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12. 2013.6.29.

 


  마당에 친 천막에서 노는 아이들한테 접시에 네모빵을 담아 건넨다. 딸기잼 든 병과 숟가락도 준다. 큰아이가 네모빵에 딸기잼을 척척 발라 동생 하나 주고 저 하나 먹는다. 또 동생 하나 발라 주고 저 하나 먹는다. 곱게 잘 바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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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4. 우리 집 풀밭 2013.6.30.

 


  풀밭을 바라본다. 제멋대로 자라는 풀이라 여길 수 있는데, 아마 풀은 제멋대로 자란다고 해야 옳다. 왜냐하면 ‘풀 나름대로 제멋’으로 자라니까 제멋대로 자란다. 풀은 사람 눈치를 보지 않는다. 풀은 씨앗이 떨어져 뿌리를 내리는 대로 자란다. 풀은 사람 손길을 보며 자란다. 풀은 씨앗이 떨어져 뿌리를 내리더라도 사람들이 어떤 손길로 저희를 쓰다듬거나 마주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자란다. 우리 집 풀밭은 좀 내버려 두는 풀밭이다. 땅심을 북돋우고 싶기에 한동안 내버려 두는 풀밭이다. 오래도록 농약과 비료에 길든 땅뙈기에 숱한 풀이 나고 자라다가 겨우내 시들어 죽기를 되풀이하면서 차근차근 기운이 살아나기를 바라며 내버려 두는 풀밭이다. 이 풀도 좋고 저 풀도 좋지. 이 풀도 반갑고 저 풀도 고맙지. 다만, 나무한테 가는 길은 낫으로 벤다. 매화나무, 뽕나무, 감나무, 탱자나무, 여기에 올해에 우리가 심은 어린나무로 가는 길만큼은 거님길을 낸다. 매화나무에 노랗게 익는 열매가 얼마나 말랑말랑한가 만져 보려고 풀밭을 낫으로 베면서 지나간다. 큰아이가 따라온다. 우리 집은 워낙 풀밭이니 이제 아이들은 이럭저럭 익숙하다. 늘 맡는 내음을 느끼고, 늘 보는 빛깔을 마주한다. 얘, 사름벼리야, 이 풀이 바로 풀빛이란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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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85) -의 : 아버지의 나지막한 말에

 

아버지의 나지막한 말에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벼락같이 터져나온다
《리혜선-사과배 아이들》(웅진주니어,2006) 6쪽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할아버지 목소리”로 적으면 됩니다. 따로 토씨 ‘-의’를 안 붙입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들려주는 목소리도 “어머니 목소리”나 “아버지 목소리”처럼 적으면 돼요. 개구리가 노래를 부를 적에는 “개구리 노랫소리”라 하면 되고, 나뭇잎이 바람 따라 촤라라 나부끼는 소리는 “나뭇잎 소리”라 하면 됩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주고받을 적에는 “아버지 말소리”와 “할아버지 말소리”를 들어요. 아버지‘는’ 할아버지한테 나지막히 말합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아버지‘가’ 하는 말을 듣습니다.

 

 아버지의 나지막한 말에
→ 아버지가 나지막히 말하니
→ 아버지가 나지막히 말하는데
 …

 

  이 보기글은 중국조선족 작가가 썼습니다. 곧, 중국조선족도 토씨 ‘-의’를 그닥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많이 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남녘에서 내면서 토씨 ‘-의’를 모조리 그대로 둡니다. 이렇게 되면 이 어린이문학 읽을 남녘 아이들은 토씨 ‘-의’를 한결 익숙하게 여깁니다. 어른들이 슬기롭지 못하게 쓰는 말투를 아이들이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어른들이 잘못 쓰는 말씨를 아이들이 모두 이어받습니다. 문학을 하는 분은 말투와 말씨를 더욱 살필 노릇이요, 어린이문학을 책으로 엮는 분은 문학작품에 드러나는 말투와 말씨를 더욱 깊이 헤아리면서 차근차근 바로잡아 줄 수 있기를 빕니다. 4346.7.2.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버지가 나지막히 말하니 할아버지 목소리가 벼락같이 터져나온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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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앞

 


  집앞이 어떤 곳인가를 생각한다. 아이들과 집앞에 서면 으레 사진을 한 장 찍고 본다. 날마다 다른 빛이고 철마다 다른 모습이라, 집앞을 나서는 모습을 한 장씩 찍고 보면, 우리가 지내는 시골마을 이야기가 저절로 이루어지겠다고 느낀다.


  시골마을에 우리 집 논이나 밭은 없다. 우리 집만 덩그러니 있다. 그러나 우리 집을 둘러싼 논이나 밭이나 길이나 숲은 모두 우리가 함께 누리는 터전이다. 이웃집 할배가 논밭이나 길가에 농약을 치면 고스란히 우리 집으로 흘러들고, 이웃집 할매가 논둑이나 밭둑에서 쓰레기를 태워도 고스란히 우리 집으로 흘러든다. 그리고, 이런 농약 기운과 쓰레기 태우는 냄새는 이웃집 어디에나 가만히 흘러든다.


