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놀이 1

 


  비가 퍼붓는 날에는 우산놀이를 안 하지만, 비가 살짝 내리거나 오락가락하는 날에는 으레 우산놀이를 한다. 두 아이 모두 목긴신 꿰어 마당을 빙빙 돌면서 우산 씌우고 받는 놀이를 한다. 누나는 동생한테 우산 씌우느라 바쁘고, 동생은 누나가 씌우건 말건 이리저리 걸어다니느라 바쁘다. 4346.6.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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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아버지 무릎에서

 


  낮밥 배불리 먹고 아버지 무릎에 엎드려 곯아떨어진 산들보라. 산들보라는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울며 신나면 웃는다. 아기이니까 그럴 만하달 수 있는데, 이 아기다움 오래오래 가기를 빈다. 말이 좀 늦어도 좋고, 누나처럼 일찌감치 사진기를 만지작거리거나 책을 들출 줄 몰라도 좋다. 잘 놀고 잘 먹으며 잘 자면 곱게 잘 자랄 테니, 다 좋다. 4346.6.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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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유혹 - 예술의 유혹 04 예술의 유혹 4
데이브 요라스 지음, 정주연 옮김 / 예담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138

 


사랑으로 누리고 삶으로 즐긴다
― 사진의 유혹
 데이브 요라스 글,정주연 옮김
 예담 펴냄,2003.5.25./12000원

 


  마음이 없다면 사진을 못 읽습니다. 마음이 있기에 사진을 읽습니다. 마음이 없을 때에는 글을 못 읽습니다. 아니, 마음이 없는 데에도 글을 겉훑는 사람은 있어요. 그러나, 마음이 없는 채 겉훑는 글읽기를 ‘읽기’라고는 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저 ‘글훑기’는 될 테지만 ‘글읽기’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읽기’이든 ‘그림읽기’이든 ‘글읽기’이든 언제나 마음을 열면서 합니다. 마음을 활짝 열어 생각을 북돋울 때에 비로소, 무엇이든 읽습니다. 마음을 꽁꽁 닫아걸 적에는 어떠한 것도 못 읽습니다.


  마음이 없다면 사진을 못 찍습니다. 마음이 있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이 없을 때에는 글을 못 씁니다. 아니, 마음이 없는 데에도 글을 겉쓰는 사람은 있어요. 그러나, 마음이 없는 채 겉스치는 글쓰기를 ‘쓰기’라고는 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저 ‘겉스치기’는 될 테지만, ‘글쓰기’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사진찍기’이든 ‘그림그리기’이든 ‘글쓰기’이든 언제나 마음을 열면서 합니다. 마음을 활짝 열어 생각을 북돋울 때에 비로소, 무엇이든 쓰고 찍고 그리고 빚습니다. 마음을 꽁꽁 닫아걸 적에는 어떠한 것도 못 빚습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늘 ‘바로 이곳에서 오늘’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바로 이곳에서 오늘’을 한껏 즐기기에, ‘바로 이곳에서 오늘’이 어떠한 삶인가를 헤아려 글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나타낸다고 느낍니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 적에도 ‘바로 이곳에서 오늘’ 이야기를 노래와 춤으로 누려요. 그러니까, 어떤 작가라 하더라도, 오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어제를 돌아보거나 앞날을 내다보기도 하지요. 오늘을 살면서 어제를 사랑하거나 앞날을 꿈꾸기도 하지요. 곧, 오늘이 있기에 어제를 살필 수 있고, 오늘이 있어서 앞날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 바로 이곳, 바로 나를 느끼는 사람이 작가요, 글과 그림과 사진을 낳는 숨결입니다.


