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6.15.
 : 꽃 따는 자전거마실

 


- 자전거마실을 간다. 오늘은 퍽 멀리 마실을 갈 생각이다. 아이들 아침 단단히 먹이고 느긋하게 놀도록 지켜본다. 이러고서 자전거를 마당으로 내려놓는다. 큰아이가 묻는다. “어디 가려고요?” “응, 저기 해창만 지나서 점암면 가학마을이라는 데야.” “그럼 나 인형 가져가야지. 보라야, 넌 뭐 가지고 갈래?” 얘들아, 얘들아, 너희가 자전거 몰면서 가니? 아버지가 혼자 너희 다 태우고 가는데, 짐을 하나라도 더 늘리려 하니? 인형 하나쯤이야 무게조차 아니라 할는지 모르겠지만, 그래, 가져가고프면 인형 두 개도 네 개도 가져가야지.

 

- 마을 어귀를 벗어난다. 바람을 온몸으로 확 들이켠다. 시원하다, 시원하다,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얘들아, 너희들도 시원하지. 이 더운 여름날, 시원한 바람 훅 끼치지. 천천히 발판을 구른다. 굳이 서둘러 발판을 밟지 않는다. 느긋하게 달리자. 이 더운 날씨에 괜히 힘을 너무 빼면 안 되지. 혼자 달리는 자전거도 아니고, 아이 둘 데리고 달리는 자전거인걸.

 

- 봉서마을로 접어들어 왼쪽으로 꺾는다. 이제부터 비봉산 오르막이다. 훅 훅, 숨을 알맞게 고르며 발판을 차근차근 꾹꾹 누른다. 차근차근 오르되 빠르기가 줄면 안 된다. 처음부터 고갯마루까지 똑같은 빠르기로 달려야 가장 덜 힘들다. 너무 느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재촉하지도 않는 가장 알맞춤한 내 빠르기를 찾자. 봉동마을 지나 고당마을 비봉산 고갯마루 오르는 동안 기어를 바꾸지 않는다. 문득 나 스스로 놀란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 둘 데리고 샛자전거까지 붙이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내 다리에 힘살이 더 붙은 듯하고, 내 몸도 이렇게 아이들 이끄는 자전거를 익숙하게 몰 수 있구나 싶다.

 

- 봉동마을과 고당마을 사이를 지날 때면 언제나 자전거를 멈춘다. 힘들어서 멈추지 않는다. 두 마을 사이에 있는 계단논이 참으로 아름답기 때문에 멈춘다. 돌로 쌓은 저 논둑이 얼마나 어여쁜지. 얼마나 오랜 품을 들여 돌을 쌓았고, 얼마나 많은 품을 바쳐 논 한 뙈기 밭 한 자락 이루었을까. 그런데, 길가에 잔뜩 쌓은 비닐뭉치가 거슬린다. 어쩔 수 없겠지만, 안타깝다. 이 깊은 시골에서도 비닐농사 아니라면 농사를 못 지으니까. 해마다 저렇게 엄청난 비닐을 쓰레기로 내놓는데, 이 쓰레기는 어디로 가야 할까.

 

- 동백마을을 벗어나 고당마을 지나 포두면 경계로 들어설 무렵부터 내리막이 된다. 내리막이 될 즈음 큰아이가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 아버지, 멈춰요. 저기 노란꽃. 나 저 노란꽃 딸래.” “꽃을 따고 싶어? 그래, 그런데 기다려. 자전거는 바로 멈출 수 없잖아.” 자전거를 천천히 세운다. 끽 하고 멈추니 큰아이가 얼른 뛰어내린다. 콩콩콩 달려간다. 씨익 웃으면서 꽃을 꺾는다. 얘야, 오늘도 꽃한테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꺾지? 꽃한테 말 좀 건네면서 꺾으렴. 노란 꽃송이 들고 함박웃음 짓는 큰아이가 이번에는 마치 나비처럼 훨훨 날듯 달려온다. 꽃을 든 아이는 이렇게 나비가 될까. 수레에 앉은 작은아이가 누나를 부른다. “잉, 잉.” 큰아이가 동생을 바라보며, “응, 보라야, 너도 꽃 줄까? 알았어, 기다려 봐.” 동생한테 줄 노란 꽃송이 하나 더 꺾는다.

