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5년 2월에 썼어요. 이무렵 '이오덕 둘레' 사람들이 '이오덕 이름'만 빨리 거머쥐어 당신들 이름값 높이려고 눈이 벌개진 모습을 너무 끔찍하게 자주 보다 보니, 참으로 슬퍼 이런 글을 썼어요. 왜 이름값 가로채서 '교수'가 되거나 '학자'가 되거나 '전문가'가 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더러 '어떤 이름' 거머쥔 사람 되라 하지 않았어요. 어린이 마음 되어 언제나 즐겁게 살아가자고 이야기했어요. 이런 마음 되기를 바라며 예전에 쓰고 조용히 묵혔던 글 하나 꺼내어 봅니다.

 

..

 

사람들이 이오덕 선생님한테서 배운 것과 못 배운 것

 


  많은 사람들이 이오덕 선생님한테서 무언가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못 배운 것이 참 많습니다. 사람들이 이오덕 선생님한테서 배우는 것 거의 모두는 ‘지식’입니다. 이와 달리 사람들이 이오덕 선생님한테서 거의 못 배우거나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은 ‘마음’입니다.


  글쓰기 운동, 교육 운동, 문학 운동, 문화 운동, 어린이문학 비평, 우리 말 운동 같은 ‘지식’은 참 많은 이들이 배웠고 따르는 한편, 이녁 삶터나 일터에서 잘 쓰고 두루 펼칩니다. 그렇지만 이오덕 선생님이 이런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쓴 ‘마음’과 ‘생각’과 ‘뜻’과 ‘얼’까지 두루 살피고 헤아리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머리에 지식이 많이 든 사람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명제와 이론을 알고, 늘 말하며 다닙니다. 그런데 이런 명제와 이론을 몸으로 옮겨서 펼치거나 나누는 사람은 아주 적은 듯합니다. 무거운 짐을 이고 가는 할머니 옆에서 손을 거드는 지식인이 얼마나 됩니까. 아니, 자가용하고 헤어지는 지식인이 얼마나 됩니까. 늘 자가용을 몰며 돌아다니기에 무거운 짐 짊어진 할머니를 아예 알아보지 못하지요. 스스로 걸어다니지 않으니, 골목길도 모르고 고샅길도 모르지요. 두 다리로 삶을 누리지 않으니 숲도 시골도 까맣게 모르지요. 여기에서 ‘지식인’이라 하는 이름은 좀 배운 사람 모두를 가리킵니다. 초·중·고등학교 아이들도 이 테두리에 들어갑니다. 오늘날 초등학생도 ‘지식인’이 되었어요. 게다가, 오늘날 초등학생도 두 다리로 걷는 일 자꾸 사라져요. 버스를 타고 자가용을 타요. 초등학생조차 마을 할머니 마주칠 일 매우 적어요. 그러니까, 어느 누가 옆에 길 가는 사람이 든 무거운 짐을 같이 들어 주려고 합니까.


  지식은 없거나 적더라도, 마음은 넉넉하고 푸근한 사람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명제나 이론을 모르거나 안 갖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런 명제와 이론이 없어도 늘 온몸과 온마음으로 사랑과 평화를 나누며 삽니다. 마을길을 가다가 힘겹게 산길을 오르내리는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 같이 짊어지고 걷지요. 자가용을 몰더라도 이웃사람 보면 어여 타시라고 부르지요. 무거운 짐을 든 분이 보이면 들어 주지요.


  저잣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깔보면서 이들이 ‘속여 먹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사꾼들은 몇 푼이라도 에누리를 해 줄 줄 압니다. 생각해 볼 노릇이에요. 지식인 가운데 이녁 지식을 조금이나마 스스럼없이 널리 나눠 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요. 지식도 정보도 혼자 틀어쥔 채 이름값 높이기와 돈벌기에 사로잡히기만 하지 않나요.


  이오덕 선생님이든 다른 분들이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살아가는 이 땅에서 큰 어른이라고 하는 분들, 참 훌륭하다고 하는 분들은 그분들이 남긴 ‘일(업적)’ 때문에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책을 남기고 무슨 일을 했다고 우러르지 않습니다. 책을 썼든 일을 했던, 그런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마음이 있고 생각과 뜻과 얼과 넋이 있기 때문에, 훌륭하다고 말하고 높이 삽니다.