  2000년에 영국에서 《a crash course in photography》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책을 2003년에 한국에서 《사진의 유혹》(예담)으로 옮깁니다. 영어로 “crash course”는 ‘특별 강의’ 또는 ‘특강’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말 이름으로는 《사진의 유혹》입니다만, “사진 특강”이라 할 이 책은 ‘사진이 걸어온 길과 사진이 걸어갈 길’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그날그날 빚으며 일군 사진밭을 살핍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언제나 바로 오늘’ 가장 사랑스럽게 빚으며 일군 작품이 모여 사진문화를 이룬 흐름을 좇으면서, 앞으로 새로 태어나 살아갈 ‘오늘 이야기 누릴 작가들이 선보일 오늘 작품’은 어떻게 태어날까 하는 실마리를 다룹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진은 언제나 ‘오늘 이야기’만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이 날마다 새삼스레 발돋움할 수 있어요. 어제를 꾸며서 찍지 못하고, 앞날을 앞당겨 찍지 못해요. 만듦사진 한 장으로 어떤 상황이나 배경을 꾸며서 찍는다 하더라도 ‘꾸미거나 만든 상황이나 배경’도 ‘바로 오늘 꾸미거나 만든’ 모습일 뿐이에요.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가장 잘 드러내며 나타내는 사진이라 할 수 있기에, 사진은 더 빠르고 더 눈부시게 발돋움합니다.


  “사진을 볼 때 우리는 그 표면을 넘어서 원래의 피사체를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회화와 조각을 볼 때는 그 작품의 외부적 특성을 파악하여 그 예술가의 솜씨와 기술, 때로는 천재적 자질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사진 찍은 사람의 의도와 메시지를 파악하려고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사진작가들은 우리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사진술의 요소들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그 매체만의 독자적 성격을 강조하고 그렇게 해서 사진을 고매한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울리고자 노력해 왔다(9쪽).”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마음을 슬기롭게 열며 사진을 읽는다면, 사진을 찍는 이들도 ‘사진 솜씨’ 키우는 쪽보다 ‘사진 이야기’ 가다듬는 쪽으로 더 마음을 쏟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진 솜씨’ 쪽으로 더 기울어진 사진작가도 머잖아 느끼리라 생각해요. 사진은 솜씨로만 빚지 못해요. 사진을 솜씨로 멋들어지게 만든다 할지라도 이야기를 담지 못하면 이내 잊히거나 사그라듭니다. 사람들은 손재주 작품은 손재주로 떠올릴 뿐입니다. 사람들은 마음 담은 사랑스러운 이야기는, 이러한 결 그대로 ‘마음 담은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되새깁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진문화가 꾸준히 발돋움할 수 있던 까닭이라면, 사진작가들 솜씨나 손재주가 발돋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솜씨나 손재주를 키워서는 사진이 문화로도 예술로도 홀로설 수 없는 줄 일찌감치 깨닫고는, ‘사진이 사진으로만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찾아나서면서 ‘사진을 사진으로 가장 빛낼 솜씨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살폈기 때문에, 사진문화가 발돋움합니다. 글솜씨를 아무리 키우려 애쓴들 글문화가 발돋움하지 않아요. 글로 담아서 나누려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살펴야 글문화가 발돋움해요. 그림문화도 이와 같아요. 그림 잘 그리는 솜씨를 아무리 높이 키운다 하더라도 그림문화는 나아지지 않아요. 그림으로 나누려는 이야기를 깊이 살피고 넓게 돌아볼 때에 그림문화가 나아집니다.


  “빅토리아인들이 ‘검은 대륙’을 짓밟았을 때, 움직이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측정하려는 그들의 저속한 욕망은 ‘자연스러운’ 상태의 ‘원주민’을 촬영하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진은 본국에서 열광적인 소비를 부추겼다(33쪽).”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새로 만든 서양사람은 사진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사진을 ‘소비’하던 서양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사진기를 손에 쥐어 무언가 ‘기록’하던 사람들은 생각이나 마음이 있었을까요. 돈을 벌거나 이름을 얻거나 권력을 누리려던 뜻만 있는 채, 사진삶하고는 동떨어진 모습 아니었을까요. 사진을 즐기는 생각이 없고 사진을 누리는 마음이 없을 때에는,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과 자연과 대상’을 깎아내리거나 비트는 슬픈 모습만 되풀이되는 셈이겠지요. 사진을 즐기는 생각이 있고 사진을 누리는 마음이 있어야, 사진으로 찍히는 모두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겠지요.