 

- 노란꽃을 오른손에 쥔 채 샛자전거 손잡이 잡은 큰아이를 태우고 자전거를 달린다. 내리막 즐겁게 내려간다. 내리막 다음으로 세동세거리에서 가파른 오르막 된다. 내려온 힘을 받아 곧바로 올라가려 했는데, 세동세거리 에움길 맞은편에서 자동차 두 대 씽 하고 달려온다. 자동차 거의 없는 이 길에 꼭 이 흐름 맞추어 지나가야 하나 싶지만 어쩔 수 없지. 오르막을 가볍게 올라가려다가 멈춘다. 그러고는 낑낑거리며 가파른 오르막을 기듯 올라간다.

 

- 세동세거리 오르막을 지나면 이제 포두면 소재지까지 내리막 된다. 오늘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포두면 소재지 가로지르는 길이 아니라, 안동마을에서 안쪽으로 접어들어 해창만 가로질러 점암면 가는 길이다. 봉덕마을 지날 무렵, 이곳에서 먼저 해창만 쪽으로 빠지는 길이 있나 살펴보았더니 없다. 봉덕마을 안쪽 우람한 나무 있는 막다른 길까지 갔다가 돌아서 나온다. 안동마을까지 가서야 해창만 빠지는 길을 본다. 그런데, 안동마을이 예전에는 퍽 컸겠구나 싶다. 마을 안쪽에 옛 분교 자리가 보이고, 마을 너른마당에 그네가 있다. 큰아이가 그네 타고 싶다 말하지만, 그네를 태울 수 없다. 많이 오래된 티가 나고, 아이들이 그네를 탄 티가 거의 안 보인다. 요즘 시골마을에서 아이 찾아보기 어려우니, 이런 오래된 그네가 있달지라도 함부로 태우지 못한다.

 

- 바야흐로 해창만에 접어든다. 신나게 달린다. 아이들이 목마를 듯해서 자전거를 세운다. 물을 먹인다. 너른 들 한복판에서 푸른 숨을 마셔 본다. 이제 막 모내기를 했으니 농약은 안 뿌렸으리라 생각하며 한껏 들이켠다. 조금 더 지나 농약을 뿌릴 때가 되면 해창만을 지나갈 수 없으리라. 농약 뿌린 들길은 사람도 제비도 풀벌레도 개구리도 왜가리도 해오라기도 거미도 물방개도 미꾸라지도 다슬기도 개똥벌레도 땅강아지도 게아재비도 소금쟁이도 잠자리도 나비도 깃들 수 없는 죽음 수렁일 뿐이다.

 

- 점암면 가학마을에 계신 분한테서 쪽글이 온다. 오늘 모내기 모임이 있어 그리 가는 길인데, 이제 모두들 낮밥을 먹으러 봉덕마을로 간단다. 그런데 이 쪽글이 30분 앞서 들어왔다. 이런. 한참 봉덕마을 지나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돌려 봉덕마을로 돌아간다. 봉덕마을 우람한 느티나무 그늘로 찾아간다. 짐차에 탄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친다. 고흥농민회에서 오늘 다른 행사도 있는 듯하다. 시골일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불러서 손모 심는 체험행사를 하는가 보다.

 

- 땀으로 흠뻑 젖은 등판을 말리고 다리를 쉰다. 모내기잔치를 하면서 수박을 많이 썰기에 아이들 몫으로 두 접시 얻는다. 두 접시 모두 아이들이 냠냠 잘 먹는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하얀 곳까지 깊이 파먹는다. 그런데, 수박이 제철에 나려면 아직 퍽 멀었는데. 비닐집 수박이야 일찌감치 나와서 가게에 나오지만, 시골마을 시골밭 수박은 멀었다. 이제 겨우 오이꽃 필 무렵 아닌가.

 

- 낮밥 먹은 사람들이 다시 모내기 행사 하는 데로 간다. 우리도 갈까 하고 살짝 생각했으나,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해창만 가로질러 점암면 한창 가다가 돌아온 터라, 다시 그 길을 달려 점암면까지 간다면, 또 그곳에서 모내기 일손 거들면, 두 아이 태운 자전거를 몰며 집으로 돌아오기에는 많이 벅차리라 느낀다. 아직 다리힘 있을 때에 집으로 돌아가야지 싶다.