  나라를 세운 대통령이라고 하는 이승만입니다. 이 이승만을 우러르는 몇몇 친일독재부역 언론매체와 지식인들이 있습니다. 이런 부스러기들은 저희 밥그릇을 지키려고 바보 한 사람을 우러르거나 높이 사지만, 그런다고 해서 쓰레기가 쓰레기 아닌 것이 되지는 않아요.


  날이 갈수록 ‘어버이다운 어버이’가 많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참으로 많은 사람이 가장 사랑하고 우러르고 떠받드는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 봐요. 바로 우리를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큰돈을 벌거나 높은 이름을 얻거나 대단히 아름답게 잘생기거나 하지 않고, 뭐 하나 잘난 것도 없어 보이는 수수한 아버지와 어머니이지만, 우리는 으레 나를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장 우러르고 사랑하고 아끼고 보살피고 싶어합니다. 이런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장 깨끗하고 맑고 아름다운 마음과 뜻과 생각과 얼과 넋으로 우리를 낳고 돌보며 키웠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돌본 우리들이 아니라 마음으로 돌본 우리들이에요. 이름값으로 낳은 아이가 아니라 사랑으로 낳은 아이예요.


  곰곰이 살필 대목은 오직 마음입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마음이 없이 지식만 얻거나 배우면 남을 등처먹거나 뒤에서 호박씨를 까거나 남이 하는 일에 딴죽을 걸거나 헤살을 놓습니다. 지식이 없고 마음만 있으면 좀 아쉽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 착하고 즐겁게 오순도순 지낼 수 있습니다. 지식이 없이 마음만 있으면 좀 모자라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싸움이나 등치기나 따돌림이나 내빼기 따위는 그 어디에도 움틀 수 없습니다.


  착하고 곧으며 바른 마음을 다진 뒤에 지식을 얻고 키워야 제대로 된 사람이 됩니다. 제대로 된 사회를 꾸릴 수 있습니다. 못된 마음을 품고 지식을 얻어서 하는 짓거리가 무엇입니까. 그 많은 지식으로 남을 괴롭히고 등처먹으며 허튼 짓거리를 일삼는 것들 아닙니까. 이러면서 돈과 힘과 이름을 얻고 떨치면서 우리들 눈과 머리와 귀를 모두 속이고 어둡게 하지 않습디까.


  나부터 좋은 책을 많이 읽고, 내 둘레 사람들 모두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책만 읽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책보다 사람됨을 기르는 일을 먼저 하길 바랍니다.


  밥상에 올릴 밥 한 그릇 얻자면, 먼저 쌀이 있어야 하고, 쌀을 얻으려면 흙을 일구어야 합니다. 착하고 곧게 마음을 다독인 분들이라면 이녁 스스로 읽을 아름다운 책 즐겁게 잘 알아보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러모로 갑갑하고 막힌 구석이 있어, 모든 아름다운 책이 널리 알려지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아름다운 책이 새책방 눈에 뜨이는 진열대에 제대로 못 놓이기도 합니다. 도서관에서조차 아름다운 책을 제대로 안 갖추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내 일을 하나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이웃들이 즐겁게 알아보면서 누리면 좋을 만한 좋은 책을 맑은 눈길로 살피고 골라내고 가리고 추리고 알리는 노릇을 해 보자, 하고 생각합니다. 애먼 주례사비평 아니라, 책을 삶으로 녹여서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쓰자, 하고 생각합니다. 책만 많이 읽자는 소리는 좀 집어치우고, 아름다운 책 하나로 아름다운 삶 꾸리는 기쁨을 말하자, 하고 생각합니다.