  집앞이 자가용 세우는 곳이 되면 집은 어떤 삶터가 될까 생각한다. 집앞이 자동차 싱싱 달리는 찻길이 되면 집은 어떤 보금자리가 될까 생각한다. 아이들이 집앞에서 놀 수 없다면, 집집마다 아이들이 집앞에서 못 논다면, 어느 집이건 어른들이 집앞에서 해바라기를 하거나 나무그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하루를 누리지 못한다면, 이런 집들 모인 마을은 얼마나 사람이 살 만한지 생각한다.


  집안도 잘 가꾸고 마당도 잘 돌볼 노릇인데, 집앞이 어떤 자리가 되도록 하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모두 똑같다. 그런데, 도시사람은 집앞을 어떻게 두는가? 도시사람 집앞은 으레 찻길이나 주차장 아닌가? 집앞에서 들이나 숲이나 나무나 꽃밭을 누리는 도시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날마다 늘 보는 ‘집앞 모습’이 살갑거나 사랑스럽거나 푸르거나 맑은 도시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4346.7.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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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자리

 


  똑같은 책인데, 도서관에 있으면 ‘도서관 장서’라는 이름이 붙는다. 새책방에 있으면 조금 헐거나 다쳤어도 그냥 ‘새책’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헌책방에 있으면 아무 때를 안 탄 빳빳한 새 것이라 하더라도 ‘헌책’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도서관에 있던 책이건, 새책방에 들어온 지 며칠 안 된 책이건, 헌책방에서 오래 묵은 책이건, 이 책들이 고물상으로 가서 있으면 ‘고물’이 된다. 폐지수집상이나 폐지처리장에 가는 책이라면 ‘폐지’가 된다. 이 책을 누군가 건사해서 집에 들이면 ‘개인 소장 자료’나 ‘서재 장서’가 되겠지.


  어느 자리에 있건 모두 같은 책이다. 도서관에 있기에 더 돋보일 까닭 없고, 이름난 학자가 읽어서 서재에 두었으니 더 훌륭할 까닭 없다. 철거를 앞둔 골목집 한쪽에 놓인 책이라면 건축쓰레기와 함께 버려지는 종이쓰레기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언제나, 어느 자리에서나, 책은 그예 책이다.


  그렇지만, 책은 늘 다른 자리에 놓인다. 똑같이 태어난 책 2천 권이나 2만 권이라 하더라도 2천 가지 삶터로 흩어지고, 2만 가지 살림터로 갈린다. 어느 책은 대통령 옆에 놓일 테고, 어느 책은 치과 손님방에 놓일 테며, 어느 책은 북카페 책상에 놓일 테지. 어느 책은 닳고 닳도록 읽힐 테고, 어느 책은 손때 한 번 안 탈 테며, 어느 책은 시골마을 흙이 묻을 테지.


  저마다 다른 사람이 읽기에, 책이 있는 자리는 삶이 있는 자리가 된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삶을 일구는 자리에 다 다른 책이 깃들면서, 다 다른 이야기를 끌어낸다. 다 다른 이야기는 다 다른 사랑이 된다. 다 다른 사랑은 다 다른 빛이 되고, 다 다른 꿈으로 다시 태어날까. 헌책방 한쪽 무너진 책시렁에 얹힌 책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4346.7.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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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3-07-02 16:02   좋아요 0 | URL
책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는 말씀이 마음에 착 감기네요 ^^ ㅎㅎ
같은 책을 읽어도 자신의 삶과 함께 책을 읽기 때문에
각기 다른 삶의 방식으로 읽혀지는 것이 또 책인 듯 합니다 ^^
요즘 도서관에 가면 , 제 책이 더 많다는 생각을 가끔 하고 옵니다 하하 ~
그게 괜히 뿌듯하고 그런 ... ^^
늘 좋은 날들 되세요 ~

파란놀 2013-07-02 18:24   좋아요 0 | URL
모든 책은 읽는 사람 것이니까요.
읽고 즐기는 사람 '소유'이지요~

Nussbaum 2013-07-03 22:23   좋아요 0 | URL
어느날부터 흔히 말하는 베스트셀러 라는 것 때문에 정말 좋은 책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주위의 작고 깊은 삶 또한 밀려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누군가 순위를 매겨 놓은 걸 살펴보기 보다는 조금 천천히, 더 깊이 책들을 바라봐야겠습니다.

파란놀 2013-07-04 00:12   좋아요 0 | URL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되도록 '베스트셀러' 아닌
'책'을 말할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야지 싶어요.

그래야 '책'이 읽혀요.
그렇지 않다면 '베스트셀러'만 읽히면서
우리 삶이 한쪽으로 치우쳐 버리겠지요.

내 삶을 읽고 누리듯
내 '책'을 찾아서 읽을 때에
아름답구나 싶어요.