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삼덩굴 책읽기

 


  조그마한 부전나비 한 마리를 사진으로 찍을 때까지 부전나비만 보았는데,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새로운 모습 깨닫는다. 부전나비는 개망초꽃에 앉았다. 부전나비가 앉은 개망초꽃을 환삼덩굴이 타고 올라오며 새 잎사귀 올린다. 들풀이 서로 기대어 자라는 셈이기도 하고, 들풀이 저마다 자리를 다투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살림집 둘레로 환삼덩굴이 거의 안 보여 살짝 서운하다 여겼더니, 서재도서관 둘레에 환삼덩굴 이제서야 곳곳에 올라오는구나. 덩굴풀 뜯어먹으러 마실을 가야겠네. 내가 먼저 톡 끊어 입에 넣고 ‘이야 무슨 맛이려나.’ 하고 냠냠하면,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나도 줘.” 하면서 손을 벌리겠지. 그러면 나는 “너희가 손수 따서 먹어 봐.” 하고 말할 테고. 그날그날 밥상에 올릴 만큼 뜯으러 나들이를 다니면 좋겠구나. 4346.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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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2. 개망초꽃 작은주홍부전나비 2013.6.24.

 


  풀이 있어야 꽃이 피고, 꽃이 있어야 벌나비 춤을 춘다. 풀이 없으면 꽃이 피지 않고, 꽃이 피지 않으면 벌나비 찾아들지 않는다. 한국말에는 ‘꽃을 담는 그릇’을 가리키는 낱말이 없다. 한국사람은 예부터 집 안쪽에 따로 꽃그릇(화분)을 두지 않았기에, 이런 그릇 가리키는 낱말을 지을 일 없다. 마당이 꽃밭이면서 텃밭이요, 집 둘레가 풀밭이면서 꽃밭이고, 울타리가 바로 꽃나무요 덩굴이다. 흙과 나무로 지은 집에 지붕은 온통 흙이고 짚으로 덮고, 지붕에서는 박이 자라 꽃을 피우니, 예부터 한겨레는 숱한 풀과 꽃으로 온 집안과 마을을 가꾸었다고 느낀다. 이제 시골마을마다 농약 비료 듬뿍 쓰고, 지붕 갈고 마당 시멘트 바르면서 들풀을 몹시 싫어한다. 마을 어르신들은 풀포기 조금만 자라도 모기 걱정을 하거나 뱀이 나온다고 근심한다. 그런데 풀이 자라지 않으면 누가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집 안팎에 풀이 흐드러지지 못하면 우리는 어떤 숨을 마실까. 철 따라 다른 풀이 자라고, 달마다 새로운 풀이 돋아, 푸르며 맑은 바람이 솔솔 불 때에, 비로소 우리들은 싱그러운 숨결 될 수 있지 않을까. 씩씩하게 자라는 개망초에 흰꽃 맺히고, 개망초꽃에 작은주홍부전나비 앉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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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3-06-26 02:24   좋아요 0 | URL
화분보다 꽃그릇이란 말이 더 예뻐요! *.*

파란놀 2013-06-26 09:32   좋아요 0 | URL
'꽃그릇'은 제가 한 번 만들어 본 낱말이에요.
'화분'이라는 낱말이 그리 내키지 않아서요 ^^;;
 

다른 물맛

 


  집에서 끓여 아이들 먹이는 밥이랑, 바깥에서 사다가 먹이는 밥을 곰곰이 헤아려 보면, 아무래도 물맛부터 다르다. 조용하고 시원한 바람 흐르는 시골마을에서 흐르는 땅밑물을 길어서 짓는 밥에서 피어나는 맛이랑, 댐에 가둔 물을 길디긴 시멘트 물관과 쇠파이프 물꼭지를 거쳐서 얻어 짓는 밥에서 샘솟는 맛은 다르다.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에 나오는 아이는 초밥 맛을 더욱 높이려고 ‘초밥을 지을 때에 쓰는 물’을 ‘초밥에 쓸 쌀을 거둔 시골에서 나락이 늘 마시던 물’을 길어와서 쓰기도 한다. 제아무리 쌀이 좋다 하더라도 ‘쌀이 나고 자란 고장’에서 ‘나락이 자라는 동안 늘 마시던 물’이 아닌 수도물을 쓰면 제맛이 살아나지 않는 줄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지은 밥맛도 벽에 부딪힌다. ‘쌀이 나고 자란 고장’에서 ‘나락이 늘 마시던 바람’까지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도시사람은, 또 시골이라 하더라도 읍내나 면소재지 사람은, 샘물이나 냇물이나 우물물이나 땅밑물이나 골짝물이 아닌 수도물을 마신다. 언제나 수도물뿐이다. 애써 시골로 깃들지 않고서야 물맛을 제대로 알아채거나 느끼기 어렵다. 물맛을 이야기 나누기 어렵고, 물맛을 놓고 이래저래 삶빛을 주고받기 어렵다.