 

- 천천히 길을 달린다. 작은아이는 어느새 새근새근 잠든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기에 잠들 수 없다. 땀 뻘뻘 흘리는 아버지는 속으로 웃으며 생각한다. 벼리야, 아직 네 동생이 안 태어나고 너 혼자 아버지하고 자전거마실 다닐 적에 너도 네 동생처럼 참말 저 수레에서 잠 잘 들었단다. 이제는 네 동생이 자전거수레에서 새근새근 자면서 풀노래를 듣는구나.

 

- 오던 길 되짚어 달린다. 예까지 오는 동안 내리막이던 길은 오르막 되고, 예까지 오는 동안 오르막이던 길은 내리막 된다. 사철나무 꽃송이 터질락 말락 하는 길을 달린다. 큰아이가 꽃을 보고 싶다 하기에 사철나무 흰꽃 터지려 하는 길가에 자전거를 세우고 함께 들여다본다. 즐겁게 달린다. 즐겁게 달리자. 땀은 물줄기처럼 흘러 길바닥에 떨어지고, 여름 한복판 가르는 바람을 쐬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큰아이는 살짝 보라빛 도는 코스모스 보더니 “아버지 세워 줘.” 하고 부른다. 그래, 꽃순아, 너 꽃 좋아하니 또 꽃놀이 하며 가야겠지. 오늘은 사름벼리 네가 꽃을 따는 자전거마실이 되는구나. 꽃을 따고 꽃을 만지고 꽃을 노래하는 자전거마실이로구나.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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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3-06-20 01:02   좋아요 0 | URL
자전거 모는 일 보통이 아니겠어요.
광명에서 이런 자전거 타는 분 보았는데
코너 돌 때 뒷자리 아이 보며 조심조심-
보는 제가 긴장되던걸요=.=;
그 분 자전거가 2단이면 함께살기님은 3단이네요!
대단합니다~ 저는 그냥 자전거도 못 타요^^;

파란놀 2013-06-20 04:04   좋아요 0 | URL
수레 붙인 자전거는 이제 많이 늘었어요.
저는 자전거에 수레 붙이고 다닌 지 어느덧 열 해쯤 되었네요 @.@

혼자 살던 때에도 책방마실 할 때에
책 싣고 다니려고 수레를 붙였지요.

수레에 책을 한 가득 실어 집으로 먼길 돌아오곤 했답니다 ^^
 

데즈카 오사무 님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함께 만화를 그리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 마음을 만화책 네 권으로 담아서 보여준다 하고, 이제 첫째 권이 나온다. 이 같은 책이 나온 이야기만 들어도 두근두근 설렌다. 곁에서 함께 만화를 그리느라 날밤 자주 새고 쉴 겨를 거의 없었을 테지만, 가슴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꿈과 같은 빛이 있었겠지. 데즈카 오사무 님도, 또 함께 만화를 그린 분들도, 가슴을 환하게 밝히는 빛을 살포시 붙안으면서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한테 맑은 웃음과 눈물 베푸는 만화를 그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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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1: 1928 ~ 1946
반 토시오, 테즈카 프로덕션, 아사히 신문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6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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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골목

 


  헌책방이 모여 헌책방골목이 됩니다. 찻집이 모이면 찻집골목 되겠지요. 옷집이 모이면 옷집골목 될 테고, 술집이 늘어서면 술집골목 됩니다. 여관이 많아 여관골목이요, 칼국수집 옹기종기 모여 칼국수골목입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사람들이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듯 모여 골목동네 이룹니다. 골목동네 사람들은 손바닥만 한 햇살을 서로 조금씩 나누어 받습니다. 골목을 이룬 가게는 조그마한 이야기를 나란히 주고받습니다. 어느 한 가게 때문에 골목이 알려지지 않고, 어느 한 가게라도 처지거나 힘들지 않도록 서로 손을 맞잡습니다. 너와 네가 함께 있어 골목이요, 우리 집과 너희 집이 사이좋게 동무가 되기에 골목동네입니다.


