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와 래고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시읽는 가족 2
이옥용 동시집, 최정인 그림 / 푸른책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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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19

 


이 아이들은 무엇을 꿈꿀까
― 고래와 래고
 이옥용 글,최정인 그림
 푸른책들 펴냄,2008.7.30./8800원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손전화 기계를 사 줍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손전화 기계를 붙잡고 지냅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손전화 기계 붙잡고 늘어져 지내는 모습’을 글로도 쓰고 시로도 씁니다. 이런 모습을 걱정하거나 나무라기도 하지만, 그냥 손전화 기계를 사 주고는 더는 어찌하지 않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예전에 ‘게임기’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한테 사 주었습니다. 더 앞서는 ‘플라스틱 장난감’이나 ‘총이나 칼’ 같은 장난감을 깊이 살피지 않고 아이들한테 사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게임기에 흠뻑 빠져 지내는 모습’을 나무라거나 걱정하는 글이나 시를 씁니다. 또, 총이나 칼 같은 장난감 갖고 노는 모습을 근심하거나 슬퍼하는 글이나 시를 쓰지요.


  곰곰이 돌이켜보면, 어른 스스로 ‘어른이 아이한테 못된 장난감 사 준 잘못’을 탓하거나 나무라거나 돌아보는 글이나 시는 거의 없어요. 아이들이 그런 ‘못된 장난감’ 또는 ‘총이나 칼’을 만들어서 갖고 놀지 않아요. 어른들이 돈을 벌려고 장삿속으로 이런 장난감 만들어서 팔지요. 게다가 어른들은 장난감 총과 칼만 만들지 않고, 참말 사람 죽이는 총과 칼까지 만들어서 전쟁을 일으켜요.


.. 엄마한테 호두과자 세 개를 / 싸 달라고 했다. / 봉지를 열어 보니 다섯 톨이 들어 있었다 ..  (나랑 다르네)


  우리 어른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대학입시 지옥’을 만듭니다. 뜻있는 어버이나 뜻없는 어버이나 그냥 아이들을 학교에 넣어,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 동안 ‘대학입시 지옥’에서 허덕이도록 몰아붙입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참사람 되는 이야기를 배우지 못해요. 학교에서 아이들은 대학입시 잘 치를 수 있도록 시험공부를 하고 시험문제를 달달 외웁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대학입시 지옥’을 만들어 ‘시험문제풀이’만 시킬 뿐 아니라, 학교를 벗어난 뒤에는 학원을 뺑뺑이처럼 돌려요. 아이들이 놀 겨를을 안 줍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 어른들은 ‘학교와 학원 문제’를 글로 쓰고 시로 읊습니다.


.. 학교에서 숙제가 그림자로 따라왔다. / 집에 오니 영어 학원 그림자가 들러붙었다. / 피아노 학원 그림자가 들러붙었다. / 글짓기 학원 그림자가 들러붙었다. / 바둑 학원 그림자가 들러붙었다. / 나는 그림자를 가위로 똑똑 잘라 옷장에 걸어두었다 ..  (그림자)


  이옥용 님 동시집 《고래와 래고》(푸른책들,2008)에 나오는 〈그림자〉라는 동시는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맞닥뜨린 모습’을 아주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살짝 우스꽝스럽게 나무랍니다. 참 잘 쓴 동시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학원 수렁’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학원은 누가 만들고, 학원에는 누가 보낼까요.


  아이들한테 끔찍하게 많은 숙제를 내주는 사람은 바로 어른이에요. 집에서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려는 이는 바로 어른이에요. 피아노 학원이든 글짓기 학원이든, 모두 어른이 만들고 어른이 아이들을 닦달해요. 그렇지만, 막상 이 동시 〈그림자〉에서도 ‘대학입시 지옥’을 만든 어른 그림자는 나오지 않아요. ‘입시 공부에만 얽매인 학교’를 만든 어른 그림자가 나오지 않지요. ‘학원 뺑뺑이’ 시키는 어른 그림자도 없어요. 집에서까지 ‘영어 닦달’을 하는 어른 그림자 또한 찾을 길 없어요.