  그러나, 물 한 방울에서 물맛을 느끼지 못하는 도시 사회가 더 깊어지거나 퍼진다 하더라도 물맛을 자꾸 이야기해야지 싶다. 물맛이 사라지고, 물맛을 잃는 오늘날이기에 더더욱 ‘가게에서 플라스틱병에 담아서 파는 먹는샘물’ 아닌, 사람과 들짐승과 풀벌레와 푸나무 모두 살리는 ‘물맛’이 무엇인가를 꾸준히 이야기해야지 싶다. 물맛을 모르고는 밥맛을 알 수 없고, 밥맛을 모르고는 삶맛을 알 수 없다. 4346.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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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12 : 일물일어설

 

과연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까지도 넘어선 작가적 유연성으로 보아줄까요
《은희경-생각의 일요일들》(달,2011) 33쪽

 

  ‘과연(果然)’은 ‘참으로’나 ‘그야말로’나로 손보고, “작가적(作家的) 유연성(柔軟性)으로”는 “작가다운 부드러움으로”나 “작가다운 따스함으로”로 손볼 수 있습니다.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한국말도 아니요, 한국말로 스며든 한자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서양사람이 얘기한 학설을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 한자말을 빌어서 옮긴 글월이 ‘一物一語說’이지 싶어요. 이 글월은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데 적합한 말은 하나의 말밖에 없다”를 뜻한다고 해요.


  이러한 글월이라면 “한 가지 것에 한 가지 말”처럼 적을 수 있어요. 굳이 사자성어나 오자성어 꼴로 적어야 하지 않아요. 뜻을 살려 “저마다 다른 이름”처럼 적어 봅니다. “저마다 이름 하나”처럼 적어도 되고, “모두한테 이름 하나”처럼 적을 수 있어요.


  서양사람이 들려준 얘기를 한자말로 옮긴 사람도 이녁 스스로 깊이 생각하면서 ‘一物一語說’ 같은 글월을 빚었어요. 이러한 얼거리를 살펴, 우리도 한국말로 서양사람 얘기를 알맞고 환한 글월로 빚으면 아름답습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작가적 유연성” 같은 대목도 한결 보드라우면서 쉽게 풀어서 새롭게 적을 수 있고, 이 보기글 또한 한껏 빛나는 아름다운 한국말로 아주 달리 적을 수 있습니다. 4346.6.25.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야말로 한 가지를 나타내는 말은 하나뿐이라는 옛말까지도 넘어선 작가다운 부드러움으로 보아줄까요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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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9] 시골길 걷기
― 가장 즐거운 마실

 


  가장 즐거운 나들이는 걷기입니다. 걸어서 다니는 나들이가 가장 즐겁습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거닐 때에는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 천천히 느낍니다. 논을 보고 밭을 보며 풀숲을 봅니다. 나무를 보고 하늘을 보며 먼 멧골을 봅니다. 하늘과 구름과 해를 봅니다.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를 보지요.


  두 다리로 천천히 걷기에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걷는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깜냥껏 신나게 뛰어놉니다. 아이들은 거침없이 뛰고, 거리끼지 않으며 달립니다.


  갑작스레 온 나라에 ‘걷기 바람’이 불면서 관광길을 곳곳에 큰돈 들여 우지끈 뚝딱 하고 만드는데, 사람이 거닐 길이란 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이 거닐 길은 오직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보금자리와 마을이 있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숲과 들로 이어지는 풀섶입니다.


  바닥에 아스콘이나 돌을 깔아야 하지 않습니다. 울타리를 세우거나 전망대를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 길로 몇 킬로미터, 저 길로 또 몇 킬로미터, 이렇게 나누어 길을 닦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걷는 길에 표지판이나 알림판 있을 까닭 없습니다. 그저 걷는 길이요, 걷다가 느긋하게 쉬는 길입니다.


  풀숲에 앉으면 되지요. 바위에 앉으면 돼요. 나무 밑에 앉으면 되고, 모래밭에 앉으면 돼요. 따로 걸상을 마련해야 할 곳은 버스터나 기차역입니다. 이런 데에는 걸상을 넉넉히 마련해서 퍽 많은 사람들이 다리도 쉬고 짐도 내려놓기 좋도록 해야 합니다. 공원에 따로 걸상이 있지 않아도 돼요. 다만, 비 내린 뒤에는 풀밭에 앉기 어려울 수 있으니, 비를 그을 만한 자리에 걸상을 둘 수 있겠지요. 이런 걸상은 모두 나무로 짜면 됩니다.


  혼자서도 걷고 아이들하고도 걷습니다. 씩씩하게 걷습니다. 한 시간쯤 가볍게 걷습니다. 두 시간도 이럭저럭 즐겁게 걷습니다. 걷다 보면, 아이들이 힘들어 할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 힘들어 하면 한 아이씩 안거나 업으면 돼요. 작은아이가 안기거나 업힌 뒤 내려서 다시 걷고, 큰아이가 안기거나 업힌 뒤 내려서 다시 걸어요.


  아이들은 즐겁게 걸어가면서 다리에 힘을 붙입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걷고 뛰고 달리고 날면서 마을과 보금자리를 넓게 껴안습니다. 아이들은 활짝 웃으면서 걷는 내내 바람과 햇살과 흙과 빗물과 냇물과 풀과 나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시나브로 느낍니다. 4346.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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