  새책방만 모여 이루어진 골목이 있을까요. 서울에 한때 도매상골목 있었지만, 이제 도매상골목은 옛모습이 거의 안 남습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새책방이 어깨동무하며 이루어진 책방골목’은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다른 어느 나라에서나 ‘헌책방이 어깨동무하며 이우러진 책방골목’은 한두 군데쯤 어김없이 있습니다. 수십 수백 군데가 모인대서 헌책방골목 되지는 않아요. 열 군데 모여서 헌책방골목 이루기도 하고, 너덧 곳이 모여 헌책방골목 이루기도 하며, 다문 두 군데 헌책방이 나란히 마주보면서 헌책방골목 이루기도 합니다.


  참 용하지요. 헌책방은 다섯 평짜리 조그마한 가게 두 군데만 나란히 있어도 ‘헌책방골목’ 또는 ‘책방골목’ 소리를 들어요. 이와 달리 새책방은 두 군데 나란히 모이기도 힘들 뿐더러, 커다란 새책방이 두어 곳 모였대서 ‘책방골목’이나 ‘새책방골목’ 같은 이름을 붙이지 않아요.


  가만히 따지면, 아파트 수백 곳 모인 데를 ‘아파트골목’이라 하지 않습니다. 아파트 수백 곳 모인 데에는 골목이 없으니 골목이 안 되어요. 아마, 커다란 새책방 두어 곳 모인다 하더라도 이 둘레에 골목이 아닌 널따란 찻길만 놓일 테네 ‘골목’이 못 되지 싶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달동네 꽃동네 새동네 같은 골목동네는 나즈막한 지붕 이어진 작은 사람들 살림집 고만고만 맞닿습니다. 조그마한 헌책방들 서로 어깨를 기대어 이루어진 헌책방골목은 작은 헌책방지기 작은 책사랑 하나둘 모여서 아기자기하고 책꽃 피웁니다. 한국에 부산 보수동 꼭 한 군데 ‘헌책방골목’ 있어 책빛이 환하고 책노래 맑게 흐릅니다. 4346.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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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한테 들려줄 수 있는 한국전쟁 이야기란 무엇일까. 어느 쪽이 꽝 하고 쳐들어와서 평화를 깼다는 소리일까. 남녘도 북녘도 슬픈 수렁에 빠졌다는 이야기일까. 민간인, 곧 백성들만 죽고 권력자와 부자는 안 죽었다는 이야기일까. 죽은 군인도 백성이요, 죽은 민간인도 백성이다. 백성은 이래저래 죽음 구렁텅이로 내몰린 채 휘둘려야 했다. 권력자는 책상맡에서 감 놔롸 배 놔라 하면서 길디긴 전쟁을 부추겼다. 전쟁에서 옳고 그름이 있을까. 이임하 님은 한국전쟁을 가로지르는 이야기를 ‘삐라’ 한 장에서 톺아본다. 미국과 남녘과 북녘에서 이십오억 장 즈음 뿌렸다는 삐라를 샅샅이 살피면서 한국전쟁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까 하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앞으로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깃들려면 어떤 마음이 되어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만히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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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 왜 전쟁 반대와 평화가 중요할까요?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3년 6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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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홍영우 글.그림 / 보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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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78

 


보름달 같은 홍길동 얼굴
― 홍길동
 홍영우 글·그림
 보리 펴냄,2006.9.20./9800원

 


  어린 날부터 ‘홍길동’ 이야기를 익히 들었습니다. 내 어린 날 텔레비전에서 만화영화로 ‘홍길동’이 나오기도 했고, 만화로 누군가 ‘홍길동’ 이야기를 그려서 만화잡지에 싣곤 했습니다. 동화로도 읽고 이야기로도 듣습니다. 참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는 이야기는 마음을 확 사로잡았습니다. 무엇보다 나쁜 사람들을 꾸짖는 대목이 속시원했고, 나쁜 사람들이 가로챈 곡식과 돈을 모두 힘여린 시골사람한테 돌려주는 대목이 반가웠습니다.