  동시 작품 하나는 예쁘지만, 이 동시가 나올 수밖에 없는 참모습까지는 밝히지 못해요. 아이들이 놓인 모습을 잘 살피면서 슬기롭게 동시 옷을 입혔지만, 이 동시를 읽으면서 ‘아이들 스스로 헤쳐 나갈 빛줄기’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고작, ‘그림자 잘라서 소포로 내다 버린다’는 것 하나밖에 없어요. 아이들은 살아날 길도 살아갈 길도 없어요.


  다시 말하자면, ‘아이들이 놓인 교육 현실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이 이런 끔찍한 곳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다’고 이 동시가 잘 나타낸다 할 만하지만, 이 동시는 ‘아이들이 왜 끔찍한 교육 현실에 놓였고, 이 교육 현실은 누가 만들었으며, 어떻게 고치거나 없애서 아이들이 싱그럽게 꿈꾸며 살아가면 좋은가’ 하는 대목을 조금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문학작품으로는 빈틈없이 훌륭하지만, 문학을 하는 더 깊은 속내까지는 들어가지 못해요. 문학이란, 현실만 보여준대서 문학이 되지 않아요. 현실이 이루어진 틀을 살피고 꿰뚫을 뿐 아니라, 이 현실에서 참거짓을 밝혀, 문학작품 읽을 사람(동시에서는 독자인 어린이가 될 테지요)들이 스스로 슬기로움을 깨우쳐 씩씩하게 살아갈 기운을 차리도록 할 때에 문학이 제몫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완성도가 높대서 문학이라 할 수 없어요. 작품 완성도도 높아야 하겠지만, 작품 완성도가 조금 덜 하더라도, 알맹이가 될 이야기를 알맞고 바르며 참답게 다룰 수 있어야 문학이라 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 엄마가 사 온 호두 봉지에 / 북한산 호두란 말이 적혀 있다. / 뭐가 다를까? /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 김정일도 없고 미사일도 없다. / 똑같은 호두였다 ..  (북한산 호두)


  〈북한산 호두〉도 문학작품으로는 참 잘 썼습니다. 남녘과 북녘이 가로놓인 아픔과 어긋남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왜 이 동시에서 ‘아이 눈길’은 “김정일과 미사일”을 떠올렸을까요? 왜 이 동시에서 ‘아이 눈길’은 북녘에서 살아가는 ‘남녘에 있는 나와 같은 아이(동시 작품에서 화자인 나)’를 떠올리지 않을까요? 북녘에 있을 숲과 북녘 시골에서 딴 호두나무 열매를 떠올리지 못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쩔 수 없지요. 어른들이 만든 텔레비전에서는 어른들이 만든 소식, 그러니까 ‘북녘 김정일과 미사일’ 이야기만을 쏟아내니, 이 시에 나오는 ‘아이 눈길’은 ‘북녘에 있을 내 동무’ 생각이 아닌 다른 데로 갈밖에 없습니다. 어른들이 만드는 텔레비전에는 ‘북녘 어린이’라든지 ‘북녘 여느 수수한 시골’ 이야기가 흐르지 않아요. 남녘 아이들은 북녘 동무들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만나지 못하고, 생각조차 못하지요. 이 동시에서도 북녘 삶과 사람과 사랑을 떠올리지 못하는 흐름으로 가고 말아요. “똑같은 호두였다” 하고 끝맺는 깨달음을 한결 따사롭거나 한껏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엮는다면, 아마, 문학작품 완성도로도 더 뛰어났으리라 보고, 이 문학작품 하나로 베푸는 아름다움과 깊이도 훨씬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 아기 하마가 홍수에 밀려 / 우리 집에 오면 / 따끈한 코코아를 먹인 뒤 / 좋은 친구를 찾아 주고 싶다 ..  (이렇게 하고 싶다)


  《고래와 래고》라는 동시집 내놓은 이옥용 님은 생각날개를 두루 펼칩니다. 한국에는 없는 아기 하마도 떠올려 동시를 씁니다. 아무래도 동물원에 있는 짐승일 테고, 그림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본 짐승일 테지요. 그리고, 이 동시는 도시에서 동물원과 그림책과 텔레비전을 가까이한 어린이 눈높이로 썼구나 싶습니다.