  퍽 많은 사람들이 ‘이오덕’이란 이름을 앞에 내걸고 여러 가지 글을 쓰거나 일을 벌입니다. 이런 일 저런 일 가만히 살피며 느낍니다. 이 가운데 제대로 마음을 다스리거나 다지는 분은 얼마 안 보입니다. 지식은 있되 마음은 없어서 그렇습니다. 제아무리 이오덕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오래 모셨다고 한들, 그동안 지식만 받아먹으면서 당신 이름과 힘을 키웠다면, 이오덕 선생님 온 모습 가운데 껍데기만 본 셈입니다. 참다운 속, 깊디깊은 마음을 보지 못한 셈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밭에 고운 님 하나를 모신다고 생각합니다. 그 고운 님은 내 어버이가 될 수 있고, 나 스스로 될 수 있으며, 부처나 예수가 될 수 있어요. 마음밭에 하느님 모실 수 있고, 꽃 한 송이나 나무 한 그루 모실 수 있습니다. 훌륭한 어르신 한 사람 모실 수도 있는데, 누구를 모셔도 좋고 무엇을 모셔도 좋습니다. 내 마음밭에 모신 고운 님을 지식이 아닌 마음으로 바라보고 느끼며 부대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사이좋게 웃고 놀고 어깨동무하면서 술도 한잔 기울이고 노래도 목청껏 부르면서 땀흘려 일하고 땀나도록 신나게 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38.2.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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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06-14 09:37   좋아요 0 | URL
제대로 알고 제대로 배우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깊은 생각이 담긴 좋은 글 뒤늦게나마 잘 읽었습니다.

파란놀 2013-06-14 10:04   좋아요 0 | URL
저는 늘 스스로 제대로 살피고 배우자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 되면... 나부터, 그러니까 남 말에 앞서
나부터 제대로 살피고 스스로 배우면
다 즐겁게 잘 되리라 느껴요..

Nussbaum 2013-06-14 13:29   좋아요 0 | URL

올리신 글 보면서 조용히 이오덕 선생님이 남기신 <우리글 바로쓰기> 와 그 마음을 천천히 보듬어봐야겠습니다.

차분하고 깊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파란놀 2013-06-14 14:24   좋아요 0 | URL
네, <우리 글 바로쓰기>도 마음을 찬찬히 보듬어 보시면서,
사람들이 잘 못 읽거나 알아보지 못해서 안 읽는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라는 책도
즐겁게 읽어 보시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저는 이오덕 선생님 책 가운데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가 참으로 훌륭하게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해요...
 

2006년 1월에 끄적여 두었던 글입니다. 어제 <이오덕일기> 나온 소식을 듣고 새삼스레 옛생각이 뭉클 떠올랐어요.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이오덕 선생님 원고 갈무리하던 나날을 가만히 되새겨 봅니다. '내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 2006년부터 세 해 지난 2009년에 드디어 <생각하는 글쓰기>라고 이름 붙인 '내 우리 말 이야기책'을 내놓을 수 있었어요.

 

..

 

 

이오덕 선생님

 


  “죽은 이오덕은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해야 한다. 먼저 살린다. 이오덕이라고 하는 사람이 온삶을 거쳐서 마음속에 담아내고 살아온 고운 뜻을 사람들이 꾸밈없이 제대로 알고 나누며 즐길 수 있도록 펼쳐내고 풀어내야 한다. 다음으로 죽인다. 이오덕이라고 하는 사람이 마음속에 담아내어 펼친 일은 우리한테 ‘이오덕 님 당신하고 똑같이 그 일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 나름대로 ‘이오덕이라고 하는 사람한테서 배울 것을 제대로 배우고 꾸밈없이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내 나름대로 너른 생각 받아들여서 알맞게 키우고 알뜰히 곰삭혀서 거듭나도록 하라는 뜻이다.”