.. 또다른 길동이들도 나라 곳곳에서 나쁜 양반과 벼슬아치들을 하나하나 혼내 줬어. 그리고, 빼앗은 곡식과 재물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줬지 ..  (22쪽)


  문학책 〈홍길동〉에서 길동이는 ‘배다른 어머니’한테서 태어났다고 나옵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 대목을 알쏭달쏭하게 여겼습니다. ‘배다른 어머니’란 없기 때문입니다. 낳은 어머니는 그저 ‘어머니’일 뿐입니다. 아버지가 다르대서 이 아이를 달리 부르거나 대접해야 할 까닭이 없어요. 모든 아이는 사랑스럽고, 어느 아이라도 즐겁게 뛰놀며 자라야 올발라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린 길동이한테 ‘형’이라 할 사람은 이녁부터 마음그릇이 비뚤어졌다 할 수 있어요. 어린 길동이를 놀리거나 따돌리는 마을 다른 아이들도 서로 똑같아요. 비뚤어지거나 일그러진 마음그릇이지요. 그리고, 이처럼 비뚤어지거나 일그러진 마음그릇인 사람들이, 힘여린 시골사람 등허리를 휘게 하면서 곡식과 돈을 가로채지요.


  스스로 힘과 슬기를 갈고닦아 ‘백성을 괴롭힌 양반과 벼슬아치’를 꾸짖는 홍길동 모습은, 삶이 제자리를 찾도록 힘쓴 모습이라고 느껴요. 사람들이 제자리를 찾고, 마을이 제자리를 찾으며, 나라도 제자리를 찾도록 힘쓴 모습이에요.


  임금님이 있는 까닭은 권력을 누려 백성을 짓누르거나 짓밟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끝없이 전쟁을 일으키라고 임금님을 세우지 않습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나라를 다스리면서 누구나 넉넉하고 따사로운 삶을 이룰 수 있도록 하자는 뜻에서 임금님도 있고 양반도 있고 학자도 있겠지요.


  그러나, 임금님도 양반도 학자도 모두 흙을 만지지 않습니다. 임금님도 양반도 학자도, 수많은 벼슬아치들도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밥을 먹어요. 손에 굳은살 배기지 않으면서 값진 옷을 입지요. 손에 땀이 흐르지 않으면서 ‘여러 색시’를 건드려 ‘배다른 어머니’가 아이를 낳도록 합니다. 어느 모로 보나, 임금님이든 양반이든 학자이든 벼슬아치이든, 사랑스럽고 살가운 대목 없습니다. 이들은 시골사람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집에서 살며 똑같은 일을 할 노릇입니다.


  그렇거든요. 가장 평화로운 나라라고 한다면, 임금님부터 어린이까지 스스로 흙을 보듬으면서 보금자리를 푸르고 해맑게 가꿉니다. 대통령이 경호원과 비서를 거느리면서 나라일 맡는대서 평화로운 사회 되지 않아요. 대통령 스스로 경호원도 비서도 없이 일을 해야지요. 무엇보다 대통령 스스로 이녁 밥을 이녁 손으로 흙을 일구어 얻어야지요. 의사도 판사도 검사도, 무슨무슨 ‘사’ 이름 들어간 모든 사람들도 손수 흙을 보살피면서 삶을 꽃피워야지요.

 

 

 


.. 그러자, 길동이가 천둥 같은 소리로 말했어. “정말로 죄를 지은 이는 가난한 백성들을 괴롭힌 양반과 벼슬아치들입니다. 나는 다만 하늘을 대신하여 나쁜 이들에게 벌을 준 것뿐입니다.” ..  (35쪽)


  일본땅에서 살아가며 《홍길동》 그림책을 빚은 홍영우 님 그림결을 살핍니다. 푼더분하면서 살갑습니다. 수수하면서 아기자기합니다. 한겨레 그림맛을 살포시 느낍니다. 홍길동이란 아이는 이렇게 착하고 맑은 눈빛으로 보름달 같은 얼굴이었겠지요. 슬픔을 웃음으로 바꾸고, 눈물을 노래로 거듭나게 하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바로 홍길동일 테지요. 온누리 모든 아이들은 홍길동과 같겠지요. 우리 어른들도 처음에는 홍길동과 같이 맑고 밝은 넋을 품으며 태어났겠지요. 저마다 가슴속 고운 빛을 느낀다면, 지구별에 사랑 가득 넘실거리리라 생각합니다. 4346.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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