  시골 아이들도 ‘아기 하마’를 생각할까 궁금합니다. 시골 아이들이라면 ‘아기 멧돼지’나 ‘아기 노루’처럼, 그래도 시골 둘레에서 더러 만나는 들짐승들 이야기로 동시를 풀어내는 결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또는 ‘아기 토끼’나 ‘아기 다람쥐’를 들 수도 있겠지요.


  생각날개를 펼치는 일은 자유요, 어떤 짐승을 생각하더라도 자유입니다. 그런데, 이 동시를 쓴 분은 우리 숲, 곧 우리 자연, 그러니까 우리 시골과 들판과 멧골과 바다와 냇물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구나 싶기도 해요. 〈꼬마 수선화〉라는 동시를 읽으면서 이런 대목을 느껴요.


.. 목련과 후박나무, 은행나무는 / 코가 간질간질했다. / 눈을 깜박였다. //  저 아래 땅바닥에 / 예쁜 머리핀 같은 게 있네. / 나비가 벌써 왔나? / 별이 낮에 떨어졌나? // 꼬마 수선화 세 송이잖아! ..  (꼬마 수선화)


  목련과 후박나무와 은행나무를 나란히 든다고 해서 잘못될 일은 없습니다. 어느 시골에는 이렇게 세 가지 나무를 나란히 마당에 심어서 돌보는 작은 집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후박나무는 아무 시골에나 자라지 않아요. 소금기 묻은 바람이 부는 바닷가에서 자라는 후박나무입니다. 어찌저찌 서울 같은 데에서도 후박나무 몇 그루 옮겨심어 살릴 수 있다 할 텐데, 어찌저찌 서울에서도 살리는 후박나무란 숲살이하고 어울리지 않아요. 후박나무로서도 몹시 힘들겠지요.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바닷가 마을, 또 울릉섬과 제주섬 아니라면 후박나무를 보기란 퍽 힘들어요. 동백나무도 그렇지요.


  그닥 깊이 생각하지 않고 ‘예쁜 나무 이름’이라 세 가지를 나란히 들었을까요. 글쓴이가 좋아하는 나무라서 세 가지를 들었을까요.


  그런데, ‘꼬마 수선화’가 땅바닥에서 자란다는 대목은 좀 아리송합니다. 조그마한 수선화도 틀림없이 있습니다만, 수선화는 꽃대를 제법 높이 올려서 꽃망울 터뜨립니다. 땅바닥에 붙듯 피어나지 않아요. 민들레라면 땅바닥에 붙어서 꽃을 피워요(민들레 가운데에도 꽃대 높이 올리는 꽃이 있어, 이럴 때에는 좀 다릅니다). 제비꽃도 땅바닥에 붙듯이 꽃을 피웁니다. 그래서, 민들레와 제비꽃은 ‘앉은뱅이꽃’이라고도 해요. 앉은뱅이처럼 땅바닥과 가까이 맞붙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수선화는 앉은뱅이꽃처럼 땅바닥과 맞붙은 채 피었을까요? 누군가 수선화 꽃대를 부러뜨려서 그만 앉은뱅이꽃이 되었을까요? 게다가 수선화 꽃송이는 작지 않아요. 제법 커요. 봄날 피어나는 꽃 가운데 수선화는 꽃송이가 무척 큰 축에 듭니다. 수선화 꽃송이는 ‘머리핀 크기’만큼 작지 않습니다. 아니, 커다란 머리핀 크기라면 비슷하달 수 있지만, 수선화 꽃송이는 퍽 크다 할 만해요.


  수선화 꽃송이를 나비처럼, 별처럼, 곱게 바라보는 눈길이 싱그럽습니다. 그렇지만, 자연과 숲과 꽃과 풀과 시골을 올바르게 살피지 않고 ‘생각날개만 곱게 꾸미는’ 일은, 도시에서 살아가며 이 동시를 읽을 아이들한테 어떻게 스며들까 하고 어른들은 깊이 생각할 노릇이라고 봅니다. 생각날개는 자유라 하더라도, 동시를 읽을 아이들을 찬찬히 생각할 노릇입니다. 생각날개를 자유롭게 펼치려 한다면, 아이들이 놓인 삶도, 오늘날 이 나라 시골과 도시 얼거리도, 숲과 들과 멧골이 어우러진 모습도, 더 깊고 넓게 제대로 살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나저나, 오늘날 이 나라 아이들은 무엇을 꿈꿀까요. 오늘날 이 나라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삶터를 만들어서 보여주는가요. 이 나라 아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 나라 어른들은 아이들이 어떤 생각날개 펼치면서 아름답게 꿈꾸는 길을 여는가요.