  아침에 똥을 누고 머리를 감고(여러 날 만에) 빨래를 하고 물을 마시고 밥먹을 준비를 하면서 문득 머리를 스친 생각을 적어 봅니다. 제가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이오덕 선생님 원고만 갈무리해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리고 선생님 원고만 갈무리하며 지내지도 않지요. 또한 이오덕 선생님 아드님이 저한테 바라는 것도 ‘당신 아버지 삶을 사람들이 제대로 알도록 하는 일’만이 아닌 줄 차근차근 깨닫고 느낍니다. 저는 이오덕 선생님이 지닌 모든 것을 빨아먹어야 하고, 남김없이 빨아먹은 뒤 제 깜냥, 제 가락, 제 멋에 맞추어서 풀어내고 펼쳐내어야 합니다. 흉내내기는 아닙니다. 흉내내기는 안 됩니다. 최종규라고 하는 사람 나름대로 내 길을 가야지요. 그래서 둘은 따로 선 자리에서 따로따로 있되, 서로서로 얼과 넋으로 살리면서 이어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한 가지 다짐합니다. 올해가 되든 다음해가 되든, 내 이름 붙인 ‘최종규 우리 말 이야기책’ 하나 제대로 마무리지어서 내놓아야겠다고. 그리고 이 ‘최종규 우리 말 이야기책’은 첫 권이 나온 뒤부터 해마다 한 권씩 갈무리해서 내놓아야겠다고. 그러면서 나중에는 ‘이오덕 우리 말 바로쓰기 사전’을 마무리지어야지요. 이오덕 선생님이 당신 책을 내놓을 때마다 늘 ‘권정생 선생님한테 바치는 마음’이었다고 밝히셨듯, 나도 ‘권정생 할아버지’ 같은 이 나라 수수한 할배와 할매, 또 이 나라 착한 아이들한테 바치는 책을 써야겠다고 새삼스레 다짐합니다. 4339.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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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일기

 


  1925년에 태어나 2003년에 숨을 거둔 이오덕 님 일기책이 나온다. 예전에 《이오덕 교육일기》라는 이름으로 1960∼70년대에 쓰신 일기를 묶어서 나온 적 있는데, 이번에 온삶을 가로지르며 쓴 일기를 추려서 다섯 권짜리 책으로 태어난다. 이오덕 님이 2003년 8월에 숨을 거둔 뒤, 이해 9월부터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에 깃들어 선생님 글과 책을 갈무리하는 몫을 맡았다. 아마 2004년 이월쯤이었지 싶은데, 잔뜩 쌓이고 어수선하게 있던 상자들과 원고뭉치와 책더미 사이에서 선생님 일기꾸러미를 찾아내었다. 찾아낸 일기꾸러미는 모두 복사를 해 놓았고, 이 일기꾸러미도 언젠가 빛을 보겠지 하고 생각했다. 예쁘장한 옷 입고 태어난 선생님 일기를 사람들은 잘 읽고 슬기로운 넋 북돋아 주겠지? 아름다운 사랑과 꿈 깃든 고운 이야기를 즐겁게 받아먹으면서, 저마다 아름다운 삶 일구도록 이끄는 눈물겨운 책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빈다. 애틋하다. 4346.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직 배본은 안 되었을 테고, 다음주부터 배본이 되지 싶다. 출판사에서 책 모습을 손전화로 찍어서 보내 주었다. 얼른 이 책들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아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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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4 06:18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예쁘게 책이 나왔군요.
저도 이 아름다운 책 마련해 즐겁게 읽고 싶네요.
함께살기님께서는 더욱 각별하고 애틋하실 것 같아요. *^^*

파란놀 2013-06-14 07:14   좋아요 0 | URL
네... 아침에 이래저래 싱숭생숭해서
예전 글들만 자꾸 만지작거렸네요.... @.@
 

여름 어귀

 


마늘쫑 뽑고
부추잎 따며
조용히
눈 감으며
멧골에 피고 지는
예쁜 꽃을 바라본다.

 

하늘 파랗구나.
구름 하얗구나.

 

할미꽃은 씨앗 맺고
민들레는 씨앗 뿌려
여름으로 접어든다.

 

버들잎 노래한다.
바닷물 출렁인다.
고을마다 포근포근 바람
마을마다 따뜻따뜻 햇살

 

싸목싸목
흘러
기지개 한 번.

 


4346.5.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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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6.13.
 : 찔레꽃 진 자리에 밤꽃

 


- 우체국에 가려고 자전거를 달린다. 샛자전거와 수레를 매단 자전거를 마당으로 내려놓을 때에, 누구보다 작은아이가 먼저 알아본다. 작은아이는 수레에 타고 자전거마실을 하면 무척 좋아한다. 작은아이를 바라보며 말한다. “보라야, 수레에 타라고 할 때에 타는 줄 알지? 아직 챙길 짐 있으니 기다리렴.” “응.” 한참 말을 따라하며 배우는 작은아이는 참말 짧게 말한다.

