 읽’지만, 사진작가는 ‘사진 한 장 저렇게 말’합니다. 사진작가는 ‘사진 한 장 저렇게 찍었다 말하’는데, 사람들은 그런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 한 장 이렇게 읽고 지나가’곤 합니다. 그럴밖에 없는 까닭이, 사진책 《Unfinished Portrait》에 나오는 사람들을 다른 사진작가나 여느 사람이 사진 한 장으로 담는다 할 때에 어떤 모습이 나오겠어요? 다 다른 모습이 나오겠지요. 다 다른 삶을 비추고, 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사진책 《Unfinished Portrait》란 오형근 님이 살아온 모습이요, 오형근 님이 생각하는 사랑이며, 오형근 님이 나아가는 생각입니다. 이태원에서 저 사람을 만났기에 ‘저 사람’을 보여주지 않아요. ‘저 사람을 빗대어 사진작가 넋을 보여줍’니다. 아줌마를 찍었기에 ‘아줌마’를 보여주지 않아요. ‘아줌마를 불러서 사진작가 삶을 밝힙’니다. 학교옷 차려입은 가시내를 찍었으니 ‘여고생’을 보여주지 않아요. ‘여고생 모습에 비추어 사진작가 사랑이 어떠한가’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사진은 잘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다큐사진일 때에만 사진이 아닙니다. 사람 얼굴을 찍었기에 초상사진(얼굴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는 따로 없으며, 한국을 말하는 사진 또한 딱히 없습니다. 사진은 모두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이야기입니다. 사진은 모두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사랑을 꿈꾸며 서로 어깨동무하고픈 이야기 한 자락입니다. 바라보는 자리와 생각하는 자리와 사랑하는 자리와 꿈꾸는 자리가 살포시 만나 사진 한 장 태어납니다. 4346.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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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 싶은 마음

 


  저녁에 잠들고 아침에 깨어나는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요. 내 지난날 돌이켜봅니다. 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 다닐 적에 날마다 어떤 마음으로 깨어났는가 돌아봅니다. 국민학교 적에는 ‘오늘 무얼 하며 놀까’ 하는 마음이 하나요, ‘오늘 숙제 안 한 것 있나’ 하는 걱정이 둘이며, ‘나보다 일찍 학교에 오는 사람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 셋입니다. 놀거리를 맨 먼저 떠올리고, 날마다 윽박지르는 교사들 모습이 이내 뒤따르며, 국민학생이면서 새벽 여섯 시 반 즈음 집을 나서 일곱 시가 안 되어 학교에 닿아서는 문도 안 열린 학교 담을 넘어 아직 아무도 없는 교실에 조용히 앉아 운동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즐거움을 헤아립니다.


  곧 깨어날 우리 집 두 아이를 생각합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아침에 깨어나면 무엇을 생각할까요. 아무래도 ‘오늘 무얼 하며 놀까’일 테지요. 오늘 놀거리를 떠올리고, 오늘 부를 노래, 오늘 즐길 여러 가지, 오늘 뛰고 달릴 이것저것 들을 헤아리겠지요.


  놀잇감이 있어야 놀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놀잇감이 됩니다. 아버지 등이나 팔이나 다리가 놀잇감이 되곤 합니다. 연필도 종이도 놀잇감이 됩니다. 빈 상자도 놀잇감이 됩니다. 작은 베개도 큰 베개도 놀잇감이 되어요. 스스럼없이 놀도록 홀가분하게 놓아 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을 빛내어 놀이를 찾습니다.


  내가 어릴 적에도, 옆지기가 어릴 적에도, 내 이웃과 동무 모두 어릴 적에도, 저마다 스스로 놀이를 찾거나 빚거나 깨달으며 누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른이 가르쳐 주거나 언니 오빠가 알려준 놀이도 있어요. 그러나, 가장 신나며 재미나고 알차게 누리는 놀이란, 바로 스스로 찾거나 빚은 놀이라고 느껴요.


  놀고 싶은 마음을 북돋울 때에 어버이가 되고, 놀고 싶은 마음을 보듬을 때에 어른이 되며, 놀고 싶은 마음을 사랑할 때에 사람이 됩니다. 4346.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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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 앉은 먼지 닦는 어린이

 


  여러 날만에 자전거를 타는 사름벼리가 말한다. “자전거 더러워.” “그러면 벼리가 걸레로 자전거를 닦아 줘.” 걸레를 집어 자전거에 내려앉은 먼지를 슥슥 훔친다.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렇게 하면 먼지를 닦지 못해.” 하고 말하면서 손잡이랑 안장이랑 뼈대랑 짐받이랑 먼지를 어떻게 닦는지 보여준다. “알았어. 내가 할게.” 네 자전거에 네 사랑 듬뿍 실어 아껴 주기를 빈다. 4346.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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