  아이들을 자가용에 태워 학교나 학원을 보낸대서 아이들이 즐거울까요. 아이들이 서로서로 어울려 뛰놀 빈터와 놀이터와 쉼터 하나 없이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에서, 이 나라 아이들은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요. 텔레비전 아닌 마을에서 이웃과 들짐승을 느끼거나 사귀도록 아무것 못하는 어른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생각날개 펼칠 자리는 거의 다 없애 버린 채, 가벼운 말놀이로 예쁘장한 모습만 겉으로 보여주도록 꾀하는 어른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4346.7.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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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13] 볼그스름 익는 매화나무 열매
― 햇살 머금은 맛

 


  이웃들은 매화나무 열매가 푸르딩딩할 적에 바지런히 땁니다. 아직 제대로 크지 않은 푸른 매실을 한 꾸러미 두 꾸러미 따고, 모자라다 싶으면 읍내에서 몇 꾸러미씩 사들입니다. 매화 열매인 매실에다가 설탕을 푸대로 장만합니다. 그러고는 ‘매실 효소’를 담근다고 바쁘셔요.


  우리 집은 매화나무에 맺힌 열매가 푸르딩딩할 적에는 그대로 둡니다. 매화 열매 스스로 가장 굵게 익을 때까지 지켜봅니다. 그러고는, 이 매화 열매가 볼그스름한 빛 감돌면서 노랗게 익도록 기다리지요. 효소로 담가서 물을 마셔도 좋다 할 테지만, 이보다는 오래오래 햇살과 바람과 빗물을 받아먹으며 잘 익은 매화 열매를 하나둘 톡톡 따서 그날그날 먹고 싶어요.


  매화나무 열매를 따서 먹으면, 참말 매화나무 열매 맛이 납니다. 살구도 아니요 오얏도 아니며 복숭아도 아닙니다. 매화나무 열매는 꼭 매화나무 열매 맛이 나요. 오얏처럼 달지 않고, 복숭아처럼 시원하지 않습니다. 살구처럼 상큼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오얏처럼 끝물에 신맛 감돌지 않아요.


  볕이 잘 드는 가지 쪽에서는 벌써 노랗게 익으려 하고, 볕이 덜 드는 가지 쪽은 아직 푸른 빛깔입니다. 볕 잘 드는 쪽부터 하나씩 따서 먹으면, 어느새 볕 덜 드는 가지 쪽 열매도 익을 테지요.


  여름날 두고두고 즐기는 열매입니다. 한여름에 하나씩 맛보면서 싱그럽고 맑은 기운 누리는 열매입니다. 햇살을 머금은 열매에서는 햇살맛이 나고, 바람을 들이켠 열매에서는 바람내음이 나며, 빗물을 마신 열매에서는 빗소리가 흐릅니다. 4346.7.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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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30] 환하게 웃자

 


  물방울 튀고 풀잎 살랑인다.
  올챙이 헤엄치고 볏포기 자란다.
  아이들은 나비를 보며 웃는다.

 


  밝고 홀가분하게 아름다운 사랑 즐거이 찾아서 환하게 누리면,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웃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밝은 삶은 스스로 밝게 웃을 때에 찾아들고, 홀가분한 삶은 스스로 홀가분하게 노래할 때에 찾아들어요. 아름다운 삶은 스스로 아름답게 꿈꿀 때에 찾아들고, 즐거운 삶은 스스로 즐겁게 일할 때에 찾아들어요. 환하게 웃음지으며 놀면 언제나 웃음꽃입니다. 나부터 웃음이고, 내 이웃 누구나 웃음입니다. 옆에서 웃겨야 웃지 않아요. 곁에서 웃음보따리 풀어놓아야 웃지 않아요. 스스로 싱그럽게 웃으며 따순 말 건네면, 저절로 웃음빛 퍼집니다. 4346.7.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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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색잉꼬 6
테츠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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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52

 


즐겁게 살아가려는 꿈
― 칠색잉꼬 6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도영명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2.6.25./9000원

 


  저녁 늦게 잠든 아이들이 새벽 일찍 깹니다. 좀 느긋하게 자다가 일어나면 좋으련만,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도 일찍 일어나요.