 

- 우체국으로 가기 앞서 우리 도서관에 들러 짐을 내려놓는다. 오늘은 우체국만 다녀올 생각이라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 들르지는 않는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큰길에서 아버지를 기다려 준다.

- 우리 마을 할아버지 한 분이 저 앞에서 마주 걸어오는 모습 본다. 꾸벅 인사를 하며 지나친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문득 “저 사람 혼자 여행하네.” 하고 말한다. 얘야, ‘저 사람’이 아니고 ‘마을 할배’란다. ‘혼자 여행하’시지는 않고, ‘걸어서 천천히 마실 다니신’ 셈이란다.

 

- 동호덕마을 지나 면소재지 접어들 무렵, 상수도 공사하는 데를 본다. 상수도 공사는 아직 안 끝났네. 참 질기게 오래도록 하네. 벌써 몇 달째인가. 얼추 스무 달쯤 된 듯한데, 이 작은 마을 상수도 공사를 아직도 안 끝내고 뭘 할까. 우리가 지나가려는 길을 엉망으로 파헤쳐 놓았기에 휘 돌아가는 길로 접어든다. 공사한다며 파헤쳐 놓은 자리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마을 할매가 아이들 보며 알은 체를 한다. 이 더운 날씨에 할매도 참 고단하시겠다.

 

- 우체국에서 책을 부치느라 상자에 담아 싸는 동안, 두 아이는 우체국 앞 계단을 오르고 내리면서 논다. 아이들은 어디이든 놀이터로 삼는다. 아이들은 뛰고 달리면서 논다. 아이들한테는 놀잇감 따로 손에 쥐어 주지 않아도 잘 논다. 아이들은 빈터만 있으면 어디이든 놀이터로 삼는다. 생각해 보면, 나도 우리 아이들만 한 나이였을 어릴 적에 언제나 어디에서 즐겁게 뛰놀았다. 놀이공원에 가야 놀지 않는다. 어떤 놀이터 시설이나 건물이 있어야 하지 않다. 마음을 열고 까르르 웃으면서 뛰고 달리면 모두 놀이가 된다.

 

- 면내 가게에 들러 막걸리 두 병 산다. 큰아이가 “아버지, 나 아이스크림 살래.” 하고 말한다. 먹고 싶니? 음, 오늘은 사 주마. 너 하나 고르고 동생 하나 고르자. 큰아이도 수레에 태운다. 작은아이 큰아이 모두 수레에 앉는다. 큰아이는 샛자전거 붙인 뒤 언제나 샛자전거에만 탔는데, 오늘 모처럼 수레에 동생하고 함께 앉는다. 둘은 수레에 앉아 얼음과자를 먹는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아이는 얼음과자 다 먹고는 수레에 머리를 기대고 잠든다. 졸렸구나. 잘 자렴.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등허리 펴고 눕게 해 줄게. 신나게 발판을 구른다. 면소재지 언저리 멧자락에서 꼼꼼한 냄새가 풍기기에 무언가 하고 살피니, 아하, 밤꽃이로구나. 밤꽃이네. 찔레꽃이 지면서 유월 여름날 밤꽃이 활짝 피었구나. 얘들아, 알겠니? 밤꽃이란다. 사름벼리 너는 여섯 살이지만, 우리가 시골에서 산 때는 네 동생이 태어난 해부터이니까, 네가 세 살 적부터 시골에서 살며 밤꽃내음 맡았는데 알아볼 수 있겠니?

 

- 모내기 마친 논마다 앙증맞은 자그마한 벼포기 무럭무럭 자란다. 좋은 유월 한낮, 좋은 바람 마시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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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6-13 20:37   좋아요 0 | URL
이글, 참 좋군요. 눈 앞에서 그림이 그려져요.

파란놀 2013-06-14 05:1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걷는 사람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뿐 아니라
자동차 타는 사람들도
날마다 좋은 그림 그리면서
예쁜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