  사진문화가 발돋움한다는 얘기란, 사진기 갖춘 사람이 늘어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누구나 손전화 기계로도 사진을 찍고, 디지털사진기 한 대쯤 갖춘대서 사진문화가 발돋움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진 하나 마주하는 마음 거듭날 때에 사진문화가 발돋움한다고 말합니다. 사진 하나 사랑하는 넋 가다듬을 때에 사진문화가 발돋움한다고 얘기합니다.


  ‘소비’를 하거나 ‘기록’을 할 때에는 ‘사진’이 아닙니다. 소비하는 것은 소비요, 기록하는 것은 기록이에요. 사진은 언제나 사진입니다. 마음을 기울여 삶을 즐기고, 생각을 쏟아 사랑을 누릴 때에 사진입니다. 소비나 기록에는 마음도 생각도 깃들지 못합니다. 소비나 기록에서 허우적거릴 때에는 마음도 생각도 샘솟지 않습니다.


  사진뿐 아니라, 책도 문명도 물질도 돈도 ‘소비’나 ‘기록(돈이라면 재산 쌓기)’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름답지 못합니다. 삶으로 즐기고 사랑으로 누릴 때에 아름다운 사진이 되고 아름다운 책이 되며, 아름다운 문명과 물질과 돈이 됩니다. 4346.6.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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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2] 새와 사람

 


  잠에서 깨어날 때부터
  일 마치고 즐거이 오순도순 모여
  하루 돌아보는 이야기꽃 피우다가 잘 때를 알려주는 새

 


  시골마을 어르신은 새벽 세 시 반이나 네 시부터 하루를 엽니다. 저녁 일고여덟 시에 하루를 닫습니다. 일이 바쁜 철에는 저녁 아홉 시나 열 시에 하루를 닫는데, 바쁜 철 지나면 으레 네 시부터 일고여덟 시까지 들일을 합니다. 멧새는 언제나 네 시 언저리부터 새벽노래를 부르고, 저녁 일고여덟 시 즈음이면 저녁노래를 부릅니다. 멧새가 새벽노래를 부를 무렵에 밤개구리 노랫소리 잦아듭니다. 멧새가 저녁노래 부를 무렵에 저녁개구리 노랫소리 피어납니다. 달리 생각하면, 개구리 노랫소리 멎을 때부터 하루를 열고, 개구리 노랫소리 다시 피어날 때에 하루를 마감하는 셈입니다. 시계 없이 하루를 살핍니다. 시계보다 또렷한 하루 흐름을 헤아립니다. 날과 날씨와 철에 맞추어 몸과 마음을 움직입니다. 달력이 아닌 삶에 따라 이야기를 짓습니다. 4346.6.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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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1] 시냇물과 빨래터와 샘가

 


  마을마다 시냇물 다시 흐르고
  샘물과 빨래터 차츰 복닥거리면
  이야기꽃 조촐히 살아납니다.

 


  구불구불 시냇물이 흘러야 물이 깨끗하고 흙이 기름지다고 어릴 적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1980년대에 다닌 국민학교 자연 수업에서 이런 이야기를 배웠어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삶터 돌아보면 구불구불 시냇물은 자취를 감추어요. 구불구불 논두렁도 자취를 감추지요. 길도 반듯하게 펴고, 논자락도 냇물도 몽땅 반듯하게 밀어요. 이러는 동안 물은 차츰 흐려지고 더러워집니다. 이러는 사이 바람은 매캐해집니다. 자동차가 늘고 시골 논밭도 기계가 차지해요. 그러면 우리 삶은 나아졌을까요. 지난날 시골마다 넘치던 노래와 놀이와 두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노래와 놀이와 두레를 즐길까요. 오늘날 도시와 시골에는 어떤 이야기 남거나 새로 태어날까요. 시냇물 사라지고, 골짜기 관광지로 바뀌며, 샘터와 빨래터 파묻히면서,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이야기가 시나브로 없어집니다. 4346.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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