  새벽바람으로 일어난 아이들 쉬를 누이며 생각합니다. 나도 이 아이들만 한 어릴 적에는 이렇게 일찍 일어나 버릇했어요. 잠자리에 들 무렵에는 ‘더 놀지 못해’ 아쉬움을 달랬고, 새 하루가 찾아오면 벌떡 일어나 ‘더 놀려’고 애씁니다. 그런 어린 나날 보낸 내 발자국을 돌아보노라니, 우리 아이들 새벽바람으로 일어나서 놀려고 하는 몸짓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몸이 고단하다면 천천히 놀면서 몸을 깨우겠지요. 슬렁슬렁 놀고 뛰며 차츰차츰 기운을 찾으리라 느껴요.


  겨울이라면 해가 느즈막히 뜨니까 여덟 시나 아홉 시까지 이렁저렁 재울 수 있는데, 여름에는 네 시부터 동이 트니까, 아이들이 네 시 반 즈음 눈을 뜨면 ‘벌써 아침이 된’ 줄 생각합니다. 여섯 살 세 살 아이들은 아직 시계를 못 보고, 시간을 안 읽습니다.


- “이걸 먹여라.” “하지만 오오이시 님, 무사에겐 자비란 게 있습니다냥.” “인간에게 자비 따윈 소용없다냥!” (9쪽)
- “인간은 누구라도 면목이니 사회적 체면이니 하는 걸 신경 쓰느라 본심을 감추지. 남 앞에서는 마음에도 없는 있어 보이는 말을 하지. 즉 연극 같은 걸 하고 있는 셈이야. 그렇고 말고! 인간은 매일 연극을 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때론 연극을 하는 중이란 걸 잊어버리고 원래 있는 마음을 드러내곤 하지. 그게 바로 본심이란 거야. 자, 잉꼬. 너도 슬슬 본심을 드러내는 게 어때?” (38∼39쪽)

 


  엊저녁에 불린 쌀을 헹구어 냄비로 옮깁니다. 두 아이와 어른 한 사람 먹을 몫을 끓입니다. 오늘은 달걀을 삶기로 하고 넉 알을 끓입니다. 이다음으로는 국거리를 송송 썰어 작은 냄비에 넣고는 물을 부어 불을 넣습니다. 날무를 가늘게 썹니다. 곤약은 무보다 조금 두껍게 썰어서 한 접시에 담습니다. 이렇게 한 뒤에 마당에서 풀을 뜯어 새 접시에 살포시 얹어야지요.


  아이들이 일찍 일어나 놀기에 아침도 일찍 차립니다. 아이들이 늦게 일어나면 아침을 늦게 차려요. 언제나 아이들한테 맞추어 밥을 마련합니다.


  생각해 보면, 아이 있는 집에서는 아이한테 맞춥니다. 늙은 어르신 있는 집에서는 늙은 어르신한테 맞추겠지요. 곧, 어린이와 늙은이한테 맞추어 삶을 움직입니다. 어린이와 늙은이가 맛나게 먹을 것을 살펴 밥을 차려요.


  어디 마실을 가더라도 어린이와 늙은이를 맨 먼저 살핍니다. 젊은이를 살피지 않습니다. 젊은이는 어린이와 늙은이를 곁에서 모십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도 군내버스를 탄다든지 시외버스를 타면 늘 ‘어린이’나 ‘늙은이’ 아닌 ‘젊은이’한테 맞춥니다. 또, 늙은 사람한테 맞춘다 하더라도 어린 사람까지 살피지 못해요. 이를테면, 어르신들이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 하더라도, 어린이들 생각해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끌 줄 알아야 해요. 어른들이 ‘치고 박고 다투고 싸우는 영화나 연속극’을 보고 싶다 하더라도, 버스에 아이들 탔으면 그런 텔레비전 영화와 연속극은 바로 끌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이 고춧가루 듬뿍 친 해장국이나 설렁탕을 먹고 싶다 하더라도 이런 국을 아이들한테 먹일 수 없어요. 어른들은 냉면도 먹고 뭣도 먹는다지만, 아이들한테 이런 먹을거리를 함부로 먹일 수 없습니다. 어른들이 술을 마신대서 아이들한테 술을 먹일 수 없지요.


- “당신을 위해서 하는 소리야. 오늘 붙잡히면 당신의 경력도 끝장나는 거라고. 얌전히 연극을 포기하고 도망치는 게 좋을걸.” … “무슨 바보 같은 소릴. 난 배우야! 난 연기를 하고 싶다고. 아마도 넌, 무대에 설 때의 그 기분을 모르겠지.” “초등학교 때 학예회에서 무대에 선 적이 있어.” “여길 봐! 여기가 무대야. 객석 쪽은 컴컴해서 마치 큰 바다의 물결 앞에 서 있는 것같이 보이지! 라이트는 별의 빛처럼. 관객이 웅성거리는 소리는 파도소리처럼 느껴져. 무대는 말 그대로 다른 차원의 세계에 있는 해변이야! 여기에 서면 자신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있는 다른 인간이 될 수가 있어. 그리고, 다른 인생이 펼쳐지면서 마치 최면술에 걸린 것마냥 객석의 어둠과 천정과 바닥이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로 보이게 된다고!” (80, 82∼83쪽)

 

 


  오늘날 아이들은 잘 놀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느긋하고 한갓지며 걱정없이 놀 만한 빈터가 거의 없어요. 아파트 놀이터라 하더라도 자가용 쉴새없이 드나들며 시끄럽고 어지러워요.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질 만한 흙이나 모래가 없기 일쑤요, 햇볕 듬뿍 쬐거나 나무그늘에서 쉴 터를 제대로 마련한 데는 드물어요.


  그러면, 왜 아이들한테 놀이터를 마련해 주지 못할까요? 어른들부터 놀 줄 몰라서 이와 같지 않을까요? 어른들 스스로 놀지 않으니, 아이들 놀릴 생각을 못 하지는 않나요?


  어른들 스스로 나무그늘 누리면서 모래밭이나 흙땅에서 뒹구는 놀이를 즐겨야, 비로소 아이들도 이런 데에서 놀 때에 즐거운 줄 깨닫습니다. 어른들 스스로 어릴 적부터 모래밭이나 흙땅에서 뒹굴며 놀았어야, 아파트를 짓건 학교를 짓건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자리를 마련해요.


  시험공부 잘 하던 사람들이 교사가 되기보다는, 잘 놀고 잘 뛰며 잘 웃던 아이들이 교사가 되어야 ‘아이들을 슬기롭고 사랑스레’ 가르칩니다. 학교성적 뛰어난 사람들이 교육감이 되거나 장학사가 된대서 교육행정 잘 꾸리지 않습니다. 잘 놀고 잘 뛰며 잘 웃던 아이들이 교육감도 되고 장학사가 되어야지요.


  그러니까,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시장도, 군수도, 의사도, 간호사도, 박사도, 학사도, 판사도, 검사도, 뭣도 뭣도 모두 어린 나날 신나게 놀고 개구지게 뛰며 함박꽃처럼 웃던 아이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놀지 않던 아이가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를 엉터리로 윽박지르겠지요.


- “난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고, 반드시 관객을 감동시키지. 그렇기에 감동에 대한 대가를 관객으로부터 받는 거야. 그게 잘못인가? 옛날 광대들은 손님들이 던지는 돈을 받아 살아왔어. 부자는 금화를 뿌렸고, 가난한 사람은 돈을 내지 않았어. 그걸로 충분해! 일반 관객들로부터는 돈 받을 생각을 하지 않지.” (84쪽)
- “보기 좋은걸. 사는 보람이 있는 사람은. 아까 당신이 무대에서 들려준 얘기. 계속 생각해 보니 점점 부러워졌어. 당신도 그 여자도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더군. 좋겠어.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서.” “너한테도 하고 싶은 건 있을 텐데?” “없어. 그딴 건.” “있다면 스케반 노릇 따위를 할 것 같아?” (110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칠색잉꼬》(학산문화사,2012) 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칠색잉꼬》 여섯째 권에서는 ‘즐겁게 살아가는 길’이란 무엇일까 하고 이야기합니다. 즐거움이란 내가 스스로 찾는지, 다른 사람이 챙겨 줄 수 있는지, 차근차근 짚습니다.


  스스로 즐거운 삶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에 나한테 즐거움이 깃들까요. 스스로 안 즐거운 삶으로 치닫는데 나한테 즐거움이 선물처럼 떨어질까요.


  사람들은 ‘다른 나’를 찾아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나’란 처음부터 없습니다. 모든 모습이 나 그대로입니다. 좋거나 싫은 모습이란 없고, 반갑거나 못마땅한 삶이란 없어요.


  아이가 하나라서 서운할 까닭 없고, 아이가 넷이라서 벅찰 까닭 없습니다. 아이가 없으니 홀가분할 까닭 없고, 아이가 없어서 쓸쓸할 까닭 없어요. 즐거움도 슬픔도, 서운함도 고단함도, 홀가분함도 쓸쓸함도, 사랑도 미움도, 언제나 스스로 불러들입니다. 스스로 마음속에서 이 모든 모습을 길어올려요.


- “제자가 될 수 있다면 어떤 고생이든지 하겠어요.” “멍청한 녀석! 농사일의 어려움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 겁쟁이가, 무슨 고생을 견대낼 수 있다는 거지?” “난 농사일이 맞지 않아요! 샤쿠지이 씨를 존경하고 있어요. 샤쿠지이 씨처럼 되고 싶다고요.” “이 바보 자식. 알겠나, 잘 들어. 우선 한 사람 몫의 훌륭한 농부가 되어 봐. 그러면 같은 남자로서 만나 주지. 도중에 포기하고 뛰쳐나오기라도 한다면 넌 남자도 아닐 뿐더러 인간쓰레기일 뿐이야!” (160∼161쪽)
- “오늘 밤은 달도 아름답겠군. 춤을 하나 선보이도록 하지요. 라모나, 준비를.” … “어땠소.” “브라보, 굉장합니다. 도중에는 어째선지 마치 동물로 보이더군요.” “동물로 보였다고? 방금 건 동물의 춤이오. 동물 역을 하고 있던 게 아니라 동물 그 자체가 된 거요. 이 나무 위에 집이 있는 건, 조금이라도 새나 동물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지. 동물만이 아니오! 바람도, 불도, 물로도 될 수 있소! 자연을 보시오. 모든 것에 리듬이 있소. 짐승도, 새도, 물고기도, 나무도, 풀도, 바람이나 불도 다들 리듬이 있고 춤추듯이 보이는 법이오. 나는 거기서 배운 거요.” (191, 193∼194쪽)

 


  즐겁고 싶으면 즐겁게 살자고 꿈을 꿀 노릇입니다. 즐겁게 살자고 꿈을 꾸면서, 이 꿈을 이루자면 내 마음과 삶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내가 이루고 싶은 즐거운 삶을 바라보면서 차근차근 한 걸음씩 내딛을 노릇입니다.


  야구선수가 되고 싶든 가수가 되고 싶든 늘 같아요. 차근차근 몸가짐을 추스르고 마음씨를 다독이며 솜씨를 키울 노릇입니다. 하루아침에 짠 하고 나타나는 야구선수나 가수가 아니라, 오래도록 내 삶으로 누릴 빛을 헤아리면서 꾸준하게 나아갈 노릇이에요. 좋아하는 빛대로 살아가도록 생각을 거듭하고 땀을 흘려야지요.


- “자, 어디든 가거라! 인간이 없는 곳으로.” (138쪽)


  그런데 우리 살아가는 이 지구별에서 사람들이 자꾸자꾸 꿈을 잃습니다. 아니, 오늘 이 지구별에서는 사람들이 자꾸자꾸 꿈하고 멀어집니다. 누가 몰아내거나 밀어냈기에 멀어지지 않아요. 스스로 멀어져요.


  사람들 스스로 숲하고 동떨어지면서 꿈하고 동떨어집니다. 사람들 스스로 나무하고 사귀지 않으면서 꿈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람들 스스로 꽃과 인사를 못 나누고 풀하고 노래하지 못하면서, 자꾸자꾸 사람들 스스로 말을 잃고 노래를 잊어요.


  사람이 사는 곳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지만, 사람만 있고서야 사람조차 살지 못해요. 범이 살거나 여우가 사는 곳을 생각해 봐요. 범이 사는 멧골에는 범만 살지 않아요. 여우가 사는 둘레에도 여우만 살지 않아요. 온갖 짐승이 서로 얼크러집니다. 숱한 풀과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랍니다.


  곰도 토끼도 다람쥐도 뱀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곰만 있대서야 곰조차 살지 못해요. 토끼만 우글거린다면 토끼들 모두 죽어요. 너른 흙땅, 곧 들판과 숲과 멧자락이 있어야 합니다. 냇물이 흐르고 바다가 있으며 모래밭이 펼쳐져야지요.


  사람들은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도시를 세웁니다. 이 도시에는 숲도 들도 흙도 없습니다. 나무는 모양만 있는 시늉으로 처박습니다. 아끼고 돌보며 누리는 나무가 아니라 돈으로 처박아 나뭇가지 아무렇게나 휘어 놓는 나무예요. 이러다 보니, 도시는 커지면 커질수록 사람다움을 잃습니다. 도시에서는 사람빛이 환하지 않아요. 도시에서는 사람빛이 어둡습니다. 사람들만 있는 도시에서는 빛도 사랑도 꿈도 자라지 못해요. 입으로는 사랑을 노래하는 듯하지만, 참답거나 착하거나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 남녀가 몸을 더듬는 노닥거리만 읊어요.


  삶이 없으니 사랑이 없어요. 사랑이 없으니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고,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 터라 말이 말답지 않고, 꿈도 이야기도 샘솟지 못합니다.


  청둥오리가 하늘을 날아야지요. 해오라기가 다리쉼을 할 수 있어야지요. 개구리와 뱀이 서로 얼크러져야지요. 도룡뇽도 가재도 마음껏 도랑에서 놀아야지요. 다슬기와 개똥벌레가 사이좋게 어깨동무해야지요. 사람 아닌 수많은 목숨들이 깃들 때에 도시이건 시골이건 ‘사람이 살 만한’ 터전이 됩니다. 사람과 함께 숱한 숨결이 곱게 바람을 마시고 햇살을 누릴 때에 ‘사람이 사랑스레 살 만한’ 보금자리가 되어요. 삶터도 보금자리도 마땅하지 않다면, 즐겁게 빛낼 삶은 그예 숨죽입니다. 4346.7.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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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맡에 몇 해째 두고는 아직 다 읽지 않은 《불교가 좋다》를 요즈음 《이오덕 일기》와 나란히 읽다가 생각한다. 나는 2004년에 나온 누르스름한 종이결 살가운 책으로 읽지만, 이 책이 2013년 올해에도 잘 살아남았을까? 인터넷을 켜며 살피니 2007년과 2008년에 새로운 판으로 나와 꾸준히 사랑받는다. 좋구나. 좋네. 사람들은 이 책에 깃든 넋을 잘 알아채어 즐거이 읽어 주는구나. 책이름은 “불교가 좋다”이지만, 가와이 하야오 님이나 나카자와 신이치 님은 ‘불교’에 얽매인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종교’에 갇힌 이야기를 되풀이하지 않으며, ‘철학’이라는 어렵고 딱딱한 학문으로 다가서지 않는다. 불교라고 하는 이야깃감을 하나 사이에 놓고는, 사람들이 지난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마음을 살찌우면서 삶을 빛내려는 꿈을 키웠는가 하는 대목을 짚는다.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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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좋다
나카자와 신이치 외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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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7월 0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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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01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월에는 이 책을 읽어야겠네요.
감사히 담아갑니다~

파란놀 2013-07-01 14:02   좋아요 0 | URL
에고~ 그저 즐거이 읽어 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